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할 때 나는 눈을 감는다 김봉순
한겨울 새벽녘 뭔가가 하늘에서 나풀거리며 내리던 도로를 가로질러, 찬바람을 뚫고 병원에 도착한 나는 곧바로 응급실로 직행한다. 간호사가 보호자를 찾았으나 나는 혼자 왔다고 말한다. 간호사는 마치, 이 상태로 어떻게 혼자 왔냐는 듯 어깨를 한번 들어 두 팔을 벌리며 놀라는 시늉을 한다.
그는 지난 달 중순께 집을 나갔다. 어디에 있는지 나는 모른다. 그나 나나 자기 위치를 자세히 얘기하지 않는다. 아니 서로 알려고 하지 않는다는 말이 더 정확하다. 그것은 오래 된 우리 생활 방식이다.
- 좆 붙어먹은 년 빤스 핥어 먹은 놈아! 어디서 에미를 이런 식으로 응?
이게 무슨 소린가? 처음엔 나는 내 귀를 가만히 두드려봤다. 분명 잘못 들은 거다. 편두통으로 인한 진통제 남용으로 정신이 잠시 혼미해진 듯하다. 태어나 이런 무지막지한 욕은 단 한 번도 들어본 적, 나는 없다. 더구나 자기 자식에게 내 뱉는, 이 치욕스런 저주는 처음 듣는다. 내 의식은 점점 또릿해져 멀쩡해진다. 새까맣게 보이던 하늘이 서서히 제 빛깔을 찾아가고 있다.
하이소프라노 톤의 그 욕지거리가 순간, 병실 안을 평정한다. 모두들 숨을 죽이고 서로 눈치를 보는 가운데, 잠들었던 자들이 하나 둘 부스럭거리며 일어나는 기척이 느껴진다. 커튼 하나로 칸막이 공사를 했다지만 어쨌든 한 방에 여섯 명이 누워있는 병실이다.
간이역 근처 허름한 선술집 작부 입에서나 나옴직한 욕을, 메들리로 엮어 아들에게 따발총처럼 퍼부어대는 인물이 나는 몹시 궁금하다. 그래서 두 귀를 쫑긋 세우며 그들 모자의 전쟁을 구경하려 마음먹는다.
이름도 알 수 없는, 온갖 검사를 받느라 나는 이미 지칠 대로 지쳐버린다. 무슨 검사가 그리 많은지 팔과 발목에 주사기를 꽂아 놓고 간호사는 여러 번 내 피를 빼간다. 이따금 맑은 수액이 가득한 투명 비닐봉지를 번갈아 높이 매달았고, 어떤 친절한 간호사는 내 팔과 손등에, 따끔할 거라는 말과 함께 주사 바늘을 찌르며 수선을 피운다. 그래도 아프기는 마찬가지지만. 초조한 마음으로 검사 결과를 기다리며 시끌벅적한 응급실 침대에 누워있는데, 바쁘게 서로 부딪치듯 오가는 의사들을 보면 꼭 병원드라마를 찍는 듯하다.
주고받는 그들의 언어를 나는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다. 그 상황에 맞는 우리말이 있으련만 그들은 꼭 영어만 사용한다. 어찌어찌 늦은 오후가 되어서야 입원명령이 떨어졌고 나는 곧바로 십층 병실로 안내된다. 일반 병실로 옮겨진다는 말만 들어도 병이 다 나은 것 같다. 응급실에 가본 사람은 내 심정을 알거다.
병실의 구조는 한쪽에 세 개씩 양쪽으로 나란히 모두 여섯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침대가 놓여있고 그중 비어있는 가운데 침대가, 바로 내 자리다. 침대에 올라서자마자 나는 꼬리 잘린 도마뱀처럼 스르르 이불속으로 파고든다. 온갖 삭신이 그대로 녹아 바닥으로 유영하는 듯한 환상에 사로잡힌다.
겨우 남아있던 에너지의 잔유량 마저 바닥을 드러내는지 도통 기운을 차릴 수 없다. 편두통이 시작될 때부터 정확히 이레 가까이 나는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시체놀이를 했다. 밥맛도 없거니와 일어날 때마다 현기증이 일어 내 의지대로 어떤 일이든 할 수 없다. 화장실이나 싱크대에 갈 때도 벽을 짚고 다닌다.
나를 뺀 입원환자 대부분이 모두 노인이라서 처음엔 요양병원으로 잘못 들어온 게 아닌가 생각했다. 새벽 진눈깨비를 뚫고 응급실에 온 효과가 다행히 나타나 편두통은 시나브로 잦아든다. 편두통이 멎으니 살 것 같았으나 워낙 위가 비어있는 상태라 매스껍고 어지럽다.
