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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훈아 노래 매우를 듣는 초하룻날

by 자한형 2023. 8.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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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훈아 노래 '매우'를 듣는, 초하룻날/이빈섬

뭐가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이 사랑의 예약들이 전부 노쇼가 되었다. 사랑의 예약들이 전부 노쇼가 되었으니, 사랑이 아무 문제가 없었다고 여겼던 그 '전제'를 의심해야 하지만, 바보가 된 영혼은 그걸 의심하지를 못한다. 딱 이 상황이다. 천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하는 매창의 나훈아버전이다.

더뷰스 - 감성장인 나훈아, 대중 애상(哀傷)을 파고드는 언어센서

이 사랑의 기일(忌日)같은 매우 내리는 날. 그날과 꼭 같이 젖은 매화는 떨어져 땅위에 구르는데, 등을 보이고 떠나던 사람은 돌아올 줄 모른다. 하지만 사랑은 이제 습관같은 신앙이 되어, 오로지 자기 단속만 하고 있을 뿐이다. 그 사람은 나를 잊었는지 몰라도 나는 결코 잊을 수가 없는 사람. 당신이 사랑하지 않더라도, 나는 그대로이오. 그 매화꽃 지던 자리에 똑같은 포즈로 그냥 있을 뿐이오. 우리가 진심으로 이런 사랑의 복음 한 줄만 제대로 외우고 살아도, 이토록 삶과 사랑들이 어지럽진 않으리라.

이 사랑의 기일(忌日)같은 매우 내리는 날. 그날과 꼭 같이 젖은 매화는 떨어져 땅위에 구르는데, 등을 보이고 떠나던 사람은 돌아올 줄 모른다. 하지만 사랑은 이제 습관같은 신앙이 되어, 오로지 자기 단속만 하고 있을 뿐이다. 그 사람은 나를 잊었는지 몰라도 나는 결코 잊을 수가 없는 사람. 당신이 사랑하지 않더라도, 나는 그대로이오. 그 매화꽃 지던 자리에 똑같은 포즈로 그냥 있을 뿐이오. 우리가 진심으로 이런 사랑의 복음 한 줄만 제대로 외우고 살아도, 이토록 삶과 사랑들이 어지럽진 않으리라.

"어디선가 행복하게 살고 있겠지 문득문득 생각나는 그 사람

비에 젖은 매화꽃이 떨어지던 날 그 꽃잎 밟고 떠나간 사람

살가웠는데 다정했었는데 우린 정말 사랑했는데

무엇이 어디서부터 어디가 잘못됐었는지

오늘처럼 새벽부터 매우가 내리면 아프도록 생각나는 그 사람

그 사람은 나를 잊었는지 몰라도 나는 결코 잊을 수가 없는 사람

살가웠는데 다정했었는데 우린 정말 사랑했는데 무엇이 어디서부터 어디가 잘못됐었는지 오늘처럼 새벽부터 매우가 내리면 아프도록 생각나는 그 사람 그 사람은 나를 잊었는지 몰라도 나는 결코 잊을 수가 없는 사람 나는 결코 잊을 수가 없는 사람"

나훈아 노래 '매우(梅雨)'

새해 초하루에, 슬프지만 아름다운 노래를 듣는다. 이 겨울 경쟁처럼 울려퍼지는 트롯경연에 처음 듣는 나훈아 노래들이 귀에 들어온다. 이 가수에 대해 오랫동안 느껴온 인상이지만, 그의 노래를 듣노라면 나훈아는 '가수'이기 이전에 빼어난 음유시인이라는 점을 거듭 느끼게 된다.

간절한 서정적 토로로 감정선을 건드리는 특유의 친연성(親緣性)은 늘 놀랍다. 그의 노랫말들은 대중의 심금을 타고 들어가는 놀라운 내공을 품고 있다는 생각이 자주 소름을 돋게 한다. 어떤 김소월이나 어떤 서정주보다도 훨씬 원형적이며 본능적인 공감이, 일견 흔해보이는 트롯의 흐느낌과 푸념같은 것들 속에서, 매력적으로 스물거린다.

'매우'라는 노래도 그렇다. 매화꽃을 떨어뜨리는 봄비라는 뜻을 가진 이 낱말의 사용이 대중적이진 않지만, 그것이 무슨 의미인줄 아는 순간 뭇사랑들의 기억과 내면 속에 착 달라붙는다. 적어도 내가 느끼기엔 그렇다.

문학적인 선험같은 게 있기도 했다. 매창의 시조다. "이화우 흩날릴 제/울며 잡고 이별한 님/추풍낙엽에 저도 나를 생각는가/천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하더라" 실연을 거듭하던 외로운 기생이 쓴 시이니, 현학적일 것도 없고 기교로 문장을 가다듬을 필요도 없었을 시조다. 그러나 감수성과 천재성이, 조선에서 아마 가장 아름다운 시 한편을 저토록 무심한 듯 내던져 놓았다.

매창은 스스로가 '매화꽃 피고지는 창()'이니, 그 존재는 능동적이지도 않고 방안에 들만큼 귀히 대접받는 사랑도 아니다. 그래도 차가운 기운 헤치고 피어오르던 매화 시절에는 사랑을 받았지만, 그 짧은 사랑은 배꽃이 피던 때까지가 유통기한이었다. 이화우는, 배꽃을 떨어뜨리는 4월 봄비다. 울고불고 보냈던 그 님은, 곧 온다 하였건만, 가을바람 불고 낙엽이 질 때에도 도무지 통기가 없다. 왕년의 유명한 선배 홍낭처럼 달려가서 사랑을 확인하고도 싶지만, 그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러니 그 사람의 마음이 어찌어찌 되어 돌아올 때까지 그저 잠을 설치며 헛된 꿈만 꾸고 있을 뿐이다. 그 꿈에는 돌아왔다가 다시 떠났다가 하니, 천리도 하룻밤에 오락가락하는 것이다.

