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의 야(野) -장용학
第 1 章
破片으로 덮인 궤도를 따라 묵묵히 걸음을 옮겨놓고 있는 대열에서 벗어나 현자는 하늘이 거기에 훌렁 내려앉은 것처럼 烏有로 화해 버린 잿더미 위를 찾아 들어갔다.
군데군데 타고 허물어지고 쓰러지다가 간신히 균형을 잡고 서 있는 벽이 푸른 7월의 하늘에 서운한 윤곽을 드러내고 있는 풍경이 이방의 땅에 들어선 것 같지만 廢墟는 비교적 閑散한 감을 주었다. 어저깨의 폭격이 그만큼 철저하였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였다. 전찻길 건너편은 길가가 되는 바람벽에 금이 서고 지붕이 허물어져 내린 것이 가끔 눈에 띌 뿐 그런대로 고스란히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데 이쪽은 아득하게 텅 비어서 저 끝 철로 둑이 엉성하게 배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 과거형처럼 멋적다. 얼마나 많은 「현재」가 이 안에서 발버둥 치다가 훑여 나간 것인가.
그는 전쟁이라는 것을 이제 처음 보는 듯했다.
그들 일행은 네 사람에 들것(擔架)이 하나씩 차려져서 멀리 남산을 돌아 여기까지 끌려오는 사이에 맥진(脈盡)이 되어, 두덜거리던 기력도 없이 되었던 터이지만 코를 찌르는 괴상한 냄새에 새삼스럽게 이제부터 해야 할 「民主事業」이라는 것을 생각하고 울상을 짓는데, 유독 현우만은 들것을 옆 사람에게 부탁하고 이렇게 시체를 찾아보는 일에 나선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그런 그를 아마 아는 사람의 시체라도 찾아보는 것쯤으로 생각하였겠지만 그는 문학청년이다. 기왕 이런 일에 걸려든 바엔 후일을 위하여 폭격에 죽은 시체의 모양도 이것저것 봐 둘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서이다.
그들도 그를 모르고 그도 그들을 모른다.
그는 아버지의 고집을 좇아 부고를 돌리러 다니다가 남대문 근처에서 그만 동무에게 걸린 것이다. 어머니의 부고다. 수개월 전부터 시름시름 병석에 누워 있었던 그의 어머니는 대학을 다니는 작은 아들이 의용군에 끌려 간 것을 恨하다가 그만 세상을 떠났었다. 모든 일이 빨갱이놈들 때문이라고 원한이 골수에 맺힌 아버지가 장례식을 평상시와 같이 격식대로 치르겠다고 나섰을 때 이웃 어른들은 그러지 않아도 전에 지주를 했다고 주목하고 있는데 그러면 재미없을 것이라고 말렸지만 기어이 활판소에 가서 부고를 찍어 돌리게 했고 현우도 자기가 아니면 돌릴 수 없는 몇 장을 골라들고 집을 나섰던 것이다. 동무에게 걸렸을 때 애원도 해 보고 뿌리쳐보기도 했으나 그런걸 만들어 가지고 다니면 누가 속을 줄 아느냐라는 것이고 지금 낙동강에서는 英勇한 인민들의 아들딸들이 새빨간 선혈을 흘리고 있는데 그따위 늙은이가 하나 둘 죽었다고 신성한 민주사업을 사보타지 하겠느냐라는 것이었다. 도망치면 주소도 이제 알았으니 아주 의용군으로 끌어가겠다고 하면서 부고를 갈기갈기 찢어버리는 것이다. 민주사업이란 폭격에 죽은 시체를 치우는 일이었다. 그는 도망칠 수도 있었지만 한 두 시간이면 끝난다 했고, 또 자기가 없어졌을 때의 남은 세 사람의 형편을 생각하고 여기까지 따라 온 것이었다.
첫 번째로 발견한 시체는 까맣게 타 죽은 중년이었다. 개가 그렇게 타 죽은 것인 줄 알았다. 분명히 어른인데 고리가 없을 뿐 四肢를 갖고 거기에 쪼그라들어 굴러 있는 모양도 모양이려니와 부피는 개만했다. 직립의 의미. 사람이 네 발로 기어다닌다면 그저 개만한 동물. 소나 말은 이에 비하면 의젓한 편이고 볼품이 있다 할 것이다. 사람이란 한 번 죽어서 넘어지면 형편이 없다. 지난 날이 호기스러었던 것만큼 말로가 애상적이다.
다음 시체를 찾아 발을 떼어 놓다가 그는 낯익은 것같은 공간지각을 느끼고 덤칫했다. 본 적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무엇을? 무엇을 보고 나는 그것을 언제 본 적이 있은 것 같고, 거기서 향수 같은 것까지 느꼈는가…… 그는 그 방향을 더듬어 보았다.
50미터쯤 떨어진 곳에 끝이 뜯겨나간 뻘건 벽돌 굴뚝이 폭격을 면한 언덕배기의 집집을 배경으로 하여서 있는 것이 보였고 거기서 7,8미터 남으로 떨어진 곳에 서 있는 노송 잔 가지는 타버렸는지 밋밋하지만 굴뚝 쪽으로 거의 수평으로 굽어졌다가 다시 위로 곧추서 오른 그 雙기역(ㄱ)자형……거기에 시선이 얽혀 들자 그는 거의 소리를 지를 뻔했다.
아아! 난 왜 이제껏 여기라는 것을 생각지 못하고 있었던가!……
그것은 현우네 옛집이었다. 옛집도 3년 전까지 살고 있었던 옛집이다.
3년이 그렇게 긴 세월이었던가……그는 망연자실해져서 자기 자신이 믿어지지 않앗다.
3년이 긴 것이 아니었다. 전쟁이 단절이다. 그 그림자는 무의식의 세계에까지 스며들어서 과거와의 사이에 帳幕을 쳐 왔고 아까 눈 앞에 전개된 폐허를 바라보았을 때 저 끝까지 텅 비어나간 공간이 주는 엄청난 중량감은 그의 의식하에서 혹은 머리를 들려고 했을지 모를 회상에의 속삭임을 그만 문질러 버렸는지도 모른다.
현우는 밀려오르는 그리움을 안고 그리로 가보았다.
야트막한 돌대문은 이럭저럭 그대로 서 있었다.
그의 아버지가 민족반역자라는 이름은 면했으나 토지개혁 바람에 「돌대문집」이라고 불리우던 이 양옥을 내놓고 남산 너머 현재의 대문만 멋없이 높은 낡은 조선식 집으로 이사할 때까지 그는 여기서 자랐고 그의 낭만과 휴머니티랄까 그런 것은 학교나 거리에서보다 이 돌대문 안에서 피어났던 것이다.
산산이 부서져 버린 搖籃…….
들어서면서 둘러보니 모두가 거멓게 그슬렸을 뿐 화염에 탄 흔적 같지 않는 것으로 미루어 이 집은 직격탄을 맞고 간단히 종말을 고했던 것 같다.
어머니의 장례식이 내일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응접실이던 모퉁이를 돌아 마당으로 가 보았다.
넓은 마당에서 그래도 옛날 모습을 지니고 있는 것은 소나무뿐이었다. 한 구석을 높직하게 차지하고 있는 동산은 사면이 푹 패여 나갔고 그 흙에 덮여 그 아래 반도 모양을 했던 못은 흔적도 없이 되었다. 고려시대의 유물이라고 하는 한쌍 석등은 각(脚)이 나서 꽃밭 속에 뿔뿔이 뒹굴어 있었고, 화초들은 꽃봉오리를 맺은 채 벽돌 무더기에 깔려 그을리다가 꺼무스름하게 숨을 거두고 있었다.
꺼무스름하게는 현우의 마음 한 구석도 그렇게 비어 갔고, 허전하게 비어 가는 거기에 설움이 괴는 아픔을 느꼈다. 그 설움은 어머니를 여읜 슬픔과 정도는 달라도 빛깔은 같은 것 같았다.
그 체온을 안고, 원두며, 파며, 오이 따위의 채소밭이었던 뒷 마당쪽으로 다리를 옮겨 놓다가 그는 우뚝 멈추었다. 굴뚝 아래에 여자의 시체가 굴러 있었다.
뒷걸음치다가 그는 눈을 크게 떠 가지고 한 두 걸음 다가섰다.
갈비뼈 아래 되는 데가 손바닥만큼 벌려 있다기보다 뭉치진 구더기로 꽉 막혔었다. 거기를 뚫고 나온 것인가, 퉁퉁 부은 그 뱃속은 그런 구더기로 꽉 찼는지도 모른다.
수십 마리가 곰실곰실 순간도 쉬지 않고 움직이고 있는 운동이라기보다 무용, 구더기들은 거기서 대낮의 무용에 흥겨운 것이었다.
그는 눈알이 아물아물 해지고 머릿속이 뗑 했다. 그 한쪽 팔은 어깻죽지에서 살점과 함께 뜯겨 나갔고 뜯겨 나간 팔의 끝에 달려 있는 다섯 개의 손가락은 파란 빛깔의 빗(櫛)을 꼭 싸 쥐고 있었다. 그리고 그 팔은 말라들고 있었지만 지각없이 헤벌어진 어깻죽지는 피와 곱이 엉켜 누르스름한 빛을 발하면서 상기도 공기를 빨아들이느라고 축축한 아픔 속에 있었다.
부어서 둥그멓게 번들번들해진 얼굴에 시선을 가져갔다가 그는 그만 자기 입으로 손을 가져갔다. 여자의 반쯤 열린 두 입술 사이로 열심히 기어나오고 있는 그 두 마리는 구더기였다!
메슥메슥한 비애를 토하면서 그는 발길을 돌이켜 도망칠 듯 꽃밭을 건너 담 밖으로 뛰어 나갔다.
『시체는 안 봐도 좋다.』
콘트리트 조각과 타다 남은 기둥 따위가 밭을 이루고 있는 위를 껑충껑충 저 아래를 느릿느릿 멀어져 가고 있는 일행을 찾아 뛰어 가면서 그는 이렇게 悲鳴을 흘리는 것이었다. 뛰면서 시체를 만날까봐 그것만이 무서웠다.
전에는 장독대였으리라 싶은 곳에 뛰어 올라섰다가 그는 옛집을 돌아다보았다.
