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수필비평

존재론적 물음과 형상화

by 자한형 2022. 9. 4.
728x90

존재론적 물음과 형상화-민명자 (문학박사, 문학평론가)

문학을 왜 하는가. 자기 정화나 자아실현을 위해서 혹은 진실구현이나 삶의 이정표를 찾기 위해서 등 문학을 하는 목적은 각자의 관점과 가치관에 따라 여러 가지가 제시될 수 있다. 다만 그 근본적인 뿌리가 존재론적 인식과 닿아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것은 또한 관계로부터 출발한다. 인간과 인간, 인간과 사회, 인간과 자연, 인간과 사물 등 제반 세계와 관계를 맺으며 사유하는 주체로서의 인간은 길항과 화합을 반복한다. 그러한 사유를 구현한다는 점에서는 수필도 여타문학과 다를 바 없다. 다만 다른 장르와 달리 비허구성을 특징으로 한다는 점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비허구성과 비문학은 동의어가 아닌 만큼 존재론적 물음에 깊이 다가가 이를 심미적으로 형상화할수록 문학의 본령에 가까이 갈 수 있을 것이다.

이종화의 <날개>에는 인간이 본원적으로 갖는 고독에 대한 물음이 있다. 그것은 소외에 대한 자각에서 비롯된다. 작가는 이러한 심상을 이라는 상징어로 표출한다. ‘는 순수와 자유의 기표인 동시에 이를 억압하는 기제로부터 탈주하려는 욕망을 내포하고 있다. 지상에서의 비상에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는 현대인의 왜소한 자화상이다. ‘은 인간이 성취하려는 이상적 기표지만 끝내 도달하지 못하는 세계다. 이상화하는 대상이 무엇이든 그 에 들어가려고 애쓰는 한 그것은 욕망의 기표가 되어 인간을 종속시키는 권력으로 작동하고 만다. 이 수필의 배면에는 작가가 설핏 언급한 카프카의 소설 <()>이 있다. 카프카가 실존과 구원의 작가로 알려져 있으며 그 이름의 뜻이 까마귀라는 점을 감안하면 암시하는 바가 크다. 소설의 주인공 K에 들어가려 하지만 끝내 들어가지 못한다. 마을 사람들로부터는 소외와 거부를 당한다. 어느 곳에도 머물지 못하는 이방인으로 남는 것이며, ‘은 진입이 불가한 영역으로서 이를 향한 끝없는 방랑이 있을 뿐이다. 수필에서 작가는 무리 속에 섞여 있지만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했던국외자로 남는다. 잔치는 늘 그들만의 것이며 작가가 응시하는 현실은 허세와 이율배반적인 모순과 부조리로 가득 차 있다. “성당은 성 안에만 있는 한 구원은 요원하다. 하여, 작가에게 삶은 고독이란 독배를 들이키는여정이며, “성을 향한 여정으로 인식된다. 이렇듯 <날개>의 심연에는 그 어떤 것으로도 대체될 수 없는 본원적 고독이 숨어있다. 여기에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자아의 정체성에 대한 물음이 있다. 현대 사회에서 인간을 소외시키고 억압하는 권력은 도처에 편재해 있다. 불합리한 사회규범이나 끼리끼리 문화를 포함하여 종교나 지식까지도, 그것이 비록 사랑이나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할지라도 교조적으로 작용하면 하나의 권력으로서 견고한 이 된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사회에 몸을 담고 살아야 하는 인간에게 은 영원히 돌아갈 수 없는 본원적 고향일지도 모른다. 작가가 순백의 날갯짓을 멈출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날갯짓은 자기소외극복과 자아이상을 향해 나아가는 한 방편일 수 있다. 이 수필은 군중 속에서 고독을 느끼면서도 더불어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현대인의 소외와 극복을 상징과 우의로써 형상화하며 극복의지를 날개로 전경화함으로써 문학성에 한 발 다가서고 있다.

(중략)

존재론은 인간의 삶과 죽음, 세계의 존재 및 인간과의 관계, 세계를 지배하는 원리와 인간의 존재방식 등에 대한 물음이다. 생은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살아지는 것이며 그러한 일상이 모여 역사가 되는 것이라면 더욱 사유하는 주체로서 존재의 의미와 삶의 방식에 대한 모색이 필요하다. 그 물음이 깊을수록 수필 또한 깊은 우물이 될 것이다.

 

 

 

 

'수필비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유병근의 시와 수필의 접목  (0) 2022.09.04
서정의 사회적 기능과 최민자 수필  (0) 2022.08.27
새로움을 향한 랩소디  (0) 2022.08.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