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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단편소설3

41. 하늘을 바라보는 여인

by 자한형 2022. 5.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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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바라보는 여인(女人)   -전영택

 

1

 

여름밤이 채 밝기 전에 잠을 깬 감네는 잠든 시어머니가 깰까 염려해서 조심조심 일어나서 가만히 밖으로 나왔다. 나오자마자 감네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았다. 아침에 일어나면 바삐 나와서 하늘을 바라보는 것이 버릇이 되어버렸지마는, 오늘은 더욱 안타까운 심정으로, 그리고 꼭 믿고 바라는 마음으로 눈을 감다시피 하고 나와서 두손을 모아 합장을 하고,

오늘이야? 비가…… 비가……」

속삭이면서 온 정력을 두 눈에 모아 이윽고 하늘을 바라본 감네의 입술은 금방 다물어지고 합장했던 두 손이 꼭 쥐어지면서 바르르 떨리고, 몸까지 떨리는 듯하였다. 빛 없고 핼쑥한 감네 자신의 얼굴 같은 새벽달이 한편짝에 원망스럽게 걸려 있고. 또 한쪽에는 맥없이 깜박거리는 샛별 한 개가 얼른 눈에 뜨일 분이요, 검은 구름이라고는 아무리 사방을 둘러보아야 손바닥만한 것도 볼 수 없다.

하느님두 너무 하신다…… 이 인간이 죄가 많아서……」

눈물과 한숨이 한꺼번에 쏟아지듯 나온다. 금시에 얼굴이 컴컴해지고 쳐들었던 고개가 숙여진다,

<오늘도 비오기는 글렀다. >

하고 생각한 감네는 돌로 깎아 세운 듯이 꼼짝도 아니하고 서 있다. 고개를 숙이고 합장을 하고……

 

2

 

감네 자신과 같이 외로운 신세인 늙은 시어머니를 모시고 젊은 여자의 몸으로 혼자 농사를 지어가면서 살아가기만도 어려운데, 게다가 금년은 봄내 몹시 가물어서 잔뜩 믿었던 보리는 타죽고 감자 한 알갱이도 거두지 못하고 옥수수 구경도 못하고 호박 오이나 무우 배추 같은 푸성귀조차 구경할 수가 없으니, 얼마나 곤궁하고 얼마나 답답하랴. 비록 어린것은 없을망정 어린아이 마찬가지로 자시는 것밖에 아무 생각이 없이 가끔 망령을 부리는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아가기가 여간 어렵지 아니하였다. 늙은이는 아직 끼니를 빼지 않고 죽이라도 끓여서 대접하지마는, 감네 자신은 먹는 듯 굶는 듯 지내는 형편이다.

이 가뭄은 이십 년 이래 처음 되는 가뭄이라고 금년에는 모두 굶어죽는 사람이 많으리라고 걱정이다. 동리마다 우물까지 말라서 물난리가 나서 야단이요, 인심이 아주 흥흥해졌다.

감네는 소년과부로 사 년을 지내는 동안 거치른 세상에서 마치 모진 풍랑에 밀리는 일엽편주처럼 외롭고 시달리는 감네는 살아가기도 어렵지마는 마음에 받는 괴롬도 한두 번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웃마을 거리에 제 여편네를 때려죽이고 칠년 징역을 살고 나왔다는 여관주인이 가끔 매파를 보내는 것은 아주 질색이었다. 하루는 시어머니가 중얼거리기를,

글쎄 그녀석이 접때 날더러 하는 수작이 <제가 아주머니 아들이 될 터이니 며느님하고 내외가 되게 해주십쇼. 그래도 제가 괜치 않은 사람이외다, 괘니시리 모르구들 그러지. 그리고 여관이나 잘하면 우리 몇 식구 먹고살긴 걱정 없구요. 마침 앓고 누웠던 저희 집 늙은이는 가실 데로 갔으니까, 아주머니를 내 어머니로 잘 모실 터이니 염려 마시고, 노인이 이렇게 굶고만 계셔야 되겠어요. 어서 그러시우> 하면서 부덕부덕 졸르더구나.

감네는 이 말을 듣고, 분이 머리털 끝까지 치밀어서 어쩔 줄을 몰랐다. 게다가 혹 장에 가는 길에서 만나면 눈치가 다르고 추근추근 말을 붙이던 생각을 하면 더욱 분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다음에 감네의 마음을 괴롭게 한 것은 한동네 사는 용돌이 일이다. 용돌이는 죽은 남편의 동무 중의 한 사람이다. 역시 늙은 어머니를 모시고 누이동생하고 세 식구 살아가는 가난한 총각이다.

