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自殺) 파티 -정을병
책방주인은 책방의 안쪽에 앉아 있었다. 주인이 앉은 자리는 입구에서 왼쪽으로 중간쯤 되는 곳이었다. 그러나 입구 쪽에다 비하면 구석지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아무리 이쪽에서 책을 들여다보고 있어도 주인은 아는 척하지 않았다,
책방에는 항상 사람들이 많지 않아서, 주인이 원하기만 하면 이쪽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금방 알 수가 있었다. 고러나 주인은 별로 그런 걸 신경 쓰고 있지는 않는 것 같았다.
이기영은 안으로 들어갔다. 가장 인기가 있는 소설류는 입구 쪽의 넓은 자리에 진열되어 있으니 아무나 한시간 가량 읽는다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지만 사전류는 안쪽에 있어서 부득이 안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주인은 턱이 파래로 내려앉은 데다가, 아래턱이 앞으로 나와 있었다. 어딘지 모르게 인심이 좋아 보이는 인상을 주기는 했지만 얼이 빠져 있는 것 같기도 하였다.
그는 책을 읽거나 다른 활자를 읽을 때는 반드시 안경을 뒤집어썼다. 그럴 때는 이쪽 사람이 하나도 보이지 않을 것이 틀림없다. 그런지 어떤지는 물론 본인이 아니고서는 잘 모르는 일이지만----
이기영은 안으로 들어가서 문학사전을 찾았다. 쥐가 고양이 앞을 모르게 슬금슬금 지나가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러나 고양이는 정말 자기를 쥐로 생각하고 있는지 어떤지는 잘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책방이란 다른 가게와는 달라서, -을 사지 않아도 한두 시간쯤 공짜로 책을 읽는다고 해도 나무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다가 띠 근처에는 책방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어서, 이 책방이 아니면 다른 책방으로 가서도 공짜로 책을 좀 읽을 수는 있었다. 그러나 이기영은 책방을 바꾸려고는 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이 책방 주인이 인심이 좋아 보였기 때문이다.
그는 언제나처럼 겨드랑이에 신문을 한 뭉치 말아서 끼고 있었다. 시내에서 오는 신문은 모조리 다 가지고 있었다. 스포츠 신문은 말할 것도 없고. 경제 신문까지 손에 들어오는 대로 그는 챙겨서 겨드랑이에 끼고 다니는 것이 습관이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홍수처럼 흘러나오는 새로운 지식을 흡수할 수가 없어서 지식인이 될 수가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이기영은 신문을 자기 돈으로 한번도 사본 일은 없었다. 신문은 원하기만 하면 남이 보다 버린 것을 얼마든지 구할 수가 있었다. 다방에서, 공원에서, 식당에서, 버스 안에서, 심지어는 쓰레기통에서도 구할 수가 있었다.
그러면 그는 하나도 버리지 않고 주워서는 시간이 나는 대로 읽어나갔다. 신문은 주로 케이크점이나 다방, 혹은 식당에서 읽는 것이 보통이었지만, 나머지 것은 집으로 가져가서 아무도 나타나지 않는 다락방에서 혼자 읽는 경우도 흔히 있었다.
그는 신문을 읽는 일에서 시작해서, 신문을 읽는 것으로 끝마치는 것이 매일 같은 일과였다. 그는 신문의 제1면을 한참 보다가는 발행인과 편집인, 주필이나 편집국장의 이름을 읽고 난 다음에 그 아래에 붙은 광고를 보고 큰 기사로 눈을 옮겨갔다. 그래서 기사를 전부 읽고나면 다시 광고를 모조리 다 읽고는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는 것이었다. 그는 모르는 것이 없었다. 평생을 신문 읽는 것으로 소일을 해왔기 때문에 어느 기록보다도 정확하게 신문에 난 기록을 잘 알고 있었다. 세상에 일어난 일로, 신문에 실린 사건으로는 모르는 것이 없었다. 그리고 신문 자체가 거짓말을 했거나, 정책을 변경하여 정반대 되는 이론을 전개하고 있는 것까지 낱낱이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그렇게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것을 활용해서 생산적인 일로 바꾸어 쓸 줄은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다.
-지식은 순수할 뿐이고, 그것으로 가장 만족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
이것은 그의 지론이며 철학이었다. 그에게 있어서는 지식이란 그것을 얻는 그 재미에 있는 것이지 그걸로 어떻게 한다는 것은 창녀가 몸을 팔 듯이 추한 짓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세상 사람들은 그의 그런 순수한 생각을 아무도 이해해주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그걸 슬퍼하거나, 원망하거나 하지도 않았다. 이 세상에 신문이 공짜로 자기에게 주어지고. 맛있는 커피가, 그리고 달콤한 빵이 주어지는 날까지는 이 세상을 비난할 필요가 조금도 없었다.
그는 자기 일과가 끝나고, 주머니에 몇 푼의 돈이라도 있으면 서울 시내의 별의별 케이크 집을 다 돌아다니며 빵 맛을 감상했다. 그래서 그는 어느 집의 빵은 맛이 어떻고, 어떤 집의 어떤 음식은 맛이 어떻다는 것을 이 세상에서 가장 정확하고 광범위하게 알고 있었다. 정말 온이 좀 여유가 있어서, 그 맛있는 빵을 몇 개 사 가지고 와서, 자기 다락방에 엎드리고 앉아서 그것을 맛보며 신문을 읽을 때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는 환상에 항상 빠져 있곤 했다.
그는 겨드랑이에는 신문을 끼고 다녔지만 호주머니에는 맛소금과 설탕과 조미료와 후춧가루, 고춧가루를 조금씩 넣어 가지고 다녔다. 그러다가 식당에 가서 설렁탕을 먹게 되면 자기 찬장 역할을 하는 주머니에서 조미료를 꺼내어 척척 뿌려 가지고는 입에 맞게 해서 맛있게 먹었다.
그의 가족은 그의 그런 취미를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그가 하는 일을 조금도 방해하려고 하지 않았다. 가끔 가다가 후추가 없으면 그의 주머니에서 후추통을 꺼내어 살짝 치고는 다시 넣어놓기는 하지만. 그의 신문을 버리거나 잘 싸 가지고 온 음식을 훔쳐먹어 버리거나 하는 짓은 하지 않았다.
그는 겨드랑이에 두툼한 신문지 뭉치를 낀 채 한국 문학사전을 뽑아 내었다. 그럴려니 팔이 높이 올라가지 않았다. 그는 신문 뭉치를 뽑아서 왼손에다 쥐고 사전을 다시 뽑아내려고 했다, 사전은 잘 팔리지 않는 책이기 때문에 아주 높이 꽂혀 있었다. 꼭 살 사람이라면 아이들을 시켜서라도 책을 뽑아달라고 하지만 그는 그럴 용기가 나지 않았다. 공짜로 보고 갈 주제에 아이들에게 일까지 시켜서는 안되었다. 그러다가는 다시 공짜로 책을 읽으러 오지 못하는 것이다.
그는 간신히 사전을 뽑아내어 김치영 난을 펼쳤다. 김치영, 김치영------그가 시인이라는 것을 알기는 하지만 어떤 시인인지는 전혀 알 길이 없었다. 일반에게는 알려진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니 그가 어떤 시를 쓰고 있으며, 그 평가가 어떤 것인지를 알 수가 없었다.
그는 김치영 난을 바쁘게 읽어나갔다. 그러나 무슨 말인지 얼른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원래 문학에서 쓰는 용어는 괜히 난삽한 경향이 있다. 그래서 그걸 이해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김치영도 마찬가지다. 약간의 약력을 제외하고, 문학 부문에 와 가지고서는 무슨 말을 써놓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종이에다 그대로 옮겨 가지고 가서 천천히 읽어보면 뜻이 알려질 것이지만 이런 곳에서 그렇게까지 염치없는 짓을 할 수는 없다.
그는 자꾸만 읽었다. 그의 출생 연도를 보니까 천구백이십 년대다. 그러니 얼른 계산해보아도 이미 육십 줄에 들어선 사람이다. 그렇게나 나이가 든 사람이 자기에게 전혀 알려져 있지 않다는 것은 아무래도 납득이 가지 않았다. 사전은 그의 시에 대해서도 얼른 이해할 수 없는 형이상학적인 단어를 나열해 가지고 뭐라고 중얼중얼 써놓았다, 그는 자꾸 반복해서 읽어보았다. 글을 이해하기보다는 반복해서 읽음으로써 그 문장을 외어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는 한참동안 입 속으로 중얼거리다가, 어지간히 됐다 싶어서 책을 선반에다 꽂았다. 주인을 건너다보니, 안경을 쓰고 무엇인가를 열심히 읽고 있었다. 자기 은 것이 와서 책을 아무리 공짜로 읽어도 그런 것은 조금도 신경에 쓰이지 않는 고양이었다.
이기영은 어깨에다 다시 힘을 넣고 밖으로 나왔다. 시계를 들여다보니 아직 한 시간이나 시간이 있었다. 다방으로 가서 차를 한잔 마시고,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파티장으로 가면 딱 맞을 것 같았다.
다방은 그들이 자주 만나는 광화문께에 있는 조그마한 것이었다. 젊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아니고 늙수그레한 사람들이 나오는 곳이기 때문에 그들이 커피 한잔을 마시고 하루종일 앉아 있어도 그렇게 눈치를 안 받는 그런 다방이었다.
그가 다방으로 들어서니, 이미 구석지에 그들의 친구들이 두 사람 와 있었다. 그들은 이기영이가 오는 것을 보고는 허리를 반쯤 일으켜 세워 보였다.
「시간이 잘 맞았는데?」
박우세라는 사람이 말했다. 언제 보아도 그들은 말쑥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미 옷은 낡아 있어서, 어깨 같은 데가 힘이 빠져 있었지만 넥타이에다가 와이샤쓰를 입는 것은 절대로 잊는 일이 없었다. 이런 멋진 신사차림의 사람들이 아무 할일 없는 사람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나이 때문에 검어진 얼굴에 기름을 반지르르하게 바른 모습은 옛날 신사 같은 느낌이 들기는 했지만, 그렇게까지 사람을 알아보는 사람이 그리 쉽지 않을 것은 번한 일이다.
「좀 알아봤어?」
박우세가 말했다. 멀쩡한 표정을 하고 있었지만, 얼굴이 부수수한 게 몹시 시장한 것 같았다. 허지만 신사가 돼 가지고 그런 것을 밖으로 표현해서는 안되었다.
「알아보나마나지 뭐. 그 사람은 세상에 별로 알려지지 않 은 사람이지만, 이미 육십대에 이르고 있는 노대가더구만. 세속적인 사람처럼 열심히 글을 팔아먹거나, 출세하고, 돈 벌려고 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세상에서는 전혀 모르고 있던 사람이고, 이번 시집도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 책이라는데,,...,」
「허허, 세상에 그런 사람도 있나?」
「그럼 사람들이 많이 오지 않을지도 모르잖을까?」
김지박이라는 사람이 대꾸했다. 사람이 많이 모이지 않는 곳에 자기네들이 찾아가면 좀 어색해지기도 하기 때문에 그게 걱정스러웠다.
