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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들었다놨다 나훈아 현상의 비밀 2

by 자한형 2023. 8.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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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들었다놨다 나훈아 현상의 비밀2/ 이빈

김정은이 왜 나훈아 안왔느냐고 묻자...

2018년 남북평화 협력기원 남측예술단 평양공연이 있었다. 이 때 북한은 나훈아 참석을 요청했다. 김정은은 도종환 장관에게 나훈아는 왜 안왔느냐고 물었다. 도장관은 스케줄 때문에 못 왔다고 대답했다. 김정은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랏일 하면서 가수 하나 못 불러내는 게 자신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20226월 나훈아는 콘서트 중에 이 일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내 노래는 다 서정적입니다. 고모부 처형하고 이복형 암살하고 회의 때 존다고 사람 죽이는 뚱땡이 살인마 앞에서 사랑노래가 어떻게 나오겠습니까. 아마 옆에 있으면 노래 부를 일이 아니라 귓방망이 날리는 것 밖에 못할 것 같습니다.“

공연장에 피살된 김정남 얼굴을 띄워

201711월 공연 때 나훈아는 '고향으로 가는 배'(1982년 발표)를 부르며, 피살된 북한 김정남(김정은의 형)의 얼굴을 스크린에 띄웠다. 김정남이 아주 좋아하는 노래였고 노래방에서 이 노래만 열 번을 부르며 흐느꼈다고 하는 노래다.

'꿈을 잃은 사람아 고향으로 갑시다'라는 구절이 귀에 들어오는 애절한 노래다. 권력자의 아들로 태어나 자기 나라로 가지 못하고 이국을 떠도는 심경이 그 노래에 들어앉았을 것이다. 원래 '고향으로 가는 배'1981년 김연자가 먼저 발표했던 곡이었다.

1985년 분단 40년만에 남북 이산가족 교환상봉이 있었고 남북 예술단 교류도 함께 이뤄졌다. 나훈아, 하춘화, 김희갑 등 연예인과 국악인들이 평양을 방문했고, 또 북한 예술인들이 서울에서 공연을 가졌다.

나훈아는 평양공연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평양 아줌마'라는 곡을 작사 작곡한다. 이 곡이 발표된 뒤 방송에서 노래가 나오면 실향민과 탈북자들이 하염없이 울었다.

"오늘따라 지는 해가 왜 저다지 고운지/붉게 타는 노을에 피는 추억 잔주름에 고인 눈물/하루에도 열두 번씩 그리운 고향 엎어지면 코 닿을 듯 가까운 고향/아아 오마니 아바지 불러보는 평양아줌마..."로 시작한다.

광주민주화운동 추모한 '엄니'

나훈아는 2020년 신보 '아홉 이야기'라는 앨범을 냈다. 그중 마지막 9번곡은 '엄니'라는 작품이다. 1987년에 나훈아가 직접 작사작곡했다. 광주민주화운동으로 희생된 청년들을 추모하고 망자의 어머니들을 껴안는 노래다.

"엄니 엄니 워째서 울어쌌소/나 여그 있는데/왜 운당가 엄니 엄니/뭐 땀시 날 낳았소..."로 시작한다. 그는 그해 광주시 망월동 5.18묘역(현재 구묘역)에 참배하고 엄니가 들어있는 노래 테이프 2,000개를 광주MBC를 통해 만들어(자비로 제작) 유족들에게 전하고자 했다.

하지만 당시 정권의 방해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 노래는 33년이 지난 뒤에야 발표됐다. 영남 사투리를 쓰는 나훈아가 호남방언을 제대로 쓰기 위해 그곳의 지인들에게 가사를 감수 받기도 했다. 2018년 나훈아는 광주 콘서트에서 이런 사실을 밝힌 바 있다.

