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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단편소설3

54.기계도시

by 자한형 2022. 5.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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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機械) 도시(都市) -조세희

 

그해의 7월과 8월은 유난히 무더웠다. 30년만의 더위라는 기사가 신문을 덮고는 했다. 나라 전체가 바싹 말라 타 버릴 것 같았다. 그러나 윤호 개인으로서는 걱정할 것이 없었다. 아버지가 설치하게 한 냉방기가 잡음 하나 안 내고 찬 공기를 내뿜었다. 어느 날 갑자기 큰 부피로 떠오른 도시가 없었다면 쾌적한 상태에서 수험 공부만 했을 것이다 은강시는 윤호의 머릿속에 어두운 그림으로 남아 있었다. 죽은 난장이의 아들딸이 그곳에서 일하고 있었다. 윤호에게 은강은 작은 유성 표면의 한 부분에 지나지 않았다. 죽은 난장이의 아들딸이 어두운 표면 부분에서 짜낸 수단은 기계가 있는 작업장에서 땀을 흘려 일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쉽게 일을 얻었다. 우수한 기술을 갖고 있어서가 아니었다. 그곳 기계도 사람의 도움을 받지 않고서는 일을 할 수 없었다. 난장이의 아들딸은 이미 많은 시련을 겪어 왔다. 최저 수준의 생활을 같은 집단 속에서 했기 때문에 그들의 모습은 드러나 보이지 않았다. 죽은 난장이도 쇠로 된 공구를 사용했었다.

말년의 그는 절단기, 멍키 스패너, 플러그 렌치, 드라이버, 해머, 수도꼭지, 펌프, 종지굽, T자관, U자관, 나사, 줄톱들을 부대에 넣어 메고 다녔다. 난장이네 동네에서는 아주 이상한 냄새가 났었다.

윤호는 발밑에 쓰러져 있는 술취한 사람들을 밟지 않기 위해 다섯 번이나 껑충껑충 뛰며 난장이네 집에 갔었다. 난장이의 부인은 보리쌀을 씻어 안쳐 끓이다 감자를 까 넣었다. 윤호에게는 대학에 가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재수생은 그때까지 불공평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는 빈곤을 뜻하는 poverty도 시사 용어로만 이해했었다. 그래서 poverty하면 populationpollution이 동시에 떠오르고 이것을 잊지 않기 위해 3P로 암기했다. 학교에서, 학원에서. 그룹 교실에서 가르치는 것이 이런 것들이었다. 교실에서 아이들을 죽였다.

난장이는 방죽가 마당에 앉아 그의 공구들을 손질했었다. 윤호는 그의 죽음을 한 세대의 끝으로 보았다. 윤호는 여자아이와 자면서도 난장이의 죽음을 생각했었다. 여자아이들은 그것을 싫어했다.

"제발."

한 아이는 말했다.

"제발 난장이에 대해서는 말하지 마."

"?"

"벌레 생각이 나."

"벌레가 아니라 인간야!"

"그래도 마찬가지야."

여자아이는 알몸으로 누워 있었다.

"벌레는 바로 너야."

윤호가 말했었다.

은희는 달랐다. 한참이나 말없이 앓아 있었다. 아주 예쁜 아이였다.

"이상해."

은희가 말했다.

"생각한 것을 어떻게 말할 수가 없어."

"어떤 생각이지?”

"난 잘 모르겠어. 사람들이 그의 몫을 가로챘던 것 아냐?”

은희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은희는 두 번째 해의 재수 동아리에서 제일 맑고 깨끗했던 아이다.

윤호가 삼수 생활을 시작할 때 그 아이는 대학에 갔다. 대학의 첫 인상은 별로 좋지 않았다 은희는 윤호를 찾아와 말없이 앉아 있다가 가고는 했다. 지난 몇 달 동안 대학이 은희에게 준 것은 자유 하나였다.

그것은 수업 시간에 맞추어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부모의 간섭을 받지 않아도 되는 이상한 자유였다. 운전기사는 대학 정문이 보이는 이백 미터 전방 골목길에 은희를 내려 주고 돌아갔다. 아이들은 은희를 보면 은희 아버지부터 생각했다. 윤호의 도덕 기준에 의하면 은희의 아버지도 존경받을 사람이 못 되었다. 아이들은 은희 앞에서는 날씨 이야기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아이들은 은희를 경계하고 피해 의식을 가졌다. 율사로서의 은희 아버지의 역할은 윤호 아버지의 역할보다도 큰 것이었다. 그러니까 아이들이 옳았다, 율사들은 아무도 모르는 장소에서 회합을 갖고는 했다. 윤호가 난장이의 아들딸 이야기를 할 때 은희는 귀 기울여 듣기만 했었다.