「그렇지는 않을 걸, 잘 알려져 있지 않다고 하더라도 나이로 보아서나, 그 순수성을 보아서 문단 사람들은 굉장히 많이 올 거야. 파티도 우리가 상상하기보다도 더 성대할 것이구,,,,,,」
「자, 뭐 드시겠어요,,,,,,」
「아, 이 선생, 차 드시오. 우리는 밖에서 금방 마시고 왔으니......」
보아하니, 두 사람은 여기 와서는 아직 차를 마시지 않은 모양이다. 자기마저 안 마시려고 하면 분명히 이 아가씨가 좋지 않은 얼굴을 해 보일 게다.
「그래, 커피 한잔만 줘요. 우린 곧 나가야 하니까, 파티가 있어서......」
「김치영이라,,,,,, 정말 나는 까마득해. 」
「까마득하게 보이는 사람들 중에는 정말 위대한 사람들이 있는 것이 그리 드문 예는 아니야. 권력이나 돈이 싫어서 조용히 세상에 묻혀서 살아가고 있는 깨끗한 사람들이 결로 적다고 할 수는 없지. 그리고 시인이라면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 아니겠어? 정치꾼이나 사기꾼 기업가들 이상으로 흔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그건 가짜이기가 쉽지. 예술이차 학문, 학문을 위해서는 그런 사람들이 진정 필요한 법 인데,,,,,,」
그들은 좌담회라도 참석한 사람들처럼 진지하게 얼굴을 가다듬고서 말했다.
「김치영과 같은 시인이 진짜 시인이야. 우리의 슬픈 감정을 그대로 대변해주고, 하늘에서 타고난 인간의 기쁨을 그대로 노래해주고,,,,,, 이런 시인이 많이 나와야 해. 하지만 이 세상에는 무슨 소삐를 지껄이고 있는지 알 수도 없는 말을 마구 시라고 적어내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아? 그런 사람들에 비하면 김치영씨는 진짜 시인이지.」
이기영은 김치영 시인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천연스럽게 늘어놓았다. 아무도 그 말이 잘못되었다고 지적하는 사람이 없었다. 모두가 그가 말하는 것에 본을 따서 그와 비슷한 얼굴을 라고 있었다. 그들은 김치영과 잘 아는 사람일뿐만 아니라 그 시로써 즐거움을 함께하고 있는 사람들처럼 되었다.
「이 세상은 이미 김시인이 부르는 그런 시의 소재가 되지는 않아. 그가 오랫동안 작품활동을 하지 못한 것은 그가 즐겨 노래하던 것들이 전부 멍들어버렸기 때문이 아니겠어 ? 참 통탄할 일이야. 인간의 순수한 정서의 발전을 위해서는 김시인이 좋아하는 것들이 이 세상에는 많이 남아 있어야 하는데,,,,,,」
이기영은 혼잣말처럼 지껄이면서, 자기가 하는 말이 아주 근사하다고 흐뭇해 했다. 커피 한잔이 댕그러니 그들 앞에 내던져졌다.
「차 드시오. 이선생,,,,,,」
이기영은 차를 들었다.
「그런데 말이야,,,,,,」
그들은 사실 차를 마시고 싶었지만, 그걸 사먹을 수 있는 돈이 없었다. 그들은 부러운 듯이 이기영의 입술에 시선을 집중시키고 있었다. 그러면서 조금만 기다리면 파티장에서 실컷 먹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말이야------파티장에서 즉흥연설이라도 한번 하면 어떨까?」
이기영의 갑작스런. 제안에 두 사람은 영문을 몰라서 의아해하고 있었다.
「사실 말이야,,,,,, 우리를 아는 사람들도 있을지 모르잖아.」
두 사람은 금방 시무룩한 얼굴이 되었다. 그러다가 도중에 쫓겨나기라도 한다면,,,,,, 문인들이란 절대로 그렇지는 않지만,,,,
「즉흥 연설을 하게 되면 그들은 우리가 김치영과 잘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은 물론이려니와, 잘 모르기는 해도 문인임에는 틀림이 없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고------또 다른 파티에서 만나져도 조금도 의심받을 필요가 없단 말이야.」
그들은 가만히 있었다.
「그러다가 이쪽의 존재가 더 명백해지는 결과를 가져오면?」
「너무 두드러지면 오히려 감당하기 곤란하게 될지도 모르지.」
이기영은 그 두 사람의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그런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아. 우리는 이 세대를 살아가는 정직한 사람들에게 협조하고 그들을 격려해주고, 숨겨진 빛을 온 누리에 빛나게 해주고......하는데 파티에 참석하는 뜻이 있는 게 아니겠어? 우리가 한끼를 때우지 못하고서 이런 구차한 짓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잖아? 마땅히 축하 받을 사람에게 축하해주기 위해서지, 안 그래?」
두 사람은 시무룩한 얼굴을 하고서 그에게 고개를 끄떡였다.
「즉흥연설을 시켜주지 않으면 ?J
「즉흥연설이란, 그야말로 즉흥이야.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은 아니니까, 기회 봐서 적당하게 하는 것이 즉흥연설이지.」
그러나 여전히 두 사람은 그게 불안했다. 어떻게 이 사람이 그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즉흥연설을 한단 말인가. 더구나 그들은 이상한 말과 제스처를 쓰는 사람들이 아닌가. 그런 가운데서 엉뚱하게 했다가는 정말 마각이 드러나고 팔 텐데,,,,,, 이기영이가 자꾸 즉흥연설 소리를 하는 것은 자기네 두 사람에게 자기의 위대함을 선전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나는 우리들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가장 위대한 지식인이라고 자부해. 그런 사람들이 이런 뜻 있는 사람의 출판 기념회에 참석해 가지고서 그 사람과 호흡을 같이하고, 같이 기뻐해 주고 용기를 북돋우어 주어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우리들의 임무라고 생각해.」
이렇게 이기영이가 거창하게 나오니, 정신이 올바로 박힌 사람은 그걸 반대할 수가 없었다. 그들은 무책임하게 고개만 끄떡였다. 즉흥연설을 하겠다는 사람은 이기영이니까 자기네들은 너무 반대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계를 들여다보니 여섯 시가 거진 되어가고 있었다. 여기서 천천히 걸어가면 십 분이면 현장에 도착할 것이고, 그러면 여섯 시가 바로 될 것이다. 하지만 자기네들 같은 입장에서는 시간 전에 가는 것보다는 조금 지나서. 한참 사람들이 붐비고 있을 때 가는 것이 좋았다. 그런 입장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시계를 들여다보면서도 서두르지 않았다.
「슬슬 가봅시다. 젠틀맨은 시간을 잘 지켜야지. 」
이기영이가 먼저 일어났다. 그러니 두 사람은 남아 있을 수가 없었다. 얼른 신문쪽지들을 말아 쥐고 그의 뒤를 따라서 밖으로 나갔다. 그러나 두 사람은 이기영보다는 훨씬 뒤떨어져서 천천히 걸어갔다. 너무 발리 간다는 것은 좋지 않다는 생각을 버리지 않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하면 이기영 혼자서 파티장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파티장은 중앙청 건물의 동쪽에 있는 아담한 건물이었다. 길을 건너기 전에 보니 커다란 간판이 길 쪽에 나와 있었는데, 김치영이라는 글씨가 뚜렷하게 보였다. 그걸 보니 그들은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는 것이 들렸다, 이기영은 그 앞에서 웅성거리고 있는 사람들 속에 이미 섞여서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들도 하는 수없이 따라 들어갔다. 시계를 보니 아닌게아니라 십 분쯤 늦어서 안도감이 났다.
파티장에는 입추의 여지도 없었다. 정말 예상 밖이었다. 자기네들이 생각했던 것보다는 훨씬 인기도 있고 유명한 사람인 모양이었다. 올라가는 계단에는 상당히 많은 관엽수들이 늘어져 있었고 미처 안으로 들어가지 놋한 사람들이 복도에 그냥 서 있었다. 파티장 입구에는 여느 파티장이나 마찬가지로 책상을 놓고 회비와 사인을 받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기영은 행렬의 맨 뒤에 섰고, 그보다 두어 사람 간격을 두고 박우세와 김지박이가 이기영을 쳐다보며 섰다,
이기영은 한참동안 가만히 서 있다가 안으로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옮겨놓았다. 사인북에 서명하는 것 따위에 신경을 쓰다가는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하지만, 사인을 하지 않았다고 들어가지 말란 사람은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물론 그들은 이쪽을 잘 모르지만, 이쪽에서는 아는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었다. 그렇다면 사인 같은 것은 별 문제가 없는 일이었다.
안에서 얼굴이 희멀쑥하게 잘생긴 원로시인 한 사람이 단 위에서 열심히 김치영 시인에 대해서 칭찬을 늘어놓고 있었다. 사람들은 잔뜩 차려진 음식상 앞에서 굳은 표정으로 가만히 앉아서 격려사가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단 아래에는 의자 두개가 있었고 가슴에다 꽃을 단 시골 영감 같은 사람이 역시 가슴에다 꽃을 꽃은 뚱뚱한 늙은 여자와 함께 앉아 있었다. 김치영이가 바로 이 사람인 모양이었다. 정말 일평생에 출판기념회 한번 하기에도 어울리지 않는 사람으로 보였다.
이기영은 안으로 들어가려다 말았다. 안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자기의 존재가 너무 노출되어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자기에게로 집중될 것 같았다. 그는 복도에 선 사람들의 틈에서 빠져 나오지 않았다. 향긋하고 달콤한 음식 냄새가 코끝으로 강하게 풍겨오고 있었다, 저런 냄새를 정신없이 마시고 있다가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침이라도 흘리게 되면 망신하고 말 게다,,,,,, 그는 냄새나는 손수건을 꺼내어 입가를 닦고 두 손을 모아서 연설이 끝나기를 가만히 기다리고 있었다.
「김시인은,,,,,,」
연단에 선 사람은 남의 기분은 생각하지 않고 지루하게 연설을 계속하고 있었다.