이 외롭고 가여운 여인의 심사가, 나훈아의 저 '매우'에 다시 피어나 이 뒤늦은 21세기의 남자 마음으로 다시 피어오르고 있으니 저 수백년의 곡절을 아는 이라면 가슴이 뭉개지는 듯한 기분을 느낄지도 모른다. "비에 젖은 매화꽃이 떨어지던 날 그 꽃잎 밟고 떠나간 사람". 매화꽃은 그냥 두어도 봄바람에 곧 떨어지지만 하필 그 때 허튼 비 몇 자락이 내리면 조금 더 붙어있었어도 좋을 꽃모가지를 스스로 날리며 땅바닥에 흩어진다. 그 꽃잎 밟고 떠나간 사람은, 그저 제가 떠나야 하는 사정에 취해 스스로가 밟은 것이 꽃잎인지 흙탕인지도 모르고 갔으리라.

떠나는 때의 마음이야, 철석(鐵石)을 방불하지만 마음이 식고 상황이 바뀌면 사랑은 늘 부도수표처럼 실없고 허하다. 남은 사람은, 하지만 여전히 꿈을 못 깨고 부질없는 자기 반성과 문제 재분석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사랑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나도 사랑했지만 그 사람도 사랑했다. 그런데 뭐가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이 사랑의 예약들이 전부 노쇼가 되었다. 사랑의 예약들이 전부 노쇼가 되었으니, 사랑이 아무 문제가 없었다고 여겼던 그 '전제'를 의심해야 하지만, 바보가 된 영혼은 그걸 의심하지를 못한다. 딱 이 상황이다. 천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하는 매창의 나훈아버전이다.

그런데, 이 사랑의 기일(忌日)같은 매우 내리는 날. 그날과 꼭 같이 젖은 매화는 떨어져 땅위에 구르는데, 등을 보이고 떠나던 사람은 돌아올 줄 모른다. 하지만 사랑은 이제 습관같은 신앙이 되어, 오로지 자기 단속만 하고 있을 뿐이다. 그 사람은 나를 잊었는지 몰라도 나는 결코 잊을 수가 없는 사람. 당신이 사랑하지 않더라도, 나는 그대로이오. 그 매화꽃 지던 자리에 똑같은 포즈로 그냥 있을 뿐이오. 우리가 진심으로 이런 사랑의 복음 한 줄만 제대로 외우고 살아도, 이토록 삶과 사랑들이 어지럽진 않으리라. 더욱 아프긴 할지라도 말이다. 시는 시일 뿐이고 노래는 노래일 뿐이지만, 이런 노래가 아직도 우리 귓전에 흐른다는 것만으로도, 우린 매창의 슬픈 단꿈을 누리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세간에 쓰여온 관용어가 아니라, 스스로 감수성을 부여한 시어(詩語)가 아닐까. 비록 장맛비는 아니더라도, 그에게도 매화에게도 이 비는 세차게 내린 비인 것은 틀림없다. 나훈아에게 그 비는 아무리 옅게 내리는 봄비라 할지라도 꽃목을 따는 '매우' 아픈 비다. 언어감각의 천재 나훈아가 '매우'라는 말에 끌린 까닭은, '매우 아픈 비'라는 어감의 센서가 작동했기 때문이다.

세간에 쓰여온 관용어가 아니라, 스스로 감수성을 부여한 시어(詩語)가 아닐까. 비록 장맛비는 아니더라도, 그에게도 매화에게도 이 비는 세차게 내린 비인 것은 틀림없다. 나훈아에게 그 비는 아무리 옅게 내리는 봄비라 할지라도 꽃목을 따는 '매우' 아픈 비다. 언어감각의 천재 나훈아가 '매우'라는 말에 끌린 까닭은, '매우 아픈 비'라는 어감의 센서가 작동했기 때문이다.

한편, 중국이나 일본에서 매우(梅雨)는 장맛비를 뜻하는 말로 쓰였다. 중국에서는 5월에 매실을 떨구는 바람이 부는데, 이것을 신풍(信風)이라 부르고 그때 내리는 비를 매우(梅雨)라고 불렀다. 장마철에 내리는 비다. 매우(霉雨)라고도 했는데, 이 때의 비를 맞으면 옷에 검은 곰팡이가 피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3월에 매우를 맞이하고 5월에 매우를 보낸다는 본초강목(명나라 이시진의 저술)의 구절도 있다.일본에서도 '매우(梅雨, つゆ, 쯔유)'라는 말이 같은 의미로 쓰인다. 장마에 들어가는 것을 '쯔유이리', 장마가 끝나는 것을 '쯔유아케'라고 한다.

다만 나훈아 노랫말의 매우(梅雨), 저 오래된 표현과는 상관없이 매실이 아닌 매화꽃을 떨구는 비로 이른 봄에 내리는 비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비에 젖은 매화꽃이 떨어지던 날'이라고, 스스로 그 뜻을 풀이하고 있다.

세간에 쓰여온 관용어가 아니라, 스스로 감수성을 부여한 시어(詩語)가 아닐까. 비록 장맛비는 아니더라도, 그에게도 매화에게도 이 비는 세차게 내린 비인 것은 틀림없다. 나훈아에게 그 비는 아무리 옅게 내리는 봄비라 할지라도 꽃목을 따는 '매우' 아픈 비다. 언어감각의 천재 나훈아가 '매우'라는 말에 끌린 까닭은, '매우 아픈 비'라는 어감의 센서가 작동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