『저기다 집을 짓지 말라. 꽃을 심지 말라. 말뚝으로 둘러놓고 碑를 세워라. 그리고 거기다 古蹟이라고 새겨놔라.』
돌아서서 앞으로 펄떡 뛰엇다가 그는 그만 아래를 보고 아찔해져서 엎으러질 뻔했다. 남의 시체 위를 넘어 띈 것이었다. 오목한 곳에 낭자하게 흐트러져 있는 잔해. 그는 뒷걸음질 치면서 저 멀리를 더듬어 보았다. 늑대가 어디로 잠입해 와서 이렇게 널어놓았는가 싶어서이다. 그러나 다음 순간 거기에 수백 수천 마리의 구더기가 몰켜서 와글와글 合唱처럼 끓고 있는 것을 발견했을 때 그는 구역이 나는 분노로 몸이 떨렸다. 폭탄을 던져 그 벌레들을 몰살해 버리고만 싶었다.
골목길을 찾아내어 큰길 쪽으로 헐떡이면서 현우는 설움과 분함과 구역질과 그리고 幻滅로 온 몸이 느른해졌다. 그는 굴뚝 옆에 넘어져 있는 시체의 여자를 안다. 올해 스물 한 살이나 두 살이 되는 그 집 대학 다니는 딸이다. 서너 달 전 극장에서 만났다. 기품은 좀 없으나 팽팽한 앞가슴이라든지 미끈하게 뻗어 오른 두 다리에는 처녀의 밀도가 숨쉬고 있었다. 그랬는데 지금은 구더기의 밥상이 되어 있다.
『사람이란 죽으면 구더기의 밥이 되는 것이다!』
몸이 근질근질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는 다른 동물이 썪는 것을 못 보았다고 했다. 다른 동물의 시체가 구더기를 위한 舞踊과 合唱의 동산이 된 것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런데 인간은 생만 나가버리면 썩는다. 생이란 그저 방부제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인가. 그러면
생이라는 방부제가 나가버렸을 때 내 영혼에 물려들어 춤을 추고 노래 부를 구더기는
무엇일까…….
전찻길로 거의 나간 곳에서 비교적 깨끗한 시체를 만났다. 발치 쪽을 멀리 돌아 서너 걸음 도망갔다가 그는 역시 또 미련스럽게 돌아섰다. 자기와 같은 나이 또래의 청년이었고 두개골이 곱게 벗겨져서 누르스름한 腦髓가 밖으로 흘러 나왔었다. 영혼의 座다. 그는 거기에 떨어져 있는 못 같은 것을 주워 그 끝으로 말랑말랑한 腦膜을 찔러 보았다. 순간 그는 온 몸에 전기가 찔려 든 것 같은 충격을 받고 펄쩍 뛰었다.
맹견에게 쫓긴 도둑처럼 그는 세상 없이 도망쳐서, 일행이 묵묵히 행진을 잇고 있는 대열 속에 깊숙이 숨어 들어가서 쏟아지려는 눈물을 참았다.
땅만 보고 걸었다. 시체가 어디로 비쳐들까봐 땅만 보고 걸었다.
땅만 보고 걸어가면서 그는 머리가 얼떨떨해지는 것을 느꼈다. 앞으로 앞으로 내 디디는 발인데 그것이 땅에 묻혀 뒤로 뒤로 흘러 가고 몸은 앞으로 엎더지고만 싶은 것이다. 몸이 무거운 것이다. 원래 인간이 두 다리로 몸을 지탱하려고 한 것이 무리였다. 그는 툭 엎더져서 네 발로 기고만 싶은 것이다.
아! 네 발로 기어다닐 수 있다면 나는 모든 일이 얼마나 안심일까…….
『저거 좀 봐요.』
옆 사람이 팔꿈치를 툭 친다.
머리를 들어 거기를 보고 현우는 처음엔 그것이 무엇인지 잘 몰라 그저 풍성하고 윤기 있는 거구나 싶어했다가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자 「어구」하고 그 자리에 들어 앉으며 땅을 짚었다. 옆 사람들이 웃으면서 일으켜 세워 줄 때까지 그는 일어날 줄 몰랐다.
그것은 타 죽은 시체의 산이었다. 지붕을 했던 양철이라든지 가마니 따위로 대강은 가리어 놓았지만 百具 가까운 시체가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말쑥한 시체들이다. 아마 찌꺼기는 현장에 그대로 내버려두고 반반한 것만 골라다가 거기에 축적해 놓은 모양이다. 모두가 뜨거운 물에 삶아낸 것처럼 벌겋게 딩딩 부은 것이 이만 하면 돼지나 소에 비해 그다지 손색이 없다할 것이다.
도살장 생각이 났지만 이 나라에 저렇게 한 번에 대량으로 도살해 내는 도살장이 있는지 없는지 그는 모른다.
『모독이다! 사람이 사람을 이렇게 모독해서 좋은가. 차라리 그대로 내버려 두어서 구더기의 밥이 되게 하는 것이 인간적이다!』
거기서 30미터쯤 가서 대열은 멎었다.
내무서가 된 경찰서 앞에는 먼저 도착한 「민주사업대」들로 혼잡을 이루고 있었다. 모두들 번들번들하게 허탈해져서 서로의 얼굴을 보려고 하지 않는 침묵의 군상들. 불평 불만은 아까 벌써 다 반납하고 지금은 자기가 그 피둥피둥하고 벌건 시체 무더기 속에 끼어 잇는 것이 아니고 옷을 입고 손을 자유자재로 운동시키고 있는 산 사람쪽에 속해 있다는 것이 천만다행으로 그저 고맙고 대견스럽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거죽에 나타내는 것도 체면상 뭣하고 해서 그저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당연한 일인 것처럼 해 보이고 싶어하고 있는 표정들…… 그 표정들은 말한다.
「저 시체의 적은 누구인가? 그리고 나는 어느 편에 속하고 있는가?……자유다 정의다 평등이다. 하지만 엄연한 사실은 나는 살아 있는 편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이다.」
구역을 할당 받고 있는 동안 홀로 가로수 아래에 오므리고 앉아서 현우는 평화가 그리운 것이다.
인간은 살아 있는 동안만 인간이다. 살아 있다는 것, 이것이 인간의 알파요, 오메가다. 모든 것은 그 안에서의 일이다. 자유도 정의도 평등도 저 여름의 태양광선을 받으면서 바람에 흔들리는 플라타너스의 푸른 잎사귀에 비하면 휴지에 지나지 않는다. 누가 그 휴지에 그렇듯 엄청난 권능을 부여했는가…….
부웅 부웅, 공기가 떨리는 소리……B-29가 아니라 파리떼였다. 아무리 쫓아도 대여섯 마리가 떼를 지어 더덕더덕 얼굴에 붙으려고 한다. 주먹만한 것이 어느 결에 얼굴 아무데나 앉아선 물어뜯는다. 시체에서 끓고 있던 구더기 생각이 번쩍든다. 찰삭 하는 소리와 함께 한 마리가 땅에 죽어서 떨어진다. 그 시체를 보면서 그는 전쟁을 했다는 것을 생각한다. 나머지 파리떼들은 보복전이라도 감행하듯 새삼스럽게 달려든다.
그는 얼굴을 파리떼에게 내맡기었다. 간지럽고 아프고 무엇보다 구역이 나는 것을 참고 그들의 자유에 맡겼다. 입술에 앉는 敵도 있다. 그는 입을 열어 주었다. 쫓아버리고 싶은 것을 참자니 머릿속이 비어지면서 자기가 자기 아닌 것으로 변해지는 것 같다. 간지러운 것도 아픈 것도 구역이 나는 것도 모두 남을 위해서 간지러워하고 아파하고 토하고 싶어하고 하는 것 같다. 物이 되어가는 것 같다. 그렇지만 저기 하늘이 높고 구름이 흐르고 있는 것처럼 여기 나무 그늘에 평화가 있다.
그의 평화는 주위의 소란으로 깨어졌다. 추럭과, 마찬가지로 낡아빠진 기중기 차가 屍山 옆에 와 멎어서 덜거덕덜거덕 활동을 개시한 것이다. 번들번들한 군중들의 표정에도 항의가 새겨졌다. 아무렇기로 이것은 너무하다. 커다란 아가리를 끝에 달고 있는 기중기로 시체를 집어 올려서 추럭에 싣자는 것이다. 한 번에 서너명씩 물린다. 그 작업에 인간적인 여백이 조금 남아 있다면 그것은 한번 물어서 조금 들었다가 잘 물렸는지 어떤지를 알려고 흔들어 보는 일이다. 그래서 무사하면 거뜬하게 하늘 높이 들어 올려서 추럭에 옮긴다. 시체를 귀 맞추어서 잘 쌓아 놓아서인지 그렇지 않으면 기술이 능해서인지 작업은 大過없이 진척되어 간다.
그러던 것이 한쪽 다리만을 집혀서 건들건들 하늘로 올라간 한 시체는 자기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그만 거꾸로 떨어지다가 추럭 모서리에 축 부딪쳤고 한쪽 다리는 기중기의 아가리에 물린 채 그대로 하늘에 남아 있는 것이다.
군중들 사이에서 悲鳴이 물결을 이루었다. 현우는 魄散이 되어 도망친다는 것이 경찰서 구내로 뛰어 들어가서 쓰레기통 그늘에 가 숨엇다. 그 머리 위에서 유리창이 매운 소리를 내면서 열렸다.