「김시인은,,,,,,이 세상에 살면서 자기 혼자서 따로, 이 세상과는 전연 관계없이 시상 속에서 인생을 보낸 분입니다. 이런 사람이 어떻게 인생을 살아 갈 수 있고, 어떻게 아이들을 낳아 교육을 시키고 결혼을 시킬 수 있을까,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그런 분입니다. 여러분이 이분의 시에서 보아서 잘 아는 바이지만, 그 시 속에는 털끝만한 더러움이나 속된 감정도 틈입해 있지 않았습니다. 저는, 김시인과 오랜 교우를 가지고 함께 글을 써오고 있습니다마는, 김시인을 보면 항상 자신이 더럽게 인생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서 얼굴을 제대로 들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순수 무구하게 살 수 있느냐 하는 것을 김시인은 바로 자기 시에서, 자기 인생에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몇 푼의 돈을 위해서 하찮은 명예를 위해서 인간의 이익을 위해서 우리는 양심을 팔고, 파렴치를 서슴없이 저지르고, 친구나 친척간에 담을 쌓고 살아가고 있지만 그것이 휴지처럼 하찮은 것이라는 것을 그분은 자기의 시에서 명백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분의 시에 의하면 가난하게 사는 것, 출세하지 못하면서 살아가는 것,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것이 하나도 부끄럽거나 괴로운 것이 아니 라는 것을 명백하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인생을 깨끗하고 고상하게 살아가는 일이 절대로 헛된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이분에게서 배우고 실천하지 않으면 안될 것입니다,,,」
이기영은 가만히 듣고 있었다. 자기가 알고 있는 김치영보다는 좀더 쉽고 몸에 배게 설명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한참동안 설명이 계속되더니, 다른 사람이 다시 단 위에 올라가서는 또 그와 비슷한 칭찬을 하고, 여자들이 나와서 꽃다발을 안겨주고, 사진 플래시가 터지고,,,,,, 답사를 위해서 단 위에 올라갔다. 이기영은 정말 자기가 즉흥연설을 하려면 어느 때가 가장 좋을 것인가 하고 가만히 생각해보았다. 생가만 해도 손바닥에 땀이 나고, 가슴이 몹시 두근거렸다. 한마디 근사하게 하면 영광스런 한순간이 될 수도 있을 것이지만, 말을 잘못했다가는 오히려 크게 망신할 게다,,,,,,
대학생 같은 여자가 나와서 축가를 부른다면서 다시 목청을 돋구었다. 정말 일평생에 한번밖에 않는 출판기념회가 돼서 그런지 아주 복잡한 스케줄을 가지고 있었다. 모두들 지루해서 잠이 라도 자고 싶은 얼굴들을 하고 있었다. 음식은 식어가고 꼬들꼬들 말라가고 있었다. 시장하던 뱃속이 이제는 도가 지나쳐서 무감각해진 것 같았다.
가슴에 꽃을 붙인 김치영은 왜소하고 바짝 마른 몸집을 하고 있었고, 얼굴에는 굵은 주름이 잔뜩 지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 얼굴에서는 조금도 거만하거나, 자랑스럽거나, 젠 체하려는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가난해 보이는 그런 인상도 풍기지 않았다. 사람이 가난하게 살면서도 가난한 모습이 얼굴에 보이지 않는 것은 인격이 가난을 극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김치영이가 이기영에게는 아주 좋아 보였다. 정말 허락하기만 한다면 즉흥연설이라도 한번해서 그의 인생인 바로 자기에게 교훈이 되도록 하고 싶었다.
길다랗고 지루한 순서가 다 끝나고 나자 사람들이 음식이 널려 있는 테이블 쪽으로 가서 음식을 집어먹기 시작했다. 충분히 시장해 있을 시간이지만, 실제로는 별로 음식에 달라붙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의 흉내를 내고 있을 수가 없었다. 이기영은 앞으로 나가서 양주 한잔을 받아서 목을 축이고는 천천히 음식테이블 쪽으로 갔다. 장내의 사람들이 사방으로 돌면서 인사를 나누고 축하의 말을 한마디씩 주고받았다. 몇 개의 현악기가 음식도 먼지 않고 조용히 연주를 하고 있었다. 이기영은 자기도 그들과 같은 문사가 된 것 같은 흐뭇한 느낌이 들었다, 그가 열심히 이런 파티를 찾아다니는 것은 음식을 먹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런 무드에 젖기 위해서인 것이 분명했다. 어떤 명예스런 사람과 일체가 되어본다는 것은 자랑스런 기분이었다. 그는 많이 널려 있는 음식을 한 점도 남기지 않고 모조리 맛을 보며 배를 채웠다. 마른 배에 술이 들어가고 부드러운 음식이 들어가니 온몸이 황홀해지는 것 같았다. 어디에서 해온 음식인지는 몰라도 제법 요리를 잘했다. 이만한 맛이라면 절대로 수준에 빠지는 것이 아니었다.
박우세와 김지박이가 자기에게로 다가왔다. 그들은 배가 고파 정신없이 주워 먹고 있었다. 그렇게 열심히 먹지 않아도 음식은 얼마든지 있는데,,,,,, 그들이 너무 허겁지겁 먹는 것도 이곳의 다른 사람들과 구별이 되지만, 제멋대로 옷을 입고 제멋대로 머리 모양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 비해서 너무 옷과 얼굴에 신경을 쓴 흔적이 보이는 것이 또한 이 사람들하고 구별되는 요소처럼 보였다. 고운 때가 짭짤하게 끼여 있는 것 같은 모습,,,,,, 이기영은 그들과 한패라는 것이 약간 창피한 생각이 들어서, 그들이 다가오자 그는 일부러 김치영 선생 쪽으로 다가갔다. 그들은 아직도 술에는 손을 대지 않고 손님들에게 인사를 하고, 그들과 이야기하기에 정신을 쏟고 있었다. 이기영은 그들에게로 다가가서 그들의 이야기가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 산람씩 그에게 물러나서 드디어는 그와 이기영의 사이에 아무도 놓이지 않게 되었다.
「선생님, 축하합니다.」
그가 고개를 숙이니까 김치영씨는 겸손한 얼굴로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기영은 그와 악수를 했다. 가냘프고 조그만 손이었다. 자기를 전연 알 수가 없는 사람이지만, 누구냐고 물어보려고 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이기영이라고 합니다. 선생님의 시는 제가 아주 좋아해서 거의 전부를 다 외우고 있습니다. 정말 좋은 시들입니다. 아마 이 세상이 차 허물어진다고 해도 그런 시는 남아 있을 겁니다. 인간 문명의 파편처럼 말입니다.」
그는 김치영의 손을 잡고 흔들면서 말했다. 누가 보더라도 두 사람은 친한 사람처럼 보이도록,,,,,, 아무도 그를 단순한 파티꾼으로 보지는 않을 것이다. 박우세와 김지박이가 열심히 주워먹다가 이쪽을 힐끗 쳐다보고 있었다. 자기네들도 달려와서 김시인과 아는 척하고 싶었지만, 그럴 용기는 내지 못하고 있었다. 이기영은 악수를 풀고서도 한참동안 그와 이 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한두 사람 끼어 들어서 농담을 건네고 웃음을 토했다. 그때마다 이기영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함께 웃었다. 즐거움이 몸에 슬금슬금 배어드는 것 같았다. 이런 명사들을 친구로 가지게 된 것이 행복스럽다는 착각까지 공공연하게 자기 가슴으로 파고드는 것 같았다.
한시간 가량 지나니 사람들이 슬금슬금 꼬리를 감추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직도 음식은 푸짐하게 테이블 위에 그냥 남아 있었다. 그들 세 사람이 아무리 열심히 먹어치운다 해도 그걸 다 없앨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음식을 가져가게만 한다면 비닐봉지에다가 싸가지고라도 가고 싶었지만 체면상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이기영은 그게 몹시 안타까왔다. 저 음식을 가지고 내일 새벽에 다락방에서 커피와 함께 신문을 읽으면서 시간을 보내면 얼마나 즐거울 것인가, 사실 그는 김치영에게 이야기를 붙여보려고 어정거리다가 충분히 음식을 먹지 못했다. 그러는 판에 저걸 그냥 두고 가다니,,,,,,
그는 주변을 휘 둘러보았다. 모두가 가버리고 이제 남아 있는 사람들은 김치영씨의 가족과 그를 도우려고 온 사람들뿐이었다. 그들은 이기영에게 조금도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어서 그들 세 사람이라도 음식을 다 먹어주기를 바라고 있는 눈치였다. 이기영은 어떻게 기술적으로 음식을 가지고 갈 수 있을까 하고 궁리해보았으나 신통한 방법 이 나서지 않았다. 그는 종이 냅킨을 가지고 와서 이쑤시개로, 가장 맛있어 보이는 음식을 한 점씩 찍어 날랐다. 박우세와 김지박은 배가 터질 것 같으면서도 음식상에서 떠나기가 아쉬운 듯이 들어붙어 있었다.
그들은 눈치 빠르게도 이기영이가 무엇을 하려고 한다는 사실을 금방 알아차렸다. 그들은 김치영 시인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슬금 보다가는 얼른 손바닥으로 음식을 휘몰아서는 코트 주머니에다가 그냥 쓸어 넣었다. 식탁 주변에는, 아무리 보아도 자기네들과 동류인 파티꾼이 몇 사람 들어 붙어 있었는데, 그들도 그런 행동을 조금도 이상하게 보려고는 하지 않았다, 그들은 접시째 가지고 가서 신문지에다가 음식을 싸 가지고 가려는 사람도 있었고 다른 종이자루에다가 옮겨 넣기도 했다. 그러나 이기영은 그렇게 욕심을 내지는 않았다, 어디까지나 자기는 귀족이고. 지식인이고, 예술인이기 때문에 이런 천한 놈들이 하는 식으로는 할 수가 없었다. 그는 주먹만하게 음식이 냅킨 위에 쌓이자 조용히 말아서는 주머니에다가 넣었다. 이런 행동은 누가 보는 사람도 없는 가운데 그야말로 예술적으로 살짝 이루어졌다.
조금 있으니 김치영씨가 자기 가족들과 이쪽으로 왔다. 퇴장하기 위해서 마지막 인사를 하려고 했다, 그는 여전히 온화하고 약간 촌스럽고, 부드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음식이 아직도 많이 남았구만. 많이들 드시오.」
「예, 여태까지 친구들과 이야기하느라고 뭘 먹지 못해서,,,,,, 배가 어떻게나 고픈지---」
이기영은 이쑤시개에 꽂힌 고기를 한 점 입으로 가져가며 말했다.
「선생님. 아무쪼록 오래 사셔서, 주옥같은 시를 많이 만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선생님의 글을 읽는 것이 인생으로서 가장 보람있는 일입니다. 그런 즐거움도 없이 어떻게 산단 말입니까?」
「허허. 별말씀을,,,,,,」
그는 지나친 칭찬을 들어서 아이들처럼 얼굴이 발개졌다. 아마 이런 칭찬을 해줄 사람도 일찌기 문인 중에는 한 사람도 없었다. 물론 이 사람도 문인이기는 하겠지만,,,,,, 김치영은 명함을 한장 끄집어 내어서는 이기영에게 주었다.
「우리 집 전화번호가 여기 적혀 있으니 한번 놀러와요.」
그는 오늘 누구보다도 이기영에게 감명을 받은 것같았다.
