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국단편소설3

51. 궤도회전

by 자한형 2022. 5. 20.
728x90

궤도회전(軌道回轉) -조세희

 

세째 해를 윤호는 조용히 보냈다. 두번째 해의 십이 월과 다음의 일 월을 괴롭게 보냈을 뿐이다. 아버지만 아니었다면 그 두 달도 조용히 보냈을 것이다. 아버지는 윤호가 예비고사에서 떨어진 이유를 밝혀내려고 했다. 윤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첫해의 예비고사 성적이 이백 육십 칠 점이었다. 그해의 커트라인은 백 구십 육 점이었다. 칠십 일 점이나 더 받고 합격했던 윤호가 다음해에 떨어진 이유를 아버지는 알 수 없었다. 나중에야 알고 파랗게 질렸다. 아들의 낙방을 반항으로 받아들이려고 했다. 그러한 아버지를 윤호는 불쌍하게 생각했다. 아버지의 매를 피하지 않았다. 화가 난 아버지는 철사로 아들을 때렸다. 아버지는 지난 몇 달 동안 남의 나라의 묵은 법을 꺼내 밑줄을 그었다, 윤호는 아버지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네 겹 철사가 공기를 가르면서 윤호의 몸을 휘감았다. 누나가 소리를 내어 울었다. 비서가 시간을 알리지 않았다면 율사는 아들의 몸에 큰 상처를 남길 뻔했다. 그는 매를 놓고 호텔로 갔다. 그와 그의 동료들은 호텔에서 중요한 회합을 갖고는 했다. 누나가 윤호의 옷을 벗겼다. 살 속까지 파고 들어간 내의가 피에 젖어 있었다, 윤호는 사흘 밤낮을 그 아픔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잘못은 아버지에게 있었다. 처음부터 윤호를 전혀 다른 계층의 사람으로 키우려고 했다. 그의 우월주의가 윤호를 A대학교 사회계열로 민 것이다. 결국 두 달이 지나자 아버지는 윤호에게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물었다. 윤호는 처음처럼 B대학교에 가 역사 공부를 하겠다고 말했다.

B대학교에는 지금 실력으로도 충분히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학원은 물론 개인 지도 같은 것도 일체 받지 않겠다고 했다. 학원 강사, 개인 지도 교사들을 생각하면 구역질부터 났다. 윤호에게 걸었던 아버지의 기대는 이때 무너졌다. 그는 담담히 물러섰다. 화를 내지도 않았다. 깨져버린 꿈에 불까지 지를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윤호는 아버지의 주문과 기대를 밀쳐 버리자 자유로와졌다. 그 세째 해의 삼월과 사월 사이에 -노동수첩-이라는 작은 책자를 읽었다. 그 안에는 근로기준법, 근로기준법시행령, 근로안전관리규칙, 노동조합법, 노동조합법시행령, 노동쟁의조정법, 노동쟁의조정 법시행령, 노동위원회법, 노동위원회법시행령, 국가보위에 관한 특별조치법, 은강방직단체협약, 은강방직노사혈의회규칙. 은강방직지부운영규정 등이 들어 있었다. 윤호는 막 이사간 동네에서 이 책을 읽었다. 아주 밟고 깨끗한 동네였다.

아버지가 행복동 삼층 집을 쏟고 북악산 산허리 숲 속 단층집으로 이사를 한다고 처음 말했을 때 누나는 발을 동동 구르며 싫다고 했었다. 비서를 따라 갔다와서는 반대로 이사갈 날만 기다렸다. 울타리가 쳐져 있는 동네였다 입구에 경비실이 있고. 경비원들이 차를 세워 동네로 들어가는 사람들의 신원을 확인했다. 전혀 다른 세계에 와 있는 느낌이었다.

거리는 깨끗하고, 집들은 그림 같았다. 걸어서 이 저택 촌을 드나드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봄이 되자 동네는 향기로 가득 찼다. 겹벚꽃, 덩굴장미, 라일락, 백목련, 산철쭉, 가막살나무, 박태기나무 등이 꽃을 피웠다. 벌들이 잉잉 소리를 내며 날았다. 그 동네에서는 과거의 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비온 다음의 풍경은 말할 수 없이 아름다왔다. 윤호는 거기서 작은 혼이 자지러지는 소리를 듣고는 했다. 그러나 숨을 죽이고 살았다. -노동수첩-은 더없이 좋은 책이었다.

