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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영화

카게무샤

by 자한형 2024. 4.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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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게무샤(影無者) / 김민철

카게무샤(影無者)는 일본이 낳은 세계적인 거장(巨匠) ‘구로사와 아키라(黑澤明)’ 감독의 대표작 중 하나로 1980년 제33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은 최고의 작품에 수여되는 작품상이며 아카데미와 달리 제작자가 아니라 영화를 연출한 감독에게 주어진다. 카게무샤의 러닝타임은 180(국내판), 160(해외판) 152(DVD) 세 개의 버전이 있다. 칸 영화제에서 발표되고 동시에 일본에서 1980426, 미국에서 같은 해 1010일 상영되었고 한국에서는 일본 영화의 국내 상영이 허용된 후인 19981212일에 개봉되었다. 필자는 안타깝게도 개봉 당시 극장에서 보지 못하고 152분짜리로 발매된 DVD를 구매하여 겨우 감상하였다. 일본 영화에 대한 필자의 편견과 무지했던 결과였다.

카게무샤는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과 이데 마사토가 각본을 쓰고 나카다이 타츠야(다케다 신겐/카게무샤)12역의 주인공을 맡았다. 이밖에 코타 유이(다케다의 후계자 어린 다케마루/손자), 야마자키 츠토무(다케다 노부카도/신겐의 친동생), 류 다이스케(오다 노부나가), 하기와라 게니치(다케다 가쓰요리/신겐의 친아들), 네즈 진파치(소하치로 토치야/신겐의 가신), 오타키 히데치(마사카게 야마고/신겐의 가신), 모모이 카오리(신겐의 측실), 유이 마사유키(도쿠가와 이에야스), 마츠이 노리오(다다스쿠 사카이/ 신겐의 가신) 등이 조연급으로 출연했다.

구로사와 아키라(1910.03.23.~1998.09.06.)는 동양 출신 영화감독 중 최초로 세계적인 거장의 반열에 오른 사람이다.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마틴 스코세이지, 스티븐 스필버그, 조지 루카스 등 쟁쟁한 영화감독들이 스승으로 깍듯이 모셨던 영화인이 바로 구로사와 아키라감독이다. 구로사와 감독은 1990년 아카데미가 그가 영화에 공헌한 것을 기리기 위해 수여한 아카데미 평생공로상을 받았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은 1943년 흑백영화 스가타 산시로를 통해 감독으로 데뷔하였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이 거장 반열에 오른 것은 1950년에 만든 영화 라쇼몽(羅生門)’1951'베네치아 국제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하면서부터다. 라쇼몽에서 미후네 도시로가 주연 배우로 등장하여 이후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페르소나(Persona/영화에서는 감독의 분신이라는 뜻으로 사용됨)가 되었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은 1954년 러닝타임 207분에 달하는 ‘7인의 사무라이를 발표하여 세계영화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할리우드 거장 감독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존 스타제스1960, ‘7인의 사무라이를 리메이크하여 황야의 7이라는 서부영화를 만들 만큼 미국은 물론 유럽에서도 구로사와 아키라열풍이 대단했다. 황야의 7인은 당대의 명배우들이 총출동했다. 율 브리너, 스티브 맥퀸, 제임스 코번, 찰스 브론슨, 로버트 본, 홀스트 부흐홀츠, 일라이 월릭, 브래드 덱스터, 로젠다 몬테로스 등등 스타 군단이 대거 출연했다. 존 스타제스 감독은 O.K목장의 결투를 비롯하여 숱한 작품을 연출한 감독이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향력은 아시아 영화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쳤는데 '장이머우 감독''왕가위 감독'의 작품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파벌로 얼룩진 일본 영화계에서는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을 질시하는 사람이 많았고 엄청난 제작비에 비해 흥행성적이 좋지 않다는 비난이 무성했다.

영화감독들이 비상한 관심을 갖고 리메이크에 열심이었던 '카게무샤의 꿈'장면은 영화사의 새로운 시도로 평가되었고 감독의 영화 난(RAN)에서 더욱 다듬어졌다.

카게무샤는 제작하겠다는 일본의 영화사가 없어 중단될 위기에 처했다. 이때 조지 루카스’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와 같은 할리우드의 명감독들이 찾아와 제작비를 지원하겠으니 영화를 완성시켜 달라고 간청하여 카게무샤는 빛을 보게 되었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은 일본보다 국제영화계에서 더 많이 인정받은 영화감독이다. 카게무샤와 함께 감독의 후기작품 중 걸작으로 평가되는 (/RAN)은 프랑스 정부의 지원을 받아 제작되었다.

