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어(金魚) -정한숙
합장하고 서 있는 스님은 수덕사 아심 스님이다
처음 머리를 깎았을 땐 파랗던 것이 이십여 년의 세월 속에 어느덧 입고 있는 잿빛의 법의 색깔로 닮아졌다.
아심스님이 공주 박물관에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삼 년 전부터이다. 이젠 이곳 직원들과도 친면이 있어 스님은 그들과 부딪치면 가벼운 미소의 눈길을 주고받았다. 조용하다. 스님의 손끝에 걸려 있는 염주가 굴러도 소리가 없다. 몸매와 얼굴 표정이 어쩌면 관음보살상을 대하는 느낌이다.
이십 년 전 수덕사 일엽스님을 찾아 몸을 산문에 두고 싶다고 말했을 때 스님은 안경 너머로 아심의 동정을 살폈을 뿐 아무런 말이 없었다. 그로부터 아심은 스님 옆에서 부엌일과 잔심부름을 도우며 만 일 년이 지났을 때 일엽스님은 아심을 불러 앉히곤 일년 전과 꼭 같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아심이란 법명이 어떠냐?」
얼굴을 붉히며 합장을 했을 뿐 말문이 막혀 대답할 수가 없었다.
「여자란 중이 되어도 여자의 바탕을 잃지 않아야 한다. 부처와 보살은 그런 점에서 다르다. 옛 글에 이르기를 여자는 덕성과 용의(容儀)와 말씨와 재지(才智)를 갖추어야 한다고 했다. 덕성이란 맑고 절개가 곧아야 하고 마음을 정연히 가다듬어 행동도 법도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또한 용의란 얼굴 단장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몸에 불결함이 없게 하는 것이요, 말씨란 그른 말을 하지 않아야 하고 꼭 해야 할 말을 하되 남의 귀에 거슬리게 해서는 안된다. 솜씨란 길쌈의 뜻만이 아니라 가족과 친지와 남을 즐겁게 할 줄 알아야 한다는 뜻이 다,,,,,,」
일엽스님은 말을 끝내고 아심의 검은 머리를 잘라주었다. 아심은 불도를 닦으면서도 일엽스님이 들려준 이 말을 잊지 않았다.
합장을 끝내고 아심스님은 회흑색 비신(碑身)에 조각된 불상을 들여다보았다. 본존여래상을 중심으로 양쪽으로 부처가 시립하고 있다. 비신을 더듬는 아심스님의 눈길이 다사롭듯이 부각되어 있는 불상에서도 황홀한 기운이 아심스님의 마음속으로 흡수되는 느낌이다. 아심스님은 불상을 지켜보고 있으면서도 바른손에는 염주알을 쉬지 않고 돌렸다.
처음 박물관을 찾아와 삼존천불상을 대했을 때 아심스님은 그 황홀함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때도 그러했지만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부자소리가 길게 울렸다. 문을 닫는다는 신호다. 아심스님의 귀엔 전연 그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비신에 새겨져 있는 불상들이 살아 움직이는 듯 보였다.
「스님 ,,,,,,」
박물관 사환아이가 와서 불렀다. 아심스님은 아랑곳하질 않았다.
「스님,,,, 」
아심은 소년을 돌아다보았다. 미안스러운 표정이었다.
「스님, 곧 문을 닫아야 합니다.」
아심은 소년이 찾아와 부른 이유를 알았다. 가벼이 합장을 하고 난 아심스님은 표정과 같이 조용히 박물관 현관문을 나섰다. 언덕길을 걸어 내려오는 아심스님의 얼굴은 그 비신 밑에 새겨져 있는 연꽃모양 웃고 있었다.
가을바람이 꽤나 쌀쌀하였다, 낙엽진 늙은 나뭇잎이 스님의 머리 위에 떨어졌다. 스님은 엷은 미소를 지은 채 언덕길을 걸어 내려가고 있었다,
여름이었다.
여대생이 방학을 이용하여 수덕사를 찾아왔다. 그 여대생은 아심스님더러 승방에 머물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승방은 손님에게 불편하니 마을에 내려가 민가를 이용하는 것이 편할 것이라고 권했지만 여대생은 굳이 승방을 빌려 쓸 수 있게 해달라고 간청했기 때문에 아심스님은 얼마동안 같이 있을 것을 허락했다.
아심스님의 생활이란 판에 박은 듯 규칙적이었다. 아침저녁으로 참선과 불사에 종사하는 일로 대개의 시간을 보냈다. 스님은 처음 이 여대생이 방학을 이용하여 조용한 곳을 찾아 휴양을 내려온 것이라 짐작했다. 그러나 며칠을 두고 사귀는 동안 이 여대생은 휴양차 절을 찾아온 것이 아님을 알았다. 경주의 불국사, 해인사 . 통도사를 비롯하여 송광사, 장수사 등 남한 일대의 크고 작은 절을 돌아보지 않은 곳이 없었다. 이 여대생은 사학과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불화와 불상 을 연구하는 학생이었다.
불화(佛畵)를 불가(佛家)에서는 탱화 또는 만다라라고 하며 이를 그리는 승려를 금어(金魚)라고 불렀다. 이 여대생의 만다라에 대한 조예는 물론 불상의 종류와 그 탱화에 관한 박학도 법명이 높은 승려들도 당할 바가 못되었다.