「예, 선생님, 그때는 선생님의 시를, 선생님이 많이 외우는가, 제가 많이 외우는가 내기를 한번 하십시다.」
「허 허 그럼------」
그는 그들에게 목례를 두루 하고는 밖으로 천천히 나갔다. 이기영은 명함을 보지도 않고 윗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이런 큰 수확을 다른 사람들에게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였다.
이래저래 이기영은 오늘 기분이 흐뭇했다.
이기영의 마누라는 그와 결혼하고서 땡전 한푼을 남편이 벌어오는 것을 본 일이 없기 때문에 남편에게서 어떤 금전적인 기대를 하지 않게 된 지가 이미 오래 됐다. 그렇다고 그이가 수완을 발취해서 사업을 했거나 장사를 잘해서 먹고 사는 게 걱정 없이 된 것은 아니다. 여자는 행상을 하여 간신히 아이들 공부도 시켰지만, 지금은 차출부라는 것이 인기가 있어서 그것으로 간신히 생계를 유지해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니는 남편에게 별다른 불만을 느끼지 않고 있었다. 그렇다고 다른 것에서 남편에게 만족하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혼을 한다는 것이 번거롭고 또 이혼을 해봤댔자 자기처럼 박복한 여자가 좋은 남편을 다시 만난다는 것이 가능하지도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것보다는 아이들에게 아비 없는 자식이라는 소리라도 듣지 않게 해주기 위해서 그냥 그대로 데리고 사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별달리 많은 소비를 하고 다니는 남편도 아니니까. 고작해서 하루에 몇백 원의 용돈만 안겨주면 남편은 조금도 불평하지 않고 아이들처럼 고분고분 말을 잘 들었고, 하루종일 어디로 싸돌아다니는지 눈앞에 얼씬거리지 않아서
편했다.
이기영은 아내에게 그런 바보 같은 대접을 받고 다녔지만, 아내를 원망하는 일은 절대로 없었다. 자기가 돈을 벌어줘 본 일이 없으니까 당연한 일이기도 했지만, 그는 이상한 버릇이 있어서 아내가 약간의 돈을 저축했을 성싶으면 어줍잖은 사업을 벌여서 몽땅 털어먹곤 했다. 그러면 아내는 당장 남편과 이혼해버리고 그것으로 채무를 모른 척하고 싶었지만, 실제로는 한번도 그렇게 하질 못했다. 그니는 남편이 진 빛을 몇 년씩 갚아나갔다. 죽을 맛이었다. 차라리 한푼도 벌어들이지 않아도 좋으니 제발 사업한답시고 엉뚱한 짓거리만 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그니는 두 집을 하루 걸러 파출부로 나가서 하루에 삼천 원씩을 받았다. 적어도 한 달에 칠팔 만원의 수입을 그렇게 고생하지 않고 올릴 수 있었다. 그런데다 파출부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서 한번씩 집을 옮길 때마다 상당히 비싼 값을 더 받을 수 있었다.
그니는 매일같이 남편을 세심히 관찰해갔다. 돈이 저축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또 엉뚱한 사업을 벌이지 않을까 하고. 그것만 막을 수 있으면 아이들을 무난하게 교육시킬 수가 있을 것이다.
「저녁은 어떻게 챘어요?」
아내는 키가 자그마한데다가 약간 살이 쪄서 아주 건강해 보였다.
「나, 파티에 갔다왔어.」
이기영은 힘없는 허리지만 곧추세워 가지고 아내에게 위신을 세워 보였다.
「파티라니? 당신을 초청하는 그런 파리도 있어요?」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거요? 이래봬도 나는 이 나라의 일류명사들만 상대하고, 그들과 친교를 가지고 있어. 그들이 베푸는 파티에는 반드시 초청을 해 주거든. 오랜 친구들이니까. 내가 없으면 친구로서 그들도 섭섭하지.」
그러나 아내는 조금도 믿으려는 눈치가 아니었다.
「그런 파티에서 당신은 무얼 해요?」
「무얼 하긴? 가끔가다가 즉흥연설도 해주고, 축사도 해주지. 친구로서 같이 일한 보람이란 다 그런 것이 아니겠소?」
그는 제법 의젓하게 말했다. 그러면 아내는 걱정스런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러다가 또 사업에 손을 대는 것이 아닐까.
「당신, 또 사업에 손댔어요?」
「아니야, 아니야. 그런 건 아니오. 당신이 걱정하는 그런 사업이 아니라...... 당신에게 이미 약속했잖아? 다시는 사업에 손을 대지 않겠다고. 하지만, 명사들 친구, 그리고 이 나라의 지도급 인사들, 그런 친구들과의 친교는 일부러 끊을 필요가 없는 일이 아니겠어 ? 그건 돈 드는 일이 아니니까.」
「당신에게 언제 그런 친구들이 있었어요?」
「이 사람이, 사람을 정말,,,,,, 아무리 돈 벌지 못하는 남편이라고 해도...... 친구들만은 정말 훌륭한 친구들을 가지고 있어.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닌가?」
아내는 일단 안도의 빛을 보였으나, 남편이 하는 말을 믿으려고는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남편 친구들과의 교제문제에도 관심을 가지려고 하지 않았다. 못난이에게 무슨 그런 명사 친구들이 있을라구,,,, 허긴 모르지...... 사람이 워낙 무골호인이니까 밖에서는 다소 인기가 있을지도 모르지,,,,,, 한푼이 라도 있으면 친구들에게 쓰고 있다니까,,,,,,
「오늘은 말이야. 정말 멋진 파티가 있었어. 에이 신문사의 창간 백주년 기념파티였어.」
이기영은 자못 자랑스럽게 말했다. 마치 그 회사의 높은 간부라도 되는 것 같은 모습이다,
「당신이 그 신문사하고 무슨 관계요?」
「무슨 관계라니? 그건 민족지야. 민족의 슬픔과 영광을 같이 누텨온 신문이야. 우리가 치사스런 일을 할 때 그 신문도 치사스럽게 했고, 우리가 아무 소리도 못할 때 그 신문도 아무 소리도 못하고,,,,,, 꼭 우리가 딱할 때 같이 바보가 되어 같이 살아온 신문이란 말이야. 뜻 있는 파티가 아니겠어? 그야말로 지난 백년의 치욕사를 아주 잘 대변해주는 신문이니까. 그래서 그 영광스런 자리에,,,,, 우리 나라에서는 내노라 하는 인물들은 다 모였더구만. 정치인들, 실업계 거물들. 종교계나 예술계, 그리고 학계 거물들이 모조리 모였어. 마치 신문사 사장이 이 나라를 위해서 혼자서 애쓴 것 같은 기분이더구만.」
「호호, 그래 당신은 무슨 대표로 갔었어요?」
「나? 명사라니까. 이래봬도, 나를 간절하게 오라고 하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는 많이 있단 말피오. 당신은 나를 우습게 알지만,,,,,, 성경에도 있잖아? 선지자는 고향에서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고. 나도 조금만 여건이 좋았더라면----친구들의 도움으로 한번 크게 성공할 수 있는 사람이었는데,,,,,,」
「아내가 알아주지 않아서 이 꼴 이 모양이란 그 말인가요?」
「아뭏든 나는 당신이 집안에서 생각하는 그런 위인은 적어도 아니라는 거야 날보고 돈을 벌지 못한다고 하지만, 역사에 위인 치고 돈벌이를 제대로 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구. 소크라테스가 돈벌이를 했겠소, 예수가 돈벌이를 했겠소, 아니면 진시황이 돈벌이를 했겠소? 돈벌이 잘하는 것은 아랫사람들의 일이야. 비록 재벌의 총수라고 해도 개인적으로 돈벌이를 잘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내가 돈벌이를 못해봤다고 해서 반드시 형편없는 인물은 아니야. 다만 집안에서 위신이 서지 않고 있을 뿐이지.」
「흥, 옛날 사람이, 수신제가 후에 어쩌구 하는 것은 무어란 말이오.」
「그런 소린 하지도 말아. 오늘 에이 신문사 사장이라는 작자,,,,,, 세상에 그런 추악한 사람은 없어, 사기꾼 중에 사기꾼이야. 알고 보면,,,,,, 첩이 한두 개가 아니고------세상의 탐욕이단 탐욕은 모조리 한 몸에 지니고 있는 사람이야. 아마 가장 감투 많이 쓰고 있는 사람의 한 사람일 거야. 병신처럼 뒷짱구 앞짱구가 돼 가지고 말이지,,,,,, 꼭 한 마리의 능글맞은 곰 새끼 같더구만, 신문사의 강한 힘을 믿고 안한 일이 없어. 재벌이지 않나. 애국지사이질 않나. 세계적인 명사이질 않나. 거룩한 종교가이질 않나,,,,,, 투철한 민주주의 신봉자이질 않나------그러면서도 교묘하게 권력자와 야합을 해서 안 하는 짓이 없단 말이오. 심지어 그 아버지가 사장을 할 때는 왜정시대였는데, ,,,, 총독에게 양기 좋으라고 해마다 인삼녹용을 지어 다가 주었다는데,,,,,, 그러면서도 민족 어쩌구 하고 있단 말이 야,,,,,,」
「설마,,,,,, 당신이 뭘 안 다구,,,,,,」
「허허, 이 마누라, 남편 무시하는 버릇을 어떻게 꼬칠 수 있을까,,,,,, 이래봬도 나는 그 파티에서 축사까지 했단 말이야.」
「어머, 정말 미쳤군요! 거기 모인 사람들은 모조리 당신 같은 바보 천치들이란 말인가요?」
「허허, 그럴지도 모르지.」
「그 바보들 속에서 당신은 뭐 라고 했어요? 축사를,,,,,, 누가 당신보고 축사를 다 해달라고 했어요? 그 사람은 정신병자가 아니었어요?」
「그야 사회하는 사람이지.」
사실, 사회하는 사람에게 부탁을 받은 것은 아너고, 술에 취해서 흥겹기도 하니까 자기도 모르게, 또 누가 요구하지도 않는데 그는 즉흥연설을 하고 말았다. 또 여러번 하고 싶었던 것이고.
「요즘은..., . 사람들이 어딘지 모르게 약간씩 정상에서 이탈해 있는 것 같애요. 내가 나가고 있는 집 사람들도 부부가 다 좀 이상하거든. 파티장이라고 해서 다를 거야 없겠죠. 뭐라고 했는지 어디 그 명연설 이야기를 들어봅시다?」
「나야 입만 벙긋하면 명연설만 하는 사람이니까,,,---아주 대환영을 받았지.」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런 파티에 모여드는 명사들이란 모조리 구렁이들 중에 구렁이들이라 아무리 일이 없는 일이 일어나도 적절하게 대응할 줄은 다 잘 알고 있는 법이다. 그가 얼굴이 벌개가지고 늘어놓는 연설에 그들은 점잖고 형식적인 박수를 열심히 보내주었다. 김치영 시인의 출판기념회에서 못하던 것을 그 대형파티에서 근사하게 해치운 것이다.