『중지?……왜?』
『아무리 시체래두 저건 너무 합니다!』
『적의 시체래두…….』
『뭐라구요? 적의 폭격에 죽은 인민을 적이라구요?』
『저들은, 저 들 것을 들고 있는 저들도 말이오, 저건 인민이 아니라 포로요!』
『건 말이 안 됩니다!』
『어느 쪽이 말이 안 돼! 어제 여기가 폭격 당하고 있을 때만 해도 저놈들이 어쩌던 놈들인 줄 아오!』
『…….』
『잘 한다 잘 한다 박수치며 춤추던 놈들이오! 폭격소리를 듣지 못하면 잠이 안 온다는 놈들이오!』
『…….』
『그래 남한 동무는 그거 모른단 말이오?』
『저들은 아직 진리를 모르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에게 진리가 있다는 것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보여 주어야 할 것은 조직이오! 조직이 곧 진리요. 알겠소? 남한 동무, 진리라는 것은 조직 밖에서 하는 잠꼬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 둘 필요가 있단 말이오.』
『인민을 위한다는 진리두 말이오?』
『나는 말이오, 예수쟁이를 잘 아는데 가장 모법적인 예수쟁이란 신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 있다
고 믿는 자들이거든요. 이게 알짜 예수쟁이구 무서운 거거든. 왜냐하면 그들은 신이 없다는 것을 깨달을 날은 절대로 없으니까…….』
『…….』
『알겠소? 그들은 왼 손이 하는 일을 바른 손에 알리지 말게 되어 있단 말이오. 빤히 쳐다보면서 입으론 거짓말을 주고 받구 해두 좋단 말이오. 이것이 그들의 선민사상이라는 거요.』
『우리 소비에트도 교회와 같단 말입니까!』
『아아니, 남한 동무는 곡해를 잘 하거든. 내가 언제 같다고 했소. 전연 다르다구 했지…….』
『좀더 말씀해 주십시오.』
『왜?』
『알고 싶습니다.』
『그럼 교양을 한 가지 더 가르쳐 주겠는데 조직 속에서는 알고 싶은 것은 알려고 하지 말아야 하며 알고 싶지 않는 것은 이것을 알도록 힘써야 하오.』
『무슨 의밉니까?』
『조직 속에는 의미는 없고 사실뿐이오. 무자비한 사실뿐이오.』
『…….』
『그래서 지금 우리가 해야 할 것은 5시25분까지 저 시체를 치워버리는 일이오. 무슨 수단 방법을 써서라두 사령관 동무가 순시할 땐 땅 위에 있는 모든 시체는 땅 속에 들어야 하오! 이것이 지금의 지상명령이오. 이것이 5분 늦으면 그만큼 우리 인민군이 美帝 및 그 앞잡이를 玄海灘에 쓸어넣는 일이 5분 늦어진단 말이오! 그만큼 우리의 세계 정복두 5분 늦어진단 말이오!』
『정말 그게 가능할까요?』
『부산과 목포에다 소련기를 꽂아 놓으면 제 아무리 미제인들 어쩔 재간이 없지. 그리 되면 다음은 인도, 이란, 이라크, 위대한 레닌 동무가 뭬라구 했는지 아오? 파리로 가는 길은 북경을 거친다구. 구라파가 제 아무리 버텨두 소련 인민과 아시아 인민의 고함소리를 당할 수는 없소! 5년 안으로 전 유라시아 대륙은 우리 세상이 된단 말이오, 들어 보오. 유라시아 대제국! 알겠소? 남한 동무, 저것들은 그 진리를 위한 비료가 되는 것에 무한한 영광을 느껴서 마땅하단 말이오!』
쓰레기통 그늘에 웅크리고 앉아 현우는 북한 동무의 그 굉장한 진리와 저 플라타너스의 한 잎사귀와 어느 쪽이 더 무거울까 하고 저울질 해 보는 것이지만 알 수 없었다.
현우네 패가 맡게 된 구역은 철도 가드를 조금 지나 오른 쪽으로 쑥 들어간 골목 길이었다. 세 패가 한 조가 되어 들어가는데 폭격 당한 흔적이라고 없다. 이 골목에 시체가 셋이 있다는 것이다.
널찍한 개천이 나왔다. 저 위에는 染色工場이 있는지 불그스름한 물이 흐르고 있는 그 개천을 따라 올라가면서 모두들 시체가 없어 주었으면 하지만 하나씩 찾아 들고 가지 않으면 집에 돌아갈 수 없게 되어 있으니 지금 그들이 바라는 것은 되도록 깨끗한 시체를 당하는 일이었다.
남쪽이 되는 개천 저쪽은 곧장 비탈진 언덕에 얄팍한 돌을 수 없이 얹어서 지붕을 삼은 게딱지 같은 집이 빽빽하게 발라 붙다시피 서있고 그래도 그 사이로 누더기를 걸친 어린 것들이나마 얼빠진 얼굴로 이리를 내려다보고 있는 것이 가끔 눈에 뜨이지만 이쪽 콘크리트 담으로 한 채 한 채 둘리어 있는 중산층 주택가는 모두 피란 갔는지 괴괴한 것이 죽음의 마을 같았다.
개천이 굽이도는 모퉁이를 돌아 나아가려다가 그들은 일제히 발을 세웠다.
길가의 포플라가 허리에서 끊어져 길을 막으면서 개천에 머리를 박고 있는데 두 개의 시체가, 하나의 개천에 피를 쏟고 떨어져 있는 지게꾼이고 길 위에 엎어져 있는 것은 여자였다. 어디서 날아든 것인지 모서리가 날카로운 커다란 바윗덩어리가 너덧 그 근처에 굴러 있었다. 옆 골목 안에는 조금 들어간 곳에 또 하나의 시체가 이은 머리를 절구에 넣어서 찧어 놓은 것처럼 진창이 되었으면서 담에 기대어 좀 쉬어다 가자 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일행 가운데서 그 중 나이가 든 조선 바지가 여자의 시체를 가서 발로 밀어 모로 해 보았다. 피 한 방울 묻은 것이 없다.
『숨을 거둔 것두 얼마 되지 않은가베…….』
현우와 같은 패인 조선 바지는 얼굴을 가까이 가져가 보더니 이렇게 중얼거리면서 혀를 찼다.
『이렇게 깨끗이 죽을 게면 죽지 말지…….』
현우는 슬금슬금 그들의 어깨 너머로 그 여자의 얼굴을 보고 있다가 생각난 것처럼「아아!」하며 앞으로 나서는 것이었다.
『아는 사람이우?』
『…….』
머리를 흔들면서도 한참 보고 있으면 그 얼굴은 또 성희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조선 바지는 재빠르게 들것을 그 여자 시체의 옆으로 밀어댔다. 그리하여 그 시체는 현우네가 나르게 되었다.
『정신 내 가지구 들어 줘야지…….』
그 말에 현우는 깨어난 것처럼 바로 옆이 되는 대문을 열고 들어가더니 시멘트 부대 같은 종이를 찾아 가지고 나왔다. 그것으로 여자의 얼굴을 가리어 놓고 발치 쪽을 들었다.
입술이 조금 찡그러졌지만 백랍 같이 희고 갸름한 윤곽…….
그렇게 시체를 들고 H공원을 향하면서 그는 성희의 얼굴을 그려내 보려고 눈까지 감아 보는 것이지만, 성희의 얼굴 쪽이 이 여자의 얼굴 같아지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성희가 눈을 감으면 꼭 이 여자 같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그는 눈감은 성희를 본적이 없다. 만난 것도 한 번 뿐이었다.
제정 때의 스승이었던 박교수에게 그런 딸이 있을 줄 몰랐다. 고향 선배인 K씨를 우연히 따라 덕수궁에서 열리고 있는 무슨 고서전을 보러 갔다가 거기서 아버지와 같이 온 성희를 만났다. 오래간만에 만난 初老의 舊友사이에는 쌓인 말이 많았고 자연히 두 남녀는 그들을 噴水가의 벤치에 남겨 놓고 말벗이 되었다. 고궁의 뜰을 거닐면서 그들은 급속도로 접근하는 듯했다.
『아버진 저를 부잣집에 시집 보내고 싶은 모양이에요. 입으로는 그렇다고 하시지 않지만 어디서 주워 온 사진 가운데는 등신 같은 도령님은 있어두 가난한 사람은 한 사람두 없잖아요.』
『…….』
『선생은 부자에요?』
『아니, 지금은…….』
『전에는요?』
『…….』
『한 번만 부자면 돼요. 전에두 부자가 아니구 지금두 아니구 이 다음에두 그런 가망이 없구, 그런 남자 우선 멋이 없잖아요.』
『…….』
『저 좀 뻔뻔스럽죠? 그렇지만 과대평가해 주는 사람 앞에서는 수줍어 할 줄 알아요.』
『제가 어떻게 보기에…….』
『제 밑천을 다 들여다 보구두 모른 척하구 계시죠?』
『모른 척하고 있는 것이 아니구…….』
『선생님의 어머님 훌륭한 분이시죠?』
『어떻게 아십니까?』
『아는 법이 있지요.』
『제가 과장급 인물밖에 못 된다면 어머니는 국장급일라까 지식은 백분의 일도 못 될 것인데…….』
『그렇게 훌륭한 어머니를 가지셔서 부러워요.』
『어머니, 남자, 여자, 이것이 인간의 우열이 아닐까요.』
『선생님의 여성관이랄까 결혼관 같은 걸 소개해 봐요.』
『제겐 별루…….』
『없어요? 그럼 선생님은 아무 여자와나 막 결혼허세요?』
『막 한다는 건 아니지만 이렇다 하게 내 놓구 말할만한 것이…….』
『누군 이렇다 한 걸 가지구 있나요?』
『이야기는 다르지만 한 가지, 길 가다가 어떤 여자를 만나면 세상에서 제일 못 생긴 여자와 결혼하면 나는 신이 될 것이라구 그렇게 생각될 때는 있습니다.』
『…….』
『아니 이건 그저 말해 본 것뿐입니다.』
『선생님은 상당히 미인을 고르시는 모양이군요.』
시멘트 종이가 벗겨지며 땅에 떨어졌다. 바람이 이는 모양이었다. 다른 세 사람은 그대로 땀을 흘리는 데에 바빴다. 땀을 흘리는 데에 바쁜 것은 현우가 더 했다. 다리가 휘청휘청 꿇어지고만 싶고 팔이 빠지는 것 같았다. 어머니의 장례식이 내일이라는 것이 거짓말 같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는 것도 어쩌면 꿈 속의 일인지도 모를 것 같았다. 전쟁이 일어났다는 것도 그리고 이 여자가 죽었다는 것도…….
현우는 그 여자의 눈이 가느다랗게 뜨여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 이마의 땀이 한꺼번에 식어 들었다. 아까 땅에 쓰러져 있을 땐 분명히 감겨져 있었던 눈이다. 발치 쪽에서 봐서일까…….