그 와중에 나는 스마트 폰을 꺼낸다. 그저 그런 안부문자 몇 개와 출판사 직원의 원고 독촉 문자가 전부다. 피드백을 한다는 게 전처럼 터치가 민첩하지도, 정확하지도 않아 자꾸 오타와 탈자가 발생한다. 거기에 미처 작성되지 않은 미완의 문장이 휘리릭 넘어가기도 해 짜증이 슬며시 몰려온다. 육신은 저 혼자 따로 놀지 않는다. 영혼과 정신을 담고 있는 그릇이기에, 그 그릇이 엉성하면 그 안에 담겨있는 내용물 역시 부실하게 된다는 것, 이번 기회에 나는 철저하게 깨닫고 있던 중이다.
지난해 연말이 시작될 무렵 나는 죽을 만큼 아팠다. 마치 바늘로 뒷머리를 콕콕 찌르는 듯한 통증은 차라리 고문이다. 그 고통은 내의식과 영혼을 매시간 토막 내듯 야금야금 갉았으며, 지속적으로 따끔거리며 밤낮을 가리지 않고 나를 괴롭혔다. 진통제를 계속 투여하는데도, 고열을 동반한 통증은 쉽게 가라앉질 않았다.
우리 몸 어디가 아픈들 고통스럽지 않을까만, 머리를 쪼아대는 통증은 상상만으로도 징그럽다. 불을 훔쳤다는 죄목으로 독수리에게 매일같이 간을 쪼아 먹히던 프로메테우스의 고통보다 내 편두통이 더 진한 아픔으로 다가왔다.
미열과 함께 머리가 욱신거리기에 처음엔 단순한 감기로 여겼다. 감기야 병원가면 일주일, 가지 않으면 이레라고 하지 않던가. 나는 약을 먹으며 침과 뜸으로 자가 치료를 도모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다보면 나아지겠지, 라고 안일하게 대처했던 것도 같고 내 딴엔 이런 저런 약을 먹으며 플라세보 효과를 기대했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별 진전 없이 며칠을 보내며 병만 키운 나는 이미 정상이 아니었다. 고통으로 일그러진 내 얼굴은, 뭉크의 절규를 연상시키기에 충분했고 심약해질 대로 약해진 정신 또한 이미 정상의 범주를 벗어났다. 그 정도가 되고서야 어리석게 나는 응급실을 찾았다. 전에도 그런 통증을 경험했고 그럴 때마다 진통제나 자가 치료로 효과본 적 있기에 그리 크게 걱정하지 않았던 게 실책이라면 실책이다.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대충 주변을 정리한 후 팔에 링거를 꽂으니 제법 환자다운 면모가 드러난다. 환자는 오롯이 이래야 한다. 입원하면 이런 식으로 팔에 주사바늘을 꽂혀야 하고 모두가 똑 같은 유니폼으로 갈아입어야 드디어 이 병원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의사의 지시를 따르고 간호사의 주사 세레머니를 공유하며 일정한 시간 다 같이 식사를 하고… 그것이 유니폼이 주는 안정감이다.
두렵고 불안했던 마음이 서서히 안정모드로 접어들자 피곤이 안개처럼 스멀거리며 내게로 몰려든다. 두통으로 며칠 밤을 새웠는지라, 잠의 나신이 한꺼번에 밀려들어 하품이 자주 나온다. 나는 벌어진 입을 급히 닫으며 가수면 상태로 접어든다.
그러자 눈앞의 모든 상황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그 때부터 전혀 원하지 않았지만 옆 침대 환자들의 일거수일투족이 손에 잡히듯 훤히 들리기 시작한다. 얇은 커튼 한 장으로 여섯 공간을 나눈 입원실. 그러니까 여섯 사람이 각각 육분의 일만큼의 공간 안에서 먹고 자고 웃고 떠들며 신음한다. 커튼 너머로 그들의 소리며 냄새며 속삭임까지 다, 내 공간으로 날아들지만 그렇다고 화를 내거나 주거침입죄로 고발할 수도 없는 실정이다.
내 오른쪽 침대노인은 경도인지장애 수준을 보인다. 피곤할 정도로 자꾸 같은 질문을 해대는데 대화의 상대는 딸인 듯하다. 딸과의 대화가 천상의 하모니처럼 들렸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어딘지 모를 어색함이 느껴진다. 어떤 계략이 숨어있는 듯, 들을수록 그들 모녀의 대화가 아리송하다. 딸은 노인의 인지상태를 수시로 체크하는 듯 이것저것을 묻고 또 묻곤 한다.
- 요양병원에 계실 때 그렇게 힘들었어요? 과일이랑 떡도 못 먹고? 저런 딱하기도 하지. 헌데 엄마 누가 젤 많이 면회 왔어요?
아마 안아 주는 듯, 잠시 뜸을 들이더니 곧 이어 노인이 말한다.
- 응, 그랴 우리 딸 얼마나 보고 싶었따구. 아마 느네 언니가 여러 번 왔쟈?
그러자 곧바로 딸이 다시 대답한다.
- 접땐 안 간다고 하더니, 그러니까 언니가 젤 많이 왔다는 거지? 저런 우리엄마 많이 기다렸구나. 세상에 그 곱던 우리 엄마 얼굴이 이게 뭐야? 근데 엄마 언니가 뭐래?
