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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공평과 공정에 대한 사색 등

by 자한형 2022. 9.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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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평과 공정에 대한 사색-박주정 [광주진남중학교 교장]

하늘은 높고 공기가 맑아지니 가을이 완연한 것 같습니다. 책 읽고 사색하기 좋은 계절입니다. 지금 제 책상 위에는 마이클 센델이 쓴 공정하다는 착각한 권이 놓여 있습니다. 제목이 매력적이어서 들고 왔지요. 아직 읽지는 않았습니다. 아마도 자본주의 사회 시스템에서의 능력주의를 비판한 책인 것 같습니다.

저는 책을 읽기 전에 책 제목을 화두로 여러 가지 생각의 날개를 펼쳐보기를 좋아하는 편입니다. 사전을 찾아보니 '공평''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음'을 뜻하며 '공정''공평하고 올바름'을 뜻하므로 '공정''공평'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쓰임이 더 헷갈리기 쉬운데요, 공평은 '물질적인 측면에서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음'이라는 개념이 강하고, 공정은 '윤리적인 측면에서 올바름'이라는 개념이 강하다고 볼 수 있겠네요.

여기 피자 한 판이 있습니다. 3교시에 선생님은 갑, , , 4명의 학생에게 이 피자를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대부분의 경우 (자연수) ÷ (자연수) 방식, 8 (조각) ÷ 2()= 2(조각)으로 나누어주지요. 이 방식은 공평하다고 할 수는 있겠습니다.

하지만 이 학생들 중 갑은 평소 양이 적어서 피자 한 조각 먹기도 버거운데다 아침밥도 잘 먹고 왔다면? , 을은 어머님이 새벽 일을 나가느라 아침도 못 먹고 왔는데 2교시 체육 시간에 피구까지 한판 뛰고 온 상태라면 어떨까요? 보통 교실 현장에서는 이 문제가 쉽게 해결되기도 합니다.

갑이 , 나 배불러서 더 못 먹겠다. 먹고 싶은 사람 아무나 먹어그러면 아싸! 땡큐다, 짜식아하하호호 웃으며 끝날 일이긴 하지만 이것이 사회의, 학교의 배분 시스템으로 작동하는 것이 올바른 걸까요? 우선 갑의 시혜에 의존해야 한다는 문제가 생기고, 시혜를 받는 을의 인간으로서의 존엄성 문제가 걸립니다.

최근 한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에는 '아빠와 아들 피자 나누기'라는 제목으로 관련 글과 사진이 게재됐지요. 사연에 따르면 아빠와 6살짜리 아들은 큰 피자를 잘게 조각낸 후 그 조각들을 재조립해 공평하게 미니 피자 두 판을 만들어냈다고 합니다. 수평선과 사선을 이용해 잘라내 만든 미니피자 한 판은 양파와 버섯 등 양념이 거의 없이 '크러스트' 부분만 있다는 점이 특징이었습니다.

게시자는 피자의 가장자리 부분만 먹고 싶다는 아이의 부탁에 따라 아빠가 피자를 잘라 완벽한 피자의 모양을 만들어냈고, 아이가 피자를 먹기 전 슬쩍 버섯을 얹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아이의 요구를 들어주면서도 몰래 아이의 건강을 챙긴 아버지의 배려가 돋보이는 대목입니다.

필리핀에는 싫어하는 일에는 변명을 찾고, 좋아하는 일에는 방법을 찾는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다시, 저에게 피자를 나누라고 한다면 저는 학생들에게 어떻게 나누면 좋을지 질문하고, 스스로 선택하게 했을 겁니다. 자신의 의견을 정확하게 표현하고, 서로의 필요에 대해 존중하고 배려하는 공동체 속에서 성장한 구성원들은 반드시 공정하면서도 정의로운 기준을 찾아낼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글쓰기의 효용-이상준[직영교육센터 총괄원장]

글쓰기의 중요성이 점차 확대돼 가는 시대다. 2025년부터 전면 시행 예정인 고교학점제가 교육 현장에 많은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중 주목할 만한 것이 서·논술형 수능 도입 문제다. 평가의 객관성과 공정성이 확보되기 어렵다는 이유를 들어 반대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으나, ·논술형 수능이 미래 인재의 역량을 평가하는 가장 적합한 틀이라는 견해에 동의한다면 아무리 어려워도 그 길을 가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비단 입시 제도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잘만 활용하면 우리 삶 속에서 글쓰기는 크나큰 유익으로 작용할 수 있다. 본인의 생각을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고, 또한 논리적 사고 체계를 구축할 수도 있다. 그리고 지친 마음을 달래주는 자기 정화를 위한 용도로도 글쓰기는 활용될 수 있다.

