잊고 사는 세월(歲月) -전상국
피난짐을 싸 짊어진 이웃사람들이 우리 집 담 너머로 기웃거리며 말했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진저리치듯 고개를 흔들며,
「글쎄, 가야 할 텐데 노인네가 고집을 꺽어야 말이지요?」
그랬다. 겨울난리가 나면서 대포소리가 점점 가까와지고 큰길에는 삼마치 고개를 넘어오는 피난민이 사태를 이룬 지도 벌써 며칠인데도 할머니는 막무가내였다.
아버지가 볼멘소리로 다그쳐도 할머니는 움쩍도 안 했다.
「누가 다 죽으라냐 ? 어서들 떠나라니까 자꾸 그러네.」
할머니가 혼자 집을 지키겠다는 고집이었다. 그것들이 아무리 무섭다 해도 죄 없는 늙은일 설마 어쩌겠냐? 이렇게 우겨대며 퍼난 떠나길 한사코 마다했다.
삼촌을 생각해서 할머니는 겨울이 돼도 버선을 신지 않았다. 솜 둔 옷은 아예 장롱에서 꺼내지도 못하게 했다.
옛날부터 아버지와 삼촌은 사이가 좋지 않았다. 할머니는 삼촌이 의용군에 간 것은 아버지가 삼촌을 미워했기 때문이라고 믿고 있을 정도였다.
아버지가 안방에서 코만 골아도 할머니는 몹시 역정을 냈다. 한 뱃속에서 나온 것이 어찌 저다지 무정할 수가 있느냔 거였다.
부엌 바닥에 세간 살이 묻는 일을 끝낸 아버지가 오늘은 좀 세게 나왔다.
「고집이 아니다. 살구 싶은 느덜이나 어서 가면 될 꺼 아니여?」
「갸가 그래 집이라구 찾아왔는데 식구 하나 없이 집이 텅 볐어봐라. 그래, 을마나 허전할 비여?」
아버지가 마당에 가래침을 카악 꼬나 뱉은 다음 말했다.
「빨갱이새낄 기다려서 뭘 어떡하겠다는 말씀예요, 어머이?」
「빨갱이두 내 새끼여. 내 새끼 내가 보고 싶어 기다리는데 누가 뭐래여?」
「그럽시다, 어머이. 피난이 무슨 놈의 퍼난이유. 우리 식구 다 여기 남았다가 그놈의 새끼 총에 다 맞아죽으면 될 꺼 아니유!」
아버지는 할머니가 방으로 들어가 버리자 다시 가래침을 꼬나 뱉곤 밖으로 나갔다. 나는 갑자기 심심해졌다.
「이 자식아, 난리가 쳐들어오는데 웬 목자치길 하자는 거냐?」
수진이 내신 엄마가 높은 목소리로 대답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대포소리가 썩 가까운 데서 여러 번 거듭 울려왔다.
밖에 나갔다 들어올 때마다 아버지는 닥쳐드는 난리 소식을 집안에 뿌려 수진이와 나를 무섭게 했다.
「도련님이 죽었다고. 벌써 오래 전에 죽었다고 말씀드리면 단념하실 거 아녜요?」
아버지가 엄마 얼굴을 빤히 쳐다보다가 한참 뒤에 말했다.
「그럴 수야 없지. 죽지두 않은 사람을 죽었다고 할 수가 있나.」
「그렇잖구요! 만약 도련님이 살아서 와 보라구요. 동우 아버지두 빨갱이루 몰리구 갈 껀데 뭘 그래요. 또 도련님이 무슨 짓을 할는지 알아요?」
아버지와 엄마는 피난을 떠나지 못하는 화풀이로 삼촌 문제를 놓고 티격태격 했다.
「동우 어머니, 지난번에 우리 체 하나 빌려 가셨지요?」
영희 엄마가 트럭 운전석 옆에서 소리쳤다. 엄마가 허둥지둥 영희네에서 빌려온 체를 찾는 동안 트럭은 흩날리는 눈발 속에서 발동을 끄지 않은 채 부릉거렸다.
엄마가 체를 찾아다 건네자 영희네 자동차는 흩날리는 눈발 속에 꿈결처럼 케치며 사라져 갔다.
영희네가 떠나고 난 뒤 약이 바싹 올라 어쩔 줄 모르고 있는 엄마를 향해 아버지가 말했다.
「하는 수 없잖아? 낼두 정 안 가시겠다면 우리끼리 가는 수밖에,」
할머니가 바늘에 실을 어렵게 꿰어 잡아 빼면서 호롱불 빛으로 방문에 커다란 그림자를 만들고 서 있는 나를 치어다봤다.