"그거 무슨 책야?"

"?"

"그 책."

"이건 책이 아냐,"

"그럼 뭐야?"

사월이 다갈 때 옆집의 여자아이가 말을 걸어 왔다. 그 아이는 저희 빨간 차에 기대서서 뚫어지게 윤호를 쳐다보았다. 윤호는 아무 대꾸를 하지 않았다. 계집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학원 강사나 개인 지도 교사들처럼 생각만 해도 구역질이 날 것 같았다, 여자아이들과 자고 끝이 좋았던 기억이 하나도 없다. 늘 울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런데. 옆집 아이는 윤호 앞으로 확 다가서면서 작은 책자를 나꿔챘다. 그 아이가 제목을 읽고, 속 차례를 읽는 모습을 윤호는 보았다. 경애는 이제 고등학교 이학 년이 된 열 일곱 살 짜리 여자아이였다. 얼른 차례를 읽고 첫 장을 넘겨 근로 조건의 준수, 균등처우, 폭행의 금지, 중간 착취의 배제, 공민권 행사의 보장 등 고딕체의 글자를 따라 읽었다. -노동수첩-을 넘겨주면서 경애는 얼굴을 붉혔다,

그 아이가 얼굴을 붉힌 까닭을 윤호는 알 수 없었다. 그 아이는 눈이 부시게 횐 스웨터에 눈이 부시게 횐 바지를 입고 있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때 그 아이의 할아버지가 죽어가고 있었다. 경애의 옷은 몸에 찰싹 붙었다. 다음에 만났을 때는 원피이스를 입고 있었다. 경애가 윤호를 집으로 찾아와 만났다.

"쎌 모임이 있어."

그 아이가 대뜸 말했다.

윤호타 물었다,

"뭐라구?"

","

"쎌이 뭐야?"

"CELL, CELL TECHNIQUE-알지?"

그래 . 알아."

윤호는 경애의 얼굴을 들여다보면서 물었다.

"그런데 왜 나를 찾아왔니?"

"오빠를 초청하러."

"나를? ?"

"토론 주제가 십대 공원야."

"잘못 짚었어. 난 할 이야기가 없다."

"노동수첩은 어디서 났어 ?

"은강엘 갔었지. 거기서 구했어."

"공원들을 만났었잖아? 그렇지?"

이번에는 경애가 윤호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면서 물었다. 얼굴만 돌렸다면 피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윤호는 저도 모르게 열 일곱 살 아이에게 끌려가고 있었다. 그 시간에 경애의 할아버지가 죽어가고 있었다. 경애의 할아버지는 돈이 많았다. 많은 돈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마지막 숨을 크게 쉬고 눈을 감았다. 숨의 매듭 끈은 쉽게 끊겼다. 동네는 진한 꽃향기에 묻혔다. 승용차들이 지붕 위에 큰 화환을 싣고 왔다. 그 화환의 수를 정확히 셀 수 없었다. 누나는 진한 향기를 참을 수 없다면서 창문을 꼭꼭 닫아걸었다. 서울의 모든 꽃집 꽃들이 동이 났을 것이라고 누나는 말했다.

그날 밤 아버지는 그의 동료 율사들과 지하 호움 바에서 술을 마셨다. 그들은 먼저 경애네 집에 들렀다 왔다. 아무도 경애 할아버지와 악수를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윤호는 영어 공부를 했다. 지겨운 수학 공부도 했다. 그러다 창가로 가 잔디밭 덩굴장미 너머로 경애네 집을 보았다. 까만 옷을 입은 경애가 집 앞에 나와 서 있었다, 그 아이는 시들어 가는 꽃을 만졌다. 윤호는 이제 경애할아버지의 몸도 냄새를 풍기기 시작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다음날 만난 경애는 고개를 저었다. 할아버지의 몸은 절대로 썩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 아이는 윤호를 저희 빨간 차안으로 끌어들인 다음 장의사 사람들이 밤을 새워 한 일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들은 굉장한 기술자였다.

"이해할 수가 없어,"

경애가 말했다.

