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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 마주친 100개의 인생(딴지일보연재물 등)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by 자한형 2023. 7.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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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임권산

질풍노도 시대에 살았던 괴테

18세기, 전 유럽은 계몽의 세례를 받았다. 합리주의와 객관적 이성을 중시하는 계몽사상은 프랑스뿐 아니라 독일에도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리고 독일에서는 프랑스와 사뭇 다른 움직임이 있었다. 독일 문학계에서 평민 출신의 젊은 신진 작가들을 중심으로 이런 계몽사상에 반발하는 움직임이 일어난 것이다.

그들은 차가운 합리와 이성보다는, 자유로운 감정 발산과 개인의 개성을 중시하며 진실로 독일적인 생명과 인간 감정의 본질을 추구했다. 이것이 슈투름 운트 드랑(Sturm und Drang)’ 또는 질풍노도(疾風怒濤)’라 불리는 18세기 후반 독일의 문학 운동이다.

이 질풍노도 시대의 중심에 젊은 작가 괴테가 있었다. 그는 인간 본연의 감정에 충실했으며 화려한 프랑스적인 기교보다는 소박한 독일의 전통 민족성을 중시했다. 청순하고 솔직한 인간 감정과 대자연의 융합이 이 시절 그의 주된 관심사였다.

자연은 어쩌면 저렇게도 화려하게,

나를 향해서 빛나는 것일까!

태양은 저렇게 번쩍이고

풀밭은 저렇게 다정한 것일까!

그리고 이 아름다운 자연은 사랑과 결합할 때 더욱 빛났다. 괴테는 인생의 중요 시기마다 항상 이상적인 여성을 만났던 행운의 사나이였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차가운 계몽주의에 도전하는 뜨거운 정열이자 그의 청춘에 대한 기록이다.

나는 체험하지 않은 것은 한 줄도 쓰지 않았다. 그러나 단 한 줄의 문장도 체험한 것 그대로 쓰지는 않았다.” -괴테-

나는 약혼자가 있는 그녀에게 빠졌어

나의 친구 빌헬름, 너에게 편지를 쓴다. 내가 네 곁을 훌쩍 떠나 이곳으로 온 것을 용서해 줘. 나는 이곳에서 마음껏 그림을 그리며 아주 잘 지내고 있어. 도시는 불쾌하지만, 교외는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운 대자연으로 둘러싸여 있는 곳이야. 나무 한 그루, 생울타리 한 가지마저 온통 꽃다발이 아닌 것이 없고, 이 싱싱한 청춘의 계절은 언제나 나의 마음을 매우 훈훈하게 해 주고 있어.

이런 이야기를 그녀가 하고 있는 동안 나는 그녀의 새까만 눈동자를 얼마나 황홀하게 쳐다볼 수 있었는지 모른다. 그 싱싱한 입술, 생기가 감도는 그 귀여운 두 볼이 내 마음을 온통 사로잡고 만 것이다.

아름다운 그녀, 검은 눈의 샤로테를 만났어. 빌헬름, 이제 내가 너에게 편지를 쓰는 이유를 알겠나? 그래, 난 이곳에서 사랑에 빠졌어. 샤로테, 정말로 사랑할 가치가 있는 그녀를 만났지. 천사, 아니다, 이런 말은 누구나 할 수 있어. 그녀는 그토록 총명하면서도 그토록 순진하고, 고운 마음씨에 착하고 친절할 뿐 아니라 아름답지. 요컨대 그녀는 내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고 말았어.

이곳에서 사귄 법무관 S씨의 초청을 받고 무도회에 참가했지. 도중에 바로 그녀, 샤로테가 동승했어. 모두 그녀를 로테라고 불렀어. 그녀는 청초하고 단정한 흰 옷을 입고 있었고 가슴에는 연한 붉은 빛 리본을 달고 있었지. 마차에 오르기 전 자신의 어린 동생들에게 빵을 나눠주고 있었어. 그것은 내가 이제까지 보지 못한 매혹적인 광경이었어.

그녀는 온 정성과 마음을 기울여서 춤을 춘다. 그리하여 몸 전체가 조화를 이룬다. 허심탄회하고, 어떠한 거리낌도 없이, 춤 이외에는 아무런 생각, 아무런 감각도 없는 사람처럼 보인다. 그 순간만은 확실히 그녀 앞에서 일체의 사물이 사라져버리는 것이다.

