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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단편소설3

73. 잃어버린 황혼

by 자한형 2022. 5.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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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황혼(黃昏) -정소성

 

눈을 뜨니 시커먼 황혼이 시야에 들어온다. 다시 눈을 감는다. 창문에 내리는 빗방울소리가 고요히 방안에 번지고 있다. 아래층 시계추소리는 이 을씨년스러운 공간에 내려앉은 정적을 정확한 단위로 잘라서 시간의 뒤안길로 팽개치고 있다. 한기가 온몸을 휘감아온다. 불기라고는 느껴지지 않는다. 길수씨의 코고는 소리가 들린다. 간혹 어둠 속으로 흩어져 나오는 그의 신음 같은 잠꼬대는 내 가슴의 바닥을 우울의 심연으로 끌어내리는 것 같다. 그가 누운 쪽에서 악취가 풍겨온다. 땀 냄새, 오물 냄새, 소주 냄새가 범벅되어 견딜 수 없는 역겨움을 준다. 다시 눈을 떠본다. 미명이 빗소리를 머금은 채 창문에 닿아 있다.

침을 삼켜본다. 목이 칼칼하다. 입안의 악취가 뱃속까지 스며들어 구역질을 자아올린다. 침이 삼켜지는 다음 순간에 부드러운 빗소리가 들려온다. 음향만이 청각의 창을 두드릴 뿐 캄캄한 어둠의 장막은 시야를 내리누르고 있다. 내 청각의 창은 점점 더 예민해져 가는 것 같다. 시계추소리는 아래층에서 계단을 올라와 이층 구석진 이 방에까지 이르는 사이 방마다의 투숙객들이 빚어내는 갖가지 음향을 묻혀오는 것 같다. 시계추소리는 점점 흐려져 간다. 금속성에 묻어온 인간들의 숨소리들이 고막을 파고든다. 풀무 소리, 모기 소리, 천둥 소리, 도랑물 소리, 고양이 울음 소리 등등 자연의 갖가지 음향이 인간의 수면이 발하는 자연스런 호흡 속에 숨어 있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짙은 어둠이 눈앞에서 들끓고 있다. 뒤엉키는 어둠을 응시하다가 나는 구역질이 목구멍을 간질이고 있음을 느낀다. 현기증도 이는 것 같다. 공복 탓일까. 공복에 소주를 마신 탓이겠지. 그렇기도 하겠지만, 어쩌면 저 괴물스럽달 수밖에 없는 숨소리들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방금 흉물스런 상상에 의식이 순간적으로 빼앗긴 것을 후회한다. 방마다 어쩌면 온종일 주워먹다가 지쳐서 잠들어버린 짐승들이 누워 있는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나는 일순 해보았던 것이다. 빗물과 어둠에 시달리며 서울의 일우를 헤맨 나의 어쩔 수 없는 느낌이 다시 떠오른지도 모르겠다. 고개를 조금 돌려본다, 다소 두터워진 미명이 창문에 내려와 있다. 구역질도 현기증도 가라앉은 것 같지가 않다. 졸리지도 않고 졸리지 않는 것 같지도 않다. 수면의 공백 상태 속에 던져져 있는 것 같다.

내 몸뚱이 속에는 잠을 잘 수 있는 기능이 없는 것 같다. 잠을 자다가 깨어난 것이 실감되지 않는다. 숨소리들이 계속 내 귓속을 내리눌러오고 있다, 나는 어젯밤 거의 자정이 되어 가는 시간에 길수씨와 이 방으로 들어왔다. 우리가 어두컴컴한 골목의 입구에 서서 몽롱한 시선으로 바라본 저쯤의 간판은 백열등 밑에 매달린 -서울여인숙-이라는 것이었다. 숨소리 사이사이로 빗소리가 들려온다. 빗속에 던져진 여인숙은 동물스런 숨소리를 가득히 싣고 빗소리의 가락에 맞춰 숨쉬는 또 하나의 좀더 큰 동물인지도 모른다는 상상이 머릿속을 지나간다. 몇 시쯤 되었을까? 빨리 밖으로 나가고 싶다. 대머리 진 그 배뚱뚱이 주인이 부르러 오지 않는 걸 보니 아직 통금은 풀리지 않은 모양이다. 왼손을 움직여 귀에다 대어본다. 태엽이 풀리는 소리는 시간이 흐르고 있음을 알려준다. 어떻게 할까? 다시 한번 우 교장을 찾아 나설까? 그냥 기차를 타버릴까? 나는 원래 새벽에 통금이 풀리면 한번 더 우 교장을 찾기로 작정하고 비틀거리는 길수씨를 데리고 빗속을 헤매다가 이 여인숙에 투숙했다. 길수씨는 나의 이 작업을 위해 다소의 도움은 되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렇게 비가 계속 뿌려지고 있으니 마음이 얼른 내키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 우 교장을 찾을 수 있다는 것도 거의 절망적으로 느껴진다. 길수씨는 우 교장이 어디서 사는지 알지 못한다고 뚜렷이 말하지 않았는가. 우 교장의 행방을 알 만한 사람이라고는 도무지 머리에 떠오르지 않는다. 그의 행방을 아는 사람은 어쩌면 아무도 없는지도 모르겠다. 돈식이란 놈을 놓쳐버렸으니 안타깝기만 하다. 그러나, 나는 우 교장을 찾아보고 싶다. 그 이유를 나는 확실히는 모르겠다. 내 마음의 자연스런 흐름이 그러할 뿐이다. 돈식의 그림이 준 여운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 , , 떼옌,,,,,,

아래층에서 금속성이 멀리 울린다. 통금이 꿀린 것이다. 떼엥 하는 아득한 음향이 멎자 후드득거리며 창문에 부딪는 빗방울소리가 갑자기 뚜렷해진다. 동시에 갖가지 숨소리도 기지개를 켜며 부풀어오르는 것 같다, 괘종시계의 이 네 번 음향은 그것이 한 점 한 점 울려 계단을 올라 복도를 지나올 때마다, 어둠에 숨죽여 가던 빗소리며 저 짐승스런 숨소리의 곁을 한 꺼풀 한 꺼풀 흔들어 깨워, 내 귓속에다 가져다 박는 것 같다. 빗소리를 뚫고 자동차 엔진소리가 들려온다. 창문 오른쪽 귀퉁이로 삼각형 헤드라이트 불빛이 걸렸다가 이내 사라진다. 우 교장을 찾으러 나서야 한다는 부르짖음이 내 마음속에서 일고 있음을 느낀다. 전등을 켤까? 나는 웃몸을 들썩해보다가 곧 고정한다. 금방 전등을 켜고 싶지는 않다. 무엇인가를 더 생각해보고 싶다. 아니 생각이라는 기능에 나를 더 던져두고 싶다.

마음이 호젓해진다. 밝아지는 것 같기도 하고 쓸쓸해지는 것 같기도 하다. 우 교장을 찾아보고 기차를 타야 한다. 첫차를 놓쳐서는 안 된다. 첫시간 수업이 아홉 시니까 여섯 시 차를 꼭 타야 한다. 우 교장을 생각하면, 아니 우 교장의 모습이 머리에 떠오르면 왜 이렇게 마음이 호젓해질까. 돈식의 그림 탓일까? 짙은 노을, 아니다, 짙은 노을은 아니었다. 돈식의 그림은. 돈식의 그림이 보여준 노을은 타버린 노을, 가물가물 사라져 가는 노을, 뭐랄까, 노을의 잔영이라는 것이 좋겠다. 좌우간 사람은 누구나 그런 노을 앞에 서면 마음이 호젓해지고 밝아지기도 하고, 다소 슬퍼지기도 하는 것일까? 우 교장의 얼굴은 나에게 웬지 이런 꺼져가는 노을의 영상을 띠고 나타난다. 그것은 아마도 돈식의 그림 탓이리라.

나는 어제, 그러니까 일요일 아침에 국전을 본답시고 충청도 바닷가에 위치한 나의 조그만 직장을 떠나 상경길에 올랐던 것이다. 나의 서울행이란 드물게 있는 일이다. 십여 년 전에 하향하고 나서부터는 여간한 일이 아니면 나는 상경하지 않았다. 그러나 어제는 아이들에게 그림을 가르치는 명색이 미술 선생인 주제에 국전이라도 한번 봐두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조반상에서 아내에게 동의를 얻었던 것이다. 집을 나서니 빗방울이 듣고 있었다. 서해의 섬들을 왼쪽으로 거느리고 달리는 장항선 열차 속에서 내 마음은 국전에의 기대감으로 다소 부푸는 듯했다. 고개를 차창으로 돌리니 섬들 사이로 짙푸른 바다가 펼쳐진 저 멀리, 검은 수평선이 그어져 있었다. 차창에 드리워진 이 색채와 선의 암울한 분위기는 미술적 조형이 던지는 힘을 안고 나의 가슴에 내려앉았다. 수평선 위에 칠해진 회색 하늘은 바다와 수평선의 색감이 내리눌렀던 그 암울한 느낌에 쫓겨서, 가슴의 어두운 골짜기로 칩거해버린 내 감각의 연기가 곱게 피어오르기에는 너무나 무거운 색채의 응고 그것이었다. 서울은 많이 변해 있었다. 우울한 한강의 물결과 강변의 더욱 두터워진 아파트 군이 눈길을 끌었다. 재작년 가을에 내 그림 친구들의 비구상화전을 보러 왔던 기억이 까마득하다. 입장권을 사 가지고 덕수궁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늦가을의 잔디가 빗방울을 머금고 잘 돋아나 있었다.