"나도 언젠가 죽을 것 아냐. 그리고 땅에 묻히겠지. 내가 땅에 묻혀 흙으로 변한 다음에도 할아버지는 관속에 지금 그대로 누워 계시겠다는 거야."

"너희 할아버지는 왕이구나."

"독재자야."

"울지 않았니?"

"내가 왜 울어야 되지? 아무도 울지 않았어. 어른들은 지금도 싸우고 있어."

"?"

"할아버지의 자리가 탐이 나서."

"어디로 가는 거지 ?

"학생 회 관, "

둘이 도착했을 때 회관 성물 판매소 앞에 아이들이 서 있었다. 아이들이 경애를 둘러싸며 손을 잡았다. 감자아이들은 건물 안 휴게실에서 여자아이들을 기다렸다. 여자아이들이 들어갔을 때 어떤 아이는 전화를 걸고 있었고, 어떤 아이는 사탕 판매기 앞에서 동전을 찾고 있었으며 어떤 아이는 가방을 열어 그 안에 든 초와 성경, 학생 교본인 -믿음을 향한 대화-제가 사용할 컵 등 준비물을 확인하고 있었다. 남자 쪽 총무가 사무실에서 지하 성당의 열쇠를 가지고 왔다. 아이들이 그를 따라 내려갔다. 윤호는 건물 현관문 위의 -자유, 정의, 평화-와 휴게실 접수부 위 벽의 (Pax Romana)를 읽었다. 경애가 윤호를 안내했다.

스무 개의 계단을 내려가자 나무십자가가 보였다. 윤호는 왼쪽 벽 앞으로 다가선 경애가 성수를 찍어 성호를 긋는 것을 보았다. 경애는 (주여, 이 성수로써 내 죄를 씻어 없애시고, 마귀를 쫓아 몰으시고, 악한 생각을 빼어 버리소서)라는 기도문을 외었다. 그날 아이들은 지하 성당 에서 -십대 공원-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삼십 분 동안 토론을 벌였다

윤호는 가만히 앉아 듣고만 있었다. 눈이 마주칠 때마다 경애가 미소를 띠어 보였다. 그 아이의 어깨 너머로 성체를 모신 감실, 대리석 제대 안 쪽의 성합이 보였다. 반쯤 열려진 커어튼 사이로 빨간 불빛이 새어 나왔다. 아이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열심히 자기의 생각들을 털어놓았다. 아이들은 그림자를 잡고 있었다. 그림자를 잡다가 윤호를 불렀다.

"오빠!"

경애가 소리쳐 아이들이 웃었다.

회장이 말했다.

"지도 선생님이 못 나오시게 되어 한 윤호 선배를 모셨습니다. 지금부터 말씀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의 지도 선생님이 못 나오시게 된 이유를 방금 알았습니다."

윤호가 말했다.

"하실 말씀이 없으셨을 겁니다."

아이들이 웃었다.

"선생님은 굉장히 창피하셨을 겁니다."

아이들이 다시 웃었다.

"나도 부끄럽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여러분은 부끄러움을 모릅러다."

"왜요?"

여자아이가 물었다.

윤호는 말했다.

"여러분은 십대 공원이라는 주제를 놓고 삼십 분 동안이나 이야기를 했습니다. 모르면서 아는 것처럼 이야기했습니다. 우리 나라에서 십대 공원에 대해 죄스러운 마음 없이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나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행복동에 살 때 어느 분의 소개로 난쟁이 아저씨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평생 동안 고생만 하시다 돌아가셨습니다. 그분의 아들과 딸이 공장 지대에 가 일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복잡하고 힘든 일을 합니다. 그들의 어린 동료들은 자기 자신을 표현할 줄도 모르고, 인간적인 대우를 어떻게 해야 받는지도 모릅니다. 현장 일이 그들의 성장을 짓누르고 있습니다. 위에서는 날마다 무지한 생산 계획을 세웁니다. 공원들은 기계를 돌려 일합니다. 어린 공원들은 생활의 리듬을 기계에 맞춥니다. 생각이나 감정을 기계에 빼앗깁니다. 학교에서 배운 것 생각나죠? 그들은 낙하하는 물체가 갖는 힘, 감겨진 태엽 따위가 갖는 힘과 같은 기계적 에너지로 사용됩니다. 그래서. 나는 여러분처럼 십대 공원 이야기를 하며 노동이라는 말, 의무라는 말, 자연적인 권리라는 말을 할 주가 없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처럼 그들을 돕자고도 말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갖는 감상은 그들이게 아무 도움을 못 줍니다. 197x, 한국은 죄인들로 가득 찼다는 것입니다. 죄인 아닌 사람이 없습니다."

