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국단편소설3

33.잊고 사는 세월

by 자한형 2022. 5. 18.
728x90

잊고 사는 세월(歲月) -전상국

동우넨 안 갈 테유?

피난짐을 싸 짊어진 이웃사람들이 우리 집 담 너머로 기웃거리며 말했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진저리치듯 고개를 흔들며,

글쎄, 가야 할 텐데 노인네가 고집을 꺽어야 말이지요?

그랬다. 겨울난리가 나면서 대포소리가 점점 가까와지고 큰길에는 삼마치 고개를 넘어오는 피난민이 사태를 이룬 지도 벌써 며칠인데도 할머니는 막무가내였다.

이러다간 다 죽어요!

아버지가 볼멘소리로 다그쳐도 할머니는 움쩍도 안 했다.

누가 다 죽으라냐 ? 어서들 떠나라니까 자꾸 그러네.

할머니가 혼자 집을 지키겠다는 고집이었다. 그것들이 아무리 무섭다 해도 죄 없는 늙은일 설마 어쩌겠냐? 이렇게 우겨대며 퍼난 떠나길 한사코 마다했다.

삼촌 때문에 그러지, 할머이?

내 말에 할머니는 대답 없이 돌아앉았다. 또 그 왼손 가운뎃손가락에 낀 금반지를 만지작거리며 눈물을 질금거릴 것이다. 할머니가 시집을 때 할아버지가 끼워준 이래 그 오랜 세월을 단 한번도 할머니 손가락을 벗어난 일이 없는 금반지였다.

시집온 지 며칠 되지 않아 발방앗간에서 방아확에 손을 넣었다가 방앗공이에 으깨어진 손가락마디가 툭 불거진 채 굳어버렸던 것이다. 동우 할머인 그 반지 땅 속까지 끼구 가게 생겼구먼, 할머니 친구들이 말할 때마다 할머니는 늘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럼, 여부가 있나, 우리 영감이 나 끼워준 건데 누가 이걸 뺄 수 있대여? 저승 가서 영감님한테 여봐란듯이 보일 거구먼! 그런 반지를 할머니가 스스로 빼내려고 무척 애먹은 날이 있었다. 삼촌이 떠나기 전날 밤이었다,

아버지는 숫제 삼촌과 말도 하려들지 않았다. 할머니 역시 삼촌 고집을 꺽지 못하자 당신의 손에 낀 반지를 빼어줄 양으로 그 일을 시작한 것이다. 손가락에 비누칠을 하고 빼려 했으나 처음부터 헛일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할머니의 손 가운뎃손가락은 온통 껍질이 벗겨진 채 퉁퉁 부어 있었다. 그 부은 손가락의 안쪽에 무늬 다 닳아빠진 금반지가 아직 끄떡없이 버티고 있었다. 그러나 삼촌은 떠나고 말았다. 무엇엔가 단단히 홀린 삼촌은 의용군으로 가기 위해 할머니를 버렸던 것이다.

드르르, 문풍지가 떨면서 찬바람이 새어들었다. 밖에는 눈보라가 휘몰아쳤다. 바람 방향에 따라 대포소리의 크기가 달랐다. 이 날 따라 대포소리는 쿠웅쿠웅 더 잦게, 그리고 좀더 가까운 데서 울려왔다. 바람소리에 섞여 부엌바닥을 파내는 아버지의 삽질소리가 쉬임 없이 계속됐다. 아버지와 엄마는 며칠 전부터 좀 값나갈 만한 세간 살이를 모아 부엌 바닥에 묻는 작업을 해오고 있었다.

할머이, 또 우는 거지?

돌아앉은 할머니의 조그마한 몸뚱이가 가늘게 들먹거렸다. 그때 삼촌은 열아홉 살이었다. 읍내 농업 고등학교 3학년이었다. 나는 금빛 모표가 달린 삼촌 모자를 몰래 훔쳐 쓰고 밖에 나가 아이들 앞에서 으스댔다. 여름 난리가 있은 그해 가을 나는 국민학교 운동장에 모였다가 어디론가 떠나가는 삼촌을 배웅했다. 삼촌 또래의 의용군들은 고개를 가래로 떨군 채 운동장을 기신기신 걸어나갔다. 내 눈과 마주친 삼촌이 빙긋 웃으며 지나갔다. 나는 비로소 내 머리에 씌워진 삼촌의 학생모를 생각하고 얼른 그것을 벗어들어 흔들었다. 이제 그 모자는 온전히 내 것이 됐다. 할머니 또한 내 차지였다. 삼촌은 그 나이가 되도록 할머니 곁에서 할머니의 젖을 만지작거리며 잤던 것이다. 삼촌이 읍을 떠난 뒤 할머니는 내내 눈물 속에 살았다. 왼손 가운뎃손가락의 그 반지를 빼주지 못한 걸 못내 안타까와 하면서 바람이 조금 차도. 비가 내려도. 서리가 내린 아침에는 숫제 밥상을 외면한 채 물 한 모금 입에 넣지 않았다.

갸가 오늘밤은 꼭 올 것 같구나!

그런 날은 대문에 아예 빗장을 지르지 못하게 했다. 걸었다가도 도련님 오심 열어드리면 되잖아요? 엄마가 말했지만 할머니는 손을 설레설레 흔들었다. 그게 즈 아버지 얼굴도 모르고 큰 놈이다. 세상에 불쌍한 것. 할머니는 유복자인 삼촌에게 그야말로 있는 정성 다 쏟았던 것이다.

갸가 갈 때 양말두 안 신었쟈?

삼촌을 생각해서 할머니는 겨울이 돼도 버선을 신지 않았다. 솜 둔 옷은 아예 장롱에서 꺼내지도 못하게 했다.

어머일 생각하는 새끼가 빨갱이가 돼요?

옛날부터 아버지와 삼촌은 사이가 좋지 않았다. 할머니는 삼촌이 의용군에 간 것은 아버지가 삼촌을 미워했기 때문이라고 믿고 있을 정도였다.

에그. 사람도 아닌 것!

아버지가 안방에서 코만 골아도 할머니는 몹시 역정을 냈다. 한 뱃속에서 나온 것이 어찌 저다지 무정할 수가 있느냔 거였다.

갸 밥 떠왔냐?