듣다보니 세상에 둘도 없는 딸이다. 뭘 먹고 저런 딸을 낳았나? 신기하다. 근데 어째 대화내용이 좀 웃긴다. 요양병원에 있다 치료받으러 나온 모양인데 그 요양병원에 있을 때 천하 없이 효녀인 듯한, 이 딸은 한 번도 방문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나는 얼른 이해되지 않았지만, 모녀의 애정이 넘쳐 터질 듯한 대화를 들으며 점점 그 진정성에 의문이 생기기 시작한다. 그러던 중 병실 문이 열리며 누군가 들어서는 기척이 들린다.
며칠 동안 고열과 통증으로 온밤을 새우고 거기에 비어있는 위장상태가 모든 음식물을 거부하는 바람에 나는 몹시 지친다. 그래서 병실 침대에 눕자마자 금방이라도 잠속으로 곯아떨어질 법도 하련만 정신을 점점 더 또릿해진다. 여전한 가수면 상태에서 오른쪽 침대노인의 또 다른 딸의 방문이란 걸 그들의 대화를 통해 나는 금방 감지한다.
서로 엄마 내가 몇째 딸이지? 이름은?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노인을 테스트한다. 그리고 여느 가족처럼 서로 안부를 묻고 까르륵 웃기도 하다 돌아가는 게 보통이건대 이들은 약간 달라 보인다. 그 때다. 여태껏 한마디 말이 없던, 노인 입의 혀처럼 굴던 딸의 남편으로 보이는 남자가 장모님 건강… 어쩌구 그럼 이만 안녕…히, 라며 급히 문을 나서는 발소리가 들린다.
거기에 방금까지 천사처럼 굴던 노인의 딸도 마치 빚쟁이를 만난 듯 노인에게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서둘러 남자와 함께 총총 사라진다. 잠깐의 침묵으로 미루어 분위기가 갑자기 썰렁해진 듯하다. 나는 점점 잠속으로 빠져드는 게 아니라 커튼 한 장 사이로 들리는 그들의 행태가 궁금해 미궁 속을 헤매는 것 같다. 그래서 추적하기로 마음먹고 자세히 들으려 그쪽을 향해 귀를 쫑긋한다.
노인은 크르릉거리는 가래를 달고 지낸다. 그 소리 때문에 나는 심장이 멎는 듯 답답했을 뿐만 아니라 헛구역질까지 나온다. 한 팔에는 링거를, 한 팔엔 채혈을 위해 박아놓은 칩이 있는 상태라 내 팔은 사이보그처럼 뻣뻣하다. 다시 시작된 편두통만 아니라면 나는 어떤 거라도 다 용서하려 한다.
밤이 되자 편두통이 또 다시 나를 옥죈다. 언제 도착했는지 오른쪽 침대 노인의 며느리가 와 있다. 며느리는 훈육주임처럼 오자마자 노인을 압박하며 주변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 엄니 요쿠루트 쫌 흘리지 말고…, 어라 마스크는 왜 또 벗으셨대?
건조하기 짝이 없는 며느리 말이 꼭 시비조로 들려 괜한 내가 짜증난다. 방금 전까지 딸들과 희희낙락하던 노인의 말소리는 어디로 사라지고 말끝마나 불평이 주저리주저리 달린 며느리 얘기만 들린다.
그 사이 나는 깜빡 잠이 들었다 다시 깼던 것 같다. 아픈 상태에서의 잠자리 이동은 숙면을 방해한다. 나는 또 다시 커튼 한 장 사이로, 며느리가 노인네 길들이기 하는 소리를 듣는다.
- 엄니 남들 잘 때 주무세요. 혼자 깨어 부시럭대지 말고.
노인을 돌보느라 지친건지 아니면 사이가 틀어진 건지 나는, 그들 고부간의 매끄럽지 않은 언어유희를 보며 내심 불안하다. 노인은 늘 크르르릉 뱉어지지 않은 가래를 품고 가족들과 나를 긴장시킨다.
그때다. 잠깐 비어있던 내 왼쪽침대로 누군가 급히 옮겨지는 소리가 난다. 곧이어 무슨 신음소리도 들린다. 차에 치인 고양이의 울음소리도 같고 아픈 새소리와도 닮았다. 애매하게 들리는 소리로 막 잠이 들려는 기운들이 다 사라지고 나는 다시 또릿해지는 인식체계로 돌입한다. 주인공은 왼쪽침대 환자다.
내 모든 감각이 조금씩 무디어지기 시작하면서 정신 또한 해제가 된 듯 몽롱해진다. 이 모든 것이 독한 약 때문이라는 걸 나는 단박에 안다. 편두통이 빨리 듣지 않아 신경계통의 다른 약과 함께 지급받았다. 나로선 신약처방이다.