마음이 곧고 부지런하고 일 잘하고 말이 없고 별로 나무랄 데가 없는 사람이다. 남편의 친구인 것뿐 아니라, 감네는 어려서부터 잘 알던 사람이었다. 동무라면 동무이었다. 남편이 살았을 때에 가끔 놀러오면 아무 말 없이 앉아 있거나, 그렇지 않으면 남편이 보는 책을 들여다보다가 감자나 옥수수 같은 것을 같이 먹고 놀다가 빙긋이 웃으면서 말없이 가곤 하였다.

용돌이는 남편이 죽고 초상을 치를 때에는 정성껏 일을 보아주었으나. 그 뒤엔 일체 오지 아니하였다. 그런데 삼년상을 치르고 나서는 가끔 와서 일도 도와주며 고맙게 하는 것을 감 네는 간곡히 거절을 하였다. 그래도 용돌이는 몰래 나무도 갖다주고, 혹은 감네네 밭에 거름도 내주었다. 고맙긴 고마우면서 감네는 썩 불쾌히 생각하는 차에 종내 용돌이 어머니가 조용히 찾아와서 혼담을 꺼냈다, 둘이 결혼을 하고, 두 집이 한 집처럼 지내자는 것이었다. 돌이가 자기의 뜻을 모르고 게다가 남편의 친구로 그런 마음을 품는다는 것이 몹시 분하였다. 여자라고 업신여기는 것이 분하였다. <나는 내 힘으로 살아간다> 하는 결심을 굳게 하고 <여자도 남자가 하는 일을 할 수 있다> 는 생각을 하고 감네는 단연코 혼인을 거절하였다.

 

3

 

마당 한가운데 정신없이 서 있던 감네의 얼굴에는 문득 급한 조수가 밀려온 듯이 어떤 새 희망과 새 힘이 용솟음쳐 나오듯이 화색이 돌고 어떤 무서운 결심을 한 사람모양으로 어디서 새롭고 딴 힘이 전기처럼 들어오는 듯이 두 주먹이 불끈 쥐어진다. 꼭 깨물었던 입술이 풀리고 온 얼굴에 기쁜 빛조차 가득 찬 듯하면서, 고개가 점점 쳐들어지고 늘어졌던 두손이 차차 올라가서 다시 합장을 하였다.

감네는 쏜살같이 광 쪽으로 가서 광문을 가만히 열고 들어가서 괭이와 부삽을 메고 나왔다. 괭이를 어깨에 메고 한 손에 부삽을 들고 나오는 그 얼굴과 그 거동은 마치 청룡도를 비껴들고 전장에 나가는 용사의 그것이었다.

감네는 자기 집 지게문을 살며시 열고 밖으로 나가서 자기네 앞밭 한 모퉁이를 파기 시작하였다. 먼지가 펄펄 일어나는 밭에 노랗게 말라죽은 보리그루를 한 손으로 걷어치우면서 삽을 가지고 파려니까, 땅땅 굳어서 팔 수가 없어서 괭이를 가지고 파기를 시작하였다.

이날도 아침부터 어디서 훗훗한 바람이 불어오기 때문에 삼복이 지났지마는 서늘한 맛이라고는 도무지 없이 땀이 철철 흘러서 온몸이 목욕을 하게 된다. 그래도 감네는 힘드는 줄도 모르고 쉴 생각도 아니하고 파고파고 자꾸 판다

이 애야, 아가 아가, 너 무얼 하니 ?

땀에 젖은 저고리 뒷섶을 잡아당기면서 걱정하는 시어머니의 이 말도 못 들은 듯이 그냥 낑낑 하면서 파고 있다.

한참 괭이로 파고는 삽으로 떠내고 떠내고 하다가, 치마폭을 잡고 매달리는 듯이 애걸하다시피 들어가자고 야단하는 시어머니를 흘끗 돌아보고,

어머니, 어서 들어가세요.

그냥 파다가 문득 말없이 비틀거리는 시어머니의 가엾은 꼴을 보고 쓰러지듯이 감네는 주저앉았다. 이윽고 벌떡 일어나서,

어머니. 시장하시지요 ?J

하면서 늙은이의 가느다란 팔을 붙들고 집으로 들어가는 감네의 눈에서는 참았던 눈물이 스르르 흘렀다.