아심스님은 불전을 읽다가 잠시 뒤쪽 툇마루로 나와 앉았다. 대서와 중복이 지났어도 무더위는 한창이었다, 우거진 녹음의 푸르름이 눈을 시원케 했다. 아심스님의 뒤를 이어 여대생도 따라나왔다.
「스님, 공주에 가보신 일이 있으신가요?」
아심스님은 여대생을 쳐다보며 머리를 흔들었다.
「기회가 있으시면 공주 박물관에 들러보십시오.」
「박물관엔 왜? 봐야 할 것이라도 있나?J
「네, 딴 분은 몰라도 스님께선 꼭 봐둬야 할 것이 있구말구요.」
「그게 무언데?」
「삼존천불상입니다. 」
「삼존천불상,,,,,,」
「백제시대 유물이죠. 비빈이 깨어지긴 했어도 정교한 불상입니다.」
「그래,,,,,,」
뻐꾸기의 울음소리가 한가와 고요를 더해주었다. 그런 한가와 고요를 깨기라도 하려는 듯 가까운 숲 속에서 심술궂게 여치가 울어대었다.
장마가 개인 탓인지 하늘이 더 푸르러 보였다. 여대생은 눈을 가늘게 하고 그 푸르기만 한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 아심스님도 살포시 눈을 내리감고 들고 있는 염주알을 세어 넘겼다.
「저는 지금까지 많은 불상과 만다라를 보아왔습니다만, 공주 박물관에 있는 삼존천불상 모양 마음에 깊은 감명을 받은 작품은 보지 못했습니다......」
여대생은 혼잣말로 하고선 일어서 방으로 들어갔다. 아심스님은 여전히 눈을 감은 채 염주알을 세고 있었다. 바람마저도 한나절의 더위가 기승에 몰려 풀잎 하나 움직이질 않았다. 여치만이 찢어지는 목소리로 울어대었다. 방으로 들어갔던 여대생이 나와 다시 스님 옆으로 앉으며 들고 나온 사진을 스님 앞에 내놓았다.
「스님 보세요. 이 사진이 공주 박물관에 안치되어 있는 삼존천불상입니다.」
아심스님은 여대생이 내놓은 사진을 받아 보았다. 흑백사진이다. 정면에서 찍고 뒷면과 각 측면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사진 뒤쪽에는 삼존상 좌우에 있는 명문이 기록되었고, 또 다른 사진의 뒷장에는 비상의 크기가 기록되어 있었다.
「탱화나 조상(造像)에 있어서의 원칙은 삼비오안(三鼻五眼)이라 합니다. 보시다시피 삼존여래상은 물론 작은 여래좌상(如來坐像)까지도 정교하게 그 원칙이 지켜져 있는 것은 저로선 처음이었습니다.」
삼비오안이란 부처님의 얼굴을 그리는 원칙으로, 얼굴의 길이는 코의 세갑절이 되어야 하고 넓이는 눈의 길이의 다섯 배가 되어야 하며, 신장(身長)은 얼굴의 여섯 갑절 반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불가에서는 키의 표준은 팔등신(八等身)에 두지 않고 육등반신이 라고 하는 것이다.
아심스님은 그 사진을 발 무릎 위에 놓고 합장한 채 여대생의 설명을 들으며 바라다보았다. 아심스님이 불가에 몸을 담고 있었지만 그 방면에 전문가가 아니어서 여대생의 설명에 열심히 귀를 기울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아심스님의 마음을 뒤흔들어놓는 것은 탱화나 일상의 정교한 기교가 아니라 여대생이 추리하는, 삼존천불상이 이루어져 오늘에 전하게 된 다음과 같은 사유였다.
나당(羅唐) 연합군과의 삼일간 전투에서 백제의 계백 장군은 장렬한 전사를 하였고 그의 아장 충상, 달솔, 상영 등은 적군의 포로가 되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의자왕은 태자 효를 데리고 도망치기 위해 궁성 뒷문으로 빠져나갔다. 왕비와 많은 궁녀들도 야음을 이용하여 허둥지둥 뒤쫓았다. 그러나 충성된 군졸들은 적군에게 궁성만은 넘겨주지 않으려고 성문 밖에서 죽음을 무릅쓰고 싸웠다.
성문 밖은 비명과 아우성이 뒤섞여 불바다였다. 적군에게 양곡을 빼앗길까 두려워 왕명으로 창고마다 불을 지르게 했다,
왕은 이런 틈새를 타서 백마강에서 배를 타고 웅진성으로 도망을 쳤다. 그래도 싸움은 계속되었다, 이런 풍전등화 같은 전란 속에서도 궁궐 안에서는 권좌를 다투는 색다른 암투가 있었다. 이런 암투가 궁성의 함락을 재촉했다. 궁성의 함락 소식을 들은 의자왕은 하는 수없이 나당연합군 앞에 항복하고 말았다. 그러나 백제의 백성들은 항복하질 않았다, 그들은 각지로 분산하여 반항했다.
임실이라는 소년은 그때 나이 열여섯 살이었다. 병석에 누워 있는 늙은 어머니를 모시고 임실은 석공(石工) 일과 행상으로 구차한 살림을 쑤려가던 미천한 신분이었다. 그가 병들어 누워 있는 어머니를 남겨두고 자진 군문으로 뛰어 든 것은 남보다 활쏘기를 잘하거나 칼을 잘 놀렸기 때문이 아니다. 계백 장군을 죽이려 말을 몰고 달려왔던 신라 소년 관창의 용맹스러운 무용담을 듣고 관창이 비록 나이는 어려도 장렬히 죽음으로써 충효의 길을 다했다는
소문이 그에게 큰 감명을 주었다.