그래서 복용 전 약간의 두려움도 있었으나 의사의 충분한 설명을 듣고, 전부터 먹던 약에 가바틴 캅셀을 입속에 털어 넣는다. 장기질환자인 나는 약에 대해 예민한 편이다. 의사 입장에서도 기피하고픈, 요주의 인물이 바로 나 같은 장기질환자 일거다. 어찌되었든 약의 효과라면 편두통이 점점 사라진다는 점이고 약의 부작용이라면 불굴의 의지- 즉 나도 모르게 정의의 사도가 되어간다는 점이다.
갑자기 스파르타 군사라도 된 듯 망설임 없이 내 용기가 충만해진다. 그래서 아예 이참에 마음에 들지 않는 인간, 몇 때려눕혀 나의 본때를 보여주는 게 어떤가, 생각만으로도 얼마나 신나고 통쾌한 일인지…, 거기까지 내 생각이 이르렀을 때 어디선가 갑자기 또 고양이 울음소리 같은 찢어지듯 카랑카랑한 소리가 병실안 모든 환자들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는다. 방금 들어온 왼쪽 침대 환자다. 아들에게 다시 퍼붓는 저주가 온 병실을 불안의 쓰나미로 뒤덮는다.
- 에라 쓰발, 좆 붙어먹은 년 따라가지? 그년 안 따라가고 왜 나를 이곳으로 끌고 왔냐고, 이 씨바랄 눔아!
그 아들이란 작자도 여러모로 미스터리한 인물이다. 그런 와중에 혼자만 씩씩대지 대거리 한번 하지 못하고 그걸 옴팍 당하고만 있다. 나는 순간 연탄가스를 흡입한 듯 두통이 다시 몰려와 머리가 무거워진다.
웬만하면 참아보려고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싼 채 침대위에서 뒹굴며 망설이던 나는, 순간 내 왼쪽 커튼을 쫙 걷어 젖힌다. 그리고 오른 손을 권총모양으로 만들어, 그 환자를 향해 쏘는 시늉을 한다. 그리곤 외친다.
- 유, 쏴랍! 한번만 큰소리치면 쭉여 버릴거야. 나도 무쟈게 아퍼. 겨우겨우 참고 있는데 어디서 같찮게 지랄이야 응? 큰소리치려면 독방으로 꺼지든가 시팔!
진심이건데 내가 외친 게 아니다. 방금 내 식도를 통해 쏜살같이 위장으로 내려간 독한 약이 소리친 거다. 잠깐 내 머리가 미친 것 같다. 아니 저 염병할 인간 때문이다. 말해놓고도 나 스스로 놀란다.
편두통이 다시 고갤 들고 나를 괴롭힌다. 나는 공벌레처럼 머리를 감싸 안은 채 육분의 일에 해당하는, 내 공간 안에서 몸부림을 친다. 여전히 오른쪽 노인은 가래침을, 왼쪽에서는 카랑카랑한 암괭이 소리를 내며 아들과 전쟁 중이다. 순간 병실 안이 폭탄 맞은 듯 조용하다. 간헐적으로 큰소리가 나긴했지만 왼쪽 환자 목소리가 많이 낮아진 점은 확실하다.
그 아들이란 작자는 나가지도 않고 버티고 앉아 그 욕을 다 듣고 있다. 놀랍다기보다 그들 모자의 사랑방식이 나는 무섭도록 궁금하다. 그 아들, 지나친 효자 아니라면 모자라도 한참 모자란 등신 같다. 내가 자기 엄마를 향해 큰소리를 쳤는데도 한마디 대거리도 없다.
하지만 나 역시 만만치 않다. 잔뜩 독기를 품을 채 누구든 달려들면 물어뜯을 태세로 두 팔을 출동직전 로봇과 같이 만들어 상대가 쳐 들어오기를 커튼 안에서 나는 기다린다.
편두통은 끈질기게 내게 들러붙어 떨어져 나갈 줄 모른다. 병의 속성이란 대개 밤이 되면 더 심해진다. 긴긴 겨울밤 이 지랄 같은 고통과 또 싸워야 하나… 생각만으로 나는 미칠 것 같다. 그 사이 내 오른쪽 침대 가래침 노인의 간병인은 조선족으로 교체되었다. 며느리는 언제 돌아갔는지 없는 모양새다. 간병인이 말한다.
- 할마이 기저귀 갈아야겠어요, 여여 엉덩이 좀 들어 봐요.
그러자 노인은 간병인 신상을 터는 사람처럼 이것저것 캐묻기 시작한다.
- 이름 뭐요? 남편 있에요? 한 달 얼매 버노? 뭐라꼬?
간병인은 성실하게 그러나 짧게 대답한다. 이처럼 조선족 억양의 말을 여기저기서 자주 듣다보니, 우리나라 병원의 간병인 세계는 이미 그녀들이 접수한 듯 보인다. 다른 병실을 지나치며 듣게 되는 간병인의 말씨가 대부분 조선족이다. 어쨌든 그들은 성실하게 환자를 케어하며 섬기려 노력한다. 자주 병원에 입원했던 나는 조선족 간병인을 몇 차례 만났는데 그때마다 만족했던 기억이 새삼 떠오른다.