어젯저녁에도 시어머니만 멀건 조죽을 좀 대접하고 자기는 사뭇 굶고 잤으니 미상불 시장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었다. 컴컴한 새벽부터 세시간 동안이나 돌같이 굳은 땅을 어떻게 팠는지 제가 스스로 생각해도 신기해 보였다. 칠 년 전에 남편이 읍에 가서 사 가지고 온 괭이와 삽을 맥없이 끌고 오면서 <그나마 남편이 살아 있어서 같이 했더라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생각을 하니까 더욱 눈물이 솟아 나온다.

남편 태호는 보통학교도 변변히 마치지 못하였지마는 혼자 책을 읽어서 중학졸업생 이상의 상식과 실력이 있을 뿐 타니라, 남다른 생각을 가지고 양도 쳐보고 고구마도 심고, 그리고 동리 젊은이들과 같이 산에 나무를 열심으로 심고 야학을 하다가, 튼튼하던 사람이 장질부사로 큰 나무 쓰러지듯이 죽은 지가 벌써 사 년이 되었다.

남편이 죽은 일 년만에 하나밖에 없는 딸자식까지 죽어버리고 감네는 시어머니와 단 두 식구서 외로이 살아갔다. 집 뒤의 산에서 나무를 해 때고, 집 앞에 있는 텃밭과 거기에 달려서 몇 마지기 있는 땅을 힘써 부치면 겨우 일년 양식이 되고, 그밖에 고구마 같은 것을 팔아서 용을 써오던 것이었다.

남편이 죽은 뒤에 처음에는 본래 농가에서 자라난 시어머니도 같이 일을 해서 꽤 도움이 되었으나 작년부터 차차 병이 잦아서 일을 못하기 때문에 감데 혼자서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 감네는 친정 할아버지가 진사까지 하고 상당한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아버지 때부터 가난해서 어려서부터 농사를 하고 게다가 몸이 튼튼하기 때문에 혼자서도 부지런히 농사를 지어서 곧잘 살아갔다.

처음에는 자기의 뜻을 몰라보고 시어머니가 가끔 시집가라고 권하는 데는 씩씩하게 일하던 손에 맥이 풀리고 낙심이 되곤 하였다. 기실은 시어머니는 며느리가 없으면 의탁할 데도 없고 그날부터 신세가 말이 못될 것이 빤하건만 젊은 과부가 자식도 없이 늙는 것이 하도 딱하고 미안해서 번번이 하는 말이었다.

얘야, 내 생각은 하지 말구 어서 팔자를 고쳐라. 나야 이제 몇 해 살다가 죽으면 그만인 데 누구를 믿고 살겠니. 내 생각은 할 것 없이 어데 좋은 자리가 있으면 가든지 네 마음 대로 해라……그리구 데리고 있을 사람으로 마음이나 착하고 얌전한 젊은이가 있으면 좋 으련마는……」

거의 입버릇 삼아 가끔 이런 말을 하였다. 입밖에 내지는 않아도 용돌이도 생각해보았다. 감네는 그럴 때마다 눈물을 흘리면서 진정을 말하였다.

저를 꼭 친자식으로 알아주십시오. 아들로 알아주십시오. 며느리란 생각을 마시고 아들 로 알아주십시오. 어머니를 버리고 개가를 할 그런 고얀년으로 저를 알아서는 안됩니다. 저는 평생 어머니를 모시고 혼자서 살다가 죽겠습니다. 저는 두 남편을 섬기지 아니하기 로 결심했습니다.

한번은 시어머니의 부질없는 말이지마는 하도 괴롭고 설워서 죽어버리려고 양잿물을 준비했다가 시어머니에게 들키고 난 다음에는, 다시는 일체 그런 말은 입밖에 내지 않고 감네를 꼭 아들로 생각하고 믿고 지냈다.

그래도 친정 할아버지 때부터 감네는 남의 신세를 지지 않고 사는 독립적 정신으로 길리었고 죽은 남편도 남을 도와주면 도와주었지 남의 은혜는 입지 않고 사는 것이 아주 변통 없는 법으로 지내왔기 때문에 어디 가서 쌀 한 되 꾸란 말을 아니하고 더구나 시집 편이나 친정 편이나 친척이라고 찾아가서 구차한 소리는 절대로 아니하였다. 금년에는 어느 집에나 농사짓는 사람은 다 마찬가지로 궁한 터이니까 아무 데 가도 별 도리가 없었다.