많은 관람객들이 장사진을 치고 입장을 기다렸다. 나도 대열에 끼어 들었다. 족히 한 시간을 기다렸다. 전신은 비에 젖어들었다. 누군가가 나를 부르는 것 같아 고개를 돌렸다. 물바랜 작업복을 아무렇게나 걸친 청년이 내 곁에 서 있었다. 후줄그레한 첫인상이었다.

누구십니까?

선생님, , 박선생님이시죠?

, 그런데 나는-----

저 돈식이에요. 돈식이.

나는 직감적으로 내가 가르친 학생 중의 하나라고 생각했다.

아 그래, 국전 보러 왔나?

돈식은 대답을 얼버무렸다. 돈식의 옆에는 비슷한 차림의 청년이 서 있었다. 나는 전신을 감아드는 한기를 느끼며 상체를 조금 떨어보았다. 담배를 피워 물면서 동편 근정전 지붕마루에 떨어져 빗방울을 튕기는 빗줄기를 망연히 보고 있었다. 내가 담배 연기를 뿜어내며 고개를 돌렸을 때 돈식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말이다. 늘어선 줄이 조금씩 앞으로 나아감에 따라 나는 걸음을 옮겨놓으며 돈식이가 나의 어느 학교 시절의 학생이었던가를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이 학교 저 학교를 돌기도 했지만, 미술 선생이란 한 학교에 한 사람뿐이어서, 상대하는 학생이 전교생이니 어느 한 학생을 뚜렷이 기억해내기란 힘든 노릇이었다. 나는 금방 돈식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저쪽 정원 가운데 있는 연못의 수면에 빗방울이 부서지고 있었다. 내가 기차에 몸을 싣고 한강 철교를 지나올 때에도 빗방울은 철교의 난간이며 강의 수면에서 저렇게 부서지고 있었다. 받쳐든 비닐 우산 끝을 따라 비에 젖은 고층건물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비에 젖은 시멘트가 연상되어 을씨년스러움을 느끼게 했다. 멀리 북악이 빗속에 멀어지고 있었다. 어디선가 떠오른 애드벌룬이 빗속을 흐르고 있었다, 비가 뿌려지고 있는 흐린 하늘에 떠오른 애드벌룬은 왜 그다지도 내 마음을 처량하게 만드는지. 나는 몸을 떨었다. 고궁의 추녀 사이로. 납덩이같은 하늘에 짓눌린 듯 검은 색깔의 더미처럼 물안개 속에 저쯤 떠밀려서, 서울을 굽어보고 있는 인왕산의 자태가 나타났다. 나는 인파에 섞여 천천히 작품을 봐나갔다. 조각 서예 동양화 부문은 건성으로 볼 수밖에 없었다. 자연적으로 관심은 유화로 쏠렸다, 지금은 비록 시골 중학교의 미술 선생이라는 직업인으로 작품 제작과는 인연이 먼 사람이 되어버렸지만, 나에게도 한때 선과 색채만의 창조의 세계에서 정열을 불태운 젊은 시절이 있었던 것이다. 그림들을 한 점 한 점 감상해나갔다. 그것들이 주는 색채의 아름다움은 나에게 영혼의 위안과 아울러 즐거움을 주었다. 그러나 꾸르베풍()의 사실주의적인 작품이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고, 들라크르와의 그 우울한 색감을 영상 시키는 낭만 풍의 그림도 눈에 띄었다. 몇 점의 여체화는 아직도 르네상스 후기의 작품류를 방불케 하는 데가 있어서 내 마음은 그저 담담하기만 하였다. 그러다가 나는 야릇한 감흥을 자아내는 그림 앞에 서게 되었다.

아무런 구체적인 내용이 없이 몇 가지 색채의 혼합만이 캔버스를 가득 메우고 있는 한 폭의 그림이었다. 나의 시선은 완전히 붙잡히고 말았다. 타는 듯한 붉은 색의 광휘가 옆으로 획획 굵게 그어 던진 몇 줄기 검은 색채에 의해 그 색감이 꺼져 가는 그림이었다. 둔중하게 내려앉은 고 검은 색감은 그 선들의 사이사이로 내보이는 붉은 색채를 질식이나 시키고 있는 듯하였다. 나는 침을 삼켰다. 내 가슴을 후비고 들어오는 그 붉은 색의 애잔한 광휘는 내 머릿속을 수없이 맴돌았다.

먼지 낀 삶의 갈피 속에서 질식해버린 내 젊은 시절의 미의식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었다면, 아마도 그것이 이 색감에 흘려버리기라도 했는 것 같았다. 내가 이 그림의 제목이 -서울의 황혼-이라는 것을 안 때에는, 나는 벌써 이 그림에서 상당히 떨어져 있었다. 하늘도 없고 구름도 없이 거기에는 다만 선과 색채만의 질서와 조화에 의해 강렬한 인상을 던지는 평면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것은 다만 색채의 충동일 뿐이었다. 나는 이 그림의 제작자가 유돈식인 것을 몇 작품을 더 지나서야 우연히 알게 되었다. 어제 나는 작품들의 관람에서 제작자의 이름을 안 보기로 작정하였기에 그냥 지나쳐버렸던 것이다. 나는 우연히 고개를 돌리다가 이 그림 밑에 붙어 있는 그의 이름표를 보게 되었던 것이다. 전시장을 다 돌고 나오니 고궁의 뜰에는 땅거미가 내리고 있었다. 꼿꼿이 서서 작품들을 쳐다본 탓인지 목과 어깨에 가벼운 통증이 오고 피로가 느껴졌다. 늘어지는 몸을 이끌고 고궁을 걸어나왔다. 뿌려지는 빗줄기가 아스팔트 위를 흐르고 있었다. 난무하는 헤드라이트 불빛이 현기증을 자아냈다. 어둠이 내려앉은 서울은 늦 가을비의 물기를 머금은 채 형언할 수 없는 먼 침묵을 안고 미지근한 김을 뿜어내며 어디론가 가라앉고 있었다. 나는 거리의 어느 다방에 들어가 다리를 늘어뜨리고 잠시 휴식을 취했다. 캔버스 위에서 애잔히 사그러져 가고 있던 그 붉은 색채의 우울한 광휘가 내 머릿속에서 반추되었다. 나의 관심은 다시금 그 유돈식이라는 나의 옛 제자에게로 쏠렸다. 내가 잠깐잠깐 재직했던 여러 중고등학교와 학생들을 머릿속에 떠올려보았다. 지나간 나의 구차한 반생이 파노라마처럼 뇌리를 흘러갔다. 그러나 학생 유돈식의 모습은 떠오르지 않았다. 비에 젖은 아랫도리가 다리에 감겨왔다.

다방을 나와 나는 거기를 걸었다. 그림들을 장시간 감상하고 난 탓인지 내 감정은 조응한 흥분을 안고 흔들리고 있는 듯했다. 이런 감정 탓도 있고. 젖은 아랫도리며 또 차장과의 억지 대화가 도무지 귀찮기도 해서 나는 천천히 용산역을 향해 걷기로 했다. 나는 비닐우산을 힘없이 받쳐들고 터벅터벅 발걸음을 떼어놓았다. 나는 서울에 올라오면, 아니 내가 미술 학교를 다니던 젊은 시절에도, 거리를 무작정 걷곤 하였었다. 걷는 것이 좋아서 그랬었을까? 적어도 그렇지는 않았었으리라. 그렇다고 싫지는 않았었다. 하지만 버스를 타는 일은 정말 싫었었다. 그런 이유도 있었지만, 서울의 미로 같은 거리를 정신없이 걸으며 적어도 나에게는 괴상스럽고 신기하기까지 한 거리의 오만가지 색채에 시선을 주면서, 제멋대로의 몽상에 의식을 맡겨버리는 것도 노상 싫은 것만은 아니었다. 이렇게 걷다가 엉뚱하게도 청파동 구석지로 접어들어 길을 잃은 적도 있었고, 청계천 육 가 너머 빈민굴에서 밤 여인들에게 붙잡혀 낭패를 당하고 거리로 쫓겨나며 며칠간을 자리에서 식은땀만을 흘린 적도 있었다. 자동차를 타고 서울을 획획 누비는 것은 어쩐지 나의 일이 아닌 것 같았다. 서울에 살고 있으되 서울을 사는 것이 아니었었다. 나의 서울에서의 삶은 조심스러운 건드림 정도에 지나지 않은 것이었었다. 십 년 이상의 서울 생활을 하는 동안에 내가 단간 셋방을 스무 번 이상이나 돌아다닌 사실도, 나에게 딱이 목돈이 없어서이기도 했었지만, 웬지 헤어날 수 없는 미궁을 헤매고 있는 것 같은 내 일상의 감정이 나를 서두르게 하지 않은 데에도 이유가 있는 듯했었다. 혼인 말이 오고간 훌륭한 규수가 없는 것도 아니었었지만, 좋다든가 나쁘다든가 하는 의사 표시를 딱 부러지게 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다가 나는 언제나 기회를 놓치곤 했었다.