그렇게 대답하는 할머니의 목소리는 꼭 노랫가락에 실린 한숨 소리 같았다.
할머니는 바느질에 열중하면서 내 말에 너무나 쉽게 대답했다, 나는 약이 올랐다.
나를 쳐다보는 할머니의 얼굴이 빛 바랜 창호지처럼 창백해 보였다.
나는 덜덜 떨렸지만 끝까지 시치미를 뗐다. 재식이가 죽었단 말이에요. 이상하게도 나는 막내삼촌과 재식이를 혼동하고 있었다.
「삼촌은 죽었단 말이야, 할머이만 모르고 모두 다 알고 있단 말이야.」
방문을 열어젖뜨린 서슬과는 달리 할머니의 목소리는 낮았다. 그것이 오히려 듣는 사람에겐 가슴 섬뜩한 것이었다.
엄마 얼굴 대신 아버지의 얼굴이 그 래끔히 열린 문틈으로 드러났다.
할머니의 목소리는 너무 가라앉아 뱀가죽처럼 차갑게 느껴졌다.
「무슨 얘기긴, 네 동생 종찬이 말이다. 갸가 죽었다는 게 사실이냐 이 말이여?」
빼끔히 열린 문틈으로 보였던 아버지 얼굴이 금새 자취를 감친다. 좀 있다가 아버지와 엄마가 대청으로 나왔다.
엄마 말을 추상같이 잘라버린 다음 할머니 목소리는 다시 착 낮아졌다.
아버지는 머뭇거리며 사랑방 문턱에 기대선 나를 힐끗 건너다보았다.
「동우 아버지. 왜 말 못하는 거예요? 도련님이 빨갱이가 돼서 죽었다고 왜 사실대로 말씀드리지 못하냔 말예요? 도련님 때문에 우리 식구가 여기 남아서 다 죽어야 옳단 말예요?」
엄마가 할머니 기세에 꿀리지 않겠다는 듯 암팡지게 내 쏟았다.
「오냐, 그건 에미 말이 맞다. 너 아범, 왜 말 못하는 게냐?」
아버지가 눈을 내리깔며 필요 이상 큰 목소리로 말했다.
할머니가 제정신이 든 것은 자정이 지나서였다. 엄마와 아버지가 할머니 곁에 지켜 앉아 팔다리를 주무르며 눈물을 흘렸다.
할머니가 손가락마디 뭉툭한 그 반지 낀 손으로 내 등을 뚜덕이며 말했다.
집을 떠날 때 할머니는 삼촌 방에 이부자리를 펴고 그 속에 삼촌 내복과 할머니가 손수 지은 바지저고리를 넣은 다음 아궁이에 군불까지 지피고 일어섰다.
「싹 죽었다는구먼. 엊저녁 여기에 공비가 나타났었대.」
차가 굴러 내린 그 지점까지 갔다가 온 아버지가 얼굴을 벌겋게 달군 채 말했다.
수진이가 꼭두각시 인형을 만지작대며 물었다. 엊저녁 영희네를 떠나보낼 때처럼 수진이의 커다란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괴고 있었다.
「우리두 쌀이나 좀 가져갈까? 오늘 새벽에 어떤 사람은 눈 속에서 돈 자루를 찾아 가지고 갔다던데. 」
할머니가 매몰차게 말했다. 아버지는 눈 위에 내려놓았던 피난봇짐을 다시 짊어지며 멋적은 웃음을 씨익 웃었다.
엄마가 수진이 가슴에서 꼭두각시 인형을 잡아채어 길 옆 낭떠러지에 던졌다. 수진이는 울지 않았다. 입술이 파랗게 질려 와들와들 떨었을 뿐이다.
우리들은 고개마루턱을 지나 내림길에서 눈 덮인 길가에 버려진 채 죽어 있는 어린아이를 보았다. 포대기 한끝을 다부지게 잡아 쥔 그 갓난애의 손가락이 시퍼렇게 얼어 있었다.
아버지가 말했다. 우리 식구들은 아버지 등에 짊어진 이불 보따리에 노끈을 매놓고 그 한 오라기씩을 손에 쥐고 걸었던 것이다.
수진이가 징징거리며 뒤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함께 걷던 그 숱한 사람들이 어디론가 하나 둘 흩어져 없어지고 있었다.
「글쎄. 이 양반 답답하구먼. 자. 보다시피 이 방만 해두 자그마치 다섯 가구에 삼십 명이 넘는 식구요.」
어느 집에서나 방을 먼저 차지한 사람들이 그대로 주인이었다. 방뿐만 아니라 헛간이고 마루고 정말 발 들여놓을 틈이 없었다.