그 눈이 자기를 찾고 있는 것만 같았다. 이렇게 자기를 파묻어 버리러 간다고 원망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러지 말아달라고 애원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런가 하면 비웃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러면서 그 눈은 성희가 그렇게 자기를 찾고 있다고 하는 것 같기도 했다.
성희의 존재는 공산군의 무시무시한 탱크를 보았을 때부터 잊어버리고 있는 그였다. 그런 일은 이 땅에서 포성이 걷힌 다음에 생각할 일이라고 마음이 제멋대로 규정해 놓아서였는지도 모르지만 그는 아까 이 여인의 얼굴을 보았을 때까지 성희를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헤어질 때 그들은 다음 일요일날 그 자리에서 만나기로 약속했었다. 사변이 일어나기 며칠 전이다.
일요일날 현우는 그 자리에 가서 서 있었다. 음울한 공기는 거기에까지 스며들어 찾아드는 사람이라고 없었다. 그는 한 시간 동안 거기에 그렇게 서 있다가 자기 자신을 비웃기보다 오지 못한 성희가 당연하다고 생각했었다.
현우는 땀이 흘러들어서 아려진 눈을 깊게 떠가지고 이 여자가 성희가 아닐까? 시체로 변했다는 변화가 알아보지 못하게 한 것이 아닐까? 이렇게 되뇌어 보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여자는 자기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아무 것도 아니 보고 있는 것이다. 그는 외로움과 서글픔이 밀려 올랐다. 성희보다 이 여자를 더 사랑하고 있는 것 같은 자기를 발견하고 그는 愕然히 놀랐다.
『이 여자가 살아서 일어나면 나는 이 여자와 결혼할 것으로 되어있다!』
공원에 이르니 여기저기서 들것을 든 같은 群像들이 할할거리면서 모여들고 있었고 벌써 일을 끝내고 나무 그늘에 들어앉아서 땀을 씻고 있는 사람도 많았다. 어디로 해서 돌아왔는지 아까 그 추럭도 시체를 다 부려버리고 고장이 났는지 가스만 공연히 내뿜으면서 씩씩거리고 있었다. 하늘은 무심할 수 없었음인지 바람은 점점세어가고 아까까지만도 푸르고 푸르던 하늘에는 꺼먼 구름이 널리고 있었다.
현우는 다 왔다고 생각했는데 목적지점까지 아직도 7,8미터나 거리가 있다는 것을 보자 팔과 다리를 몸에서 포기해 버리고 싶었다. 휘청거리는 다리도 내 다리가 아니요, 빠지는 것 같은 팔도 내 팔이 아니다.
언덕진 곳에 널따랗게 움이 두 개 패여 있고 각각 패살이 세워져 있는데「男」과「女」. 그러나 처음에는 어쨌는지 모르지만 그런 것을 가릴 여력을 그들은 갖지 못했다. 아무 쪽이나 발길이 가까운 쪽에 가서「하나」「둘」했다가「셋」으로 휙 던져 버리면 그만이다. 거꾸로 떨어지든 잘못 떨어져서 어디가 터지든 아랑곳없었다. 이만큼 해 준 것도 고마운 편이라는 것이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음아 이제는 나를 살려라 하게 되는 것이다.
시체를 던져 버릴 때 왼쪽을 들었던 현우는 무덤가에 위치하게 되었다. 저 하늘을 보며「하나」로 앞으로「둘」로 뒤로 했다가「셋!」하고 팽개치다가 그는 그만 무덤 속을 봤다.
마구 처박힌 남녀 노유의 寃鬼들! 소리 없는 阿鼻叫喚!
그는 그만 손을 놨다. 그래서 다른 세 사람이 그대로 들것을 쥔채 도망치는 바람에 현우의 손에서 떠난 들것대는 그의 정강이를 빗나가면서 때렸다.
상반신이 앞으로 끼웃했다. 아무리 힘 한 방울 남은 것이 없기로 억지로 버티어 서자면 버티어 낼 수도 있었다. 그런데 그는 그러지를 않았다. 왜? 그러는 것이 여자에게 대해서 야박한 일이라고 느껴져서라고나 할까. 그 여자의 시체가 阿鼻叫喚 속으로 떨어지는 여운에 휩쓸려서라고나 할까.
하여간 그는 넘어지면서 무덤 속으로 떨어졌다.
그제는 기급을 먹고 벌떡 일어섰으나 얽에 빠져든 한쪽 발목이 잘 뽑히지 않았다. 겨우 빼내 가지고 돌아서려는데 위에서 떨어지는 시체가 그의 엉덩이를 떠 받았다. 앞으로 넘어진다는 것이 그 여자의 시체에가 엎어졌다. 다시 일어서려는데 또 시체가 머리와 어깨에 떨어졌다. 그 시체를 밀어 내려는데 이번에는 허리에 또 떨어졌다.
위에서「하나」「둘」「셋」을 한 그들이야, 전연 그를 못 본 것은 아니겠지만 산 사람이니까 제 발로 기어나오리라 생각했겠고 그렇다면 그 등신 같은 작자 때문에 구역질이 나는 시간을 일초라고 더 연장시킬 아량은 가질 필요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벌써 저 아래로 도망쳐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음 사람들은 무덤 속에 산 사람이 떨어져 있으리라고는 생각할 수도 없었겠고, 그런 꿈지럭거림쯤은 눈에 비쳐 들지도 않았을 것이다. 현우는 그런 가운데서 기동하는 것을 잊었는지 했다.
한편 공원 입구까지 도망쳐 내려온 그의 패들은 겨드랑에 땀을 훔치면서 정말인지 거짓말인지 모르지만 喪制라고 자칭한 그 젊은 이가 내려오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그 젊은이는 좀체로 나타나지 않았다. 그가 무덤 속에 떨어진 것쯤은 그들도 안다. 그러나 그는 살아 있는 사람인 것이다.
시체가 어느 정도 찼는지 흙을 덮기 시작하는데도 그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서 거기 사람들에게 묻기 시작했다. 무덤 속에 산 사람이 떨어져 있던 것 같다고 하는 사람은 있었으나 거기서 기어 나오는 것을 봤다고 나서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그런 일이란 믿을 수 없는 일이라고 입들을 저마다 중얼거렸다. 그러나 지금은 모두 제 정신을 도로 찾았으니 믿을 수 없는 일로 보는 것이지 아무리 죽은 시체기로 사람을 개 돼지 처박아넣을 듯 처넣을 때의 그들의 머릿속은 메케한 냄새로 꽉 차서 그 많은 시체 가운데 산 것이 하나쯤 끼어 들었기로 무슨 대수랴 했던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런 일이 일어날리 없다.
결국 그들은「조선 바지」의 견해에 찬동하기로 했다. 그 젊은이가 정말 상제라면 그는 지금쯤 집을 향하여 달음박질하고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자기를 속이고들 있는데 찝차가 달려오더니 쏜살같이 무덤으로 가솔린 냄새를 풍겼다.
조선 바지가 그것을 보자 손을 저으며 뒤를 쫓았다.
『대장 나으리 할 말이 있소!』
모두들 그의 뒤를 따랐다.
찝차에서 뛰어 내린 북한 동무는 삽질하는 사람들에게 빨리 서두르라고 고함을 질렀다.
군중들은 있는 입마다 그 무덤 속에 산 사람이 들었으니 도로 파보아야 한다고 요구했다.
一笑에 붙였던 북한 동무도 그들의 말을 믿지 않을 수 없었다. 그만큼 그들의 말과 얼굴에는 진실과 애원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동무들의 말은 사실이라고 생각하오.』
그는 팔목시계를 쳐들고 시간을 본다.
『그렇지만 시간이 없소!』
군중들은 격분했다.
북한 동무는 찝차에 뛰어 오르면서 권총을 빼들었다.
『동무들! 개인을 위해서 조국의 시간을 늦출 수는 없소!』
하늘에 대고 한 방 쏘았다.
군중들은 혼비백산이 되어 뿔뿔이 제 곳을 찾아 각각 달아나 버리고 구름 사이로 쏘아 나온 석양 속에 삽질하는 소리만이 다시 분주하였다.
『그렇지만 시간이 없소.』
현우가 그 무덤 속에 있어 이 말을 들었다면 억울해서 죽을 것도 못 죽었을 것이다.
이튿날도 현우는 자기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그 이튿날도…….
9․28이 되어 성희가 그의 집에 찾아가 보았으나 거기에 현우의 모습을 발견할 수는 없었다.
1․4후퇴 후 누가 부산 부두에서 현우 같은 인물을 발견했기에 가까이 가 보았으나 아니더라는 것이다.
이리하여 여기 한 젊은이는 시간이 없기 때문에 그만 이 지상에서 말소되어 버리고 만 것이었다.(尾)
第 2 章
다 일고 나서 성희는 창 밖을 내다보았다.
허리가 끊어져 나간 자리에서 다시 새 가지가 너덜 하늘을 향해 줄기를 뻗어 올리고 있는 것이 마치 만세를 부르고 있는 것 같은 담밖 포플러 나무에서 매미가 두세 마리 요란스럽게 말복이 가까운 더위를 누비고 있었다.
『이건 어디까지 사실이에요?』
『내가 이 명수라는 것을 모르시죠?』
성희가 자기 작품을 읽고 있는 동안 한쪽 손으로 턱을 고이고 주산 연습을 하고 있던 현우는 주판을 들어 짤각짤각 흔들어 보이며 장한 듯이 돌아앉는다.
『일등했지요. 은행 전체에서 말입니다. 그 소설쪽은 현상 모집에 낙선되었지만 나는 내 천분이 여기 있다는 것을 깨닫고 밤잠을 자지 않고 맹연습했지요. 무엇이나 일등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
『거짓말인 줄 아는군…….』
벌떡 일어선다.
『증거를 보여 드리죠.』
선반 위로 손을 가져 가더니 둘둘 만 것을 내려다가 펴 보인다.
『이게 상장입니다. 보시오, 일등.』
『…….』
백등이기로 어찌 차마 볼 수 있을 것인가.
『이거 타느라고 정말 밤잠 못 잤지요. 다 미숙의 덕분이죠. 같이 밤잠을 안 자줬거든요. 아 미숙 얘기 안 했던가. 주인집 딸인데 곧 나타날 겁니다. 보시오 꼭 나타납니다. 수박 다섯 조각이나 일곱 조각하구, 한 조각 남게시리 말입니다. 설탕물에 얼음을 타 가지고 들어오면 소개하죠. 미스 박 같은 미인이 저를 찾아 왔는데 제가 안 나타나구서 배길랴구…….』
이제라도 나타나는가 싶어서 성희는 젖혀 놓고 문쪽을 꼭 바라보는 것이었다.