사방에서 기우제를 한다고 해도 감네는 속으로 <죄 많은 인간이 제사나 하면 될까> 하고 비웃고 있었으나 마침내 자기가 정성껏 기도를 드리면 되리라는 자신을 가지고 밤중에 다른 동네 먼데 있는 우물에 가서 귀한 물을 길어다가 정한 그릇에 떠놓고 기도를 하였다. 한달 열홀 계속하였으나 이날 아침에도 아무 흔적이 없는 것을 보고 마음에 새로운 결심을 한 것이었다.

<하늘에는 주실 비가 없더라도 땅에야 물이 없으랴. 우물을 파자. 샘을 파자. 하늘이 아버 지라면 땅은 어머니라, 땅어머니가 인간을 불쌍히 여겨서 물을 주시리라. 물이 나오도록 깊이 파자.>

이런 결심을 한 것이다.

<기도만 할 것이 아니라, 내 있는 힘을 다하자. 죽더라도 우물을 파서 샘을 찾고야 말리라.>

이런 마음이 감네의 마음에 새 힘을 주며 솟아올랐다.

 

4

 

그리하여 감네는 날마다 남이 다 자는 밤중에 일어나서 우물을 파는 것이다. 초저녁에 좀 누웠다가, 첫닭이 울기를 시작하면 벌떡 일어나 나가서 파기를 계속하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무슨 웅덩이를 파는 줄 알고 동네사람들은 주의를 하지 아니하였으나 마침내 우물을 파는 줄 알고는 모두 웃었다.

우물을 파! 우물이 없어서 그러는가. 가물어서 물이 안 나오는 걸 새로 우물을 파면 물이 날까봐 그래 !

그러기 말이야. 이 동리 저 동리 우물이란 우물은 다 말랐는데.

이렇게 동네사람들은 감네가 우물을 판다고 주거니받거니 말이 많았다.

그러나 나중에는 낮에도 계속해서 파고 있는 것을 보고 젊은이들은,

, 암만 파보아. 물이 날 텐가 !

하고 코웃음을 치고 지나가고, 어떤 늙은이는 일부러 지팡이를 짚고 찾아와서,

날 좀 보아요. 암만 파도 물이 안 날 테니 공연히 수고하지 말구 차라리 구걸이라도 떠나는 것이 낫지. 시모님이 굶으시는 걸 그냥 두고 우물은 왜 파고 있는 거요. 참 딱하기도 하지 !

이렇게 진심으로 권고를 해주는 것이었다.

네에. 고맙습니다.

한마디 대답하고는 다시는 대꾸도 하지 아니하고 그냥 날마다 한 모양으로 파고 있는 것을 보고 마침내 동리사람들은,

태호 아내가 미쳤다 !

하고, 이 모퉁이 저 모퉁이에서 수군거리기를 시작하였다. 어떤 때는 머리가 흩어져 늘어진 것도 그냥 두고 매무시도 가누지 못하고 입을 악물고 파고 있는 양이 꼭 미친 사람 같다. 이런 모양을 짓궂은 동리 젊은 아이들이 모여와서 들여다보다가 혹은 침을 배알고 혹은 돌을 던지면서.

미치광이, 미치광이……무얼 해 ?

하고 달아나는 일도 있었다.

그런 것은 다 각오한 것이지마는 늙은 시어머니가 가끔 비틀거리면서 나와서 울면서 말리는 것은 괴롭지 아니한 바가 아니었다.

, 글쎄 동리사람들이 다 널 미쳤다고 야단들이구나. 어젯저녁에도 용돌이 어머니가 와 서 그러더구나, 동리사람들이 모두 미쳤다고 그러기에 자기도 나가보니까 미친 것이 분명 하더라구. 그러니 어서 단단히 말리고 약을 쓰든지 무당 청해다 경을 읽든지 해야 한다고 하는구나. 제발 오늘부터는 그만두어라. ? 아이구 이년의 팔자야. 며느리 하나 있는 것 이……」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괴로운데, 게다가 요새는 바짝 기운이 빠지고 몸이 거북해져서 아무리 튼튼하던 감네도 암만해도 견디어 배길 것 같지 아니하였다. 벌써 보름이 되고 벌써 두 길은 팠는데도 샘 근원은 흔적도 없다. 이때에 감네는 불현듯 죽은 남편이 생각이 났다. <태호가 살았다면……> 이런 생각을 하루에도 몇 번씩 하게 되었다. <태호가 살았으면 둘이 힘을 합해서 파고 서로 위로해가면서 파면 오죽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 견딜 수 없이 태호가 그리웠다.

