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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다른 낯설음 저너머

홀딱새의 울음

by 자한형 2023. 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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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딱새의 울음

 

 

 

얼마 전 녹음이 한참 싱그러운 때 시골을 갈 일이 있었다. 금요일 오후에 조금 일찍 출발했다. 두 시간여의 운전 끝에 고속도로 휴게소에 도착했다. 첫눈에 들어온 것은 난간에 죽 진열해 놓은 각양각색의 분재들이었다. 아주 훌륭하게 키워낸 것으로 관상용으로도 꽤 고고해 보였다. 예상과는 달리 고속도로도 그렇게 크게 붐비는 상황은 아니었다. 지인에게 전화를 걸어 조금 있으면 곧 도착한다는 것을 알렸다. 한 시간여 후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차를 주차해 두고 미리 예약해둔 식당으로 일행과 함께 갔다. 세 시간여 동안 차량을 같이 타고 오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 아주 친숙한 관계가 된 듯했다. 작년에 직장을 정년퇴임을 했는데 1년 정도의 휴식기를 거쳐 새롭게 직장을 구해 생활하고 있었다. 예전으로 치면 할아버지라고 불러도 전혀 손색이 없을 연배였다. 딸 둘을 잘 키워 작은딸은 대학에서 반 학기를 남겨놓고 미국으로 어학연수를 가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30여 년의 직장생활을 마감하고 또다시 새로운 직장에서의 근무는 새롭고 신선한 느낌이라고 했다. 아침마다 마을 뒷산에 있는 배턴민트 동우회에 가입해서 운동도 한다고 하는데 아주 건강관리를 잘한 것처럼 보였다. 처음에는 요즘으로 치면 7급 공무원으로 시작했는데 군 복무를 마치고 새롭게 직장을 잡은 것이 농협이었다고 한다. 지인은 최상의 인맥을 동원해서 술자리에 어울릴만한 이로 서너 명을 즉석에서 더 불렀다. 곧 사람들이 몰려왔고 활기찬 분위기의 좌석이 마련되었다. 수육을 안주로 해서 정담을 나누었다. 그리고 자리를 파하고서 숙소로 돌아왔다. 오늘은 전야제로 주 행사는 내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3시 정도로 잡혀 있었다. 조그만 시골이 행사관계로 시끌벅적한 상황이었다. 거리 이곳저곳에 현수막이 줄줄이 붙여져 있었고 시골 분위기가 전체적으로 활기차게 느껴졌다.

 