나라의 위기란 왕위를 다투는 왕자들이나 출세를 꿈꾸는 장군들에 의해서 구해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 희생을 결심하는 백성들의 힘에 의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백제 궁성이 함락되자 임실은 복신 장군을 뒤따라 주류성에 의거하여 백제의 재기를 도모했다. 백제의 서북부에 있던 군소 성주들은 모두다 복신을 도와 나당군과 싸웠다. 도성을 빼앗기고 난 백제의 군졸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국운을 바로 세우기 위한 결심이 대단했다. 이런 결의가 나당연합군을 궁지로 몰아넣기가 일쑤였다. 수차의 격전 끝에 복신이 지휘하는 백제군은 다시 신라 도성을 포위하기에 이르렀다. 도성 속에 갇힌 연합군은 독 속에 들어 있는 쥐나 다름없었다. 이에 당황한 나당연합군은 다시 원병을 보내어 도성의 포위를 풀려고 싸웠지만 크게 패하고 말았다. 해를 거듭할수록 나당연합군은 연패의 고배로 지리멸렬의 상태에 이르렀다. 나당군을 몰아내어 백제의 국권을 회복할 수 있는 기회를 눈앞에 바라보며 주류성을 근거로 했던 백제군 안에서는 무서운 내분이 생겼다.
복신 장군은 주류성에 들면서부터 민심을 사로잡기 위해 멀리 일본에 가 있던 왕자 풍을 모셔다 왕위에 오르게 했었다. 국운을 회복하기 직전에 이르러 풍왕과 복신 장군 사이엔 군사 통솔권 문제로 사소한 의견의 차이가 생기게 되었고 그런 의견 차이로 풍왕은 복신을 죽여버렸다. 풍왕이 복신을 베어버림으로 인하여 백제 최후의 아성은 나당연합군에 의해 붕괴된 것이 아니라 내분으로 인하여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때마침 당나라 장수 손인사는 칠천의 대병력을 거느리고 주류성을 포위했다. 풍왕은 사태가 위급해지자 고구려로 원병을 청하는 한편 주류성에서 최후의 결전을 도모했다.
나당연합군은 웅진강을 내려가 백마강 어귀를 가로막는 한편 험악한 산길도 막아 성을 포위하였다. 나당연합군의 포위를 뚫기 위해 백 척의 수군을 동원하여 이에 대항하였지만 수로에 익숙한 당나라 수군을 당해내질 못했다. 백제 수군은 그 대부분이 적군에게 접근하지도 못한 채 불에 타버렸다. 화염이 강변을 뒤덮었다.
임실은 적진 속에서 삼 년이라는 세월을 보냈다, 이젠 활을 쏘는 데도 익숙하였고 칼을 놀리는 데도 어느 누구에게도 못지 않았다. 임실은 삼 년이란 세월 속에서 많은 것을 듣고 보고 느꼈다. 백성들은 한결같이 나라를 위해 싸웠건만 권좌에 앉은 사람들은 그 귄력을 남에게 넘겨주지 않으려고 싸운다는 것도 이번 기회에 배웠다.
수루에 앉아 망을 보고 있던 임실은 몹시 지쳤다, 적장과 부딪혀 싸우다 쓰러진 흑치상지 장군과 사타상여 장군,,,,,, 피를 흘리며 숨을 거두면서도 어서 몸을 피하라 하던 그 음성이 다시금 귓전에 울렸다. 적군 앞에선 머리털을 곤두세울 지경으로 무서운 장군들이면서도 수하 군졸들에겐 따스한 인품들이었다.
임실은 두 장군을 잃고 나서 산 속에서 전전하던 끝에 임존성을 찾아 성주인 지수신의 수하로 들게 되었다. 임존성은 백제 마지막 성이었다. 성안에선 적군을 속이기 위해 이곳저곳에다 불을 피워놓고 밤을 새워가며 함성을 질렀다. 밤은 피어오르는 불빛으로 더 어둡기만 했다. 성을 둘러싸고 있는 적군도 구호를 외치며 불을 피우고 있었다, 이쪽은 적은 군졸들을 갖고 많이 보이려는 속임수였지만 적군이 불을 피워대는 것은 대병력의 위력을 과시하는 것같았다, 가끔 허공을 날으는 화살소리가 들렸다. 말하자면 위협사격이었다.
삼 년이란 세월을 적진 속에서 살고 난 임실은 울리는 화살소리로 그 거리를 짐작할 수 있었다. 수루에 앉아 있는 임실은 불빛이 타오르는 넓은 들판을 살피고 있었다. 임존성에서 도성이 보일 까닭이 없었다. 그러나 임실은 그 도성의 방향을 지켜보았다. 어둠 속에 붉게 타오르는 불빛모양 임실의 눈앞에 여읜 어머니의 얼굴이 크게 떠올랐다. 어머니의 옆을 떠나고 나선 도성을 지키고 있을 때도 단 한번도 어머니를 찾아뵙질 못했다. 임실은 어머니의 모습을 쳐다보며 입술을 베어 물었을 뿐 목이 메어 부를 수가 없었다. 그 순간 어머니의 모습은 어둠 속에 사라진 채 다시 떠오르지 않았다. 가슴속에 답답하기만 했다. 임실의 눈에선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어머니 ,,,,,,」
임실은 단 한번 이렇게 중얼거렸을 뿐 격해진 채 흐느끼고야 말았다.