어제도 나는 비가 뿌려 지는 서울의 밤거리를 걸었다. 서울의 표피를 흘러내리는 물살에 씻기어 방향을 상실한 미물처럼 사람들은 좌왕우왕 어디론가 흘러가고 있었다. 나는 발차시각 까지 충분한 시간이 있기에 어떤 구속감도 떨쳐버린 채 한량없이 걷고 또 걸었다. 어디쯤 왔을까? 나의 왼쪽, 빗물에 번질거리는 아스팔트 차도 위에는 끊임없는 불빛의 행렬이 이어지고 있었다. 나의 머릿속에서 돈식에 의해 펼쳐지기 시작했던 내 지난 삶의 그 공허한 순간 순간들이,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발길을 따라, 그 현장의 풍경들과 어울린 채 눈앞에 어렴풋이 모습을 드러내어, 흐르는 빗물에 씻겨 서울의 바닥을 뒹굴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느닷없이 우 교장을 머릿속에 떠올리고 있은 나 자신을 발견한 것은 그 순간이었다. 과거라는 시간의 망막한 공간 속으로 흩어져버 린 삶의 편린이 거꾸로 돌아가는 기억의 작용에 의해 되살려지다가 환한 의식의 창가에서 잠시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십여 년 전 어느 날 밤, 그때에도 비가 내렸었는데, 나는 우 교장과 이 어둡고 을씨년스러운 육교의 갈래 밑을 걸었었다. 돈식의 얼굴을 떠올려보려던 나의 노력에 우 교장의 얼굴이 느닷없이 나타나 보인 것은, 늦은 밤비를 맞으며 그와 함께 걸었었던 그 육교의 갈래 밑을 걷고 있었다는 시간적인 상황의 일치라는 탓도 있었겠지만, 우 교장의 얼굴에 이어 금방 학생제복의 돈식의 모습이 내 의식의 시야에 떠오른 것으로 보아, 역시 우 교장은 돈식이와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내 기억의 까마득한 망실의 창고 속에 갇혀 있었던 것으로 여겨졌다.

그때 나는 우 교장이 재직중인 어느 야간 미술 학교에 서양화 강사로 나가고 있었었다. 학교는 서울역 뒤 지저분한 언덕바지에 수없이 돋아나 펼쳐진 판자집들을 내려다보며 지어지고 있는 중이었었다. 우 교장과 나와 돈식이가 인연을 맺고 있을 때의 이 학교는 서너 칸 교실을 가진 괴상스런 건물 속에서 수업이랍시고 했었으며, 손바닥만한 운동장에는 신축 교사가 지어지고 있는 형편이었었다.

야간 학교의 선생들이란 될 수만 있으면 일찍 수업을 하고 조금이라도 덜 늦은 시간에 귀가하려 한다. 나는 이 학교에 시간 강사로 나갔었기 때문에 내가 먼저 시간을 하겠다고 우길 수도 없었고, 또 홀몸이었던 나는 굳이 일찍 귀가할 이유도 없었기 때문에, 나의 시간은 거의 언제나 밤 아홉 시가 지나서였었다. 소란스러운 시장 바닥을 지나 담도 없이 터놓고 지내는 판자촌을 뚫고 꼬불꼬불한 길을 따라 올라가면 이 미술 학교는 빨간 백열 전등 밑에 조는 듯이 나를 대해주곤 했었다. 지어지다가 중단된 신축교사는 언제나 두터운 암흑을 머금고 한 귀퉁이에 서 있어서 무슨 폐허 같기도 했었고. 곪아서 터진 상처가 말라버린 것 같기도 했었다. 우 교장은 언제나 어깨를 힘없이 늘어뜨리고 앞가슴을 책상에 박은 채 교무실 귀퉁이에 앉아 있었었다. 그의 늙음에서 배어 나온 피로가 주름살 투성이의 그의 얼굴에 이끼처럼 피어났었다. 그가 얼굴의 힘살을 움직이면은, 거기에 말라붙은 무엇인가가 비직비직 떨어질 것 같은 느낌을 주었었다. 우 교장이 일본에서 무슨 미술 학교를 나왔다는 사실을 내가 알게 된 것은 훨씬 후의 일이었었다. 우 교장은 신축 교사의 뒤 어두운 습지에 세워진 벽돌 가건물에서 혼자 끓여먹고 살았었다. 학교에서 소풍을 간다거나 개교 기념 행사를 한다든가 하면 나는 간혹 낮에도 학교에 나가는 일이 있어서 학교를 둘러보는 수가 있곤 했었다. 우 교장의 방 바람벽에는 비닐 종이로 막아놓은 창문이 하나 있었는데, 그는 이 창문 옆에 의자를 갖다놓고 앉아서 저 멀리 서쪽 하늘에 빗겨진 노을을 정신을 잃은 듯이 바라보는 수가 있었었다.

박선생이우만 그래. 잘 왔어. 잘 왔어. 그래, 어떻게 왔나?

우 교장은 언제나 나만 만나면 이와 비슷한 말을 중얼거리듯 지껄이면서 악수를 청했었다. 아니, 악수를 청하는 것이 아니라 내 손을 그냥 끌어당겨 잡는 것이었다. 우 교장이 묻는 -어떻게 왔나-라는 말은 내가 듣기로는 무슨 일로 그렇게 낮에 왔느냐는 것이 아니라 고 험한 길을 올라오느라고 얼마나 힘이 들었느냐는 염려의 뜻이 담겨 있는 것 같았었다. 어느 날 나는 전설 속의 음향처럼 아득히 전해지는 저 밑 시가지의 소음과, 먼지와 연기 탓으로 희부옇게 변해버린 서울의 하늘에 시선을 던지면서 늦은 오후의 햇살 속을 걸어 학교의 둘레를 돌아보았었는데, 그날도 우 교장은 그의 창문 앞에 앉아 있었었다. 그는 예의 그 인사말을 건넸었다. 그런데 나는 방 앞을 지나치려다가 부엌에서 나는 식기 부시는 소리를 들었었다. 혈육이라고는 딸 하나뿐인데, 일본인 아내가 이 딸을 데리고 일본으로 건너가 버렸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는 터였었다. 나는 의아한 생각이 들었었다. 누구냐고 물어볼 수도 없고 해서 지나쳐 버렸었다. 우 교장이 눈을 주고 있는 서쪽 하늘에는 시시각각 쇠잔의 기운을 더해가는 황혼의 애잔한 광휘가 뿌려지고 있었었다.

육교의 난간에서 갑자기 물줄기가 주르르 쏟아졌다. 밤은 깊었는지 거리에는 빗줄기만 가득할 뿐 행인들은 뜸해졌다, 나는 아내와의 약속을 생각하고 시계를 불빛에 비쳐 보았다. 일곱 시를 넘어 있었다. 그 옛날. 여기까지 나를 싸라온 우 교장은 한기에 떨며 나에게 몸을 밀착해왔었으며, 내 기분을 살피려고 그러는지 나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았었다. 내 얼굴 옆에 있던 그의 얼굴은 피로와 고독에 젖어 좌절의 짙은 연기 속에 저만큼 물러앉아 허덕이는 것처럼 헤드라이트 불빛 속에서 가물거렸었다. 우리는 빗속을 걸어나갔었다.

교장 선생님도 걷기를 좋아하십니까?

걷기를?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질문이었는데. 우 교장의 대답도 의외라는 듯한 반문이 되어 나왔었다.

걷기를 좋아하느냐고? ,,,,,, 하도 오래 걸어보지를 않아서.

학교에서 기거하시니 걸을 필요가 없으시겠군요.

, 어딜 도무지 걸어가 볼 데가 있어야지.

그럼, 산보라도,,,,,,

산보라---

우 교장의 말은 이어지지 못하고 끊어졌었다. 한참을 걷다가 그는,

도무지 자신이 없구만.하고 말을 이었었다.