엄마가 할머니한테 날벼락을 맞은 일이 있었다. 식구들 밥을 푸다가 그날 밥이 모자라 삼촌 몫을 빼 놓았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들었던 수저를 팽개치고 할머니 방으로 들어가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웠다 하면 하루 내내 문고리를 안으로 걸어 잠갔다. 그 뒤부터 엄마는 어떤 일이 있어도 삼촌 밥부터 은 주발에 떠놓았다, 할머니는 부엌에 나가 삼촌 밥 주발 뚜껑을 유심히 들여다보는 일을 하루도 거르는 일이 없었다. 그 밥 주발 뚜겅 위에 수증기가 엉긴 게 주르르 흘러 내려야만 할머니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렇게 주발 뚜겅에 눈물이 흘러야 그 임자가 살아 있다는 할머니의 생각이었다. 이놈이 지금 어디서 밥을 먹고 있는지. 할머니는 눈물이 흐르는 주발 뚜껑을 어루만지며 중얼거리곤 했다.

어머이, 제발 이제 고집 좀 꺾으시우.

부엌 바닥에 세간 살이 묻는 일을 끝낸 아버지가 오늘은 좀 세게 나왔다.

고집이 아니다. 살구 싶은 느덜이나 어서 가면 될 꺼 아니여?

할머니 또한 여전히 만만찮다.

갸가 그래 집이라구 찾아왔는데 식구 하나 없이 집이 텅 볐어봐라. 그래, 을마나 허전할 비여?

아버지가 마당에 가래침을 카악 꼬나 뱉은 다음 말했다.

빨갱이새낄 기다려서 뭘 어떡하겠다는 말씀예요, 어머이?

빨갱이두 내 새끼여. 내 새끼 내가 보고 싶어 기다리는데 누가 뭐래여?

그럽시다, 어머이. 피난이 무슨 놈의 퍼난이유. 우리 식구 다 여기 남았다가 그놈의 새끼 총에 다 맞아죽으면 될 꺼 아니유!

할머니 표정이 머쓱해졌다. 여름난리 때 재식이 아버지가 읍내 사람들을 도끼로 찍어 죽이는 걸 직접 본 할머니였다. 재식이 아버지가 아버지를 찾으러 들이닥쳤을 때 할머니는 치를 떨었다. 한 이웃에 살면서 불쌍하다고 입는 것 먹는 것 보살펴준 게 누군데 아무리 세상이 달라졌기로 이럴 수가 있느냔 거였다. 은혜를 원수로 갚는 순 불한당이라고 두고두고 뇌까린 할머니였다.

아버지는 할머니가 방으로 들어가 버리자 다시 가래침을 꼬나 뱉곤 밖으로 나갔다. 나는 갑자기 심심해졌다.

수진아, 우리 목자치기 하자.

안방에 대고 소리쳤다.

이 자식아, 난리가 쳐들어오는데 웬 목자치길 하자는 거냐?

수진이 내신 엄마가 높은 목소리로 대답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대포소리가 썩 가까운 데서 여러 번 거듭 울려왔다.

오빠야. 무섭다, 이리 들어와 놀자.

겨우 들리는 목소리로 수진이가 말했다. 보나마나 겁 많은 것이 이불을 뒤집어 쓰고 엎드렸을 것이다. 무서운 건 사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놀아주는 아이들이 없는 텅 빈 읍내 거리, 국도로 밀려나오는 피난민들의 아우성, 눈보라 속에 섞여 간간이 울려오는 포성, 더구나 지금처럼 땅거미 지는 겨울저녁의 썰렁한 추위는 내게 더욱 무서움을 안겨주었다.

문득 재식이 얼굴이 떠올랐다. 재식이네와 우리 집은 꽤 가깝게 지냈다. 우리 집에 무슨 큰일만 있으면 재식이 아버지와 재식이 계모가 나타나 궂은 일을 도맡아 해주었다. 닭 모가지를 낫으로 뚝뚝 끊어 끓는 물에 집어넣었다가 털을 뜯는 일이며, 돼지를 잡아 각을 친 다음 뒤꼍 대추나무에 매다는 일 같은 건 아예 재식이 아버지 차례였다. 잔치 끝나고 동네서 빌려온 가마솥이며 교잣상을 돌려주는 일도 그의 일이었다. 재식이네 아이들도 모두 우리 뒤꼍에 와서 얻어먹었다.

그러나 재식이만은 결코 우리 집에 나타나지 않았다. 나타나기는커녕 나만 보면 으르렁거렸다. 나는 항상 그의 밥이었다. 재식이한테 맞을 때마다 나는 맞아서 아픈 몇 배쯤 언구럭을 떨며 울어댔다. 내가 언구럭을 떨면 떨수록 사람들은 재식이를 욕했다. 그 애비에 그 자식이구나. 재식이 아버지가 불량스런 짓을 많이 하고 다녔기 때문에 사람들은 재식이 아버지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웃사람들은 항상 내 편이 돼주었다. 사람들이 모여들면 나는 아예 땅에 뒹굴면서 울었다. 배를 그러쥐고 금방 숨이 넘어갈 것처럼 울었다. 재식이 계모까지 나와 내 옷에 묻은 흙을 털어주며 나를 달랬다. 그 정도면 됐다. 그쯤 되면 재식이는 이제 며칠간 집에 들어갈 수가 없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럴 때마다 그는 다리 밑에서 잠을 자며 아치들이 가져다주는 누룽지를 먹고 지냈다.

여름난리 때 재식이 아버지가 붉은 완장을 차고 다녔다. 재식이 아버지 세상이었다. 중구난방, 아무에게나 시비를 걸고 닥치는 대로 사람을 죽였다. 아버지는 아예 팔봉산 속에 숨어 도토리를 주워먹으며 지냈다. 망둥이가 뛰니 꼴뚜기도 뛴다는 격으로 재식이는 읍내 아이들을 모아 가지고 별의별 좋지 않은 짓을 다 하고 다녔다. 나를 찾아 몇 번이나 우리 집에 들렀지만 그럴 때마다 할머니가 그들을 쫓아버리곤 했다. 나는 밤마다 재식이 꿈을 꾸었고 심한 가위에 눌려 허덕거려야 했다. 여름난리가 괄날 무렵 읍내 청년들이 재식이 아버지를 붙잡아 죽였다. 인민군 패잔병들이 떼를 지어 읍내를 지나가던 때였다. 그 애비에 그 새끼여., 사람들이 혀를 내둘렀다. 재식이가 인민군 패잔병을 붙들고 자기 아버지 원수를 갚아달라고 매달렸던 것이다, 별 피해는 없었지만 그 바람에 읍내가 한때 수라장이 되기도 했다. 결국 재식이는 인민군 패잔병을 따라 북쪽으로 가버렸다. 가면서 이 다음에 오면 아버지 원수를 꼭 갚고 말겠다고 하더란 것이다. 그 때 재식이 나이 열다섯이었다. 가다가 필경 어디서 굶어죽었을 게여, 지까짓 게 그 험한 산길을 타는 재간이 있어야지. 사람들은 재식이 얘기를 하면서 끌끌 혀를 차곤 했다. 열한 살 내 또래의 아이들은 재식이 계집애 동생을 골목에서 가둬놓고 못 살게 굴었다. 동우야, 니가 해라. 나보다 나이 많은 애들이 부추겼다. 나는 거침없이 그 계집애의 저고리 옷고름을 잡아떼었다. 속내의를 입지 않은 그 계집애의 보송보송한 젖가슴이 드러나자 아이들은 키들키들 웃어댔다. 계집애는 가슴을 감싸고 땅바닥에 주저앉아 울었다. 숱 많은 계집애의 머리칼에 서캐가 하얗게 슬어 있었고 아이들은 나뭇가지로 그 머리를 들쑤셔놓았다. 재식이 계모가 뒤뚱거리며 나와 계집애의 머리채를 휘감아 쥐고 질질 끌고 들어갔다. 우리들은 계집애가 매맞으며 내지르는 그 비명소리를 들으면서 골목을 떠났다. 그 계집애가 남산 중턱 소나무에 목매달아 죽었을 때 사람들은 정말 혀를 내둘렀다. 고작 열세 살 나이로 목매달아 죽은 사람을 아직 본 적이 없다고 모두 놀랬다. 남산에는 공동묘지가 있었다. 사람들은 팔다리를 추욱 늘어뜨리고 혀를 앙 다문 채 목 매달아 죽은 그 아이를 그 공동묘지에 묻어주었다. 나는 다시 꿈에 재식이를 보았고 심한 가위에 눌려 땀을 흘리는 일이 많았다.