교대를 알리는 파수병이 와서야 임실은 정신을 차렸다.
몹시 졸리운가보군.」
「아닐세, 수고하게.」
임실은 교대해주러 나온 동료의 말에 대꾸하며 수루를 내려왔다. 바람이 불 때마다 하늘을 스치고 지나간 별들이 깜박거렸다. 9월 달에 접어들면서부터 아침저녁으로 바람이 몹시 차가왔다.
들에 익은 곡식은 거둘 사람이 없어 그대로 넘어져 썩었다. 곡창은 모조리 불타버렸고 누렇게 익은 곡식은 거둘 사람이 없어 들에서 썩고 있으니 겨울을 날 일이 한심했다.
임실은 무거운 걸음걸이로 자기 장막으로 돌아갔다
왕자 충승과 충지 형제가 임존성 성주 지수신을 배반하고 적군에 항복하였으니 임존성의 운명이야말로 시간문제였다. 왕자들이 항복했다는 소식이 퍼지자 대부분의 군졸들은 적에게 투항하거나 아니면 도망쳐버리는 형편이었다. 이제 임존성 안에 남아 있는 군졸들이란 늙고 병든 사람이 아니면 쓸모 있는 젊은 축이란 얼마 있질 않았다. 임존성 성주 지수신도 아무리 지덕과 용맹을 겸한 장수라 해도 이 지경에 이르러선 도리가 없었다. 충승, 충지 왕자모양 굴욕을 무릅쓰고 적 앞에 항복하지 않으려면 최후의 일각까지 싸우기엔 너무나 적은 병력이었다. 적군에게 항복할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성안에 그대로 머물러 있자면 자멸할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하던 지수신으로선 재기의 꿈을 버릴 수 없었다. 그렇게 하자면 임존성을 빠져나가 일시나마 고구려 땅에 머물렀다가 고구려로부터 원병을 얻어 재침의 기회를 노릴 수밖에 없었다.
성주 지수신은 자신의 결의와 심정을 피력하기 위해 모든 군졸들을 집합시켰다. 군졸들의 표정은 패색이 짙어 기운이 없었다. 그러한 군졸들을 바라보니 지수신은 마음이 아팠다.
「수년 동안의 싸움으로 잿더미로 화해버린 우리 조국 백제 땅은 이제 다시 일어나기 어려운 곤경에 빠졌다. 생각컨대 온조왕이 한강 기슭에 나라를 일으켜 오늘에 이르기까지 680년, 역대 31명의 임금들은 나라의 번영과 융성을 꾀하여왔지만 시운이 불리하여 오늘에 이르렀으니 누구를 원망할 것인가. 오직 한 가지 남은 길이 있다면 우리가 적 앞에 나아가 항복하거나 성안에 머물러 자멸하느니보다는 잠시 고구려 땅에 퇴하였다가 기회를 보아 재침을 도모하는 길밖에 없으니 이곳에 머물러 있을 자는 있으되 나와 더불어 고구려 땅으로 몸을 피 할 자들은 서슴지 말고 나서라.」
지쳐 있는 군졸들은 별 반응이 없었다. 성문을 빠져 나온 지수신 장군 일행은 밤길을 이용하여 북으로 향했다. 밤을 이용하는 까닭에 길은 더디기만 했다. 성문을 빠져나올 때는 그래도 이백을 헤아리던 군졸들이 하루 이틀 지나는 사이에 자취를 감추고 사흘째 접어드는 날엔 불과 수십 명밖에 남질 않았다. 물론 임실도 그 속에 끼어 있었다.
들은 전화로 황폐하였지만 산 속의 숲은 깊었다. 초생달이 지자 산 속은 어둡기만 했다. 능선을 걸으며 임실은 걸어온 길을 뒤돌아보았다. 풀벌레의 울음소리만 요란한 어둠 속에 무엇이 보일 리가 없었다. 이제 이대로 고구려 땅으로 들어가면 언제 다시 조국 땅을 찾을지 모르는 기약 없는 길이었다. 삼 년이란 세월이 흐르는 사이에 단 한번도 어머니 옆을 찾아가 뵙지 못했지만 그러나 패전을 거듭하며 이 성에서 저 성으로 쫓기면서도, 그 어느 땐가는 꼭 어머니의 곁을 찾아갈 것을 믿으며 살아온 임실이건만 오늘밤만은 그렇지가 않았다. 생사는 알 수 없어도 오늘밤만큼은 어머니의 곁이 더욱 그리웠다. 그렇다고 임실은 지금 이 대열에서 떨어져 어머니 곁으로 달음질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동이 틀 무렵 그들은 산 속 수목이 우거진 곳에 머물러 짐을 풀고 쉬기로 했다. 사람은 물론 말도 지쳤다.
임실이가 잠을 깨어 장막 밖으로 뛰어나왔을 땐 주위가 온통 불바다로 화해 있었다. 날은 아직 새질 않은 듯 짙은 안개가 몰려들었다, 여기저기서 비명이 울렸다. 임킬은 칼을 뽑아 휘둘러댔다. 화살소리가 울렸다. 주인 잃은 말들이 목을 뽑고 울었다. 그 울음소리가 메아리를 그렸다.