윤호가 은희에게 영향을 주었다. 은희도 검은 기계가 가득 차 있는 은강을 생각했다.

"너 때문이야."

은희가 말했다.

"네나 나를 잡고 있기 때문이야."

"틀려."

윤호는 말했다.

"내가 너에게 강요한 것은 하나도 없어."

"강요한 것은 없어. 너는 그냥 원했지."

"내가 뭘?"

"나를."

그러나, 그것은 은희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너를 어떻게 했니?"

윤호가 물었다.

"아니."

은희가 말했다.

"나는 다른 아이들과 어떻게 할 수가 없어."

"나는 안 그래."

"네가 말했었어. 그래서 내가 울었어. 나는 네가 아니면 싫었어."

그것은 윤호도 알고 있었다. 알면서도 작은 호텔로 가 다른 아이와 잠을 잤었다.

외등이 없어 어두운 골목 안 호텔에는 흠이 난 빨간 주단이 깔려 있었다. 여자아이와 잔 다음 윤호는 늘 절망했다. 마음 깊이 절망했다. 한없이 어리석은 짓 같아서 자신의 존재까지 부정했다. 눈앞의 물체만큼이나 어리석게 생각되었다. 윤호는 좀더 빨리 은희를 사랑해 주었어야했다.

그해 여름 윤호는 은희를 사랑하기로 마음먹었다. 은희만은 윤호를 이해했다. 은희는 윤호가 노동운동가, 또는 사회운동가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은희는 윤호를 단순한 삼수생으로 결코 보지 않았다. 그래서 죽은 난장이의 아들딸이 일하는 은강을 윤호처럼 큰 부피로 떠올렸다. 윤호는 은강을 생각하면 저절로 오그라드는 자신을 느꼈다.

은강은 크고 그 안은 복잡하다. 은강 사람들이 자기네 도시를 두고 이야기할 때 얼른 이해할 수 없는 것 중의 하나가 (갑갑하다)는 말이다. 은강은 서울에서 멀지 않은 서해 반도부에 위치해 있어 삼면이 바다다.

밀물 때 그곳 사람들이 제일 먼저 발견하게 되는 것은 해면의 파랑이다. 그 해면이 하루에 두 번씩 높아졌다 낮아졌다 해 은강 전체가 지구 밖 천체의 인력에 따라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은강의 면적은 백 구십 육 제곱킬로미터. 인구는 팔십 일만 명이다. 우리 나라의 주요 도시와 비교해 보면 면적도 넓고 인구도 알맞은 편이다. 그런데도 (갑갑하다)는 말을 은강 사람들이 하는 것은 그들의 기질. 또는 생활 안에 바깥 사람들이 볼 수 없는 깊은 회의가 깔려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사회 통제와는 상환이 없는 관찰이다.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개인의 활동 구속을 불만으로 말할 사람은 그곳에 하나도 없다. 진정한 사회학자라면 그 사회의 현상, 구조, 성질, 변동에 대하여 적합한 기술을 할 수 있을지 모를 일리다. 그러나 우리 시대의 특징 그대로 자기 책임을 다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어떻게 보면 은강은 버려진 도시이다.

교육청, 시청, 경찰서, 세무서, 법원검찰청, 항만, 관리청, 세관, 상공회의소, 문화원, 교도소, 교회, 공장, 노동조합 등이 그곳에 있다. 노동자들이 공장에서 하는 일은 쉽게 알 수 있지만 기관이나 단체, 또는 집회소 사람들이 바는 일은 그렇게 간단히 이해할 수 없다, 은강 사람들은 서울 사람들이 섬으로 가기 위해 부두를 메우는 것을 본다. 서울 사람들은 섬으로 없는 조개와 게를 잡으러 간다. 은강 사람들은 그들이 얼마나 어리석은가 생각한다. 바다에 떠 있는 기름을 서울 사람들은 보려고 하지 않는다. 그때 바람은 바다로부터 육지로 분다. 은강에서 바람 이상 중요한 것은 있을 수가 없다. 은강 사람들은 뒤늦게 그것을 알았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1854년 개항과 더불어 국제적 무역항으로, 산업 도시로 발달한 은강의 역사를 배운다. 은강 공업 지대는 금속, 도자기, 화학, 유지 ,조선, 목재, 판유리 섬유전자, 자동차, 제강 공업이 성하고, 특히 판유리는 한국 최고의 존재로 교과서에 나와 있다. 또 조수 간만의 차가 9미터에 이르나 갑문식 도크를 설치하여 불편을 제거했다.