뙤놈들이 피리를 불면서 새카맣게 내려온다는구먼.

밖에 나갔다 들어올 때마다 아버지는 닥쳐드는 난리 소식을 집안에 뿌려 수진이와 나를 무섭게 했다.

인민군들은 이제 애구 늙은이구 막 죽인대는 거여.

어이구, 이 일을 어쩐다죠?

엄마가 우리들을 끌어 안으며 우는 소리를 했다.

어쩌긴. 앉아서 다 죽는 거지 뭐!

아버지가 할머니 방 쪽을 겨냥하고 말했다.

이럭허면 어때요?

엄마가 소리를 죽여 아버지 귀 가까이에다 말했다.

도련님이 죽었다고. 벌써 오래 전에 죽었다고 말씀드리면 단념하실 거 아녜요?

아버지가 엄마 얼굴을 빤히 쳐다보다가 한참 뒤에 말했다.

그럴 수야 없지. 죽지두 않은 사람을 죽었다고 할 수가 있나.

차라리 도련님은 죽는 게 나을 거예요.

엄마가 뾰족한 목소리로 받았다.

무슨 소릴 하고 자빠졌는 게야?

그렇잖구요! 만약 도련님이 살아서 와 보라구요. 동우 아버지두 빨갱이루 몰리구 갈 껀데 뭘 그래요. 또 도련님이 무슨 짓을 할는지 알아요?

갠 아직 어린애란 말이야.

그러니까 더 무섭다는 말예요.

아버지와 엄마는 피난을 떠나지 못하는 화풀이로 삼촌 문제를 놓고 티격태격 했다.

해 다 저물어 바람이 죽는가 싶더니 다시 눈발이 흩날리기 시작했다. 그날 저녁 우리 동네에서 제일 잘살던 영희네가 자기네 트럭으로 피난을 떠났다. 쌀이며 웬만한 세간 살이를 가득 싣고 자기네 친척 두어 집과 함께 떠났다. 그 트럭이 우리 집 앞에 잠깐 멈추었다.

동우 어머니, 지난번에 우리 체 하나 빌려 가셨지요?

영희 엄마가 트럭 운전석 옆에서 소리쳤다. 엄마가 허둥지둥 영희네에서 빌려온 체를 찾는 동안 트럭은 흩날리는 눈발 속에서 발동을 끄지 않은 채 부릉거렸다.

수진아!

운전석 옆에 끼어앉은 영희가 수진이를 손짓해 불렀다. 수진이 눈에는 벌써부터 눈물이 었다. 영희가 꼭두각시 인형 하나를 던져주었다. 지난번 내려 쌓인 눈 위에 처박힌 인형을 주워드는 수진이를 향해 영희가 말했다.

수진아, 잘 있어!

엄마가 체를 찾아다 건네자 영희네 자동차는 흩날리는 눈발 속에 꿈결처럼 케치며 사라져 갔다.

낼은 우리두 갑시다.

영희네가 떠나고 난 뒤 약이 바싹 올라 어쩔 줄 모르고 있는 엄마를 향해 아버지가 말했다.

저인 어떡하구요?

엄마가 할머니 방을 턱으로 가리켜 보였다.

하는 수 없잖아? 낼두 정 안 가시겠다면 우리끼리 가는 수밖에,

진작 그랬어야 했다구요.

아버지와 엄마는 피난짐을 챙기러 서둘러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풀풀 흩날리는 눈발이 영희네 트럭이 남기고 간 바퀴자국을 거의 다 덮어버릴 때까지 나는 대문턱에 기대서서 좀더 선명한 울림을 가진 대포소리를 듣고 있었다. 꿈이 아닌데도 나는 흩날리는 눈발 속에서 재식이를 보았다. 어쩌면 그것은 남산 중턱 소나무에 목매달아 죽은 재식이 계집애 동생이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할머니 방에 들어섰을 때 그네는 바느질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지난밤 다듬이질을 하던 그 천으로 삼촌 솜바지를 거의 마무리해가고 있었다. 호롱불빛에 실을 꿰느라 쳐든 할머니의 왼손 가운뎃손가락의 금반지가 누런 빛을 뿜어냈다.

할머이, 우리두 낼 피난 떠난대!

할머니가 바늘에 실을 어렵게 꿰어 잡아 빼면서 호롱불 빛으로 방문에 커다란 그림자를 만들고 서 있는 나를 치어다봤다.

할머이두 같이 갈 거지?

할민 안 간다아!

그렇게 대답하는 할머니의 목소리는 꼭 노랫가락에 실린 한숨 소리 같았다.

할머인 순 바보야!

그래, 니 말대로 할민 바보다.

할머니는 바느질에 열중하면서 내 말에 너무나 쉽게 대답했다, 나는 약이 올랐다.

할머이, 삼촌은 벌써 죽었다드라 모.

뭐랬냐? 너 지금 뭐랬냐?

나를 쳐다보는 할머니의 얼굴이 빛 바랜 창호지처럼 창백해 보였다.

아버지가 그러는데 삼촌은 벌써 죽었대!

바느질감을 방바닥에 떨구며 할머니가 내 손을 더듬어 쥐었다. 마디 퉁겨진 할머니의 왼손 가운뎃손가락 그 안쪽에 박힌 금반지가 으스스 귀기를 풍겼다. 나는 아직 이처럼 무서운 할머니의 얼굴을 본 적이 없었다.