임실은 경황없는 속에서도 성주인 지수신 장군을 찾았다. 장군의 모습이 보이질 않았다. 말을 탄 사람이 산밑으로 달리자 적병들이 일제히 그쪽으로 쏠렸다. 임실은 그분이 지수신 장군이라 생각하고 뒤쫓았다.
화살이 머리 위로 스치고 날았다. 임실은 그대로 칼을 뽑아든 채 달렸다. 누가 적이며 누가 동료인지 구별할 수가 없어 칼을 휘두르며 덤벼드는 자와는 마구 대항했다.
이 암자로 옮겨져 사흘째 되는 날 임실은 겨우 정신을 차렸다. 바른쪽 어깨에 통증을 느끼며 그는 눈을 떴다. 어딘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이상한 약초 내음이 풍긴다.
적군에게 사로잡혀온 몸이라면 이런 자리에 눕혀져 있을 리가 없었다. 우선 그런 점에서 안심이 된 임실은 주위를 살폈다, 목탁 두드리는 소리가 은은히 들려왔다. 주위가 너무나 조응했다. 그렇듯 조응한 탓으로 임실의 눈에선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통증을 느끼면서도 임실의 생각은 목탁이 울리는 쪽으로 정신이 쏠렸다. 목탁소리를 들으며 그는 희미한 기억을 더듬어보았다.
적군에게 기습당하던 날 새벽일이 낱낱이 떠올랐다. 장막 속에서 풋잠이 들었던 임실은 칼을 뽑아든 채 장막 밖으로 뛰쳐나왔다. 무서운 불기둥이 군졸들이 들어 있는 장막을 엄습했다. 임실은 불기둥에 휘감겨드는 장막을 빠져 나와 앞을 가로막는 적병을 향해 칼을 휘둘렀다. 베고 베어도 앞을 가로막는 적의 공세를 뚫고 임실은 지수신 장군의 모습을 겨우 찾았다, 말을 타고 적과 맞서는 장군 앞을 가로막으며 적과 맞섰다. 말을 타고 있는 장군을 향해 사면에서 화살이 날아들었다. 장군은 화살과 적군의 칼을 막으며 싸우다 말고삐를 당기며 계곡으로 내려갔다. 임실도 장군의 뒤를 좇았다.
기억 속에 남아 있든 것은 그 이상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은은히 들려오던 목탁소리도 멎었다. 목탁소리가 끊겼듯이 임실은 다시 혼수 상태에 빠져들고 말았다.
「스님의 은혜는 평생 잊지 못할 줄 아옵니다----」
스님은 말이 없었다. 임실은 스님의 대답을 기다렸지만 아무런 대꾸도 없었다.
밖엔 푸듯푸듯 첫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눈이 내리기 시작가면 아침저녁으로 날아오는 산새들도 뜸해진 채 길이 막혀버린다. 임실은 길이 막힐 것이 두려워 스님 앞에 고향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한 것은 아니었다. 어깨의 상처도 스님이 써준 약초 덕택으로 완쾌하고 보니 젊은 몸으로 한적한 암자에 틀어박혀 있을 수가 없었다.
첫째는 지수신 장군의 행방이 알고 싶었고 그 지수신 장군을 모시고 다시 한 번 국운을 회복시키기 위해 나당연합군과 싸우고 싶었다. 그래서 임실은 어깨의 부상이 낫기 시작하면서부터는 매일같이 일찍 일어나 칼 쓰는 법을 익혔다. 그리고 또 한가지 그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것은 생사불명의 어머니의 소식이었다. 어머니의 환상이 떠오를 때마다 임실은 마구 달려가고 싶은 충동에 마음의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세상은 아직 인심 이 수습되지 않은 난세 그대로인데 고향으로 돌아가도 무사하지 않을 테니 세상 인심을 보고 돌아가도록 하게.」
침묵을 깨뜨린 스님의 말이었다. 임실은 비로소 고갤 들고 스님의 얼굴을 바라다보았다.
「스님, 나라가 망한 군대의 군졸이요 백성인데 고향으로 돌아왔다고 무슨 큰 일이 있겠습니까?」
스님은 조용히 고갤 흔들었다. 그렇다고 임실은 일방적으로 작별인살 하고 일어설 순 없었다.
「자네가 그렇게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면 나하고 약속을 하게.」
「스님, 무슨 약속인들 하고 지키겠사옵니다.」
「그렇다면 자네가 매일 검법을 익히기 위해 들고 휘두르는 그 몽둥이를 들고 나와 같이 무예를 겨루어 이긴다면 고향으로 가되 그렇지 못할 때는 내가 허락할 때까지 이 암자에 머물며 내 시중을 들도록 하겠나?」
「스님 분부대로 하겠읍니다.」
노승이 법장(法杖)을 들고 법의를 입은 맨발로 뜰에 나서자 임실도 몽둥이를 들고 뒤쫓아 나왔다.
싸락눈은 어느새 함박눈으로 변해 펑펑 내리고 있었다.