이야기를 하다 말고 윤호는 기타 소리를 들었다. 남자아이가 구석 쪽으로 가 기타를 치기 시작한 것이다.

"계속하세요."

여자아이 가 말했다.

"아주 작게 쳐."

다른 여자아이가 남자아이에게 말했다. 그것은 슬픈 음악이었다. 그 기타 소리가 은하계의 별들을 떠올리게 했다. 윤호는 작은 별들의 운행을 생각했다. 경애는 말 한마디 없이 윤호만 쳐다보았다, 윤호는 죽은 난장이의 아들딸이 공장에서 겪는 몇 가지 실례를 들어주고 이야기를 끝냈다. 난장이의 큰아들은 자동차 조립 공장에서 드릴 일을 했다. 작은아들은 연마 일을 했다. 딸은 방직 공장에 나가 틀 보기 일을 했다. 큰아들은 지금 일을 못 하고 있다. 그러나 아이들은 윤호의 이야기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아이들을 끌어들여 이해시키기 위해서는 -노동 수첩-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 줘야 하고, 공원들이 인간으로 받는 대

우를 나나하나 열거해야 하고, 현장 설명을 구체적으로 해야 하고, 그곳 하늘빛을 세세히 묘사해야 하고, 그들의 식탁과 잠자리를 이야기해야 하고, 고용주와 고용인이 갖는 힘의 불균형과 그에 의한 분배를 말해야 하고, 노동 운동의 역사를 들춰야 하고, 불편한 잠자리에서 고향 꿈을 꾸다 일어나 앓는 어린 공원들의 얼굴 표정을 설명대야 한다. 윤호는 단념하고 이야기를 끝내 버렸다.

아이들은 다음 프로그램을 원하고 있었다. 성급한 남자아이들 중의 몇몇은 처음부터 윤호의 말을 듣지 않겠다는 자세였다.

경애가 다가와 대신 사과했다.

"신경 쓰지 마."

경애가 말했다.

"다른 아이들은 오빠를 좋아해. 마실 것 좀 줄까?"

"괜찮아."

윤호는 말했다.

"나 먼저 가 봐야겠다."

"?"

내가 어울리지 않는 곳야."

"오빠를 좋아하는 아이 들을 실망시키지마."

"그런 아인 없어."

"있어!"

"이곳이 갑갑해서 나가고 싶어."

모두 죄인이라면서? 그러니까 우리가 사는 곳은 다 감옥 아냐?"

남자아이들이 일어나 의자 뒤쪽으로 물러섰다. 여자아이들은 의자를 하나씩 비우고 떨어져 앉았다. 두 아이가 쿠킹 호일에 접은 종이를 넣어 돌렸다. 아이들이 그것을 집었다.

"네 파트너는 초대 손님야."

여자아이가 말했다.

"오빠가 내 파트너야."

경애가 말했다.

"십대 공원이라는 주제는 누가 정했니?"

윤호가 물었다.

"?"

"용서할 수 없어."

"나는 상제야,"

"자유를 팔았다면 용서했을 거 야."

"할아버지의 몸은 썩지 않을 거야. 내일이 장례 날야. 나는 상제야. 오빠가 날 어떻게 하면 안 돼."

윤호는 감실 옆쪽의 마리아 상을 보았다. 남자아이들은 접은 종이를 펴 자기 파트너를 찾아갔다. 여자아이들은 옆자리에 와 앓는 남자아이들을 보았다. 어떤 아이는 만족해하고 어떤 아이는 실망했다. 그 아이들이 탁자 위에 준비해 온 것들을 올려놓기 시작했다. 무지개떡. 햄버거, 과자. 과일. 그리고 마실 것들인 우유와 콜라였다. 어떤 아이는 커피를 끓이기 위해 문 왼쪽 콘센트에 커피 포트의 플럭을 꽂았다.