종찬이가 죽었어?

나는 덜덜 떨렸지만 끝까지 시치미를 뗐다. 재식이가 죽었단 말이에요. 이상하게도 나는 막내삼촌과 재식이를 혼동하고 있었다.

삼촌은 죽었단 말이야, 할머이만 모르고 모두 다 알고 있단 말이야.

내 손을 잡았던 할머니의 손이 스르르 풀렸다. 넋 나간 사람처럼 내 얼굴을 쳐다오고 앓았던 할머니가 느닷없이 뿌르르 일어나 방문을 열어젖뜨렸다. 어둠 속의 눈발이 호롱불빛에 희끗희끗 흩날려 보였다.

아범, 나 좀 보자.

방문을 열어젖뜨린 서슬과는 달리 할머니의 목소리는 낮았다. 그것이 오히려 듣는 사람에겐 가슴 섬뜩한 것이었다.

왜요, 어머님?

엄마가 안방 문을 빼끔히 열고 얼굴을 보였다.

니가 아니고 아범 말이여!

할머니 목소리에 조금 서슬이 섰다.

아범, 나 좀 보자니까!

할머니가 대청마루에 올라서고 있었다.

그래, 이제 맘 고쳐잡쇘수, 어머이?

엄마 얼굴 대신 아버지의 얼굴이 그 래끔히 열린 문틈으로 드러났다.

종찬이가 죽었냐? 갸가 죽은 게 사실이냐 말이여?

할머니의 목소리는 너무 가라앉아 뱀가죽처럼 차갑게 느껴졌다.

무슨 얘기유, 어머이?

무슨 얘기긴, 네 동생 종찬이 말이다. 갸가 죽었다는 게 사실이냐 이 말이여?

빼끔히 열린 문틈으로 보였던 아버지 얼굴이 금새 자취를 감친다. 좀 있다가 아버지와 엄마가 대청으로 나왔다.

그래요. 어머님. 도련님은------

엄마가 아버지 앞을 막아서며 말했다

닥쳐라, 너 이년!

엄마 말을 추상같이 잘라버린 다음 할머니 목소리는 다시 착 낮아졌다.

아범아, 네 입으로 어서 말해보렴.

아버지는 머뭇거리며 사랑방 문턱에 기대선 나를 힐끗 건너다보았다.

동우 아버지. 왜 말 못하는 거예요? 도련님이 빨갱이가 돼서 죽었다고 왜 사실대로 말씀드리지 못하냔 말예요? 도련님 때문에 우리 식구가 여기 남아서 다 죽어야 옳단 말예요?

엄마가 할머니 기세에 꿀리지 않겠다는 듯 암팡지게 내 쏟았다.

오냐, 그건 에미 말이 맞다. 너 아범, 왜 말 못하는 게냐?

할머니가 아버지 앞가슴을 잡아 쥐었다.

왜 이러우, 어머이?

종찬이가 증말 죽었냐?

아버지가 힐끗 엄마를 쳐다봤다.

말해봐라, 이놈아!

할머니가 고함을 내질렀다.

죽었어요. 본 사람이 있대요.

아버지가 눈을 내리깔며 필요 이상 큰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부르르 몸을 떨며 지켜보았다, 아니나다를까, 할머니가 대청마루에 벼락치듯 넘어졌다. 넘어지면서 할머니가 내지른 그 고함소리는 도저히 사람 입에서 나온 것이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엄청난 것이었다.

할머니가 제정신이 든 것은 자정이 지나서였다. 엄마와 아버지가 할머니 곁에 지켜 앉아 팔다리를 주무르며 눈물을 흘렸다.

어머이, 종찬이가 죽었다는 건 거짓말이었어요.

어머님, 저희들이 죽을 괼 졌어요.

아버지와 엄마는 울먹이면서 할머니한테 계속 빌었다.

할머이가 피난 안 갈까봐 일부러 그랬단 말이야.

나 역시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할머니가 손가락마디 뭉툭한 그 반지 낀 손으로 내 등을 뚜덕이며 말했다.

그래, 이 할미가 잘못했다.

할머니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아버지와 엄마의 거짓말도 용서한 할머니였다. 물론 삼촌이 죽지 않았다는 걸 할머니는 당신 스스로에게 다짐두고 있는 것 같았다. 기왕 갈 거, 눈이 더 쌓이기 전에 갈 걸 그랬다, 할머니는 당신의 옷가지를 챙기며 말했다. 도무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할머니가 변해 있었다. 나는 그렇게 변해버린 할머니가 무서웠다. 할머니 가슴에 삼촌의 무덤을 파고 죽음의 그림자를 던진 게 바로 나였기 때문이다.

집을 떠날 때 할머니는 삼촌 방에 이부자리를 펴고 그 속에 삼촌 내복과 할머니가 손수 지은 바지저고리를 넣은 다음 아궁이에 군불까지 지피고 일어섰다.

남 좋은 일만 허신다니까!

아버지가 대문 밖에 서서 끌끌 혀를 쌌다. 아버지는 이불 짐 위에 쌀자루를 얹어 지고 있었다. 엄마는 군복 사지로 지은 몸뻬를 거뜬하게 차려입고 머리에는 양은 솥 따위의 취사 도구를 한 보따리 이고 있었다. 옥양목 횐 두루마기를 입은 할머니가 솜 둔 고깔모자를 쓴 수진이 손을 잡고 나왔다. 수진이 가슴에는 엊저녁 영희가 던져주고 간 꼭두각시 인형이 안겨 있었다. 로그락보그락 눈 밟아나가는 우리 식구들의 발자국소리가 텅 빈 마을에 울렸다. 그러나 큰길에는 길이 메게 사람이 많았다. 반질반질 다져져 미끄러운 눈길을 피난민들이 줄을 잇고 있었다.

소달구지 위에 피난 짐을 싣고 그 위에 올라앉아 흔들리며 가는 사람, 지게 위에 백발 노인을 지고 가는 남자의 묵묵한 걸음 뒤에는 올망졸망한 아이들이 팔 소매에 코를 홈쳐가며 따라가고 있었다. 여름난리 때 비행기 폭격으로 끊어진 화양강 다리 옆으로 놓인 가교 위에는 서로 먼저 건너려 아우성치는 사람들로 인산인해였다. 아예 다리를 포기하고 눈 덮인 얼음 위로 아슬아슬 건너는 사람도 많았다.

