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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단편소설3

55.기억의 눈

by 자한형 2022. 5.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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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記憶)의 눈

전상국

 

초가을 비가 창밖에 제법 구성지게 뿌리는 일요일 오전이었다. 집에서 하루를 푹 쉬고 싶은 사람에겐 더없이 안성마춤인 날씨였다. 또 시작했군요. 곁에 다가와 앉는 아내의 몸에서 향수 냄새가 열게 풍겼다. 나는 그때 느지막이 대중 목욕탕에서 돌아와 오렌지 주스로 갈증을 푼 뒤 온수에 의해 부드럽게 불려진 왼손 손가락의 회백색 티눈 각질을 뜯어내고 있는 참이었다.

두고 보라구, 오늘은 기어이 뿌리를 뽑고 말거니. 오목하게 뜯겨 나간 각질 밑의 생살의 모세혈관이 금방이라도 터져 오를 듯 발깃발깃한 손가락을 내보이며 내가 대꾸했다. 못 보겠다는 듯 고개를 돌리며 아내가 그러다가 또 저번처럼 피가 나오면 어쩌려고 그러는 거예요. 아닌게아니라 각질을 뜯어낸 티눈 부위가 몹시 아려들었다. 남들 말에 의하면 그 발깃한 생살을 눌 딱 감고 한 껍질 뜯어내야 비로소 티눈의 부리가 뽑힌다는 것이었다. 말이 쉽지 내 손으로 그 생살을 어떻게 뜯어낼 수 있다는 말인가. 하긴 두어 번 어설프게나마 시도를 해 보긴 했지만 번번이 손가락에 퍼만 벌창을 이뤄놓는 데 그치고 말았다.

그런대로 일주일을 지내다 보면 움푹 패었던 곳에 다시 원형의 각질층이 도톰하게 융기해 있기 마련이었다. 어느 구석엔가 실뿌리의 가뭇한 쪼가리가 남아 있다가 놀랍게 빠른 속도로 증식한 것이다. 계안(鷄眼)이란 병명대로 꼭 닭의 눈깔 만한 것이 엄지손가락 지문 마디의 한가운데 박혀 무엇에 닿을 때마다 깔끄럽고 매사에 그처럼 거북할 수가 없었다. 신경에 몹시 걸릴 때 같아서는 그 당장 병원에 달려가 도려내고 싶었지만 그까짓 일로 생살에 칼을 댈 것이 두려워 차일피일 미뤄왔던 것이 이제는 오히려 며칠에 한번씩 각질을 뜯어내는 일이 버릇처럼 되어버렸다.

, 무서워--- 이제 그만해요. 아내가 어리광 부리듯 내 겨드랑이에 손을 껴안으며 말했다. 지난밤, 일 주일 만의 잠자리의 그 여흥이 아직 가시지 않은, 여자 특유의 찐득한 비음(鼻音)이었다, 원래 무드를 잘 타는 동물이다. 집안 분위기가 그랬다. 창밖에는 추적이는 가을비, 아이들은 전날 제 이모를 따라 외가에 간 채 아직 돌아오지 않은, 참으로 오붓하고 칠칠한 시간이 야금야금 관능을 쑤석이고 있는 시간이었다.

애들 몇 시에 온댔어? 내가 몸을 펴 기지개를 켜며 물었고 아내가 대꾸했다. 저녁때 오라고 했는데 또 몰라요, 지금쯤 벌써 오고 있을지도. 사실 이러한 안락한 시간일수록 일말의 불안이 어느 구석에선가 슬며시 고개를 들기 마련이다. 어떤 불길한 그림자를 거느린 예감 같은 게 불쑥--- 아닌게 아니라 바로 그럴 즈음 전화벨이 울었다. 시외 전화였다, 시골 형이 그의 가게에서 걸어온 전화였던 것이다.

"어머니가 오늘 새벽 거기 간다구 떠나셨어."

가끔 있는 일로, 어머니의 상경을 알리는 형의 어투가 이날 따라 별나게 딱딱하게 들려 서먹한 느낌인데, 그 말 한마디로 전화를 끊는가 살더니,

", 읍내 사람 누가 글루 연락 같은 거 안 했는지 모르겠어?"

밑도 끝도 없이 그렇게 물어 놓고 형은 이쪽에서 뭐라 대꾸할 여유도 주지 않은 채 다시 말했다.

"그리고 혹시 쐐기가 안 찾아갔었나 몰라, "

그런 식으로 덤벙거리던 형은, 그런 일 없는데요--- 란 내 대답 한마디로 이쪽의 궁금증 같은 건 아랑곳없이 전화를 끊어버리고 만 것이다. 예사롭지 않은 일이었다, 읍내 사람이 누가 무슨 일로 나한테 연락을 한단 말인가. 거기다가 생뚱 같이 쐐기 이름은 왜 들먹거린단 말인가.

형의 그러한 뒤숭숭한 전화를 받은 지 한 시간도 채 못 되어 가을비에 온몸이 후줄근하게 젖은 어머니가 들어섰다. 원래 작은 체구이긴 하지만 비를 흠뻑 맞은 칠십 노구의 어머니의 모습이 그렇게 초라해 보일 수가 없었다

이따금 상경할 때마다 어머니는 그게 무슨 의무이기나 한 듯, 들어봤자 쥐뿔도 달가울 게 없는 고향 사람들 얘기를 줄줄이 엮어내곤 했다. 고향 구석구석에서 일어난 일들을 하나라도 빠뜨리지 않고 떠르르 꿰뚫는다. 읍내 젊은애들 연애 사건까지 귀담아 들어두었다가 긴한 얘기 사이사이에 곁들이기도 잊지 않았다. 이틀 사흘이 지나도록 어머니의 고향 소식은 끊이지 않고 쉬엄쉬엄 이어진다. 신식 작은며느리의 눈 꼬리가 파르르 떠는 서슬에도 아랑곳없이 마치 고향의 그 잡동사니 이야기들을 우리 집 구석구석에 옮겨 칠해 놓기 위해 우정 상경한 것인 양 당신의 일방적인 이야기를 집요하게 늘어놓는다. 아빠가 자꾸 예 예, 말을 받아주니까 그러시는 거예요. 어머니가 고향 이야기를 할 때마다 숫제 자릴 뜨거나 딴전을 보기 일쑤인 아내가 나를 몰아붙이기도 했다. 내가 대꾸한다. 누구나 늙게 되면 외로와지고 그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말 상대를 찾는 거라고.

특히 어머닌 내가 고향 일에 무관심한 건 내 서울 생활이 무척이나 고달파서 그런 거라고 생각하시고 계신 거야. 그래 당신이 고향 얘길 들려주면 내가 힘을 펄펄 내리라고 그렇게 생각하시는 걸 게야. 그러나 아내가 코웃음을 친다, 꿈보다 해몽이 좋네요. 비록 즉흥적인 것이긴 하되 나는 그 생각이 어느 정도 타당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어쩌다 내가 고향에 내려갈 때마다 어머니는 당신이 손수 부엌에 들어가 어린 시절 내가 즐겨 먹던 음식이며 반찬들을 장만해 상에 올려놓고는 내 식성이 변했는가 안 변했는가를 유심유심 살피곤 하던 것이었다. 내 젓가락이 그 반찬 쪽으로 자주 가지 않을 것 같으면 몹시 안스러운 표정으로, 식성이 변한 건 사람 맴이 변해서 그렇다구 하면서두 쯧쯧 혀를 차곤 했다.

"어머니가 왜 저러시는 거예요?"

아내가 얼굴에 다소 겁먹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모를 일이었다. 어머니의 이번 상경이 너무 뜻밖인데다 집에 들어선 이의 하는 양이 그전과 사뭇 틀렸던 것이다. 우선 다른 때처럼 올망졸망 잡곡이 든 자루을 짐꾼에게 들리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형네 가게에서 파는 치약 칫솔 등 쓸만한 잡화를 보따리 구석구석에서 꺼내놓지도 않았다. 그야말로 어머니는 훌훌 빈 몸으로 들어서서 우리 내외가 하는 큰절도 건둥 받아넘기더니,

", 어멈아, 네 헌옷 하나 다우."

그렇게 비에 젖은 옷을 갈아입고는 애들 방에 들어가 누운 지가 몇 시간이 지나도 기척이 없었던 것이다, 평소 차멀미를 하는 이도 아니었지만 설사 여독으로 몸이 불편하다 해도 구시렁구시렁 고향 사람들 얘기부터 늘어놓게 마련일 텐데 이날은 사뭇 그게 아니었다.

"집에 뭔 일이 있어요?"

내가 그 방으로 들어가 조심스레 묻자 어머니는 다부지게 벽 쪽으로 당겨 누웠던 몸을 부시시 돌아누우며 그렇게 물어오길 기다렸다는 듯 선선히 대답했다.

"갸가 그여코 일을 안 저질렀냐 ! "

한숨 쉬듯 그렇게 내뱉은 어머니는 더 참지 못하겠다는 듯 벌떡 몸을 일으켜 앉았다.

"갸라니요?"

나는 잡화상을 벌이고 있는 형의 얼굴부터 떠올리며 가슴이 섬뜩했다

"선옥이 그년 말이다. 그년 이제 제 명에 뒈지긴 다 글렀다!"

형 얘기가 아닌 것에 우선 마음을 놓으며 함께 방에 들어온 아내의 귀까지 계산에 넣어 물었다.

"아니, 선옥이라면 식당을 한다는 그 여자 말인가요?"

"갸 말고 선옥이가 어디 또 있다던?"

나무라치듯 그렇게 말하는 어머니의 눈길을 피한다는 게 이번엔 아내와 마주쳤다.

"그 여자 얘기군요."

경멸 가득한 눈길을 보내는 아내의 눈꺼풀에 파르르 가벼운 경련이 일고 있었다. 아내는 그때 선옥이한테 당한 모욕을 결코 잊지 못하고 있었을 것이다. 어머니의 육십 몇 회 생신을 맞아 모처럼 아내를 데리고 고향에 내려갔을 때였다, 버스에서 내려 옛날 장거리 구길로 올라가다가 그네와 마주쳤던 것이다. 거의 동시에 피차 알아보긴 했지만 내 쪽에서 짐짓 외면한 것이 탈이었다.

- 이거, 동수 아냐?

삼십 후반에 접어든 나이답지 않게 얼굴이 핑핑하고 옷맵시가 스마트했다. 예쁘구나. 그 경황 중에도 나는 그런 생각을 신음처럼 씹었다. 퍽 당혹한 꼴이 되어 아내 쪽을 바라봤다. 무심중 그네와 아내를 견줘 봤는지도 모른다. 선옥이가 내 아내 쪽을 쏘듯 훑으며,

- 서울 색시 얻어 애 낳고 잘 산다는 얘기만 늘 들었지만 이렇게 직접 보긴 또 첨이구먼.

그리고 덧붙였다.

- 너무했다구 정말. 그래도 옛정이란 게 있는 법인데 그래 늘 그렇게 살짝 왔다가 가기야? 지금두 그렇지, 외면하고 지나칠 건 뭐람, 누가 옛날 동수네가 가난뱅이란 걸 객적게 들춰 낼까봐 그게 겁이 나 그러는 거야?

의도적인 듯 방자하게 나오는 선옥이 앞에서 실로 곤혹스러워 도망치듯 그 자릴 피하는 우리 내외의 뒤통수를 향해 그네가 깔깔거렸다.

- , 정말 개천에서 용 났지 뭐냐, 올라가기 전에 한번 들려. 한잔하면서 옛날 얘기 좀 하자구.

하리놀 듯 방자한 짓거리에 그만 질러버린 아내는 그날 이후 그 여자가 누구냐, 그리고 어떤 사이였느냐, 그런 걸 일체 캐묻지 않았다. 아내의 자존심에 상처가 났던 것이다. 어머니가 상경을 해 강남옥 선옥이 얘기를 심심찮게 늘어놓을 매도 짐짓 딴전을 보는 게 고작이었다. 하지만 그런 때마다 그네의 입가에는 야멸찬 비웃음이 경련처럼 일게 마련이다. 아내는 서울토박이답게 천한 것 불결한 것 또는 미묘한 갈등의 줄다리기를 하면서 지탱되는 우리 형제간의 집안 우애에 대해서 거의 선병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고향 형이 내 앞에 궁색한 소릴 하러 들를 때 흑은 너저분한 보따리를 들고 어머니가 상경할 때마다 어쩔 수 없이 우리 집 구석구석에 배기 마련인 고향의 그 구질스런 일들에 대해서 혐오 가득한 얼굴로 맞서기 일쑤였다. 나는 그런 때 참지 뭇하고 아내의 기률 꺾기 위해 언성을 높였고 그렇게 되면 그네 쪽에서 되려 입을 다문 채 예의 그 비웃음을 입가에 무는 것이었다.

결국 내가 또 하나의 나와 싸워야 하는 그 분통이 터지는 싸움만이 더욱 무서운 기세로, 조금은 아름답게 숨겨두고 싶은 고향의 추억으로부터 여지없이 추방당하고 마는 것이다. 아내를 향했던 적의(敵意)는 어느 결에 선옥이를 비롯한 고향 사람들의 낯짝을 향해 여지없이 옮아붙게 마련이다.

"뭡니까, 그 여자가 뭘 하였길래 어머니가 이처럼 상심하시는 겁니까?"

내가 다그쳤다. 당신 때문에 빼앗기고 만 이 일요일, 이 칠칠한 시간, 나는 서서히 적의를 불붙이고 있었던 것이다. 어머니가 몸에 묻히고 온 고향의 그 음험한 소식들이 퍼덕퍼덕 날개를 치며 내 정수리를 쪼아댔다.

"글쎄, 그 벌받아 마땅할 것이---"

어머니가 다시 몸을 눕히며 다소 감정이 억제된 목소리로 선옥이에 관한 이야기를 띄엄띄엄 풀어놓기 시작했다.

선옥이가 어마어마하게 많은 남의 돈을 챙겨 가지고 읍내에서 종적을 감췄다는 것이다. 그 일로 해서 읍내가 벌컥 뒤집혔다는 얘기다. 읍내 돈 좀 있다는 사람 치고 안 물린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그네가 경영하던 식당은 물론 죽은 지 오래 뒨 중국인 남편이 물려주고 간 읍내 변두리 땅도 이미 남의 손에 넘어가 있더란 것이다. 식당을 벌여놓고 계획적으로 높은 이자를 주어가며 남의 돈을 끌어들이는 한편 그네가 벌인 사기 계만 해도 수십 개가 넘었다는 게 나중에야 밝혀졌다는 얘기다.

꼴이 꼭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기였다. 자식도 일가붙이도 하나 없이 혼자 살던 여자가 훌쩍 사라져 버리고 나니 행방이 막연할 밖에. 소문만 풍성하게 떠돌았다. 몇 년 전 서울 변두리에 부동산 투자를 크게 했는데 그것이 녹지대로 묶여 폭삭하는 바람에 그 봉창을 대느라고 남의 돈을 빌어 쓰기 시작한 것이 눈덩이처럼 불어 그 꼴이 됐다는 얘기도 있었고 외지에 남자를 두고 챙긴 돈을 모두 그리 쏟아 넣고 도망을 쳤다는 얘길 하기도 했다. 어떤 사람은 선옥이가 불치의 병에 걸려 그 오기로다 남의 돈을 떼먹고 지금쯤 어느 산 속 깊은 데 들어가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러나 어느 얘기 하나 신빙성이 있어 뵘직한 것은 없었다. 그것은 마치 선옥이가 읍내에서 사라지기 전 읍내 한다하는 사내 치고 선옥이 기둥서방을 자처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던 것처럼 도무지 실상을 종잡을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막상 선옥이가 사라지고 나니까 선옥일 제 것이라고 자랑하던 사내들이 손을 내저으며 꼬리를 사렸다. 얼굴이 모두 소태 씹은 꼴이었다. 하나같이 선옥이한테 돈을 떼었다는 사람뿐이었다.

"그놈에 지즈배가 상대한 사내가 어디 한둘이어야 말이지--- 그놈에 지즈배 때문에 읍내 이 집 저 집이 온통---”

온통 싸움판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잘난 남편 잠깐 빌려주고 뒷전에서 솔솔 돈 늘여 가는 재미에 입다물고 있던 여편네들이 막상 일이 그게 아닌 걸 알고는 가만히 있을 턱이 없었다는 것이다. 황금당 주인 최가며, 주유소 박가며, 오성 양복점 주인은 물론 장바닥에서 닭 장사하는 조씨까지 톡톡히 물렸다는 얘기다.

"글쎄, 고 구미호 같은 것이--- 은혜도 모르는 개잡것이---"

뉘었던 몸을 뿌르르 일으켜 앉으며 어머니가 격앙된 목소리로 치를 떨었다.

"형네도 당했군요?"

나는 쉽게 넘겨짚었다. 처음부터 그런 예감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아무리 선옥이에 대한 옛정이 크대도 그럴 수가 없었던 것이다. 어머니는 대 답 대신 다시 풀썩 몸을 눕히며.

"그년 못돼 먹은 거야 그렇다손 치더라두 느 성, 갸가 어디 그게 제 정신 가진 사람이냐.”

잡화상을 벌여 좀 모았던 돈을 선옥이한테 홀랑 떼었다는 얘기다. 가게에서 올리는 매상보다 선옥이한테서 나오는 이자가 더 짭짤해 그 강짜 심한 형수마저도 모른 체했던 것이 탈이었을 것이다.

"에미두 그렇지, 어디 그 돈을 느 성이 혼자 몰래 빼다 싸 줬다더냐, 다 즈덜끼리 의논들을 해 줘놓고설랑---”

선옥이가 도망을 치고 나자 형 내외가 대판 싸움을 벌였다는 것이다.

"시상에, 시상에 고것이 고렇게 맴이 변할 줄 누가 알았겠냐."

어머니는 눈물까지 찍어냈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배신감 때문에 늙어 서러움을 새삼 느꼈던 모양이다. 사실 낳지만 않았지 한때 계 자식처럼 입을 거 먹을 거 거둬 키운 그 공이 그처럼 허무하게 무너지고 보니 기가 찰 수밖에.

"어쩐지 그래 뵈더라니!"