아이들의 준비는 완벽했다. 아이들은 소형 전축과 전축 음반까지 반입하는 데 성공했다. 기타는 문제가 될 것이 없었다. 기타는 이미 오래 전부터 합동 회담 때 지참해도 되는 필수 품목으로 공인을 받아 왔기 때문이다. 여자아이들이 촛불을 켰다. 남자아이가 전등을 껐다. 아이들은 탁자에 둘러앉아 차려 놓은 것들을 먹고 마셨다. 아이들은 아주 행복했다.

"소꿉장난야."

경애가 말했다.

"오빠한테 미안해. 그렇지만 먼저 가면 안 돼."

"왜 날 잡는 거냐?"

윤호는 바짝 다가앉는 경애에게 물었다.

"오빠가 좋아서."

낮게 경애가 말했다.

"주제가 자유였다면 오빠와 이야기를 할 수 없었을 거야."

너는 불쌍한 아이들을 팔았어."

"오빠 이야기는 멋있었어. 오빠가 오늘 나를 구원해 줬어."

"너는 불쌍한 아이들을 팔고, 이제 너의 신까지 모독했다."

"그러지 마, 오빠."

경애가 눈을 흘겼다.

"다들 조용히 해."

여자아이가 말했다.

"자 됐지?"

남자아이가 기타를 쳤다. 윤호로 하여금 작은 별들의 운행을 생각하게 했던 아이다. 그 아이는 기타를 치면서 ( -바람은 알고 있다,,,,,,-)고 노래했다. 그 아이의 파트너가 촛불을 옮겨 놓으며 콜라를 마시는 모습을 윤호는 보았다. 성급한 남자아이들은 또 다음 프로그램의 진행을 원했다, 그 중의 한 아이가 밖으로 나갔다. 아이들이 노래를 합창했다.

"들리니?"

안에서 한 아이가 물었다

밖으로 나갔던 아이가 들어와 문을 잠그며 말했다.

"안 들려."

"전축을 틀어."

"벌써 춤야?"

"그만둬."

남자 쪽 총무가 말했다.

"게임 순서야."

"오빠도 해."

"나는 옵서버야."

"두고 봐."

경애는 말했다.

"오빠도 끼게 될 거야."

아이들은 탁자를 벽 쪽으로 옮겼다. 윤호는 그 반대쪽 벽에 걸려 있는 열 네 장의 그림, 십사처상본을 보았다. 아이들이 게임을 시작했다. 아이들은 크게 소리지르고 크게 웃었다. 남자아이들이 웃옷을 벗었다. 땀을 흘리기 시작한 몇몇 여자아이들도 거추장스러운 웃옷을 벗었다. 시간 재기를 할 때 경애가 윤호 옆으로 다가와 앉았다. 경애는 윤호의 두 손 사이에 작은 손을 포개어 넣었다. 남자아이들도 파트너의 손을 두 손 사이에 넣었다. 아이들은 눈을 감았다. 정확히 십 오초 후에 일어나라고 말한 사회자가 두 개의 촛불을 꺼 버리는 것을 윤호는 보았다. 남은 세 개 중의 한 촛불이 경애의 얼굴에 희미한 빛을 던졌다. 남자아이들이 일어서기 시작했다. 어떤 아이들은 너무 일찍 일어섰고, 어떤 아이들은 너무 늦게 일어섰다. 십 오 초라는 짧은 시간이 많은 착각을 주었다. 사회자는 오차가 심했던 짝들을 좁은 의자 위에 올려 세우려고 했다.

아이들은 제대로 서지도 못하고 떨어졌다. 여자아이들이 남자아이들을 밀어 버렸다. 서로를 안지 않고서는 좁은 의자 위에서 매암을 돌 수 없었다. 남자아이가 촛불 하나를 꺼 버렸다. 여자아이 둘이 남은 두 개의 촛불을 손으로 가렸다. 아이들이 의자 위로 올라서는 소리를 윤호는 들었다.

"올라와, 오빠."

경애가 말했다.

"나에게 명령을 하면 안 돼."

윤호가 말했다.

"오빠도 한 번만 나에게 명령해."

"그럴 일이 없어."

생각해 봐."