다음 날 아침이 되었다. 이미 나이가 든 탓에 아침잠이 없어진 동행인은 벌써 아침 산책을 한차례 다녀온 연후였다. 세수를 하고 아침까지 모시러 오겠다는 이의 호의를 정중히 거절하고 모텔을 나섰다. 아주 좁은 동네라 이리저리 얘기하면 금방 찾을 만한 위치였고 식당이었다. 두 사람이 식당에 들어서니 식당은 발 디딜 틈이 없을 만큼 꽉 차 있었다. 소위 말하는 입추의 여지가 없을 정도였다. 한순간 앉을 자리가 없어 보였는데 다행히 안쪽으로 별도의 공간이 또 있었다. 주 요리는 콩나물 해장국이라고 되어 있었다. 가격도 오천 원이라 저렴해 지레 볼품없으리라 여겼는데 그것이 아니었다. 해장국에 꽁치구이까지 나오니 금상첨화라 할 만했다. 식사용 밑반찬으로 나온 가지나물 등도 일품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일행은 행사장의 모임이 있기 전에 차를 한잔 마실 곳의 주차장에 차를 주차해 놓으러 갔다. 그런데 아침을 마련해준 직원을 만나게 되었다. 어제의 만남으로 이제 구면인 셈이었다. 자기 차로 이곳의 명산이라 일컫는 자골산과 한우산을 관광시켜주겠다고 했다. 그래서 얼씨구나 좋다 하고 그 차에 올라탔다. 시골 길을 10여 분 달리고 나니 곧 자골산의 9부 능선쯤에 도착이 되었다. 일행과 둘이서 올라가겠다고 했는데 굳이 또 안내하겠다고 해서 셋이 산을 오르게 되었다. 정상이 897미터라고 한다. 그런데 정상까지 거리는 1.3킬로미터로 안내되어 있었다. 산의 초입에 들어서자마자 새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참 특이한 울음소리라는 느낌을 받았다. 50여 년 전 갓난아기였던 때 모친이 나를 포대기에 싸서 둘러 업고 이 산을 올랐다는 얘기를 수도 없이 들었던 터라 꼭 한번 올라가 보려고 했던 산이었는데 이제야 그곳을 밟아볼 수 있게 된 것이었다. 나중에 알아보니 그 새가 검은등뻐꾹새라는 새였다. 산 정상부근에 주 서식지를 가지고 있었다. 음절로 나뉘어 우는데 그것을 음계로 하면 미미미도라고 한다. 그리고 그것은 홀딱 벗고라고 해석되기도 한단다. 그래서 홀딱새로 명명되었단다. 시인이 들으면 흑흑흑흑이라고 들리고 스님이 들으면 머리 깎고라고 들리기도 한단다. 그리고 또 애절한 해석으로는 배가 고파서 풀빵 사줘라고 하는 의미라고도 한다. 산을 오르는 내내 홀딱새의 울음은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었다. 본래 해석되는 의미로 새의 울음은 그렇게 전해진다. 아침에 우는 새는 배가 고파 울고 저녁에 우는 새는 님이 그리워서 운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런 해석으로 따진다면 오전 중이었으니 배가 고파 우는 것이고 해석으로도 풀빵 사줘라고 해석하는 게 적절한 표현이지 않나 생각되었다. 중간 중간에는 사닥다리를 설치해 놓아 편안하게 산을 오를 수 있게 해 놓았다. 또한 오르기 힘든 곳에는 줄을 매어 놓아 그것을 잡고 오르라고 편리하게 되어 있었다. 제철인 철쭉은 거의 진 상태였고 간간히 찔레꽃이 하얗게 피어 그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숲내음은 원시자연의 그 상태를 그대로 나타내고 있는 것 같았다. 정상에서 표석을 배경삼아 사진을 찍어서 증거를 남기기도 했다. 산을 다 내려오고 나니 이제야 산을 오르려는 일반 등산객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얼른 다음 행선지인 한우산으로 향했다. 본래의 명칭은 찰비산이었는데 그것이 한우산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찰 한()자와 비우()로 한자화 되어 산 이름이 된 것이라고 했다. 오월이면 한우산 철쭉제가 축제로 벌어진다고 한다. 거의 정상부근까지 차가 올라갈 수 있어 사람의 왕래가 더 잦아지게 되었다고 했다. 산자락을 굽이굽이 비탈길로 돌아 내려가면 벽계 계곡이 나오고 여름철에는 관광객으로 인산인해(人山人海)를 이룬다는 설명이었다. 산 중턱 입구에서 한우산 정상까지는 5분 거리여서 금방 올라갔다가 내려올 수 있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이쪽 산으로 와서도 그 홀딱새의 울음소리는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다음으로는 행사가 시작되는 곳으로 이동했다. 일행이 목적지에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참석대상자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먼저 기념촬영을 했다. 옆에는 신축된 박물관건물이 멋지게 서 있었다. 내부에는 보물도 있었고 귀중한 유물, 사적 등 자료들이 오밀조밀하게 잘 전시되어 있었다. 전체가 모이자 곧바로 산행을 시작했다. 둘레길로 만들어진 곳으로 그곳의 명칭은 남산이라 불리는 곳이었다. 정상에서는 간단히 막걸리를 한 잔씩하고 내려왔다. 한 시간여의 산행을 마치고 준비된 식당에서 식사하면서 정담을 나누었다. 같은 고향을 가진 이들이 한 직장에서 생활하면서도 이렇게 모여 환담하고 정분을 나누는 뜻 깊은 행사였다.

 

우리는 하루에 산을 세 곳이나 탐방하는 강행군을 한 셈이 되었다. 뜨거운 햇볕의 따사로움이 더해 가고 있었고 신록의 푸름이 깊어가는 계절에 의미 있는 하루를 보낸 듯했다. 인상 깊었던 홀딱새의 울음마저 귓속에 생생하게 남아있어 더욱 잊지 못할 날이 되었다. 차를 같이 탄 선배는 피곤했는지 계속 공자님을 배알하고 있었다. 고속도로로 올라오는 길도 순탄해 예정된 시간에 도착할 수 있어 더 흐뭇해졌던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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