법장을 든 스님은 임실더러 공세를 취할 것을 명령했다. 난리터에서 익힌 검법이라 해도 임실은 기운이 세고 칼 쓰는 편이 제법인 편이었다. 틈을 타서 힘껏 몽둥이를 휘둘러댔지만 번번이 스님의 법장에 걸려 빗나가기만 했다, 면상을 향해 내려치고 금새 어깨와 허리를 행해 휘둘러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스님은 처음부터 부동의 자세로 좀처럼 움직이질 않았다. 임실은 팔과 다리에 힘이 빠지는 것을 느꼈다. 눈발은 여전히 내리퍼부어 두 사람이 오고간 발자국을 자취도 없이 덮어버렸다. 임실의 숨길은 헝클어지기가 일쑤였다. 그런 낌새를 보이지 않으려고 숨길을 크게 돌렸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이번엔 스님이 법장으로 임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면상으로 오는 법장을 막으려면 어느 사이에 법장은 그의 허리를 치려 하였다. 허리를 피하려 하면 움직이는 발을 막았다.
임실로서는 마지막 공격이었다. 있는 힘을 다하여 스님의 가슴을 향해 찔렀다. 스님은 가볍게 몸을 돌려 피해버렸다. 그 통에 임실은 몇 발자국 앞으로 나아가 쓰러지며 무릎을 꿇었다. 횐 눈이 내려 쌓이고 쌓이는데도 임실은 춥지 않았다. 온몸이 돌모양 굳어진 듯 운신을 할 수가 없었다.
전신에선 구슬땀이 흘러내렸다. 그런 임실을 지켜보고 있는 스님의 얼굴은 홍조의 빛을 띄우며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도성의 모든 청년들은 당나라의 볼모로 잡혀갔거나 신라로 끌려갔다는 소문이 이 암자에까지 들려왔다. 임실은 그런 소문을 들을 때마다 스님의 은혜가 고마왔다. 본래 임실은 도성에서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 땐 석공 일을 배우며 연명을 했다. 싸움터로 나오고 나선 그 일과는 인연이 멀어지고 말았다. 스님의 법장을 이겨내지 못하고 나선 겨우내 혼자 검법을 익히기에 여념이 없었다. 검법을 익히다가도 문득 생각키우는 것은 이제는 스님의 법장을 당해낼 것 같은 자신이 생기다가도 통 자신이 없었다. 그러던 임실의 태도가 일변했다.
그날도 스님이 불공을 드리는 동안 임실은 암자 뒤꼍에 있는 늙은 소나무 밑에서 혼자 검법을 익히고 있었다. 산 속의 계절은 명확했다. 슬며시 눈이 녹자 새싹이 움트고 움터 오르는 새싹이 푸른 순으로 바뀌어지며 바람은 누그러졌다. 임실은 소나무 밑에 앉아 한숨을 쉬었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다람쥐 한 마리가 몇 발자국 앞에서 어른거렸다. 그는 들고 있던 몽둥이를 내던졌다. 그것은 마치 적병의 가슴을 지르는 그런 기분에서다. 몽둥이 끝에 얻어맞은 다람쥐는 그 자리에 쓰러지고 말았다. 임실은 통쾌했다. 다음 순간 스님의 말이 떠올랐다.
「살생을 해선 안 된다, ,,,,」
적병의 목을 내려치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던 임실이었다. 그런데 하찮은 다람쥐 한 마리를 때려눕히고 왜 이렇게 치가 떨리는지 알 수 없었다. 들리는 목탁 소리가 꼭 스님이 자기를 부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죽은 다람쥐를 임실은 땅을 파고 묻어주고 합장을 하고 고갤 숙였다.
임실의 생활은 그로부터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는 새벽마다 일어나기가 바쁘게 익히던 검법 연습도 중단해버리고 말았다. 그렇다고 스님 옆에서 불사에 관한 것을 배우려는 눈치도 아니었다. 암자 주변의 땅을 일구어 밭을 가꾸는가 하면 산으로 나아가 약초 캐는 일로 소일하였다. 스님은 임실에 대하여 아무런 간섭도 하질 않았다.
약초를 캐 가지고 내려오던 임실은 끈끈한 몸을 씻기 위해 계곡에 흐르는 물가로 갔다. 몸을 닦고 난 그는 햇볕에 몸을 말리며 개울 옆에 있는 바위에 앉아 있었다. 햇빛에 반사되어 무엇인가 번쩍했다. 임실은 눈이 부신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돌이었다, 다음 순간 그의 눈엔 그것이 돌이 아니었다. 자기가 모시던 흑치상지 장군과 사타상여 장군과 그리고 마지막으로 모셨던 지수신 장군의 얼굴로 변해 보였다. 그러나 햇빛에 반사되어 번득거린 것은 검회색빛 돌이었다.
임실은 조심조심 돌 앞으로 갔다. 그리 크지도 않은 돌이 산사태로 흘러 내려와 오랜 세월 속에 물에 씻긴 흔적이었다,
임실은 그 돌 앞에 합장을 하고 고갤 숙였다. 자신도 모르게 취해진 행동이었다. 합장을 하고 서 있는 임실의 손끝은 떨렸고 가슴은 까닭없이 설레었다. 임실은 약초를 팔아 몇 개의 정과 망치를 마련해 갖곤 매일같이 이 개울가로 나왔다. 그는 매일같이 맑은 냇물에 몸을 닦고 나서 그 돌을 갈기 시작했다. 돌을 닦고 있을 때마다 그의 눈앞에 떠오르는 것은 자기가 끝까지 모셨던 장군은 물론 많은 동료들의 모습이었다. 사람이란 죽으면 다 부처가 된다는 생각은 스님으로부터 배운 것이 아니라 암자에 기거하며 스스로 터득한 생각이었다.