뭐가요?

산보할 자신이.

너무나 아득한 옛날이라 그와 내가 나눈 대화를 뚜렷이는 기억할 수 없었다.

나는 육교 밑을 벗어나면서 철도변 쪽으로 난 골목길로 시선을 주었다. 우 교장과 나는 그날 저기 보이는 왕대포집에 들어가 소주잔을 기울였었다. 짐작이 갈 만한 장소에서 기억 속의 주점을 발견하니 나는 참으로 반갑기도 하고 기이하게 까지 느껴지기도 했다. 술이 거나해지길래 내가 왜 산보를 할 자신이 없느냐고 물었던 것 같은 기억이 났다. 그랬더니 우 교장은 길을 잃어버릴 것 같다는 대답을 한 것으로 생각이 떠올랐다. 우 교장은 꽤 심각한 표정을 지으면서 나에게 잔을 내밀었었다. 우리들은 잔을 돌리면서 얘기의 꽃을 피웠었다. 우리들의 대화는 자연히 그림으로 모아졌었다. 왜 작품이 없느냐고 물었더니. 우 교장은 난 말이야---

나 참----

아이고, 나 좀 보게---

도대체 내가---

내가 도무지---

하는 췌사만을 연결할 뿐 횡설수설이었었다. 물에 빠진 사람이라고나할까, 늪 속으로 전신이 잠겨드는 사람의 비명이랄까, 그렇지 않으면 헤어날 길 없는 암흑의 미궁에 갇힌 사람이라고나 할까, 우 교장의 헛소리는 내 마음을 참담한 구석으로 몰아갔었다. 그가 그림을 전연 그리지 못한 이유를 비록 취중이었지만 그의 태도가 여실히 설명하고 있는 것 같았었다. 나는 나 자신이 기림을 그리지 못하는 이유를 내심으로 대략 언어로써 연결해보았었다. 그러나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있는 것 같아 나는 더 이상 질문을 하지 않았었다. 내가 그린 그림을 몇 달 묵혔다가 다시 볼라치면, 그것은 도무지 그림이 아니었었던 것이다. 나의 캔버스 위에는 무슨 대상을 그린 그림이 있는 것이 아니라, 강렬한 색채의 흔들림이 그야말로 어지럽게 흩어져 있을 분이었었다. 그렇다고 그것이 무슨 추상화라는 이름이 붙여질 만한 것도 아닌 성싶었었다. 결국 색채와 선이 있다는 면에서 그림일지는 몰라도, 적어도 인간이 가지는 미적 감각과의 관련하에 있지는 않다는 데서 그림은 아닌 것으로서 여겨졌었다. 거창한 이유를 늘어놀 필요도 없이 나는 고림에 소질이 없다고 스스로 판단을 했었다. 그렇다고 칸딘스키니 똥드리앙이니 하는 추상의 대가들을 흉내낼 수만도 없는 노릇이 아닌가. 다만 나는 자신이 그림을 전공한 탓인지, 비록 뚜렷한 작품은 없지만 어떤 색감이 던지는 민감한 충격에는 그럴 수 없이 반응이 깊고 바른 것 같다. 나의 내면에 남아 있는 그림의 영역이 있다면 이것이 전부인 것 같다. 저녁놀로 던져지는 우 교장의 졸린 듯한 시선을 내 나름대로 생각했었던 이유도 역시 이것이 아닌가 믿어진다. 나는 골목을 비껴 지나치고 용산역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아홉 시에 출발하는 군용열차를 타야만 했다. 빗줄기는 다소 약해진 듯했다.

그런데 나는 어느 날 밤 교실의 창가에 서 있다가 우 교장의 방으로부터 무엇인가를 실어내고 있는 학생 유돈식을 보았었다. 수업을 마치고 안 일이지만 우 교장은 재단측에 의해서 권고사직 되었다는 것이었었다. 수업을 마치고 나오니 우 교장과 돈식은 어디론가 자취를 감추고 말았었다. 시간 강사 주제에 뭘 따따부따 물어보겠는가. 나는 그냥 모르는 척하고 학교를 나왔었다. 젊고 유능한 교장을 모셔오기 위해서라는 소문이 돌았었다. 그러나 그 젊은 교장은 영 나타나주지를 않았었다.

근 반년간이나 공석이던 교장 자리에서 나는 거짓말같이 우 교장을 보게 되었던 것이었다. 나를 본 우 교장은 쓰게 웃음을 흘렸었다. 나도 웃는다고 웃었는데 그것이 어떤 웃음이었는지 알 도리가 없었었다. 나는 무슨 말이든 해야 될 것 같아 무턱대고 입을 열었었다.

그림 많이 그렸습니까, 그 동안?

우 교장은 목소리는 접어두고 고개만을 몇 번 주억거리며 나에게 시선을 주었었다. 출근부에 도장을 누르고 교무실을 나오다가 나는 내 등뒤로부터

잘 왔어, 잘 왔어, 박 선생

하는 우 교장의 목소리가 내 목둘레에 와 감기는 것을 느꼈었다. 의자에 앉아 황혼을 바라보는 우 교장의 등은 더욱 굽었었고, 훑어내린 듯 밑으로 빠진 턱은 더욱 길어 보였었다, 화가의 시선은 미적 충동의 시선이며 창조의 시선이다, 시각신경에 의한 생리적 시선은 이미 아니다. 그것은 조형의 시선이며 선의 시선이며 색채의 시선이다. 분명히 화가도 아니며, 그렇다고 화가가 아닌 것도 아닌 우 교장과 나의 시선은 미적 충동의 시선은 될지언정 창조의 시선은 아닌 것이다. 말라버린 창조의 혼을 뿌리째 뽑아 던지지 못하고, 박힌 뿌리의 찌꺼기가 발하는 그 희미한 흔들림 때문에. 겨우 황혼의 색감이 주는 충동 속에서 넋을 잃고 있는 우 교장의 모습은 언제나처럼 나에게 암울한 좌절의 휘장을 더욱 두텁게 드리우는 것이었다. 빌어먹을 늙은이, 칵 뒈지지 못하고! 나는 언덕을 내려오면서 누구에겐가인지도 모르면서 씹어뱉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했었다.

학교를 나오다가 안 나오다가 하던 돈식이가 얌전하게 책상을 지킬 뿐만 아니라, 내가 오후에 학교에 들르는 날이면 캔버스 위에다 힘찬 붓의 터치를 던지는 모습이 눈에 뜨이곤 했었다.

용산역으로 굽어드는 골목 입구까지 왔다,

왼편에는 철도 병원의 음영이 옛 모습을 나에게 회상시키며 드러누운 거대한 동물처럼 물안개 낀 시야 속에 들어왔다. 나는 역 광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조명등 불빛 퍼지는 역 광장의 공간으로 뿌려지고 있는 빗줄기는 내 마음을 더욱 호젓하게 만들었다, 위축되었던 내 마음의 공간에도 비가 뿌려지고 있음을 광장의 공간은 새삼 일깨워주었다. 시간이 이른 탓인지 대합실에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나는 아홉 시 차표를 끊었다. 딱딱한 나무의자에 몸을 내리니 몸은 물먹은 솜처럼 무게를 가해오며 웬지 허물쩍거리는 것 같았다. 빗줄기에, 피로에, 허기에. 회상에 전신의 기능은 풀어져버렸는지도 몰랐다. 대합실 입구 저 너머 공간을 채우고 있는 빗줄기들은 대합실에서 흩어져나간 광선 속에 그 가녀린 모습을 드러내었다. 나는 시계를 보았다. 아직 한시간이나 남아 있었다. 다시 광장의 공간 앞에 서보고 싶었다. 나는 자리를 떴다. 비에 젖은 옷가지들이 전신에 감겨왔다.

대합실의 입구에 서서 바라보는 빗줄기의 광장은 대합실을 향해 걸어오면서 보았던 광장과는 또 다른 공간이었다. 마침 역 구내에서 길고 구성진 기적소리가 빗속을 뚫고 들려왔다. 지금의 광장에는, 대합실의 입구에 서서 바라보는 지금의 광장에는, 내 기억의 저 깊은 골짜기에서 망각의 흐릿한 지평으로 넘어가던 십 년여 시간을 뛰어넘은 그 옛날의 서울이 있었다. 저기 조명등 불빛 아래 금싸라기처럼 그 뿌려지는 모습을 드러내는 빗줄기들은 물을 머금을 대로 처음은 내 의식의 공간에 그 옛날 이 거대한 삶의 바닥 위에 내가 흩뿌려놓았었던 내 젊음의 편린들을 따갑도록 회상시키는 것이었다. 나는 타들어 오는 내면의 갈증을 끄기라도 하는 듯이 담배를 피워 물었다. 나는 갑자기 우 교장이 만나고 싶어졌다. 빗방울 흩어지는 저 암흑의 공간 너머. 주검처럼 가라앉은 시간의 잔해 속에서, 물기와 물기로 이어지는, 색채와 색채로 이어지는 내 의식의 잊혀진 뒤 안을 밟고, 우 교장은 손짓을 하며 홀연 모습을 나타낸 것이었다.