묘하게도 아내의 얼굴이 활짝 밝아져 있었다. 그러나 입 꼬리에는 여전히도 비웃음을 경련처럼 매달고 있었다. 아내의 그러한 묘한 심리와는 또 달리 나는 선옥이의 그 소식을 전해 들으면서 알 수 없는 해방감으로 들떠 오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선옥이가 날개를 달고 하늘 높이 날아오르는 걸 밑에서 쳐다보고 있는 느낌이었다. 나는 가슴에 일렁이는 바람을 느꼈다.

"갸가 너한테 뭔 소식이 없든?"

어머니가 내 얼굴을 쳐다보지 않은 채 그냥 지나가는 말투로 물었다.

"누가 말입니까?"

"벨 요사스런 소릴 다 듣겠더구나. 글쎄 갸가 혹시 너하곤 뭔 연락이 안 닿았겠느냔 얘길 지껄이는 사람이 있다는 게야.”

문득 오전 중에 걸려온 형의 전화 생각이 났다.

"누가 그따위 소릴 지껄인대요?"

"내가 뭘 아냐. 네 성수(형수)가 어서 듣고 와 그런 소릴 하길래, 내 그 말 같잖은 소리 하지두 말라구 윽발질러 뒀다만서두,”

어머니가 변명 조로 늘어놓았다. 형수가 그런 얘길 했을 것이다. 형이 잠자리 같은 데서 어쩌다 선옥이 얘길 꺼냈을 것이고 그 얘기 중간에 내 얘기까지 껴 넣었을 게 분명하다. 어쩌면 형은 내가 선옥일 범한 그 첫 번 째 사내라는 걸 형수한테 들려주었는지도 모른다, 형과 나의 공동 연적이었던 쐐기가 사라지고 난 뒤 우리들 사이는 선옥일 사이에 두고 밀고 당기는 신경전이 벌어졌던 것이다. 선옥이는 우리 형제 중에서 하나를 자신의 배우자로 선택해야 될 입장에 놓이게 됐던 것이다. 어머니의 뜻이 그랬다. 인물도 빼어나고 붙임성이 있어 누구에게나 귀염을 받는 선옥이를 다른 집에 빼앗기지 않고 그대로 며느리로 눌러 앉히고 싶은 당신의 욕심이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형은 퍽 유리한 입장이었다. 선옥이와 나는 한 살 차이였고 형은 나보다 베 살이나 위여서 우리가 고등학교를 다닐 때 이미 사회인이 돼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쐐기가 그렇게 읍내에 나타나지 않았더라도 선옥이는 형과 결혼해서 평범한 아내가 됐을는지도 모른다. 아니, 쐐기가 문제가 아니고 바로 그 패물함 때문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그해 봄방학을 맞아 나는 고향에 내려가 있었다. 형은 읍내 고등학교를 나오고 양조장 집 서기 일을 보았다. 선옥이는 고등학교 1학년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 집에서 한 식구로 살았던 것이다. 내가 낳은 자식이 아닌 선옥이를 읍내 고등학교나마 보낸 건 어머니의 어떤 욕심이었을 것이다.

그런대로 우리들은 잘 어울리는 남매들이었다. 어디를 어울려 다녀도 남들이 이상한 눈으로 보지 않았다.

- 동수 오빠, 쐐기가 왔대!

밖에서 뛰어들어온 선옥이가 헐떡거리며 말했다. 처음에는 장난으로 그러는 줄 알았다. 그러나 선옥이의 파랗게 질린 얼굴을 보고서야 나는 일이 심상찮음을 직감했다.

- , 쐐기가?

나는 뭔가 그릇된 일이 선옥이를 놀라게 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고 그것의 정체를 캐기 위해 분연히 일어섰던 것이다.

- 봤대, 사람들이 여럿이서 봤대는 걸.

- 어디래?

- 다리 밑 거지들 있는데 있더래.

- 비슷한 앨 거야.

- 아니야, 양복점 집 아저씨가 직접 이름도 물어봤다던데. 사 이기, 제 이름을 똑똑히 대더라는 걸,

선옥이와 나는 새삼 얼굴을 마주보았다. 그리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남산 중턱 그 치마바위로 치뛴 것이었다. 숨이 턱에 차게 남산 중턱까지 오른 우리들은 치마바위 뒤쪽 후미진 곳에 이르러 자잘한 돌무더기를 걷어내고 그 밑에서 목침보다 좀 작은 패물함을 확인했다. 5년여 단 한번도 그 뚜껑을 열어보지 않은 채 그 은닉 장소를 수십 번이나 옮겨왔던 패물함이다. 선옥이와 나는 아직도 옻칠이 말짱하게 남아있는 그 패물함을 확인하고 나서야 서로 얼굴을 마주보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분명 난리 매 죽은 걸로 알고 있는 쐐기가 읍내에 나타났다는 소식을 듣고 왜 우리들은 그곳까지 달려가 그 패물함부터 확인해야만 했을까. 나는 비로소 덜덜 털리기 시작했다.

- 무서워, 오빠 !

단발머리 계집애가 내 팔을 잡았다. 쐐기가 나타났다는 걸 알릴 때의 그 겁에 질린 얼굴이 아니었다. 쐐기네 집에서 그 패물함을 훔쳐 내와 내 앞에 보였을 때처럼 자랑스러워하는 표정이었다. 무서운 계집애구나,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러나 나는 어느새 내 틱 밑에서 새근대는 선옥이의 숨소리에 아득히 정신이 흐려지고 있었다. 선옥이는 크게 뿌리치지 않았다. 그네의 입에서 싸리버섯 냄새가 났다. 철 이른 우리들의 성년식은 그런 식으로 이루어졌다. 그 서툰 행위가 끝난 뒤 선옥이는 계집애답게 무릎을 모아 끌어안고 훌쩍거렸다. 그 순간 나는 선옥이와 결혼할 수 없을 것이란 어떤 예감에 사로잡혔다. 이 세상에 외톨로 남겨진 선옥이애 대해서 이제까지 가져 온 측은하다는 느낌이 더럭 모습을 바꾸면서 무서움 같은 게 치민 것이다. 그것은 두 무릎을 모아 끌어안고 훌쩍이는 선옥이의 팬티에서 선명한 흔적을 본 때문이다. 나는 허둥허둥 산을 내려오다가 이제 막 피어나기 시작한 진달래꽃을 따 입에 씹었다. 배릿하면서 달착지근했다.

그날 저녁 선옥이는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어머니와 형은 안절부절 못 하며 선옥이를 기다렸다. 어머니나 형도 쐐기가 읍내에 나타났다는 소식을 이미 알고 있었다. 나는 무서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형에게 선옥이와 낮에 벌였던 일을 털어놓았다. 5년여를 숨겨온 패물함 이야기는 물론 하지 않았다. 그러나 선옥이의 팬티에 선명한 자국을 남긴 그 자줏빛에 대해서는 말해주었다. 나는 지금도 형의 그때 일그러지던 그 낙담한 얼굴을 잊을 수가 없다. 형의 눈에서 나는 절망을 읽었다.

- , 선옥이와 결혼해야 한다.

얼마 만에 형이 신음처럼 중얼거렸다.

- 필요 없어 .

내가 잘라 말했다. 쐐기가 돌아왔기 때문이야- 그렇게 말하려다 그만 두었다.

-그럼 선옥인 어떻게 하냐?

형이 애원하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형의 눈길을 피했다. 마음이 교활해지고 있었다. 선옥인 내 것이라고, 내가 주인이지. 우리들이 숨겨온 그 패물함을 생각하면 가슴부터 뛰었다. 물론 그 패물함은 언제고 열릴 것이고 그것의 반은 내 몫이다. 그리고 그 자줏빛 자국, 나는 왕자처럼 뻐기고 싶었다. 그러나 선옥이는 한 가정의 아내로서는 어딘가 부적합하다는 생각을 지워버릴 수가 없었다. 나는 혼자 음흉스럽게 낄낄 웃곤 했다.

선옥이가 집에 들어온 것은 다음날 아침이었다. 하룻밤 사이에 얼굴이 그렇게 수척해질 수가 없었다. 친구네 집에서 잤다고 했다. 어머니가 불같이 화를 냈다. 형은 오히려 침착했다,

- 더러운 계집애! 넌 이제 우리 식구가 아냐!

형이 말했다. 화를 내던 어머니가 오히려 주춤하며 형의 눈치를 살폈다. 형의 목소리는 낮고 찼다.

- 이 계집애가 우리 집에서 안 나가면 내가 없어지겠어요.

나는 그네들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부지런히 밥만 퍼먹었다. 선옥이의 눈길이 내 뒤통수에 와 멎고 있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나는 허겁지겁 숟갈을 놀렸을 뿐이다. 그날로 선옥이는 집을 나가버렸다. 어머니가 허둥허둥 읍내를 헤매고 다렸지만 선옥이는 아무 곳에도 없었다. 새 학기가 되어 서울 이모 댁으로 올라오기 전 나는 남산 중턱 치마바위까지 가 보았다. 우리들의 보물은 그 자리에 그대로 묻혀 있었다. 나는 후우 숨을 내쉬었다. 선옥이는 살아 있었던 것이다.

 

"그 오라질 것이 되놈 서방도 그렇게 해서 제 손으로 잡아먹었을 거구먼."

어머니는 구시렁구시렁 갖은 욕을 다 주워섬긴 다음 선옥이의 죽은 남자까지 들먹거렸다. 선옥이가 읍내 중국음식점 주인과 결혼을 한 것은 내가 대학에 들어간 그 이듬해였다. 남산에서의 그 일이 있은 후 꼭 3년이 되는 봄이었다. 나는 아직 겨울 방학이 다 끝나지 않아 고향에서 빈들거리고 있을 때였다. 그 소식에 접하고 형과 나는 서로 아연한 눈길을 교환했다. 형도 이미 그때 결혼한 직후였다. 그러나 형의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랐다. 선옥이가 시집간 그 자리는 재취 자리였다. 다행히 전실 자식은 없었지만 중국사람은 이미 오십 줄에 들어선 늙은이였다.

그네가 집을 나가고 나서 두어 달 뒤 나는 서울 이모네 집에서 선옥이의 방문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때 이모네는 중랑천 둑방 판자촌에 살았고 나는 그 판자 집의 방 하나를 동생뻘 되는 아이들과 함께 쓰고 있었다. 이모네 식구들은 고등학생인 나를 찾아온 선옥이를 몹시 신기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그때 선옥이는 이미 읍내 고등학교를 그만둔 채 버스 정류장에서 표를 팔고 있다는 소문이었다. 집을 나간 지 두어 달 만에 그렇게 변모한 선옥이가 느닷없이 내 앞에 나타났을 때 나는 적잖이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 우리 밖에 나가 걸어요.

선옥이는 오빠란 호칭을 쓰지 않았다. 하는 짓이 꼭 어른 같았다. 나는 이미 그네의 주인이 아니라 종이 되어 서먹서먹 그 곁을 따라 걸었다. 중랑천 둑방에서 시작한 것이 태능까지 걸어서 갔다. 그때만 해도 태능은 아주 한적한 곳이었다. 그 먼길을 걸으면서 우리들이 나눈 얘기는 불과 몇 마디 되지 않았다. 주로 그네가 묻고 나는. 대답을 했을 뿐이다.

- 이모님네두 살림이 어러운가 봐요?

-.

-어머니가 학비는 잘 보내주시나요?

-.

-큰오빠가 돈을 버니까 이제 어머니도 광주릴 안 이셨으면 좋겠어요.

-글쎄.

나는 선옥이한테 처음으로 우리 집 가난에 대해 부끄럼을 느꼈다. 치욕이었다. 흘깃 쳐다본 선옥이의 목덜미가 훤칠하니 길고 깨끗했다. 단발머리도 꽤 길어져 있었다. 꽤 오랫동안을 별소리 없이 걷던 선옥이가 입을 열었다.

- 아무래도 그걸 쐐기한테 돌려줘야 할 것 같아요.

- ?

- 우리들이 홈친 쐐기네 패물함 말이예요.

-난 안 훔쳤어 !

내가 퉁명스럽게 내쏘았다. 그러나 선옥이는 늘 했듯, 오빠가 훔치라고 시켰잖아! 그렇게 되받지 않았다.

- 우린 그때 너무 어렸어요.

그뿐이었다. 어렸다. 난리가 나던 그해 나는 5학년이었고 선옥이는 4학년이었다. 나는 쐐기한테 매를 맞고 코피를 흘렸다. 쐐기가 땅바닥에 던져 주는 빵을 개처럼 입으로 집어먹는 일을 거절했기 때문이다. 선옥이만 없어도 나는 개처럼 허겁지겁 그 빵을 입으로 주워먹었을 것이다. 쐐기는 그 꼴을 선옥이한테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쐐기의 매운 주먹이 내 얼굴에 수없이 날아들었다. 그때 이미 중학생이던 형은 쐐기의 빵에 매수되어 그 자리에 나타나지 않았던 것이다. 쐐기가 달아나 버린 그 강변에서 자갈을 손에 쥐고 울고 섰는 나를 달래기 위해 선옥이가 그런 제안을 했던 것이다.

쐐기의 죽은 엄마가 감춰둔 패물함이 있는 곳을 자기가 안다고 했다. 쐐기 아버지도 쐐기의 새엄마도 찾지 못하는 곳에 숨겨진 그 패물함을 훔쳐다 주겠다는 것이었다. 선옥이가 들려주는 그 패물함은 내게 한없는 신비를 불러일으켰으며 부()의 요술방망이 같은 것이었다. 그 즈음 쐐기네는 겨울 피난을 가기 위해 가게 짐을 꾸리고 있을 때였다. 며칠 안 있어 읍을 떠난다고 했다. 너두 갈 거지? 내가 물었다. , 선옥이가 나를 말끄러미 쳐다보며 힘없는 소리로 대답했다. 좋겠다 너. 내가 한껏 부러워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동수야, 그거 훔쳐다 줄까? 선옥이가 다시 내 눈치를 살폈다. 선옥이가 없는 요술방망이는 내게 무의미한 것이었다. 그럼 너두 안 갈 거지? 내가 그렇게 어깃장 쳐 물었고 뜻밖에도 선옥이가, 안 갈 거야. 그렇게 다짐두었다. 정말 선옥이는 그 약속을 지켰다. 나를 위해 그 패물함을 쐐기네 집쎄서 홈쳐냈을 뿐만 아니라 쐐기네가 읍을 떠날 때 그 화물 자동차에 오르지 않았던 것이다. 무서운 계집애였다. 그렇게 제 생명을 건져냈던 것이다. 나는 모든 것을 다 얻은 기쁨에 하늘로 등등 뜨는 기분이었다.

- 쐐기 만나봤어?

태능 입구에 이르러 내가 물었다.

5년 세월을 숨겨온 우리들의 비밀을 훌훌 떨쳐버리려는 선옥이의 변심은 뻔한 일이었다. 쐐기, 쐐기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 너무너무 불쌍해요.

쐐기를 만나봤느냐는 내 물음에 선옥이는 그렇게 대꾸하며 고개를 푹 꺾었다.

- 읍내 사람들이 서비스 공장에 취직을 시켜줬다면서?

- 하지만 일이 너무 힘에 부친가 봐.

- 그건 어렸을 때 너무 호강만 하고 커서 그런 거야.

- 그게 아니야요. 쐐기는 몸에 병이 있는가 봐.

그렇담 네 서방을 삼으면 될 거 아냐. 어른들이나 하는 그런 소리로 쏴주고 싶었으나 나는 선옥이의 얼굴 표정이 너무나 진지해 보여 짐짓 입을 다물었다. 결국 선옥이가 나를 찾아왔던 것은 그 패물함의 처리 문제 때문이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내가 그 패물함의 권리권을 쥐고 있다는 게 정식으로 인정된 셈이었다. 패물함을 쐐기에게 돌려줘야 하지 않겠느냔 선옥이의 의사 타진에 대해서 나는 가타부타 의견을 내놓지 않았다. 그네 또한 더 이상 그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태능 뒷산 울울한 숲에 이르러 우리들은 말을 버렸던 것이다. 그런 경우 말이란 얼마나 치졸하고 불필요한 것인가를 우리들은 잘 알고 있었다. 어느 한 지점에서 오랜 침묵 끝에 그네는 산 정상을 향해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자세를 취했다, 나 역시 그네 곁에 좀 우스꽝스럽긴 했지만 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것은 내가 그네를 사랑하고 있다는 확신이 불덩이처럼 뜨겁게 가슴으로 치민 때문이었다.

그러나 선옥이와 나와의 모든 것은 그날 그것으로 끝이었다. 어쩌면 그것은 선옥이에게 있어서 새 세계의 열림을 뜻하는 계시였는지도 모른다.

그날 이후 3년 동안 선옥이의 변신은 실로 놀라운 것이었다. 선옥이가 변한 것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이 선옥이를, 그 무릎 꿇은 조그마한 여자애로 내버려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제는 패물함이었다.

선옥이가 그렇게 서울에 다녀간 뒤 나는 수십 통의 편지를 써서 부쳤다. 그네 앞에서 펼쳐 보이지 못했던 내 가슴속을 속속들이 보내주고 싶은 바람 때문이었다. 그러나 나는 단 한 장의 편지도 받을 수 없었다. 그네의 그 침묵은 내게 닦일수록 윤을 더해 가는 진주의 가치만큼 단단한 비중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나는 비로소 사랑에 들뜬 사춘기의 그 눈먼 열정으로 거의 미칠 지경이었다. 마지막에는 죽어버리겠다는 그런 협박 편지를 써 보냈다. 그때서야 지극히 간단한 답장이 한 장 날아왔다. 그대로 신파였다.

- 우리들의 패물함을 잃었어요. 쐐기한테 그것을 돌려줘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치마바위까지 올라갔던 거예요. 그리고 거기서 세 사람의 남자를 만났어요. 결국 다 잃고 만 거예요. 모든 걸 다 잃었어요. 잊어줘요.