「글쎄, 어디 한번 그대로 해보라니까.」
여자는 남편을 마치 광대 취급을 하고 있었다. 좀더 실컷 놀려줘도 괜찮다는 태도였다. 이기영은 얼굴이 좀 붉어졌으나 그때의 멋진 연설을 재공연하여 아내의 자기에게 대한 경멸감을 좀 해소시켜보려고 했다.
「바보천치도 부끄러움이 있나, 원------」
「뭐, 뭐라고 그래,,,,, 내가 술잔을 들고 높이 소리를 지르니------장내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더군. 이 나라의 명사들 중의 명사들, 속물 중의 속물들, 철면피 중의 철면피들, 사기꾼들,,,,,, 그러지 않으면 명사도 되지 못하고 성공도 하지 못했을 것이고..,... 에이 신문사 자체가 그런 식으로 오늘날까지 존재해왔으니까..., ,. 왜놈들의 뒷자금으로 신문을 운용해오면서 조선독립 어쩌구 하고 왔으니까...... 자유 어쩌구 하면서도 그런 것 하는 놈들을 조지는 데 앞장서온 놈이니까,,,,,,」
「어머나,,,,, 당신이 그런 자리에서 그렇게 말했단 말예요?」
아내는 어디까지나 장난기 있는 어조로 말하고 있었다.
「아니야. 한국사람들은,,,,.. 옛날부터 그렇게 살아오며, 그렇게 경멸을 받아왔다...... 또 존경도 받고,,,,,, 그래서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이 오늘날 존재하는 것이고, 에이 신문의 위대함도 있는 것이다,,,,,, 에이 신문은 민족과 국가의 흥망을 위해서 한시도 놀아본 적이 없다, 오늘날 한국이 이만큼 발달한 것은 오로지 에이 신문의 탓이다, 그런 뜻에서 현사장의 동상을 선대 사장들의 동상 바로 위에다가 거룩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러는데 조금도 여러분은 인색해서는 안 된다. ,... 이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민족의 문제다------백년 동안을 한결같이 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거짓말을 해도 벌써 기진맥진했을 것인데, 거짓말이라고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살아왔으니 얼마나 힘들겠느냐 ...... 그에 대한 노고를 우리는 어떠한 방법으로라도 치하해야 한다------끝으로 이런 정신을, 그리고 전통을 받아서 앞으로도 빛나게 발전해다오, 이게 바로 민족통일의 지름길이다,,,,,,」
「그런 멍청한 소리에 사람들이 박수를 보냈다구요?」
「그랬다니까. 」
「그 당신의 연설은 골자가 어디에 있는지, 무슨 뜻을 가지고 있는지 전연 알 수가 없어요.」
아내의 입술 언저리에는 비웃음의 침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무식하긴. 오늘날의 말이 라는 것은 아무 뜻이 없는 거야. 그도 그래. 뜻이 있는 말을 하려는 것은 무식한 사람들이나 하는 거야. 오늘날의 말이나 글은 그저 그 분위기를 즐기는 거지, 말뜻을 캐려고 하진 않는다구. 왜냐하면 말이 가지고 있는 절대성은 완전히 사라지고 없어. 어떤 사람이 뭐라고 하면 그걸 그렇다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그저 고 사람의 입장이라면 그렇게 말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해줄 분이지. 그 사람의 말이 뜻을 가지고 있다고 보지는 않아. 반대로 아무리 거짓말을 해도 마찬가지야. 말하는 방법에 따라 그저 분위 기를 즐기는 데 지나지 않아. 세상에 책임 있는 말이나 글이란 존재하지 않으니까. 나는 멋지게 연극을 하듯이 말했어. 아무도 내가 말하는 뜻을 아는 사람은 없고 알려고도 하지 않아. 내 자신이 우선 모르니까. 다만 내가 만들어내는 분위기가 사람들을 즐겁게 했을 뿐이야, 그들은 내게 박수를 보냈어, 역시 그들 자신도 왜 박수를 보내는지 그 뜻을 알 수가 없었을 거야. 그저 분위기지.」
「당신은 정말 한푼도 없으면서, 한푼도 벌지 못하면서 명사가 된 기분이군요.」
「기분뿐만 아니라,,,,, 정말 명사야. 명사의 공통점...... 철면피, 속물 근성......그런 것을 나도 어느 정도 가지고 있거든. 그래서 그들은 나를 자기 세계로 동참시켜주고 있거든. 그러면 명사지.」
이기영은 고런 마음에는 조금도 흔들림이 없었다. 아내는 가만히 있었다. 속으로 ol. 사람을 비웃고 있는지, 그래도 남편이라고 그 말이 옳다고 생각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사실 저렇게 유식한 남편이라면 세상을 잘못 만나서 그렇지,----, 백만 있었다면 장관이 라도 하나 했을지도 모르지,,,,,, 그까짓 거 시켜주면 누가 못 할라구,,,,,,
「요즘은 겨울철이니까 사업을 결산하는 뜻에서 파티가 많단 날이야,,,,,,」
그러나 아내는 또 어떤 파티에 초청을 받았느냐고 묻지는 않았다. 그랬더라면 이미 자기네들이 가려고 계획을 세워놓은 경제인들의 파티를 근사한 말로 소개해주었을 것이다. 그런 어마어마한 파티에 비하면 시인들의 출판기념회는 얼마나 초라한지 알 수가 없었다. 아무리 공짜로 참석해서 얻어먹는 자기네들이라고 해도 그런 어마어마한 사람들의 파티에는 감히 참석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러나, 이건 생각 나름이야. 이왕 초청 받지 못한 파티에 참석하기는 어느 쪽이나 마찬가지야. 이왕이면 더 근사한 곳으로 가서 그들과 함께 으시대 보는 게 훨씬 심적으로 근사할 거야.」
그는 다른 두 동료에게 설득시켜 함께 참석해보기로 했다.
「못 들어가도록 경계가 심하지나 않을까?」
박우세가 걱정을 했다.
「설마 신분증 조사야 할라구 그리고 주민증에 회사 사장이라고 적혀 있는 것은 아니잖아.」
김지박은 이기영을 쳐다보았다.
「문제는 풍채야. 그 사람들이 다른 것은 풍채뿐이니까. 풍채가 의젓하면 아무 상관없어. 그러니 우리의 풍채가 사장들과 조금도 다름없는 그런 것이면 상관없어. 우리는 그런 데 참여할 수 있어야 세상에 사는 보람이 있을 게 아니겠어? 그들은 우리 국민을 먹여 살리고 있다는 커다란 환상과 자만을 가지고 있어. 그러니 그들과 함께 어울리지 않으면 항상 얻어먹는 기분이야. 파티라도 참석해서 어깨에다 힘을 주어 보자구.」
「거기서도 즉흥연설을 할 꺼야?」
「그야 그들이 아무래도 우리를 거지로 인정하려고 하면 비상수단으로...... 즉흥연설을 해서 위기를 모면해야지,,....」
「지난번에 신문사 때는 근사하게 위기를 모면했어.」
「신문사는 워낙 다양한 요소를 많이 가지고 있었으니까 상관없었지만. 이들- 경제인들은,,,,,,」
「속물성은 어디나 비슷비슷하지 뭘,,,,, 」
「그래도------열심히 돈 번 사람들은 그런 면에서 순수한 면도 있다고.... ,.」
「요즘이야 자기 돈으로 돈 버는 시대가 아니니......」
「허긴 그래. 내게 십억만 융자해주면 나도 경제인이 될 수 있고 수출도 할 수 있어.」
「아뭏든 경제인은 나중에 하고,,,,,, 우선 파티참석의 준비나 해야지.」
「준비는 무슨 준비? 연설?」
「그래도 남이 말을 걸어오면 대답할 수 있는 말은 가지고 있어야 할 것 아니야? 책방에 가서 경제학개론이라도 한 권 읽어야지.」
「쓰래, 누가 물어오면 모두 당신에게로 데리고 갈 테니까.」
그들은 당일, 파티가 열리는 하야트 호텔 맨 아래층 화장실에서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다. 남대문에서 거기까지 걸어 올라가면 그날의 일과는 자못 거창하고 고무적인 것이 될 것이다. 이기영뿐만 아니라 박우세나, 김지박도 은근히 흥분이 된 얼굴이었다.
아내는 아무 말도 걸지 않고 뜨개질만 열심히 하고 있었다. 이기영은 다시 파티 얘기를 할 기분이 나지 않았다.
「정옥일 데리고 안과에 한번 가봐요.」
「안과는 왜?」
「눈을 고쳐야 시집을 가죠. 」
여자는 목소리를 약간 높였다. 정옥의 눈이 어떻길래,,,,,, 이기영은 아이들이나 아내에 관해서는 조그마치도 생자해본 일이 없기 때문에. 정옥이의 눈이 어떤지 전연 알 수가 없었다.
「이제 연애도 할 나인데------눈이 사팔기가 있어서야 어떤 청년이 좋아하겠어요? 그래도 자기가 좋아하는 청년과 연애를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정옥이에게 사팔기가 있었던가, 그는 어디서 옛날 만났던 사람을 기억하듯이 기억을 쓸어 더듬어보았다. 그랬던가......
「사팔은 어느 정도 수술을 할 수 있대요.」
「음,,,,,,」
이제는 돈 이야기를 할 차례지만, 그에게는 그런 말을 끄집어낼 자신이 없었다.
「돈이 얼마나 들지 모르지만,,,,,, 우리가 굶는 한이 있어도 수술은 해줘야지.」
이기영은 고개를 떨어뜨렸다. 이상한 자책감 같은 것이 휩싸여 왔다. 그러나 이런 세속적인 분위기에 침몰되지 말자,,,,,, 더욱 큰 것을 항상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 아닌가,,,,,,
「정옥이를 데리고 병원으로 가봐요. 우선 진찰을 받아보고,,,,,, 진찰비는 얼마 안될 테니------그래가지고 수술을 하게 되면 하고,,, 그건 나중에 돈을 준비해 가지고----정옥아. 아빠하고 병원으로 가봐라. 여보, 그냥 어물어물하지 말고 단단히 알아보고 오란 말이야,,,,,, 수술하게 되면 그 비용하고.」
아내의 말이 끝나자 정옥이가 그들 앞으로 나타났다. 정말 멀쩡한 처녀가 돼 있었다. 자기에게 이런 과년한 딸이 있었던가,,,,,, 그는 남의 집 규수를 쳐다보듯이 한참동안 딸을 켜다보았다. 엄마보다는 조금 키가 커서 그런대로 보통 키에 들어서 있었다. 얼굴은 그저 잘생기지도 못생기지도 않은 수준이었다, 그러나 말재주와 맘씨만 고우면 좋은 청년을 끌어들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정옥이는 아버지를 똑바로 보지 않았다. 그러니 그니가 사팔기가 있는지 없는지 알 수가 없었다. 사팔기가 있는 사람은 그래서 남을 똑바로 쳐다보지 않는 버릇이 있다.