읍을 벗어난 이십여 리 밖 삼마치 고개 중턱에 이르러 우리 식구들은 엊저녁에 먼저 떠난 영희네 트럭을 보았다. 배기통으로 연기를 팡팡 뿜어대며 우리 집 앞을 떠났던 그 자동차가 산비탈 그 아래 골짜기에 찻바퀴를 하늘로 향한 채 처박혀 있었다. 차가 굴러 내린 산비탈에는 쌀가마며 잡다한 세간살이들이 너저분하게 널렸고 피난민들이 개미처럼 달라붙어 쌀자루를 져 올리는 중이었다.

싹 죽었다는구먼. 엊저녁 여기에 공비가 나타났었대.

차가 굴러 내린 그 지점까지 갔다가 온 아버지가 얼굴을 벌겋게 달군 채 말했다.

영흰 안 죽었지, 아빠?

수진이가 꼭두각시 인형을 만지작대며 물었다. 엊저녁 영희네를 떠나보낼 때처럼 수진이의 커다란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괴고 있었다.

안 죽은 게 뭐야, 싹 죽었다니까!

잘라 말해놓고 아버지가 엄마 눈치를 보며 더듬거렸다.

우리두 쌀이나 좀 가져갈까? 오늘 새벽에 어떤 사람은 눈 속에서 돈 자루를 찾아 가지고 갔다던데.

아범, 어서 가자!

할머니가 매몰차게 말했다. 아버지는 눈 위에 내려놓았던 피난봇짐을 다시 짊어지며 멋적은 웃음을 씨익 웃었다.

수진아. 그거 버려!

엄마가 수진이 가슴에서 꼭두각시 인형을 잡아채어 길 옆 낭떠러지에 던졌다. 수진이는 울지 않았다. 입술이 파랗게 질려 와들와들 떨었을 뿐이다.

우리들은 고개마루턱을 지나 내림길에서 눈 덮인 길가에 버려진 채 죽어 있는 어린아이를 보았다. 포대기 한끝을 다부지게 잡아 쥔 그 갓난애의 손가락이 시퍼렇게 얼어 있었다.

어이, 그거 묻어줘라!

길 양쪽으로 나누어 울을 이룬 채 피난민들과 함께 묵묵히 걷고 있던 국군 속에서 좀 높은 사람이 말했다. 죽은 갓난애 옆을 지나던 군인이 군화 끝으로 그 시체를 밀었다. 눈 덮인 산비탈에서 갓난애의 시체는 금새 커다란 눈덩이가 되어 무서운 기세로 굴러내려 골짜기 중턱 바위틈에 처박혔다. 눈 무덤이었던 것이다.

하나같이 남쪽을 향한 걸음이었다. 앞으로 전달, 뒤로 전달, 길 옆을 두 줄로 나누어 터벌터벌 걷고 있는 군인들이 이따금 맥빠진 전령을 보내느라 떠들썩할 뿐 그 가운데로 커다란 흐름을 이루어 걷는 피난민들은 누구 하나 입을 열-않았다. 눈길을 따라 끝없이 이어진 흐름이었다. 그러나 가끔 이 도도한 흐름을 거슬러 올라오는 사람도 있긴 했다. 길에서 부모를 잃은 어린아이들이나 그 아이를 찾는 어른들의 울부짖으며 허둥거리는 걸음이었다.

놓치지 마라!

아버지가 말했다. 우리 식구들은 아버지 등에 짊어진 이불 보따리에 노끈을 매놓고 그 한 오라기씩을 손에 쥐고 걸었던 것이다.

겨울 해는 짧았다. 구름 속의 해가 산등성이쯤에 걸렸다고 어림되는 시간이면 벌써 찬바람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세찬 바람이 불 때마다 커다란 이불 짐을 짊어진 사람들은 비틀거 리며 게걸음을 쳤다. 소달구지 위에 앉아 가는 아이들은 머리를 가슴에 처박아 저녁바람을 피했다.

엄마, 발 아파 죽겠다.

수진이가 징징거리며 뒤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함께 걷던 그 숱한 사람들이 어디론가 하나 둘 흩어져 없어지고 있었다.

우리도 방을 얻어야겠어.

아버지가 길에 망연히 멈춰 서며 멀리 산밑의 인가를 바라보았다. 우리들은 아버지를 따라 지치고 꽁꽁 언 몸을 따뜻이 녹여줄 방을 얻기 위해 국도를 벗어나 눈 쌓인 논둑 길을 줄타기하듯 움찔움찔 걸어 산밑 외딴 초가를 찾아들었다. 그러나 우리 식구들의 몸을 녹여줄 그런 방은 없었다. 허둥허둥 눈 쌓인 밭을 가로질러 찾아간 다음다음 집도 매한가지였다.

어떻게 좀 하룻밤 같이 끼여 잘 수가 없을까유?

아버지가 사정을 했다.

글쎄. 이 양반 답답하구먼. . 보다시피 이 방만 해두 자그마치 다섯 가구에 삼십 명이 넘는 식구요.

어느 집에서나 방을 먼저 차지한 사람들이 그대로 주인이었다. 방뿐만 아니라 헛간이고 마루고 정말 발 들여놓을 틈이 없었다.

그날 밤 우리 식구들은 논 한가운데 눈을 쳐내고 거기 장작불을 피운 다음 볏짚을 깔고 방을 못 구한 다른 사람들과 함께 노숙을 했다. 엄마가 소금을 넣어 뭉쳐준 주먹밥을 들고 나는 수진이와 누가 빨리 먹나 내기를 했다.

오빠, 발리 좀 먹어라 모.

수진인 제것을 야금야금 아껴 먹으면서 내 주먹 밥이 얼른 없어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기집애야, 넌 일부러 천천히 먹고 있잖아!

내가 핀잔주자 수진이는 그 커다란 눈에 눈물을 그렁거리다가 후딱 이불을 뒤집어썼다. 그리고 그 맛있는 주먹밥을 입에 문 채 잠들어버렸던 것이다. 어른들은 장작불 위에 마른 볏단을 얹어 사르면서 난리중의 세상 사람들 인심 얘기를 했다.

세상 인심이 이래놓으니 왜 난리가 간 나겠소.

그렇지요, 사람 씨알이 숱하게 많아놓으니까 이건 서로 만났다 하면 웬수지간이요, 서로 잡아먹으려고 으르렁대질 않나, 사람 목숨이 라는 게 파리목숨이나 진배없고-------도무지 사람이 사람 귀 한 줄을 모르고 사는 세상이니......누가 아니랍니까. 어떻든 난리 한번 잘 났다구요. 난리가 나야 숱한 인총두 덜구, 그래야만 사람이 사람 귀한 줄도 알지요.

이 엄동설한에 방 한간 못 얻고 논바닥에서 밤을 지새우는 한풀이들이었다. 할머니는 토시에 팔짱을 낀 채 웅크려 앉아 꾸벅꾸벅 졸았다. 이불 덮기를 한사코 마다하는 할머니를 두고 곁의 사람들이 말했다.

