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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2021신춘 문예 단편소설 , 수필, 시 등 당선작137

119. 가침박달 가침박달/ 김홍은 젊은 여승의 얼굴에 살며시 짓던 미소를 다시 보고 싶어 오늘도 화장사로 향한다. 손끝만 닿아도 금세 터질 것만 같은 청순하고 깨끗한 얼굴. 색깔로 비유한다면 조금치도 때 묻지 않은 순백색이다. 색은 광선에 의해 빛이 물체에 닿을 때 반사 흡수의 작용으로 우리 눈에 지각되어 남은 색이 결정된다고 한다. 색깔은 자연에서는 백색에서 시작되어 흑색으로 진행되다가 시들고 만다. 색의 시초가 백색이듯 여승의 미소는 꼭 그러했다. 꽃봉오리가 방울방울 피어내려는 모습만큼이나 평화롭고도 자연스럽다. 어쩌면 부처님이 짓고 있는 미소를 가만히 훔쳐 본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었다. 인간은 수많은 세월을 보낸 후에야 웃어 보일 수 있는 그 아름다운 미소이리라. 세파에 물들지 않은 천진난만한 어린이가 방긋.. 2022. 1. 31.
118. 이게 낙 아인기요 “이게 낙 아인기요”/ 김열규 조금은 이른 오후, 나는 뒷산을 향해서 오르고 있었다. 야트막한 비탈에 펼쳐진 밭 새로 난 오솔길은 눈부신 햇살과 어울려서는 바람이 상쾌했다. 하지만 글인가 뭔가를 쓰다가 지쳐 있는 머릿속은 계속 찌푸드드했다. 책상 앞에서 풀리지 않던 생각이 내처 꼬이고 들었다. 발걸음도 절룩대듯 가볍지 못했다. 글의 제목은 그런대로 잡혔지만, 내용을 두고는 갈팡질팡하고 있던 참이라, 머릿속에서 비틀대기만 하는 줄거리가 발걸음에 족쇄를 채우고 들었다. 말이 산책이지 고행이었다. 땅이 꺼지라고 한숨이 나도 모르게 토해지기도 했다. 그렇다고 발걸음을 돌리기도 뭣했다. 뒷산에 올라서 우거진 솔밭 새를 거니는 것은 온전히 습관이 되고 버릇이 되어 있었기에 그 타성에 밀려서라도 오던 길로 돌아설 수.. 2022. 1. 31.
117. 시대고와 그 희생 시대고와 그 희생 오상순 우리 조선은 황량한 폐허의 조선이오, 우리 시대는 비통한 번민의 시대이다. 이 말은 우리 청년의 심장을 찌르는 듯한 아픈 소리다. 그러나 나는 이말을 아니할 수 없다. 엄연한 사실이기 때문에, 소름이 끼치는 무서운 소리나, 이것을 의심할 수 없고 부정할 수도 없다. 이 폐허 속에는 우리들의 내적(內的), 외적(外的), 심적(心的), 물적(物的)의 모든 부족, 결핍, 결함, 공허, 불평, 불만, 울분, 한숨, 걱정, 근심, 슬픔, 아픔, 눈물, 멸망과 사(死)의 제악(諸惡)이 쌓여 있다. 이 폐허 위에 설 때 암흑과 사망(死亡)은 그 흉악한 입을 크게 벌리고 곧 우리를 삼켜버릴 듯한 삼이 있다. 이 세상은 고해(苦海)와 같다고 말한다. 사실에 가까운 것 같다. 흔히 우리 인류 생활.. 2022. 1. 31.
116. 석남꽃 석남꽃 - 서정주 머리에 석남(石南)꽃을 꽂고 네가 죽으면 머리에 석남꽃을 꽂고 나도 죽어서 나 죽는 바람에 네가 놀래 깨어나면 너 깨는 서슬에 나도 깨어나서 한 서른 해만 더 살아 볼꺼나 죽어서도 살아서 머리에 석남꽃을 꽂고 서른 해만 더 한번 살아 볼꺼나 내 글 써놓은 공책을 뒤적거려 보니 '머리에 석남꽃을 꽂고' 라 제목한 이 시(詩)는 1969년 7월 15일 새벽 한 시에 쓴 것으로 되어 있으니, 이건 내가 지금 살고 있는 관악산 밑으로 이사 오기 바로 한 해 전 일인데, 그 때의 공덕동 집에도 나무와 풀섶이 꽤나 짙어 모기가 많아서 그 때문에 짧은 여름밤을, 열어 놓은 창 사이로 날아드는 모기 떼와 싸움깨나 하고 앉았다가 쓴 것인 듯하다. 그렇기는 하지만 이것은 내 육체의 꼴이지, 마음만은 그래.. 2022. 1.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