『언제 쓰신 거예요?』
『좀 못 생겼지만, 이 그거 말입니까. 환도해서 절간에 가서 말입니다. 그것두 밤잠 안 자구 썼는데 결국 마비가 된 셈이죠. 아주 집어치우구 운수 좋게 취직했지요. 아까두 말했지만 거기서 내 천분을 발견했답니다.』
『이것은 어디까지 정말이에요?』
『다 정말이겠죠.』
『어떻게 해서 살아나셨어요?』
『운수가 좋았지요. 거기서는 북한 동무가 권총 쏜 것으로 되어 있지만 실상은 그게 따따따……기총소사랍니다. 제트기가 나타나서요. 삽질하던 친구들두 그대루 도망가구 밤에는 비가 쏟아졌지요.』
『정말 운이 좋으셨군요.』
『저 원래 운수가 좋지요. 이 손금두 대단히 좋답니다.』
『…….』
『아 반지? 아까 끼었던 반지 어디 갔습니까? 약혼반지 같던데…….』
『…….』
『약혼한 사람 부잡니까?』
『…….』
『은행에 예금할 만큼 돈 많은 사람입니까?』
『…….』
느껴 오르는 설움을 겨우 참는다. 전에는 쓸쓸해 보이도록 端雅했던 사람이 어찌 이렇게도 변했을까. 처음에는 그것이 무슨 생각이 있어 일부러 그러는 줄 알았는데 일부러가 아니다. 마음이나 모습 뿐 아니라 말소리 몸짓까지 변했다. 변화라기보다 변혁이라고 하는 것이 적당할 것 같았다.
『우리 은행을 이용해 주십시오. 동대문 지점입니다. 그렇게 되면 제 점수도 오르구요. 난 주판은 잘 놓지만 지각을 너무 해서 시세가 없답니다.』
『저는 선생님이 세상을 떠나신 줄만 알구 아까 역에서 만났을 때 실례지만 유령인 줄 알았어요.』
『유령요.』
『노하지 마세요. 이렇게 앉아서도 자꾸 다른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
『왜 그렇게 사람을 피하세요?』
『내가 피한 게 아니구, 부산에서부터 말이오. 사람들이 나를 못 알아보니 못 알아보게 해 줬지. 재미가 있구 심신이 홀가분해지더군요. 새 사람이 된 것 같은 것이 말입니다. 그 다음부터는 그런 사람이 있으면 뭡니까 하는 듯이 되려 노려보지요. 그러면 저쪽에서 당황해서 시선을 돌려 버리거든요. 한 번두 탄로난 적이 없었죠. 미스 박께서 저기까지 따라왔을 땐 정말 뜻 밖이구 놀랐지요.』
그들은 아까 서울 역 앞에서 만났다. 일요일이면 현우는 역에 가서 놀았다. 역은 많은 향수를 실어 오고 실어 가고 하였다. 거기서 누구를 전송 나온 성희를 만났던 것이다. 깜짝 놀라는 성희를 되려 누구를 노려놓고서 유유히 발길을 돌이켜 차에 몸을 실었다. 집에 돌아와 대문을 들어서려는데 뒤에서 선생님 하는 소리가 났다. 깜짝 놀라 돌아보니 성희가 따라와 있었다. 그는 그만「나는 현우가 아니오」했던 것이다. 방에 들어선 그는 말도 없이 선반에서 윈고 뭉치를 끄집어내려 먼지를 툭툭 털고서 성희에게 주었다. 그것이 그가「墓碑」라고 한 아까 그 작품이다. 작중 인물의 이름은 나오는 순서대로 그저, ABC……로 되어 있는 것을 필자가 편의상 실명으로 고쳤다는 것을 여기에 附記해 둔다.
『9․28이 되어 제가 선생님 댁을 찾아간 것은 어떻게 아셨어요. 모르는 사람들이 들어 있던데요.』
『그랬을 것이라고 믿어서 나쁜가요.』
『왜 저는 찾아 주시지 않았어요.』
『두 번인가 길에서 봤지요?』
『…….』
『한 번은 부산에서. 그때 두터운 털 오버를 있었더군요. 나는 방위군에서 금방 풀려 나왔으니 그때 그 여자는 그 거지에게 우선 순대국 서너 사발 사 멕이구 목욕시켜 주구 그 다음엔 고물상에 가서 중고품을 한 벌 사 입혀 주어야 하는데, 그리되면 나는 뭐가 되게. 내가 아무리 배고프구 춥구 몸이 근질근질했다 해두 남을 더구나 사랑했던 사람을 인간적으로 만드는 일에 협력할 수는 없잖소. 그건 부도덕이거든요.』
『두 번째는요.』
『두 번째는 환도한 다음 해…….』
했다가
『아아 그게 이제 알고 보니 지난 봄 이 집에 하숙을 정했던 바루 그날이네…….』
스스로도 희한해 하는 표정인데 능청을 부리고 있는 것 같지도 않다.
『어디서요.』
『중앙청 앞에서 전차를 타고 남대문으로 가는데 덕수궁에서 나오고 있는 모습을 봤지요. 갑자기 내 무덤에 가 보고 싶은 생각이 나더군요. 그래서 그대로 저 앞까지 와서 이 골목으로 찾아 들게 되었죠.』
『이 골목이 그 골목이에요?』
『이 집 앞에 이르러 보니 저 포플러가 나를 반기는 것 같더군요.』
『저 포플러가 그 포플러란 말씀이에요?』
놀라는 표정으로 그 포플러 나무를 내다 본다.
『대문을 열고 들어섰죠. 아 그랬더니 주인 아주머니가 이 방문을 휙 열어 보이면서「도배만 말짱하게 새방 같죠」하지 않었겠어요. 나는 그때의 시멘트 종이 고맙다는 인사를 하려구 들어선 것쯤으로 알았는데 그게 그렇지 않구 곰곰히 생각해 보니 대문에 걸려 있는「下宿人 求함」이라는 패를 보고 들어섰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지요. 왜냐하면 난 그때 바루 자그만한 하숙을 구하고 있던 중이었거든요. 바루 이 방인데 공짜처럼 싸단 말이오. 그래서 얼른 오토바이에 짐을 싣고 와보니 화장을 번질나게 한 처녀가 수줍어 하는 체하고 있었죠. 그게 바루 미숙이었단 말입니다. 좀 못 생격지만 곧 나타날 겝니다.』
하는데 나타났다. 번질나게 화장한 처녀가 쟁반에 설탕물을 받쳐들고 들어왔다.
『얼음두 안 타구, 수박은?』
『수박 떨어졌어요.』
『야 난 수박 가지고 나타날 게라구 장담했는데…….』
『약속은 안 지키면서 공것만 먹겠다네.』
『내가 언제 안 지킨댔소. 아니 내가 언제 그런 약속했단 말이오?』
『동네 사람들두 다 알구 있는데.』
『자기들이 그렇게 퍼뜨려 놓구서, 내가 뭐 정말 바본줄 알어…….』
『바보가 아니면 이 집을 나가면 되잖아요. 나가지두 못하면서 앉아서 호통만 치네. 빨리 나가요!』
나가 버린다.
『난 그런 약속 정말 안했는데 언제 몇시 몇분, 시간까지 댄단 말이오.』
『무슨 약속이예요?』
『결혼한다는 약속했다는 거요.』
『저 여자와 결혼하시는 거예요?』
『그럴 생각이요.』
『神이 되시겠네.』
『신? 아 그 옛날 말 말입니까? 그렇지만 그렇게 못 생긴 편은 아닌데…….』
『선생님…….』
『…….』
『왜 그렇게 변하셨어요?』
『난 저 여자와 결혼하면 만사형통이 될 것 같단 말이오.』
『안 돼요! 선생님이 저런 여자와 결혼하시다니!』
『저래 뵈어두…….』
『제발 저 여자와만은 마세요!』
일어선다.
『아니 좀 다 듣구, 저 여자는 저래 뵈어두 천사요! 시간을 지키구 알아 맞치는데는 귀신이란 말이오. 내말 들어보오. 일부러 말이오, 몇 시 몇 분 어디서 만나자 해 놓구서 미리 가서 시계를 들구 기다리고 있으면 1분도 어기지 않고 꼭 5분 늦게 나타난단 말이오. 시계 없이두 지금 몇 시 몇 분쯤일 게라구 척척 들어 맞치는 데는 뱃속에 시계가 들어 있나 싶을 지경이란 말이오. 그런데 이 난 만날 지작이란 말이오. 세상에 내처럼 지각 말자구 명심한 사람은 없소. 이건 하나님두 다 알고 계실 게요. 그런데 자꾸 지각이란 말이오! 울고 싶을 정도요. 알겠소? 울고 싶을 정도란 말이오. 시간이란 것만 없으면 난 정말 날개 돋힌 것처럼 정말 맘 턱 놓구 살 수 있겠단 말이오! 전에 시간이 없어서 죽을 뻔까지 한 내요! 아 내말 다 듣구, 다 듣구서 가오. 나는 정말 呪咀 받은 사람이오. 며칠 전이오. 3시 2분인데 해가 지고 있소! 내 시계는 분명히 3시 2분을 가리키고 있는데 해가 서산에 지고 있단 말이오! 내 몸은 순간 공포와 놀라움과 그 알 수 없는 환희로 부르르 떨렸소. 아 마참내 시계에 대변동이 왔구나! 시간이 줄었구나! 시간과 공간이 마침내 이혼했구나…
…그랬는데 알고 보니 내 시계가 서 있었소. 죽은 건 시간이 아니라 시계였더란 말이오. 그것두 모르구 한참 동안이나 정말 덜덜 떨고 있었으니 이러구서 어떻게 살란 말이오. 난 미숙을 숭배하고 싶소! 이래두 그 여자와 결혼 말란 말이오?』
『하세요! 하세요! 마음대로 하세요!』
문을 열고 나가면서 지난 날의 그가 그리웠다. 슬펐다.
