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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명희 [혼불 저자] 수필, 기사, 평론 등

꽃관

by 자한형 2022. 8.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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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관 최명희

 

문리과 대학 건물로 오르는 돌층계에 한나절 햇빛이 따갑게 쪼이고 있었다. 먼지 섞인 눅눅한 햇빛이다.

눅진한 바람이 층계 옆에 하얗게 핀 시계꽃 모가지를 흔들었다.

꽃모가지가 흔들리면서 새큰한 공기가 햇빛 속으로 퍼졌다. 시계꽃 향기는 어쩌면 풀냄새 같고 어쩌면 꽃냄새도 같다.

나는 스커트 위에 수북하게 뽑혀 있는 꽃모가지들을 가지런히 챙기며 꽃관을 만들기 시작했다.

손등과 뒷목에 쪼이는 햇빛이 따갑다. 손을 놀릴 때마다 밀려 오는 바람에 흔들려 퍼지는 시계꽃 향기가 머릿속으로 가슴 속으로 소리를 내며 흘러든다. 만들던 꽃관을 뺨에 대본다.

가실 가실한 감촉, 그보다 쿡하고 숨이 막히게 찔려오는 짙은 꽃 냄새

왜 일까……

꽃 냄새가 향유처럼 몸속으로 흘러드는 것을 느끼며 문득, 커다란 여자인데도, 두 손톱으로 눈을 가리우고 흘쩍거리고 싶어지던 슬픔은 시계꽃에는 나의 어린 날이 그대로 묻어있다.

시간은 쉬임없이 흘러가고, 그 날 위에 또 날이 흘러가지만, 내 나이 아직 어려서 , 살빛이 투명하고 목소리도 맑은 때, 아무렇게나 팔목에 걸어맨 꽃 시계의 바늘은 아직도 그 자리에 향기를 품으며 머물러 있다.

갈색이 되어 시들어지면 풀어 내던지고 다시 새 꽃으로 갈아 맸다.

한 해가 가고 두 해가 가고, 나도 모르는 사이 내 나이 나보다 더 무거워져도 , 시계꽃에 걸린 시간은 항시 그곳에 머물러 있다.

머리를 땋듯이 꽃을 땋아내리면서, 이만하면 알맞을까 하고 머리에 둘러 본다. 얼굴 위로, 꽃판에서 향기가 흘러내렸다. 향기는 온얼굴을 적시우고 몸속으로 스며든다. 얼마나 오랫동안 잊고 있던 화려한 옛날안가. 내가 공주처럼 꽃관을 쓰고 은밀한 대관식을 올리던 것은.

내가 아직 어려서, 댕자나무 골목이며 철길이며 운동장이며, 날마다 함성 지르면서 뛰어 놀던 때, 동무 아이들과 제일 잘 가는 곳은 궁전이었다.

밀밀하게 들어선 늙은 나무들이 품어내는 짙은 나무 향기와 젖은 이끼 냄새, 온 궁전 뜰에 녹색 밸매트 처럼 깔려 있던 넓은 풀밭과 , 무엇보다도 그 풀밭에 꽃목을 솟아 올리고 피어 있던 하얀 시계꽃, 우리는 그 때, 누가 제일 먼저, 제일 길게 꽃관을 짜는가 내기를 했었다. 제일 긴 꽃관을 만든 사람은 공주가 되어, 너울처럼 꽃을 길게 늘이우기도 하고, 목에 감기도 하고, 반지도, 팔찌도, 만들어 끼었다.

그 때는, 어쩌면 그렇게도, 가슴 한 편이 두근거리면서 뿌듯하게 차오르고, 사람들이 서서히 돌아가는 저녁 무렵, 궁전 모퉁이 풀밭에 내리는 붉은 황혼 속에서 진행되던 그 비밀스로운 대관식이 그렇게 감미롭고 서글펐을까. , 정말 공주 놀이 같은 것을 잊고 살아 온 지가 너무 오래된 것 같았다. 사실 공주 놀이나 꽃관은 일종의 거짓말이다. 그것은 사치스롭고 미숙한 어쩌면 무익한 거짓말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꽃관은, 어려서 읽은 안델센 동화의 행복한 왕자와도 같은 것인지 모른다.