이튿날 새벽 차를 타면 직원조회에 참석할 수가 있기 때문에 나는 우 교장을 찾아 나섰다. 막상 차표를 끊어 쥐고 대합실에 서니, 이제 가면 또 언제 상경하게 될는지 기약할 수 없었고, 그때도 오늘 저녁과 같은 의식의 공간을 내 자신 가질 수 있게 될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내 마음은 바뀌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조명등 불빛에 가려진 광장의 공간 너머, 암흑의 거대한 미궁 속에서 길을 잃고 허우적거리는 늙고 병든 우 교장의 모습이 거길 떠나려는 기차에 몸을 싣고자 하는 나에게 손짓을 하 는 것이었다.

<잘 왔어, 잘 왔어. 박선생!>

나는 비닐 우산을 펴들었다. 다시 광장으로 내려섰다. 두두두둑 거리며 비닐이 빗방울을 받았다. 기억을 더듬어 걷고 또 걸었다. 나는 기억 속을 걸었고 빗속을 걸었다. 십 년여의 수풀을 헤치는 내 의식은 분명 미로를 헤매는 듯했고, 힘이 빠진 두 다리는 내 의식을 과거로 회귀시킨다는 의미로 그냥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나 내 기억 속의 거리는 그대로 기억일 분 내 눈앞의 거리 모습과는 별 관계가 없는 듯했다. 나는 그냥 걸음을 옮겨놓을 수밖에 없었다. 이 걸음이 목적지와 내 몸뚱이와의 거리를 좁혀주는지 넓히고 있는지 거의 구별이 안되었다. 그냥 헤맬 뿐이었다. 어둠과 물안개를 뚫고 시커먼 굴다리가 나타났다, 내 기억 속의 굴다리와 합쳐지는 듯하다가 유리되었다, 굴다리로 들어가는 진입로의 양옆 건물들이 내 기억을 흔들어버렸다. 그러나 비스듬히 누운 굴다리의 모습은 내 기억을 뿌옇게 재현시켜주었다. 행인이 끊어진 도로 위에는 질주, 질주, 자동차의 질주만이 있었다. 길거리 상점들의 문은 거의 반쯤 닫힌 채였고, 이층으로 오르는 계단의 입구에는 버스나 택시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굴다리에 들어서니, 천장에서 물이 듣고 있었다. 십여 년 전의 굴다리 그것이었다. 불쾌하게 내 목덜미에 떨어지곤 했었던 그 물방울의 감각이 되살아났다. 굴다리의 땅바닥에는 물이 고여 있는 데가 있어서 나는 자칫 넘어질 뻔하였다. 희미한 백열등이 빛을 발하고 있었지만 굵게 들어선 시멘트기능들에 가리어 밑바닥을 알아볼 수 없는 경우도 있었다. 몇 사람이 맞은편에서 굴다리 속을 걸어나오고 있었다.

바짓가랑이들을 한 손으로 걷어올리고 다른 한 손으로는 우산을 든 그들의 모습은 굴다리 너머 거기 있을 저 시간의 검은 바다에서 헤엄쳐 나오는 듯 나에게 어떤 절망감을 던지는 것이었다. 우 교장은 아직도 살아 있을까? 미술 학교의 교장 노릇을 아직도 하고 있을까? 그 신축교사는 설마 지금은 다 지어졌을 테지. 우 교장의 거처는 여전히 그렇지는 않겠지. 가끔 얼굴을 나타내어 교실의 창틀 위로 두 눈을 얹어놓던 그 재단이사장이라던 젊은 친구는 지금도 그렇게 젊지는 않겠지.

그러나 내가 굴다리를 빠져 나와 지저분한 진입로를 벗어났을 때, 나는 다시 그 굴다리가 기억 속의 그것이 아닐는지 모른다는 의구에 사로잡혔다,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그 답답하고 우울한 판자촌 풍경이 아니었다. 언제나 사람이 우글거리고, 방과 부엌과 마당 아닌 골목을 한꺼번에 비춰야만 하는 삼십 촉 전구들이 졸고 있는, 그래서 어쩌면 인정이 느껴질지도 모르는 판자촌이 아니었나, 오만가지가 득시글거리는 것이 판자촌이다. 악취가, 고함소리가, 신음소리가, 아이들이, 처녀들이, 총각들이, 아줌마들이, 술꾼들이, 할망구들이, 영감들이, 쥐새끼들이, 유행가가락이, 대폿집 이, 전깃줄이, 똥 구린내가, 울음소리가, 웃음소리가 득시글거리는 곳이 판자촌이다.

이 굴다리를 지나 대폿집들이 늘어선 언덕길을 오르면 시장이 있었었고. 그 시장을 끼고 돌아 계속 언덕을 꼬불꼬불 따라 오르면 미술학교가 있었었던 것이다. 그러나 횅하니 뚫려버린 큰길 저 너머에는 상상치도 못한 엄청나게 큰 건물이 들어서 있었고, 옆집에서 비치는 불빛 때문에 고만고만하던 판자촌의 옅은 그늘은 간 데가 없고, 큼직한 그늘이 드리워져 있는 공지가 있었건 것이다. 빗줄기들을 헤치고 자동차들은 달리고 있었다. 그러나 이 굴다리는. 그 늘어선 시멘트 기둥들로 보아 그 옛날의 그것이 틀림이 없는 것 같았다.

나는 큰길을 가로질렀다. 비에 젖은 내 몸은 네모가 반듯한 거대한 시멘트 건물이 던져놓은 큼지막한 그늘 속에 있었다. 비닐 우산의 한 끝을 치켜들었을 때, 그 건물의 이마빡에서 -서울 아파트-라는 글자가 내 시야에 들어왔다. 나는 이 건물을 지나 기억 속의 그 미술 학교를 찾아들었다. 비 내리는 밤은 깊어 가는 듯했다.

언덕길은 기억 속의 그 옛길을 확인하여 주었다. 길을 덮은 아스팔트 위로 빗물이 흐르고 있었다. 언덕길의 양옆에는 반찬가게, 약국, 대폿집, 양장점, 시계포들이 늘어서 있었으며 그런대로 사람들이 내왕했다. 옛 모습은 완전히 사라지고 없었다. 그 굴다리와 굴다리의 교각과 밋밋한 언덕의 경사만이 내 기억과 일치할 분이었다.

나는 길을 걸어 올랐다. 끊임없이 조그만 가게들이 불빛 속에 드러났다, 웬 여관이 그렇게도 많은지 나는 저으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으슥한 골목마다 아크릴 광선을 토하면서 붙어 있는 여관 간판에 나는 현기증이 날 판이었다. 이 거대한 밋밋한 동산을 나는 마구 걸었다. 그 꼭대기쯤에 잘 단장된 미술학교는 있으리라 생각했다. 비는 억수같이 내렸다. 비닐우산은 마구 울어댔다. 숨이 가빠지는 듯했다. 몸에서도 열기가 느껴졌다, 한참을 걷다보니 눈앞에 큰 건물이 나타났다. 이것이 미술 학교겠지. 그러나 미술학교치고는 너무나 괴딴스러운 것이었다. 어둠에 가리워진 건물은 빗속에 우뚝 서 있었다. 건물의 현관쯤에서 어깨를 웅크리고 누군가가 걸어나왔다. 빗줄기와 어둠에 가려 사람을 구별할 수 없었다.

여보세요. 여기가 어딥니까?

뭐요?

사내의 퉁명스런 목소리였다.

여기가 어디냐구요.

여기요? 서울이외다, 서울.

아니, 서울 어디쯤 되느냐 말입니다.

서울 한 복판입니다요.

저 건물은?

저거요? 남서울 아파트 아닙니까.

사내는 우산을 획 옮기면서 걸음을 떼어놓았다.

혹시 미술 학교를 모르십니까? 미술 학교를.

미술 학교라니, 무슨 소리하는 거요?

이 근처에 미술 학교가 있었는데.

모르겠소. 학교라고는, 다시 이 길을 넘어가면 이켠 오른 쪽으로 국민 학교가 있을 거요.

혹시 우교장이라고,,,,,,

모르겠소. 그 국민학교 교장이 우 교장인지는.

나는 고개를 들어 언덕을 쳐다보았다. 언덕을 오른다는 내 발길은 언덕에서 더 멀어져 있는 것 같았다. 빗소리의 정적을 머금은 채 물안개 속에서 조용히 가라앉고 있는 이 거대한 건물은 나에게 형언할 수 없이 답답한 압박감을 가해왔다.