『아 정말 이해성이 없는 여자다…….』
허둥거리면서 대문 밖까지 따라 나갔다.
성흰 돌아보고 돌아보고 하면서 여름 날의 햇빛이 하얗게 내려앉은 골목길을 사라져 가고 있었다.
『잘 가오, 성희…….』
그것은 과거와의 마지막 고별이었다. 성희에게 보여준 그의 말에는 과장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말에는 과장이 아닌 말이 없고 입 밖으로 나갈 때는 과장이었는지는 몰라도 한 번 공기에 닿게 되면 그것은 의젓한 存體가 되어서 권리를 요구한다. 그리고 인간은 자기를 잊어버리고 그 권리에 이끌려 다니기가 마련이다. 이렇게 해서 인간성이라는 것이 이룩된다. 인간성이란 인간의 과장이다. 과장된 인간, 이것이 인간성이다. 처음에는 전매특허품이던 그「과장된 인간」은 공기에 오래 묻혀지고 있는 동안에 색이 날라져서 경매장의 신세가 되어 인간이 되는 것이다. 이리하여 인간성 속에 인간은 망실되어 간다.
여하간에 그는 오늘 말이 많았다. 무덤에서 기어 나온 이래 이렇게 말이 많은 적은 없었다. 아니 그 동안 한 말을 모두 합쳐도 이만큼 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하나의 하강이라고 핼까.「잘 가오. 성희」라는 중얼거림에도 무슨 감상이 섞여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그렇다는 말이었다.
이전의 그에게 시가 있었다면 지금은 산문이다. 이전의 그가 고상했다면 지금은 천했다. 성희는 이렇게 생각하면서 가버렸을 것이다.
현우는 집으로 돌아가려던 발을 돌려 공원으로 갔다.
하늘에는 흰 구름이 한가로운데 무덤은 푸른 잔디에 덮여 오늘 치의 곡성을 올리고 있었다.
그 무덤은 그의 진통, 지금의 그가 거기서 태어난 胎이기도 했다.
따따따……지금도 그의 귀에는 기총 소사의 소리가 땅속에서처럼 희미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때는 그가 땅속에 있었지만……. 얼마만한 흘렀는지 모른다.
목덜미가 시리다. 그 시린 데서「시간이 없소!」하는 소리가 느껴진다.
그러면 여기는 어딜까? 시간이 없는 여긴…….
저승이다! 나는 죽어 있는 것이다. 아까 阿鼻叫喚에 떨어졌다는 생각이 난다. 그 속에 끼어 파묻혀 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데 주검에 파묻혀 죽음 속에 있는 내가 어떻게 깨닫는 일을 하고 생각이라는 것을 할 수 있을까. 나는 죽음 속에 있지만 내 속에는 생각이 흐르고 있다. 나는 죽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죽지 않았다는 것이 그대로 살아 있다는 것이 된다면, 그런 것이 살아 있다는 것이라면 나는 지금 살아 있다!
그래서 생각이 시려하고 있는 것이다. 목덜미다. 거기에 차가운 것이 뚝뚝 떨어지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나는 살아 있는 것이 분명하다. 나는 살아 있다. 반가와해서 좋은지 어떤지는 몰라도 나는 살아 있는 것이다.
뚝 뚝, 목덜미에 떨어지는 것 그 시린 감각이 생각을 깨워 주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무엇일까?……
뚝 뚝, 떨어져서는 질금질금 목에 감기는 것이다. 액체다.
피?
소스라쳤으나 몸은 소스라쳐지지 않았다. 五體는 먹먹해서 그대로이고 살 속에서 뼈마디가 조금 움직였을 뿐이다. 꼼짝 할 수 없는 것이다.
이건 죽은 거나 마찬가지다. 이러구서야 살아 있달 수 있는가. 다만 아직 죽지 않앗다는 정도다.
죽어 가고 있는 도중에 있는 것이다. 이대로 가면 나는 이대로 죽고 만다. 끝장이 오기 전에 도망쳐야 하지만 무엇을 가지고 이 나를 여기서 빼낸단 말인가. 나에게는 아무 것도 없다. 생각 이외…….
아아! 생각이란 것이 이렇게 무력한 것이었던가. 평소에 그렇게 호언장담하던 것이!……
개구리가 코끼리의 발바닥에 납작하게 밟혀 있는 것 같은 것은 그의 육신만이 아니었다. 생각도 꼼짝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코끼리의 발바닥이 여기서는 또 腐爛된 시체들이다!
아아! 왜 가 이 지경이 되었는가…….
설마 이렇게 될 줄 몰랐다. 엄살이다. 엄살 부리다가 이 지경이 되었다. 아무리 그대 기진맥진이 되어 힘 한 방울 남은 것이 없었다 해도 이 지경이 될 줄 조금이라도 알았다면 나는 벌써 벌떡 뛰어 일어났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것을 하지 않았다. 왜? 어리광이다! 심지어 그 여자와 같이 죽어도 좋다 하는 감상에까지 사로잡힌 것이 아니었던가. 그 여자와 같이 죽는 것도 산 다음에 할 일이란 것을 그땐 미처 생각지 못했다. 자업자득이다. 인간은 自業自得이다!
그는 자기 얼굴이 옆으로 파묻혀 있는 것이 그 여자의 가슴이라는 것을 안다. 왼쪽 팔은 여자의 허리에 감겼고 바른 손은 어디에 숨어서 꼼짝 않고 있는지 행방불명이다.
여자의 가슴이 따스한 것 같다.
아직 완전히 죽은 것이 아닌지도 모른다. 이 여자가 아직 죽은 것이 아니고 내처럼 이제부터 죽는 것이라면 난 얼마나 행복할까.
뚝 뚝, 떨어져서는 질금질금 목에 감기는 감촉……이게 필까? 여긴 다 죽은 시체들인데 이렇게 어떻게 피가 한결같이 흘러 떨어질 수 있을까? 아까 바람이 일고 꺼먼 구름이 널리던 생각이 번쩍 들었다. 이건 빗물인지도 모른다.
그렇다. 분명히 밖은 지금 비가 쏟아지고 있는 것이다! 그는 갑자기 살아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솟았다.
빗물은 그에게 바깥 세계의 존재를 깨우쳐 주었고 그 빗물이 똑 똑 떨어져서 목에 감겨 드는 감촉은, 실오리 만큼이기는 하나 자기의 목숨은 아직도 바깥 세계의 脈搏과 이어져 있다는 것을 의미해주었던 것이다.
그는 있는 힘을 다 훑어 내 가지고 버둥거렸다. 몸을 이리 비틀 저리 비틀 몸부림쳤다.
부질없는 노릇이었다. 끄덕도 하지 않을 뿐더러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압력이 죄어들어 배와 등이 한장이 되어 숨을 들이 쉴 수가 없게 되는 것이었다. 절망감만 짙어질 뿐이다. 이대로 슬그머니 죽어서 모든 것을 몰라지게 되었으면 싶어도 지는 것이었다. 죽은 다음에야 살고 죽고 내 알게 뭐겠는가. 살고 싶다는 생각만 끊어버리면 죽는다는 것은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그렇게 되지 않는다. 살고 싶다는 생각과 그 생각을 버리려는 생각, 이 두 의식은 영원히 평행선 위에서 교차될 때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살고도 싶고 죽어 줬으면도 싶어지는 것이었다.
썩 전부터 그는 목을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고 하려고 하고 있는 자기를 깨달았다. 아픈 것이다.
목덜미가 아픈 것이다. 뚝 뚝 떨어지는 물방울이 벌써 아프기 시작한 것이 오래 전부터였으나, 지금은 그런 것을 아파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 해서 아파할 생각을 하지 않앗지만 이제 더 참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까짓 것이 이렇게 아파질 줄 몰랐다. 그러나 바위도 뚫는다는 빗방울…….
아픈 것이 아니라 간지럽고 성가시고 귀찮다. 아니 역시 아픈 것이다. 견딜 수 없다. 송곳으로 쏙 쏙 찌르는 것 같고 모가지에 질금 질금 하던 감촉은 쇠줄로 졸라매는 것 같은 아픔을 새겨낸다. 한번 거기를 만져보고 싶다. 한번만이라도…….
그의 모든 신경은 거기에 집중되었다. 숭 숭 구멍이 뚫려 나가는 것만도 같다.
다른 것은 다 좋다. 이것만 멈추게 해 줘! 정말 이것만은 견딜 수 없어!
그는 미칠 것 같았다. 죽는 것도 좋다. 한번만, 한번만 거기를 만져보고 싶었다. 한 번 만져보고 죽으면 죽어도 한이 없겠다. 그의 의식은 죽고 싶도록 간지러운 아픔에 沈沒해 갔다.
――하늘에는 만국기, 땅에는 악대 소리. 새 운동화를 신고 꼬마 선수들은 스타트 라인에 한 줄로 섰다.
<온자 마크 겟셋>……탕!
그런데 한 아이가 반대방향으로 뛰어 나갔다. 관중들의 뚱그래졌던 눈은 그러나 이내 웃음소리와 함께 그 독주자에게서 떠나 다수자들을 쫓아갔다.
그런데 반 바퀴 돈 저쪽에 있는 결승선에 가까와져서이다. 관중들은 그만 땀을 쥐었던 손을 놓아버리고 함성을 올리면서 일어섰다. 반대 방향에서 아까 그 독주자가 돌진해 들고 있는 것이었다. 다수자의 일등보다 독주자가 한 걸음 앞질러 테이프를 끊었다. 심판관은 다수자의 일등에게 일등기를 주었다. 이에 불만을 품은 일부 관중들이 고함을 치면서 경기장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그러자 심판관을 지지하는 관중들도 쏟아져 들어갔다. 수라장을 이루었다.
그러던 것이 언제 어떻게 어울려서 두 패는 하나가 되어 소리소리 지르면서 가두행진으로 나아간다.
정부를 타도하자!
시민의 자유를 옹호하자!
인간의 존엄성에 눈을 뜨자!
썰물처럼 군중이 빠져나가 버린 운동장에 적막 같이 홀로 서 있는 어린 독주자. 현우는 그 얼굴을 어디서 꼭 본 것 같은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누구던가?…… 현우는 의식을 잃어버렸다.