방금까지 며느리에게 찍소리 없이 조용하던 노인네가 간병인이 등장하자 목소리가 조금씩 커져간다. 한번 시작한 질문은 끝이 없다. 간병인을 옆에 두고는, 자식 있나, 남편 뭐하는 사람이냐, 돈 잘 벌어 오나, 등 무차별적 질문들을 쏟아낸다. 듣고 있자니, 비록 커튼 속이지만 바로 옆에 있는 내가 오히려 민망하다. 그래서 나는 더욱 그들의 대화에 집중한다.
듣고 있다가 도저히 이건 아니다 싶으면 무례하거나 말거나 끼어 들 태세로. 하지만 간병인 역시 이런 일엔 이골이 난 듯 어떤 질문도 척척 피해가며 적절하게 반응한다. 노인은 부탁할 때면 꼭 어린애 같은 목소리로 말한다.
- 어여 내 다리 좀 주물러 줘 봐봐. 내 기저기 젖었어, 아쿠 궁댕이가… 아퍼.
저기 말이야, 우리 며느리 언제 갔수, 퍼얼써 집에 갔다구?
며느리가 집에 돌아갔다고 간병인이 여러 번 말해주는데도 노인은 계속 묻는다. 내 생각엔 노인이 며느리를 찾는 게 아니라 다시 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묻는 것 같다.
간병인은 노인의 요구를 비교적 잘 들어준다. 기저귀를 갈아주려고 아랫도리를 벗겼나 보다. 찌든 지린내가 커튼을 뚫고 내 침대까지 넘어와 낮게 퍼진다. 나는 구역질이 나올 정도로 속이 메슥거린다. 우리 몸에 붙어있는 오감 중, 후각이 가장 먼저 피로해 진다는 사실은, 고맙지만 익숙해질 때까지 아무래도 난감하다. 간병인은 환자 아랫도리를 확인했는지 노인을 향해 처음으로 야단치는 말을 뱉는다.
- 아니요, 오줌 안 쌋시오. 그렇게 그짓말 하먼 앙이 되오. 할마니 약 먹을 시간이야요. 자 입이나 크게 벌리라우 자, 어서 아 아.
그때까지 그는 연락조차 없다. 새벽녘 응급실로 간다는 간단한 메모를, 신호등에 차가 잠깐 섰을 때 머리를 감싸며, 그 와중에도 난 그에게 두 줄이나 날렸다. 끝 문장엔 …많이 그립다, 라고 썼던가. 그런 유치한 말을 어쩌자고? 하지만 그는 여전히 침묵이다. 아니 문자 확인조차 하지 않는다.
무엇이 그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인간은 누구나 변한다. 그리고 변하는 건 좋은 일이다. 변화만이 우리를 성장시킨다. 지난여름 바닷가, 모래발자국에 남아있던 깨알 같은 밀어들이 발밑에서 아직도 서걱거리는 소리를 낸다. 그거면 충분하고, 또 충분하다고 자위하며 나는 조용히 눈을 감는다. 눈물방울 하나가 굴러가는 뺨 위가, 간지럽다.
그사이 내 왼쪽 침대 환자의 메들리 욕지거리도 잦아들긴 했으나 고양이 소리 같은 신음은 여전하다. 나는 잠이 들었다 언제 깼는지 모를 정도로 현실과 꿈 사이를 변주하듯 넘나든다. 내가 나비인지 나비가 나인지… 장자처럼. 잠들어 있는 게 현실인지, 현실이 잠속에 펼쳐지는지 모든 게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그래서 잠이 깰 때마다 개운하기는커녕 몸이 더 피곤하다. 뿐만 아니라 꼭 쓰리 디 영화관에 앉아있는 것처럼 침대가 들썩거리는 듯 환각현상도 나는 간간이 느낀다. 몸이 성치 않은 상태에서 잠자리까지 옮긴 터라 정신이 부산스럽고 사위가 산만하다. 자는 동안에도 옆자리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일상사가 내 귀에 깔때기를 씌운 것처럼 모조리 빨려든다. 어느 틈에 또 왔는지 오른쪽 침대 노인의 며느리는, 환자인 시어머니 상태를 간호사를 불러 속삭이듯 묻는다.
- 우리 어머니 아직 멀쩡한 거죠? 그것 초기단계라고 하신 것 말곤.
좀 전까지 간병인에게 이것저것 묻기도 하고 큰소리치던 노인은 며느리 앞에서 그만 순한 양이 된다. 가끔 가래소리만 크르릉 댈 뿐. 한쪽에선 가래침 뱉는 소리, 한쪽에서는 간간이 아들과 싸우는 소리로 정신을 차릴 수 없었던 나는 간호사에게 이 방에서 나가고 싶으니 다른 병실이 비거든 빨리 말해달라고 부탁한다.