혼자 파기는 관계없으나 판 흙을 내보내는 것이 썩 힘들었다. 그래서 더 남편을 생각하고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다.

 

5

 

하루는 꿈에 남편이 와서 같이 파주는 꿈을 꾸었고, 또 하루는 남편이 어디서 굴레바퀴 같은 것을 얻어다가 나무를 세우고 거기다가 줄을 날아서 두레박에다가 흙을 담아 내주던 꿈을 꾸었다.

<내가 이래서는 안 된다. 이렇게 마음이 약해서 될 수 있나. 죽은 사람을 생각해 무얼 해. 아무도 의지할 것 없이 내가 끝까지 내 뜻을 이루구야 말지.>

하루는 몸이 너무 거북해서 누워서 쉬면서 눈물이 하염없이 솟아나는 것을 치맛자락으로 씻으면서 돌아누웠다. 늙은 시어머니라도 조금이라도 도와주었으면 하는 생각도 났으나 <차라리 죽은 남편의 혼이라도 나를 도울0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한 감네는 다시금 용기를 내어 가지고 이튿날부터 또 일을 계속하였다.

한번은 달도 없고 컴컴한 밤에 감네는 여전히 혼자서 파고 있었다. 흙 짐을 지고 막 밖으로 나오니까 웅덩이 옆에 어떤 그림자가 우뚝 서 있다. 감네는 그래도 그것도 못 본 체하고 또 웅덩이 속으로 들어갔다. 얼마 만에 다시 나와 본즉 웅덩이 바로 옆에 있던 흙무더기가 자리를 옮겨서 훨씬 저편짝으로 갔다. 이상하게는 생각하였으나 감네는 다시 들어가 파기를 계속하고 있었다.

하루는 감네가 새벽녘에 집에 들어가서 좀 쉬어 가지고, 그날 오후에 다시 나와서 웅덩이에 들어가 보았더니 분명히 자기가 팠던 것보다 한 두어 뼘이나 더 내려갔다. 그리고 겉에는 새 흙이 나와 있었다.

<누가 와서 팠을까? 남편의 혼이 와서 파주었는가?>

이런 생각도 했으나 한편 다른 의심도 났다. 그래서 감네는 밤을 꼭 새워서 지켰다. 과연 컴컴한 속에 괭이 멘 사람이 점점 가까이 온다. 웅덩이 속 사다리에서 지켰던 감네는 부리나케 올라가 보았다.

거 누구요 ?

나요 ! 동리사람이오 !

동리사람이라니 ?

감네는 생긴 모습과 소리로 짐작은 되었지마는 이렇게 뒤미처 물었다.

용돌이오.

, 인실이 오빠시군. 고맙습니다. 어서 가십쇼. 안됩니다. 우물은 내가 혼자 파야 합니다. 그리고 안됩니다. 젊은 남자가 남의 젊은 여자가 일하는데, 더구나 이 밤중에. 결단코 안 됩니다.

누가 알아요, 당신의 힘을 좀 도와드릴 뿐인데요. 이 밤중에 하는 것을 누가 알아요. 조 금만, 참말 조금만 도와드릴 테니 당신이 조금 더 하신 셈 잡고 가만 내버려 두어주십시오. 이것이 내 소원이요 즐거움이니, 아무에게도 어머니께도 말하지 않을 터이니 부디 모른 체 하십시오.

용돌이는 소곤소곤 애원하듯이 말한다,

안됩니다. 안됩니다. 다시는 그러지 마시오. 나를 잊어버리십시오. 당신의 마음은 잘 압 니다. 그래도 날 생각해주신다면 다시는 오지 마십시오.

감네는 이렇게 간곡히 타이르다시피 하고 누가 볼까 부끄러워서 바삐 집으로 들어와 버렸다. 그런데 다음날 밤에 나가본즉 이번에는 어느 틈에 용돌이는 웅덩이 속에서 흙을 파고 있다. 그리고 꿈에 본 그대로 나무를 세우고 구루마바퀴에 줄을 달아놓고 두레박을 매어놓았다. 감네는 눈물이 나도록 고마운 생각이 났으나 그럴수록 죽은 남편 생각을 하고, 그리고 단지하고 수절하기로 결심한 지난 일을 생각하고. 우물은 혼자 내 정성으로 파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고 감네는 입술을 깨물고 결심하였다. 그리고 가만히 용돌이를 불렀다. 용돌이가 웅덩이 밖으로 나오자 책망하는 어조로 힘있게 말했다,

그만하면 알아들으셨을 텐데, 왜 또 오셨소. 당신이 다시 오시면 나는 이 웅덩이를 묻어 리겠소……아니 내가 이 웅덩이 속에서 죽고 말겠소. 이것도 다 걷어 가지고 가시오.