카게무샤는 일본의 16세기 전국시대(戰國時代)를 시대적 배경으로 하고 있다. 1572년 일본의 전국시대를 끝내기 위한 막바지 천하쟁투(天下爭鬪)에서 승리하기 위한 총력전이 벌어졌다. 쟁투의 주역은 오다 노부나가, 다케다 신겐, 우에스기 겐신이었고 이들의 3파전으로 전국시대는 종착역을 앞둔 상황으로 전개되었다. 황도(皇都)인 교토(京都)에 입성하여 천황의 재가를 받기 위한 각축전에서 가장 유리한 위치를 점하고 있던 영주(다이묘/大名)는 교토와 인접해 있던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였다. 오다 노부나가는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와 수직적 동맹관계를 맺고 교토 입성을 모색하고 있었다. 그러나 오다 노부나가는 배후에 도사리고 있는 다케다 신겐(武田信玄)의 견제로 번번이 뜻을 이루지 못했다. 특히 1568미카다하라 전투(三方原戰鬪)’에서 오다 노부나가와 동맹관계인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대패하자 다케다 신겐은 등 뒤의 비수와 같은 두려운 존재로 떠올랐다.

1572다케다 신겐은 교토로 진출하는 길목의 첫 번째 장애물인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굴복시키기 위해 공격하고 있었다. 성의 수맥을 끊고 총공격을 앞두고 있던 다케다 신겐의 군대가 돌연 포위를 풀고 철수한다.

영화는 총공격을 앞둔 다케다 신겐이 진중에서 피리를 부는 한밤중에 한 발의 총성이 울리자 피리 소리가 끊기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다케다 신겐이 도쿠가와 이에야스군의 저격병이 쏜 총에 중상을 입은 것이다.

장면이 전환되어 다케다 신겐이 친동생이면서 자신의 카게무샤 역할까지 맡아온 다케다 노부카도와 신겐을 빼다 박은 듯 닮은 사형을 앞둔 죄수를 앞에 두고 대화를 나눈다. 동생은 형에게 상습적인 도둑질로 붙잡혀 사형을 앞둔 놈인데 형님의 카게무샤로 쓰기 위해 살려두었다고 말한다. 도둑놈은 백성을 죽음으로 내몰고 아버지를 내쫓고도 모자라 나라까지 집어 삼키려 하는 영주님이야말로 큰 도둑놈이며, 자신은 푼돈을 훔친 하찮은 죄를 짓고도 사형수가 된 억울한 놈이라고 항변한다. 신겐은 도둑놈의 배포가 마음에 든다며 카게무샤로 쓰라고 허락한다.

도둑은 사형을 면하고 졸지에 카게무샤가 된다. 신겐이 저격병의 총탄에 맞아 중상을 입자 그는 아들 가쓰요리와 동생 노부카도, 핵심 가신들에게 만약 자신이 총상에서 회복되지 못하고 사망하면 3년 동안 죽음을 비밀에 부치라고 이른다.

본국에서 치료받기 위해 가마를 타고 몰래 영지로 향하던 다케다 신겐은 귀국 도중에 가마 안에서 사망한다. 노부카도는 사망을 확인한 의사와 시종을 죽여 신겐이 사망한 사실을 숨기고 카게무샤를 대리로 내세워 철군한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성이 함락되기 직전, 적군이 돌연 철군하자 신겐을 저격한 병사를 불러 당시의 상황을 상세하게 보고 받는다. 이에야스는 병사에게 총을 쏴 보라고 하여 사격 실력을 검증하는 치밀한 성격의 면모를 보여준다. 병사는 10여 마장(40여 미터)거리의 어린 소나무의 끝 줄기를 명중시킨다. 신겐을 쏜 것이 분명하다면 그는 중상을 입은 것이 틀림없다는 것을 입증하기에 충분한 총포술이었다.

이에야스는 철수하는 신겐이 카게무샤가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 정탐 병을 보내 재차 확인한다. 정탐 병들은 다케다 군을 살펴보고 신겐이 틀림없다고 보고한다.

오다 노부나가 진영에서 보낸 정탐 병도 다케다 신겐이 맞다는 것을 확인하면서 의사와 시종이 죽어 있는 것에는 의문을 품는다. 신겐에게 혼쭐이 난 이에야스는 신겐이 건재하다는 것에 무게를 싣는다. 그러면서도 돌연 철군하는 상황에 대해서는 의혹을 거두지 않는다.

