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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기타

감성의 시대를 지나 본능의 시대로

by 자한형 2023. 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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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선 이야기] 감성의 시대를 지나 본능의 시대로 /윤일원 2023.2.19.

[삼선 이야기]에 나오는 무수히 많은 단어 중 하나가 본능이다. 주로 잘 쓰는 문장이 인간은 우연과 본능으로 이루어졌다.”라는 말이다. 혹은 유럽의 대항해시대를 본능의 시대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만큼 이 단어가 주는 매력과 함의가 크다는 뜻이다.

나는 병원에서 어머님을 간병하면서 본능이 가져다주는 함의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우리가 살면서 어떤 단어를 접하고 그 단어 안에 있는 개념을 알게 되고, 그 개념이 무엇이라는 것을 확실히 깨닫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더우면 덥다. 추우면 춥다. 배고프면 배고프다. 아프면 아프다. 밥 먹기 싫다. 잠자기 싫다. 이것은 싫고 저것도 싫다. 모두 감각기관에서 발생하는 욕구를 해소하기 위한 문장이다. 여기에는 거부할 수 없는 개념이 존재한다. 이성적으로 아무리 좋아도 그것이 꼭 필요한 행위라도 거부한다. 이것이 본능이다. 거부할 수 없는 그 무엇. 어쩌면 우리말에 떼를 쓴다.”는 말과 유사하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강하게 고집하는 행위. 여기에는 타협이 없고 오직 주장만 있다. 원하는 것을 얻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인간은 타자의 본능에 의해 태어나 본능의 시대를 살다가 성장하고, 다시 본능의 시대에서 감성의 시대로 진입하고, 다시 감성의 시대가 이성의 시대로 진입하고 그렇게 한 세월을 오랫동안 보내다가 다시 짧게 감성의 시대를 맞이한다. 이때의 감성은 그때의 감성이 아니다. 그리고 다시 본능으로 시대로 와서 생을 마감한다. 물론 경험에 의한 내 가설이다.

이제 나는 이성의 시대를 지나 감성을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3.0, true color 시대바야흐로 감성의 낭만 시대다. 이성의 꽃이 완숙함을 넘어 감성으로 접어들 때 아름답다. 흐트러지는 꽃잎마저 심오한 의미로 다가오고, 복잡한 상황도 단순하게 만들 줄 아는 시기, 진하게 묻어나는 외로움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느낄 줄 알고, 제법 경세의 이치도 깨달아 세평을 담을 수 있는 시기. 어쩌면 인생에서 가장 완숙하면서 찬란한 날임에는 틀림이 없다.

이 시간이 지나고 나면 본능의 시간으로 되돌아간다. 움직일 수 있는 이성보다 움직일 수 없는 근육이 우선하고, 내일은 온데간데없고 오직 현실과 힘든 싸움에 고집할 수밖에 없는 상황들.

이성의 시대의 살고 있는 인간이 본능의 시대에 살고 있는 인간을 이해할 수 있을까? 감성의 시대에 살고 있는 인간이 본능의 시대에 살고 있는 인간을 이해할 수 있을까? 아마도 그들이 가장 많은 것을 이해할 것이다. 그들도 곧 그 시대로 진입해야 하니까.

[삼선 이야기] 아무리 정치적 논쟁을 해도 바뀌지 않아 2023.2.16.

지난달 벤처 대표, 일본 바이어와 함께 점심을 했다. 일본 바이어가 한국은 어디를 가도 정치적 이야기밖에 없다.”라고 꼬집었다. 우리 사회를 뒤덮고 있는 담론은 일찌감치 사라지고 그 자리에 3류 정치 이야기만 가득하다는 말이다. 공감한다.

그러자 벤처 대표가 한국이 이만큼 민주화된 것은 모든 국민이 정치 담론에 참여했기 때문이다.”라고 반론을 제기한다. 그 말도 맞다. 일본이 정체기를 걷는다면 한국은 빠르다. 모든 면에서. 민주화도 빠르고, 디지털도 빠르고, 빨라야 살 수 있다는 사실을 실감한다.

도쿄를 여행하다 보면 디지털의 더딤으로 금세 90년 시절로 되돌아간 느낌을 받는다. 핸드폰으로 터치만 하면 어디든지 환승이 되는 한국과 달리 갈아탈 때마다 티켓을 새로 구매해야 하고, 편의점에서 몇천 원 결제에도 신용카드는 쓰는 한국과 달리 웬만한 큰 가게에도 현금으로 지불해야 한다.