나는 발길을 돌려 다시 걸음을 옮겼다. 다리가 휘청거렸다. 언덕을 오르는 택시의 행렬이 줄을 이었다. 아스팔트를 흘러내리는 물이 차바퀴에 튀어 내 다리를 때렸다. 나는 거의 비틀거리다시피 하면서 걸음을 옮겨 놓았다. 우 교장은 아직도 살아 있겠지. 그 괴상스런 교장자리를 여전히 그렇게 지키고 있을는지도 모른다. 갈증도 허기도 피로도 어디론가 물러가 버린 것 같았다. 감각의 마비 상태에 빠진 것 같기도 했다.

빗줄기는 더욱 세차게 비닐 우산을 때렸다. 왜 그런지 우 교장은 살아 있을 것만 같다. 죽음의 해안을 홀로 허우적거릴 것만 같다. 내 몸뚱어리가 빗물에 젖어 있다는 사실이 거의 의식되지 않는다. 나는 우 교장을 찾아 우중을 걷고 있는 것이다. 아니다. 이것은 우중이 아니라 그냥 물 속이다. 물 속의 미궁을 걷고 있는 것이다. 아니다. 물 속에 잠겨버린 미궁을 헤매고 있다. 어디론가 영영 잠적해버릴는지도 모르는 그 비틀거리는 노화가, 아니 늙은이를 찾아서 이렇게 헤매고 있다. 화가가 그림을 그리지 못하면 벌써 다리는 비척거리게 되는 것일까. 그래서 길을 잃게 되는 거겠지. 우 교장을 찾아야 한다.

우 교장을. 얼마큼 걸었을까. 호텔, 여관, 여인숙의 그 붉고 푸른 아크릴 간판의 숲 저 너머에 거대한 건물이 나타났다. 우 교장의 미술 학교가 저렇게 변화되었다는 말인지. 나는 믿어지지가 않았다. 내 마음은 다소 다급해지는 듯했다. 빨리 우 교장을 만나고 싶다. 이번에도 만나면 내 우산 속으로 들어와, 잘 왔어, 잘 왔어 박 선생, 하면서 나를 끝도 없이 따라오겠지. 긴장되어 가는 자신을 느꼈다. 가슴이 두근거려왔다. 나는 가만가만히 건물로 다가갔다. 지저분한 공터를 지나 건물의 입구가 있었다. 건물의 오른쪽으로는 밤하늘에 뿌려진 그 무수한 별들의 가루처럼, 시가지 저 멀리에서 피어오르는 갖가지 불빛이 물안개 속에서 가물거리고 있었다.

여기가 서울 미술학굡니까?

나는 수위실 쪽인 듯한 데로 소리를 질렀다. 목소리가 빗소리 속으로 먹혀버린 탓인지 잠잠하였다.

여보세요.

현관 안으로 걸어들면서 사람을 불렀다. 수위실 간판 밑의 여닫이창문이 열리더니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희미한 전기불이 공간을 밝히고 있었다. <여기가 미술학굡니까 ?>라고 다시 물으려 다가 아무래도 학교 같은 냄새가 나지 않아 나는,

여기가 어딥니까?

하고 물었다.

여기요? 아파트 아닙니까, 아파트.

무슨 아파튼데요?

새서울 아파트 아닙니까. 나 원. 누굴 찾아오셨소?

아니오. 아니오.

나는 도망치듯 현관을 빠져 나왔다. 빗줄기는 조금도 약해지지 않고 비닐 우산을 때렸다. 절망감이 가슴을 메워왔다. 우 교장을 만난다는 것은 왜 그런지 불가능하게 느껴져 왔다. 미술학교의 위치와 존재 여부를 알아내는 것조차도 도무지 가능해 보이지가 않았다. 나는 어둠 속에서 마구 그어지는 빗줄기를 비닐 우산으로 막아내며 힘없이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어둠이, 빗소리가, 형언할 수 없이 가슴속으로 꺼져 들어가기만 하는 절망감을 데리고 나를 겹겹이 에워싸고 있었다.

건물 밖에서 나는 한참을 그러고 서 있었다. 움직이지 않고 정지해 있으니 비닐 우산은 더 세게 우는 것 같았다. 빗줄기에 두들겨 맞는 비닐의 울음은 내 귓속으로 마구 파고들었다. 귓속이 멍해져왔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그러고 서 있을 수도 없었다. 택시와 자가용이 빗줄기 속으로 헤드라이트 불빛을 그으며 와 멎었다간 떠나곤 했다.

나는 걸음을 옮겼다. 빗물에 젖은 서울이 저 아래로 어둠을 짙게 머금은 채 흔들리고 있었다. 미술 학교와 우 교장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 나는 속으로 되풀이하여 자문하였다. 새서울 아파트? 틀림없이 이것이 세워진 자리가 미술학교의 그것인 것 같은데, 아파트 건물에 짓눌려 그대로 땅속으로라도 꺼져 내렸단 알인가. 혹시 저 수위실의 사람은 미술학교의 행방을 알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이런 생각이 드니 발걸음을 돌리지 않을 수 없었다.

.

창문에 뿌려지는 빗소리를 흔들면서 한 점 괘종시계 소리가 귓속으로 들어온다, 네 시 삼십 분이다. 이제 새벽을 향하여 땅덩이는 거의 다 돌아가고 있는 모양이다. 어둠도 물러갈 준비를 서두는 것 같다. 옆방 문이 갑자기 드르륵 열린다.

쩝쩝 입을 다시는 사내의 입소리가 울린다.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발소리가 들린다, 힘차게 뿜어지는 길수씨의 숨소리가 거듭거듭 빗소리를 밀어내고 있는 것 같다. 떠나기 전에, 서해의 바닷가로 떠나기 전에 우 교장을 다시 한번 찾아 나서고 싶다, 길수씨가 도와주겠지. 그러나 길수씨도 모른다고 하지 않았나. 나는 어둠 속에 우뚝 상체를 세운다.

 

내가 다시 그 새서울 아파트의 현관에 이르렀을 때, 웬 사내가 그 희미한 전기 불빛을 등으로 받으며 멍하니 서서 내가 걸어오는 쪽으로 시선을 주고 있음을 알았다. 남루한 옷차림이었다. 절어든 세월의 때를 느끼게 했다. 아까의 수위 같았다.

여보세요. 한가지만 더 묻고자 하온데,,....

비닐우산이 치워진 내 얼굴을 사내는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 자리에 있었던 서울미술학교라고 혹시 모르십니까?

허리 뒤로 가 있던 사내의 오른손에는 담배가 쥐어져 있어, 사내는 한 모금 빨고는, 연기를 내뿜으며 나를 꽤 유심히 들여다보는 게 아닌가.

박 선생님이지요?

나는 얼떨떨했다. 이윽고 놀라왔다. 나도 유심히 사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안면이 있는 얼굴인 듯하였다. 그러나 누구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흘러간 시간의 어두운 공간에서 이 사내의 얼굴은 얼른 떠올라주지를 않았다. 나는 기억의 어둠 속을 맹렬히 뒤지는 한편 사내를 더욱 유심히 살폈다.

그렇습니다만 누구신지.

아이고, 이것 참 몇십 년 만입니까? 혹시 죽기라도 했는 줄 알았지요. 난 길숩니다. 길수, 이길숩니다.

사내는 손을 내밀었다. 우리는 손을 잡았다. 반가운 마음이 가슴을 적셔왔다. 빗물만이 가득한 이 어둠의 공간에 아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여간 다행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길수란 이름은 여전히 내 머리에 분명히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나 내색할 수도 없어서 나는 얼굴을 풀면서 말했다.

. , 이길수씨. 참 오래간만입니다. 그래, 요즈음은 뭘 하고 지내시는지.

좌우간 이 사내는 최근에 내가 안면을 트고 지내는 사람은 아니었다. 말하는 푼수로 보아 아득한 옛날에 알고 지내던 사람 같아 나는 안부도 물을 겸 간접적으로나마 이 사내를 과거에서 내 의식 속으로 끌어내고 싶어 질문을 던졌다.

여전히 이 수위 노릇이지요. 별수가 있습니까. 그 동안 몇 번이나 동대문 시장에서 장사도 해봤는데 도무지 밑천이 있어야지요. 뛰어봐야 벼룩이라, 결국 이 짓 못 버리고 있습니다.

사내는 선량하게 웃었다. 이길수씨, 당신이 누구인지를 알겠다. 서울 미술 학교의 수위실을 지키던 당신의 얼굴이 떠오른다, 복직한 우 교장의 월급이 반으로 줄어들었다는 사실을 나에게 맨 먼저 알려준 당신의 얼굴을 짙은 망각의 안개 저 너머에서 뚜렷이 볼 수가 있다. 나는 사내의 손을 세게 잡아 흔들었다.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 길수씨.