로테와 춤을 출 때 느낀 나의 기쁨이란, 오직 하느님만이 아셨을 것이야. 그 무도회는 그녀가 열어 준 천국의 문이었어. 알베르트...... 그녀의 입에서 나온 그녀 약혼자의 이름이야.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고 정신을 못 차리게 만든 말이지만, 로테에 대한 나의 마음에는 그 어떤 영향도 미치지 못했지. 로테는 이렇게 짧은 시간에 내게 가장 소중한 사람이 되었으니까.

로테도 나를 사랑하고 있다

그날 해가 떠오르는 광경은 장관이었다. 주위에는 온통 이슬 방울이 맺혀서 떨어지는 숲과 싱싱하게 소생한 들판이 있었다.

빌헬름, 내 장래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하루하루가 행복한 나날들이야. 발하임, 내 산책의 목적지가 되었지. 그곳에서 로테의 집까지는 불과 반 시간밖에 걸리지 않아. 이제 거기는 내 모든 희망과 소원이 깃들어 있는 곳이 되었어. 나는 아침에 해가 뜨자마자 발하임으로 가서 그곳 주막집의 채소밭에서 완두콩을 따고 콩 껍질의 심줄을 떼어내며 호메로스를 읽지. 그리고 땅바닥에 앉아 로테의 어린 동생들을 데리고 놀아 주지. 그리고 로테의 눈길을 느껴. 그녀의 눈길은 모든 사람들의 고통을 덜어주고 행복하게 해 주지.

오오, 천사여, 그대를 위해서 나는 살아야만 하겠다.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로테의 이야기가 나오기라도 하면 내가 얼마나 바보가 되는지 너에게 한번 보여주고 싶어. 어떤 사람이 나에게 로테가 마음에 드느냐고 묻기라도 한다면 나는 이런 생각을 해. 로테를 좋아하면서 모든 감각과 감정이 그녀로 가득 차고 넘쳐흐르지 않는 사람이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을까! 마음에 든다구!

빌헬름, 혹시 내가 나 자신을 기만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걱정이 되나? 약혼자가 있는 그녀에게 빠진 내가. 아니야, 결코 아니야. 로테의 그 검은 눈동자를 마주할 때마다 나는 느낄 수 있어. 나 자신과 나의 운명에 대한 그녀의 감출 수 없는 공감을. 나를 믿어도 좋아.

즉 그녀는 아아, 천국을 이런 말로 표현해도 좋을까?- 그녀는 나를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빌헬름, 그녀가 나를 사랑한다! 그것을 느낀 이후 나는 내가 세상에서 가장 귀중한 존재가 되었다고 생각하게 되었어. 나 자신을 존경하게 되었어. 물론 그녀가 가끔 자신의 약혼자에 대해서 뜨거운 정열과 애정을 쏟아가며 이야기할 때면 명예와 지위를 박탈당한 듯한 비참한 기분이 들 때도 있지만. 빌헬름, 나를 이해할 수 있겠지?

<오늘 나는 그녀를 만난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 밝은 마음으로 찬란한 태양을 쳐다보면서 그렇게 외친다. <오늘 나는 그녀를 만난다!> 그렇게 외치면, 내게는 하루 종일 더 바랄 것이 없어진다.

알베르트를 대신할 수만 있다면

알베르트가 돌아왔다. 로테를 독차지한 남자, 씩씩하고 잘난 신사이기에 모두의 호감을 받는 남자, 로테의 약혼자가 돌아왔다. 빌헬름, 알베르트가 돌아왔으니 나는 떠나야 하는 걸까? 예전에 할머니에게 들은 이야기가 떠오르는군. 자석산(磁石山) 이야기. 배가 그 산에 너무 가까이 접근하면 쇠붙이란 쇠붙이는 모두 그리로 빨려가 그 배에 탔던 사람들은 모두 허물어져 떨어지는 널판지 조각에 깔려 비참하게 죽는다는 이야기.

더구나 알베르트는 아주 점잖은 사람이어서, 내 앞에서는 아직 한번도 로테에게 키스를 한 적이 없다. 좌우간 칭찬받을 만큼 인격과 요양을 갖춘 인물이니 신의 가호가 있기를!

빌헬름, 알베르트는 멋진 신사였어. 내 불안정한 성격과 대조되는 그의 침착함, 그러면서도 풍부한 감정, 그리고 분별력까지. 난 그에게 경의를 표해. 난 그를 보며 내가 로테에 대해 아무 권리가 없다는 것을 깨닫지. 그리고 로테를 너무 자주 만나서는 안 된다는 생각도 해. 그러나 막상 밤이 지나 아침이 되면 나는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로테에게로 향하지. 알베르트가 바쁜 시간을 노려. 혼자 있는 로테를 보면 기분이 좋아지지.