그뿐이었다. 나는 더 이상 편지를 쓰지 않았다. 다만 여름방학이 되어 이를 갈며 고향에 내려갔을 때는 이미 선옥이가 버스 매표소를 떠난 뒤였다. 버스 차장이 되어 장거리를 뛴다는 소식이었다. 혹사나 해서 치마바위까지 올라가 보았으나 역시 헛일이었다. 나는 그네를 만나기만 하면 당장에 목 졸라 죽이리라 마음먹었다. 선옥이가 그런 연극으로 나를 배신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생각이 지금까지 내 가슴속에서 지워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만큼이라도 그네에 대해 경원한 마음으로 지내올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어떻든 그 여름 나는 선옥이를 만날 수가 없었다. 다만 그해 겨울 선옥이가 성천 운수 사장 집 가정부로 들어갔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사장 집에서 사장과의 좋지 않은 일로 머리를 뭉청 뽑힌 채 쫓겨났다는 뒷소문을 들었다, 또 다른 그네의 변신은 그네가 읍내 변방에 주둔한 군대 하급 장교들과 살림을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숱한 추문 끝에 결국 중국인과 결혼한 선옥이었다. 중국사람과 결혼한 선옥이는 아이를 낳지 못한 채 주위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10여 년을 여일하게 잘 살았다. 그 중국사람이 선옥이라면 껌벅 죽는다고 했다. 그러나 그 중국사람은 읍내 강에서 무릎에도 못 미치는 얕은 물에 빠져 죽고 말았다. 심장마비였을 것이다.

그 뒤 달포나 문을 열지 않고 들어앉았던 선옥이가 그 중국 음식점을 개수해서 한식집으로 바꾸면서부터 그네는 읍내에 소문난 여자로 위치를 굳히게 되었던 것이다. 지금은 그 장소가 바뀌었지만 그때만 해도 선옥이가 경영하는 강남 식당은 종합정류장 바로 앞에 있어 떼돈을 번다는 소문이었다, 실상 죽은 그 중국인 남편이 남겨준 재산도 상당했다는 것이다.

 

", 작은애야. 너한테 갸가 안 찾아왔든? , 거시기, 이기 말이다. 만물상회집 아들,,,,,," 선옥이 일로 밤늦게까지 구시렁거리던 어머니가 나중에는 또 엉뚱 같이 쐐기 소식을 끄집어냈다. 어차피 잡친 일요일, 나는 거침없이 이 예사롭지 않은 사태에 육박해 들어갔다. 선옥이 소식에 이은 쐐기의 소식...... 나는 어느새 어머니 곁으로 바싹 다가앉고 있었다.

"쐐기도 없어졌습니까?"

헐떡거리듯 다그치는 내 물음에 어머니가 오히려 당황해했다.

", 아니다. 전번짝에 길에서 우연히 걀 만났지 않았겠니. 갸가 날 붙잡고 네 주솔 묻길래 혹시나 해서 그러는 거다."

"내 주소를 가르쳐 달래요?"

"그래. 뭘 좀 보내줄 게 있다고 하더라만

"뭘 보낸대요?"

"내가 아냐. 보내긴 뭘 보내. 부랄 두 쪽밖에 없이 사는 인생이......"

"이젠 정신도 제 것이 아니라면서요?"

"내가 보기엔 그러그러해 보이더구먼서도 읍내 사람들은 걀 사람으루다 취급을 않는다. 갸가 나타나기만 하면 모두 도망을 간다는 구나. 갸한테서 냄새가 나서 마주 설 수가 없다는 거야."

"술만 먹으면 옷을 입은 채 그대로 오줌을 싼다면서요?"

"그거야 옛날부터 그런 거구, 그것보담은 우선 갸 몸에서 살 썩는 냄새가 난다는 게야. 갸 몸이 지금 말이 아니다. 명이 오지게 길어 살고는 있다만,,,,,,"

혀까지 차면서 그렇게 말하는 어머니의 얼굴에 사뭇 감회가 깊은 그늘이 깔렸다. 그러고 보니 눈에 눈물까지 질금질금 괴었다. 어머니로서는 그럴 것이다. 우리들이 어렸을 적 시절 쐐기네 안 일을 도맡아 해 주며 쐐기를 보살펴 온 어머니로서 어찌 쐐기의 일에 대범할 수 있겠는가.

 

쐐기, 언제부터인가 우리들은 사 이기를 쐐기라는 별명으로 부르는 데 익숙해져 있었다. 사이기를 적당히 축약해서 그렇게 부른 것인지 아니면 쐐기 나방의 그 애벌레 쐐기를 연상해서 지어진 것인지는 확실히 알 수 없었지만 우리들은 난리가 나기 전에 모두 그 아이를 쐐기라고 불렀던 것이다, 실상 그 당시 우리 또래의 아이들은 이기를 마치 쐐기벌레 보듯 멀리했다. 한마디로 못 돼먹은 애였다. 제 마음에 맞지 않으면 아무한테나 주먹을 휘둘렀고 힘으로 당할 수 없으면 돌을 들거나 이빨로 물어뜯었다. 못 같은 걸 항상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저보다 큰 애들을 찔러댔다. 그런대로 쐐기는 우리 형제와 가장 가깝게 어울려 놀았다. 그것은 쐐기네와 우리 집 사이의 특별한 관계 때문도 있었지만 쐐기가 가진 그 풍부한 장난감과 먹을 것에 대한 유혹이 큰 요인이었다. 쐐기네는 읍내에서는 가장 규모가 큰 만물상회란 가게를 열고 있었다. 그 만물상회 한옆으로는 쐐기 어머니가 직접 경영하는 양과자점이 읍내 아이들의 군침을 흘리게 했다. 난리 전이라 그때만 해도 조그마한 읍에서 지금의 수퍼마켓 비슷한 그런 규모의 잡화상을 한다든가 서울서도 그리 흔치 않은 양과자점을 벌이는 것은 우리 아이들에겐 하늘처럼 우러러 보이는 일이었다.

쐐기네는 그처럼 부자였다. 어른들 얘기를 들으면 쐐기 아버지와 어머니가 우리 읍내에 들어온 것은 해방이 되기 두 해 전이었다. 겨우 네 살이었던 쐐기 하나를 데리고 읍내에 들어온 그네들은 몇 해 가지 않아 그처럼 부자가 됐던 것이다. 원래 외지에서 들어올 때 많은 돈을 가지고 있었다고 했다. 어떤 사람들은 쐐기네 아버지가 외지에서 남의 돈을 가로챈 뒤 우리 읍이 숨어 들어와 산다는 얘길 수군수군 나누기도 했다. 실상 아무도 쐐기네가 어느 곳에서 왔는지 아는 사람이 없었다. 찾아오는 친척도 없었다. 또 어떤 사람은 쐐기 아버지가 머슴살이 하던 부자 집 딸을 꾀어 내어 이곳저곳 옮겨다니며 산다고도 했다.

쐐기 어머니가 가지고 있다는 그 숱한 금붙이를 그 예로 들었다. 그러고 보니 쐐기 아버지는 쐐기 어머니에 비해 여러 면으로 뒤떨어져 보이기도 했던 것 같다. 그러나 장사 수단은 대단해서 여름 난리가 나기 한 해 전에는 읍내에서는 두 번 째로 화물트럭을 사서 시골 구석구석까지 물건을 폈고 그 대신 시골에서는 잡곡을 모아다가 서울에다 넘겨 엄청난 이를 본다는 얘기였다.

쐐기 어머니는 몸이 가늘고 얼굴이 희었다. 긴 목에는 항상 아름다운 금목걸이가 걸려 있었다. 그네는 손님이 별로 업는 양과자점 진열대 옆에 앉아 항상 잔잔한 웃음을 입가에 띠고 책 같은 걸 읽거나 쐐기보다 다섯이나 아래인 쐐기 여동생의 머리를 예쁘게 땋아주고 있었다. 어린 마음에도 나는 늘 쐐기 어머니가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그런 여자한테서 어떻게 쐐기같이 막 생겨먹은 애가 태어났는지 모를 일이었다. 난 울 아버질 닮았대. 쐐기는 가끔 제 입으로 그런 소릴 헌다. 그런데도 뒷날 쐐기를 생각하면 그 얼굴이 해사한 쐐기 어머니만 떠올랐다. 그네의 급작스런 죽음의 충격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여름 난리가 터지기 바로 한 해 전이었다. 쐐기네 만물상회의 점원으로 일하던 아버지가 헐레벌떡 집으로 달려 들어와 어머니를 찾았다. 아버지는 아침밥을 젓는 어머니를 끌고 쐐기네 집으로 달려갔다. 아직 잠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은 채 우리들은 어머니가 우리 집 밥을 다해 놓고 쐐기네 집 일을 하러 갔거니 생각했을 뿐이다. 그때 어머니는 틈틈이 쐐기네 가정 살림을 맡아 해주고 있었던 끗이다, 요즈음의 가정부 비슷한 일이었다. 쐐기네 남매의 웃을 빨아 입히는 일에서부터 집안의 궂은 일을 다 맡아서 했다. 아버지가 만물상회 점원으로서 남들이 하는 만큼의 일을 못하기 때문에 어머니가 그렇게 쐐기네 일을 거들어 주는지도 몰랐다. 아버지는 어렸을 적 어떤 일로 왼즉 손목이 잘려나간 외손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날 새벽 아버지가 어머니를 데리러 들어온 것은 쐐기네 살림살이 때문이 아니었다. 쐐기 어머니가 죽었기 때문이었다. 그날 새벽 아버지는 다른 때처럼 쐐기네 집으로 가 가게 열쇠를 달라고 했다. 그렇게 열쇠를 받아 가게 문을 여는 것이 만물상회 점원인 아버지가 하는 첫 일거리였다. 쐐기 아버지는 그 전날 곡식을 자동차에 싣고 서울 나들이를 간 채 폭우로 길이 끊겨 돌아오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집안에는 쐐기 어머니도 없었다. 사실 여느 때도 쐐기 아버지가 술이 취해 늦잠을 잘 때면 열쇠꾸러미를 쐐기 어머니가 내다주고 했었는데 이날은 아무리 찾아도 그네가 보이지 않았다, 대문을 밀자 그대로 열렸다. 불길한 생각에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쐐기를 비롯한 선옥이와 그 아래 여자 아이는 아직 자고 있었다. 집안 어느 곳에도 쐐기 어머니는 보이지 않았다. 혹시나 해서 만물상회 옆에 붙은 양과자 점에 나가보았다. 아니나다를까 그 뒷문이 열려 있었다. 아버지는 안에 쐐기 어머니가 있는 줄 알고 몇 번 불러보았으나 감감이었다. 부쩍 수상쩍어 뒷문으로 들어서 보니 쐐기 어머니가 진열대 밑에 번듯이 누워 있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으로 그렇게 죽어 있었던 것이다. 수사에 나선 경찰에선 불문곡직하고 아버지를 잡아 가두었다. 물론 여러 사람에게 혐의를 두고 조사를 안 하는 것은 아니었으나 무슨 일인지 아버지는 쉽게 풀려나지 않았다. 면회를 갔다온 어머니는 아버지의 꼴이 말이 아니라며 애통한 울음을 터뜨리곤 했다. 물론 서울에서 돌아온 쐐기 아버지도 경찰서에 들어가 조사를 받았는데 거기서 나오는 길로 우리 집에 달려와 우리 집의 그 빈약한 살림살이를 때려부수었다, 무슨 말을 어떻게 들었는지 몰라도 쐐기 아버지는 우리 아버지가 범인이라고 단정해 버렸던 것이다.

아내를 잃은 쐐기 아버지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한집에 데리고 사는, 자기 딸이나 다름없는 선옥이한테까지 혐의를 두었다. 세 살 되던 해 개구멍받이로 들어온 것을 쐐기 어머니가 자기 자식처럼 키운 선옥이는 그 때 겨우 열 살이었던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선옥이가 그 집 친딸이거니 생각했을 정도로 쐐기들과 구별 없이 길렀다. 그런 선옥이를 쐐기 아버지가 발길로 내질러 마당에 태질을 치더라면서 어머니는 집에 돌아와 울먹거렸다.

- 느 아버이가 그렇게 된 건 다 그 놈에 집 때문인 게여.

난리 때 아버지가 행방 불명이 된 걸 어머니는 쐐기네 탓이라고 두고두고 원망했다. 경찰서에서 쐐기 어머니 살해 범인으로 조사를 받느라 골병이 든 몸으로 여름난리를 맞은 아버지였다. 잠깐 나갔다 오면 될 줄 알고 자기네 차를 타고 피란을 떠난 쐐기네였다. 집과 가게를 고스란히 두고 갔다. 물론 그때는 아버지가 쐐기네 만물 상회의 점원도 아니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만물상회의 물건을 모두 우리의 좁은 집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아버지 얘기는 주인 없는 집에 그냥 놔두었다가는 결국 다 잃게 된다는 얘기였다. 사람까지 사서 쐐기네 집 세간 살이까지 날라 올렸다. 사람들이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 우리 형제들에겐 몹시 괴로웠다. 고러나 아버지는 묵묵히 그 일을 계속했다. 이제 쐐기네가 돌아와 이 물건을 고스란히 전해주어야 먼저의 그 혐의까지 싹 벗을 수 있으며 설사 그것이 아니라고 해도 그렇게 해 주는 것이 옛정으로서의 도리라는 말을 어머니한테 하는 걸 들을 수 있었다. 아버지는 며칠을 두고 외팔로 그 물건의 품목과 수량을 헤아려 공책에 일일이 기록을 했다. 그 가게 물건에 단 한 개도 손을 대면 안 된다고 우리들에게 엄하게 다짐을 두던 아버지였다.

그러나 적 치하가 된 세상에서 아버지의 그 뜻은 수포로 돌아갔다. 저쪽 사람들, 즉 붉은 완장을 찬 사람들이 그 물건을 내놓으라고 했던 것이고 아버지는 그것을 내줄 수 없다고 버텼다, 내가 봐도 아버지의 고집은 무모했다. 결국 그 일로 해서 물건은 물건대로 빼앗기고 아버지는 국민학교 운동장에서 인민재판인가 하는 걸 받게 됐던 것이고 여러 사람과 함께 연초조합 창고에 갇혀 있다는 소식을 들은 것이 아버지의 끝이었다. 남산에 끌려가 죽은 사람들의 시체를 어머니와 며칠이고 뒤졌다. 그러나 아버지의 모습은 다시 우리들 앞에 나타나지 않았던 것이다. 더 무서운 것은 이웃의 눈이었다. 어쩌면 자신의 원수 집안일 수밖에 없는 쐐기네 재산을 지켜주려 한 아버지의 충정을 읍내 사람들은 그 반대로 해석을 했다. 쐐기네 재산을 앉아서 고스란히 차지하려다 그렇게 됐다고 수군거렸다. 더 애통한 일은 피난을 나갔다가 들어온 쐐기네 식구들(쐐기에게는 난리 나기 바로 전에 새엄마가 생겼었다)은 어머니가 아무리 아버지의 뜻을 전하려 해도 받아들이지 않았던 일이다. 재산을 다 잃게 된 게 모두 우리 아버지 때문이라고 하면서 어머니에게 손찌검까지 했다. 남편을 잃은 데다 누명까지 뒤집어쓴 어머니는 목구멍에서 피를 토하며 쓰러져 몇 달인가 몸져 누웠다. 이웃에 와 살던 외삼촌만 아니었어도 우리 형제들은 어머니를 잃었거나 굶어죽었을 것이다.

외삼촌은 억울해 하는 어머니 마음을 풀기 위해 쐐기 아버지와 여러 번 싸웠다. 그 일로 해서 경찰서에 잡혀 들어가기도 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은 어른들 세계는 그렇게 원수지간인 데도 우리 형제와 쐐기는 잘 어울려 놀았다. 그 새 중간에 선옥이가 있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선옥이는 가끔 우리 집에 와 앓고 있는 어머니의 이마를 짚어주기까지 하는 음전스러움을 보였다.

나는 지금도 어머니 머리맡에 무릎을 꿇고 앉아 이마를 짚어주던 선옥이의 그 조그마한 몸뚱이가 눈에 선하다. 그럴 때 우리 형제와 눈이 마주치면 배시시 웃어 보이던 선옥이가 인상 깊게 기억된다. 그러한 선옥이를 따라 쐐기도 우리 집에 놀러오곤 했다. 올 때마다 자기 새엄마가 맡아서 하는 양과자점의 방을 한 개씩 안겨주곤 했다. 우리 형제는 쐐기를 왕자처럼 모셨다. 우리들에겐 쐐기네의 그 넉넉함이 온통 선망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어머니가 애통해 하는 그런 원한 같은 건 우리에겐 빵 한 조각이면 그만이었다.

양조장에서 버리는 그 지게미를 허겁지겁 먹고 얼굴이 온통 술기운으로 벌겋게 된 채 남산 중턱에 앉아 우리들에게 방을 안겨 줄 쐐기와 선옥이를 기다리는 것은 우리들의 보람이었다. 그러나 우리들이 그처럼 떠받드는 쐐기가 가끔 우리들을 배신했다. 선옥이가 우리와 어울려 노는 걸 자기네 아버지한테 이른다거나 심지어는 자기가 분명히 갖다 준 빵인데 그것을 우리들이 훔쳤다고 아이들한테 소문을 퍼뜨리기도 했다, 기껏 먹게 해 놓고는 느닷없이, 이 새끼야, 도로 게워, 빨리 게워 하고 으름장을 놓았다. 나는 그것을 게우기 위해 목구멍에 손가락을 넣어 웩웩 구역질을 했던 것이다. 그럴 때 나를 구원해주는 것은 언제나 선옥이었다. 선옥이 말이라면 쐐기는 이상하게 고분고분해졌던 것이다.

 

"그래, 이기한테 제 주솔 가르쳐 주셨어요? "

선옥이의 사기 행각이 어쩌면 쐐기와 어떤 연관이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예감이 짙어지면서 나는 그냥 흘러 넘기는 투로 물었다.

"가르쳐 주긴! 난 모른다고 했다."

"그랬더니요?"

"아마 네 성한테 와서도 네 주솔 묻더래지,"

"형이 가르쳐 줬겠군요?"

아침나절 형의 그 아리송한 전화 내막이 대충 잡혔다.

"갸가 왜 그런 걸 가르쳐 줬겠니. 돈 백원 줘서 쫓아버렸다고 하더라."