다시 시작된 편두통이 독 오른 살모사처럼 대가리를 쳐들며 꿈틀거린다. 진절머리 나는 통증으로 인해 나는 머리통을 붙잡고 고래고래 소리 지른다.
- 한쪽에서는 가래침을 뱉질 않나, 한쪽에서는 큰소리로 싸우질 않나… 이건 병원이 아니라 지옥이야 지옥! 어쩌라구? 나도 아파 미쳐버릴 것 같은데, 왜 이렇게 떠드는 거냐구? 시팔!
그렇게 나는 병원이 떠나가든 말든 바락바락 악을 쓰다 설핏 잠이 들었던 것 같다. 한참 후 깨어났을 땐 왼쪽 환자는 아예 병실을 옮겼는지 아니면 병원을 나간건지 그 뒤로 끝내 보이지 않는다. 나의 잠꼬대 같은 외침이 병실을 평정한 것 같아 민망한 한편 은근히 기분 좋다. 그 뒤로 한동안 우리 병실엔 정적과 평화가 지속된다.
나는 왼쪽 환자가 완전히 나갔음을 확인한 후 곧 바로 창가, 그 침대로 내 짐과 몸을 옮긴다. 옮기고 채 한 시간도 안 되어 새로운 환자가, 좀 전의 가운데 내 자리로 들어온다. 목소리로 보아 젊은 여자인 듯하다.
그녀는 들어오자마자 신음소리를 내며 내리 잠만 잔다. 그러는 사이 오른쪽 환자를 돌보는 조선족 간병인은 이미 노인을 평정한 듯, 자연스럽게 권력이동이 이뤄졌다. 한동안 간병인을 쥐락펴락한 갑 질 노인이, 어느 사이 을이 된 것 같다.
이제 을은 갑의 도움 없이는 먹는 것도 눕는 것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을은, 갑인 간병인에게 오줌 쌌다거나 며느리 어디 갔느냐, 고 시도 때도 없이 말을 건넨다. 지친 갑인, 간병인은 끝내 대답하지 않고 침묵으로 일관한다.
철저하게 노인의 말을 무시한다. 을이 기저귀를 갈아달라고 조를 땐 환자복을 내리고 소변여부를 확인한 후, 을의 엉덩이를 찰싹 부쳐대기도 한다. 그리고 식사시간에는 마치 협박하는 듯한 말까지 서슴지 않는다.
- 며느리는 밥도 떠 멕이지 말라 했시오. 할마니 혼자 먹을 수 있는데 자꾸 버릇 나빠진다고, 자 빨리 식사해요. 안 먹으면 밥상 치워버릴 거야요.
간병인은 여전히 최선을 다한다. 입원해 있는 동안 나 역시 그녀 도움을 받는다. 링거를 꽂은 상태에서 식판을 들고 나서자 어디선가 그녀가 득달같이 달려와 내 식판을 채간다. 고맙다는 인사를 그녀가 듣기나 했는지 모르겠다.
나는 그녀의 수고와 헌신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모두가 잠든 시간에도 노인은 혼자 깨어 뭘 그리 부스럭대는지 그 소리에 나 역시 여러 번 깬다. 간병인은 저녁을 먹은 뒤 일찌감치 육분의 일을 비추는 전등을 꺼버리곤 노인을 향해 어서 빨리 자라고 말한다. 하지만 한밤중 노인네의 부스럭댐은 계속되고 그 소리에, 겨우 잠들었던 나는 또 불면의 밤을 보내기도 한다.
한밤중이다.
내가 좀 전에 누워있었던 가운데 자리로 들어온 젊은 여자환자 침대가 들썩이며 거친 숨소리가 난다. 나는 소변 때문에 잠이 깼으나 얼른 일어나 화장실 갈 엄두를 내지 못한다. 다만 옆 침대 젊은 여자와 누군가의 신성불가침한 달콤한 시간을 방해하고 싶지 않을 뿐. 병실인지 모텔인지 구분 못하고 열을 올리는 그들만의 행태가 나는 엄청 부러워서 하마터면 커튼을 젖히고 파이팅, 을 외칠 뻔 했다. 그래 그럴 수 있다. 우리 사랑이 그랬듯, 사랑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의 연속이니까.
한밤중 노인의 이해할 수 없는 반복적 부스럭댐을, 나는 알아챈다. 혼자말로 하는 말을, 나는 가수면 상태에서 여러 번 듣는다. 그게 어딨더라 노인의 행동은, 간병인을 깨웠고 나를 깨웠고 이어 병실 안에 있는 다른 환자와 보호자를 차례로 깨운다. 그럴 때마다 화가 났으나 참을 수 있었던 것은, 때마침 편두통이 시나브로 완화되고 있었기에 가능하다. 악마처럼 악을 쓰고 난 후 내 편두통이 거짓말처럼 서서히 가라앉는다.