돌의 생김새를 이용하여 임실은 대좌(臺座)와 비신(碑身)을 같은 돌로 하기로 하고, 먼저 부처님으로 모셔 앉히기 위해 앙련(仰蓮) 자리를 마련했다. 이 자리 위에 본존여래상을 중심으로 양옆으로 두 여래상을 새겼다. 물론 그 세 분은 흑치상지 장군과 사타상여 지수신 장군이었다. 삼존불을 새기고 나서 임실은 앞면과 측면과 그리고 뒷면에다 작은 여래좌상을 새겼다. 작은 여래좌상은 짚신 팔이를 하던 문덕이를 비롯한 모든 동료들의 얼굴이었다.
임실의 손끝에는 굳은 못이 박혔다. 그러나 마음속에 쌓였던 울분과 고민은 여래상을 새기는 동안 하나하나 풀려나갔다. 언뜻 보면 그 여래상의 모습은 한결같이 다 같아 보였다. 그러나 그 하나 하나가 달랐다. 임실이 비신에 여래상을 부각하며 고생한 점은 바로 그것이었다. 사람이 속세에 살 땐 다른 얼굴 모습과 함께 그 신분이 각기 다르지만 속세를 떠나 열반의 세계에 들어와 부처가 되면 그 모습이 다를 수 없었다. 임실은 삼존천불상을 지어다가 암자 앞마당에다 세웠다. 비신 위에 놓는 천개석은 잔돌로 했다.
스님은 이 비상을 암자 안에다 모시자고 했지만 임실은 암자 앞마당에다 세울 것을 생각하여 천개석을 올려놓았던 것이다.
돌을 발견하고 비상을 암자 앞에다 세우기까지 꼭 일년이 걸렸다. 임실은 자기가 만든 불상 앞에 합장을 하고 꿇어앉았다.
적군의 말발굽에 눌려 폐허가 되어버린 조국의 산하를 굽어보며 땅에 묻혀버린 동료들과 잠들지 못하는 망령들을 위로하며 살아갈 길을 생각하는 임실의 눈에선 뜨거운 눈물이 쏟아져 흘렀다. 스님도 임실이 꿇어앉아 있는 뒤에 서서 목탁을 두들기며 배례를 하였다. 천불상 앞에 꿇어앉았던 임실은 일어서서 스님 앞에 합장 배례를 했다.
「스님, 임실이도 이제부터 속세를 벗어나 부처님을 모시고 산문에 살고 싶사오니 머리를 깎아주십시오. 」
스님은 천불상 앞에서 임실의 머리를 깎아주었다.
여대생의 말을 듣고나자 아심스님은 매암의 울음소리가 귀에 따가운 것같이 마음이 찌릿했다.
아심스님은 푸르기만 한 하늘을 멍청히 쳐다보았다. 매암의 울음소리도 들리질 않았다. 모든 것이 정지해버린 듯싶은 고요 속에 자기를 응시하였다. 생각은 옛날로 줄달음쳐 거슬러 올라가기만 했다. 삼팔선을 처음 넘었을 땐 지금 옆에 앉아 있는 여대생보다도 더 젊었었다. 아심스님의 눈은 더 가늘어져 보이고 안면 근육이 경련을 일으킨 듯 떨었다.
바람 한 점 없이 내리쪼이는 무더위 속에 매암은 줄기차게 울어대었다, 그러나 아심스님의 귀엔 그 요란스러운 매암의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쉴새없이 돌리고 있던 염주의 손길도 멎었다. 해방 다음해 삼팔선을 넘어올 때의 아심스님의 본명은 정희였다. 소련군이 북한에 처음 진주했을 땐 공포 분위기였다. 여자들을 마구 겁탈한다는 소문이 떠돌았다. 그래서 정희네 집에서도 정희를 서둘러 월남케 했다. 그때 정희는 열아흡, 같이 월남한 약혼자 김동성은 스물두 살이었다. 그들의 양쪽 가족들도 곧 뒤이어 월남한다고 했었지만 어떻게 된 영문이었던지 소식이 없었다. 피난민들이 매일같이 떼를 지어 월남해 오는 판이라 일자리를 구한다는 것도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갖고 온 용돈은 그들이 자리도 잡지 못한 사이에 떨어지고 말았다. 하는 수없이 약흔자 김동성은 군에 입대하였고 정희는 부모님들이 월남해 오기를 기다리며 먼 친척집에 몸을 의탁하였다.
국방 경비대에 입대했던 김동성은 일본군에 복무한 경험이 있어 소위로 임관되었다. 임관이 되자 휴가를 얻어 찾아왔던 김동성을 만났을 때 정희는 비로소 자기도 어른이 된 것만 같은 기분에 마냥 기뻤고 즐거웠다. 휴가를 끝내고 부대로 돌아간 김동성은 개성 송악산 고지에 배치되었다. 배속되어 얼마 있지 않아 송악산 전투가 벌어졌다. 김동성 소위는 이 송악산 전투에서 전사했다, 백방으로 그 유해라도 얻으려고 했었지만 허사였다.
정희는 유해를 얻으려던 노력이 허사로 놀아가자 짐 보따리를 싸들고 수덕사를 찾아오기에 이르렀다.
이십여 년의 세월 속에 잊어버리다시피 했던 약혼자 김동성의 초상이 지금 눈앞에 선했다,
아심스님은 틀고 있던 염주를 떨어뜨렸다. 이십여 년의 세월이 흘렀건만 김동성 소위의 모습은 스물두 살 때 그대로였다.