"너를 고문대에 눕힐 테야."

경애가 말없이 손을 내밀었다, 윤호는 그 손을 잡고 의자 위로 올라 섰다. 경애는 윤호의 두 손을 잡아 허리 뒤쪽에 대어 주며 깍지를 끼게 했다. 자신의 팔은 윤호의 등뒤로 가슴 부분을 안았다. 윤호가 두 팔에 힘을 주는 것을 느끼며 경애는 발을 들었다. 두 아이는 의자 위에서 작은 궤도를 따라 돌았다. 다른 아이들은 의자와 함께 넘어갔다.

"됐어."

경애가 속삭이듯 말했다.

윤호는 경애를 풀어 주었다.

"근사했어!"

여자아이가 낮게 경애에게 말했다. 그 아이의 파트너가 남은 두 개의 촛불 중에서 또 하나를 껐다. 다른 아이가 전축을 틀었다. 아이들은 음악 소리를 들으며 자기 짝하고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모두 그 시간을 기다렸다. 마지막 촛불 하나는 한족 벽과 친정에만 빛을 던졌다. 아이들은 그 마지막 촛불만은 끄지 못했다. 돌아가는 음반 속에서 여자 가수

(-어느 여름날 연못 속에 붕어 두 마리 서로 싸워 한 마리는 물에 떠오르고 그 몸살이 썩어 들어가 물도 따라 썩어 들어가 연못 속에선 아무도 살 수 없게 되었죠,,,,,-)라고 노래불렀다. 윤호는 벽에 기대앉았다. 경애는 얼마동안 고개를 들지 않았다. 윤호가 팔에 힘을 주었을 때 가졌던 감각을 아직 떨어버리지 못했다. 장의사 사람들은 굉장한 기술자였다. 그러나 그들도 죽은 할아버지의 감각 세포만은 어떻게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경애의 할아버지는 평생을 하등 감각에 얽매여 산 사람이다. 윤호는 경애의 얼굴을 들게 하더니 약속을 지켜 하고 말했다. 날 어떻게 할 생각야, 경애가 물었다. 고문대에 눕힌 다음 너를 고문할 거야, 하고 윤호가 말했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어? 이제 네 죄를 네가 불어야 돼. 좋아 오빠 마음대로 해, 하고 경애가 말했다. 윤호는 경애를 일으켜 세우더니 옷을 벗어 하고 말했다. 미쳤어 오빠, 경애가 웃었다. 아이들이 전축을 껐다. 그 아이들이 윤호와 경애를 둘러쌌다, 윤호는 경애의 원피이스 목 부분을 걸머잡았다. 걸머잡은 손을 아래쪽으로 확 내리자 경애가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얼굴을 감쌌다. 아이들이 웃었다. 옷이 찢겨지며 알몸을 드러낸 착각을 경애는 가졌다. 순간적인 수치심 때문에 입술을 꼭 물었다. 윤호는 경애의 두 손을 끈으로 묶는 시늉을 했다. 고문리는 발가벗긴 죄수를 수직 고문대에 매달 생각이었다. 나에겐

아무 죄가 없어, 하고 경애가 말했다. 여자아이들이 소리를 내어 웃었다. 윤호는 경애를 의자 위에 올려 세우더니 손을 들게 했다. 경애의 몸은 끈에 묶여 매달린 셈이다. 자백할 때까지 매달아 둘 테야, 하고 윤호가 말했다. 아이들에게는 지루한 놀이의 시작처럼 보였다. 그래서 다시 천축을 틀고 중단했던 이야기를 계속했다. 경애가 고개를 숙였다. 그 자세로 윤호를 향해 쓰러졌다. 윤호는 경애를 안아 바닥에 눕혔다. 경애는 집 앞에 세워진 화환들을 생각했다. 꽃은 시들어 가고 있었다. 고문리는 경애를 반듯하게 눕힌 다음 두 늪과 두 다리를 묶어 말뚝에 매었다. 그 말뚝 돌리는 흉내를 윤호가 냈다,

"소리를 질러."

윤호가 말했다.

"네 몸의 심줄과 살이 찢어질 거야."

"하나도 안 아파."

경애가 말했다.

"아깐 서 있기가 싫어서 까무러친 흉내를 냈어. 지금은 아주 편해."