시내는 많은 구릉이 기복을 이루며, 동서로 뻗은 중앙부의 구릉에 의하여 시가지는 남북으로 나뉜다. 공장 지대는 북쪽이다. 수없이 솟은 굴뚝에서 시커먼 연기가 오르고, 공장 안에서는 기계들이 돌아간다. 노동자들이 그곳에서 일한다. 죽은 난장기의 아들딸도 그곳에서 일하고 있다. 그곳 공기 속에는 유독 개스와 매연, 그리고 분진이 섞여 있다. 모든 공장이 제품 생산량에 비례하는 흑갈색 , 황갈색의 폐수, 폐유를 하천으로 토해낸다. 상류에서 나온 공장 폐수는 다른 공장 용수로 다시 쓰이고, 다시 토해져 흘러 내려가다 바다로 들어간다. 은강 내항은 썩은 바다로 괴어 있다. 송장 주변의 생물체는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

은강에도 물론 꽃이 피지만. 그곳의 봄은 차고 건조한 북서 계절풍이 덥고 습기를 품은 남동 계절풍으로 바뀌는 계절이다. 바다의 고기압대에서 남동 계절풍은 여름 더위를 몰아온다.

여름부터 초가을에 걸쳐 불어오는 태풍은 은강을 지나 내륙으로 들어간다, 겨울을 몰아오는 것은 마고 건조한 북서 계절풍이다.

겨울이 되면 은강에도 물론 눈이 내리지만 공장 노동자들은 눈이 내려 쌓이는 것을 보지 못한다. 아무리 추워도 하천은 얼어붙는 법이 없고 눈은 주거 지역 쪽에만 내려 쌓인다.

은강 바람은 낮에는 바다에서 육지로, 밤에는 육지에서 바다로 분다. 그 바람이 공장 지대의 유독 개스와 매연을 바다와 내륙으로만 몰아갔다. 그런데 오월 어느 날 밤, 은강 사람들은 바람이 갑자기 방향을 바꾸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바람은 바다로 안 불고, 내륙으로도 안 불고, 공장 지대의 상공에 머물렀다가 곧바로 주거지를 향해 불었다. 그 바람은 기복을 이룬 시내의 구릉을 넘어 주거지 일대에 가라앉으며 빠져나갔다. 막 잠이 들려면 어린아이들이 바람이 방향을 바꾼 사실을 제일 먼저 알았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갑자기 호흡 장애를 일으키는 것을 보았다.

아이들을 안고 병원으로 달려가던 어른들도 악취 때문에 제대로 숨을 쉴 수 없었다. 눈이 아프고, 목이 따가왔다. 견딜 수 없는 사람들이 거리로 뛰어나왔다. 시가지와 주거지에 안개가 내리고, 가로등은 보이지 않았다. 대 혼잡이 일어 질서는 순식간에 무너졌다. 도둑과 불량배가 꿈에도 생각 못 했던 기회를 잡아 날뛰었다. 시민들은 주거지를 벗어나 중앙으로 이어지는 국도쪽으로 대피했다. 아홉 시에서 자정까지. 세 시간에 지나지 않았지만 은강 사람들은 큰 공포 앞에 맨손으로 노출된 자신들을 깨닫고 몸서리쳤다. 짧은 시간에 은강 사람들은 여러 가지 불안을 경험했다. 아무도 정확히 말하지 못했지만, 그들은 은강 역사에 전례가

없는 생물학적 악조건 속에서 자기들이 살아간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음날 그들은 문제를 해결해 보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내 큰 벽에 부딪쳐 그들은 맥없이 물러서고 말았다. 은강을 움직이는 사람들은 서울에 있었다. 은강 사람들은 필요하다면 공중 집회를 갖거나 시위를 벌일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럴 수 없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고 입을 벌렸다.

윤호는 아버지가 무서운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늘 생각했다.