나는 내 지갑의 돈이 얼마인지 모른다. 모든 것을 디지털 금융으로 살아가기 때문이다. 물건은 카드로 사고, 계좌이체는 모바일로 하니, 어쩌면 우리가 그토록 갈구하는 느림의 미학 아날로그 감성은 일본에 있는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나는 일본 바이어의 은근한 비꼼 거대 정치 담론으로 사회가 변하지 않는다.”는 가설에는 동의한다. 네버.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 아무리 추석 명절에 만나 대깨문 욕설왕 줄리 천공법사를 이야기하면서 밥상을 엎어도 사회는 변하지 않는다. 하물며, 그 많던 조선시대 양반의 상소로도 사회가 변하지 않았고, 그 많던 천안문 광장의 대자보로도 사회가 변하지 않았다.

사회를 바꾸는 힘은 부의 흐름이 바뀔 때 바뀐다. 나는 조선왕조가 500년 동안 지속된 것이 대단하다, 심지어 위대하다.”는 이야기를 가끔 듣지만 모두 부정한다. 부의 흐름이 변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다. 북한을 보라. 여전히 3대 세습을 지나 4대 세습이 되어도 꿈쩍도 하지 않은 것은 조선왕조처럼 부의 변화를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다.

인간이 왕조시대의 절대 권위를 무너뜨린 것은 농업경제에서 산업경제로 바뀌면서 부의 흐름이 바뀌어 새로운 계층이 탄생했었기 때문이다. 공장 근로자 탄생이다. 1차 국부가 공장에서 발생하자 2차 국부가 도심으로 이어진다. 회사 규모가 커짐에 따라 금융, 무역, 마케팅. 재정, 전략, 기획, 교육 등 1차와 전혀 다른 유형의 국부가 도시에서 형성되고 이들은 다시 기존의 권위에 도전한다. 이런 방식으로 새로운 부를 획득한 계층이 주류로 진입하려 새로운 시대 정신을 들고나오면서 사회는 변한다.

영국은 대항해시대를 거치면서 젠틀리라는 상공인이 탄생하였고, 일본은 근대화를 거치면서 사무라이 전사가 산업 전사로 바뀌었고, 한국은 농민이 산업 일꾼으로 바뀌었다. 프랑스에서는 평민이 귀족 계층을 대신하려 혁명을 일으켰고, 러시아는 노동자 계층이 새로운 지배계층으로 진입하려 혁명을 일으켰다.

우리가 아무리 정치적 논쟁을 좋아하여 카톡이나 유튜버, 페북에다 마구 정치적 성향의 글을 퍼 날라 온 나라를 대자보로 만든다.” 하여도 사회는 변하지 않는다. 사회를 변화시키려면 머리와 눈은 정치적 글을 즐겨 읽되, 손과 발은 디지털 변혁에 주목하여 새로운 공장으로 가야 한다. 거기서 부를 축적하고, 새로운 계층을 만들어라. 그러면 저절로 사회가 변화된다.

[삼선 이야기] 모자람이 위대함으로 바뀌는 순간2023.2.15.

포레스트 검프는 꿈에도 잊지 못한 제니가 하룻밤 자고 떠나자 울적한 마음을 달래길 없어 무작정 달린다. 처음으로 집 밖을 나와 동네의 경계에 이르자 카운티 경계까지 달리고 싶었고, 카운티의 경계에 이르자 앨라배마주 경계까지 달리고 싶었고, 그렇게 태평양이 있는 캘리포니아주 산타모니카 해변까지 달렸다. 다시 방향을 거꾸로 바꿔 대서양 해변까지 달렸고 그렇게 하기를 무려 32개월 1416시간 동안 달렸다.

그가 대륙을 횡단하면서 붉게 물든 노을에 감탄하고, 끝없이 펼쳐진 대평원의 밀밭에 감탄하고, 마누먼트 벨리의 경이로움에 감격하면서 달렸다. 제니가 병원 침상에서 그때 네 곁에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하고 아쉬움을 토로하자, 검프는 언제나 너와 같이 달렸고 언제나 너와 함께 노을을 봤다고 한다. 그리고 제니는 죽는다.