생각 전달을 위한 글쓰기

살다 보면 가끔 그런 순간이 찾아온다. 중요한 문제로 타인에게 자신의 생각을 전달해야 할 때 왠지 이번에는 말보다는 글이 더 효과적일 것 같다는 느낌이 오는 순간. 그럴 때 우리는 펜을 집는다. 이처럼 우리는 은연중에 즉흥적 발화보다는 퇴고의 과정을 거친 글쓰기 결과물이 훨씬 더 빈틈이 적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리고 우리의 일상 속에서 그런 순간은 생각보다 많다. 개인적으로 주고받는 장문의 SNS나 편지, 회사에서 작성하는 보고서, 취미 생활로 블로그에 쓰는 서평이나 영화 비평 등 우리는 오늘도 글쓰기를 통해 타인에게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고 있다. 특히 디지털 공간이 무한으로 확장된 요즘, 마음만 먹으면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 글쓰기를 한 다음 그것을 타인과 공유할 수 있다.

논리적 사고를 위한 글쓰기

이따금 TV나 온라인 매체를 통해 말을 잘하는 사람을 만나는 경우가 있다. 여기서 말을 잘한다는 의미는 미사여구가 화려하거나 유머가 흘러넘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마치 글을 쓰듯 말을 하는 즉, 매우 논리적으로 조리 있게 말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게 가능한 사람들은 십중팔구 글을 잘 쓴다. 왜냐하면 글쓰기는 끊임없는 언어 제련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글을 쓰다 보면 어느새 단어들을 배열하고 조립하며 문장 구성하기를 반복하고 있는 자신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횟수가 거듭될수록 그 과정은 점차 고도화된다. 즉 머릿속에서 문장의 주술 구조를 수정하고 동어 반복의 비효율을 피하며, 자신이 필요로 하는 가장 적확한 어휘를 오랫동안 찾아 헤맨다. 이때 중요한 것은 이런 과정을 거치며 우리의 사고 체계가 논리적으로 견고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완성 단계에 도달하면 서두에서 언급한 것처럼 글을 쓰듯 말을 하게 된다.

자기 정화를 위한 글쓰기

수업을 진행하다 보면 평소와는 다른 행동 패턴을 보이는 아이들이 있다. 평소에는 친구들과 적당히 대화도 해가면서 800자 분량으로 글쓰기를 마치던 아이가 어느 날은 원고지를 받자마자 마치 전력 질주하듯 글을 써 내려가더니 결국 평소 2배의 분량으로 글쓰기를 마친 것이다. 그 당시에는 영문도 모른 채 그저 그 몰입도가 놀라웠을 뿐인데, 나중에 천천히 복기해 보니 아이의 당시 심정을 알 것도 같았다. 아이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스트레스를 풀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아이가 의도한 것은 아니다. 그저 마음이 가는 대로 빠른 속도로 많은 분량의 글쓰기를 해낸 것뿐이다. 그러나 글쓰기를 마친 아이의 마음은 한결 후련했을 것이다. 글쓰기는 본질적으로 표현의 행위이자 발산의 행위다. 마음속 응어리나 감정의 부스러기들, 머릿속 잡념들을 글쓰기를 통해 밖으로 배출해낼 수 있다. 그리고 그 과정이 글쓰는 이의 마음과 머리를 깨끗이 정화해 주는 것이다.

이처럼 다양한 효능을 지닌 글쓰기를 올가을엔 취미로 가져 보자. 단언컨대 자신의 머리와 가슴을 풍요롭게 채우는 근사한 취미가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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