카게무샤가 된 도둑은 제 버릇 남 못 준다고 도둑질을 하다가 붙잡힌다. 다케다 진영의 가신들은 도둑을 카게무샤로 쓸 수 없다고 판단하고 신겐을 거대한 항아리에 넣어 그의 유언대로 가이국영지에 있는 일본에서 가장 큰 호수인 비와호(670)에 수중장례(水中葬禮)를 치른다. 다케다 신겐의 장례식을 마친 날 밤, 도둑의 꿈에 다케다 신겐이 나타난다. "비와호 수면위로 항아리 관이 떠올라 살아있는 신겐이 도둑에게 걸어오는 꿈 장면을 무지개 색깔의 원색으로 표현한"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연출이 무척이나 독특하다. 카게무샤가 꿈에서 본 광경은 이후 많은 영화감독에게 영감을 주었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은 영화 카게무샤에서 강렬한 원색을 자신의 영화에 사용하는 실험적인 시도를 했다. 카게무샤부터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는 과감할 정도로 컬러풀(colorful)하게 변화한다. 컬러풀한 영상은 감독이 윌리엄 세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가장 처절한 리어왕을 각색하여 연출한 난(/RAN)에서 완성된다.

꿈에서 깨어난 도둑은 노부카도에게 자신을 다시 카게무샤로 써달라고 간청한다. 노부카도와 가신들은 도둑이 다시 한번 실수하면 즉각 참형에 처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그를 카게무샤로 정식 채용한다. 그리고 비와호에 수장시킨 항아리는 용왕에게 봉헌주(奉獻酒)를 바친 것이라는 소문을 퍼트린다.

도둑은 카게무샤라는 사실이 들통나지 않도록 훈련을 받고 정식으로 데뷔한다. 다케다 신겐의 후계자로 지정된 손자 다케마루는 카게무샤를 보고 단번에 할아버지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도둑은 다케마루에게 투구를 씌워주고 자신의 무릎에 앉히는 순발력을 발휘하여 위기 상황을 슬기롭게 넘긴다.

다음 관문은 신겐의 측실들을 속여넘기는 것이었다. 측실들은 모습이 변했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도둑은 전쟁터에 오래 있으면 얼굴이 변한다고 위기를 수습해보려 하지만 잘 통하지 않자 사실은 나는 영주가 아니라 고용된 카게무샤라고 진실을 밝힌다. 측실들은 신겐이 농담하는 줄 알고 배꼽이 빠져라웃는다.

카게무샤가 된 도둑은 주어진 역할을 잘 수행하고 다케마루와 놀아주는 것으로 소일하면서 정체가 들통나지 않도록 측실들의 동침 요구는 의사가 금했다는 핑계를 대서 피한다.

다케다 신겐이 죽은 지 3년이 되자 다케다 가쓰요리는 가신들이 허수아비 카게무샤를 내세워 정치를 독점하는 것을 불만스러워한다. 이때 다케다 신겐이 죽은 것으로 판단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신겐의 죽음의 진위를 확인하기 위해 국지전을 도발한다.

회의 석상에서 가쓰요리는 카게무샤에게 아버님의 고견을 듣고 싶다고 도발한다. 가신들은 순간 얼어붙듯 긴장한다. 카게무샤는 자신을 산()’이라 칭했던 신겐의 말을 떠올려 산은 움직이지 않는다면서 대응하지 말라고 말한다.

가쓰요리는 독자적으로 출전(出戰)하고 가신들은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카게무샤를 내세워 다케다 신겐이 직접 출병한 것으로 꾸며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교란시킨다. 결국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물러나고 국지전은 탐색전으로 끝난다.

가쓰요리의 불만은 임계점에 이른다. 이러한 와중에 대형 사고가 터진다. 다케다 신겐의 애마(愛馬)는 성질이 난폭하여 신겐이 아니면 아무도 탈 수 없는데, 다케마루가 할아버지가 말을 타는 모습이 보고 싶다고 조르자 카게무샤가 말을 타려다 낙마하는 사고가 발생한다. 측실들은 놀라 카게무샤의 상처를 살피다 우에스기 겐신과 벌인 전투에서 입은 등에 크게 나 있는 자상(刺傷)에 의한 상처가 없자 그의 정체가 들통난다.

오다 노부나가 역할을 맡은 배우, 류 다이스케의 모습이 역사에 기록된 오다 노부나가의 모습과 닮았다. 출연 장면은 적지만 폭발적인 존재감을 보여준다.