나는 동화를 읽으면서 늘 못다땅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었다. 지극히 고귀하고 아름다운 얼굴, 빛나는 옷을 입고 보석으로 눈을 가린 그 왕자는, 물론 가난한 사람을 위하여 자기 몸을 바치는 갸륵한 이야기지만 결국 생활을 위하여 환상을 한 조각씩 바친 것이다. "살기에 바쁜데"하면서 왕자의 눈에 박힌 환상의 보석을 빼고, "지금 나이가 몇 살이냐"하면서 칼자루에 박힌 존귀한 환상의 보석을 빼어다 실질적으로 유용한 다른 일상적인 것으로 바꾸고, " 무슨 그런 어린애 같은 꿈을 아직도 가지고 있니, 어리석게도"하면서 왕자의 몸이 입힌 금종이를 반장씩 벗겨낸다. 가장 의젖하고 가장 실질적이고 또한 가장 계산에 빠른 척하면서. 그러나 그들은 일상적인 어떤 편한함과 이익과 재산을 얻으면서, 참으로 잊지 않고, 잃지 않고, 생애를 마치는 날까지 고귀하게 간직하고 아까운 재산으로 삼아야 할 꿈의 왕자를 잃어버린 것을 아지 못하고 있다.

나는 그 이야기가 싫다. 나는, 내 환상의 왕자가 생활을 위하여 자기의 값진 모든 것을 잃고 드디어는 불에 녹지 않는 단단하고 외로운 납의 심장만 남게 되는 것을 용서할 수 없다. 몸 바깥으로 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어째서 한쪽 세계를 그렇게도 손쉽게 포기 할 수 있을까.

환상이란 유치한 것이 아니다.

그까짓 풀꽃관이 너를 정말로 공주로 만들어 주더냐? 라고 묻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아마 대답할 말이 없을 것이다. 나아가서, 그까짓 꽃판이 너를 밥먹여 주대 ?

라고 묻는다면 나는 정말로 대답할 말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다만, 나는, 그 말을 한 사람들이 나보다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막론하고 그를 가엽게 여기고 동정할 것이다.

꽃관을 벗어던지는 것으로 자기의 자랑스로운 성년을 과시하려는 사람들 보다 오히려 나이를 먹고 많이 살아버린 뒷날 까지도 오래 오래 꽃관을 쓸 수 있는 사람이 진실로 아름다운 사람일른지도 모른다.

나는, 생활을 위해서는 생활의 도구들을 가지고 일할 것이다. 일상적인 나날의 일과를 위하여 환상의 조각들을 따로 따로 떼어 팔지는 않으리라.

내 비록 이른 아침부터 밤 늦어 깊은 어둠 속에 잠들 때까지 허리를 펼 수 없는 고통스로운 노동에 시달릴지라도 나의 머리 위에는 꽃관을 쓰고 있으리라. 그리고 영원히 시간 모르는 시계꽃을 잊어버리지 않으며 오래 오래도록 내 팔목에도 가슴에도 눈에도 몇 개씩 달고 살 것이다.

----<기전제111970 12P73~75>-------------------------

 

여대생 최 명희의 각오인 ' 깊은 어둠 속에 잠들 때까지 허리를 펼 수 없는 고통스로운 노동에 시달릴지라오 나의 머리 위에는 꽃관을 쓰고 있으리라'했듯이 작가 최 명희는 그런 시간을 보내고 꽃관을 쓰고 살았습니다.

그이에 비해서 내 글은 늘 제 감정의 무게에 질식하고 있으며, 왜 그리도 제 짝을 찾아 해매는지, 인생은 여인 찾기만이 전부가 아니건만 늘 손너머에 있는 여인은 늘 손너머에 있음을 왜 그리 만천하에 알리고 다녔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