쐐기에 대한 형의 열등감은 대단했었다. 쐐기가 주는 빵을 얻어먹고 어쩔 수 없이 쐐기 편이 돼 주긴 하면서도 그 일로 해서 몹시 괴로워하던 형의 모습을 나는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다. 내가 쐐기한테 매를 맞고 돌아올 때마다 내 상처를 어루만져주며 쑥스러워하던 형이었다. 난리가 끝나고 몇 년 뒤 쐐기의 형편이 옛날과 달라져 읍에 다시 나타났을 때 형의 눈에는 두려움 같은 게 여실히 드러났었다. 형이 양조장이나 농협 같은 곳을 집어치우고 잡화상을 벌인 것도 옛날 쐐기네 만물상회에 대한 그 선망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쨌든 모를 일이다. 쐐기가 무슨 일로 새삼스럽게 내 주소를 물었을까. 보내다니, 도대체 그가 나한테 보낼 것이 무엇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주고받는, 그것이 비록 물질적인 것이든 마음의 부채 같은 것이든 그러한 인간관계가 그와 나 사이에 끊어져 버린 지 벌써 얼마나 오래 되었는지도 모른다. 난리 후 우리들은 너무나 차원이 다른 세계에서 살아왔다. 설사 그 거리를 어느 쪽에서 의식적으로 좁히려 시도했다손쳐도 그것은 한낱 감상의 노폐물처럼 참으로 쓰잘 데 없는 유희에 불과했을 것이다. 하기야 어느 정도 가까워는 질 수 있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미 그러한 만남은 그쪽과 이쪽의 세계가 전혀 다르다는 걸 확인하는 결과 외는 별 의미가 없을 것이다. 동정이 앞선 이해는 위선에 가깝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2년 전 쐐기를 만나 이야기를 나눈 뒤 그 느낌은 더욱 확연해졌다.

읍내 한 동네에 살면서 우리 식구들 뒷바라지를 해주던 외삼촌이 위암에 걸려 돌아가셨을 때 나는 회사 일에 무리를 주면서도 그 장사에 참가했다. 내 아버지의 죽음이나 다름없는 분의 죽음이었기 때문이라. 그때 쐐기와 마주치게 됐던 것이다. 고향에 내려가는 기회가 많긴 했지만 일부러 쐐기와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시간을 가져 보기는 그것이 처음이었다. 읍에서 시오 리나 되는 장지까지 가는 길의 그 어색한 만남이 다음날 우정 시간을 내어 그를 만나게 된 계기였던 것이다.

만장을 든 것이 바로 쐐기였던 것이다, 읍내 상여 행렬의 만장은 으레 그의 몫이라고 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것만은 뺐기지 않으려고 한다는 것이었다. 장사 집에서 술 얻어먹을 구실을 만들기 위한 속셈이었을는지도 모른다. 그날도 쐐기는 누구보다 빨리 가장 요란스런 만장을 들고 설치고 있었다. 그가 가장 신바람을 피우는 날이 바로 만장을 들고 상여 뒤를 따를 때라고 했다, 몇 견 전만 해도 안 그랬다는데 근래에 와 그 걸음걸이가 여간 거북해 보이는 것이 아니라고, 그에게 만장을 쥐게 한 걸 후회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만큼 쐐기는 본인이 신바람을 피우는 것과는 달리 그 걸음걸이가 차마 봐주기 어려운 지경이었다, 어쩌면 그 거북스럽고 힘들어 보이는 걸음걸이는 고인을 영별하는 마지막 길에는 더없이 잘 어울리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나는 상제들 줄에 끼어 걷다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쐐기의 곁에 따라 걸으며 얘기를 나누게 되었던 것이다.

-이거 수고가 많군. 몸도 성찮은 거 같구먼서두

만장을 들고 마치 어깨춤을 추듯 해괴한 몸짓으로 뒤뚱뒤뚱 걷던 쐐기가 문득 내게로 눈을 돌리더니 금세 몸 자세가 굳어졌다. 상가에서 몇 잔 마신 탓에 불그레하던 얼굴빛도 언제냔 듯이 멀쩡해진 듯싶었다. 모처럼 가까이서 본 그의 얼굴은 누렇게 부황기가 깊은 데다 얼룩얼룩 버짐까지 먹고 있었다. 사십 줄에 들어선 불우한 중년사내의 그 초췌한 모습에서 나는 새삼 세월의 덧없음을 실감했다.

- 어이구, 오래간만이네유.

쐐기가 나를 향해 퍽 어색한 표정을 해 보였다. 그의 말투 자체가 자기 격하적인 것이었다. 나 자신 금방 어색해지는 걸 어절 수 없었다. 쐐기가 계 스스로 먼저 알을 걸어왔다.

-어머니랑 성님은 늘 뵙고는 있지우. 돌아가신 분께서도 절 꽤 봐주시느라고 애쓰셨지우.

외삼촌이 옛날에 아버지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쐐기네 집에 달려가 싸우던 생각이 났다. 쐐기도 그 생각을 했던 모양이다. 이번에는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 술을 많이 한다면서?

- 잠이 잘 안 와 죄금죄금 먹기 시작한 것이 그만 술주정뱅이로 소문이 나 버렸지우.

- 잠은 어디서 자나?

물어놓고 나서야 공연한 걸 다 물었다고 생각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바람이 좀 세게 불어 만장 깃대가 한쪽으로 몰시 휘자 쐐기는 그것을 애써 바로 세우며 더욱 거북스러워 보이는 걸음을 걸었다.

- 아무 데서나 지내지유.

- 그래도 어디 정해 놓고 드나드는 데가 있어야 할 게 아니겠어? 어디서 들으니까 이젠 다리 밑 거지들도 다 얼어졌다면서 ?

정해 놓고 드나드는 곳, 혹시 그에게도 가정 같은 게 있어야 할 것이 아니냔 생각이 불쑥 치민 때문이었다. 가정은 아니지만 한때 쐐기까 가정처럼 정해 놓고 드나든 곳이 바로 다리 밑 움막이었던 것이다. 그는 거기서 꽤 오랫동안 지냈다.

- 지금은 성당 신부님들이 성당 한쪽에 집을 하나 지어줘서 게서 지내지우.

- 이봐, 쐐기 정말 이러기야? 왜 나한테까지 알을 그런 식으로 하는 거야.

집을 가졌다는 인간이 어째서 이따위가 있다는 말인가. 나는 그가 일부러 내 우정을 거부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설사 그런 뜻이 아니었다고 해도 그가 나한테 경어를 써야 하는 한 우리는 영원히 손닿을 순 없는 거리에 서게 될 것이다. 나무라치는 내 기세에 주춤해진 쐐기는 퍽 쑥스러워하는 기색이었다. 나는 그의 쑥스러워하는 얼굴을 바라보다가 문득 내 자신의 위선을 깨닫게 되었다. 만약 쐐기가 처음부터 내게 반말을 해댔다면 내 기분이 그닥 좋았을 리가 없다는 생각에 이른 것이다.

- 힘이 들 텐데 누구 딴 사람한테 주지.

쐐기가 바람에 나부끼는 만장 깃대를 가누느라 절뚝거리며 걷는 게 퍽 힘들어 보여 그렇게 말했던 것이다. 그러나 쐐기는 뭔 소리냐는 듯 그 불안한 걸음걸이를 꽤 재게 놀려 의식적으로 나를 따돌리고 있었다. 나는 그 이상 그를 따라붙지 않았다. 뒤에서 보는 쐐기의 모습은 그대로 어릿광대였다. 늦가을인데 허름한 남방 하나를 걸친 그의 을씨년스런 모습이 스산하게 시들어 가는 가을 들녘 풍경에 걸맞아 보였다. 산모롱이 하나를 돌아가자 웃샘밭 마을이 삼마치 고개를 배경으로 그림처릴 펼쳐 보였다. 웃샘밭 마을에서 삼마치 고개 정상까지는 실히 이십여 리는 될 것이다. 그렇게 높고 험한 고개였다. 이제는 아스팔트가 깔린 열 아홉 굽이 고갯길이 가을달 속에 아스라이 놓여 있었다. 삼마치 고개. 나는 새삼스런 기분으로 내 편에서 만나 선소리에 맞춰 만장 깃발을 우쭐거리며 걷는 쐐기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나는 내가 따라가고 있는 것이 외삼촌의 상여가 아니라 바로 삼마치 고개에서 몰사한 쐐기네 가족의 상여 행렬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죽었던 쐐기가 그 동안 귀신으로 남아 있다가 이제 시간이 차 계 무덤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불쑥 들기도 했다, 그 당사자인 쐐기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면서 걷고 있을까 하는 생각에 이르자 나는 어떤 일이 있어도 그날 저녁 쐐기와 술 한잔을 나눠야 하겠다는 결심을 했던 것이다. 봉분까지 다 끝난 뒤 무덤 뒷설겆이를 위해 막걸리 통자와 함께 산에 남게 된 일꾼들 틈에 끼인 쐐기에게 저녁때 우체국 앞 상호네 약국까지 와 달라는 부탁을 거듭 했던 것도 그와 술 한잔을 나누고 싶어서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날 저녁 쐐기는 상호네 약국에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 , 이 서울 놈아, 이제 와서 뭘 어쩌겠다고 걀 기다리는 게야.

저녁때 그네들의 아지트인 상호네 약국으로 모여든 학교 동창들이 내 감상주의를 여지없이 몰아붙였다. 그전에 자기들이 쐐기를 돕기 위해 별? 일을 다 벌일 때는 코빼기도 안 비치던 것이 이제 와서 뭔 개수작이냐고 맞대놓고 쏴오는 친구도 있었다. 비교적 출세한 서울 촌놈에 대한 앙심 깊은 공격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 공격이 내 비위에 거슬릴 것이 두려운 그 단순한 친구들은 곧장 정색을 하고 자기들이 쐐기를 위해 노력은 했지만 결국은 뜻대로 되지 못했다는 깊은 자책으로 얘기가 풀려갔다. 살기가 다 어렵다 보니 어쩔 수 없었노란 결론 끝에, 쐐기, 걔 팔자가 그런 걸 우린들 어쩐다냐--- 그런 단서를 붙이기도 잊지 않았다. 어떻든 네다섯이 모여 초저녁 고스톱을 시작했는데 모처럼 서울서 내려온 내 대접이랍시고 읍내 술집 순례가 시작된 것은 꽤 늦은 시간이었다.

- , 서울 놈. 우리가 사는 술은 술이 아니냐?

처음부터 그들은 배배 꼬면서 이쪽의 기를 꺾으려 설쳤다. 시골 평범한 애들이 평범하게 자라 그저 그러그러한 세상살이를 하면서 몸에 밴 그런 비뚤어짐과 허풍스러움이 자기들 마음속에서 선망해 온 서울 것과의 쓰잘 데 없는 경쟁을 벌인 것이다. 술집이 읍내에만도 일흔 다섯 곳이나 있다고 했다. 다섯 명이서 열두 군데의 술집을 순례했다.

- 이제 예순세 집 남았다.

제재소를 차려 제법 자리가 잡힌 놈이 의기양양한 어조로 호기를 부렸다. 열 한 시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두 놈은 벌써 몸도 못 가눌 정도로 취해 도중에서 떨어져 나갔다. 잔은 내가 가장 많이 받은 편인데 도무지 취하지가 않았다. 마음을 풀어놓고 먹지 않아서 그런가 보았다. 나는 그들처럼 거침없이 유년의 추억 속으로 떨어져 내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아름다운 것이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게 잡힐 턱이 없었다. 그럴수록 나는 지금의 내 위치를 흐트러지게 해서는 안 되었다. 오늘의 쐐기가 우리들 사이에 껴들 수 없는 아래로의 변신처럼 나는 그들에게 넘보일 수 없는 오늘의 나를 보여줘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 녀석이 선옥이 이름을 우리들 술자리의 안주로 올린 순간부터 나는 겉잡을 수 없이 취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비로소 그처럼 애타게 찾은 유년 기억 속의 아름다움의 실체가 잡혔기 때문이었다. 갈보 똥갈보 색골, 심지어는 선옥이의 죽은 중국인 서방 얘기까지 그 무덤에서 꺼내 오는가 하면 읍내 그렇고 그런 치들의 이름이 강남옥의 도마 위에 얹혀 난도질을 당하고 있었지만 나는 그네가 하나도 불결하게 생각되지 않았다. 나는 갑자기 의기양양한 심정으로 남의 잔까지 들어다가 꿀떡꿀떡 마셨다. 아아, 술맛이 나는군.

- 동수, 너 이 새끼, 너두 옛날에 그년 먹었지?

읍내 변두리서 비닐하우스 채소 재배로 왜 재미를 본다는 놈이 허물거리고 있는 내 쪽으로 화살을 쏘았다. 어쩌면 그냥 그렇게 넘겨짚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새삼스레 그렇지 않다는 소릴 하고 싶지가 않았다. 술은 정직하다.

- 그래, 먹었다, .

내 말이 무슨 신호라도 되는 듯 모두 열 싸 번째의 술집에서 우루루 일어섰다,

-가자! 강남옥으로 가는 거다 !

예순 몇 개 남은 술집 순례는 강남옥 하나로 끝내버리기로 의기투합했다. 읍내 거리를 고성방가하며 걸었다. 읍내 거리가 그처럼 만만하게 눈 속으로 잡혀 들기도 또 처음이었다. 고향에 내려올 때마다 모르게 변모해 가는 읍내 풍경에 까닭 모를 저항과 열등감 비슷한 걸 느껴온 나로서 이처럼 당당히 읍내 거리를 활보하는 심정은 묘한 것이 아닐 수 없었다. 선옥이, 선옥이가 이 거리의 당당한 주인으로 살고 있다는 것이 하나의 커다란 기꺼움으로 어금니에 씹힌다. 나는 혼자 키득키득 웃었다. 그네 팬티의 그 선명한 자국...... 추억은 온통 달콤한 것이었다. 그러나 강남옥은 문이 닫혀 있었다. 그런대로 닫힌 문 그 틈서리로 불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함께 간 놈들이 발길로 닫힌 문을 걷어찼다.

- 사 선옥, 사 선옥 나와라!

우리들은 합창하듯 선옥이 이름을 불렀다. 기고만장하게 취한 사내들이 삼십여 년 저쪽 깜찍하게 예뻤던 그 계집애를 불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쪽문을 따고 나온 것은 우리의 소꿉친구 선옥이가 아니었다. 막 생겨먹은 청년이었다.

- 쥔 나오라고 해, 쥔 마담 말이여!

- 우리 아주머니 오늘 막차루 서울 올라가셨는 데유.

- 어떤 놈하고 갔어 ?

- 뭔 말씀들을 그렇게 하세유?

- 그럼 뭣하러 서울 간 거야?

-몸이 아파 병원에 가셨어요. 진찰 받으러유.

좀 능글스러울 정도로 말이 느려터진 청년이 제법 깐깐하게 받고 나왔다.

- 당신은 도대체 누구야?

- 새로 온 종업원이에유. 그런데 워쩐 일루 이렇게 밤늦게 작당을 해 가지고 찾아오셨대유?

우리들은 풍차에 당한 돈키호테 꼴이 되어 비실비실 물러났다. 선옥이가 이 읍내에 없다는 것이 섬뜩하게 일깨워지는 우리들의 현실이었다, 우리들은 느닷없이 삼십 년 이쪽으로 굴러 떨어져 어쩌면 십 년은 더 늙어버린 그런 허망한 낯짝으로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 언제 올라갈 거야?

그 중의 하나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달라진 생경한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 내일 아침 일찍 올라가야지, 공무원이 이렇게 시간 내어 오는 것두 보통 힘든 게 아니라구.

취기가 말짱히 걷힌 채 나는 제법 생색까지 냈던 것이다.

-어이구, 그런다면 일찍 들어가 자거라. 그나저나 좀 자주 내려오려므나.

우리들은 그렇게 뿔뿔이 흩어졌다.

 

성당 신부님의 선처로 얻게 줬다는 쐐기의 집. 동창들과 어울려 술을 퍼마신 간밤 숙취로 해선 도저히 일어날 수 얼었지만 기왕 서울 올라갔자 그 날로 출근하기는 힘든 일, 나는 쐐기를 찾아보기로 하고 성당까지 올라갔던 것이다. 쐐기의 집은 성당의 부속 건물인 낡은 강당(초창기는 본당이었던 건물)담벼락 끝 정구장 벽 그 바깥에 붙어 있었다. 어떻게 보면 정구장을 관리하는 기구들을 적당히 집어던져 넣어두는 헛간 같은 것이었다. 헛간 같은 것이 아니라 그대로 정구장 담벽에 붙여 지은 헛간이었다. 사람이 하나 누우면 그저 두어 평쯤 남는 정도의 공간을 가질 그런 좁은 헛간 바닥에 나무로 만든 평상 같은 계 깔려 있고 거기 얼고 때 낀 이부자리가 휘주근하게 깔려 있었다. 그 한구석에 책이 십여 권 실히 쌓여 있는 게 이색적으로 눈에 들어왔다. 쐐기가 척을 읽다니, 하는 경이에서 나는 그 책 등짝의 글자를 읽어보았다. 케케묵은 잡지가 대여섯 권, 그리고 왜 새것인 구약성서 한 권, 바로 밑에 놓인 교리문답 책이 눈에 띄었다. 무협소설쯤 돼 보이는, 겉장이 마분지로 뒨 책이 또 두어. -잡지는 지방행정, 새마을 등속이었다. 그보다 내가 더 놀란 것은 책 옆에 놓인 이제 방금 무엇인가 끄적거리다 나간 듯싶은 대학 노우트 한 권이 그 가운데 볼펜이 얹힌 채 펼쳐져 있었다. 쐐기네 집의 살림살이는 그것이 전부였다. 그 헛간 출입구 바깥은 그대로 한삼 덩굴 같은 게 칙칙히 시들어 가는 비탈이었다. 성당 언덕인 그 아래쪽 아스팔트 길에는 춘천 쪽으로 넘어가는 자동차가 두어 대 자욱한 안개 속을 치닫고 있었다.

- 어이구, 여길 어떻게 다---?

뒤에서 느닷없이 나는 목소리에 나는 흠칫 몸을 추스르며 잡고 있던 그 헛간 문을 얼른 놓았다. 그리고 황황히 돌아다보았다. 집주인이 거기 엉거주춤 서 있었다. 손에는 몹시 낡은 쟁반에 밥 한 그릇과 뭔가 반찬인 듯 싶은 것이 하나, 그리고 콩나물이 반 그릇쯤 썰렁하니 얹혀 있었다. 그의 아침밥일 것이다.

- 어젠 수고가 너무 많았어.

나는 그에게 왜 엊저녁 상호네 약국에 들르지 않았느냔 말은 묻지 않기로 했다. 쐐기는 퍽 당혹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면서 손에 들고 온 쟁반을 헛간 문 속에 집어넣고 그 문을 닫았다. 그러나 네 귀가 제멋대로인 그 헛간 문은 그대로 다시 열려버렸다.