노부나가-이에야스와 가쓰요리가 격돌한 비와호를 배경으로 벌어진 나가시노 전투에 출병하는 다케다 군대...감독은 원색의 깃발로 극적 효과를 거두었다.

가신들은 할 수 없이 가쓰요리를 영주로 옹립하고 카게무샤에게 계약이 끝났음을 통보하고 위로금을 주어 내보낸다. 카게무샤에서 원래의 신분으로 돌아간 도둑은 다케마루를 한번만 보게 해달라고 간청하지만 병사들은 가짜에게 속은 것이 분하여 돌팔매질로 그를 쫓아낸다.

다케다 신겐의 정식 장례식이 치러지는 날 도둑은 다케마루를 보고 신겐의 명복을 빌기 위해 식장에 나타나 통곡한다.

오다 노부나가는 3년 동안이나 카게무샤를 내세워 자신이 살아 있는 것으로 위장했던 신겐에게 보기 좋게 속은 것에 실소(失笑)하며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함께 총공격을 준비한다. 이러한 와중에 방어전을 선택해야 한다는 가신들의 의견을 물리치고 가쓰요리가 선제공격을 밀어붙이자, 신겐이 심혈을 기울여 육성한 ()()()()이 주축이 된 다케다 가문의 군대는 정예기병을 앞세워 공격한다.

나가시노 전투로 역사에 기록된 전투에서 오다 노부나가는 방책을 세우고 철포(조총)부대를 3열로 배치하여 말을 쏴서 쓰러트리는 전술로 가쓰요리 군을 궤멸시킨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은 나가시노 전투장면을 심혈을 기울여 연출했는데 엑스트라로 동원된 다케다 가쓰요리 군대의 모습이 잘 훈련된 병사와 흡사하다. 말들이 쓰러져 죽어가는 모습도 리얼하게 연출하여 카게무샤의 나가시노 전투 씬은 영화사에 한 획을 그은 것으로 평가되었고 역사영화에서 기마전술의 교범이 되었다.

카게무샤 역할을 했던 도둑은 다케다 가쓰요리의 군대가 전멸하자 홀로 적진에 돌진하여 중상을 입고 비와호에 쓰러져 수장된다. 그림자는 그렇게 죽음으로써 실체(實體)를 찾아간 것이다. 카게무샤의 죽음과 함께 영화의 막이 내린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은 카게무샤를 발표하기 직전에는 일본 영화계에서 찬밥신세를 면치 못했다. 이에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조지 루카스20세기 폭스사에 제작비 지원을 요청했고 폭스사가 성공이 불투명하다고 난색을 표하자 앞으로 다른 영화사와 영화를 만들겠다고 협박했다.

두 거장 감독의 협박에 스티븐 스필버그, 마틴 스코세이지까지 가담하자 20세기 폭스사는 제작비 600만 달러를 영화의 성공 여부에 관계없이 전액 지원하기로 하였다.

카게무샤는 월드 박스오피스 11,000,000달러의 수익을 올리고 일본에서도 흥행에 성공했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은 영화의 흥행을 초월하여 영화사에 거대한 족적을 남겼다. 그에게 감명받은 이른바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문하생을 자처하는 할리우드와 유럽의 젊은 감독들은 그의 영화를 발전적으로 해석하여 영화를 더욱 발전시켰다. 중국과 홍콩의 감독들...한국의 김한민 감독도 최종병기 활과 명량에서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문하생 중 한명임을 숨기지 않았다.

RAN(/)은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이 카게무샤의 두 배에 달하는 1100만 달러의 제작비를 프랑스로부터 지원받아 제작했다. 흥행성적은 1900만 달러를 기록하여 썩 좋지 않았으나 영화의 완성도 면에서는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 영화 인생의 정점을 찍은 걸작으로 평가된다. 1985년 발표된 영화 RAN1886년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을 받을 것이 유력했으나 일본 영화협회의 옹졸하고도 노골적인 비협조로 출품조차 하지 못했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라쇼몽, 요짐보, 7인의 사무라이. 거미의 성, 카게무샤, (RAN/)은 영화팬이라면 반드시 감상해야 하는 영화의 교과서이자 주옥같은 작품들이다. 기술한 영화는 죽기 전에 봐야 할 영화 1001과 외국어 영화 100()에 모두 포함된 걸작 영화들이다. 독자들에게 구로사와 아키라감독의 작품세계에 입문해보기를 강력하게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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