수많은 공장, 그 공장을 움직이는 경영인들, 그리고 그 경영인들을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서울에 있었다. 그들은 공장 기계를 돌리기 위해 물리적 힘만을 사용하고, 그 힘의 일부로 은강의 공해도를 측정, 발표했다. 은강 사람들은 잠들기 전에 바람의 방향을 확인한다. 바람은 난장이의 아들딸이 일하는 공장 지대의 개스와 매연을 내륙으로, 바다로 쓸어 간다. 은강 사람들은 거기서 그친다. 하루에 십만여 톤의 폐수를 바다로 흘려 넣는 그 공장 지대의 근로자들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다. 공장 지대에 머물렀던 바람이 다시 주거지로 불치 않는 한 그들은 깊은 잠에서 깨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노동청 은강 중부지방 사무소의 근로 감독관이 네 명이라는 사실을 알 필요도 없다. 그 네 명의 근로 감독관이 일천여 개 소의 사업장을 관할하고 있다. 한 명이 이백 오십 명의 근로자를 담당하는 것이 아니라 이백 오십 개소의 사업장을 관할하고 있는 것이다.

난장이의 아들딸이 거기서 일하고 거기서 생활한다. 처음 은강에 도착한 난장이의 큰아들은 저희 생활이 더 이상 나빠질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은강에서의 첫날밤을 노동자 교회 사무실에서 새웠다고 윤호에게 말했었다. 거기서 그는 노동자 교회 사람들이 공원들을 상대로 한 조사 자료를 보았다.

 

난장이의 큰아들은 빈곤 58.1, 인간적인 대우를 해 주는 직장 71.6, 항상 피로하다 59.8. 거의 모두 그렇다 39.1, 좀 어려운 이야기다 33. 5, 도저히 안 된다 3.8이라는 백분율 수자를 몇 번에 걸쳐 확인했다. (도저히 안 된다)고 답한 적은 수의 좌절, 반항, 소외 의식을 난장이의 큰아들은 생각했다.

"그때 이미 일만 할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알았어."

난장이의 큰아들이 나중에 말했었다.

"?"

윤호가 물었다.

"그건 질문이 못 돼. 내가 은강 자동차에 들어가던 날 일곱 명의 조립공이 쫓겨났어."

"쫓겨났다니? 해고당했단 말야? 그들이 뭘 잘못했어?"

"아니. "

"노조가 없었군. 그렇지?"

"있어."

"그런데 그런 부당 해고가 가능해? 노조 간부들은 뭘 하지?"

"사용자를 위해서 일하지."

"그게 무슨 노조야?"

"그게 노조야.

"그는 또 불행해질 거야."

이것은 은희의 말이었다.

"넌 스스로 행복한 아이라고 생각하니?"

윤호가 말했다.

"그도 지킬 것을 가져야 해."

"그래?"

은희가 감탄했다. 그해 여름 은희가 원하는 것은 하나밖에 없었다. 윤호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난장이의 큰아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윤호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난장이의 아들딸을 위해서 윤호가 해 줄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었다. 공장 안에서 돌아가는 기계들은 정밀한 것이었지만 그 사회는 이상한 습성, 감시, 비능률, 위협들로 가득 차 있었다. 난장이의 큰아들에게는 사진으로나 볼 뚜 있는 증기기관처럼 모든 것이 까맣게만 보여졌다

난장이의 작은아들이 은강 전기에 들어가 처음 한 일은 쇠로 만든 손수레에 주물을 넣어 나르는 것이었다. 석 달 동안 훈련공으로 일했다. 연마 일을 하게 되었을 때 조합 총무가 종이 한 장을 내주었다.

"그는 가입하지 않았어."

윤호가 말했다.

"그도 행복해질 수 없는 사람야."

"그는 사용자에게 요구할 것들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책을 읽기 시작했어. 그리고 믿을 수 있는 공원들에게 조합에서 탈퇴하라고 말했어,"

"어떻게 하려구?"

"그의 꿈은 새로운 노조였어."

"여동생은 어디서 일하지?"

"은강방직."

"영희는 잘 있어?"

윤호가 여동생 안부를 물었을 때 난장이의 큰아들은 고개를 저었었다.

"쉬고 있어."

그가 말했다.

"회사에서 깨고 통고를 해 왔어."

"무슨 이유지?"

"상사인 담임의 말을 안 들었다구. 하지만 걱정 없어. 조합 아이들이 일을 잘 해."

윤호는 난장이의 큰아들이 웃는 것을 그때 처음 보았다. 윤호는 그와 오래 이야기할 수 있었다. 그는 바빴다. 그가 뒤늦게 안 것은 대중 앞에 나타나지 않는 몇 십 명 정도의 사람들이 우리 나라 국민 경제 생활을 실질적으로 지배한다는 것이었다. 그들이 큰 공장을 돌리고, 은강시 내항 도크에 들어온 6만 톤급 화물선에 제품을 적재한다.