- 어이구, 어제 산에서 그만 술을 너무 많이 마셔 가지구 그만 깜박 잠이 들었다가 깨 보니까 밤이잖아. , 그 사람들이 날 게다가 그냥 두구 다 내려가 버렸지 뭐야.

쐐기는 꽤나 멋적어 하면서 말했다. 그 전날처럼 경어를 쓰지 않고 있었다.

- 그렇다면 그 먼데서 혼자 걸어내려 왔겠구먼.

문득 삼마치 고개를 연상했던 것이고 그가 먼저 삼마치 고개 사건을 얘기 해 주기를 바랐던 것이다. 그러나 쐐기는,

- 그놈에 술이 탈이지 뭐,

풀죽은 소리였다. 나는 처음으로 그의 얼굴을 아주 가까이서 맞바로 쳐다볼 수가 있었다. 이렇게 마주앉아 얼굴을 쳐다보기도 실로 삼십여 년이 넘는 것 같았다. 그 역시 나이는 어쩔 수 없는 모양, 어렸을 적 그 우락부락 생겨먹었던 고약한 인상이 이제는 꽤나 늙어 보였고 늙은 만큼 선이 부드럽게 느껴졌다. 얼굴 전체가 버짐처럼 꺼칠꺼칠 살갗이 벗겨져 내리고 있었다. 거슴츠레 뜬 눈에는 눈꼽까지 끼고 그가 이따금 가쁜 숨을 몰아쉴 때마다 그의 몸에서 역한 냄새가 쏟아져 나왔다. 늦가을이라 날씨가 꽤 찬 아침인데도 쐐기의 이마와 콧잔등에는 땀까지 방울방울 배어 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한눈에도 그는 환자였다.

- 몸이 몹시 불편한가 보군.

- 언젠 안 그랬나 뭐.

- 그래, 어디가 그렇게 아픈 거야?

- 가슴이 늘 이렇게 결리구, 특히 날이라두 흐린 날은 굴신을 할 수가 없어.

그는 목 근처부터 가슴을 쓸어 내리며 아픈 시늉을 해 보였다. 전날 술 때문이기도 하지만 가까이서 본 그의 얼굴은 병색이 너무 짙었다.

- 들으니까 춘천 성모 병원에두 왜 다닌 것 같던데, 그래 병명이 뭐래?

-정확히 얘기들을 안 해 주더군. 한의원에두 많이 가봤는데, 게서 하는 얘긴즉슨 몸에 어혈(瘀血)이 들어서 그렇다는 거야.

- 언제 몸을 다친 적이 있는 모양이지 ?

- 맨이지 뭐.

그는 그 문제에 대해서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짐작이 갔다. 우선 그 난리 때 삼마치 고개에서 그가 살아나기까지의 과정이 그랬을 것이고 읍내에 돌아와 사람들이 얻어주는 일자리에서도 번번이 사고를 당했다는 얘길 들은 기억이 났다. 조수로 따라다니던 산판 자동차가 굴러 나무등걸 밑에 깔렸다가 살아났다든가 읍내 강변 제방을 쌓을 때 돌을 안고 굴렀다는 얘기 등. 아무튼 명 하나는 긴 친구였다.

- 그건 그렇구 여기서 어떻게 겨울을 나지 ? 바닥에 불을 때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훤하게 틈이 많아 바람두 찰 거고,,----

나는 차츰 새벽 차로 상경하지 않고 그를 찾아 올라온 내 감상주의를 후회하기 시작했다. 지금이라도 당장 벌떡 일어나 그에게서 도망치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론 교활한 유혹이 나를 그 자리에 주저앉히고 있었다. 잠깐, 잠깐이면 되는 거야. 한 시간쯤 후면 나는 가을 들길을 내닫는 직행버스에 앉아 속도의 쾌락을 만끽하고 있을 것이란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의 거처를 둘러보는 내 마음은 결코 가벼울 수가 업었다. 나는 암울한 기분에 휩싸여 병색이 짙은 쐐기의 얼굴을 맞바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 세멘 종이를 구해다가 틈을 메우려고 그래. 늘 이렇게 산 걸 뭐. 몇 년 전까지만 해두 이 집 저 집 다니면서 한끼씩 얻어먹고 잠은 극장이나 노인정 같은 데서 잤는데, 요즘 와선 몸이 워낙 불편해 놓으니까 내 집이라구 이렇게 있어서 하루종일 누워 있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구먼. 사람들이 날 싫어하는데 자꾸 그 앞에 나타나기두 뭣하구,,,-

사람들이 자기와 마주치는 걸 싫어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렇게 멀리 털어져 흔자 사는 방법을 생각하게 줬다는 얘기였다. 그것도 성당 측의 배려였다. 밤에 한두 차례 성당 주위를 순찰해 준다는 형식적인 조건으로 이곳에 빌붙어 살며 밥도 하루에 두 끼는 얻어먹게 됐다는 것이다.

- 성당 미사에두 참가하나 ?

그의 방 한구석에 놓인 구약성서와 교리문답 책이 생각났던 것이다.

- 신부님들이 나오라구 해서 가끔 나가긴 하지만 사람들 틈에 껴 앉기가 뭣해서,,,

- 읍내 사람들은 모두 자네가 미쳤다구 생각하는 모양이던데......

눈 딱 감고 그렇게 말해 버렸다. 내 마음속에 그를 미친놈으로 간주해 버리고 싶은 충동 때문이었다. 그를 정상적으로 생각하고 능청스레 그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사실이 도무지 현실 같지가 않았던 것이다. 나는 쐐기의 입에서 느닷없이 욕설이 쏟아져 나오고 옛날 어렸을 때처럼 난폭하게 주먹을 휘두르는 포악한 아이로 변해주었으면 차라리 마음이 가벼울 것 같았다.

-그럴 거야. 나두 다 알고 있어요. 내가 그 동안 좀 뭣하게 놀았어야 말이지. 이건 술만 먹으면 개차반이니 누가 나 같은 걸 사람으로 봐 주겠어.

마치 남의 얘기를 하듯 그렇게 담담하게 받아넘겼다. 그렇다고 자조적인 그런 투도 아니었다. 쐐기는 읍내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미친놈이 아니었다. 쐐기는 너무나 멀쩡했다. 그것을 확인한 순간부터 나는 당혹해지지 않을 수 업었다. 그를 대하기가 그렇게 거북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내 교활한 마음속을 속속들이 드러내 보이는 것 같았다. 그 동안 얼마든지 이처럼 가깝게 만날 수 있었던 그 오랜 세월을 그를 정상인이 아니라고 마음속에 치부한 채 퍼해 온 일에애 대한 자책 같은 것이었다.

-이렇게 살다가 그냥 죽고 말 거 아닐까?

그를 학대하고 싶은 충동이었다. 집과 가정과 아내와 자식과.-그런 것을 갖지 못한 채 죽어갈 이 사내에 대해 연민이 아닌 어떤 적의 같은 게 살아났던 것이다. 그러나 쐐기는 역시 담담하게 받았다. 조금은 다변이 되긴 했지만.

-그런거지 뭐. 그저 살아 있는 동안 죄나 크게 짓지 않구 살다가 가자는 생각이야. 배가 고플 땐 먹고 싶는 것도 많고 문득 탐나는 물건두 많았지만서두 꾹 참는 게 죄를 안 짓구 사는 거라는 생각을 하면서 살아온 거지. 한때는 그런 유흑을 이기느라 애두 많이 먹었구먼. 하긴 요즘도 몸이 정 괴로울 땐 불쑥 감옥에나 들어가 있는 게 더 낫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긴 해. 그러나 게서두 나하구 같은 방을 쓸 사람들이 당할 고통을 생각하면,,,

그가 아주 열적어 하는 웃음을 입가에 띠었다. 나는 견딜 수가 없었다.

-자네가 이렇게 사는 건 본인 책임도 없지 않은 거야. , 그전에 남들이 일자릴 얻어주면 몇 달 못 가 집어치우고 한 거야? 남들이 다 그런 얘길 하데. 자네가 이처럼 남한테 폐나 끼치면서 살려면 차라리......차라리 먼 데, 아주 타관에나 나가 살 것이지,,,...

아예 죽어버리는 게 본인에게나 여러 사람을 위해서도 좋지 않겠느냔 그런 투로 내가 몰아붙였던 것이다. 쐐기가 눈을 내리깔았다. 날씨가 꽤 찬 데도 그의 이마와 콧잔등에는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히고 있었다. 숨쉬는 것까지 몹시 거북해 보였다. 나는-고의 방 한구석에 놓인 채 식어 가는 밥 그릇을 넘겨다보았다.

-맞는 얘기지, 나두 그걸 알면서구

눈을 내리깐 채 입엣소리로 중얼거리던 쐐기가 전연 엉뚱한 얘기를 꺼내놓기 시작했다.

-인천 부평에 우리 어머니 친정 식구들이 산다는 얘길 어렸을 때 들었지. 어머니가 남의 손에 그렇게 죽었을 때 거기 산다는 외삼촌이 찾아오기두 했었어. 삼마치 고개서 어떻게 살아나 가지구 곧장 찾아간 게 부평이야. 주소도 모르고 그 나이가 많던 외삼촌 이름도 모른 채 무턱대고 찾아간 거지. 다행히 어머니 성씨가 방씨란 것을 알았기 때문에 부평 읍내 방씨 성 가진 집만 찾아다닌 거야. 거지가 되어 이 집 저 집에서 밥을 얻어먹으며 찾아다니니까 오히려 쉽더군. 하긴 개한테 물린 적도 여러 번이었지만 외삼촌네만 찾으면 모든 게 될 줄 알았기 때문에 하루하루가 재미있었어.

결국 찾아내는 데 성공했어. 그때 외삼촌은 병석에 있더군. 오줌을 못 누는 병인데 얼굴과 배가 퉁퉁 부었던 게 지금두 눈에 선해. 외사촌 형들이 나를 짐승처럼 대하는 거야. 외숙모는 더 했지. 그 집이 원래는 부자였는데 우리 어머니와 아버지 때문에 망했다는 거였어. 외숙모는 이를 갈면서 죽은 우리 어머니를 욕했어. 그런대로 병석에 계신 외삼촌이 내 손을 잡아주면서 달리 생각 말고 한식구가 되어 살자는 거였지.

그런데 내편이라고 생각했던 외삼촌이 내가 거기 간 지 1년만에 돌아가시더군. 그리고 그 집에서 쫓겨난 거야. 거지가 되어 떠돌다가 서울까지 올라간 거야. 구두닦이도 했고 신문도 팔아 보았고 서울역 앞에서 펨프 노릇도 했어. 그런데 그때부터 내 몸이 정상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지, 다른 애들처럼 열심히 뛰어다닐 수가 없었던 거야. 구두를 세 켤레만 닦아도 숨이 차고 가슴이 결렸어. 그저 자꾸 잠만 자고 싶은 거야. 길바닥이고 남의 대문 앞이고 몸을 눕히기만 하면 그저 땅 속으로 꺼져드는 것처럼 잠이 들곤 했지. 하루에 한 끼 정도만 먹고 살았던 거야.

그러다가 어느 날 문득 여기 고향 생각을 한 거지. 고향에 가기만 하면 사람들이 모두 반갑게 맞아줄 것만 같았어. 왜 진작 그런 생각을 못했었는지 그게 막 안타깝더군. 걸어서 예까지 오는 데 꼭 열흘이 걸리더군. 난리 뒤라 길가 인심이 나빠 계대로 얻어먹지도 못하고 발바닥이 과줄처럼 부풀어올랐지만 고향에 돌아간다는 생각 때문에 하나도 괴로운 줄 몰랐지. 오면서 여러 사람 얼굴이 떠오르더군.

쐐기가 말을 멈추며 내 얼굴을 잠깐 쳐다보고 다시 눈을 내리깔았다. 길을 걸으면서 그의 머릿속에 떠올랐을 여러 사람의 얼굴을 새삼 더듬어 보는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의 이마와 콧등에는 더 많은 땀방울이 맺힌다. 정구장 시멘트 담벽에 비스듬히 몸을 기대며 쑴을 가브게 쉬었다.

-몸이 꽤 불편한가 본데, 식사부터 하고 좀 누워야 하겠구먼.

내가 일어서려 하자 그가 손을 내저어 괜찮다는 뜻을 나타냈다. 그러나 나는 그의 동작에 어딘가 이상한 구석이 느껴져 그대로 주저앉았다, 그것은 흡사 간질병 환자의 발작과 같은 것이었다. 쐐기는 자신의 손등과 팔목, 그리고 목덜미와 겨드랑이까지 닥치는 대로 긁어대는 것이었다. 상체뿐만 아니라 양말도 아직 안 신은 발을 낡은 운동화 속에서 꺼내더니 발등부터 허벅지까지를 마구 쥐어뜯듯 긁어댔다. 나는 그의 맨발을 바라보면서 아 -하는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푸르뎅뎅하게 죽은 살빛에다가 말갛게 부어 있었던 것이다. 전날 만장을 들고 걸을 때의 그 절뚝거리던 거북스러운 걸음걸이가 새삼 짐작이 갔다. 운동화 벗은 그 발바닥에서 살 썩는 냄새 같은 게 확 끼쳐 나는 얼른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아니, 발이 왜 그렇게 됐어?

그러나 쐐기는 내 말소릴 들은 척도 않고 온몸을 긁어대는 일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것은 아주 격한 동작이었다. 숨을 헐떡거리며 손등 , 발을 긁는 쐐기의 그 눈은 결코 정상인의 그것이 아니었다. 벌겋게 충혈된데다 이글이글 살기까지 뻗쳐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나중에는 허리춤에 손을 넣어 사타구니도 그렇게 발작하듯 긁었는데, 꼭 수음을 하는 그런 자세였다. 나는 정말 일어나 도망치고 싶었다. 무서웠던 것이다. 그가 갑자기 내게 달려들어 그런 격한 동작으로 내 목을 죄일 것만 같았다. 그러나 까는 고양이 앞에 쥐가 기를 쓰지 못하듯 쐐기의 발작에 넋이 빠져 몸을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쐐기의 그런 발작은 그다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고는 마치 지랄병 발작을 하고 부시시 깨어난 사람처럼 멍청한 얼굴로 되돌아와 더 눈을 내리깔았을 뿐이다.

-아니, 발이 왜 그렇게 됐어?

나는 그의 피부 곳곳에 손톱 자국으로 비듬처럼 우수수 일어난 때 부스러기를 바라보며 그의 발에 대해서만 물어보았던 것이다.

-동상이야, 오늘처럼 이렇게 날이 궂으면 살빛이 이렇게 변해. 미치게 가렵고--- 그럴 때는 작두에 올려놓고 다 잘라 버리고 싶을 지경이야. 날이 갈수록 통증도 심해. 그전엔 그저 견딜만 했는데 나이 먹어 갈수록 점점 심해지는군.

나는 정말 그를 찾아 올라온 나 자신을 원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무엇 때문에 이토록 가슴이 무거워져야 한단 말인가.

-옛날 삼마치 고개에서 그렇게 된 모양이군.

그러나 쐐기는 벗어놓았던 낡은 운동화를 꿈지럭꿈지럭 발에 례면서 침묵을 지켰다.

-뭘 적고 있는 모양이지 ?

그의 방 한구석에 펴진 채로 놓여 있는 대학 노우트 폭으로 눈을 돌리며 그렇게 묻자, 그는 퍽 쑥스러운 얼굴로 확황허 열린 문을 닫고 거기 기대 앉는 것이었다.

-1--- --- 심심해서---

입엣소리로 우물거렸다. 그때 문득 선옥이와 내가 감추었던 쐐기 어머니의 그 패물함이 생각났다.

-선옥이가 좀 도와주지 않던가?

-도와주다마다. 헌데 내가 해만 끼쳤지.

-옛날부터 남매인걸 뭐, 해가될 게 뭐 있을라구.

-아니야. 옛날부터 남인걸.

일순 쐐기의 얼굴에 쓸쓸한 바람이 이는 것 같았다.

-가끔 들으니까, 자네가 선옥이네 식당을 자주 찾아가 행패를 부렸다더군. 그럴 때마다 선옥인 자네가 보기 싫어서두 읍을 떠나야 한다고 했다면서?

쐐기는 고개를 푹 꺾었다. 그의 목덜미에도 땀이 지르르 번져 있었다.

-다 맞는 얘기야. 내가 그랬어.

-남이라면서 왜 거긴 자꾸 찾아간 거야?

잔인하다고 생각했지만 그렇게 묻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가 어둡게 짓누르고 있는 내 가슴을 그런 식으로 풀어 보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나두 모르겠어. 술을 몇 잔 얻어 마신 날은 나두 모르게 선옥이네 식당에 가 있는 거야. 그런 때마다 선옥이가 직접 밥두 가져다 주구 용돈두 쥐어주곤 했지, 여기 내가 쓰구 있는 이부자리두 선옥이가 해 준 거야. 신셀 져두 그 이상 어떻게 더 지겠어. 그런데---

-그런데?

-그게 참 이상하단 말이야. 선옥이가 나한테 잘 해주면 줄수록 내 심보가 뒤틀려지더란 거지. 밥그릇을 내동댕이치구, 돈을 발기발기 찢구, 식당 유리창을 깬 것두 한두 번이 아니었어. 그러다 보니까 나만 나타나면 어디론가 숨어버리곤 했지.

-, 술을 그렇게 먹는 거야? 몸두 성찮은 사람이.

그런데 쐐기의 대답은 엉뚱했다.

-몸이 아파서 그래. 몸이 아플 전 술을 먹어야 견딜 수 있거든.

-술이 진통제군.

나는 신음처럼 중얼거리며 단호히 몸을 일으켰다. 주머니에서 집히는 대로 돈을 꺼냈다. 천 원 짜리가 십여 장 집혀 나왔다.

-그 좋은 진통젤 사 먹게.

