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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한국사, 세계사 , 기타 전쟁사, 문화사, ) 사건, 전투 , 등18

메디치가6(코지모 1세) 메디치家⑥…투스카니 대공 시대, 코지모 1세/ 김현민 기자 새로운 가계도 형성…합스부르크 카를 5세와 동맹 맺어 영토 확장 1537년 1월 메디치 가문의 수장이 된 코지모 1세(Cosimo I de' Medici, 1519~1574)는 부계로 가문을 계승한 것이 아니라, 모계 혈통으로 가문과 피렌체를 물려받았다. 그에게 메디치가는 외가였다. 그의 외할머니 루크레지아(Lucrezia de' Medici)는 ‘위대한 로렌조’(Lorenzo de' Medici)의 장녀로 이탈리아 금융가문의 자코포 살비아티(Jacopo Salviati)에게 시집을 가 딸 마리아 살비아티(Maria Salviati)를 낳았다. 마리아는 피렌체 출신 용병대장 집안의 지오반니 달레 반데 네레(Giovanni dalle Bande N.. 2023. 6. 10.
메디치가5 (두교황) 메디치家⑤…두 교황, 레오 10세와 클레멘스 7세/ 김현민 기자 가문의 이익에 봉사한 교황들…종교개혁과 전쟁 소용돌이에 휘말려 메디치 가문이 배출한 교황 레오 10세(Leo X, 재위: 1513–1521)와 클레멘스 7세Clemens VII, 1523–1534)는 중간에 네덜란드 출신 하드리아누스 6세(Hadrianus VI)가 1년여 끼어들어 재위한 것을 재외하면 21년간 로마 교황청을 좌지우지하게 된다. 이 기간에 교회는 부패했고, 독일에서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의 종교개혁이 일어나 유럽에 종교를 앞세운 일대 혼전이 벌어진다. 두 메디치 교황은 가문의 힘을 활용해 이탈리아의 패권을 쥐려 시도했다. 한때는 합스부르크와 손잡고, 또다른 때엔 프랑스와 제휴해 전쟁을 벌이며 성공과 실패를 반.. 2023. 6. 10.
메디치가 4(지오반니) 메디치家④…피에로의 추방, 지오반니의 귀환/ 김현민 기자 비겁한 피에로, 피렌체서 추방…동생 지오반니, 교황군 이끌고 18년만에 귀환 ‘위대한 로렌조’의 장남 피에로(Piero di Lorenzo de' Medici, 1472~1503)는 ‘불운의 피에로’(Piero the Unfortunate)라는 별명이 붙어 있다. 그는 아버지 로렌조가 1492년 죽은뒤 스무살의 나이에 가문을 이어받았으나, 피렌체에서 추방당해 해외를 떠돌다가 31세의 젊은 나이에 사망했다. 그는 부잣집 아들들이 대체로 그러하듯이 버릇이 없고 성질이 급했다. 판단력도 부족했고, 때론 겁이 많았다. 난폭하고 오만불손하다는 평도 있다. 사촌형제들과 반목하는 바람에 가문의 단합을 깨뜨렸고 은행업무는 아예 가문의 어른에게 맡겨 파산하도록 방.. 2023. 6. 10.
메디치가 3 (로렌조) 메디치家③…위대한 로렌조, 위기에 빠진 은행업/ 김현민 기자 파찌가 음모에 교황청 은행 지위 잃어…미켈란젤로, 다빈치 등 예술가 지원 로렌조 데 메디치(Lorenzo de' Medici, 1449~1492)는 메디치은행의 창업자 코지모(Cosimo)의 손자이자, 피에로(Piero)의 장남으로, 아버지가 지병으로 죽자 1469년 20세의 젊은 나이에 가문을 이어받았다. 그는 ‘위대한 로렌조’(Lorenzo il Magnifico)라는 칭호에 걸맞게 메디치가문의 전성기를 구가했고, 그가 피렌체를 통치할 때 이탈리아 르네상스가 절정을 이뤘다. 그는 부와 권력을 쥐고 있던 메디치가의 장남으로 호화롭게 성장했다. 영특하고 강인하다는 평을 받았고 활기가 있는 젊은이였다고 한다. 천성적으로 쾌활하고 당시 스포츠 경기.. 2023. 6.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