「이 쪽으로 얼굴을 돌려봐.」
그러나 정옥은 얼굴에 홍조만 띨 뿐, 얼굴을 돌리려 하지 않았다.
「빨리 나가보라니까요.」
이기영은 맥이 풀렸다. 어저께 파티에서 좀 집어온 맛있는 오드볼이 있는데 -----그걸 커피에다가 먹으면서 신문을 읽는 즐거움을 가지려고 굉장히 벼르고 있었는데------나중에 음식이 말라버리면 맛이 엉망이 되지. 그땐 아무리 조미료를 쳐도 불가능하다------그는 서운했다. 그러나 아내가 점심 값을 주기만 하면 ------근사한 케이크 집으로 가서 맛있는 걸 먹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자 기운이 생겨났다.
그는 정옥이를 데리고 서린동에 있는 공안과로 갔다. 좁은 복도에 환자들이 잔뜩 기다리고 섰고 더러는 한쪽 눈을 안대로 덮은 채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들도 진찰 신청을 해놓고 한참 기다리고 있었다. 정옥이는 자기 곁에 앉아서 조용하게 있었지만 전연 자기 딸 같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안중근 의사가 자기 딸을 이렇게 곁에 앉혀 놓고도 딸이란 실감이 나지 않았지 않을까. 딸이 없다면 아내나 아들이라도 마찬가지지만,,,,,, 그는 그런 공상을 하고 있었다.
한참동안 기 다려서 야 그들은 부름을 받고 진찰실 안으로 들어갔다. 진찰실은 암실처럼 어두컴컴했다. 아마 시력검사를 하느라고 일부러 어둡게 해놓은 모양이다.
「들어오시면 안 되는데요?」
간호원이 이기영에게 말했다.
「난 보호잔데요?」
그 말이 자기 귀에 아주 생경하게 들렸다. 정말 자기가 정옥이의 보호잔가? 보호자가 딸의 눈이 어떻게 됐다는 걸 전혀 모르고 있었는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정옥이는 의자에 앉아서 시력검사를 받았다. 이기영은 조금 떨어진 곳에 서 있었다. 정옥은 의사가 작대기로 가리키는 쪽을 열심히 쳐다보고 있었으나 스코어가 아주 좋은 것 같지 않았다. 작대기는 아래에서 점점 위로 올라왔다. 그래서는 맨 큰 쇠고기와 붕어가 그려진 곳까지 올라갔다. 의사는 고개를 옆으로 비틀었다.
「왼쪽 눈은 전연 시력이 없는데요?」
의사는 보호자라고 큰소리 친 사람에게 야유조로 말했다. 숨이 갑자기 콱 막히는 것 같았다.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뭐라고 입을 뗄 용기가 나지 않았다.
「오른쪽 눈도 별로 좋은 편은 아니지만,,,,,, 영점 팔이니까,,,,,, 안경을 끼면 되겠구,,,,,, 어릴 때 얼른 발견해서 약시교정을 받았으면 시력을 살릴 수 있었을는지도 모르는데요. 지금은,,,,,,」
이기영의 자존심은 완전히 구겨져서 쓰레기통으로 던져지는 기분이었다. 본인인 정옥이도 말할 수 없는 기분이겠지만,,,---그러나 그는 아버지 행세를 안 할 수 없었다. 딸의 한쪽 눈이 완전히 멀도록 아비로서 그것도 몰랐단 말인가------아비로서는 빵점이다,,,,,,
「왼쪽 눈이 시력이 없으니까 오른쪽 눈알이 움직일 때 함께 움직여야 할 필요가 없었거든요. 그러니까 사팔이 되는 겁니다.」
의사는 거인 같은 큼직한 모습으로 이기영에게 보였다.
정옥은 어두운 곳이지만 결코 자기 표정을 이기영에게 보이지 않았다.
「수술이 될까요?」
「시력 말입니까? 그건 안돼요. 늦었습니다. 사팔은 다소 고칠 수가 있습니다만,,,」
「수술비는 얼마나 들까요?」
아내는 정옥이가 시력이 한쪽밖에 없다는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을까? 그래서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고, 다만 사팔 수술에만 관심이 있는 게 아닐까?
「우리 딸은 아직 미혼이고 시집을 가야 하니까요,,,,,, 사팔 수술이라도 하지 않으면,,,,」
이기영은 간신히 말했다.
「아, 알았습니다. 부모가 자녀들의 건강에 관심이 없다가,,,... 시집 보내기 위해서야 조금 관심을 가지게 됐군요? 이래가지고서야 어디 부모랄 수가,,..,,」
의사는 몹시 기분 나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조명이 좋지 않은 방이 돼서 더욱 그렇게 보였다.
「알았습니다. 죄송합니다,,,,,,」
이기영은 정옥이를 데리고 조용히 복도로 나왔다. 진찰실보다 밝은 곳이지만, 그는 정옥이의 얼굴을 똑바로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는 슬쩍 훔쳐보았다. 눈물이 글썽해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니는 그걸 아버지에게 보이지 않으려고 고개를 돌렸다. 그런 그니의 행동이 가슴에 찡하게 울려왔다. 나는 세속적인 희로애락에서 완전히 탈출하려고 하고 있는데,,,,,, 아무리 명사라 한들 그런 사사로운 괴로움이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아니, 위대한 사람이면 그럴수록 더하겠지만, ,,,,,
그들은 한참동안 말없이 종로 쪽으로 걸어갔다. 이기영은 딸하고 걸어가고 있었지만, 아주 어색하고 서먹서먹한 사람하고 걸어가고 있는 것 같았다.
「너, 뭣 좀 먹어야지?」
너무 말을 하지 않는 것도 이상할 것 같아서 입을 떼었다.
딸은 말이 없었다.
「배가 고프지 않니 ? 이왕 나온 김에 점심을 먹고 가자. 엄마가 돈을 주었다. 넌 무얼 먹었으면 좋겠니?」
그는 허리를 굽혀서 사정을 하듯이 말했다.
「냉면--,,, 」
「추운데도 냉면을? 냉면이라--- 냉면이라면 기가 막히게 하는 집이 있지.」
그는 화신 앞 네거리를 지나서 낙원아파트가 있는 곳으로 갔다. 한참동안 골목을 들어갔다 나왔다가를 하다가 원산옥이라고 씌어진 기울어져 가는 한옥집으로 들어갔다.
「냉면이라면 이 집이 서울에서는 제일이야.」
그는 냉면을 먹고 싶은 생각이 나지 않았지만, 정옥이가 원하는 것을 사주고 싶었다. 피들은 온돌방으로 틀어가서 자리를 잡았다. 겨울이 돼서 손님들이 많지 않았다. 뜨거운 고기국물이 차로 나왔다. 그들은 아무도 하지 않았다. 할 말이 전연 없는 것이다. 눈에 관해서는 끔찍한 생각이 들어서 도저히 입을 뗄 수가 없었다.
시원하게 생긴 냉면이 나왔다. 육수를 부어 휘 저어 맛을 보니 무언가가 좀 부족한 것 같았다. 이기영은 안주머니 간장에서 조미료와 맛소금, 그리고 진짜배기 후춧가루와 고춧가루 , 깨소금을 끄집어내어 착착 쳤다. 그러고는 맛을 보았다. 이제야 맛이 제대로 된 것 같았다.
「가만히 있어. 내가 해줄께,,,,,」
그는 자기에게 하듯이 딸의 냉면그릇에다가도 그대로 조미료를 쳤다. 딸은 가만히 있었다. 이기영의 입장으로서는 딸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그것밖에 없었다. 유일한 서비스였다.
「맛을 봐라, 근사할 거야. 」
딸은 아버지를 똑바로 쳐다보지는 않고 젓가락으로 냉면을 휘저었다. 고마와하는 것인지, 아니면 처량하게 생각하는 것인지 분별하기가 힘들었다.
그들은 냉면을 먹었다. 오랜만에 딸과 대면을 했으니 아버지로서 딸에게 물어볼 말도 많고 들어볼 이야기도 많을 것 같았지만, 아무 것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아버지로서 딸에게 아무 것도 해준 것도 없고 또 딸은 딸대로 아무 것도 기대하는 것이 없으니 이야기할 것이 없었다. 몸도 어머니 때문에 자랐고, 몸에 걸치고 다니는 것, 공부한 것도 모조리 어머니 때문이지 아버지 때문은 아니다. 그래서 딸의 몸에서는 어머니의 손때만 묻어 있지 아버지의 손때는 하나도 붙어 있지 않은 것이 그대로 보였다. 그래도 어머니의 정성으로 그만큼이나 자라고 그만큼 다듬어진 것이 대견스럽기는 했다. 그러니 더욱 남의 자식 같은 느낌이 들 수밖에---
「연애하고 있는 사람이 있니?」
그는 간신히 입을 떼었다. 아비로서는 적절한 말이 아닐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
「아뇨.」
「그렇겠지. 이제 수술하고 나면,,,,,, 너를 좋아하게 될 남자도 생기겠지---」
그니가 아무 대꾸가 없으니 그는 다시 말을 이었다.
「아빠는 너무 높은 차원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는 매우 비현실적인 사람이야. 그게 너희들에게는 여간 미안한 게 아니지만------아빠는 그렇게 되어먹었으니 어쩔 도리가 없는 게 아니냐? 하지만 아빠는 지식인으로서...,,, 사회적 책임이 있으니 너무 가정일만 가지고 생활해갈 수가 없단 말이야. 너희들에게는 이해 받기가 어렵겠지만,, ,,,,」
그니는 여전히 가만히 있었다.
「이건 어쩌면 운명적인 것이다. 내가 아무리 세속적인 생활에 열중하려고 해도 이미 사상이 굳게 마련되었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가 없다. 네가 알 수 있을지 어떨지는 모르지만,,,,,,」
정옥은 워낙 말이 없는 짜이니까 자기의 말에 수긍이 가는지 어쩐지는 표정만으로는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 정도라도 변명을 하고 나니 다소 의젓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나라는 사람이 아무에게나 인정을 받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야. 더구나 엄마나 너희들에게서,,,,,, 냉면 맛이 어떠냐? 괜찮지?」
정옥은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부부간이고. 부모자식간이라도 통하지 않는 것은 영원히 통하지 않는 거니까.
그는 주머니 찬장에다가 후춧가루병 등을 도로 쑤셔 넣었다.
「먹었으니 나가보자. 이따 경제인회에서 파티가 있어서 나는 가봐야겠다. 내가 약간 부탁 받은 게 있어서 준비도 좀 해야겠구,,,,,, 너는 혼자서 집으로 가든지, 아니면 이왕 나온 김에 좀 놀다 가든지 해라.」
딸은 그 말에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그들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기영을 포함한 세 사람은 다방에 모여서 열심히 신문을 뒤적거리고 있었다. 그러나 신통한 기사가 나지 않았다. 있다는 파티란 거의 대부분이 껄렁한 출판기념회가 아니면 동창회. 그리고 =조그마한 모임의 파티 같은 그런 것뿐이었다. 이미 그들은 에이 신문사의 거창한 파티, 그리고 경제인회의 파티 등에 참석한 역사가 있는 사람들이라. 어지간한 것은 심적으로 흡족하지가 못했다.