쐐기는 엉거주춤 몸을 일으키며 내가 내미는 돈을 받았다. 그는 돈을 받아들자 거렁뱅이의 그 천덕스러운 꼬라지로 허리를 굽실거렸다. 길이 없이 그대로 비탈이었다. 비탈에는 칙칙하게 시들어 가는 한삼 덩굴이 역시 시답잖은 보랏빛 꽃술을 매달고 있었다. 나는 문득 한삼 덩굴에서 비교적 잎이 싱싱한 잎자루 하나를 뜯어 들었다. 그리고 뒤에 선 쐐찌를 돌아다보았다. 그런 걸 우연의 일치라고 할까, 쐐기도 나처럼 한삼 덩굴의 잎을 하나 따 코밑에 들이대고 있다가 나하고 눈이 마주치자 벌쑥 웃었다. 처음으로 그의 웃는 얼굴을 본 것이다. 나와 똑같이 어렸을 때 그 추억을 되살려냈음이 너무나 분명했다. 그는 가해자였고 나는 피해자였다. 동수야, 이거 냄새 맡아봐라. 쐐기가 재 코 밑에 내민 한삼 덩굴 잎자루의 그 역으로 돋은 까칠한 가시가 섬뜩해 보였지만 무슨 냄새가 난다는 바람에 코를 내밀었던 것이다. 그는 그 잎자루를 내 코 밑 인중에 댔다. 별 냄새를 맡을 수 없었다.

그 순간 쐐기의 팔이 날쌔게 움직인다고 생각했는데 내 코 밑이 따끔했다. 그렇게 따갑고 아릴 수가 없었다, 그 한삼 덩굴의 잎자루가 스친 인중에 발긋하게 부풀어오른 상처는 며칠이나 그 자국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그것을 선옥이가 지켜본 것이다. 선옥이에게 그것을 보이기 위해서 우정 그런 짓을 했을 쐐기일 테니까. 나는 말없이 쐐기를 향해 손을 흔들어 주고, 겅중겅중 성당 언덕을 내려왔다, 이제 다시는 그를 만나지 않으리란 작심을 굳히며. 그게 벌써 2년 전 가을이었다.

 

"당신 요즘 참 이상해요."

아내가 말했다. 남의 물건을 슬쩍 주머니에 집어넣다가 들킨 것처럼 나는 낯을 붉혔다. 어머니가 집에 와 있어 가뜩이나 신경이 날카로워진 아내 앞에 내 자신의 초조한 모습을 들켜버린 사실이 그처럼 쑥스러울 수가 없었다. 내가 퇴근해 집에 있는 시간이라도 밖에서 걸려오는 전화는 대개 아내나 아이들이 받았다. 대민 관계의 내 직장 직책 때문에 우정 그렇게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이즈음 사람들과의 만남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들은 항상 나를 적으로 알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함락시키려 갖은 작전을 다 폈다. 단 한 사람의 우방도 없이 나는 그들과 맞서 싸워야 했다. 가장 유리한 싸옴은 그들의 유혹에 말려들지 않는 일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람을 만나지 말아야 했던 것이다. 전화가 걸려올 때마다 아내가 중간에 서서 따돌렸다. 내가 의식적으로 그런 일에 관심을 표하지 않는 것이 우리 가정의 관례였다.

그러나 나는 어머니가 상경해 있는 이 일주일간 직장에서나 집에 들어와서나 초조해 하고 있었다. 오늘 나한테 온 편지 같은 어 없어 ? 지금 그 전화 누구한테서 온 거야? 이렇게 다그쳐 들거나 전화가 오면 숫제 겅중겅중 뛰어가 내가 받아야 직성이 풀리곤 했던 것이다. 직장에서도 내가 부리던 사람들 책상 앞에 놓인 전화가 울 때마다 깔짝깔짝 놀라거나 밖에 나갔다가 들어와서는 나한테 온 전화가 없었는지 몇 번씩 확인을 했다.

막상 내게 걸려온 전화를 받을 때도 그것이 내 기대 속의 목소리가 아니었기 때문에 번번이 퉁명스러운 통화가 되곤 했다. 과장님, 요새 어디 편찮으신가 보죠? 밑에 사람들이 그렇게 묻곤 했다. 나는 신경성 소화계를 끼니마다 복용했고, 그렇게 소화계를 먹는데도 어떤 때는 진땀을 흘리며 괴로워해야 했던 것이다. 길에 나서면 내 옆을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의 얼굴을 유심히 살피게 되고 사람이 많이 모인 곳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뭔가 기웃거려 보아야만 마음이 놓였다. 나는 예감처럼 누군가 불쑥 내 앞에 얼굴을 내밀 것 같은 기대로 퇴근길에 여기저기 헤매고 다니기도 했다.

나는 늘 누군가 초조하게 찾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했다. 그것은 기다림이었다. 기대와 불안이 뒤범벅이 된 그런 기다림, 그 기다림은 어떤 무너짐의 예고와 같은 것이었다. 이제까지 내가 이룩한 내 개인의 입신과 내 가정의 안일이 너무나 허망하게 허물어져 내리는 불길한 예감이었다. 그러나 불길하다고는 했지만 그 무너짐의 환상은 절망과 좌절을 동반한 것이 아니라 오허려 달착지근한 성질의 것으로, 마치 낙엽을 밟으며 눈시울을 적시는 소녀 애들의 그런 달콤한 감상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초조했다. 을 것이 계시간에 와 주지 않았을 때 갖게 되는 그런 번잡스런 초조로 나는 어느 곳에 있거나 좌불안석이 되곤 했다.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선옥이를 사랑했다가 미워했다가, 또는 그 증오로 해서 수십 번 목을 조르기도 했다. 그럴 즈음 형에게서 전화가 온 것이다.

"읍에서 온 전화예요."

아내가 예의 그 야멸찬 경멸을 매단 입술을 삐죽이 내밀며 내게 수화기를 건넸을 때 나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형은 어머니의 안부부터 물은 다음 진작 모시러 올라가야 하는 건데 그쪽 일이 바빠놔서 그렇게 췄다는 변명을 한참 늘어놓고 난 뒤,

"쐐기 소식 들었지?"

느닷없이 그런 물음을 던져온 것이다.

"쐐기가 어떻게 됐어요? "

내가 헐떡거리다시피 물었다.

"모르고 있었군. 그럴 줄 알고 전화를 건 거야."

형은 그쯤 뜸을 들이고 나서야 대뜸,

"쐐기가 죽었어."

"언제 말입니까?"

"오늘, 오늘 죽었어."

한 인간의 종언을 알리는 부고치고는 형의 목소리가 너무나 싱싱하게 들렸다.

"장사는 언제 지냅니까?"

나중에 내가 생각해도 우스운 걸 다 물어 보았던 것이다. 아니나다를까 형은,

"장사는 뭔 놈의 장사, 그냥 파묻는 거지."

나는 손에 맥살이 풀렸다. 형이 내 근황을 묻는 모양이었으나 나는 건성으로 몇 마디 대답하곤 전화를 끊어버렸다. 고향에서 형이 전화를 걸었다니까 얼굴이 화색이 돌던 어머니가 쐐기가 죽었다는 얘길 듣곤 당신의 자식을 잃기라도 한 듯 풀색 주저앉으며, 애고애고 불쌍한 것, 그처럼 애통해 할 수가 없었다. 쐐기가 살았을 때 데려다가 더운 밥 한번 못해 먹인 걸 후회하며 눈물을 질금거리던 어머니가 불쑥 물었다.

"그래, 갸가 어떻게 죽었다는 게냐?"

어머니 말에 비로소 나는 쐐기의 사인을 나 자신도 알고 있지 못하는 사실을 깨닫고 깜짝 놀랐다. 형도 그 사실을 말하지 않았을 뿐 다니라 나 역시 쐐기의 죽음 그 자체 이상의 것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쐐기가 왜 죽었느냐 하는 따위는 그에게 필요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머니에 의해서 일깨워진, 쐐기는 왜 죽었을까, 어째서, 어떻게 죽었을까 하는 것은 금세 커다란 그림자가 되어 내 머릿속을 휩쓸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 다음날로 당장 고향에 내려가겠다던 내 생각은 내가 나가는 부처의 정기 감사를 받는 일과 겹쳐 부득이 주말로 미루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 주말까지 며칠 동안 나는 몹시 뒤숭숭한 시간을 보내야 했다, 쐐기의 죽음이, 미지수로 내게 숙제처럼 남겨진 그 죽음에 따른 여러 문제가 내 주소를 묻더란 쐐기 생전의 그 일에 핀트가 맞춰지면서 더욱 혼란스러워졌던 것이다. 그런 혼란 속에서도 나는 계속 선옥이의 소식을 기다리는 초조를 함께 겪었다, 하루에도 수십 명의 선옥이와 만나지 않으면 안되었다, 전화 속에서, 사무실 복도에서, 지하철 계단에서, 만원 버스 속에서,,,,,,그러나 허둥허둥 다가가 확인했을 때 이미 그것은 선옥이가 아니었기 때문에 나는 손에 맥살이 풀리곤 했다. 나는 선옥이가 가져다 줄 파멸을 서슴없이 손아귀에 움쳐쥐고 싶었던 것이다.

주말의 마장동 터미널은 그야말로 만원이었다. 추석을 나흘 앞두고 좀 서두는 귀성객 때문일 것이다. 그런대로 고향 읍내까지 가는 직행 버스에 금세 오를 수 있어 다행이었다. 어머니는 추석을 고향집 큰 아들네와 함께 지내게 된 게 그처럼 기꺼운지 나보다 먼저 겅중겅중 버스에 오르고 있었다. 쾌청한 날씨였다. 고향 읍까지 두 시간 반이 걸릴 것이다. 늦어도 4시까지는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모처럼 어머니를 모시고 귀향하는 내 기분은 수학여행 떠나는 아이들처럼 달뜨기까지 했다. 어쩌면 선옥이가 없는 고향 읍내는 내게 무의미한 것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런 의미와는 다른 성질의 것이 나를 붕붕 떠오르게 하고 있었던 것이다. 선옥이가 거기에 살고 있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배척해야만 했던 고향이, 선옥이가 사라짐으로 해서 느닷없이 내게 유혹의 손길을 내민 것이다. 읍의 최종 관문이라고 할 수 있는 삼마치 고개 정상에 이를 때까지 나는 쐐기에 대해서, 그의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았다.

언제나 그렇듯 나는 귀향할 때마다 오늘 내가 이룩한 나의 입신과 내 가정과 학벌 있는 내 아내와 사랑스런 내 자식들을 생각했다. 그리고 양양한 내 출세 길에 대해서 가슴이 벅차 오르곤 했던 것이다. 여봐란 듯 내보이고 싶은, 어쩌면 거오스럽기까지 한 자랑이 단물처럼 입에 괴어 꼭 미친 사람처럼 헤벌쭉 웃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기도 했던 것이다.

"이제 다 왔재?"

삼마치 고개 정상에 이르자 어머니가 벌써부터 옷매무새를 바로잡으며 말했다. 고개 정상에서 읍까지는 족히 30리는 되는 거리지만 거기까지 오면 벌써 읍내에 들어선 기분이었던 것이다. 열 아흠 굽이를 돌아 내리는 고갯길은 아스팔트가 깔리 긴 했지만 옛날이나 다름없이 아슬아슬한 급경사를 이루고 있었다. 초가을 따가운 볕 속에 조용히 갈앉은 산 속은 이계 그 눈 시리던 청색을 잃고 칙칙히 변모해 가고 있었다. 얼마 있지 않아 이 삼마치 고개 절벽이 온통 단풍으로 물들어 붉게 타오르겠지. 그리고 또 멀지 않아 그 단풍들이 떨어져 내려 앙상히 헐벗은 나뭇가지에 겨울 바람이 무섭게 스칠 것이고, 어느 날 밤은 드디어 은백색으로 산이 덮이고 말리라. 비탈길을 조심조심 휘도는 버스는 엔진을 죽이기라도 한 듯 차 구르는 소리 외에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나는 흠칫 몸을 덜었다. 쩡쩡한 대낮인데 어디선가 총 쏘는 소리가 들려왔던 것이다. 군부대가 많은 지역이라 사격 훈련장이 골짜기 아래 어디쯤 있을 것이고 총소리는 바로 거기서 들려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곧 그 소리가 환청임을 깨닫는다. 그것이 환청임을 깨닫는 순간 나는 우리가 탄 버스가 그대로 비탈 그 아래쪽으로 곤두박질치는 착각에 빠져든다. 버스가 아니라 여섯 바퀴 쐐기네 화물자동차였다. 짐을 높이 싣고 밧줄로 꽝꽝 얽어 맨 화물자동차가 눈 쌓인 비탈길을 데굴데굴 굴러 내리고 있었다

"얘야, 바로 저기가 만물 상회 집 도라꾸가 굴러 떨어졌다는 데재?"

어머니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모양, 비탈 그 아래 칡덩굴이 무성한 골짜기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문득 그 칡덩굴 속에서 쐐기가 우쭐우쭐 걸어나오고 있는 걸 보고 있는 느낌이었다.

-다 죽었대요. 한 사람두 안 남고 다 죽었대요.

그 겨울날 쐐기네 화물트럭이 삼마치 고개를 오르다가 적 선발대의 습격을 받아 골짜기로 굴러 내렸다는 소식이 읍내에 확 퍼진 뒤 직접 그곳까지 다녀온 사람들이 그렇게 말했다. 쐐기네 자동차에 타고 가던 사람들이 다 죽었다는 것이다, 그 트럭에는 쐐기네 식구 셋하고 쐐기 아버지와 함께 미곡상을 하던 박씨네 식구 여섯, 그 외에 운전수네 가족 넷까지 합해 모두 열 셋이 타고 있었는데 죽은 걸 헤아려 보니 그 숫자가 꼭 맞더란 것이다.

적군 선발대는 아군의 후퇴 작전을 교란시키기 위해 미리 삼마치 고개 중턱을 차단해 버렸던 것이다. 그날 저녁 삼마치 고개에서 그 적군 선발대에 죽은 피난민만 해도 수십 명이 된다고 했다. 그들은 쐐기네 자동차를 쏘아 골짜기로 굴러 떨어뜨린 뒤 차체에 불을 놀아 싣고 가던 물건이며 거기 탔다가 죽은 사람들까지 다 태워버리면서 이틀을 버티다가 아군에게 쫓겨 달아났다는 어른들의 얘기였다. 그 난리 경황 중에도 윗샘말 사람들이 그 불타 오므라진 쐐기네 식구들의 시체에 흙을 덮어줬더란 얘길 읍내 어른들이 하는 소릴 들었다.

그들은 혀를 끌끌 차면서 결론짓곤 했다.

-요는, 너무 서둘러댄 게 탈이었다 그거여.

-결국 사람 욕심이 사람 잡은 꼴이 됐지 뭔가. 허긴 여름 난리 때처럼, 그 아까운 물건을 다 잃어버릴 생각을 하니 기가 막혔을 테지. 그래 남들보다 일찌감치 떠난다는 것이 그만---

쐐기네가 읍을 떠나던 날은 연 사흘째 내리는 눈이 계속 프슴프슴 흩날리고 있었다. 그날따라 눈 속인데도 북쪽에서 내려오는 피난민이 유난히 많이 읍을 지나쳐 삼마치 고개로 향했던 것이다. 눈이 많이 쌓여 고갯길이 막히기 전에 고개를 넘어둬야 안심이라는 생각들이었을 것이다. 쐐기네 아버지가 그처럼 서둘러댄 것도 눈에 덜컥 고갯길이 막힐 것을 염려해서였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쐐기 아버지는 짐 싣는 사람들을 들들 볶아가며 떠날 채비를 서둘렀다. 쐐기네가 자동차에 짐 싣는 것을 구경나온 사람들은 지난밤보다 더 가까이서 들리기 시작한 대포소리에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며 밖에 나와 노는 아이들 손을 끌고 총총히 집안으로 사라지곤 했다. 이번에 쳐내려온다는 되놈들이 바로 둔내 들판에 하얗게 깔린 걸 직접 보고 왔다고 허풍을 쳐 사람들 마음을 더욱 뒤숭숭하게 만들기도 했다.

-선옥이가 도망을 갔댄다.

형이 내 귓속에다 소근거렸다.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선옥이가 보이지 않은 것도 같았다.

-얼루 갔대?

-내가 그걸 어떻게 아니. 쐐기가 그러더라. 오늘 아침에 선옥이가 자기는 피난을 안 간다고 하면서 집을 나갔는데, 혹시 우리 집에 안 왔느냐고 그러잖아.

형이 남들 모르게 내 손에 뭔가 쥐어주었다. 센베이 과자였다. 보나마나 쐐기한테서 얻었을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낼름 입 속에 집어넣고 씹었다. 이제 쐐기한테서 빵을 얻어먹는 것도 그만이었다. 차에 짐을 실으면서 쐐기 아버지가 그랬던 것이다. 이제 이놈의 곳 더러워서도 다시 돌아오지 않겠다고. 난리가 끝나도 서울에 자리잡아 할 것이라고 했다. 나는 쐐기네 자동차를 둘러선 사람들 사이를 몰래 빠져 나왔다. 선옥이를 찾아야 했던 것이다. 약속을 지켜준 선옥이었기 때문이다. 벌써 며칠 전부터 선옥이와 나는 쐐기네 죽은 어머니의 패물함을 훔쳐다 우리 집 뒤란 장작더미 속에 감추어 놓고 선옥이가 피난을 갈 것인가 안 갈 것인가를 얘기했던 것이다.

머리를 마구 잘려 아주 홍해 보이는 선옥이는 죽어도 피난을 가지 않겠다고 말하곤 했다. 쐐기 새엄마에 대한 적의 때문이었을 것이다. 쐐기의 새엄마가 선옥이 머리를 그렇게 마구 가위질해 놓았던 것이다, 가게서 판 돈을 집어냈다는 것이었다. 정작 큰 것을 잃고도 고작 몇 십 원의 돈이 없어진 걸 가지고 선옥이의 온몸에 멍이 들도록 팬 끝에 머리를 그렇게 잘랐던 것이다. 그날 선옥이가 우리 집에 달려온 것을 보고 우리 식구들은 너무나 놀랐다. 잘린 머리의 흥한 것도 그랬지만 입술이 터져 피 멍울이 들 정도로 퉁퉁 부었는가 하면 온몸이 성한 데가 별로 없었던 것이다.

-아무리 제 자식이 아니라 해도 어디 이럴 수가 있냐,

어머니가 선옥이의 상처를 어루만져 주며 혀를 찼다. 그러나 선옥이는 우리 어머니 품에 든 채 그 흉한 꼴로 내게 혀를 낼름 내밀어 보였다. 우리들이 감춰둔 패물함을 상기시키는 신호였을 것이다. 선옥이는 그렇게 무서운 계집애였다. 자기를 키워준 쐐기네를 그처럼 배신한 선옥이는 결국 피난을 함께 떠나지 않고 만 것이다. 그것이 바로 그네가 살아 남을 수 있었던 계기였다.

