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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수필

122. 황포탄의 추석

by 자한형 2021. 12.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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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포탄의 추석 피천득
월병(月餠)과노주(老酒), 호금(胡琴)을 배에 싣고 황포강(黃浦江) 달놀이를 떠난 그룹도 있고, 파크 호텔이나 일품향(一品香)에서 중추절(仲秋節) 파티를 연 학생들도 있었다. 도무장(跳舞場)으로몰려간 패도 있었다. 텅 빈 식당에서 저녁을먹고 방에 돌아와 책을 읽으려 하였으나, 마음이가라앉지 않았다. 어디를 가겠다는 계획도없이 버스를 탄 것은 밤 아홉 시가 지나서였다. 가든 브리지 앞에서 내려서는 영화 구경이라도갈까 하다가 황포탄 공원(黃浦灘公園)으로발을 옮겼다.
*황포탄공원에 가게 된 경위
빈벤치가 별로 없었으나 공원은 고요하였다. 명절이라서 그런지 중국 사람들은 눈에 뜨이지않았다. 이 밤뿐 아니라 이 공원에 많이 오는사람들은 유태인, 백계(白系) 노서아 사람, 서반아 사람, 인도인 들이다. 실직자, 망명객 같은 대개가 불우한 사람들이다. 갑갑한 정자간(亭子間)에서 나온 사람들이다.
*황포탄공원의 정경
누런황포 강물도 달빛을 받아 서울 한강(漢江) 같다. 선창(船窓)마다 찬란하게 불을 켜고입항하는 화륜선(火輪船)들이 있다. 문명을싣고 오는 귀한 사절과도 같다. '브라스밴드'를 연주하며 출항하는 호화선도 있다. 저 배가 고국에서 오는 배가 아닌가, 저 배는그리로 가는 배가 아닌가 하는 사람도 있을것이다. 같은 달을 쳐다보면서 그들은 바이칼호반으로, 갠지즈 강변으로, 마드리드 거리에제각기 흩어져서 기억을 밟고 있을지도 모른다. 친구와 작별하던 가을 짙은 카페, 달밤을 달리던마차, 목숨을 걸고 몰래 넘던 국경. 그리고나 같은 사람이 또 하나 있었다면 영창에비친 소나무 그림자를 회상하였을 것이다. 과거는 언제나 행복이요, 고향은 어디나낙원이다. 해관(海關) 시계가 자정을알려도 벤치에서 일어나려는 사람은 없었다.
*고향에대한 향수

# 월병(月餠) : 달떡, 달 모양으로 둥글게 만든흰 떡
# 노주(老酒): 찹쌀이나 조 또는 기장 따위를 원료로 하여만든 중국의 양조주
# 호금(胡琴): 비파(琵琶). 현악기로 몸통에는 짐승 가죽이나뱀껍질을 입혔다.
# 월병(月餠)과 노주(老酒), 호금(胡琴) : 떡과 술과 악기르 말하는 것으로 추석의 들뜬 분위기를 말해줌.
# 일품향(一品香): 맛 좋은 음식을 파는 곳
# 도무장(跳舞場): 무도장(舞蹈場). 여러 사람이 모여서 춤추는곳
# 텅 빈 식당에서 - 않았다. : 고향을 떠난 객지면서같은 추석 명절을 쇠는 국가에서 추석을 맞이하여흥청거리는 사람들과는 대조적으로 외로운자신의 심정을 떨치지 못한다.
# 노서아 : 러시아의 한자음 표기
# 서반아 : 스페인의 한자음 표기
# 누런 황포 - 한강(漢江) 같다. : 낮에 보면이국적 풍경에 불과한 누런 황포 강물도 어둠속의 달빛에 반짝일 때는 고국의 한강과 다를바 없이 보여 향수에 젖게 한다.
# 화륜선 : 기선(汽船)
# 브라스밴드(brass band) : 금관 악기를 주체로 하고드럼과 작은 북을 곁들여서 편성한 작은 악단
# 같은 달을 - 있을지도 모른다. : 시대적 여건이나개인적 사정에 의해 고향을 떠나 세계의 여러곳에 산재해 있을 나와 같은 처지의 사람들은중추절인 오늘 밤은 보름달을 쳐다보면서 고향에대한 그리움에 젖을 것이다.
# 영창 : ①(映窓) 방을 밝게 하기 위하여 방과 마루사이에 내는 두 쪽으로 된 미닫이. ②(影窓) 유리를 끼운 창. 유리창
# 과거는 언제나 - 낙원이다. : 향수는 생애가운데 가장 안락했던 어머니의 품으로 돌아가고자하는 충동이다. 이렇듯 과거를 추억하고 고향을그리워하는 그 순간은 언제나 행복하고 즐거운시간이다. 이 글의 주제가 함축되어 있는 구절임.
# 해관(海關): 항구에 설치한 관문(關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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