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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철현 칼럼(서울대 종교학과 교수) 등

산책

by 자한형 2023. 3.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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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散策)/배철현

언덕 아래를 바라보는 샤갈과 예쁜이. 배철현 교수 제공

우크라이나에서 수많은 사람이 부질없는 전쟁으로 이 추위에 떨고 죽어 나가고 있다는 사실에 처음에는 악어눈물을 흘렸지만, 지금은 머나먼 과거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미디어를 통해 6·25와 같은 우크라이나 참상을 전해 듣지만, 코로나가 가져온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피폐해진 우리에게 그런 소식은 마이동풍馬耳東風이다.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나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 말대로, 인간의 이타심이나 동정은, 자신이 언젠가 혜택을 받을 것을 기대하며, 투자하는 적금일 뿐인가? 설상가상으로 튀르키에와 시리아 지진으로 사만명 이상이 죽고 아직도 수십만명이 건물잔해에 깔려있다. 인간의 삶을 살만한 가치가 있는가?

우크라이나 전쟁과 튀르키에 지진보다 보다 더 끔찍한 비극이 대한민국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대한민국의 하류 정치와 그것을 일년내내 하루 종일 쉴 새 없이 송출하는 미디어다. 한국 정치와 미디어는 삼류가 아니라, 비상식으로 그 등수를 매길 수 없을 정도로 엉망이다. 보고 싶지 않고 듣고 싶은 않은 사람들이 나와 뭐라고 하는데,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차라리 동네 우리에 갇혀 있는 소의 울음소리가 선명하고 감동적이다.

우수(219)가 지났는데, 아직도 춥다. 오늘 아침 기온은 영하 3도로 떨어졌다. 아침산책을 하려면 아직도 장갑을 끼고 털모자를 단단히 써야 한다. 심기일전하여, 반려견들과의 아침 산책코스를 변경했다. 나는 지난 6개월 동안 자동차로 6km를 이동하여 산과 시냇물이 흘러내리는 근처 산으로 향했다. 그곳으로 가는 10분 동안, 새벽 묵상을 통해 결심한 의지가 느슨해져, 산책에서 별로 영감을 얻지 못했다. , 나무, , , 야생동물을 구경거리로 보기 시작하여, 이전에 그들이 나에게 선물해 준 영감의 시선視線이 점점 희미해지더니, 이내 끊어졌다. 자연이 언제나 준비하며 기다리지만, 내가 미쳐 그 영감을 받을 그릇을 마련하지 않았다.

며칠 전부터 산책 경로를 바꿨다. 미국 초월주의 사상가 헨리 데이빗 소로의 말에 동의한다. 산책散策은 나에게 성전聖戰이다. , ‘거룩한 전쟁이다’. 익숙한 공간을 넘어서, 미지의 공간으로 들어가 어제의 나를 돌아보고 오늘의 나를 담금질하는 전쟁이다. 우리는 집 뒷마당과 연결된 가파른 야산으로 올라가기 시작하였다. 이곳은 고라니와 야생동물들이 지나다니는 경계의 땅이다. 해발 100m정도 되는 산으로 곳곳에 에메랄드색을 띤 크고 작은 바위들이 수놓아져 있는 미지의 땅이다. 아직도 저 산꼭대기에서 흘러 내려오던 시냇물이 멈춰 하얀 얼음덩어리 조각으로 남아있다. 냇가 곁으로 난 오솔길을 따라 한참 올라가면, 조금만 발을 헛디뎌도 미끄러지기 일쑤인 바위 언덕이 나온다.

겨울 숲은 침묵沈默이다. 해묵은 낙엽과 밤송이와 솔잎으로 가득 찼다. 족히 30m이상 되는 전나무와 소나무가 산비탈을 빼곡히 수놓았다. 산책은 종교, 언어, 철학, 경치, 알레고리를 알려주는 심장 소리다. , 샤갈, 벨라, 그리고 예쁜이가 이 언덕을 오르기 시작하였다. 야산은 급경사라 등산하기가 여간 힘들지 않다. 한참 오르는데, 커다란 고라니가 깜짝 놀라 우리를 바라본다. 자기 놀이터에 침입한 불청객들을 보고 기분이 상해 달아난다. 아마도 샤걀의 덩치를 보고 본능적으로 도망가야겠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 친구는 껑충껑충 뛰어오르더니 이내 언덕을 넘어갔다. 샤갈과 벨라는 내가 잡고 있는 리드줄을 당기며 계속 짖는다. 개줄이 풀어진 예쁜이가 고라니를 따라잡으려고 뒤따라가 보지만, 이내 지쳐 다시 돌아온다.