'엄청난 폐활량의 저음' 중독성

나훈아의 노래는 부르는 것도 듣는 것도 모두 '높은 수준의 중독성'을 지니고 있다. 그의 저음은 엄청난 폐활량과 근력, 그리고 탁월한 체력에서 나온다. 단순히 목소리를 내리깔아서 만드는 저음이 아니라, 힘과 감정이 온전히 실린 목소리였기에 아프게 심금을 건드리는 호소력을 만들어낸다.

많은 사람들이 이 흉내를 내면서 모창으로 주목을 받는 짝퉁 나훈아를 양산했지만, 진짜 나훈아처럼 부를 수 있는 사람은 나훈아밖에 없다는 게 귀명창(듣기 전문가)들의 평가다.

저음을 바탕으로 깊이 예열한 뒤 애절하고 구슬프면서도 따뜻하게 돋아오르는 고음, 그를 트로트의 장인(匠人)으로 각인시켜준 특유의 '꺾기'는 흉내낼 수 없는 나훈아 창법의 원형(原型)이 됐다.

그가 많은 가수들 가운데서도 돋보이는 점은, 수많은 곡들을 통해 다양한 실험정신을 내보인 것에도 있지만, 자신이 하고 있는 문화 예능적 활동 자체에 대한 가치관과 철학을 분명히 지니고 있다는 점도 있다. 나훈아는 오래전 무대에서 트롯 강의를 한 적이 있다.

나훈아의 트롯 강의

유튜브 영상으로 그때의 말을 다시 들어보니, 평생 트롯을 하며 살아온 그의 통찰과 비전이 놀랍다. 그는 한국의 트롯이 일본에서 건너왔으며 일본노래라고 주장하는데 대해, 왜 트로트이 진정한 우리 노래일 수 밖에 없는지를 문명적인 관점으로 역설한다. (나훈아의 그 뜻을 널리 알리는 차원에서 글로 옮겨 싣는다.)

뽕짝이 우리 노래일 수 밖에 없는 이유

그곳의 기후가 노래를 만든다 = ”우리 대중가요 뽕짝에, 우리가 좋아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어디에 있느냐 하면 세 가지로 말할 수 있습니다. 첫째 기후, 더운 지방에는, 하와이 같은 곳에 가면 디스 이즈 더 모먼트...”라며 엉덩이를 흔들어가며 아주 슬로(slow)한 노래를 부릅니다. 또 저쪽 소련이나 북극의 추운 지방에 가면 그렇게 천천히 부르는 게 아니라 온 난리를 칩니다. 앉았다 일어났다. 왜 그러느냐. 추운 지방에서 하와이 노래를 부르면 얼어죽습니다. 이렇게 엉덩이를 돌리다가 얼어 죽어버립니다. 또 더운 지방에서 이거 하다(앉았다 일어났다) 난리를 치면 태양열에 땀내다 죽어버립니다. 그래서 음악이란 그 나라에 맞게끔, 대중이 좋아하도록 형성이 되는 겁니다.“

생활문화가 노래를 만든다 = ”한국사람은 옛날부터 젓가락을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 일본이나 나라가 그리 크지 않기 때문에 걷는 문화입니다. 옛날엔 거의 걸어다녔습니다. 왜 뽕짝은 4분의 2 박자냐 하면 걷는 것 하나 둘 셋 넷 이것이 우리와 맞고, 저녁에 밥 먹고 술 한 잔 먹고 나면, 젓가락으로 쿵짝 쿵짝 쿵짜자 쿵짝 이게 잘 됩니다. 미아리 눈물고개 임이 넘던 이별 고개...가지마오 가지마오 나를 두고 가지를 마오....이것을 밤새도록 해도 할 수가 있습니다. 이럴 정도로 우리는 이 리듬이 생활문화 속에서 배어있습니다. 한국노래도 그렇지만 일본도 걸어다니고 일본도 젓가락을 쓰니까. 그래서 우리 리듬이 뽕짝일 수 밖에 없는 겁니다. 우리한테 맞으니까.“

