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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28

나도향 (1902~1926) 일제강점기 「벙어리 삼룡이」, 「뽕」, 「물레방아」 등을 저술한 소설가.개설서울 출생. 본명은 나경손(羅慶孫), 필명은 빈(彬)이며, 도향은 호이다. 의사 나성연(羅聖淵)의 맏아들이다.생애 및 활동사항1917년 공옥학교(攻玉學校)를 거쳐, 1919년 배재고등보통학교(培材高等普通學校)를 졸업하였다. 같은 해 경성의학전문학교(京城醫學專門學校)에 입학하였으나 문학에 뜻을 두어 할아버지 몰래 일본으로 갔다. 그러나 학비가 송달되지 않아서 귀국하였고, 1920년 경상북도 안동에서 보통학교 교사로 근무하였다.1922년 현진건(玄鎭健)·홍사용(洪思容)·이상화(李相和)·박종화(朴鍾和)·박영희(朴英熙) 등과 함께 『백조(白潮)』 동인으로 참여하여 창간호에 「젊은이의 시절」을 발표하면서 작가 생활을 .. 2021. 10. 11.
김유정 (1908~1937) 일제강점기 『동백꽃』, 「봄봄」, 「따라지」 등을 저술한 소설가.개설본관은 청풍(淸風). 강원도 춘천 출신. 아버지 김춘식(金春植)과 어머니 청송심씨의 8남매 중 막내이다.생애 및 활동사항갑부 집안이었으나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고향을 떠나 12세 때 서울 재동공립보통학교에 입학, 1929년에 휘문고등보통학교를 마치고 이듬해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진학했으나 중퇴하였다.1932년에는 고향 실레마을에 금병의숙(錦屛義塾)을 세워 문맹퇴치운동을 벌이기도 하고, 또 한때는 금광에 손을 대기도 하였다.1935년 단편소설 「소낙비」가 『조선일보』에, 「노다지」가 『중앙일보』의 신춘문예에 각각 당선되어 문단에 올랐다. 그뒤 후기 구인회(九人會)의 일원으로 김문집(金文輯)·이상(李箱) 등과 교분을 가지.. 2021. 10. 11.
김동인 (1900~1951) 일제강점기 「배따라기」·「감자」·「발가락이 닮았다」 등을 저술한 소설가.친일반민족행위자.개설1900년 평안남도 평양에서 출생했다. 본관은 전주(全州), 호는 금동(琴童)·춘사(春士)이다. 필명으로는 금동인(琴童人), 김시어딤, 동 문인(東 文仁) 등을 썼다. 평양교회 초대 장로였던 아버지 김대윤(金大潤)과 어머니 옥씨(玉氏) 사이의 3남 1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생애 및 활동사항1912년 기독교 학교인 평양 숭덕소학교(崇德小學校)를 졸업했고, 같은 해 숭실중학교(崇實中學校)에 입학했으나 1913년 중퇴했다. 1914년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학원[東京學院] 중학부에 입학했으나, 학교가 폐쇄되어 1915년 메이지학원[明治學院] 중학부 2학년에 편입했다. 1917년 부친상으로 잠시 귀국했.. 2021. 10. 11.
이광수 (1892~1950) 일제강점기 「무정」「소년의 비애」, 「방황」 등을 저술한 소설가.언론인, 친일반민족행위자.개설본관은 전주(全州), 호는 춘원(春園)이다. 아명은 이보경(李寶鏡)이며, 필명으로는 장백산인(長白山人)·고주(孤舟)·외배·올보리·노아자·닷뫼·당백·경서학인(京西學人) 등을 썼다.생애 및 활동사항1892년 2월 1일(음력) 평안북도 정주(定州) 출생으로, 1899년 향리의 서당에서 한학을 수학하였다. 1902년 8월 콜레라로 부모를 여의고, 고아가 되어 누이동생 둘과 함께 외가와 재당숙 집에서 자랐다. 1903년 동학(東學)에 입도하여 천도교의 박찬명(朴贊明) 대령(大領)의 집에 기숙하며 서기 일을 맡았다.1905년 8월 일진회(一進會)의 유학생으로 선발되어 일본으로 건너가 1906년 3월 다.. 2021. 10.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