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수필가 작품9 귀뚜라미 전설 유혜자 귀뚜라미는 시인보다 먼저 때묻지 않은 순수한 언어로 가을의 시를 읊조린다. 새벽에 뜰에 나서면 불꺼진 밤에 시를 읊다 떠난 귀뚜라미의 흔적처럼 말갛게 맺힌 이슬방울. 어딘가 숨어서 귀뚜라미는 읊조렸던 시에 대한 평가를 숨죽이고 지켜볼 것이다. 때로는 청명한 하늘을 손으로 떠받쳐 들고 싶지만, 지난 것은 가냘픈 노래밖에 없어서 창호지 사이에서 읊조리다가 지창에 어린 제 그림자에 놀랐으리라. 지난 가을에 겪었던 가슴속의 사랑, 기쁨, 슬픈 비밀까지 도란도란 이야기할 때는 창밖에서 은밀하게 귀 기울리다가 구슬픈 넋두리에는 물기 머금은 소리로 처량하게 울어댄다. 어느덧 첫 수필집을 퍼낸지 23년이나 됐다. 귀뚜라미 소리가 울음이냐 노래냐. 새가 우는 것인가 노래하는 것인가의 정답을 논하는 것만큼이나 글쓰.. 2021. 8. 18. 이전 1 2 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