용서해 줘, 빌헬름. 피치 못할 운명에 대해 순순히 복종해야 한다는 주장을 비난한 것이 나에 대한 너의 충고를 두고 한 소리는 아니었어. 나는 세상이 양자택일의 방식으로 돌아가지는 않는다고 생각해. 이것 아니면 저것? 인간의 감정이나 행동에는 가지가지의 음영(陰影)이 있지. 로테에게 희망을 걸 수 있는가, 아니면 포기하라. 이건 아니라고 생각해. 다행인 건 알베르트가 진심으로 따뜻한 우정을 갖고 나를 대해준다는 것이지. 우리는 같이 산책하며 로테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기도 해. 그는 질투나 의심하지 않는 훌륭한 신사야.

빌헬름, 인간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동시에 불행의 원천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은 과연 변할 수 없는 것일까? 아침마다 괴로운 꿈에서 깨어나 헛되이 그녀를 향해 두 팔을 뻗고 더듬지. 그리고 정신을 차리면 억눌린 가슴 속에서 눈물이 쏟아져 나와. 어떤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아. 공상도 없어졌고, 자연을 감상하는 정서도 사라졌고, 책을 읽는 것도 구역질이 날 뿐이야.

불행한 자여! 너는 정말 천치가 아닌가? 너는 스스로를 속이고 있지 않은가? 이렇게 미쳐 날뛰는 너의 끝없는 정열은 도대체 어쩌자는 것이냐?

빌헬름, 내 생일날 알베르트가 소포를 보냈더군. 소포 속에는 분홍색 리본이 책과 함께 들어 있었어. 그 리본은 내가 로테와 처음 만났을 때 그녀가 가슴에 달고 있던 것이야. 내가 몇 번이나 달라고 졸랐던 것이지. 그들의 우정이 깃든 이 선물, 허영심을 채워 주는 눈부신 선물보다 몇천 배나 값진 것이지. 나는 그 리본에 수없이 키스를 퍼부었어. 빌헬름, 나는 떠나야 해. 자네의 충고, 감사하게 생각해. 알베르트는 남고, 나는 떠나야만 해. , 내가 알베르트를 대신할 수만 있다면......

아직 저 아래, 높이 솟은 보리수 그늘에 로테의 흰 옷이 출입문 쪽을 향해서 움직이는 것이 희미하게나마 보였다. 나는 두 팔을 앞으로 쭉 뻗었지만 어느새 그 모습은 사라져버리고 없었다.

B양의 등장과 로테의 결혼

자네의 충고대로 이곳에 도착했네. 공사(公使)의 밑에서 일하게 되었지. 이미 짐작은 했지만, 공사는 정말 불쾌하기 짝이 없는 인물이야. 그의 고집과 잔소리는 내가 일찍이 겪어본 적이 없는 것이야. 그는 꼼꼼하고 까다롭기는 꼭 시어머니 같고, 다루기 힘들기는 흡사 노처녀 같지. 무엇보다 내 성미에 거슬리는 것은 계급 차별이야. 숙명적인 것. 나는 나의 자그마한 기쁨이나 행복마저 그런 것에 방해받고 싶지 않은데......

어느 날 심한 눈보라를 만나 어느 초라한 농가로 피했지. 그곳에서 로테, 그녀가 생각났어. 간절하고 무섭게. 그녀는 나를 발효시키는 효모였어. 내 마음을 고무해 주는 자극이었지. 그녀가 없는 이곳 D시에서의 생활은 해가 떠오르는 광경이나 밤을 비춰주는 달빛마저도 전혀 기쁘지가 않아. 빌헬름, 그 농가에서 그녀에 편지를 썼지. 그 편지는 사랑하는 로테로 시작하지. 그리고 다음과 같은 말로 끝냈어.

안녕히 계십시오! 알베르트는 함께 있습니까? 어떻게 지내는지요? 이런 질문을 해서 미안합니다.