그럼 다시 오지 않을 테니 이것만은 그냥 쓰십시오. 하늘이 차려주신 줄 아시구려 ……」

용돌이는 어두운 데 사라지고 말았다. 용돌이는 그 뒤에는 다시 오지 아니하였다. 나무와 구루마바퀴만은 남편의 혼이 용돌이를 시켜서 차려준 줄로 생각하고 그냥 쓰면서 감네는 여전히 혼자서 파기를 계속하였다.

 

6

 

그러는 동안에 다시 보름이 지났다. 감네는 하루같이 첫닭이 울면 나가서 파기를 계속하였다. 두 보름이 지나 모두 한 달이 되는 날 밤에 훤하게 먼동이 터올 때까지 파고 나니 괭이 끝이 딱딱 마치고 조금도 들어가지를 아니한다. 웬만한 돌은 가끔가끔 파내고 파내고 하였지마는 그것은 상당히 큰 돌이었다. 그리고 어느 쪽으로 파든지 다 마치는 것을 보아 돌이라는 것보다 바위요 반석이었다.

<이것은 파지 말라는 겐가? 웬일인가? >

하고 처음에는 낙심이 되기도 하였으나. 감네는 다시 결심을 하고 집에 가서 정성껏 치성을 드렸다. 그 반석 밑에는 꼭 샘구멍이 있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새 힘을 얻어 가지고 다음부터 웅덩이를 더 넓혀가면서 그 반석을 사방 돌라 파기를 시작하였다. 사방에 반석의 끝은 드러났으나 또 두께가 상당히 두꺼웠다. 그래서 날마다 사방으로 그 바위 주위를 파내었다.

이 바위가 나온 지 이레 만이었다. 새벽달이 밝고 차차 날이 밝아오는 때였다. 다행히 한편만은 바위가 이지러져서 마지막 술가리를 쉽게 파 내놓았다. 그리고 감네는 후-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잠시 쉬어 가지고 있는 힘을 다해서 죽기를 기쓰고 그 반석을 쳐들었다. 두 번 세 번…… 세 번 만에 그 반석이 번쩍 들렸다. 바위다 들리자 발이 삐끗하는 바람에 감네는 나가쓰러졌다.

! !

쓰러진 발밑이 서늘함을 느낀 감네는 부르짖었다, 그리고는 감네는 사지가 늘어지고 눈이 감기고 정신을 못 차렸다.

감네 ! 감네 ! 정신차리시오…… 정신차려요.

얼마 만에 겨우 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감네는 씩씩하고 굳세인 어떤 남자의 팔과 품에 안겨 있었다. 그 사나이는 한 손으로 반석 밑에서 솟아 나오는 찬 샘물을 수건에 적셔서 머리를 식혀주고 입으로 물을 물어서 감네의 입에다 넣어준 것이었다.

이윽고 자기를 안아준 그가 용돌인 줄 알았을 때에 빙긋이 웃으면서 한 팔로 용돌이의 목을 가볍게 안고 쳐다보는 감네의 눈에 눈물이 어리었다.

용돌씨, 고마워요. 이 샘은 나 혼자 얻은 것은 아니요, 당신과 둘이 얻었소. 당신의 정성 은 잘 압니다. 당신의 마음도 잘 압니다. 나 같은 여자를 생각하시고……」

감네, 정신차려요.

다시 눈을 감는 감네를 보고 용돌이는 울듯이 소리친다.

샘물, 샘물을 먹어요.

샘물도 먹이고 흔들기도 하였으나 눈을 감고 대답이 없다.

이윽고 간신히 다시 눈을 뜬 감네는 용돌이를 바라보고, 샛별이 반짝이는 하늘을 바라본다.

어머니를 부탁합니다.

한마디를 한 뒤에 감네는 다시 눈을 감고 뜨지 못하였다.

<일은 끝났다. ! 고약한 인습!>

용돌이는 울었다.

용돌이 등에 업히어 밖으로 나온 감네의 시체는 집 뒷동산에 용돌이 손에 고이 묻혔다. 그리고 그 샘이 솟고 솟고 우물에 넘쳐서, 사람이 먹고 짐승이 먹고 밭에 대고 논에 대어서 죽었던 곡식이 다시 살았다. 온 동리사람이 감네의 덕을 길이길이 기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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