회진을 돌던 의사는, 초음파 검사의 필요성을 주지시키며 그것만 끝나면 주말쯤 퇴원해도 되겠다는 말을 남기고 병실을 빠져나간다. 초음파 검사를 위해 요의를 참으라고 의사를 뒤따라온 간호사가 내게 말한다. 나는 주말쯤 퇴원해도 된다는 의사 말이, 하나님 말씀처럼 들려 고맙고 감사하다. 마침 크리스마스이브이고 거기에 눈까지 내려 병실 안에 있는 게 너무 외롭다.
옛적 언젠가 그때도 연말에 병원에 입원한 적 있었는데, 하필 그 쓸쓸하고 몹쓸 기억이 불현듯 떠올라 마음이 더 울컥한다. 그때도 그는 없었고 나 혼자 병실에 쳐 박혀 있었다. 함박눈이 내려 각종 매스컴에서는 화이트 크리스마스니 뭐니 하며 떠들어댔지만, 나는 이런저런 검사와 처치로 집에 갈수 없었다.
정말이다. 입원한 상태로 크리스마스와 연말을 혼자 보내며 마치 버림받은 여인처럼 서럽게 눈물 짜는 일은 절대 못할 짓이다. 죽은 여자보다 좀 더 가엾은 것은 잊혀진 여인이라던가, 아무리 생각해도 그렇게 읊어댄 로올랑생의 시는 너무 슬프다.
어쨌든 오랜 기간 병원생활을 여러 번 했고, 입원하고 이틀만 지나면 병원이 내 집처럼 적응되어 편안하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나, 역시 이 세상 어디에 내 집만 한 곳이 또 있을까.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만한 곳은 비록 초막 일망정, 내 집 뿐일걸!
검사를 위해 요의를 참으라는 간호사의 말이 생각나, 나는 소변이 급한데도 다리를 비비꼬며 최대한 견뎌낸다. 이윽고 초음파 실에서 나를 부른다. 어두컴컴한 방으로 안내된 나는, 복부를 드러내기 위해 환자복을 위아래로 젖힌 다음, 침대에 누워 의사가 들어오기를 초조하게 기다린다. 의사는 들어오자마자 간단한 것 몇 가지만 확인한 후 검사에 필요한 크림을 내 복부위에 잔뜩 끼얹는다.
그리곤 곧 바로 초음파 기계를 들이밀어 배 이쪽저쪽을 밀고 다닌다. 스피커에서 물 흐르는 듯, 쿨렁거리는 소리가 섞인 여러 비음이 한꺼번에 들린다. 초음파 검사가 끝난 다음 복부에 묻은 크림을 티슈로 닦는데 묘한 기분이 든다.
체위사정을 하고 난 후 싸늘하게 식은 정액의 끈적거림과 같은 그 느낌이, 나는 무지 싫다. 그래서 구석구석을 꼼꼼하게 닦고 있는데, 간호사가 들어와 다음 환자가 대기하고 있으니 빨리 나가달라고 말한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갑자기 기분이 더러워진다. 그래서 복부 닦은 티슈를 던져 넣은 쓰레기통을 발로 격하게 차버리곤 그곳을 빠져나온다. 그 때 그도 그렇게 말했다,
- 끝났으니 그만 나가줘!
내가 그를 찾아갔을 때 그는 건조한 언어를 사용했다. 뜨거운 밤을 보낸 게 채 사흘도 되지 않았는데, 그는 그렇게 매몰차게 내게 말했다. 사랑이 무어냐고 묻는다면? 그리고 누군가 Do you love me? 라고 묻는다면, 그는 지금도 이렇게 대답할거다.
- sure, I love you right now!
병실로 돌아왔을 땐 나를 기다리고 있는, 미니 식탁위에 저녁식사가 보였으나 이미 멀리 도망친 입맛이 다시 돌아올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오른편침대 노인은 식사문제로 간병인과 또 씨름을 하고 있다. 입을 벌려 밥을 받아먹으라는 간병인은 이젠 노인에게 그런 사정조차 하지 않는다.
한번 말해놓고선 노인이 듣지 않자 그대로 식판을 밖에 내다 놓는다. 그전에도 간병인이 노인에게 몇 차례 경고한 바가 있기에 간병인이 나쁜 사람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내가 처음 병실에 왔을 때 있던, 노인 입의 혀처럼 굴던 딸은 그 뒤로 다시 오지 않는다. 늦은 밤 노인이 배고프다며 잔소리를 늘어놓자, 간병인은 더 이상 간병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며 날이 밝는 대로 떠나겠다고 한다. 그러자 곧바로 노인의 간청하는 소리가 커튼을 넘어 내 자리까지 넘어온다.
- 아녀, 가지마. 밥 잘 먹을 테니 가지마. 입맛이 읎어. 입이 소태같이 써. 사탕 있음 줘봐. 아무도 나한텐 관심도 읎어, 그저 내 통…장만.