「어디 근사한 거 하나 없나?」
「이러다간 며칠 굶겠는데------아무거나 우선 배나 채우지 뭘,,.,,,」
박우세와 김지박이가 말했으나 이기영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역시 행동에 대한 결정권은 이기영이가 가지고 있었으니까. 이기영은 안 된다는 뜻으로 그들을 한 번씩 흘겨보고는 신문의 단신란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별다른 파티나 멋진 그런 것은 얼른 눈에 띄지 않았다.
「사람이 체신이라는 게 있는 법이야. 비록 굶주린다 해도,,,,,, 우리가 멋진 대접을 받아서 사람이 약간 격이 높아졌으면 그 선을 유지하고 있어야지, 떨어져서는 될 말인가? 조금만 참고 있으면 더 높아지고 대접받을 수 있는 그런 기회가 올 꺼야.」
이기영이가 정색을 하고 말했다. 비죽비죽하던 입들이 쑥 줄어들었다,
「그러다가 하나도 얻어 걸리지 않는다면,,,」
박우세가 자못 배가 고픈 듯이 말했다.
「조간에는 아무 것도 나지 않았다. 더 이상 기다려봐야 별 수 없을 거야. 석간이 다시 나오기를 기다릴 수밖에,,,,,,」
「그때까지------만일 오늘밤에 당장 바티 하나 발견하지 못하면 오늘밤은 무얼로 배를 채우지?」
「아니, 우리가 배를 채우지 못해서 이런 일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잖아?」
이기영은 두 사나이에게 대들었다.
「초청이라고 하지만,,, 그게 어디,,,,」
「나는 어엿하게 초청을 받아서 갔었어. 비록 초청장을 받지 않았을 뿐이지,,,,」
이기영은 완고하게 말했다.
이기영은 경제인회의 파티에저 영악스럽던 기억을 잊어버릴 수가 없었다. 이 나라의 으리으리한 재벌들이 몽땅 모인 자리,,,,,, 그뿐인가. 위대한 인물들, 장관들. 그리고 관록 있는 명사들,,,,,, 거대한 장소에서 호화판의 파티------아마 다시는 이런 근사한 파티에 참석해보기는 힘들 것이다. 모두가 애국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사이에 끼어서, 덩달아 자기도 애국하고 있은 사람이라는 착각을 하게 된다는 것은 여간 흐뭇한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선택된 사람들하고 같이 있다는 것은 역시 자기도 선택되었다고 밖에 볼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 자기는 분명히 이 사람들의 영광과 자존에 같이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살아 있다는 보람은 이런 분위기에서 절정에 오르는 것이 아닐까, 당장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배라도 가르라면 가를 수 있는 그런 황홀한 행복감에 그는 계속 휩싸여 있었다, 주변에서 공식적으로 혹은 비공식적으로 입을 여는 사람들은 여기 모인 사람들의 공로를 입이 마르도록 칭찬하였다. 그리고 이기영도 그런 무드에 뜨겁게 젖어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밴드에서 음악이 흘러나오고, 온 방안이 라일락 향내가 넘칠거리는데 사람들은 휘황찬란한 불빛 속에서 마치 귀신처럼 서서 헤엄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 멋진 순간------
그런 황홀한 순간이 천연색사진처럼 요지부동으로 이기영의 뇌리에 박혀 있는 지금에는 다른 어떤 시시한 파티도 욕심이 나지 않았다. 설령 며칠을 굶주리는 한이 있어도,,,,,,
저녁에 파티가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하자, 금방 심한 시장기가 닥쳐왔다. 벌써 열두 시가 넘고 있었다. 신문지들은 쓰레기를 모아놓은 것처럼 부풀게 불어나서 책상 위를 어지럽히고 있었다.
「저기 가서 순대국이라도 하나 먹읍시다. 그리고 헤어지든지------」
박우세가 그렇게 나오자 이기영은 인사말로라도 사양하고 싶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아무말도 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걱정스런 것은 박우세의 주머니에 세 사람 다 먹을 수 있는 돈이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혹시 그가 두 사람 중에서 한 사람쯤 사양하기를 바라고서 하는 말이 아니었을까------그러나 박우세의 얼굴은 그리 낭패한 것 같지는 않았다.
그들은 다방에서 조금 뒤로 돌아서 조그마하고 지저분한 순대국집으로 들어갔다. 마침 구석지에 자리가 있어서 그들은 안으로 들어갔다. 의자는 동그란 나무 판대기에 네 개의 다리를 간단하게 세워 가지고 만든 싸구려 의자였다. 안쪽 의자와 벽 사이에 신문지가 축구공처럼 구겨져서 꽂혀 있었다. 이기영은 순대국이 올 때까지의 지루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꾸겨진 신문을 손바닥으로 폈다. 무슨 신문인지, 언제인지도 몰랐다.
「자살파티라,,,,,,」
그는 무심코 읽어나가다가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뭐라구?」
「자살파티가 열린다는 거야. 자살파티가,,,,,,」
이기영은 조그마한 활자의 단신 기사 하나를 손톱 끝으로 눌러서는 두 사람에게 돌려 보였다.
「세상에 이런 파티도 있나?」
「어떻게 하는 파틴데?」
「그건 알 수가 없는데,,,,,,」
「언제 해?」
「이십육 일 여섯 시야. 이십육 일이면 바로 오늘이 아닌가?」
「그렇군. 한번 가보자. 이거야말로 세상에 있는 어느 파티보다도 더 근사할는지 모르니까. 안 그래 ? 내가 경제인 파티에서,,,,,, 멋지게 즉흥 연설을 했듯이 거기에 가서도 멋진 것을 하나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을지 모르지,,,,,,」
이기영은 신이 났다,
「뭘 하는 파틴데?」
「뭘 하건 간에 그 이름이 좋지 않아. 완전히 통속성에서 빠져 나온 이름이간 말이야, 그래서 나는 이런 근사한 이름이라면 음식은 아무리 엉망이라도 조금도 불만스럽지 않게 될 것 같애. 그리고 이런 파티에 오는 사람들은,,,,,, 세상의 더러운 속물주의에서는 완전히 초월한 사람들일 꺼 야. 가보자구. 아니, 아무도 안 간대도 나는 가볼 테야.」
이기영은 두 사람을 둘러보았다.
「그 파티가 어떤 파티든 간에,,,,,, 파티꾼이 라면 한번은 보아두어야겠지, 이야깃거리를 남길려면,,,,,,」
김지박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들은 음식이 왔기에 서둘러서 먹어치웠다. 그리고는 파티가 열린다는 장소로 달려갔다. 물론 아직도 다섯 시간 이상이나 여유가 있었지만,,,,,,
파티장소는 서소문에서 서대문까지 가는 사이에 있는 창고 같은 집이었다. 그러나 아주 창모는 아니고, 다만 겉으로 그렇게 보일 뿐이었다. 주변은 아직도 정리와 재개발이 잘 안되어 스산하게 보였고, 사람들의 통행도 별로 보이지 않았다.
「자살파티를 하기에 아주 안성마춤이구만.」
「어떤 사람들이 이런 고약한 곳으로 모여들지?」
그들의 말에 이기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사방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가까이 가서 보니 건물이 그렇게 을씨년스런 것은 아니었다. 골목이나 밖에서 하는 것이 아니고 보면 무슨 상관이랴. 안에는 의젓한 방들이 얼마든지 있을 테니,,,,, 다만 여섯 시까지 기다리는 문제만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이기영은 심각한 얼굴을 하고서, 서소문과 서대문 사이를 몇 번씩 왕복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아무도 그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사람은 없었지만, 아무래도 좀 달라져 있는 것 같았다. 마치 하늘에서 어떤 소리를 들은, 특별한 사명을 받은 종교인과 같은 얼굴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가 들은 소리가 어떤 것인지 확실하지 않았다. 말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음악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틀림없이 자기에게 이상한 소리가 들린 것 같은 느낌을 그는 지를 수가 없었다. 그는 몹시 초조한 생각이 들었으나 더 달리 어디로 달려가지는 않았다. 그는 시간을 기다렸다. 그래서 정각 여섯 시가 됐을 때에는 어김없이 파티장으로 나타났다. 그가 나타나자 약간 궁상스러워 보이는 박우세와 김지박이 너무 오랫동안 기다렸다는 시늉을 해 보이며 이기영의 등뒤로 나타났다.
이기영은 긴장을 했다. 세상에 없던 파티니까, 엉뚱한 사람들이 나타나서 사람을 깜짝 놀라게 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게 겁이 났다,
그들은 골목 어귀에 서서. 남들에게 이상하게 보이지 않을 정도로 몸을 도사리고 서 있다가 칠팔 명이 분명히 파티장으로 앞서서 올라갔다고 싶을 정도가 되어서야 그들도 어깨에다 힘을 주어가지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건물 안은 예상대로 그렇게 지저분한 집은 아니었다. 콘크리트 바닥이기는 해도 잘 닦여져 있어서 더러운 느낌은 생기지 않았다.
입구에는 친절하게도 화살표를 해서 파티장소를 잘 알 수 있게 해놓고 있었다. 화살표를 따라 그들은 이층으로 올라갔다. 이층은 콘크리트 바닥이 아니고 나무로 되어 있다는 것을 금방 알 수가 있었다. 삐걱삐걱 소리가 났기 때문에.
그들은 문이 활짝 열려 제껴진 방 앞에 섰다, 분명히 파티장소라 적혀 있는데다가, 슬쩍 안을 살펴보니 자기네들이 모르는 사이에 이미 사람들이 상당히 와 있었고 한가운데는 출판 기념회 수준은 될 만한 음식상이 마련되어 있었다. 역시 안으로 들어가는 문 쪽에는 방명록이 있어서 들어가는 사람이 자기 이름을 사인하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특별히 회비를 받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은 들지 않았다. 그렇다면 사인 좀 하는 것을 일부러 피할 필요는 조금도 없었다. 그는 의젓하게 이름을 적고는 그 펜을 박우세에게 넘겨주었다. 그는 허리를 펴고 안으로 들어갔다,
가만히 사람들의 얼굴을 돌아보니. 어딘지 모르게 얼굴들이 많이 익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그런지 저쪽에서도 자기를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눈짓을 해 보이는 것 같았다.