아따, 저 할머이, 저래다가 좋은 시상 다시 못 보구 얼어죽겠시다.

언제 눈이 왔느냔 듯이 정정 맑은 하늘에 파란 별빛이 오르르 떨고 있는 밤이었다.

눈을 붙인 둥 만 둥 지새운 다음 날이 새기가 무섭게 덜덜 떨리는 몸으로 다시 국도로 나서는 사람들이었다. 그렇지만 워낙 미끄러운 눈길이라 고작 삼사십 리도 못 가 하루해가 저물었다. 거기다가 지난밤 방을 얻지 못해 논바닥에서 잔 사람들은 아예 겁을 먹고 대낮부터 국도를 떠나 인가를 찾아 나섰다.

눈 쌓인 들판을 휩쓸며 불어 치는 눈보라는 이파리 하나 없이 앙상한 길가 미류 나무 가지를 취잉휘잉 울리며 지나갔다. 수진이와 나는 발을 동동 구르며 방을 얻으러 산밑 인가로 떠난 아버지를 기다려야 했다. 할머니는 토시에 팔짱을 낀 채 우리들이 걸어온 북쪽 고향길을 멍하니 바라보고 서 있었다.

산밑 마을 입구에서 아버지가 이쪽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는 게 보였다. 아버지 등에는 이불짐도 보이지 않았다.

아범이 방을 얻은 게로구나.

할머니가 말하지 않아도 우리들은 아버지가 따뜻한 방 한간을 얻어놓고 우리들을 부르고 있다는 걸 대번 알아냈다. 수진이와 나는 할머니를 뒤에 남기고 장딴지까지 덮이는 생 눈길을 허겁지겁 뛰었다.

얘들아, 넘어질라.

문득 뒤돌아보니 할머니는 횐 옥양목 두루마기에 횐 머릿수건을 쓰고. 있어 눈밭을 뒤뚱뒤뚱 걷고 있는 것이 마치 눈사람 같았다.

엄마와 아버지는 빈집을 독차지하고 앉아 사뭇 주인 행세를 했다. 사랑방과 웃방을 인심 좋게 내주어 몇 가구씩 혼숙을 시키면서도 우리들이 차지한 안방은 초저녁까지 아무도 얼씬 못하게 했다. 우리 집 피난봇짐은 아예 다락에 얹어놓고 엄마는 부엌에서 장작불로 밥을 끓이는 등 완전한 그 집주인이었다. 방을 구하지 못한 사람들이 몰려들어 우리들 널찍한 안방을 기웃거리며 아버지한테 시비를 걸었다.

정말 이러기가 있소? 우리두 다 고향에 고래등같은 기와집을 버려 두고 떠난 사람들이란 말이요. 사람 이렇게 괄시받으니 이거 서러워서 어디 살겠나.

그러나 아버지가 만만찮게 받았다.

이거 내가 당신들 괄실 하는 거요? , 보다시피 저기 환자가 누워 있소. 살아야 며칠 더 못 살 내 어머이요. 내 집에서 내 어머이 며칠간이나마 조용히 모시고 싶다는 이 자식 소원이 그래 틀렸단 말이요?

할머니를 아랫목에 이불을 뒤집어 씌워놓고서 아버지와 엄마는 그런 연극을 했다. 할머니는 다행히 초저녁부터 잠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아버지는 울먹여가면서 오히려 시비 거는 사람들을 나무라쳤다. 계속 꾸역꾸역 몰려드는 사람들을 그런 식으로 잘도 물리쳤다.

그러나 그것도 초저녁까지가 통했을 뿐이다. 밖에 눈이 내리기 시작하면서부터 텃논바닥에서 불을 키우고 노숙을 하던 사람들이 다짜고짜로 방으로 기어드는 데는 어쩔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더구나 잠을 깬 할머니가 아버지의 연극 낌새를 눈치채자 이불을 걷어치우고 일어나 봉당에 웅숭그리고 있는 사람들을 방으로 불러들여 안방은 그야말로 발들여 놓을 틈이 없게 돼버렸다.

사람이 이런 땔수록 맘을 곱게 써야 하는 벱이여.

마뜩찮은 얼굴을 하고 앉았는 아버지를 핀잔주는 할머니였다.

밖에서 꽁꽁 언 아이들 얼굴이 훈훈한 방안 공기에 풀리면서 벌겋게 달아올랐다. 침을 겔겔 흘리면서 어른들 무릎에 얼굴을 묻고 자는 아이들도 있었다. 아뭏든 그 많은 사람들이 다리를 뻗고 잔다는 것은 생각도 못할 일이었다. 식구들끼리 서로 웅기중기 붙어앉아 꾸벅꾸벅 졸았다. 가까이 앉은 사람끼리는 서로 통성명을 한 뒤 고향을 묻고. 대포소리의 지금 위치를 어림잡으며 내일쯤은 중공군이 예까지 밀려올는지도 모른다는 그런 뒤숭숭한 얘기며, 여름난리부터 이번 겨울난리까지 그 숱하게 죽은 사람들의 원귀가 공중에 득시글거린다는 얘기들을 나누고 있었다.

쥔장 불좀 끕시다!

웃목께서 누군가 아버지 쪽을 향해 말했다. 잠을 자자는 뜻이었을 것이다. 아버지가 벽에 걸린 호롱불을 입김으로 꺼버리자 갑자기 방안은 칠흑처럼 캄캄해 졌다. 방문턱 있는 데서 아까부터 갓난애가 빼액빼액 울어댔다. 갓난애 엄마와 또 그 애의 할머니인 듯싶은 노파가 계속 번갈아 가며 둥개질을 시키는데도 그 갓난애는 울기를 그치지 않았다. 불을 끄고 다른 사람들의 말소리가 뜸해지면서 갓난애의 울음소리는 더욱 귀에 거슬렸다.

애기가 배가 고픈가보우!

어둠속에서 할머니가 말했다.

젖이 통 안 나온다우.

불을 끄기 전 애기를 둥개질 시키던 노파가 대답했다.

저런, 엄마가 먹는 게 부실해서 그런 게유!

그런가봐유. 원래 젖이 적은데다가 요즘 에미가 도통 낟알 국물을 먹었어야지유.

할머니를 비롯해서 방안에 있는 몇몇 노인들이 혀를 끌끌 찼다.

이러다간 아무래두 애 잡겠구먼유. 이놈이 글쎄 7대독자라구유. 즈 할아버이가 이놈 낳는 걸 보지두 못하구 여름난리 끝날 때 인민군들한테 끌려갔지 뭐겠수!

, 무슨 죌 졌나유?