요즈음 노래를 잘 부르는 가수는 참으로 많다. 완벽하다. 어디 한군데 허점을 찾을 수가 없다. 글을 잘 쓰는 사람도 진짜로 많다. 논리의 정교함은 말할 것도 없고 팩트에도 어긋남이 없다. 때론 그런 글을 보면 질릴 때가 많다.

그렇지만, ‘위대하다라고 수식어를 붙이기에는 부족하다. 그냥 글을 잘 쓰는 작가, 그냥 노래를 잘 부르는 가수라고 말할 뿐이다.

왜 그런가? 누구나 좋아하는 영화, 포레스트 검프(Forrest Gump)에 어느 정도 해답이 있다. 영화가 인생을 전부 다 설명해주지는 못하지만, 많은 것을 시사해준다. IQ(지능 지수)75인 포레스트 검프, 그가 모자람을 넘어 위대함으로 바뀐 것은 우연이 만들어 준 시대의 행운이 뿐만 아니라 정직한 꾸준함이다.

한번 반짝하는 글이나 노래는 그냥 운이라고 생각한다. 운칠기삼(運七技三)이라고도 하지 않은가? 사람의 성공은 70%가 운이고 30%가 재주라 여기는 관념이다. 맞는 말이다. 농경시대에도 그러할진대, 디지털 기술이 발달한 지금은 운구기일(運九技一)이라 불러 마땅하다. 선택의 폭이 넓어져 동시대 사람과도 경쟁을 해야 하지만, 과거의 사람 미래의 사람과도 경쟁해야 한다. 선택의 폭이 넓어진 만큼 남이 나를 선택하여 성공하는 폭도 넓어졌기 때문이다.

사람이 감동을 받는 순간은 행운으로 얻은 성공도 아니고 재주로 얻은 성공도 아니다. 한번은 베스트셀러를 쓸 수 있겠지, 한번은 히트곡을 낼 수 있겠지, 하지만 베스트셀러 없이도 히트곡 없이도 평생 쓸 수 있고 평생 노래 부를 수 있다면, 분명 눈길을 끈다.

사람은 정직한 꾸준함을 매우 오랫동안 할 때 그때 감동하며 모자람조차 위대함으로 바뀐다. 꾸밈없는 진실이 가슴에 와닿았기 때문이다. 진실만이 진정으로 이어지고 진정이 결국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사람은 의심을 잘한다. 원래 그렇게 설계되었다. 그 의심을 제거해주는 유일한 방법은 매우 오랫동안 일관되게 행하는 정직한 양()이다. 양이 임계치를 넘을 때 좋고 싫어함, 잘하고 못함을 뛰어넘어 위대해진다.

[맹꽁깨] <009> 겉 인생과 속 인생

2023.2.14.

어제는 용인에 있는 친구한테서 전화가 왔어. 가끔 와. 아내가 아침 일찍 고등학교 동창 모임에 갔나 봐. 너무 이른 시간이라 뜨악했지만 뭐 급한 일이 있나 보다 생각했데. 그런데 저녁 늦게 돌아온 아내가 그 친구가 우울증을 심해서 모였다고.

의사 만나 결혼할 때는 잘 살 것 같았는데 큰 애 중학교 무렵에 이혼했고, 남편 병원이 시골이라 강남 대치동으로 학교 보냈고, 자식 미국으로 어학연수 갈 때 같이 떠나고, 자식보다 더 지극정성으로 시부모님 모시고 그랬는데, 이혼하더라고. 부부 사이는 귀신만 안다고 그 말이 맞는가 봐. 그때도 약간 우울증을 앓았는데, 몇 주 전에는 엄마가 돌아가셔서 우울증이 재발하였나 봐.

그런데, 어디 우리 사회에서 이혼한 사람이 한둘 아니고 우울증이 있는 사람이 한둘도 아니잖아. 부모님도 모두 돌아가시잖아. 난 그 친구 아내가 전해 준 이야기가 아니라 그 친구가 내게 한 말이 더 마음에 와닿아.