우리는 전나무와 소나무로 빽빽이 들어서 있는 숲 한가운데 앉았다. 바닥은 온통 나뭇가지와 솔잎으로 가득 차 있다. 나는 가만히 야산 중턱에 앉아, 거룩한 습관이 달아난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먼저 나는 일일일행一日一行이라는 원칙을 무시했다. 하루가 인생이라고 여기고, 새벽에 눈을 뜨면, 살아있다는 사실에 감사기도 하루를 시작했는데, 하루의 도래를 배은망덕하게 당연한 것으로 여겼다. 이른 아침 묵상과 명상록 읽기가 진행되지 않아, 그다음에 진행하는 산책도 성전이 아닌 방랑이 되었다.

잠은 하루를 가르는 문으로, 신은 생각하는 인간에게 하루를 선물로 준다. 로마정치가이자 스토아철학자인 세네카는 어리석은 사람과 현명한 사람의 차이를 <도덕적인 편지> 1018단락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매일) 인생의 마지막에 도달했다고 여기면서 우리 마음을 가지런히 정렬시키자.

그 어떤 것도 미루지 말자nihil differamus.”

하루를 인생의 첫날로 맞이하여, 해야 할 일을 찾아 몰입하면, 그 하루가 일 년이 되고 일생이 된다. 또한, 내 삶에서 미루기가 언젠지 모르지만 내 마음속에 굳건히 자리 잡았다. 미루기는 그 순간, 그날에 해야 할 일을 정하지 않아 완성할 수 없거나, 완수하려고 최선을 경주하지 않아, 막연히 내일 하자는 달콤함 유혹에 넘어가는 의지박약이다. ‘미루기를 의미하는 영어단어 프로그래스티내이션’procrastination내일을 의미하는 크라스’cr?s‘-을 위하려라는 전치사 프로pro’의 합성어다. 미루기는 신이 주신 오늘이란 구별된 시간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고 흘려보내는 게으름이다.

언덕 중턱에 가만히 앉았다. 예민한 벨라는 내 뒤에 서 있고 샤갈과 예쁜이는 저 멀리서 들려오는 소리에 눈을 집중하고 있다. 나도 이들과 함께 눈을 감았다. 봄이 오기 전에 마음을 다잡고 싶다. 미국 시인 웬델 베리가 야생들이 마련해주는 평화라는 시로 여러분과 함께 봄을 준비하고 싶다.

The Peace of Wild Things

Wendell Berry (1934-)

거친 것들이 선사하는 평화

When despair for the world grows in me

and I wake in the night at the least sound

in fear of what my life and my children’s lives may be,

I go and lie down where the wood drake

rests in his beauty on the water, and the great heron feeds.

I come into the peace of wild things

who do not tax their lives with forethought

of grief. I come into the presence of still water.

And I feel above me the day-blind stars

waiting with their light. For a time

I rest in the grace of the world, and am free.

세상에 대한 실망이 내 안에서 자라나고

한밤에 조그만 소리에도 깨어나

내 삶과 내 자식들의 삶이 어떻게 될까, 두려워할 때,

오리와 커다란 왜가리가 평화롭게 아름다움을 유지한 채

노니는 물가로 가서 눕는다.

나는 야생들이 마련해주는 평화로 들어간다.

그들은 슬픔을 미리 걱정하며 자신의 삶을 괴롭히지 않는다.

나는 고요한 물 안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내 위로 낮을 알지 못하지만

자신의 빛을 발산하기 위해 기다리는 별들을 느낀다. 잠시나마

세상이 가져다주는 은총 안에서 쉰다. 나는 자유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