죄는 무슨 놈의 죄유. 인민군들이 애아범을 길 안내 하라누 끌구 가니까, 얘 할아버이가 아범 대신 따라간 거지유.

7대독자인 그 갓난애의 할머니가 코를 훌쩍거리며 말했다.

그래, 그 영감님을 기다리지두 않구 이렇게 피난길을 떠난 거유?

할머니 목소리 아닌 다른 노파가 그렇게 묻고 있었다.

눈이 빠지게 기다렸지유. 정한수 떠다놓고 빌기두 숱하게 했지유. 허지만 그놈의 영감쟁이가 돌아와줘야 말이지유. 꿈에두 안 나타나는 걸 보면 죽은 게 틀림없지유. 입때까지 안 돌아온 걸 봐선 죽은 게 뻔한데두요, 사람의 맘이란 게 요사해서 지금두 꼭 즈 할아버이가 집에 와 앉아 있는 것만 같다구유.

나는 문득 삼촌 방에 할머니가 펴놓은 이불과 그 속에 넣어둔 삼촌 옷을 생각했다. 삼촌이 그 바지저고리를 점잖게 차려입고 그 위에 학생모자를 쓴 우스꽝스런 모습이 보여졌다.

산다는 게 뭔지-,----

누군가 어둠 속에서 한숨 섞어 중얼거렸다. 갓난애가 다시 칭얼거리기 시작했다.

, 좀 잡시다!

아까 아버지한테 불을 꺼달라고 말하던 웃목께의 남자가 다시 퉁명스럽게 말했다. 이상하게도 그 소리에 7대 독자인 그 갓난애의 울음이 뚝 그쳤다. 방안은 금새 쑤아아, 정적이 밀렸다. 조심조심 앉은 자세를 고쳐d는 사람들의 부시럭대는 소리. 제법 코까지 고는 사람들도 있었다. 스락스락 뜰에 내려앉는 싸락눈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가물가물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문득 잠을 깨었을 때는 오줌통이 터지게 뻐끈했다. 아무리 오줌을 싸려 해! 오줌이 나오지 않아 애를 먹다가 문득 깬 잠이었다. 변의 말고도 내가 깨게된 또 다른 기척이 있었다. 내 머리를 받치고 있던 아버지의 무릎이 움직인 것이다. 아버지가 더듬더듬 일어서고 있었다. 느낌에, 아버지가 소변을 보러 밖으로 나가는 낌새였다. 아버지는 어둠 속으로 더듬더듬 방문께로 다가가는 모양이었다, 나 역시 어쩔까 망설이며 일어나 앉았다. 어디가 방문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그때 나는 분명 무슨 소긴가 들었다. 짤막하면서도 쥐어짜는 듯한 신음소리였다. 느닷없이 전신으로 소름이 확 끼쳐들었다. 아버지가 방문을 열고 나가는 대신 어느새 내 곁에 돌아와 있었다. 아버지의 숨결이 예사롭지 않았다. 내 머리를 들어 무릎에 눕히는 아버지의 손이 몹시 떨리고 있었다,

아버지.

내가 속삭이듯 불렀다. 오줌이 마렵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내가 입을 떼기 전에 아버지의 손이 내 입을 막았다. 아버지의 손이 우악스럽게 느껴졌다. 나는 얼굴을 돌려 아버지의 손을 떨쳐버리려 했다.

임새끼야, 가만 있어!

아버지가 내 귀에 대고 말했다. 그 목소리에서 나는 무엇인지 절박한 걸 전해 받았다. 머리끝이 쭈뼛 벋치는 무서움이었다. 재식이 여동생이 목 매달아 죽은 그 축 늘어뜨린 사지와 길게 빼문 혀가 보였던 것이다.

어떻게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내가 눈을 떴을 때는 희황하게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피난 봇짐을 제가끔 챙기느라 방안이 온통 수라장이었다. 그런데 방 한구석에서 울음소리가 들렸다. 지난밤 울어대는 갓난애를 서로 번갈아가며 둥개질 시키던 젊은 여자와 노파였다. 젊은 남자가 그네들 취에 침통한 표정으로 있었다. 그네들은 포대기에 싸인 애기를 가운데 놓고 지직 바닥을 잡아뜯으며 절통한 울음을 꺽꺽 울고 있었다.

갓난 애기가 밤에 죽었대!

수진이가 솜 둔 고깔모자를 머리에 뒤집어쓰며 속삭이듯 말했다.

누가 밟아 죽였는지도 모른대.

수진이의 그 큰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괴어드는 게 보였다.

나는 문득 아버지를 돌아다보았다. 그러나 피난봇짐을 고쳐 싸기에 바쁜 아버지는 내게 눈 한번 주는 일 없었다. 달그락달그락, 그 짐을 챙기느라 북새질치는 속에서도 사람들은 밥을 먹느라 여념이 없었다. 우리 역시 엄마가 부엌에서 끓여온 된장국에 밥을 말아 아귀아귀 퍼먹었다. 그러나 할머니는 두어 숟갈 먹다가 일어나 방 한구석에서 울고 있는 사람들한테로 다가갔다.

어이구 시상에 이 일을 으쯔면 좋은가유?

갓난애의 할머니가 우리 할머니 손을 쥐고 다시 울음을 터뜨렸다.

또 낳으면 되는 게 자식인걸,,,, 산 사람들이나 정신들 차려야지.

그렇게 말하면서 할머니는 땅바닥에 엎어져 통곡하는 갓난애 엄마의 등을 뚜덕여 주는 것이었다.

, 빨리빨리 가자!

아버지는 이날 따라 몹시 서둘러대며 필요 이상 큰 소리로 말했다. 밤이면 잠들었던 포성 이 오늘은 이른 새벽부터 더욱 선명한 울림으로 밀려와 가슴을 후들거리게 했다. 멀리 건너다 보이는 국도에는 벌써 피난민들이 쏟아져 나와 길을 메운 채 남쪽을 향해 도도히 움직여나가고 있었다.

 

엄마야, 내 인형!

피난민수용소로 쓰고 있는 어느 학교 마룻바닥에서 얼굴이 찹쌀과줄처럼 벌겋게 부풀어오른 수진이가 제 가슴을 쥐어뜯으며 헛소리 쳤다. 얼굴은 물론이고 온몸에 꽈리 같은 반점이 불긋불긋 피었고 열로 해서 입술은 까맣게 타들어 갔다. 수진이는 며칠깨 눈을 뜨지 못하고 있었다.

영희야, 내 인형 이리 내!

그렇게 높은 열로 앓으면서도 수진이는 분명한 목소리로 영희 이름을 불렀다.

망할 것, 갸가 우리 수진일 데려가려나 보다.

할머니가 수진이 손을 붙잡으며 고개를 돌렸다.