네가 진실을 말하게 할 테야."

윤호는 보이지 않는 네 개의 말뚝을 세 번씩 돌려 졸랐다. 정확한 기록이 전해지지 않아 알 수는 없지만 옛날 지하 감옥의 고문실은 이 순간 비명으로 가득 찼을 것이라고 윤호는 생각했다. 입술이 경련을 일으키고 살이 찢어지며 피가 흘렀을 것이다. 윤호는 경애의 가슴 위에 손을 얹었다.

너의 심장이 이제 파열할 거야."

조용히 말했다.

"네가 자백을 안 하면 또 돌리게 돼."

"난 편해."

경애가 말했다.

난 자백할 것이 없어,"

"넌 불쌍한 아이들을 팔았어."

"그 이야긴 싫어.."

"그 아이들을 팔아 나를 불러냈어."

"싫다니까."

", 말을 해."

"난장이 아저씨가 누군지 난 몰라."

"은강방직은?"

"그럴 줄 알았어."

경애가 말했다.

"할아버지 회사야."

"할아버진 뭘 갖고 있었니?"

"많은 회사, 많은 공장, 아름다운 섬, 근교의 농장, 푸울. 호움바. 에스컬레이터 시설을 갖춘 저택. 많은 기계, 많은 차, 많은 젖소......."

"됐어. 이제 네 죄를 말해 봐."

"나는 죄인야."

경애가 말했다_

"많은 죄를 지었어. 그런데 이상해. 한 가지도 말을 할 수가 없어."

"생활 전체가 죄였기 때문야."

윤호는 다시 보이지 않는 말뚝을 돌렸다.

"아파. 오빠."

처음으로 경애가 말했다.

"그러니까 정말 심장이 터질 것 같아."

"네 죄를 말하라니까."

오빠네가 우리 옆집으로 이사온 게 좋았어. 나는 처음부터 오빠를 좋아했어 나는 잠자리에 누워서 오빠를 생각하고는 했어 이게 나의 죄야."

너의 잠자리는 늘 따뜻했지? 오십 년 굴피나무까지 얼어 터지게한 지난 겨울, 네 방의 온도는 몇 도였지?"

"몰라."

"넌 겨울에도 반쪽 옷을 입고 살았지? 목욕을 하고 싶으면 언제나 네 방에 딸린 목욕탕에서 목욕을 할 수 있었지? 너는 잠을 자다 춥고 배고파해 본 적이 없지? 그런데 은강방직 공장에 나가는 난쟁이 아저씨의 딸은 어땠는지 아니?"

"몰라."

"공장 식당에서 보리가 더 많은 밥에 신 김치, 무우청을 말려 끓인 시래기국을 먹고 살았어. 기숙사 방안 온도는 영하 3도였다구. 그 나쁜 식사를 하고, 그 무서운 잠자리에서 눈을 붙이며 난쟁이 아저씨의 딸이 어떤 취급을 받았는지 아니?"

"몰라. "

"값싼 기계 취급을 받았어. 인간이.

"난 오빠의 그 말을 모르겠어."

힘없이 경애가 말했다.

"알게 될 거야."

윤호가 일어서려고 하자

"싫어, 오빠?"

경애가 소리쳤다.

"열 일곱 살 짜리 계집애가 옆집 남자애를 생각한 것은 죄가 아냐."

고문리가 말했다.

"난 몰랐어,"

경애 가 말했다.

"그게 너의 죄야."

윤호가 말했다.

"그게 모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죄야. 너의 할아버지는 무서운 힘을 마음대로 휘둘렀어. 지금처럼 많은 사람들이 한 사람의 요구에 따라 일한 적이 이때까지 없었어. 너의 할아버지는 모든 법 조항을 무시했어. 강제 근로, 정신, 신체 자유의 구속, 상여금과 급여, 해고, 퇴직금, 최저 임금, 근로 시간, 야간 및 휴일 근로, 유급 휴가, 연소자 사용 등.