빌헬름, 나는 여기서 불쾌한 일을 당했기에 이제는 떠나야겠어. 나는 지금 원통해서 이를 갈고 있어. 이곳에서 오직 여성다운 여성 하나를 만났어. B양이라는 아가씨야. 푸른 눈동자와 풍부한 마음씨를 가진 사랑스러운 처녀야. 우리 둘은 마음이 잘 맞았지. 그녀는 자신의 아주머니뻘 되는 부인의 집에 살고 있었는데, 그 부인은 몰락했지만 아주 지체 높은 귀족 집안 출신이야. 어느 날 평소 나를 좋게 보던 C백작이 만찬에 초대했어. 말단 공무원이 상류계급의 신사숙녀들 자리에 가게 되었지. 그리고 그곳에서 B양도 만났어.

나는 알았지. 그곳은 내가 있을 수 없는 자리였어. 귀부인들은 나를 흘겨봤고 자기들끼리 속삭였어. B양조차 평소처럼 거리낌 없는 태도가 아니었고, 내가 다가가자 어쩐지 당황한 빛을 보였지. 나를 초대한 C백작은 나를 창문 옆으로 데리고 가 미안하다고 내게 말하더군. 이곳에 모인 귀한 혈통들이 내가 있는 것에 불만인 것 같다고.

귀한 혈통의 말은, 무섭게 몰아대서 흥분하게 되면 본능적으로 스스로 혈관을 물어뜯어 숨을 돌린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도 역시 스스로 활관을 끊어서 영원한 자유를 얻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궁정에 사직원을 냈어. 곧 수리가 되겠지. 알베르트와 로테가 결혼식을 올렸다는 소식을 들었어. 둘은 이제 부부가 되었네. 신께서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그들을 축복하시고 내게 베풀지 않았던 좋은 나날들을 그대들에게 내려주시기를! 정처 없는 방랑을 시작해야겠어. 어디로 갈까. 전쟁터도 염두에 두고 있어. 고향도 물론 찾아봐야 하겠지. ㅇㅇ광산도 꼭 방문할 계획이야.

그후에 ㅇㅇ의 광산을 방문하려고 마음 먹고 있지만 그것은 단지 구실에 지나지 않고, 사실은 그저 로테의 곁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을 뿐이다. 그것이 전부이다. 나는 스스로의 마음을 비웃으면서도 그 마음에 따라 행동하고 있는 것이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로테의 부탁

빌헬름, 대체 나보다 비참한 인간이 이전에 있었을까. 다시 찾아간 발하임은 여기저기 변해 있었지만, 로테, 그녀만큼은 그대로였어. 반갑게 나를 맞아주는 손등에 키스했을 때, 내가 그녀만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음을 더 뚜렷하게 느낄 수 있었지. 로테를 단념하기 위해서 그녀와 처음 만나 춤을 추었을 때 입었던 푸른색의 연미복을 벗어버리기로 했어. 그래서 노란 조끼와 새 바지를 주문했어. 그러나 허사였어. 나는 로테에게 정신이 나간 사람이야. 그녀는 나를 마음대로 할 수 있어.

내가 이다지도 외곬으로 그녀만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는데, 어떻게 그녀가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지, 다른 사람을 사랑해도 되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나는 그녀 외에는 아무것도, 아무도 모르고, 또 그녀를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데!

빌헬름, 나는 가끔 다시 깨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잠자리 들곤 해. 운명 속에 뚫어진 구멍의 공허함, 뼈저리게 느껴지는 이 무서운 공허함. 정말 꼭 한 번만이라도 좋으니, 그녀를 내 가슴에 안아볼 수만 있다면! 그녀는 느끼고 있을까? 내가 그녀 자신과 나를 파멸시킬 독약을 스스로 마련하고 있다는 사실을.

제발 부탁이에요. 다른 도리가 없어요. 제 마음의 안정을 위해서도 그렇게 해주세요. 이대로는 안 돼요. 이렇게 그냥 계속될 수는 없어요.”

빌헬름. 크리스마스 전의 일요일, 혼자 있는 그녀를 찾아갔을 때 그녀가 한 말이야. 로테는 나에게 크리스마스 이브까지 찾아오지 말라고 했어. 아버지와 남편, 그리고 자신의 동생들이 모두 모이는 크리스마스 이브에나 오라고 하면서. 아마도 로테는 나를 멀리해야겠다고 굳게 결심한 것 같아.

오오, 신이여, 당신은 나에게 마지막 위안으로서 쓰디쓴 눈물을 베풀어주셨습니다! 수많은 계획과 기대가 내 마음속에서 미친 듯이 날뛰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죽어버리자는 단 하나의 생각만이 마지막으로 내 마음을 확고하게 사로잡고 말았습니다.