그리고 얼마만한 시간이 흘러갔는지 모른다. 마치 문풍지로 새어드는 바람에 꺼지려던 잿불이 되살아 나는 것처럼 그는 의식이 살아났다.
덜미에 떨어지던 물방울이 멎은 것도 모른다.
거기는 빛도 없고 소리도 없고 아픔도 없다. 오직 있는 것은 거의 皮膚밑을 흐르고 있는 피의 순환뿐. 감각이 그렇게 꽉 갇혀버리니 의식도 절해의 고도에 외로운 虜因…….
나는 지금 화석이 아니면 태어나기 이전이다.
그의 의식은 감자를 쏠아먹는 생쥐의 이빨처럼 오물거린다.
여기는 몇 만년 후이고 내 의식은 지질년대 속에 끼어 있는 화석인지도 모른다. 화석이 살아서 움직인다면 그것은 이 나의 존재와 같은 것이다. 그러나 나는 지금 몇 만년 전을 살고 있는 셈이다. 산다는 것은 그 회상인지도 모른다. 생이란 그 회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장태를 두고 이름인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다면 나는 아직 태어나기 이전일 게다. 나는 지금 태내에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코도 입도 손도 발도 모양이 잡히지 않아 이렇게 흐물해서 뭐가 뭔지 종잡을 수 없는 존재인 것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나는 현재를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만은 명백하다. 나는 나를 산 적이 없다. 나는 내 밖에서 살았다. 다라서 거기에 나는 없었다. 부재였다. 나는 나의 생 속에서 부재였다. 그래서 부재 증명이 생인 줄 알았다. 부재증명을 하는 것이 산다는 것인 줄 알았다.
우선 나는 나를 살아야 할 것이 아닌가…….
그는 의식이 어느 가장자리를 간지러워 하고 있는 것을 느꼈다.
어딜까?……
입인 것 같다. 다물지 못한 입술이 간저러운 것 같다. 이게 뭘까? 아랫 입술이다. 아랫 입술이 간지럽다. 윗 입술로 거기를 더듬어 보았다. 말랑말랑한 것이 두 입술 사이에서 곰실거린다. 이게 뭘까? 하다가 순간 그는 아까 돌대문 집에서 본 그 여자의 시체의 입술을 기어 나오던 두 마리가 생각났다.
『앗! 구데기!』
그는 발칵 뒤집혔다.
그리하여 그의 손은 자유를 회복한 것이다. 구역을 토해 버리느라고 발칵 해진 김에 어디에 가 박혀있는 행방불명이 되었던 바른 손이 그의 팔 끝을 돌아와 붙은 것이었다.
손은 신체의 거점이기도 했다. 지레였다. 손을 찾아 가진 그는 무한한 힘의 소유자가 된 것이다. 몸을 뒤로 빼내어 앉을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지금도 그때 자기를 살려 낸 것이 구더기였다,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惡戰苦鬪 끝에 무덤을 헤치고 바깥 세상에 나온 것은 비도 그치고 동녘이 희끄무레해 지는 무렵이었다.
비틀거리면서 보안서 앞에까지 이른 그는 거기에 사람의 모습을 보자 그만 정신을 잃고 넘어졌다.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해는 서산으로 기울어졌고 마치 물에 빠진 쥐가 되어 우물가에 뒹굴어져 있었다.
숙직실 같은 데를 들여다보니 솥에 눌은밥이 남아 있었다.
그것을 들어가 먹고 나니 좀 산 것 같았다. 오늘이 어머니의 장례식이라는 것을 생각지 못한다.
인간을 장례하는 고역 때문에 잊었는지도 모른다.
밥그릇이며 접시 따위를 깨끗이 치워놨다. 그것을 와서 보고 그들은 요리집 보이 노릇을 했느냐고 물었다. 그날부터 그는 밥을 지어주면서 그들이 유엔군에 쫓겨 달아날 때가지 줄곧 거기서 살았다. 도망칠 때 그도 함께 이북으로 가게 되었으나 아침부터 지독한 설사를 해서 그들은 그를 포기해 버렸다.
이삼일 지나 국군의 뒤를 따라 감찰이 돌아와 보고 廳舍 내외가 깨끗이 정돈되어 있는데 놀랐다. 그런데 근처 주민들이 그를 고발했다. 좀 바보 같지만 혼을 한 번 내 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왜 그들 밑에서 일했어?』
『집이 싫어서요.』
『거짓말 말어!』
『조직이 어떤 것인가구 좀 알구 싶어서…….』
『그래 어떻더냐?』
『지독할 뿐이구 그저 그렇더군요.』
보름쯤 유치장에 넣어 두었다가 내 놓았다. 집으로 가던 그는 저녁 때 다시 돌아왔다. 집은 남의 집이 되고, 아버지는 납치되어 갔다고 하더라는 것이다. 수복의 흔한은 경찰서를 시장처럼 만들어놨다. 그 혼잡 속에서 그는 움직이는 비품 같은 존재였다. 시일이 흘러감을 따라 그 비품은 주인이 되었다. 그는 거기서 자고 일어나고 세수하고 먹고 일했다. 서장도 경찰의 長이지 지 주인은 못 되었다.
1․4후퇴 때 그는 방위군에 끼어 남하했다. 거기서 나와서는 부두노동도 하고 비행장에 가서 포탄도 날랐다. 그러다가 어찌 어찌해서 포로수용소에 가서 한 자리 끼어 들었다.
포로도 아니고 노무자도 아니고 경비원도 아니고 그가 거기에 문지 아무도 똑똑히 아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면서 그가 거기에 있을 수 있는 것은 완전히 셈 밖에 존재였기 때문일 것이다. 누구와도 말이 없고 주위에 무슨 일이 일어나도 그것과는 관계 없게 되어 있는 것이다. 목숨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것 이외 그에게는 아무 것도 필요 없었다.
그가 그 동안 오직 한 사람 가까이 한 사람이 있다면 방위군에 기어 추위와 굶주림의 행진을 할 때 언제나 그의 옆을 떠나지 않던 한 미소년이었다. 누나가 있느냐고 물어 보기까지 했다. 없다고 했지만 그 소년이 자기가 매장해 준 그 여자의 동생 같았다. 하루 종일 굶어서 행군했다가 겨우 한 덩어리 생길까 하는 주먹밥을 반 쪼개어 그 소년에게 준 것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가 환도라는 것을 했다가 지금의 은행에 취직하게 된 것은 그 소년의 아버지가 억지로 시켜 주어서이다. 장사나 할까 하고 거리를 헤매다가 그 소년에게 붙잡힌 것이다. 그가 취직한 것은 휴전도 되고 보니 적당히 어디 끼어 들어서 살 데가 없이 된 때문이기도 하였다.
취직해서 그는 왕년의 적, 시간을 만났는데 거기서는「지각」이라는 이름을 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왜 지각이 그렇게 나쁜 것인지를 몰랐다. 지금도 잘 모른다. 십분 이십분 잡담한다든지 점심 먹으러 간다 하고 두 시간 세 시간 자리를 비워 놓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치지만 일분이라도 지각을 하면 일제히 바라보는 것이다. 업자와 사바사바하는 것은 묵인하지만 지각은 묵인할 수 없는 부도덕인 것이다. 월합에서 그만큼 깎아내는 데서도 부족해서 사람을 파렴치한으로 치는 것이다. 그런 눈초리를 자꾸 당하면 또 그렇게 되는 것이다. 그가 성희에게 하소연 한 것은 조금도 과장이 아닌 것이다. 미숙과 결혼하면 지각만은 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각만 하지 않게 된다면 인생전체가 다짜고짜 훤해질 것만 같앗다. 도적이라도 시간을 지켜서 그 시간에만 또박 또박 훔치기만 하면 신사적이라고 불러 줄지도 모를 그런 세상이다.
그가 성희를 그렇게 보내고 여기 무덤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올라와 앉아 있는 것은 지난 날을 회상하기 위함이 아니라 미숙과의 결혼 문제를 좀 생각해 보느라고이다.
공원에서 내려오면서 그는 미숙과 결혼할 것을 굳게 작정했다.
第 3 章
약혼식은 새삼스럽다 해서 길일을 택해서 결혼식만 올리기로 약정이 되었다.
그러나 그 결혼식도 아마 영원히 올리지 못하고 말게 되었으니, 하숙집 母女가 펄펄 뛰면서 그런「분자」인 줄 몰랐다고 母가 이용당했다고 하면, 女는 사기 당했다고 동네 사람들 앞에서 서로 손을 집고 대성 통곡한 끝에는 약혼식을 생략한 것만 천만 다행이었다고 좋아 하게쯤 되었는데 그들이 그럴 수도 있겠다 할 것이 길일이란 그날 현우는 유치장 한 구석에 끼어 두꺼비 눈을 멀겋게 떠들고 앉아 있어야 하는 신세가 되었으니 말이다.
결혼식을 며칠 앞 둔 어느 날, 그날도 미숙이 서둘러 준 도움으로 충분히 지각하지 않았다는 여유를 가지고 유유히 은행문을 들어서려는데 짤각 하고 손목에 금속성의 소리가 감긴 것이다.
사실 미숙과 결혼하기로 약속한 이후로는 한 번도 지각이 없었다. 모녀가 총동원이 되어서 母가 구두를 신겨주면 女는 가방을 들고 대문에 나가 기다리고 있다. 이런 투로 보면 그들은 이때까지 계획적으로 그를 지각시킨 셈이다. 밥은 마지못해 제 때에 지어준다 해도 겨우 먹고 일어서면 가방이 보이지 않고 그 가방을 겨우 찾아들면 구두 한 쪽을 개가 물어 간 것 같다는 것이고 그 구두를 겨우 찾아 신고 대문을 나설라치면,
『아 선생님.』
하고 불러 세운다.
『우리 집이 양반이었다는 거 아시죠?』
한다.
안다고 해야 다음 말이 나온다.
『양반 집에서는 식은 진지는 대접 안 하는 법이라우.』
그래서 그는 퇴근만 하면 곧장 돌아와야만 또 하는 것이다. 여섯 시 반까지 돌아오지 않으면 정말 저녁을 내 놓지 않는 것이다. 안내 줄 뿐더러 묵은 밥이 생겼다고 한참이나 푸념이 계속된다.