사내도 반가운지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길수씨는 주의 깊은 시선을 계속 나에게 던지고 있었다. 나 역시 그를 유심히 살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길수씨와 나 사이에 가로놓인 십 년이란 세월은 짙은 안개처럼 두터운 부피감을 드리우는 것이어서 무언가외 경계심을 자아내게 했다.

피로해 보입니다, 길수씨.

했더니,

박 선생님 안색이 영 말이 아닙니다.

하고 대꾸했다.

얼굴이 너무나 새하얗군요. 그 동안 중병이라도,,,,,,

그는 말을 덧붙이더니 잇지를 못했다. 나와 길수씨는, 야간교대를 한 길수씨는, 같이 내 비닐 우산을 받으면서 빗속을 걸어들었다. 그는 계속 담배를 피워댔다. 담배 타들어 가는 소리가 빗소리에 묻혀서 들리는 듯했다. 언덕 아래, 어둠 속에 가라앉은 시가지에서는 비바람이 불어대고 있었다. 빗줄기가 어지럽게 얼굴을 휘감아왔다. 길수씨는 흑 흐느끼는 듯했다.

무슨 몹쓸 병에라도,,,,,,

소주잔을 비우며 길수씨는 그의 최대의 관심사를 되풀이했다. 그러면서 그는 나의 몰골을 유심히 뜯어보는 것이었다. 솜덩이처럼 물을 머금은 내 옷은 흙이 처발려진 채로 구겨져 있었다. 잔을 주거니받거니 하면서 우리는 허기와 한기를 풀었다. 꽤 많은 술꾼들이 열기를 흐뜨리면서 지껄였다. 우리도 지지 않을세라 대화에 열기를 더해갔다. 그 대폿집의 지붕이 함석인지, 담배연기 자욱한 나지막한 천장에서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유난히도 세차게 일고 있었다. 우리는 담배를 나눠 물고 성냥불을 나눠 붙였다.

난 아픈 적이 없었습니다, 결코.

그런데 왜 얼굴이 그러십니까? 꼭 중병 앓은 사람 얼굴 같습니다,

난 오늘 마구 헤맸습니다, 정처 없이.

왜요?

어둠과 비를 헤치고.

나는 중얼거리듯 얘기하면서 소주잔을 비웠다.

서울미술학교를 찾으려고요?

아니지요.

그러믄요?

바람이 부는지 천장에서 우장창거리는 소리가 났다. 비의 공간을 찢는 클랙슨 소리가 저 아래 시가지에서 전해져왔다. 길수씨 앞의 소줏잔이 새하얗게 형광을 반사하며 떠올라 보였다.

미술학교는 보시다시피 저렇게 아파트로,,,,,,

알고 있습니다. 길수씨, , 잔이나 비웁시다.

육실헐, 무슨 놈의 비가 이 가을에 이리 내리는지.

나는 쉽게 말을 이었다.

미술 학교를 찾아 헤맨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럼 왜 헤맸습니까?

잃어버린 동행자를, 처음에는, 찾아 나선 셈이지요 마.

그런데요? 박 선생님, 많이도 변하셨습니다. 말을 분명히 못하시는군요.

, 그렇습니까? 우 교장의 생사라도 알고 싶어서.

나는 잔을 단숨에 비웠다. 긴장의 순간이었다. 나는 눈을 감고 힘껏 소주잔을 빨았다. 취기가 전신을 허물어뜨려 가고 있었다.

그러실 줄 알았습니다. 학교가 불도저에 밀리던 날까지는 그 학교 뒷방에 계셨는데, 학생 하나가 짐을 꾸려 가지고 같이 어디론가 나가셨습니다만 도무지 ---

길수씨. 당신 왜 술을 안 드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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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럼통 주탁에 올려놓은 연탄 위에서 김치찌개가 끓고 있었다. 머리에 머금었던 빗물이 덥혀졌는지 미지근하게 이마를 흘러 얼굴을 타고 내리는 것 같았다. 흘러내리는 액체를 보고 길수씨의 얼굴은 갑자기 심각해졌다.

난 우는 게 아닙니다, 길수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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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나는 우 교장을 찾아 나선 것만도 아닐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네 홉들이를 두병째 까고 있었다. 빗물과 자동차만이 흐르던 아스팔트와는 달리 대폿집 안은 북적거렸다. 문이 드르륵 하면 이어 사내들의 투박한 목소리가 났다.

비 참 더럽게 오네.

이런 날 술맛은 제 맛이지.

아줌마, 거 홍어회나 많이 주슈.

거 콩나물국이 있소. 오늘 같은 날!

이런 날 한잔 안 걸치면 못 배기지.

허지만, 난 우 교장을 찾아 헤맸던 건 사실이오.

우라질 영감, 참 째지게 불쌍하데요.

취기가 길수씨와 나를 덮쳐왔다. 길수씨의 말투는 거칠어져갔다.

지금쯤 땅속으로 갔겠죠. 설마 지금도 살아서 그러고 있기야 하겠습니까, 박 선생님.

그럴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머리를 한번 내둘러보았다, 휘감아드는 취기를 떨쳐버리기라도 하듯이. 그러나 취기는 꾸역꾸역 눈앞을 막아들었다.

흐르는 빗물이나 닦으셔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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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마를 흘러내리는 빗물을 손바닥으로 훔쳤다.

머리에서 김이 나누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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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잔을 비우면서 건성으로 대답하고 있었다. 무엇인가 나는 자꾸만 심각해져 가는 자신을 느끼고 있었다.

근데, 박 선생님, 그렇다면 왜 이 우중을 헤맸다 말입니다.

우 교장을 찾아 나섰는데.

똑같은 말만 되풀이하지 마십시오.

아닙니다. 되풀이는 하지 않습니다.

벌써 몇번이나 그 소릴 하셨는지 아십니까?

그랬던가요. 아 참, 그랬구만. 그건 다름이 아니라, 나 역시 확실히 알지 못 하겠기에,,,,,

뭘 말입니까?

내가 왜 이 거리를 헤맸는지.

우리들은 잔을 맞바꾸었다.

길수씨, 나는 무엇인가를, 소풍한 무엇인가를 이 바닥에다 잃어버린 것같습니다.

뭘 잃어버리셨다구요?

, 내 이 가슴을 미치게 만드는 소중한 그 무엇을.

그래서요.

지금 생각하니 고걸 찾아 헤맨 것이 아닌지.

빗줄기가 지붕을 더욱 세차게 두들겨댔다. 돈식의 그림이 순간적으로 뇌리를 흘러갔다. 그 찬란한 색감에의 충동은 나에게 갈증을 불러다 주었고, 그 위에 잔인하게 그어진 검은 획선의 굵은 질감은 나를 여지없이 회색의 웅덩이로 침몰시키는 것이었다. 나는 돈식의 행방을 아느냐고 물으려다가 그만두었다. 나는 과음해서는 안 된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하고 있었다. 소중한 그 무엇인가를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흘려버리고, 또 만취까지 되어 쓰러진다면 내 꼴은 무엇이 되겠는가라는 생각이 나를 휘저어들었다. 그러나 미칠 것만 같이 타들어 오는 갈증은 연방 내 손을 잔으로 가져가게 했으며, 또한 길수씨에게 잔을 권하게 했다. 흐르는 빗물을 닦으라는 길수씨의 말이 희미하게 귓전에 들려왔다. 나는 왼손바닥을 이마로 가져가면서 오른손으로는 잔을 비웠다. 잔을 입술에서 떼려는 찰나에, 내 콧잔등에서 흘러나오는 끈끈한 액체와 더불어 흐흑 하는 음향이 튀어나왔다, 몽롱한 시야 속에 길수씨의 정색하는 얼굴이 나타났다. 길수씨, 나는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알콜이 그냥 조금 콧잔등에 걸린 모양이지요. 나는 감정이 어느 외곬으로 휘말려드는 것 같은 느낌을 안고 자리를 떴다. 나를 어둠 속에 아무렇게나 방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빗속의 방황을 나는 그냥 그대로 간직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몹쓸 술 주정으로 끝난다면 나의 아픈 마음은 어찌할 것인가. 빗물로 채워진 거리의 공간이 어둠 속에 휑하니 뚫려 있었다.