알베르트의 권총으로 완성한 사랑

1221일 월요일, 저녁 여섯 시 반쯤. 빌헬름, 나는 로테를 찾아갔어. 크리스마스 이브까지 오지 말라는 그녀의 말에 복종하지 않았지. 로테는 놀라면서 또 두려운 듯했어. 나와 단둘이 있지 않으려고 하녀를 부르는 듯하더니 무슨 생각인지 피아노로 가 미뉴에트를 치더군. 그 연주는 제대로 나가지 않았어. 그녀는 내 옆으로 왔어. 그리고 읽을거리를 주겠다며 내가 번역한 오시안의 노래시집을 건네더군. 내 눈에 눈물이 고였어. 나는 혼신의 힘을 다해 시를 낭독했어.

그는 들판에 서서 내 모습을 찾겠지만, 끝내 나를 찾아내지는 못하리라.’...... 이 구절에서 나는 로테 앞에 꿇어앉았어. 그녀의 두 손을 붙잡고 나의 눈과 이마에 갖다 꼭 눌렀어. 그녀는 그 순간 아마도 나의 의도를 직감한 것 같아. 내 손을 자가 가슴에 갖다 꼭 누르더니 나에게로 몸을 구부렸지. 그녀의 뺨과 내 뺨이 맞닿았어. 나는 그녀를 휘감아 가슴에 꼭 껴안은 다음, 떨리는 그녀의 입에 키스를 퍼부었어.

이것이 마지막이에요. 베르테르 씨, 이제 다시는 만나지 않겠어요!” 그리고, 로테는 이 불쌍한 베르테르에게 사랑이 가득 찬 눈길을 보내면서 옆방으로 뛰어 들어가 문을 잠가버렸습니다.

빌헬름! 기쁨의 감정이 내 마음속 깊은 밑바닥으로부터 뜨겁게 불타오르네. 로테가 나를 사랑하고 있었어! 그녀의 입술에서 흘러나온 거룩한 불길이 내 입술에서 불타고 있어! 이제 나의 사랑을 완성해야지. 죄가 될지도 몰라. 내가 먼저 갈 거야. 저세상에서 그녀를 다시 만날 거야. 예전에 보았던 알베르트의 권총이 떠 올랐지. 내 사랑을 완성하는데, 알베르트의 권총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고 생각했어.

다음 날 나는 하인을 불렀어. 하인에게 로테의 집으로 가 내가 여행을 떠나려 하는데 권총을 좀 빌릴 수 있겠는가를 물어보라고 했지. 얼마 후 하인이 알베르트의 권총을 가져왔어. 아무것도 모르는 알베르트는 태연히 로테에게 권총을 내어 주라고 했지. 내 앞에 있는 이 권총, 로테의 손을 거쳐서 온 것이야. 나는 그 권총에 키스를 했지. 빌헬름. 이것이 내 마지막 편지야. 나는 두렵지 않아. 로테가 손수 내어 준 이 죽음의 술잔을 마실 거야. 나는 담담하게 죽음의 철문을 두드릴 거야.

로테! 로테! 안녕, 안녕!

빌헬름! 마지막으로 나는 들과 숲과 하늘을 보고 돌아왔네. 자네도 부디 잘 있게! 어머니, 용서해 주십시오! 빌헬름, 어머니를 위로해 주게! 하느님께서 그대들을 모두 축복해 주시기를!

베르테르의 마지막 길

베르테르의 시체를 최초로 발견한 것은 그의 하인이었다. 의사가 도착했으나 이미 되돌릴 수는 없었다. 총알은 베르테르의 오른쪽 눈 위에서 머리를 관통하여 쏘아서 뇌수가 밖으로 터져 나와 있었다. 안락의자의 팔걸이에 묻은 피로 미뤄보아 아마도 그는 책상을 마주하고 앉은 채로 권총의 방아쇠를 당긴 듯했다.

이 소식을 듣는 순간 로테는 정신을 잃고 알베르트 앞에 쓰러졌다.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베르테르에게 키스를 하며 그의 마지막 길을 애도했다. 베르테르는 자신이 원했던 장소에 매장되었다. 알베르트는 베르테르의 유해를 따라가지 않았다. 로테의 생명이 염려되었기 때문이다.

일꾼들이 유해를 운반해 갔습니다. 성직자는 한 사람도 따라가지 않았습니다.