언어가 노래를 만든다 = ”일본사람들이 저를 부를 때 어떻게 부르느냐 하면 !훈아”(맨앞의 에 액센트를 줘서)라고 부릅니다. 여러분 제 이름 한번 불러봐 주시기 바랍니다. ”나훈!“(중간의 에 액센트를 줘서). ”자에 액센트가 있습니다. 나훈아란 이름을 넣고 멜로디를 만들면 일본사람들은 !훈아자 음을 높여서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자를 높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말, 언어 때문에 멜로디가 절대로 비슷할 수가 없습니다. 제가 지금 얘기하는 것이 말입니다. 잠깐 세계지도 한번 보여주세요. 한국과 일본을 클로즈업 해보세요. 일본은 4면이 바다이고, 한국은 3면이 바다입니다. 그래서 한국 노래는 대륙성 기질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일본 노래는 우리 노래보다 상당히 부드럽습니다. 우리는 한번씩 꽉 꽉 찔러주는 데가 있습니다. 이게 어디냐 하면 저쪽 만주하고 소련 쪽입니다. 저는 이 뽕짝이 우리 것임을 이 자리에서 천명하는 바입니다.

미국에도 뽕짝이 있습니다. 그런데 미국 뽕짝은 어떤 뽕짝이냐, 미국은 우리 남쪽의 약 97배라 합니다. 그 사람들은 좀 오버해서 집에서 화장실에 갈 때도 말 타고 다녀야 합니다. 미국사람들은 이 리듬이 어디서 나왔느냐 하면 말에서 나왔습니다. 잠깐 말 발굽 소리 한번 들려주십시오. 따가닥 따가닥 따가닥 따가닥. 여기에 맞는지 제 말이 맞는지 한번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올머스트 헤븐 웨스트 버지니아 블루릿지 마운틴즈 셰넌도어 리버... (존 덴버의 ‘Take Me Home, Country Roads') 말까지 등장시켜 한국 뽕짝을 이해시키고 싶었던 이 마음을 여러분들이 꼭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옛것을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만 옛것을 지키는 것 뿐만 아니라 옛것을 자꾸 닦아서 세계로 나가야 하기 때문에, 뽕짝을 사명감을 갖고 한번 해보겠습니다. 그래 뽕짝도 그렇게 하니 새롭구나 하는 생각이 드시면 알아서 해주십시오.”

대한민국 문화중흥의 한 열쇠

아무리 봐도 나훈아는 그냥 스타가 아니다. 한국 특유의 폭발력을 탑재한 초유의 문화 다이너마이트다. 콘서트에서 한쪽 팔만 들면 자신이 작사만 했거나 작곡만 했던 노래이고, 양팔을 다 들면 작사작곡을 다 했다는 독창적인 사인이다.

그의 괴력에 가까운 창조력과 매력들과 통찰력, 대중을 읽는 힘과 자신의 미션에 대한 철학적 고집, 예술의 충직한 본분 위에서 시대를 앞서 경영하며 대중을 들었다 놨다 하는 노련한 예능 감각. 나훈아 50년에 대한민국 문화중흥의 한 열쇠가 있는지도 모른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최근 이런 말을 했다. “유튜브, SNS 등이 아카이브(각종 자료를 디지털화해 한데 모아 관리하고 손쉽게 검색할 수 있도록 만든 파일) 역할을 하면서 가수 나훈아의 전성기를 직접 보지 못한 젊은 세대들의 접근성이 높아졌다. 덕분에 같은 시대를 사는 가수로 느껴지는 동시대성까지 갖춰지고 있다. 특히 한 분야를 깊이 파고들며 현역으로 활동하는 점이 젊은 세대에게는 지향하는 롤 모델이 될 수 있다.”

강릉서 지금, 대형 나훈아콘서트

20221112일 강릉 아이스아레나에서는, 3천명이 입장할 수 있는 나훈아콘서트가 예고되어 있다. 저 거장이 익숙해진 MZ세대들이 나훈아스피릿과 교감하기 위해 지금 다가가고 있을까. 역사는 이렇게 현재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