이기영은 고개를 뒤틀었다, 이상한 일이다. 저 사람들이 전연 남들 같지 않으니,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사람들은 모두 단정하게 차려입고 있었다. 옷차림뿐만 아니라, 얼굴과 머리도 단정하게 다듬소 있어서, 언뜻 보기에는 조금도 험 잡을 데가 없는 신사들로 보였다. 그런데 좀 이상한 것은 단정하게 차려입기는 했어도 그 옷들이 고운 때가 잘 끼여 있는 단벌신사의 단정한 옷차림 같은 인상이 들었다. 얼굴도 일부러 단정하게 하려는 그런 의도가 강하게 보이는 모습
,.,,. 단정함이 아무 것도 필요가 없는 단정함,,,,,, 그런 사람들,,,,,,
그들은 음식냄새에 코끝을 벌름거리고 있다가. 사회자가 나와서 음식부터 먼저 들어달라는 청을 받고서야 천천히, 그러면서도 직선적으로 음식장으로 달려가서는, 상당히 빠른 동작으로 주워먹기 시작했다. 그러나 다만 행동만 빠르다 뿐이지, 에티켓이 눈에 띄게 없어 보이거나, 궁상스럽게 보이거나 하지는 않았다.
이기영도 천천히, 그러나 간절한 욕망을 가지고 음식상 앞으로 다가갔다. 그래서는 한 점 집어먹었다. 맛이 상당히 괜찮았다. 괜찮다기보다도 어딘지 모르게 환상적인 이상한 맛이었다.
「맛이 희한한데.」
박우세가 그의 곁에 다가와서는 열심히 집어먹고 있었다. 그렇게 열심히 먹고 있는 사람들은 비단 자기네들뿐이 아니었다. 모여 있는 백여 명의 사람들이 모두 그렇게 열심히 먹고 마시고 있었다. 그런가 하면 음식과 사람들이 자꾸만 꾸역꾸역 들어오고 있었다. 상당히 성대하게 될 파티 같았다.
「아뭏든 좀 이상한 파티 야. 사람들도 모두 살아 있는 사람들 같지 않고--오리지날에서 카피를 해놓은 인물들 같단 말이 야-,----」
박우세가 곁에서 열심히 음식을 찍어 먹으면서 경계하듯이 말했다. 아주 잘 알아들을 수 없는 음성으로.
「그래. 그런 점이 있어.」
이기영이가 가만히 대꾸했다.
「당신도 그렇게 생각했어?」
「응, 모두가 아는 사람 같아서 기분 나빠 죽겠어. 허지만 이왕 왔고, 배는 고프고,,,,,, 먹고나 보자구.」
「그래. 얼른 먹고 나갑시다.」
그들은 더욱 속도를 내어 집어먹었다. 조금 있으니 마이크가 사방으로 요란한 소리를 뿌려놓았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그냥 음식은 그대로 드시기 바랍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그들은 마이크가 서 있는 쪽으로 고개를 들었다. 먹고 있으라니까 먹으면서 .., . 반백의 머리를 하고 얼굴에 주름이 깊이 파여서 오십 줄에 들어서 보이는 사람이 마이크 앞에 서 있었다. 멀리 있기 때문에 얼굴을 자세하게 볼 수는 없었지만 역시 어디에선가 많이 보던 얼굴이었는데도 누군지 꼬집어서 말할 수 없는 막연함을 가지고 있는 그런 얼굴이었다. 그의 이야기는 자꾸만 계속되고 있었다.
「그 동안 우리는 사회에 많은 공헌을 해왔습니다. 우리는 모든 분야에 걸쳐서,...., 교육자들이 모이는 분야에서도, 종교인들이 모이는 자리에서도, 실업가들이 모이는 자리에서도 우리가 직접 일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이 이룩해 놓은 성과나, 혹은 쌓아 놓은 우정에 마지막 장식을 할 때에는 반드시 우리들이 참석하여 그들이 쌓은 업적을 더욱 빛나게 한 것입니다.」
그 정도의 설명만 가지고서는 이 파티를 여는 주최단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전연 짐작이 가지 않았다.
「만일 그렇게 많이 열리는 파티가,,,,,, 그런 파티에 우리들이 참석하지 않았더라면..-그 파티는 성공적--. 끝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파티가 성공적으로 끝나지 않았다는 것은 업적도 성공적으로 끝나지 않았다는 뜻도 되기 때문에 그것은 큰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 우리가 사회에 공헌한 마지막 업적은 절대로 과소 평가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이기영은 잔뜩 귀를 기울이고 있었으나, 역시 무슨 말인지 잘 납득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세상사람들은 아직도 우리의 존재를 정식으로 인정해주지 않고 있습니다. 주주총회에 있어서의 총회꾼은 인정해주면서도, 파티에 있어서의 파티꾼은 전연 인정해주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사회가 아직도 원시적 인 사고방식을 가키고 있을 뿐만 아니 라------오랜 관습 때문에 우리를 단순하게 거지 취급을 해왔던 것입니다. 이래가지고서야 우리의 존재가 어떻게 존속할 것입니까------」
아. 그렇구나,,,,,, 이기영은 비로소 그 파티가 어떤 사람들의 것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런 조그마한 충격으로 먹던 음식을 먹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들은 우리를 몰이해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훌륭한 예술가이며, 콘설턴트이며, 동반자이며, 마지막 몰이꾼이며, 박수자라는 것을 그들은 모르고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를 더러운 놈들이라고 욕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보고 고등실업자라고 합니다. 파티만 찾아다니면서 먹어제끼는 던적스러운 놈들이 라고 욕하고 있습니다. 아내와 가족을 위해서 먹을 것을 마련할 생각일랑 하지 않고 자기 배에다가만 음식을 집어넣는 놈들이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우리 임무가 무엇인지를 전연 알지 못하고 하는 소립니다. 그런 속에서 우리는 굴하지 않고 열심히 파티에 참석하여 주인공들을 고무하고 그들을 칭찬해 주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고, 앞으로도 영원히 인정받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이제는 그의 말이 이기영에게도 똑똑히 들려왔고 그게 바로 남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자신의 이야기라는 것을 차츰 알아차리게 되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파티의 음식을 축내기 위해서 살아 있을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다 죽어버렸을 때,,,,,과연 우리의 존재가 불필요했건 것이냐 어떠냐 하는 것은 남아 있는 사람들이 더 잘 파악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지, 정말 그렇지, 내가 그들을 흥겹게 하기 위해서 협력해준 것만 해. 즉흥연설까지 합한다면,,,,,, 이런 사람들이 전 시내의 파티를 커버하고 다니면서 그들을 즐겁게 해준 공로는 어떤 가수가 따라갈 것이며, 어떤 코미디언들이 따라갈 수 있을 것인가------
「그렇다면 우리는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조금도 살아 있을 가치가 없는 불쌍하고 가련한 사람들이니까 다 함께 죽기로 합시다. 오늘 우리 스스로의 파티가 열리게 된 것은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여러분, 아시다시피 이 음식에는 독약이 충분히 들어 있습니다. 이미 상당히들 많이 드신 것으로 생각되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앞으로 몇 시간 사이에 조용히 별다른 고통 없이 죽어지게 되리라고 생각됩니다. 오늘 여기에 모여서 음식을 먹은 사람이라면.」
「뭐라구요?」
박우세가 미친 듯이 고함을 질렀다. 이기영도 온몸이 굳어지는 것 같았다. 금방 먹은 음식이 거꾸로 마구 올라오는 것 같았다. 눈앞이 캄캄해지면서 몸이 비칠비칠했다.
이기영은 고개를 들고 다른 사람들을 적다보았다. 자기들 세 사람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자기네들처럼 몸을 비틀거나, 새파래져 있거나 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먹먹한 얼굴로 계속 담담하게 음식을 계속 집어먹고 있었다.
「어이구, 정말 죽겠네. 얼른 나갑시다!」
박우세는 금방 쓰러질 것 같은 모습이 되어 이기영에게로 비틀거리며 왔다. 이기영은 자신도 가눌 수가 없을 것 같아서 그를 슬쩍 피해서 한 걸음 물러섰다.
「빨리 갑시다! 죽어도 집에 가서! ,,,,,,」
이기영은 그들에게 눈치를 보내며 복도로 나갔다, 변소에 가서 한바탕 토해버리는 게 나을까. 아니면 이대로 병원으로 달려가는 것이 나을까,,,,,, 종잡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미 늦은 것이 아닐까. 이미 독이 몸 속에 스며들었는지 모르니 ,,,,,,
그들은 복도로 나가더니 우루루 계단을 구를 듯이 내려가서는 현관 밖으로 튀
어 나갔다.
「병원으로!」
박우세가 고함을 질렀다. 이미 그는 살아 있는 사람이라기보다도 귀신같은 모습이었다.
「병원에 한푼도 없이 어떻게? 우선 집으로 가야,,,,,,」
「집으로 가도. 병원으로 가도 이미 늦었다!」
박우세와 김지박이 아우성을 쳤다. 이기영은 비틀거리며 금방 쓰러질 듯하게 걸으면서도 인제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두 사나이는 방향도 없이 마구 뛰어가더니 어디론지 자취를 감추어버리고 없었다. 이제는 자기가 꺼질 차례였다. 버스를 타고서는 답답해서 견딜 수가 없을 것이고 혹시 차안에서 발작을 일으키다가 죽게 된다면 사람들에게 우세스럴 것이다,,,,,, 주머니에는 택시를 탈만한 돈은 없었다. 그는 달려갔다, 집으로 가다가 어떻게 되어도 일단은 집으로 가는 것이 좋으리라고 생각되었다. 그는 정신없이 달려갔다. 들숨날숨도 없고 어떤 생각을 지금 해야 할지 알 수도 없었다. 다만 정확한 것은 아직 죽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다는 사실뿐이었다. 평생을 돈 한번 벌어본 일이 없고, 일 한번 해본 일도 없는 그였지만. 자기의 인생이 전연 보람없는 인생이라고는 한번도 생각해본 일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아무도 따라올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고상함과 순수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귀중한 인생이------잘못 참석한 파티 때문에 횡사를 하게 되다니,,,,,, 너무 억울해서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내가죽다니! 이 위대한 내가 죽다니! 이렇게 많은 공헌을 한 내가 때 아니게 횡사를 하다니----」
그는 길을 뛰어가다가 지랄병에 걸린 사람처럼 길바닥에 데굴데굴 뒹굴며 발광을 했다.
다음날 오정이 지나서야 이기영은 자기 다락방에서 조용히 눈을 떴다. 이게 혹시 영계가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에 한참 동안 그는 꼼짝도 않고 가만히 눈알만 돌리며 주변의 상황을 하나씩 세심히 관찰했으나 그것은 절대로 영계가 아니고 이 지상이며 조그마하고 어두운 다락방이며 자기라는 이기영은 죽은 것이 아니라 약간의 피로 속에서 아무런 이상도 없이 다시 눈을 뜨게 됐다는 것을 확실히 깨달았다.
그는 너무 기뻐서 죽을 지경이었다.
「역시 하늘은 나의 존재를 알아주시는구나!」
그는 다시 한번 자기가 어떤 위대한 인물보다도 더욱 위대하다는 것을 똑똑히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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