동창 모임에 갔다 오면 들려주는 강남 40평형대 아파트에 산다고 염장 지르는 이야기에 잔뜩 주눅이 들고 은근히 자신의 무능을 들추는 듯 들려 몹시 기분이 상했는데. 그런데 알고 보니 아직 애들이 하나도 취직 못했고, 이혼으로 연금도 부족하고, 부채도 꽤 많아 전문성 없이 힘들게 일해야 하는데, 자신은 강북 20평형대 아파트에 살면서 변변한 어학연수 하나 못 보내도 애들은 좋은 직장에 다니고, 열심히 일해 연금도 제법 있고, 하고 싶은 일 마음껏 하니 더 나은 인생이 아닌가!”

맹꽁이도 알아. 사람은 겉 인생과 속 인생이 다르다는 것을. 겉은 화려하게 포장하지만 속은 여러 터지고, 겉은 잘난 체 자신을 잔뜩 부풀리지만, 속은 아랫배에 잔뜩 힘이 들어가고. 인생에 정답은 없어. 모두 해답뿐이야. 정답과 해답의 차이 알아. 간단해. 1+1=2 이것은 정답이야. 1+1=1, 이것은 해답이야. 무슨 말이냐고, 왜 있잖아. 서로 사랑하여 결혼할 때 둘이 하나 되어 영원히 행복하게 살겠습니다.” 하는 거. 어떻게 둘이 하나가 되어(1+1=1) 영원히( ) 산다고 해. 자기가 신인가?

사람이 불행한 건 바로 이 지점이야. 머리는 정답의 세계에 사는데, 마음은 해답의 세계에 살거든. 자기모순이지. 이게 바로 삶이라는 것을 이해한다면 마음이 좀 편해. 행복은 사는 평수가 아니라 마음의 평수야. 이건 진짜로 맞는 것 같아. 마음 밖에 온갖 것에 마음을 두면 마음 안의 온갖 것을 채울 수가 없어. 슬픔과 기쁨, 불행과 행복은 마음 안에 있지 마음 밖에 있지 않아.

천자문에 이런 말 있는 거 알아? 50守眞志滿(수진지만), 逐物意移(축물의이)” 원문을 해석하면, “참됨을 지키면 뜻이 가득하고, 외물을 따르면 뜻이 동한다.” 삼선 평어는 한평생 즐기면서 살 수 있고, 한평생 걱정하면서도 살 수 있다.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버려야 할지 선택에 달려있다.” 그래 맞아. 삶이란 매 순간 선택이 쌓여 만든 거야. 겉 인생과 속 인생이 다른 것은 무엇을 선택 하여 어디에 쌓느냐에 달려있거든.

[삼선 이야기] 산업화 세대와 민주화 세대의 대별

2023.2.8.

역사는 분절의 시대가 아니라 흐름의 시대다. 여전히 수렵채집 습성을 버리지 못하는 인간이 살고, 여전히 구석기 시대의 인간이 살고, 여전히 농경시대, 산업화 시대, 인공지능 시대의 인간이 살고 있다.

지금 세대 간 거대한 충돌로 비추듯이 보이는 산업화 세대와 민주화 세대는 세대를 구분하여 단절된 역사 인식, 산업화 시대 이후 민주화 시대가 도래했다.”는 민주화 우위론이 절대 아니다. 여전히 진행 중이 두 세대 간의 가치관은 물론 수렵시대 가치관, 구석기 시대 가치관, 농경시대 가치관의 존중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류를 이루고 두 세대의 대별된 특징을 구별할 필요가 있다.

첫 번째는 부의 기준이다. 산업화 세대는 부는 능력, 경쟁, 성실성을 통하여 얻는다라고 생각하지만, 민주화 세대는 부는 기득권이 독점하기 때문에 쟁취해야 하며 분배를 통해서만 획득된다라고 생각한다.

두 번째는 전쟁에 대한 인식이다. 산업화 세대는 전쟁은 필요악이라 반드시 발생하니 압도적 군사력으로 억지해야 한다는 인식으로 강한 군사력을 선호하지만, 민주화 세대는 전쟁은 그 어떠한 행위보다도 나쁜 범죄 행위임으로 발생해서는 안 된다라는 인식으로 아무리 나쁜 평화도 전쟁보다는 낫다는 인식으로 협상을 선호한다.