이들 조항을 어긴 부당노동 행위 외에도 노조 활동 억압, 직장 폐쇄 협박 등 위법 사례를 다 말할 수 없을 성도야, 난쟁이 아저씨의 딸이 읽던 책을 보았어. 너의 할아버지가 한 말이 거기 씌어 있었다구 지금은 분배할 때가 아니고 축적할 때라고 씌어 있었어. 그리고, 너의 할아버지는 돌아갔어. 누구에게 언제 어떻게 나누어주지? 너의 할아버지가 죽은 난쟁이 아저씨의 아들딸과 그 어린 동료들에게 주어야 할 것을 나누어주지 않았어. 그리고 너는 그걸 몰랐지? 몰랐기 때문에 방학을 그 할아버지의 영토인 아름다운 섬에 가서 보냈고, 빨간 승용차를 탔고, 고기와 싱싱한 야채가 늘 오르는 식탁을 대했고, 따뜻한 잠자리에서 남자아이를 생각했고, 그 남자아이를 끌어내기 위해 불쌍한 아이들을 팔았지? 이제 네 죄에서 네가 스스로 벗어나야 돼 지금까진 너희를 위해서 난쟁이 아저씨의 아들딸과 그의 어린 동료들이 희생을 당해 왔어. 지금부터는 그들을 위해 너희가 희생할 차례야. 알겠니? 집에 돌아가면 어른에게 말해."

그런데, 경애는 아무 말이 없었다. 윤호가 경애를 들여다보았다. 경애가 구역질을 하고 있었다. 경애는 얼굴을 돌려 먹은 것들을 토해냈다. 윤호가 손수건을 꺼내 옆얼굴에 대어 투고, 보이지 않는 네 개의 말뚝에서 경애를 풀었다. 아이들은 춤을 추고 있었다.

아이들은 오랫동안 참고 있었다. 아이들의 몸에서는 열기가 풍겨 나왔다. 윤호는 촛불 밑으로 경애를 부축해 갔다. 여자아이가 커피를 끓 여다 주었다. 경애는 커피를 마시면서 윤호를 보고 웃었다. 고문리는 이제 어깨를 늘어뜨린 채 얼굴을 몇 번 가로저었다. 아이들이 춤출 동안 경애는 앉아만 있었다. 나중에는 벽에 기대어 앓아 무엇인가 썼다. 경애 는 그날 지하 성당을 나오기 전에 -성 토마스 아퀴나스여, 우리를 위하 여 빌으소서 -라고 기도했다.

그 세째 해를 윤호는 조용히 보낼 수 있었다. 아버지는 A대학교 사회 계열에 대해 다시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는 정말 담담히 물러섰다.

경애와 함께 동네로 돌아왔을 때 비가 내렸었다. 시들어 가는 꽃들이 비를 맞고 서 있었다. 경애 할아버지는 처음부터 행복한 죽음을 맞을 수 없었던 사람이다.

저희 집으로 들어가던 경애가 빗속으로 뛰어나오는 것을 윤호는 보았다. 경애가 종이 한 장을 넘겨주고 돌아섰다. 빨간 승용차의 운전기사가 황급히 우산을 받쳐들고 뛰어나왔다. 경애가 쓴 할아버지의 묘비명을 읽었다

 

-화를 쉽게 냈던 무서운 욕심쟁이가 여기 잠들어 있다. 돈과 권력에 대한 욕심 때문에 그는 죽었다. 평생을 통해 친구 한 사람 갖지 못했던 어른이다. 자신은 우리의 경제 발전을 위해 큰 업적을 남겼다고 자랑하고는 했으나 국민 생활의 내실화에 기여한 것은 하나도 없다. 그가 죽었을 때 아무도 울지 않았다.-

경애는 다음날 까만 옷을 입고 할아버지의 장례식을 지켜보았다. 경애는 아직 어렸다. 윤호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윤호는 대학에 들어가는 대로 경애와 결혼하겠다고 생각했다. 세 째 해를 보내면서 윤호는 저희들이 가져야 할 어떤 과제를 떠올리고는 했다, 그 과제란 사랑, 존경, 윤리, 자유, 정의, 이상과 같은 것들이었다.

 

 

 

'한국단편소설3' 카테고리의 다른 글

53.금어  (0) 2022.05.20
52.금당벽화  (0) 2022.05.20
50. 고압선  (0) 2022.05.20
49. 고고  (0) 2022.05.20
48. 고가  (0) 2022.05.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