노인은 뭔가 말하려다가 급히 입을 닫는다. 그렇게 말하는 노인이 어딘지 가엽게 느껴진다. 어눌한 말만 내 뱉는 노인이, 살아 있되 죽은 거나 진배없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다. 죽은 것처럼 누워있고 금방 죽을 것처럼 취급되지만…. 밤이 되면 여기저기 환자들의 신음소리가 활개를 친다.
나는 모처럼 코까지 골며 잠이 든다. 하루 종일 이런 저런 검사며 수액을 맞느라 노곤했던 모양이다. 거기에 수시로 올라오는 편두통은 물론, 병실 환자들과 면회객들의 수선거림으로 입원 후 제대로 잠든 적이 없다.
이제 병원생활이 익숙해 질만한데 퇴원이라니, 그러나 빨리 집에 가고 싶다.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에 병실에 혼자남아 있는 건 형벌이다. 흔히 말하는 혼밥이나 혼술 거기에 혼행까지 뭐든 혼자 할 수 있는데 병원 입원만은 혼자인 게 정말 싫다.
적당한 시간에 누군가도 찾아오고 누군가의 위로도 필요하고…, 나는 그것을 얼마나 고대했던가! 그러나 그는 끝내 나타나지 않는다. 아니 전화조차 없다. 링거를 매단 채 나는 병원 복도와 휴게실을 오가며 그의 그림자라도 나타나기를, 다른 사람들의 정담이 이토록 정겹고 부러웠던 적 일찍이 있었던가. 그러나 나는 무소의 뿔처럼 철저히 혼자다.
병원을 나서자 퇴원을 축하하듯 함박눈이 사정없이 내린다. 자동차 와이퍼를 쉴새없이 작동하며 천천히 브레이크를 밟다가, 갓길에 자동차를 세운다. 잠깐이라도 내리는 눈과 조우하고 싶다. 눈 내리는 하늘은 생각보다 투명해 보인다. 맑은 하늘에 눈이라니, 비현실적으로 보였지만 나는 오랜만에 맡아보는 눈 냄새, 겨울 냄새가 싫지 않다.
오랫동안 그대로 서서 눈을 맞는다. 살아있다는 건 이런 것이다. 눈도 맞아보고 바람도 쐬고 그리고 보고 싶은 사람들을 실컷 그리워하고….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 고 누가 그런 슬픈 말을 지껄였던가! 나는 다시 태어난 기분으로 새해를 기다린다.
신년이 밝았다. 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인터뷰도하고 글을 써서 출판사에 넘기고, 일련의 반복적인 생활은 다시 계속된다.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다. 퇴원 후 정확히 이레 만에 다시 그 병원 외래를 가야한다.
그건 이미 예약된 것으로 사실, 편두통의 원인을 밝히지 못한 채 퇴원한 거라 결과가 궁금했던 차 방문하게 된 것이다. 신경과 담당의는 모니터에 나타난 내 뇌 사진까지 보여주며 깨끗하고 별 문제 없다고 친절하게 설명해 준다. 그의 말에 따라 나 같은 환자들은 지옥과 천국을 경험한다. 기분 나쁘지 않다.
이 복음을 가장 먼저 알려주고 싶은데, 그는 여전히 연락이 없다. 그럼에도 외롭지 않다. 뇌가 깨끗하다니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그래서 견딜 수 있다.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 캔디처럼. 너무 행복해서 나는 다시 눈을 감는다. 아이러니하게 멍 때리고 있을 때 나는 오르가즘을 느낀다.
일층 로비로 내려온다는 게 그만 위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잘못 탄다. 서로 뻘쭉하게 서서 딴 곳만 응시하는 사람들 속에 섞여 나는 십층까지 올라간다. 전에 입원했던 병실을 찾느라 간호사실을 거치고 휴게소를 지나 어슬렁거리며 그쪽으로 걸어간다.
여느 때처럼 조용하면서도 뭔가 긴장감이 흐르는 병실엔 낯선 사람들이 웅성거린다. 내가 전에 입원해 있던 병실을 찾아, 마치 면회 온 듯 슬그머니 몇 발자국을 병실 안으로 밀어 넣는다. 오른쪽 노인이 궁금하다. 침대는 텅 비워져 썰렁하다. 그사이 어떻게 된 건가? 그때 누군가 우는 소리가 온 병원에 낮게 깔리어 멀리 퍼져나간다.
사실 십층 그 병실까지 갈 마음은 애초에 없었다. 다만 전에 입원했던 그 병실로,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그쪽으로 나를 인도했다는 말이 더 맞을 것이다. 내가 퇴원 할 때까지 있었던 왼쪽 침대엔 다른 환자가 앉아 볼이 미어지게 누군가와 귤을 까먹고, 입원해 있을 때, 한밤중 거친 숨소리를 내며 병실 전체를 긴장 속으로 출렁거리듯 몰아넣었던 - 젊은 여자가 누워 있던 그 자리엔 지나가는 바람에 커튼자락만 펄렁거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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