사랑이냐 이성이냐, 그것이 운명이다

인간의 경험이나 감정 중에서 사랑만큼 복잡한 것이 또 있을까요. 사랑에 대한 각자의 생각이나 그 내용, 강도 모두 천차만별로 다를 것입니다. 또한 표출되는 방식조차 모두 다를 것입니다. 어린 시절 좋아하는 여자아이를 일부러 괴롭힌 경험이 있듯이 사랑은 때때로 분노, 질투, 좌절, 자포자기 등의 형태로 나타나기도 하니까요.

사랑이라는 것이 이렇게 복잡한 것이다 보니 가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랑들을 목격하기도 합니다. 이건 누가 보아도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고, 인생 전부를 걸어도 가능성 없는 짝사랑임이 분명한데, 그것을 놓지 못하는 안타까운 경우들 말입니다. 약간의 이성적 판단이라도 할 수 있다면 분명히 이건 아닌 데 하는 사랑 말입니다. 인간이 이성적 동물이라는 말은 사랑 앞에서는 적용되지 않을 수도 있나 봅니다.

사랑을 하는 사람과 사랑을 받는 사람은 항상 따로 있어.”

- 윌리엄 서머싯 몸(William Somerset Maugham, 영국 작가) -

영국 작가.PNG 윌리엄 서머싯 몸출처-<britannica>

이루어질 수 없는 짝사랑은 안타까운 비극입니다. 사랑이 장벽 너머에 있는 것을 알면서도 그리고 그 장벽이 극복할 수 없는 것임을 알면서도 자신의 삶은 뒷전으로 미뤄두고 애처롭게 장벽에 매달립니다. 이성은 분명히 말합니다. 포기하고 새로운 사랑을 찾아가라고. 그것이 너의 인생에 이익이라고. 그러나 가슴은 뇌의 판단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손해인 것을 알면서도, 자신의 인생이 어둠 속으로 빠져들 것을 알면서도 말입니다.

그것은 사랑이 계산의 영역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만약 누군가가 사랑을 수학적 수식으로 완성하여 보여준다면, 그는 사람이 아닌 신일 것입니다. 계산을 담당하는 것은 이성의 영역이고, 사랑을 담당하는 것은 감성의 영역입니다. 감성은 정서이며 무의식의 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감성은 이성의 대립지점에 있으니, 사랑은 계산이 불가능합니다. 이것이 바보처럼 짝사랑에 목을 매는 이유입니다.

이성과 감성이 충돌하는 사랑이 찾아오고 그 사랑에 빠졌을 때, 무엇을 따라야 하는 가를 그 누구도 명확하게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사랑이냐 이성이냐. 이 질문에 정답은 없습니다. 그것은 각자가 풀어야 할 문제이고 각자의 선택입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후회나 보람이나 자기만족 역시 각자의 몫입니다.

인간은 온전하게 건강한 자로서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나는 가르친다. 자기 자신을 참아내느라 헤매고 다니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 프리드리히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단지 판단에 도움이 될 만한 현자들의 말 한마디를 소개하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데 타인을 사랑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냉정한 이성의 뜻을 따르든, 이루어질 수 없음을 알면서도 사랑에 모든 것을 바치든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과 자신의 인생에 대한 사랑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인간의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그 누구도 자신의 인생을 방치하는 사람을 사랑하기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여보시오, 젊은 양반, 내 말 좀 들어봐요! 사랑을 하는 것은 인간으로서 당연한 일이겠지만, 단 인간다운 사랑을 해야 돼요.

50번째 인생탐구는 대략 25세쯤에 자신의 사랑을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베르테르의 삶을 소개했습니다.

베르테르 효과(Werther effect)’라는 심리학 용어를 만들게 될 정도로 당시의 젊은 청년들에게 폭발적인 호응을 받았다는 소설입니다. 날카롭고 차가운 계몽의 시대라는 환경 속에서 젊은이들은 베르테르의 질풍노도와 같은 뜨거운 감수성에 열광했습니다. 독일 문단의 질풍노도는 18세기 후반 대략 20년 정도로 끝났습니다. 계몽사상은 유럽을 바꾸었고 지금도 많은 이들을 매료시키고 있습니다. 물론 괴테의 작품들도 여전히 사랑받고 있지요.

사랑에 빠지려고 하는 사람들, 이미 사랑에 빠진 사람들, 지금 하고 있는 사랑에 회의감을 느끼는 사람들. 이 모든 분들께 니체의 말을 전하며 글을 마칩니다.

아모르 파티(Amor Fati)! 너의 운명을 사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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