수진인 제것을 야금야금 아껴 먹으면서 내 주먹 밥이 얼른 없어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따, 저 할머이, 저래다가 좋은 시상 다시 못 보구 얼어죽겠시다.」
언제 눈이 왔느냔 듯이 정정 맑은 하늘에 파란 별빛이 오르르 떨고 있는 밤이었다.
산밑 마을 입구에서 아버지가 이쪽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는 게 보였다. 아버지 등에는 이불짐도 보이지 않았다.
문득 뒤돌아보니 할머니는 횐 옥양목 두루마기에 횐 머릿수건을 쓰고. 있어 눈밭을 뒤뚱뒤뚱 걷고 있는 것이 마치 눈사람 같았다.
「정말 이러기가 있소? 우리두 다 고향에 고래등같은 기와집을 버려 두고 떠난 사람들이란 말이요. 사람 이렇게 괄시받으니 이거 서러워서 어디 살겠나.」
마뜩찮은 얼굴을 하고 앉았는 아버지를 핀잔주는 할머니였다.
「그런가봐유. 원래 젖이 적은데다가 요즘 에미가 도통 낟알 국물을 먹었어야지유.」
할머니를 비롯해서 방안에 있는 몇몇 노인들이 혀를 끌끌 찼다.
「이러다간 아무래두 애 잡겠구먼유. 이놈이 글쎄 7대독자라구유. 즈 할아버이가 이놈 낳는 걸 보지두 못하구 여름난리 끝날 때 인민군들한테 끌려갔지 뭐겠수!」
「죄는 무슨 놈의 죄유. 인민군들이 애아범을 길 안내 하라누 끌구 가니까, 얘 할아버이가 아범 대신 따라간 거지유.」
7대독자인 그 갓난애의 할머니가 코를 훌쩍거리며 말했다.
「그래, 그 영감님을 기다리지두 않구 이렇게 피난길을 떠난 거유?」
나는 문득 삼촌 방에 할머니가 펴놓은 이불과 그 속에 넣어둔 삼촌 옷을 생각했다. 삼촌이 그 바지저고리를 점잖게 차려입고 그 위에 학생모자를 쓴 우스꽝스런 모습이 보여졌다.
누군가 어둠 속에서 한숨 섞어 중얼거렸다. 갓난애가 다시 칭얼거리기 시작했다.
수진이가 솜 둔 고깔모자를 머리에 뒤집어쓰며 속삭이듯 말했다.
수진이의 그 큰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괴어드는 게 보였다.
갓난애의 할머니가 우리 할머니 손을 쥐고 다시 울음을 터뜨렸다.
「또 낳으면 되는 게 자식인걸,,,, 산 사람들이나 정신들 차려야지. 」
그렇게 말하면서 할머니는 땅바닥에 엎어져 통곡하는 갓난애 엄마의 등을 뚜덕여 주는 것이었다.
그렇게 높은 열로 앓으면서도 수진이는 분명한 목소리로 영희 이름을 불렀다.
할머니는 왼손 가운뎃 손가락 깊숙이 박힌 채 다 닮고 빛마저 퇴색한 금반지를 아버지 앞에 내보였다.
「이까짓 걸 뭐하냐, 팔아서 애 약이나 쓰자. 이 병에 무슨 약이 소용있어야지요.」
아버지가 할머니 꾄손을 잡고 반지를 뺄 요량인 듯 눈어림하며 말했다.
「약이 움음 먹고 싶다는 거나 실컷 사다 멕여랴. 에미두 그렇구.」
아버지는 할머니 손을 이리저리 뒤쳐보며 고개를 저었다.
아버지가 내 손을 잡아 쥐며 말했다. 그 순간 나는 아버지를 용서하고 있었다. 그 갓난애를 밟은 건 우리 아버지가 아니야, 그렇게 아버지를 용서하고 나니까 나는 눈물이 쏟아졌다.
높은 데서 식구조사를 나온 사람이 수첩에 무엇인가 적어 넣으며 다시 물었다.
「죽은 걸 생각함 뭘 허우 ? 산 사람이나 살고 봐야지요.」
「할 수 없지요. 뭐, 더구나 황금은 땅속에 묻으면 안 좋대요.」
「아뭏든 난리두 끝나가니까, 고향 갈 때 노자야 되겠지!」
어리광부리듯 코맹녕이 소릴 하며 엄마가 아버지 품에 얼굴을 묻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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