시계는 열한 시 삼십 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자동차의 행렬은 헤드라이트 불빛에 물살을 허옇게 가르면서 질주했다. 좁아터진 비닐 우산 속으로 길수씨와 나는 비를 피해 머리를 쑤셔작고 걸음을 옮겼다. 길수씨의 두 다리가 문어발처럼 제멋대로 놀아나 물구덩이에도 빠졌다가 내 다리도 걷어찼다가 했다. 어깨를 마구 부딪쳐오기도 했다. 그는 푸푸 하는 소리를 뿜어내면서 쏴아 세상을 압도하는 빗줄기 속으로 뛰어들기도 했다. 어둠 속에 비를 이기면서 서 있는 수많은 여관 호텔의 간판만이 시선을 끌었다. 빗속으로 튕겨 나갔던 길수씨가 다시 우산 속으로 머리를 디밀어오면서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아니 그래, 그 소중한 것을 왜 잃어버렸습니까요? 박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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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답 대신 그의 어깨를 안았다. 예상 외로 가냘픈 어깨였다. 여보. 길수씨, 자꾸 빗속으로 뛰어들지 마시오. 그리고 나도 모르는 그따위 어려운 질문을 자꾸 하지 마시오. 정말이지 나도 잘 모르오. 그저 그렇다는 것뿐입니다. 길을 잃어버린 사람이 왜 길을 잃어버렸는지 확연히는 모르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 순간. 나는 캔버스를 짓이기고 싶은 미칠 것 같은 색채에의 충동을 억제할 수 없었다. 소리치고 싶었다. 쥐어뜯고 싶었다. 울고 싶었다. 그것이 비록 예나 다름없이 색채의 분별없는 휘갈김에 지나지 않더라도 붓을 들어 캔버스 위를 달리고 싶었다. 돈식이가 던져놓은 그 색감도 눈앞에 어른거렸다. 아찔하게 반짝이지만 숨이 칵 막히도록 캄캄한 돈식의 그림은 내 뇌리 속에 깊이 배어든 듯하였다. 무엇인가 비인간적인 것이 우글거리는 검은 절망감이 거대한 쇠뭉치가 되어 내 가슴을 쾅 내려찍는 듯했다. 나는 비틀거리며 이 감정의 미궁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게 된다. 허우적거리기도 했다. 나는 길수씨에게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었다. 나는 취기를 떨쳐버리기 위해 머리를 내저었다. 모른다는 얘기구만요, 하고 길수씨가 말을 한 것 같았다.

다섯 점을 때리는 시계추소리가 느릿느릿 새벽의 가라앉은 공기를 흔들고 있다. 새벽을 질주하는 자동차 엔진소리가 견고한 밤의 어둠을 뒤흔들면서 여명을 머금고 창틀 위에 쌓이고 있다. 유리창 위에 부서지는 물방울의 모양이 희미하게 시야에 들어온다. 무엇을 찾아 헤매었건 나는 일단은 우 교장을 만나고 싶다.

그를 만나지 못하더라도 그의 생사를 확인해보고 싶다. 길수씨를 깨울까? 그러나 그가 있은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불을 켤까? 아니다, 불을 켜면 길수씨가 잠을 깨고, 이 방의 지저분한 모습이 드러나겠지. 다섯 시를 쳤건만 왜 그 배뚱뚱이 주인은 나를 깨우러 오지 않는 것일까, 내가 네 시에 깨워달라고 부타했는데. 아니다. 그럴 것이 아니다. 여기를 가만히 탈출하자. 배뚱뚱이 주인이 나타나기 전에, 길수씨도, 이 지저분한 방도, 그리고 저 유리창도 그대로 버려 두고, 여길 빠져나가자. 그리고 시간이 허락하는 한 근처를 헤매어보자. 그리고 이른 잠을 깬 사람들에게 물어보자. 혹시나 우 교장의 거처를 아느냐고. 나는 부시럭거리는 소리를 죽이면서 머리맡에 던져논 옷들을 주워 입는다. 물기가 조금도 가시지 않은 것 같다. 더욱 무겁게 느껴진다. 날이 깨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빳빳하게 무거워진 옷가지들을 걸친 채 몸을 일으켜 세운다. 바짓가랑이로 찬바람이 들어온다. 길수씨에게 시선을 준다, 세상 모르게 잠들어 있다. 피부에 와 닿는 어둠을 헤치고 방을 나와 복도에 선다. 저쪽 계단 근처에서 희미한 불빛이 전해지고 있다. 갖가지 음향의 숨소리들이 나를 엄습한다. 계단으로 걸어간다. 괴상스런 신음 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하다. 계단을 내려온다. 다리가 휘청거린다. 이층 여인숙의 현관문은 벌써 열려 있다. 현관문 밖에서는 옅어진 어둠을 헤집고 비가 쏟아지고 있다. 나는 내 것인 듯한 비닐 우산을 빗줄기 속에 폈다. 두르르르룩 하는 소리가 귀를 메워온다, 나는 빗속에 얼어붙은 듯 잠들어 있는 거리를 걸어간다. 말할 수 없이 허전하다. 거리는 어둠이 벗겨지고 있다. 어 떤 큰 건물의 창문들에는 횐 커튼이 쳐져 있다. 택시들의 질주가 비의 공간을 메우고 있다. 흐르는 택시를 바라보면서 나는 거리를 걷는다. 우 교장을 찾아보고 싶다, 그러나 이제는 힘도 용기도 없다. 빗줄기 들어찬 밤의 공간이 부는 먼먼 세월에의 부름도 옅어져버린 것 같다. 무엇보다도 나는 지치고 지쳐 있다. 이제는 쓰러질 것만 같다. 나는 고개를 돌려 우산을 젖히고 저 멀리 솟아 있는 언덕을 바라본다. 빗속의 여명 속에 네모진 건물들이 너무나 무표정하게 서서들 있다. 나와는 아무런 관련도 맺고 있지 않는 그 어떤 영역이 그냥 있을 뿐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용산역으로 달려가 군용열차 꽁무니에 붙은 객차에다가 몸을 싣는 외는 아무 것도 있을 수 없는 듯하다. 우 교장을 찾아 나선 나를 비웃고 있는 것 같다.

어둠 속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플랫폼은 물 속에 파묻힌 섬처럼 쓸쓸하기 그지없다. 빗줄기에 얻어맞은 시멘트바닥은 까칠하게 돋아나 보인다. 대기중인 객차에 쫌을 얹는다. 빗속의 새벽차라서 그런지 승객은 많지 않다. 한기가 엉겨 있는 창가의 어느 좌석에 몸을 내린다. 빗물이 새어들어 앞좌석의 등받이에는 얼룩이 져 있다. 군복차림이 어둠 속을 내왕하고 있는 게 보인다. 뿌연 창 너머로 오래된 역사의 우중충한 모습이 비쳐온다. 텅 빈 플랫픔에 쏟아지는 빗줄기는 빈사의 내 가슴에 슬음의 도랑을 만드는 것 같다. 이것은 감상인가. 이 나이에 이 무슨 센티인가. 감상인지 모른다. 일종의 주책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쏟아지는 빗줄기 속에, 피어오르는 빗소리 속에 떠올라 보이는 우 교장의 모습은 그 빗줄기 속을, 그 빗소리 속을 걷히는 어둠과 함께 벗어나려 하는 나의 흐릿한 시야에서 힘없는 몸짓을 하면서 나에게 무언가를 호소하고 있는 듯하다. 이 거대한 삶의 미궁에서 길을 잃고 허우적거리다가 끝내는 헤어나지 못하고 그 속으로 영영 빨려 들어가 버린 우 교장의 모습이, 여객들의 체온 탓으로 가볍게 서리기 시작한 차창의 김발 위에 어리어온다, 인생에의 모든 꿈을 잃어버린 채, 미칠 것 같은 색채에의 충동을 끄지 못하고, 그림 못 그리는 화가 아닌 화가가 되어 공허한 가슴을 안고 비틀거리는 나의 모습도 비쳐온다. 우 교장의 모습이 어린다. 박 선생의 모습이 비친다, 우 교장의 모습이 비친다. 박 선생의 모습이 어린다. 부저가 울린다, 기관차가 내뿜는 긴 한숨소리가 들린다. 덜커덩 덜커덩 덜커덩 덜커덩.

둔중한 쇠붙이의 마찰음이 연쇄적으로 일고 있다. 역사의 지붕 위에, 구름다리의 지붕 위에 쏟아지는 빗줄기에서 하얀 띠의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있다. 차체는 미끄러진다. 기적이 빗속을 퍼져간다. 누군가가 플랫픔에서 비를 맞으며 이 쪽으로 마구 달려오고 있다. 이리 뛰고 저리 뛴다. 차체의 진전은 빨라진다.

뚜우 기관차의 기적소리가 찌푸린 하늘을 흔들고 있다. 서린 김을 닦아내고 얼굴을 차창에 대어본다. 머리털이 빗줄기에 쓸려 이마가 덮이고 전신에 옷이 달라붙은 조그맣고 깡마른 길수씨다. 무엇인가를 소리치고 있다. 들리지 않는다. 내 이름을 부르겠지. 그는 내 얼굴을 보았는지 못 보았는지 흐린 하늘 저 멀리 쏟아지는 빗속을 허우적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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