"안 되겠어."

난장이의 큰아들은 뒤에 말했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어."

"우리는 누구야?"

"나와 두 동생, 그리고 은강에서 일하는 사람들야."

"네가 갑자기 너무 큰 것을 원하는 것 아냐?"

윤호가 물었다

"너는 몰라."

난장이의 큰아들은 돌아보지도 않고 말했었다. 아버지가 설치하게 한 미국제 냉방기는 정말 잡음 하나 안 내고 찬 공기를 내뿜었다. 그해의 7월과 8월은 유난히 더웠다. 은강 공장 지대의 기계들은 그 여름에도 계속 돌았다. 윤호는 너무 몰랐다. 난장이의 큰아들은 은강에 가 일하기 시작한 이후 수없이 울었다. 천박도 수없이 받고, 폭행도 당했고. 병원에도 입원했었고, 구류까지 살았었다. 그의 얼굴은 몰라보게 야위었다. 두 눈만 유난히 커 보였다. 그의 이상이 그를 괴롭혔다.

"나의 꿈은 단순한 거야."

그가 힘없이 말했다.

"알아."

윤호가 말했다. 윤호를 가만히 들여다보더니 그는 말했다.

"조합 총회, 대의원 대회 한번 제대로 치러 보지 못했어. 모든 것이 일방적야, 법대로 되는 게 없어. 내내 지기만 했어. 동료들을 대할 면목도 잃었어. 내가 그들에게 준 것은 고통뿐야."

"그들은 널 이해할 거야."

"?"

"이해해."

"날 이해한다면 도와 줘야 돼."

"어떻게?"

난장이의 큰아들은 윤호의 등에 손을 얹었다.

"날 너희 집으로 데려가 줘. 네 방에만 처박혀 있을 테야. 기회를 봐서 나는 나갈 거야."

"도대체 뭘 하겠다는 거지?"

"그를 만나야 돼."

"그라니? 누구?"

"은강 그룹의 경영주야. 너희 옆집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

"그를 만나서 무슨 말을 하려구?"

난장이의 큰아들은 윤호의 등에서 손을 내렸다.

"한말은 없어."

그가 말했다.

"그를 죽이려고. 그래,"

"미쳤어!"

윤호가 소리쳤다.

"사람을 죽인다고 해결될 일은 없어. 넌 이성을 잃었어."

"좋아."

그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의 도움도 필요 없어. 혼자 힘으로 할 거야."

"넌 너 자신을 죽이고 있어. 도대체 누구를 위해 죽겠다는 거야?

"난 아무를 위해서도 죽지 않아."

"그럼?"

"그만두자."

"그를 만나려면 브라질로 가 "

윤호는 화를 눌러 가며 말했다.

"그는 열 일곱 살 짜리 막내딸을 데리고 그곳에 가 휴양 중야. 상투스 휴앙지에 가서 그의 이름을 외쳐 불러 봐."

"올 때까지 기다려야지."

난장이의 큰아들은 말했다.

"그를 죽여야 돼."

그리고, 등을 돌렸다.

난장이의 큰아들을 도와 줄 일이 윤호에게는 없었다. 윤호가 도울 수 있는 사람은 은희 하나 뿐이었다. 은희는 윤호를 원했다. 은희는 윤호를 찾아와 말없이 앉아 있다 돌아가고는 했다. 윤호는 외등이 없어 어두운 골목 안 호텔로 은희를 데리고 갔다. 그 호텔에는 흠이 난 빨간 주단이 깔려 있었다,

윤호는 집게 손가락을 은희의 입술에 대었다. 은희는 두 손을 펴 눈에 대고 손가락 사이로 윤호를 보았다. 은희를 안으면 은희의 원피이스가 겹쳐지며 바스락 소리를 냈다. 알몸의 은희는 윤호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 가슴에 대었다. 윤호가 두 팔에 힘을 주자 은희는 포옥 숨을 들이 마셨다. 그러나, 쓸데없는 일이었다. 그때 윤호는 어떤 도덕적인 핵심과 맞부딪쳤다. 그래서 이제 끝내야지, 하고 그는 중얼거렸다. 은희를 안고 있는 윤호의 머릿속에 까만 기계들이 들어 차 있는 은강시가 떠올랐다.

-단체를 만들자. 그 사람 혼자의 힘으로는 안 되는 일야.-

그날 호텔을 나서면서 윤호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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