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본

일본과 무사도

by 자한형 2021. 8. 20.
728x90

일본의 근대화 과정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바 있는 해군제독 도고 헤이하찌로라는 사람이 있었다. 러일전쟁을 승리로 이끌었고 발틱함대를 참패시킨 이였다. 청일전쟁, 러일전쟁의 영웅으로 칭송되었고 러일전쟁이 끝나고서 기자가 질문을 던졌다. 당신이 영국의 넬슨제독이나 조선의 이순신장군들과 비교한다면 어느 정도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러자 도고가 대답했다. 나를 넬슨과는 같은 위치에서 견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조선의 이순신과는 비교할 수가 없다. 그는 군신과 같은 존재다. 내가 그의 휘하로 들어간다면 그의 하사관정도에 불과했을 것이다.” 어린 시절 교장선생님의 훈화로 한참 회자되던 얘기였다. 일본에도 그렇게 훌륭한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이 극구 칭찬한 우리의 성웅 이순신은 얼마나 대단한 인물인가를 확실하게 기억하라는 메시지였다.

일본은 어떤 나라인가 어떻게 해서 선진국이 되었고 얼마나 노력했기에 일등국가의 반열에 올라있는가 등은 항상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의 한가지였다. 최근 잃어버린 10년은 어떻게 된 것인가, 우리는 일본을 따라잡을 수 있는가, 중국은 어떠한가. 얼마 전 신문에 중국의 GDP가 일본을 앞질렀다는 보도가 있었다. 진정한 극일의 길은 무엇인가 그들의 장단점은 무엇이고 발전가능성은 있는가 등등에 대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상당히 피상적이고 제대로 된 연구의 집적도 아닌 그냥 전해들은 것이나 통상의 얘기되는 것에서 얻은 것으로 세밀하게 다 파헤칠 수는 아마 없을 것이다. 다만 현 상태 수준에서 나름의 견해와 의견과 평가를 내려 보고자 한다. 일본이 우리에게 주입하고자 했던 것들은 무엇이었을까. 그들이 우리에게 불어넣어주고자 했던 부분은 일제 35년간 한국에 대해 부정적인 면이었고 잘못된 부분들이었다.

한국인은 모래알 같은 민족이라고 한다면 일본인은 찰흙과 같은 응집력을 갖고 있다 한국은 개인은 똑똑하고 우수할지 모르지만 집단적 조직적이 되면 결코 일본을 따라잡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들 은 사무라이 정신을 가졌고 한국은 선비정신과 문()의 나라이다. 일본이 칼에 의한 문화이고 무자비한 죽음의 미학을 갖고 있다면 한국은 붓의 문화이고 효의 문화이고 생존의 미학을 갖고 있다고 이해하여야 할 것이다. 일본에서의 하극상이나 역성혁명은 천명을 어기는 것이요 용납될 수 없는 것임에 반하여 한국은 역성혁명은 필요한 것이고 그것이 대의명분을 가질 때에는 필요한 부분일 수 있었다. 그들이 벚꽃의 화려함에 빠져버리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우리는 매화에 심취해 버린다. 물론 일본도 그렇게 매화에 심취하는 이도 있고 그 고고함을 흠모하는 이도 있다고도 한다. 그들은 세계의 흐름에 재빨리 편승해서 문명을 받아 들였고 부흥시켰다. 한국인의 특성에서 시기와 질투, 갈등 요소가 많아 싸움을 많이 하게 되었고 사색당파로 쓸데없고 소모적인 논쟁으로 국력을 낭비한 것으로 인해 큰 역사의 흐름에서 뒤쳐져버렸고 결국은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또한 자기들만의 성을 쌓았던 관계로 이를 계승 발전시키고자 하는 노력이 부족했다. 예를 들면 고려청자, 이조백자, 금속활자, 같은 것은 세계적인 것이고 위대한 것이었음에도 그것을 사장시키고 더 이상의 맥이 이어지지 않은 것에 대하여 공방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에 일본의 경우에는 임진왜란이 도공들을 데려다 독자적인 도자기를 만들었고 오늘날에도 그 비법이 전해져 내려온다는 것이다. 외래문물을 받아들이고 이를 새롭게 독창적으로 만들어 독자적인 문화를 만드는데 있어서 인본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독보적이다. 일본은 68년에 한국은 88년에 중국은 2008년에 올림픽을 치렀다. 우리는 20년을 일본에 뒤쳐지는 것이다. 공업입국을 위한 기술력이나 과학적인 능력 자체도 없는 상태에서 폐허의 상태에서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다. 오로지 인적자원과 수출력에 의해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 되었지만 아직도 일본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또한 그들을 추종해왔다고 하는 부분에서 있어서는 더더욱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면 어떻게 일본을 따라잡을 수 있고 그들을 능가할 수 있을 것인가?

