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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한국사, 세계사 , 기타 전쟁사, 문화사, ) 사건, 전투 , 등18

외국인이 놀란 조선시대 결혼 풍속 외국인이 놀란 조선시대 결혼 풍속/ 박차영 기자 얼굴을 보지 못하고 결혼한 후 일어난 사연들…구한말 외국인들이 소개 구한말에 조선을 방문한 외국인들은 한국의 결혼 풍속에 많이 놀랐다. 연애결혼은 거의 없고 대부분 중매결혼이었다. 결혼은 부모들이 결정했고, 집안, 재산 등이 고려되었다. 결혼하기 전까지도 신랑·신부는 상대방의 얼굴도 보지 못했다. 상대방을 보지 못한채 결혼했다가 낭패를 겪은 경우가 허다했던 것 같다. 프랑스의 교회사가인 샤를 달레(Claude Charles Dallet)는 1874년에 조선에서 몰래 선교 활동을 하던 성직자들이 전달한 정보를 기초로 ‘한국교회사’(Histoire de L'Eglise de Corée])를 저술했다. 이어 조선을 방문한 미국인 윌리엄 그리피스(William E.. 2023. 6. 10.
메디치가 9(코지모 3세) 메디치가⑨…몰락의 기로에 접어든 코지모 3세/ 김현민 기자 종교가 사회 지배, 유태교 탄압…후손 단절되면서 사후에 곧 메디치가 붕괴 메디치가의 제6대 투스카니 대공작은 코시모 3세(Cosimo III de' Medici, 1642~ 1723)다. 그는 1670년 부친 페르디난도 2세(Ferdinando II)가 죽고 대공작에 오를 때 나이가 38세였고, 1723년 81세로 사망할 때까지 53년간 재위했다. 7대에 걸친 메디치가 투스카니 대공 중 가장 장수했고, 가장 재임기간이 길었다. 하지만 그는 공작령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종교가 정치 위에 지배하게 했고, 이교도인 유태인들을 탄압했다. 재정이 고갈되는 상황에서 과도한 세금을 물렸고, 아들과 딸은 낳았지만 후손이 끊겨 대를 잇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 2023. 6. 10.
메디치가 8 (페르디난도 2세) 메디치가⑧…갈릴레이 보호한 페르디난도 2세/ 김현민 기자 수많은 과학자 후원하고 양성…가족관리에 실패, 재정 악화에 직면 코지모 1세가 죽고 1611년에 투스카니 대공국의 다섯 번째 군주가 된 인물은 그의 장남 페르디난도 2세(Ferdinando II de' Medici)다. 페르디난도 2세가 대공이 되었을 때, 서양식 나이로 열 살이었다. 그는 1670년 죽을 때까지 49년간 투스카니를 지배했다. 그가 50년 가까이 대공으로 재임할 때 투스카니와 그 수도 피렌체의 경제는 서서히 가라앉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과학에 열정을 가지고 갈릴레오 갈릴레이(Galileo Galilei)를 보호하며 세계 천문학사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페르디난도는 성년이 될 때까지 국정을 할머니 크리스티나(Christi.. 2023. 6. 10.
메디치가7(문란한 투스카니 대공 후계자들) 메디치가⑦…문란한 투스카니 대공 후계자들/ 김현민 기자 대서양 패권 형성되며 피렌체 역할 축소…대공 후계자들의 도덕적 해이 1569년 코지모 1세가 대공작이 된 이래 메디치 가문은 1737년까지 7대에 걸쳐 168년간 투스카니 대공작(grand dukes of Tuscany)을 이어간다. 이 시기는 세계 해양의 패권이 전환되는 때였다. 지중해의 역할이 축소되고 본격적으로 대서양의 시대가 열린다. 지중해 상권을 중심으로 번성했던 이탈리아 반도의 도시국가들이 위축되고, 그 중심의 하나였던 투스카니와 그 중심부인 피렌체도 쇠퇴의 길로 들어선다. 코지모 1세가 부흥시킨 메디치가도 서서히 무너져 간다. 경제기반이 약해지면서 세수가 부족해지고, 그런 가운데 귀족의 후계자들은 사치와 방탕에 빠져 가문은 몰락의 길로 .. 2023. 6.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