세 번째는 역사관이다. 산업화 세대는 역사는 쉼 없이 흐르는 강처럼 아날로그로 인식하여 계층이 분절된 것이 아니라 이어진 것으로 생각하여 노력하면 극복할 수 있다라고 생각하지만, 민주화 세대는 역사는 계층적으로 분절되었다는 인식으로 그 속에 살아가는 인간도 물과 기름처럼 계층이 분절되었다고 인식하여 투쟁적 쟁취가 필요하다라는 인식이다.

네 번째는 근본 동인에 대한 인식으로 무슨 일이 발생했을 때 궁극적 요인이 어디에 있는가 하는 인식이다. 산업화 세대는 궁극적 요인은 라는 인식이 강하여 스스로 자신을 자책하기를 좋아하지만, 민주화 세대는 궁극적 요인이 가 아닌 외부 환경임으로 남 탓, 제도 탓, 계층 탓, 기득권 탓으로 돌리기를 좋아한다.

다섯 번째 국가와 개인의 인식이다. 산업화 세대는 국가와 개인을 동일시 하지 않고 국가는 국가, 개인은 개인이라는 인식으로 국가의 잘못에 용서를 빈다거나 사죄하는 일에 거부감이 강하지만, 민주화 세대는 국가와 개인을 일치시키는 경향이 있어 국가도 개인처럼 도덕적이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국가가 행한 나쁜 일을 범죄라고 인식하고 사죄하기를 좋아한다.

여섯 번째 국가발전 경로에 대한 인식이다. 산업화 시대는 국가발전 경로상 독재와 재벌, 식민지 지배 등 그 무엇도 실용적으로 허용하여 우리 것이라고 하지만, 민주화 시대는 국가발전 경로상에 독재와 재벌, 식민지조차 허용하지 않고 없어져야 할 잘못된 역사라고 생각한다.

일곱 번째 가난에 대한 인식이다. 산업화 세대는 가난은 자신의 문제라서 자구노력이 먼저이고 그다음이 국가라는 인식이 강하지만, 민주화 세대는 가난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문제로서 국가가 지원해야 한다라는 인식이 강하다.

여덟 번째 개인의 가치관이다. 산업화 세대는 “‘자유라는 가치관을 매우 소중하게 생각하여 권위를 부정하는 경향이 강하여 모래알처럼 뭉쳐지기를 거부하는 개인성이 강한 만면, 민주화 세대는 “‘평등이라는 가치관은 선호하여 공동체의 행복, ‘공동체의 안녕이라는 말을 좋아하여 집단성이 매우 강하다.

아홉 번째 미국을 바라보는 시각이다. 산업화 세대는 미국은 대한민국의 건국 과정에서 기여한 바를 매우 높이 평가하고 특히 625 전쟁을 통하여 동맹이라 생각하지만, 민주화 세대는 미국이 독재를 지원하고 재벌을 옹호하여 부와 분단을 고착화시킨 원죄가 있다라고 생각하여 멀리한다.

열 번째 중국에 대한 인식이다. 산업화 세대는 중국은 과거에 우리나라의 영토를 빼앗았고 현재는 우리의 안보에 위협을 준다는 시각으로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지만, 민주화 세대는 중국은 우리에게 문화를 전해준 대국이고 현재는 경제에 매우 밀접한 연관관계가 있어 매우 우호적 시각이 강하다.

열한 번째 일본에 대한 시각이다. 산업화 세대는 일본은 지리적으로 대한해협 사이에 떨어져 있어 임진왜란과 식민지를 제외하고 우리에게 기술을 전해준 나라이며 교류와 협력을 통하면 우리가 더 잘사는 나라가 된다는 인식이지만, 민주화 세대는 일본은 임진왜란의 참혹함과 식민지의 악랄함을 잊어서는 안 되며 절대 함께 할 수 없는 나라라는 인식이 강하여 반일은 물론 토착 왜구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경멸한다.

열두 번째 북한에 대한 인식이다. 산업화 세대는 북한은 우리 민족임에는 틀림이 없으나 이미 정치체제와 경제구조가 다르고 여전히 적대감이 높아 붕괴시킨 다음 새로 건설하기를 좋아하지만, 민주화 세대는 북한은 같은 민족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동포애적 시각으로 보듬고 가야 할 못난 막둥이로 인식하여 지원은 물론 붕괴 없이 통일되기를 원한다.

결론이다. 산업화 세대는 한마디로 실용적 자유적 잡탕이지만, 민주화 세대는 명분론에 강한 성리학적 도덕군자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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