「스님 ,,,,,,」
여대생이 부르며 떨어뜨렸던 염주를 주워주었다. 아심스님은 깜작 놀라 합장을 하며 고갤 숙였다. 머리를 깎고 나서도 가끔 떠오르는 환상으로 아심은 마음의 번민을 되씹곤 했다. 불도에 들어선 지도 이십여 년. 나이도 오십을 바라보는 지금엔 세속 일로 마음의 번민이란 생각조차도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우연한 일로 이렇듯 마음의 동요를 느끼게 되니 아심스님은 두렵고 불안했다.
「학생,,,,,,」
합장을 하고 있던 아심스님은 나직이 여대생을 불렀다.
「네」
「이번 서울로 가는 길에 나와 함께 공주로 같이 가줄 수 없을까」
「삼존천불상을 구경하시려고요?」
아심스님은 조응히 고개를 끄덕거려 보였다.
「스님께서 의향이 있으시다면 동행해드리죠.」
아심스님은 여대생의 뜻이 고맙다는 뜻에서 그녀의 횐 손을 꼭 쥐었다.
매암의 울음소리보다도 여치의 울음소리가 더 찢어지는 소리였다.
아심스님이 들어가고 나서도 여대생은 툇마루에 앉아 울어대는 매암이와 여치의 소리를 들으며 혼자 뜻 모를 미소를 짓고 있었다
공주 박물관에서 삼존천불상을 구경하고 돌아온 아심스님의 일과는 달라졌다.
참선이나 예불로 지내던 아심스님은 초화의 붓을 들고 하루를 보내는 적이 많았다. 대자대비한 부처님의 모습을 그렸다. 임실이가 자기가 모시던 장군과 동료의 넋을 위로하고 그들의 극락행을 축복하기 위해 삼존천불상을 새겼듯이 아심스님은 탱화로써 추억 속에 잠들었다 깬 김동성 소위의 넋을 위로해주고 싶은 충격을 받고 시작했었다. .그러니 참선이나 예불보다도 더 열심일 수밖에 없었다.
십왕초, 보살초, 여래초, 천왕초 등 아심스님은 누구에게 배우는 일도 없이 혼자 익혔다. 초화만 틀에 잡히면 채색이란 그리 힘든 일이 아니다. 그러나 가는 붓으로 그 초화를 그리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붓으로 긋는 선이 고르롭게 그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심
스님은 그 초화에 틈나는 대로 채색도 해보았다.
색깔엔 원색과 조색이 있었다, 광물성 또는 식물성 색깔 등을 아교풀에 풀어 칠하면 되었다.
혼자서 익히는 탱화 작업이었지만 절에 드나드는 사람들의 입에 의해 아심스님이 금어가 되려 수업을 한다는 소문이 퍼졌다,
절에 드나드는 신자들은 물론 스님들도 탱화를 구하려 했다. 그러나 아심스님은 한 장도 그것을 내놓으려 하질 않았다. 스스로 생각해볼 때 한 장도 만족할 만한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만족할 만한 것이 없다는 것은 아심스님의 마음속에 살아 있는 부처님의 모습이 뜻대로 구현되어 있질 않았다.
아심스님은 붓이 뜻대로 움직여지질 않을 때마다 홀연히 공주 박물관을 찾아가 삼존천불상 앞에 합장을 하였다. 부각되어 있는 여래상들은 크든 작든 간에 모두가 살아서 움직이는 것같이 느껴졌다. 그것은 임실의 정교한 기교라기보다 그의 모든 정혼이 그 속에 깃들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아심스님은 절로 돌아와선 다시 붓을 들곤 했다.
여대생이 다녀가고 세 번째 맞는 여름이었다. 아심스님은 어제 이어 오늘 아침도 목욕재계를 하고 새 법의로 갈아입고 웃을 들었다.
지금 아심스님이 그리고 있는 여래상은 보통 탱화와는 누가 보든 달랐다. 어제에 이어 오늘은 채색에 여념이 없었다.
아심스님의 손길이 움직일 때마다 여래상의 모습은 돋보였다. 장단, 초청, 이청, 삼청이 칠해졌고 다시, 황, 양록과 주홍, 석간주, 분묵이 칠해지는가 하면, 육색, 다자, 옥색, 지황과 같은 조색으로 법도에 따라 공간이 메워져갔다.
그림을 한참 들여다보고 있는 스님의 얼굴은 물론 손잔등에까지 구슬땀이 맺혀 있었다. 스님은 그런 더위까지도 잊고 있었다. 그대로 그림이 다 완성된 것이 아니다. 지금 스님이 잠시 붓을 놓고 있는 것은 그림의 가장 어려운 마지막 고비가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스님은 수건으로 콧등과 손잔등에 내솟아 있는 땀방울을 닦고 나서 달시 붓을 들었다. 아심스님이 들은 붓은 부처님의 눈매를 그리고 있었다. 그 가는 붓이 오고갈 때마다 부처님의 표정은 달라져갔다.
개안(開眼)미소(微笑),
대자대비의 부처님이 비로소 눈을 뜨고 중생을 향해 가는 미소를 띠었다
아심스님은 붓을 놓았다. 그리곤 자기가 그린 여래상 앞에 합장배례하였다. 여래상은 지금까지 있어온 부처님의 모습이 아니라 새로운 부처님의 얼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