쐐기네 화물자동차가 하나 가득 짐을 싣고 그 위에 사람들을 태운 채 프슴프슴 흩날리는 눈 속을 뚫고 삼마치 고개 쪽으로 나간 뒤 형과 나는 어딘가 남았을 선옥이를 이리저리 찾아 헤매다가 집에 돌아왔던 것이다. 그때 우리들은 머리에 수건을 써 꼭 새댁 같아 보이는 선옥이가 우리 부엌 속에 서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어머니, 밥물 얼마큼 부으면 되나요?

그네는 우리 형제를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방 쪽을 향해 큰소리로 묻고 있었다. 이제 선옥인 우리 식구였다.

-네가 살려구 하나님이 다 그렇게 시킨 게다.

쐐기네가 삼마치 고개에서 몰사했다는 소식이 읍내에 전해진 그 아침, 어머니는 선옥이가 살아난 게 어디 보통 있을 수 있는 일이냐며 기꺼워했다. 크러나 그 소식을 들은 선옥이는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울음을 터뜨렸다. 쐐기네 가족의 죽음을 애도해 어른처럼 꺼이꺼이 흐느끼는 선옥이의 등을 어루만지며 어머니 역시 울음을 터뜨렸기 때문에 우리 형제도 덩달아 눈시울이 뜨거워졌던 것이다.

 

서울에서 떠나기 전 연락을 해 두었기 때문인지 정류장엔 조카들이 마중를 나와 있었다. 여고 2학년인 큰조카가 그 동생을 데리고 나와 버스에서 내리는 할머니를 양옆에서 부축을 했다. 깨끗한 교복 차림의 조카를 보면서 나는 선옥이의 그 시절 모습을 보는 느낌이었다.

"먼저 모시고 들어들 가거라."

나는 조카들에게 어머니를 맡긴 뒤 정류장 바로 앞에 있는 상호네 약국으로 들어갔다. 마침 장날이어서 그런지 약국에는 시골 사람들이 많았다.

"어이구, 어쩐 일이야?"

상호가 손님에게 잔돈을 건네다가 나를 발견하고 활짝 폈다.

"어머니가 올라오셨길래 모시고 왔지."

", 지난번 어머니께서 여기서 멀미약을 잡숫구 가셨지."

"장사가 잘 되는군."

"내 장사가 잘 된다는 건 좋은 일이 아니지. 환자가 늘어간다는 얘길 테니까."

나는 그가 따 건네는 바카스를 받아들고 진열대 안쪽 의자에 앉았다. 소형 TV에서 대학 축구를 중계하고 있었다, 방은 텅 빈 채였다. 아는 얼굴이 한둘은 늘 보이게 마련인데 아직 이른 시간이라 나오지들 않은 모양이었다.

"선옥이 소식은 들었겠군?"

내가 입을 떼기도 전에 상호가 조제실에서 말했다. 쐐기의 죽음과 선옥이 얘기 중 어느 것을 먼저, 어떤 방법으로 물어 볼 것인가를 생각중인데 그가 먼저 말을 꺼낸 것이다. 상호는 2년 전 우리들이 고성방가하며 선옥이를 찾아갔던 그날 밤을 생각했었는지도 모른다,

"그 여자한테 안 당한 사람이 없다면서?"

나는 우정 그 여자란 말을 쌨다. 선옥이 문제에 대해서 좀더 초연한 면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소문은 그렇게 났지."

조제실에서 나오며 상호가, 지나가는 말투였다. 뜻밖이었다. 상호의 말투로 미루어 보면 소문과는 다를 수도 있다는 얘기가 아닌가. 나는 팽팽히 죄었던 신경이 툭 끊겨져 나가는 기분이었다. 서울서 어머니한테 듣던 대로, 읍내가 통통 벌컥 뒤집히고 선옥이를 저주하는 읍내 사람들의 불같은 분노와 욕설이 우박처럼 떨어져 내리는 그 속을 걷고 싶었기 때문이다. 비오는 날 우산이 없어 아예 온몸을 빗속에 내맡긴 채 얼굴에 빗물을 철철 흘리며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걷던 그런 기억처럼 선옥이의 소문 속에 나를 내던지고 싶었던 것이다.

"그럼 소문과는 다르다는 얘긴가?"

"내 얘긴 선옥이가 떼먹고 도망갔다는 그 돈 액수가 그렇게 크지 않을 거란 얘기야."

"어떻든 그 여자가 남의 돈을 사기쳐 떼먹고 간 건 사실이 아닌가 말이야."

"다들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하긴 그게 사실일지도 모르고......"

"그럼, 상호 자넨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단 말인가? "

내가 다그쳐 묻자 상호는 잠깐 내 쪽으로 얼굴을 돌려 쳐다보면서,

"인심이란 참 묘하더군. 내가 알기로는 분명 선옥이한테서 돈을 빼어쓴 친군데, 그 여자가 그렇게 없어지고 나니까 됩데 자기가 돈을 얼마얼마 떼였다고 야단법석을 떠는 거야. 어디 그런 놈들이 한둘이었어야 말이지."

선옥이를 두둔하고 나서는 듯한 인상의 상호 말에는 사뭇 분개하는 느낌이 강했다. 그는 손님을 맞아 약을 팔면서 쉬엄쉬엄 그 얘길 했다. 별 더러운 놈들이 많다는 것이다. 상호 얘기는 지금까지 당한 준 오히려 선옥이라는 투였다. 읍내 한다 하는 치들이 선옥이를 이용했다는 얘기다. 혼자 사는 여자가 강하고 약은 것 같지만 실상은 정에 약한 그 약점을 이용해서 뭇사내들이 계획적으로 선옥이률 농락한 게 틀림없다는 상호의 의견이었다.

여자 뱃속에 주판이 다섯 개쯤 들어 있으면 남자 뱃속엔 그 주판 다섯 개를 눈 한번 찔끔하고 삼켜 버리는 구렁이가 열 마리는 들어 있다는 것이다.

"아이구, 우리 약사 아저씨, 남자가 구렁이라는 거 잘 말씀하셨에유. 글쎄 우리 애아버이두......"

약을 사러 들어온 삼십대 시골 아낙네가 우리 얘기 중간에 껴들어, 냅다 구렁이 같은 자기 남편 얘길 꺼내고 있었다. 상호와는 구면인 듯 상호가 알은 체를 한 다음 적당한 대목에서 말을 잘라버렸다.

"아주머이, 집에서 애기 울어유, 애기. 뭐 드릴까유?"

"뇌신 열 갑 주세유."

"지난 장날에두 사가시구, 오늘 또 사 가시는 겁니까?"

"그때 사간 건 애아버이가 머리가 아프다구 다 잡쉈지유 뭐."

그 아낙네뿐이 아니고 내가 거기 앉아서 본 것만 해도 여러 사람이 뇌신 등의 두통약을 사갔다. 진열장 맨 앞줄 꺼내기 좋은 곳에 두통약이 꽤 많이 들어 있었다.

"아니, 웬 두통약을 그렇게 많이들 사가는 건가?"

"이게 시골 사람들한텐 급한 대로 만병통치약인 셈이지. 또 실상 요즘 시골에 두통이 심한 사람도 많은 모양이고,,,,,"

"치료제라가보다 진정 역할밖에 안 하는 겨. 아닌가?"

"그런 셈이지."

"그런 걸 만병통치약으로 팔면서 마음에 걸리진 않나?"

"서울서 내려온 관리 양반이 그렇게 물으니까 가슴이 뜨끔하군. 사실은 나두 이 약을 많이 먹어. 그들이 앓고 있다는 두통이 가게문을 닫을 때쯤이면 영락없이 내게로 옮아오는 거야."

"자네 장사 수완이겠지만 가끔 와 봐두 시골 사람들이 자넬 꽤 좋아하더군."

"국회의원 출마하려고 그러네."

상호가 웃으면서 그렇게 받았다.

"그래, 선옥이 소식은 전연 모르고들 있는 건가?"

자기 있는 델 그렇에 쉬 알리려면 도망을 갔겠나?"

"그래두 어디 갔음직한 데가 있을 거 아냐?"

"돈을 떼었다는 사람들이 법석을 떨며 이리저리 수소문을 해 보는 거 같더니 요즘은 그것도 수그러졌는가 봐."

그때 사십 후반쯤 돼 보이는 시골 아낙네 서넛이 들어섰다. 그 중에서 살갗이 검고 얼굴이 애상으로 찌든 것 같은 아낙지가 상호 앞까지 다가가 속삭이듯,

"저번 짝에 가주간 그 약 좀 또 주셔유."

"아주머니, 이젠 그런 약 업어요. 그런데 아직도 병원에 안 데려가셨구먼요?"

"글쎄, 그 양반 고집이 으트게나 샌지,,,,,, 병원은 죽어두 안 간다는 거예유."

"그러지 말고 한번 큰 병원에 가보시라니까요."

"글쎄, 그게 그렇게 힘드네유, 그 양반 고집두 고집이지만, 막상 갈려구 해두 돈이 있어야지유. 땅마지기 있는 거 홀딱 날리구 나면 당장 떼거지가 될 텐데 으째야 좋을는지 증말 모르겠네유."

울상을 지으며 그 아낙네가 돌아가자 상호가 말했다.

"증셀 듣고 보니까 위암이 거의 분명한데, 남편이 벌써 그걸 알고 있는 모양이야. 살아야 얼마 못산다는 걸 말이지. 요새 시골 사람들, 암에 대해서 괘 많이 아네. 그저 돈은 돈대로 없애고 죽어 가는 게 암이다. 그렇게들 알고 있지. 저거 우리 모굔데 아무래두 실력이 딸리는걸."

그러면서 그는 소형 TV의 화면을 죽였다. 갑자기 약국 안이 조용해졌다,

"실은 말이야,,,,,,"

TV화면을 죽이고 난 상호가 내 곁에 털썩 주저앉으며 말했다. 내게 뭔가 긴한 말을 하고 싶어 TV를 껐다는 느낌이 들었다.

"실은 말이야, 한 서너 달 됐나, 선옥이가 여길 들렀었네."

나는 짐짓 옆에 놓인 신문을 집어 뒤적였다.

"와서 별 얘긴 없었지만 그때 한 말이 자꾸 맘에 걸린단 말이야,"

"뭔데?"

나는 더 참을 수가 없었다.

"그냥 이것저것 병 얘기 끝인데, 선옥이가 이런 걸 묻는 거야. 병원에서 진찰을 해 암이란 진단이 나오면 본인에겐 직접 알리지 않는다는데 그럼 그 가족이나 보호자가 없는 사람은 누구한테 알려주느냐는 거였어. 그때 내가, 그런 경우는 본인에게 직접 알릴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잖겠느냐고 반문하니까. 선옥이가 이렇게 묻더군. 만약 본인이 자기가 암 환자라는 걸 알았다면 그 사람이 어떻게 처신을 할 거냐 그런 거였지. 그런 얘기를 나누다7F소화제나 하나 달라고 해서 노루모산인가 하는 걸 한 통 줘 보냈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때 선옥이 얼굴이 퍽 여위어 있단 것 같단 말이야."

"그럼, 자네는 선옥이가 암에 걸렸다는 얘긴가?"

내가 신문을 뚤뚤 말아 쥐며 다그치자 상호는 얼굴에 이렇다 할 표정을 보이지 않은 채,

"그저 내 예감에 그런 생각도 든다는 걸세."

"그게 사실이라면 선옥이와 가깝게 지낸 사람들은 다 알 거 아냐?"

"선옥이와 가깝게 지낸 사람이 어디 있어야지. 없어지고 나니까 모두 모른다는 거야. 심지어는 친동생처럼 거두던 식당 종업원들도 자기들 주인에 대해서 전연 캄캄하더군. 근래 가슴이 아프다고 하면서 서울을 자주 오르내린 일밖에는 아무 것도 모른다는 거야. 그렇게 철저하게 자기를 감추고 외톨로 산 여자도 아마 드물 거야."

나는 몸을 굽혀 진열장 밑에 놓인 소형 TV를 틀었다. 아직 대학 축구였다. 후두둑 채널을 돌렸다.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자막에 450분이란 숫자가 그려져 있었다. 후두둑 다시 다른 데를 돌렸다. 그 채널은 화면 영상이 계대로 잡히지 않았다. , 스위치를 눌러 점선 심한 화면을 죽여버렸다.

"쐐긴 자살을 했다면서?"

다짜고짜 그렇게 질문을 던졌다. 자살. 쐐기가 그 질긴 목숨을 스스로 처리했을 것 같은 화신이 상호와 얘기를 나누는 중에 생겼던 것이다. 막상 그렇게 말해 놓고 나자 나는 갑자기 내가 와 앉은 고향의 이 위치에서 눈에 띄는 모든 것이 허망하게 느껴졌다.

"자네 형을 만났더니, 쐐기가 죽었다는 걸 알렸다구 하더군. 자네가 내려와 볼 줄 알았다는 거야,"

이제 쐐기의 죽음은 어쩔 수 없이 내 가슴에 부딪쳐 왔다. 제 목숨을 계가 거둬간 쐐기.

"나두 자네만은 금방 내려올 줄 알았었네."

"왜 그런 생각을 했지?"

"쐐기한테 관심이 가장 많은 사람이 자넬 테니까."

"개가 왜 죽었는지 자넨 아나?"

내가 눈을 내리깔며 신음처럼 중얼거렸다. 왜 죽었는가,

"살기 싫으니까 죽은 거지."

"왜 살기 싫었을까?"

내 물음이 바보 같다고 생각했는지 상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서너 사람에게 멀미약, 바카스, 소화제 등을 판 뒤에야 다시 내 옆에 앉으며 말했다.

"자네처럼, 쐐기가 죽고 나니까 쐐기의 일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많더군."

"무슨 얘긴가?"

"쐐기가 샜다는 그 일기 때문이지."

"일기라니?"

"믿어지지 않겠지만 요즘 쐐기는 허리춤에 겉장이 흐치흐치 낡은 대학 노트를 한 권 가지고 다녔어. 얼핏 본 사람이 그러는데 뭐가 잔뜩 씌어 있더래. 그걸 사람들한테 내보이면서 으르렁거리더란 거야."

"으르렁거리다니?"

"요즘, 개가 죽기 한 열흘 전부터 사람이 싹 달라졌던 거야. 선옥이가 없어지고 나설 거야. 그 전엔 술이나 먹어야 오줌을 질질 싸면서 월급을 내라고 손을 벌리구 다녔는데, 요즘은 술을 먹지두 않구 생으루다 트집을 잡고 늘어지는 거지. 아무나 만나면 행패를 부렸어."

"구체적으로 얘기해 봐. 뭘 어떻게 행패를 부렸다는 건지."

시비라도 걸 듯 그렇게 다그치자 상호는 힐끗 내 눈치를 살핀 다음,

"그냥 생떼를 부린 거야. 읍내 땅이 모두 난리 전부터 자기네 땅이라는 등 전에는 안 하던 소릴 하고 다니는 거야. 옛날 자기네 만물 상회가 있던 자리가 지금은 왕자 다방이잖아, 그런데 거길 가서두 계 땅을 찾겠다구 행패를 부렸다는 거야. 거기 레지들한테 손찌검을 하는 바람에 난리가 났다는 거야."

"아까 그 일기를 내보였다는 얘긴 뭔가?"

"글쎄, 그게 또 우스운 얘기지, 그 노트 속에 자기네 재산을 떼먹은 사람 명단이 적혀 있다는 거야. 어디 그뿐인가, 읍내에서 근래 30여 년 동안 일어난 일들을 제가 다 안다는 게야. 누구누구가 이러이러한 나쁜 짓을 했는데 그걸 죄다 그 노트에다 적었다면서 자기가 입만 뻥긋하면 쇠고랑 찰 사람 많다는 거였어. "

"그래 그 얘길 듣고 읍내 사람들이 무서워하던가?"

"무서워하긴, 미친놈 떠드는 소릴 가지고 뭐--- 그런데 참 묘한 건---"

상호는 약국 안에 사람이 다 나가는 동안 바닥에 물을 뿌리며 뜸을 들인 뒤,

"쐐기가 죽고 나니까 읍내 사람들이 모두 그 노트에 대해 관심을 갖더라 그거야."

"뭔가 켕기는 계 있었던 게지?"

"1런 건 아니겠지만 왜 사람 심리란 다 그런 거 아니겠어. 우선 나부터두 그 속에 내 얘긴 어떻게 적혀 있을까 궁금하더라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2년 전 성당 정구장 담벽에 붙은 그의 처소에서 보았던 그 펼쳐진 노우트 속애 내 얘기가 안 들어 있다고 볼 수 없잖은가.

"그래, 그 노트는 어떻게 됐어?"

"자네두 궁금한 게로군. 실은 말이야, 그걸 아무도 모른다니까. 아마 십중팔군 물 속에 잠겼을 테지만."

"물 속엔 왜 ?"

"물에 빠져 죽을 때 함께 가지고 갔을 테니까."

"쐐기가 물에 빠져 죽었단 말인가?"

나는 몸을 벌떡 일으켜 세우며 물었다.

"아니, 그럼 자넨 쐐기가 난리 때 끊어진 다리에서 떨어져 죽은 것두 몰랐단 말인가?"

"몰랐네."

나는 신음처럼 중얼거리며 주저앉았다.

"끊어진 다리 맨 끝에 쐐기 운동화랑 옷 보따리가 있었지. 물에 떠오른 시첼 보고서야 거기서 그걸 찾아낸 거지."

"옷 보따리라니, 그럼 쐐기가 요즘은 성당 있는 데 안 있었단 말인가?"

"벌써 거길 떠난 지 오래 됐어. 술을 먹고 들어가 촛불을 켜놓고 자다가 불이 나 그 헛간 같은 집을 태워버렸다니까. 그것두 두 번씩이나 그랬지 뭐야. 어쨌든 그때 죽지 않고 살아난 것만 해도 기적이었지. 그때부터 또 여기저기 떠돌며 지냈던 거야."

"몇 번씩 기적처럼 살아난 귀한 목숨, 결국은 그렇게 가고 말았군."

내 말에 상호가 고개를 크게 주억거리며 대꾸했다.