 

일본을 오늘의 일본으로 만든 키워드 중의 하나로 회자되는 것 중의 하나가 사무라이 정신이라고 한다. 주군을 위해서 또는 천황을 위해서 목숨을 바칠 수 있는 사무라이 정신이 근대 일본을 관통하고 있다. 군국주의 하에서는 천황을 위해 가슴에 폭탄을 품고 적신에 뛰어드는 가미가제 특공대에서 그 절정을 이룬다. 종전 후에도 토굴 속에서 수십 년을 지내며 그런 무사도 정신에 입각해 자신들이 패망한 줄도 모르고 천황폐하의 명을 받기위해 살아있었다는 일화도 있었다. 패전 후 일본을 되살아나게 한 것 중의 하나가 된 대망을 쓴 야마오카 소하찌의 일화도 참으로 섬뜩한 느낌을 준다. 그는 가미가제 특공대를 자원했으나 몸이 약해 거절당했다고 한다. 그런 후 패전후 실의에 빠져 있는 일본 국민에게 희망의 불씨를 불어 넣기 위해 대망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주군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충성을 실현하고 조직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그들에게서 또 다른 일면을 본다. 그들의 무사도를 일러 죽음의 미학이라고도 한다. 우리의 선비정신은 생존의 미학이라고 하는 것과 대비되는 것이다. ‘개똥밭에 굴러도 저승보다는 이승이 낫다는 속담이 있다. 주군을 위해 충성을 다하고 그것이 부족하거나 명예에 금이 갔을 때 그들은 목숨을 초개처럼 버리는 것이다. 대의를 위해서 말이다. 자기 자신의 대의를 위하고 국가와 민족을 위하는 것이 아닌 소속된 조직을 위해 한 몸 희생하는 것이 오랫동안 그들의 정신을 관통해 왔고 면면히 흐르고 있는 정신의 본류일 것이다. 사무라이 정신을 표현하는 예화 중에 이런 것이 있다. 한아이가 떡집에서 떡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 주인은 떡을 훔쳐 먹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자 그 곁을 지나던 무사가 그러면 내가 증명해 보이겠다고 해서 아이의 배를 갈라 아이의 결백을 증명하고는 떡집 주인을 살해하고 자신도 할복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예화도 있다. 주군이 억울한 죽음을 당하자 모두가 닌자로 변신해서 주군의 복수를 다하고 나서 다 같이 할복하고는 아름다운 최후를 보여 주었다는 것이다. 오늘날에도 심심치 않게 할복은 일어나고 하나의 전통처럼 그렇게 굳어져 가고 있다. 이런 무사 계급에서의 모토는 충과 명예 등이다. 그래서 그들은 농민이나 상민이 그들의 명예를 실추시켰을 때에는 목을 쳐도 좋다는 것이 불문율처럼 되어 있다고 한다. 과연 자신의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지켜야하는 충과 명예는 정말 그들이 그렇게 떠받들 만큼 가치가 있긴 한 걸까?

 

 

'일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노소동락 메이지 유신 관련 세 번째 책을 내며  (1) 2023.12.04
nosodongrak明治維新関連第3本を出して  (0) 2023.12.03
운명의 인간 그 이후  (0) 2021.08.20
운명의 인간  (0) 2021.08.20
숙명  (0) 2021.0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