아범, 이것 좀 빼봐라.

할머니는 왼손 가운뎃 손가락 깊숙이 박힌 채 다 닮고 빛마저 퇴색한 금반지를 아버지 앞에 내보였다.

이까짓 걸 뭐하냐, 팔아서 애 약이나 쓰자. 이 병에 무슨 약이 소용있어야지요.

아버지가 할머니 꾄손을 잡고 반지를 뺄 요량인 듯 눈어림하며 말했다.

약이 움음 먹고 싶다는 거나 실컷 사다 멕여랴. 에미두 그렇구.

아버지는 할머니 손을 이리저리 뒤쳐보며 고개를 저었다.

둬둬요, 빠지지두 않아유.

내 눈에는 삼촌을 주기 위해서 그 반지를 빼려다가 할머니 손가락에 난 상처가 보였다, 엄마는 수진이 발끝에 앉아 무릎에 얼굴을 묻은 채 계속 울고 있었다. 엄마 얼굴은 백지장처럼 해쓱해 보였다. 심한 이질에 걸려 있었던 것이다. 엄마는 한 시간에도 몇 번씩 교실을 들락거렸다. 밖으로 뛰쳐나가 수용소 뒤편 똥 밭에 앉아 징징 울었다.

얘가 아무래도 이상하다.

할머니가 아버지 귀 곁에 대고 속삭이듯 말했다.

동우야, 너 좀 나가 놀아라.

아버지가 말했다. 나는 할머니의 어깨 너머로 수진이 얼굴을 보았다. 수진이 입에서 피리소리가 났다. 그건 수진이 얼굴이 아니라 전연 다른 애의 얼굴이었다. 남산 중턱에 목매달아 죽은 그 계집애의 얼굴이었다. 온몸으로 소름이 끼치면서 몸이 덜덜 떨렸다.

괜찮다.

아버지가 내 손을 잡아 쥐며 말했다. 그 순간 나는 아버지를 용서하고 있었다. 그 갓난애를 밟은 건 우리 아버지가 아니야, 그렇게 아버지를 용서하고 나니까 나는 눈물이 쏟아졌다.

엄마, 빨리 와보래!

온통 안개로 뒤덮인 피난민 수용소 뒤편 똥밭에 회끄무레한 형체로 쭈그려 앉아 있는 엄마를 향해 울음 섞어 소리쳤다. 우왁우왁 짙게 깔린 안개가 일렁이면서 빛 바랜 창호지처럼 해쓱한 엄마의 얼굴이 나타났다.

안개가 서물서물 수용소 뒤편 산골짜기로 걷혀 올라갈 무렵 나는 복도에서 할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엄마가 한꺼번에 쏟아내는 울음소리를 들었다. 수용소를 덮었던 안개가 뒷산 중턱에까지 이르러 있었다. 수진이가 그 안개를 타고 갔던 것이다.

, 니 동생 죽었재?

산비탈 묵은 밭에서 씀바귀를 캐고 있던 같은 수용소에 사는 애들이 물었다. 그러나 나는 들은 체도 않고 골짜기를 치뛰었다. 할머니가 수진이를 안고 갔다. 아버지는 수용소 사무실에서 삽을 빌어 가지고 할머니 뒤를 따라 올라가면서 내가 따라오지 못하게 눈을 부라렸다.

수진이는 이미 땅에 묻힌 뒤였다, 삽을 든 아버지가 농구화 신은 발로 땅을 쾅쾅 다져 밟고 있었다. 엄마는 땅을 다지는 아버지 다리에 매달려 몸을 뒹굴며 울었다. 할머니는 수진이 옷가지를 불사르면서

어이구 시상에!

울음 섞인 한숨을 몰아쉬었다.

산을 내려올 때 나는 아버지가 만들어놓은 수진이 무덤을 몇 번인가 돌아다보았다. 수진이 것 옆에 수십 개의 애총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나는 가슴이 텅 빈 것 같았다. 묵은 밭에서 씀바귀뿌리를 캐던 아이들도 이미 보이지 않았다.

이게 수진이라고 하자.

수진이가 죽어 묻힌 그날, 하필이면 그날 저녁 피난민 수용소 인원 파악이 있었다. 아버지가 이불을 덩그렇게 펴서 그 속에 꼭 수진이가 누워 있는 것처럼 만들어놓았다. 마마를 앓다가 죽어나간 다른 애들 어른들도 모두 우리처럼 그랬다. 한 식구분이라도 배급을 더 타야 했기 때문이다.

다섯 사람입니까?

높은 데서 식구조사를 나온 사람이 수첩에 무엇인가 적어 넣으며 다시 물었다.

환잡니까?

덩그렇게 놓인 이불을 가리키면서였다,

, 제 딸이 마마를 앓고 있어요.

아버지가 어렵잖게 대답했고, 그 조사 나온 사람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른 데로 가버렸다. 다섯 식구분의 배급카프를 받아든 아버지가 씨익 웃었다. 할머니가 그 이불에 엎디어 소리 죽여 울고 있었다.

죽은 걸 생각함 뭘 허우 ? 산 사람이나 살고 봐야지요.

아버지가 배급카드를 조심스럽게 접어 넣으며 말했다.

 

결국 할머니가 수십 년간 손가락에 끼고 있던 그 닳고 제 빛까지 잃은 금반지는 아버지 손에 옮겨와 있었다. 할머니 손가락에서 아버지가 빼낸 것이다. 피난민수용소를 떠나 잠시 옮겨 산 그 폐광터 골짜기에서 할머니가 열병으로 죽었던 것이다. 피를 한 바가지나 쏟고 죽은 할머니를 폐광터 뒷산 기슭에 파묻고 내려온 밤에 아버지가 엄마한테 속사였다.

내가 어머이한테 큰 죌 졌구먼!

그게 그렇게 안 빠져요?

엄마가 아버지 곁으로 바싹 다가 누우며 물었다.

잘 빠지면 내가 죽은 이 손가락을 그렇게 했겠어?

할 수 없지요. , 더구나 황금은 땅속에 묻으면 안 좋대요.

아뭏든 난리두 끝나가니까, 고향 갈 때 노자야 되겠지!

엄마 허리에 팔을 감으며 아버지가 말했다.

, 수진이 대신 애기 하나 낳고 싶다 모.

어리광부리듯 코맹녕이 소릴 하며 엄마가 아버지 품에 얼굴을 묻었다. -

 

 

 

 

 

'한국단편소설3' 카테고리의 다른 글

35. 제 3 자  (0) 2022.05.18
34. 장미 병들다  (0) 2022.05.18
32. 이어도  (0) 2022.05.18
31. 우상의 눈물  (0) 2022.05.18
30. 요한 시집  (0) 2022.05.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