"그러게 말이야. 그때 삼마치 고개서 죽지 않고 살아나 지금까지 산 삼십여 년 세월은 쐐기한테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 모르겠어."

쐐기한테 의미가 있는 게 아니라 바로 그러한 쐐기의 인생을 지금이라도 되새겨 보는 우리들 마음이 중요한 게 아니냐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나는 단념해 버렸다. 문득 삼마치 고개에서 차가 굴러 떨어졌을 때 눈 속에 묻혔다가 기적처럼 살자나 그들 적군 선발대에 잡혀 한 달 이상을 끌려 다니며 고생하다가 도망했다던 쐐기의 그 겨울이 생각난 것이다. 그는 난리가 끝나고 5년 뒤에 읍내에 돌아와 그때 눈 속에 홀로 살아남던 때의 그 멍청하던 기분과 생 눈길을 뚫고 산 속을 헤매던 기억을 몸서리쳐 가며 들려주곤 했다는 얘길 들었다. 그래,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셈치고 열심히 일해 보겠다고 몇 번씩 다짐도 잘 둔다더니 말과는 달리 그는 번번이 겨우 얻어걸린 직장에서 얼마가지 못해 쫓겨나곤 했던 것이다.

 

지난 신정 때 잠깐 다녀간 읍이 그 일 년도 안 되는 기간에 또 엄청 변모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새 도시계획인지 극장 앞으로 큰길이 뚫리고 있었다. 여기저기 못 보던 건물이 왜 우람한 뼈대를 드러내 보였다. 우체국 맞은편 교회도 몇 년 전 신축한 그 건물을 그냥 둔 채 그 한 옆으로 먼저 본당 크기의 배는 될 것 같은 새 건물이 세워지고 있었다. 교인이 많이 늘었다는 뜻일 게다. 몇 년만에 본당을 다시 세울 정도의 교세라면 그만한 구원의 힘도 행사되었으리란 생각을 억지춘향격으로 붙여 보면서 형이 벌이고 있는 가게로 향했다.

"그 동안 어머니 모시느라고 고생 많았지? 어머니 여기 들려 들어가셨어."

언제나 그렇듯 형은 아우한테 너무나 저자세를 보인다. 아우의 출세를 정도 이상 앞에 내세우려 부심하고 실제 내 덕을 보고 있다는 걸 입증하고 싶어 안달하는 형이다. 그러자니 자연 허풍이 심하고 막상 내 앞에서는 고개도 맞바로 들지 못한다.

"쐐기가 와서 형한테 내 주소를 묻더라면서요?"

단도직입으로 그것부터 따지듯 물었던 것이다. 형은 내 물음에 왜 당황해 하는 얼굴이 되면서 무슨 죄나 진 사람처럼 더듬거렸다

, 그랬지. 무얼 보낼 게 있다구 하더구먼서두."

"그런데 왜 안 가르쳐 줬어요?"

"그게 그렇지가 못했어. 그때 갸 행패가 대단했거든. 잘못 가리켜 줬다간 당장 쫓아 올라가 무신 짓을 할는지 알 수 있어야지......그래 엉뚱한 주솔 가르쳐 주긴 했지만 혹시나 해서, 맘이 안 놓여 접때 그런 전화를 건 거구먼."

"엉뚱한 주소라니요? 혹시 그거 기억 안 나요?"

형은 눈을 껌벅껌벅하며 뭔가 더듬는 눈치더니 선생님 앞에 숙제 못 푼 아이처럼 얼굴에 풀이 꺾였다.

"서대문 어디라고 아무렇게나 대놔서,,,,,,도통 기억이......"

나는 형의 옆얼굴을 쳐다보았다. 형도 이제 늙어가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머리에 흰머리도 꽤 보였다. 그러나 나는 견딜 수가 없었다.

"선옥이한테 돈을 얼마나 떼였어요?"

아니나다를까 형은 내가 묻는 말에 얼른 대답을 못하고 눈만 내리깔았다. 그러나 무슨 생각을 했는지 곧,

"몇 푼 되지는 않아. 하긴 이자 받아먹은 것만 해도 본전은 훨씬 넘을 거니까."

형의 눈엔 다소 교활한 웃음이 돌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형을 경멸할 수가 없었다. , 선옥이와 결혼해야 한다. 그날 내가 선옥이의 팬티에 선명한 자국을 남긴 저녁 형이 신음처럼 씹어 뱉던 말이 생각났다. 그리고 형은 선옥이를 향해서 부르짖었지. 더러운 계집애, 넌 이제 우리 식구가 아냐.

"그런 걸 가지고 형수하고 그렇게 다퉜군요?"

"여자란 원래 속이 좁잖아. 게다가 늙어가면서 강짜만 늘어 가지고......"

형이 멋적게 웃더니, 시계를 들여다보며 소형 금고에서 돈을 얼마 꺼내 주머니에 집어넣으며 말했다.

집에서 곧 나을 게야. 나오거든 나하고 조 아래 가서 술이나 한 잔씩 하지."

나는 형이 문득 옛날 얘길 하고 싶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섯 시가 조금 넘어선 시간이었다. 저녁 해가 아직 한 뼘쯤 남게 걸려 있었다.

", 나 남산에 좀 다녀올랍니다."

"남산엔 왜?"

"아버지 산소에도 가 본 지 오래됐고 또 쐐기도 그 근처에 묻었다면서요?"

"이왕이면 나두 같이 갔으면 좋겠구먼. "

저녁 햇볕을 받은 형의 얼굴이 조금 상기돼 있는 것 같았다, 아버지의 무덤. 그 말이 형을 그렇게 만들었을 것이다. 어쨌든 형이 나와 동행하고 싶은 것은 진심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얼른 몸을 일으켰다.

"아무래도 나 혼자 다녀오는 게 좋겠어요."

"그럼 해 떨어지기 전에 얼른 갔다 오지."

형이 쉽게 포기했기 때문에 나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형의 가게를 나왔다. 가게를 나오기 전 내가 제재소를 하는 친구에게 전화를 거는 동안 형이 앞 가게에 나가 4홉들이 소주 한 병, 사이다 하나, 그리고 안주가 될 만한 걸 곁들여 산 다음 그것을 넣은 종이 봉지를 내밀었다. 빵집 앞에 세워 있던 빈 택시까지 불러 대기해 놓고 있었다. 나는 형의 그러한 호의가 새삼 가슴에 와 닿는 것 같았다.

 

다리를 건너면서 그 위쪽으로 아직 끊어진 채 앙상한 뼈대를 드러내놓고 있는 구다리를 바라보았다. 비가 유난히 많이 내린 여름 뒤라 그런지 다리 밑의 물이 꽤 많이 흘렀다. 강바닥의 모양은 옛날과는 사뭇 딴판으로 변해 있었다, 쐐기는 유별나게 물을 겁낸다. 그렇게 매사 포악한 애가 강에 나가서는 허리를 넘는 데는 아예 들어갈 엄두도 못 내고 모래밭에서만 맴돌며 기가 꺾이게 마련이었다. 읍에 이사온 지 얼마 안 돼 강에서 놀다가 물에 빠져 거의 익사 직전에 살아났기 때문이라고 했다. 다리를 건넌 택시가 강을 끼고 달러 올라가 몇 년 전 세워진 제사 공장쪽으로 치닫고 있었다.

나는 황급히 택시를 세웠다. 어딘가 낯익어 보이는 운전수가 제사공장까지 가는 게 아니냐며, 차에서 내려서는 나를 흘금거렸다. 그가 내 눈에 낯익듯 내 얼굴 또한 그에게 낯익어 보일 것이다. 내가 한때 함께 어울려 지냈을 그의 형이나 아버지의 얼굴, 그런 얼굴들의 2세들이 지금 내 고향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게 아닌가.

남산 중턱까지는 온통 과수원이었다, 흰봉지를 뒤집어쓴 배가 주렁주렁 아직 덜 넘어간 저녁 햇살 속에 드러나 보였다. 배 밭은 철조망으로 둘러쳐져 있고 그 철조망에는 한삼 덩굴이 무성히 엉긴 채 시들시들 메말라가고 있었다, 나는 2년 전 성당 언덕에서처럼 한삼 덩굴의 잎줄기를 하나 뜯어 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코밑에 들이대고 냄새를 맡았다. 역시 배릿한 풀 냄새 외에는 아무런 냄새도 맡을 수 없었다. 나는 불현듯 코밑 인중에 놓인 그 잎줄기의 까실한 역자(逆刺)로 상처를 내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그 한삼 덩굴 잎사귀를 왼손 손가락 마디에 넣고 비벼 던졌다.

수염이 꺼칠한 인중에 상처가 난들 그 따갑고 아린 것을 이제 새삼스레 누가 안타까워할 것인가. 나는 문득 산을 허위허위 오르다가 왼손 엄지손가락 지문 한가운데 난 티눈이 몹시 거북하다는 걸 느꼈다. 한삼 덩굴 잎줄기를 비벼 던질 때 자극을 준 모양이었다, 열흘 전쯤 뜯어낸 각질이 고스란히 되살아나 더욱 탄탄한 집을 이루고 있었다. 그 각질의 균열된 틈 사이에 파랗게 물풀이 들어 있었다.

해 털어질 무렵의 스산한 바람이 산자락을 우수수 스치며 불어왔다. 숲에서 철 이르게 단풍이 먼저 드는 것은 울긋불긋한 북나무 잎사귀였다. 찌르르찌르르 풀벌레 소리가 그러고 보니 왜나 요란했다, 흰불나방 닮은 애기 벌레에 의해 잎이 앙상하게 갉아 먹힌 오리나무가 저녁 바람에 가지를 흔들고 있었다. 치마바위 가까이 이를수록 가슴이 방망이질을 했다. 그러나 막상 치마바위 뒤쪽 그 후미진 데를 더듬어 내려갈 때는 비교적 마음이 담담해졌다. 오히려 조심조심 숲을 살피는 내 눈에 그럴 듯한 것이 잡혀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묘한 배신감을 버릴 수가 없었다. 선옥이가 그 옛날의 숲에 있을는지도 모른다는 내 허황된 예감은 처음부터 센티였던 것이다. 나는 얼굴을 붉혔다. 그러나 옛날 그자리에 우뚝 섰을 때 나는 내 귓가에 스치는 그네의 그 숨소리만은 되살려 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무서워, 오빠! 단발머리 계집애가내 팔을 잡았다. 나는 다시금 내 턱 밑에서 쌔근대는 선옥이의 숨소리에 정신이 아득히 흐려지고 있었다. 추억을 더듬듯 옛날 그 돌무덤의 돌을 몇 개 입어내 보았다 - 세 사람의 남자를 만났어요. 결국 다 잃고 만 거예요. 모든 걸 다 잃었어요.

나는 허겁지겁 산등성이를 넘기 시작했다. 그 세 사내가 교활한 웃음을 낄낄거리며 나를 쫓아오고 있었다. 어쩌면 그것은 셋이 아니라 두 사내였는지도 모른다. 아니다. 내가 나를 쫓고 있었던 것이다. 산등성이를 넘으며 나는 낄낄 웃었다. 내일 아침 첫차를 타는 게 좋을 거야. 그렇게 하는 게 덜 피로할 거니까. 일 년쯤 더 기다려 보면 뭔가 되겠지. 그 일 년쯤 후 나는 프랑스 대사관쯤 나가 있을는지도 몰라. 나는 계속 낄낄거리며 남산의 옆구리 쪽 공동묘지로 다가갔다.

공동묘지는 그대로 돌밭이었다. 죽어서도 불평등을 짜증하듯 봉분이 빈약한 무덤들이 다닥다닥 붙은 채 널려 있었다. 바로 그 장소였다. 어머니와 환께 난리가 끝난 후 아버지를 찾기 위해 수없이 죽어 넘어진. 그 흐치흐치 썩은 시체들을 뒤지던 그 돌밭. 그러나 형과 나는 멀찍이 떨어져 코를 쥔 채 어머니의 그 작업을 지켜보고만 있었던 것이다. 아무 데서도 아버지의 주검은 나타나지 않았다. 살았다는 소식이 없으니까 그 주검이라도 나타나야 할 것인데, 아버지는 끝내 그 모습을 보여주지 않고 만 것이다.

나는 아버지 무덤 앞에 엎드려 절을 두 번 한 다음 형이 싸준 봉지를 뜯고 사이다를 종이컵에 따라 그때나 다름없이 빈약한 봉분의 정수리에 내리 부었다.

아버지의 무덤. 그것은 선옥이가 낸 생각이었다. 저를 낳아준 부모 얼굴도 모르는 그 계집애가 난리가 끝난 몇 해 뒤 아버지의 실종에 대해서 체념해 버린 우리 형제에게 그런 제안을 했던 것이다. 아버지의 무덤을 하나 정하자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불쾌한 소리로 들렸지만 차츰 우리 형제들은 선옥이의 그 제안에 유혹을 느꼈던 것이다.

-아버지는 죽었어!

내가 결론을 내렸다.

-그래,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형도 동의했다. 그렇게 장난처럼 시작해서 드디어는 우리들 스스로가 아버지를 죽였다. 기다려도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에 대한 죽음의 선고였던 것이다. 선옥이와 더불어 우리 형제들은 돌밭에서 잡초가 무성한, 내버려진 무덤 하나를 찾아 정했던 것이다.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는 죽고 이제 새로운 우리들의 아버지를 찾았던 것이다. 그 감상(感傷)의 세월, 어처구니없게도 어머니마저 우리들의 아버지 무덤을 찾아 올라가 재배하고 통곡을 했었다.

나는 그 감상의 덫을 벗어나기 위해 훌훌 일어나 쐐기의 무덤을 찾기 시작했다. 상호가 자세히 일러주지 않았더라도 쐐기의 무덤은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아직 떼가 입혀지지 않은 초라한 흙더미 앞에 '사이기의 묘한옆에 '1980915, 끊어진 다리에서 하늘 나라로-'란 글씨가 검은색 페인트로 씌어진 비목이 보였다.

해 넘어간 산골짜기는 사뭇 썰렁했다. 제 빛을 잃어 가는 들풀이 저녁 바람에 우수수 쓸리고 있었다. 시내에서 꽤 떨어진 곳이지만 읍의 남단에서 울려오는 소음이 바람결에 실려 마치 홍수 난 강바닥에 돌 구르는 소리처럼 궁궁궁 울러왔다. 그 궁궁거리는 소음에 섞여 망치로 철판 두드리는 소리가 쪄엉쪄엉 산울림을 일으키고 있었다.

나는 난생 처음 4홉들이 소주 한 병을 쐐기와 대작했다. 쐐기는 내가 따라 주는 소주를 이제는 진통제로서가 아닐, 애주가의 그 감칠맛 나는 입맛으로 홀짝홀짝 받아 마셨다. 그러나 술병이 비자 나는 그 빈 병 속처럼 가슴이 허망하게 비어들었다. 어줍잖게 인생은 덧없이 무상하다는 생각이 불쑥 치민다. 참으로 허망하다, 살아 있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죽었다는 것은 또 무엇인가. 나는 오늘 여기 살아 있고, 그는 며칠 전까지만 살아 있었다는, 아니 수십 년 전까지 살아 있었다는 이 많은 무덤들과 아직 무덤을 갖지 못한 나와의 다름에서 나는 어떤 의미를 찾아야 할 것인가. 불교에서 말하는 그 영겁의 시간 위에 잠깐 머물다 돌아가는 것, 돌아갔다는 것, 돌아갈 것이라는 것, 그것의 다름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옛날에 한 사람이 살았다. 그리고 그 옆에 또 한사람이 살았어. 그런데 그 한사람이 죽었지.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또 한 사람도 죽었어. 그런데 이번에는 그 옛날 이야기를 하던 사람이 죽더군. "죽더군" 하고 냉소 섞인 웃음을 웃던 그 사람도 죽었다 그거야. 옛날에---

그때 나는 내가 앉은 바로 앞, 메말라 가는 풀섶 속에서 아주 작은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생물체를 하나 발견했다. 새끼손가락 크기만한 방아깨비 암컷이었다. 긴 뒷다리 중 하나가 잘려나간 그 녹색의 여름 곤충은 뾰죽한 머리끝의 칼날 같은 촉각을 아주 미세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내가 손을 뻗치자 그 방아깨비는 아주 느리긴 했지만 제딴에는 필사의 몸놀림으로 위험거리를 떠났다. 빈 소주병을 그쪽으로 굴리자 방아깨비는 또 몇 동작 움직여 나갔다. 방아깨비는 살아 있었던 것이다. 바보 같은 것, 이제 곧 밤인데 그 어둠 속에 혼자서, 더구나 여름 곤충이 이 가을에, 어쩌자는 것인가.

그러나 그 방아깨비는 아직 살아 있었고 자신의 파멸 같은 건 믿지 않은 채, 그 파멸을 향해서 살아 있었던 것이다,,,,,,옛날에 뒷다리 하나 잘려나간 방아깨비가 살아 있을 때,,,,,,옛날에,,,,,,나는 쐐기의 무덤 앞에서 훌쩍 몸을 일으켰다.

-중요한 것은,

나는 어둑해진 사위를 휘휘 둘러보며 취기가 도는 그런 목소리로 입엣말을 했다.

-중요한 것은, 옛날에,,,하고 지나간 얘기를 할 수 있다는 거야. 더 중요한 것은 옛날에 그런 일이 있었다는 그걸 기억하고, 그걸 뒷날에 전해주는 거지.

나는 문득 허리를 굽혀 풀밭에 뒹구는 빈 소주병을 주워 들었다. 그리고 무심코 손아귀에 힘을 준 순간 엄지손가락 끝의 그 티눈이 몹시 거북하게 감촉 되었다. 나는 그 병을 오른손에 바꿔 쥐며 바위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지체없이 병의 몸통을 바위에 내리쳤다. 몸통이 산산이 깨어져 나간 소주병 주둥이 근처의 그 날카롭게 날이 선 유리 조각의 끝 부분을 왼손 엄지손가락 티눈 밑둥에 꾹 눌러댔다. 그리고, 질끈 눈을 감았다.

-나는 외마디 비명을 냈다. 검고 끈끈한 것이 손바닥에 흘렀다. 그 선명한 흔적, 쑤시듯 아픈 그 통증, 그것은 파멸로 차는, 살아 있는 자의 권리였다. 선옥이. 어쩌면 나는 더 큰 파멸까지도 받아들여야 할는지 모르겠다는 그런 생각에 취한 채 산을 내려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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