그런 날은 外食하지 않고 돌아오면 굶고 자야한다. 그의 월급 가지고는 이렇게 외식할 처지도 못 된다. 그러니 곧장 돌아오지 않을 수밖에. 덜미를 잡혀서 살고 있는 것 같았다. 지작과 저녁밥 사이를 열심히 往後하는 것이 그의 하루였다. 그 反後이 그의 人生이었다. 그도 때로는 억울하다, 분하다, 하는 義憤을 느낀다. 그러나 그 의분도 지각과 저녁밥 앞에서는 맥을 못 쓰는 것이다. 그런 의분쯤은 묵살해 버릴 수 있고 체념해 버릴 수 있는 일이라고 자기 자신을 타이르고 마는 것이다.
그러던 것이 약혼하자 局面이 일변하였다. 우선 현관 옆이던 그의 방이 안방으로 옮겨졌고 모자에서 구두 끝까지 一新이 되었다. 결혼만 해 주면 全財産을 그의 名義로 고치겠다는 선언까지 있게쯤 되었으니 그는 그들에게 하나님과 같은 존재가 된 것이다. 事變前의 神은 좀 달랐지만 어쨌든 두 母女에게 대해서만은 그는 神이 된 것이다. 미숙도 못 생겼지만 동네 사람들은 그 데릴 사위를 다시 훑어 보았다. 아무리 봐도 落第點數를 겨우 면할까 말까 하는 이 번들번들한 양반의 어디에 그렇게 좋은 데가 있을까. 그래서 그들은 은행에 취직해 있으니 무슨 수입이 상당히 좋아서일 것이라고 수군거렸던 것이다.
『이게 뭡니까?』
손목에 채인 쇠고리를 들어보았다.
『딴 소리말구 걸어!』
『도장 찍구요…….』
『뭐라구?』
『출근부에 도장.』
『이 자식, 넌 총살아야. 총살. 알았어!…… 출근두 오늘이 마지막이야!』
내가 무슨 일을 했던가?……署에 끌려가면서 그는 무슨 꿈을 꾸고 있나 싶었다. 아무리 안 땐 굴뚝에서 연기가 나랴지만 무슨 아궁이에도 가까이 가 본 기억이 없다. 지각밖에 한 것이 없다. 이제부턴 지각하는 것도 이렇게 붙들어 가게 된 걸까? 그렇지만 난 오늘 지각 안했는데…….
서에 도착하자 그는 다짜고짜로 물 洗禮를 당했다. 뜨뜻미지근한 물을 끼얹더니 수건으로 얼굴을 마구 닦아보는 것이었다. 그리곤 빤히 들여다보더니 못 마땅하듯 손에 쥐고 있던 寫眞을 책상 위에다 던져 버리고 이번엔 무조건 달려들어 녹초를 만들어 내는 것이었다.
유치장에 집어넣고 이틀이 지나고 사흘이 지나고 해도 소식이 없다. 이렇게 잊어버릴 것이면 왜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달려들어서 때리기는 했을까. 이 두 가지 중에서 어느 한쪽은 無效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거기 先輩들의 말에 의하면 양쪽이 다 有效라는 것이다.
일 주일째 되는 날 그는 취조실로 끌려나갔다.
『바른대로 대라!』
하면서 넓직한 손이 철썩 얼굴에 와 달라붙는다.
『대겠습니다. 대겠습니다. 난 맞는 게 질색이오!』
『질색이라구…….』
하면서 한 대.
『정말 뭐든지 다 대겠으니 이 때리는 것만은 정말…….』
『그렇다면 이거 읽어 보구 도장 찍어!』
『어디다 찍습니까?』
벌써 주머니에서 도장을 꺼내 든다.
『읽어 보구 찍어.』
『아니 먼저 찍구요.』
자기 손으로 인주까지 끌어 당겨 그 調書에 아무 데나 뚝 찍는다.
『너 정신 나갔어……?』
『이래야 맞지 않지요.』
『…….』
『틀린 데가 있으면 이 도장 찍구 고치면 되지요.』
그러나 그는 말을 맺지 못했다. 눈에서 번개가 났다. 손바닥이 아니고 주먹이었다. 걸상에서 굴러 떨어졌다. 발길이 축구시합을 했다. 간단히 기절했다. 다시 정신이 들었을 땐 걸상에 앉아 있었고 머리에서는 물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는 도장을 찍은 조서를 읽어 보았다. 읽어 내려 가면서 그는 놀랐다. 다음엔 감탄했다. 끝에 가서는 산다는 것이 시시해졌다
『당신들은 정말 귀신입니다…….』
죄다 알고 있는 것이다. 사변 전의 가정 환경이며 6․25 때의 일이며, 방위군에서 한 일이며 부두에서 비행장 거기서 포로수용소에 가서 어떻게 지낸 일이며 심지어 환도 이후의 일은 자기도 잊어버린 날짜 시간까지 알고 있는 것이다. 어느 달 어느 날 몇 時 경 무슨 百貨店 앞에 가서 쇼원도우를 몇 분 동안 들여다보았다든지, 몇 월 며칠부터 며칠 동안 점심 시간이면 무슨 茶房에 가서 무슨 曲을 몇 번 틀게 했다든지 某月 某日 某時에 某區 某洞 某番地 앞 路上에서 乞人에게 百 券을 준 것이라든지 일요일이면 서울驛에 나간다는 것까지 죄다 알고 있는 것이다. 내 머리카락이 몇 대라는 것도 알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런 것도 모르고 이때가지 제 딴에는 그래도 사노라고 하면서 산것이 우스워지고 살고 있다는 것이 거짓말 같고 살 맞이 없어지는 것이었다.
내가 한 일은 죄다 알고 있다. 아니 하지 않은 것까지 알고 있는 것이다.
그는 누가 자기를 빤히 보고 있는 것을 느꼈다. 거기를 내려다 보았다. 방바닥에서 그림자가 쳐다보고 있는 것이다. 이놈이다. 이놈이 고해 바치지 않았다면 누가 그렇게 알아낼 수 있겠는가?
『어때 아무리 속이려구 해두 못 속인다는 것을 알았지…….』
『…….』
그림자가 이렇게 끄덕거리라는 것이다.
『그 돈 어디다 썼어!』
『돈? 무슨 돈 말이오?』
『아 요놈 봐라.』
하며 부리나케 한 대.
『난 몰라요! 저 그림자한테 물어 봐요.』
『뭐야! 그럼 이게 뭐란 말이야!』
貯金通帳이었다.
『……?』
자기의 名義로 되어 있고 一金 參拾萬 整이다.
『이 돈 어디서 났느냐 말이야!』
『이게 어디 있습디까?』
『뭐이 달력(月曆) 뒤에다 숨겨 두구서 어디 있습디까…….』
『혹시나 주인 아주머니가 재산을 다 내 이름으로 하겠다더니 혹시 그것이…….』
『네가 그렇게 잘났어!』
주먹으로 그의 이마를 툭 떠밀고 거기 刑事에게 소리를 친다.
『증인을 데려와.』
문이 열리더니 美叔母가 손을 비비면서 나타난다.
『제발 그저, 빨갱인 줄은 까맣게 모르구. 그렇지만 이 돈은 내 돈이오.』
저금 통장을 덥석 집어가고 싶어한다.
『이 할매가 요전엔 새빨갛게 모른다구 해 놓구 맛좀 보겠소!』
『은행 사람의 이름으로 하면 이자가 많애질까 해서…….』
『닥쳐…… 여기가 유치원인 줄 알어!』
『…….』
『그럼 할매두 같은 빨갱이란 그 말이지?』
하고 형사에게
『이 늙은 빨갱이를 유치장에 집어 넣어 버려!』
『아니 다시 생각해 보니 그런 일 절대루 없습니다. 그런 놈의 이름에다 저금을 하다니 남산이 세 쪼박이 나두 내가 미쳤다구 이런 빨갱이 놈에게…….』
『그건 그전부터 동넷사람들의 말이 은행에서 훔쳐온겔 게라구…….』
『돈 잘 썼지?』
『네 그야 물처럼 썼지요. 우리 딸이 속아 넘어 간 것두…….』
『좋아 나가.』
『…….』
玄宇는 그 저금 통장을 집어 가지 못해 하는 눈초리를 자기에게 흘기면서 나가는 주인 할머니의 뾰죽한 입을 보면서 사태가 客觀化되어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는 間諜의 용의자로 감시 받고 있던 중 은행돈을 훔쳐 썼다는 扮書에 의해 잡혀 든 것으로 되어 있는 것이다.
저금 통장을 보았다. 분명히「朴萬同」이다. 九․二八이후 사용한 이름이다. 戶籍도 以北으로 고치고 요즈음은 一․四後退 때 월남한 것처럼 했었다. 무슨 생각이 있어서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그저 그러고 싶어서 그랬다.
정말 그렇다. 주인 할머니가 이렇게 했다는 것은 남산이 세 조각이 나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나는 훔쳐낸 기억이 없다. 그렇지만 이 저금통장은 분명히 朴萬同의 것이다. 그럼 나는 朴萬同이 아니란 말인가. 朴萬同은 내가 아니란 말인가.나는 朴萬同이면서 朴萬同이 아니다. 나는 훔치지 않았으면서 훔쳤다.
『내가 둘이 있었던가?……』
그의 머리는 사개가 어기어진 것처럼 생각이 꼭 맞아들지 않았다. 지나가는 순사마다 툭툭 차고 때리고 하는 통에 어떻게 맞추어 대 볼 겨를이 없다.
그의 視線이 通帳앞에 굴러 있는 寫眞에 가 멎는다.
저게 누굴까?…… 어디서 보던 사람 같다. 아주 변했지만 늘 보던 사람이다. 누굴까?……
아 저건 내다!
그것은 어디서 어떻게 구했는지 웃을까 하면서 찍은 그의 사변전 사진이었다.
『임마, 너 이북에 가서 얼굴을 고쳐 왔지. 응, 간첩 학교에서는 얼굴두 고쳐 준다지…….』
희롱이다.
『자 이거 보구 그 얼굴 제대루 해 봐.』
포켓에서 거울을 꺼내 앞에 갖다 댄다.
『…….』
거울 속의 나와 사진의 나는 전연 다른 것이다. 쌍둥이의 경우와 같다. 쌍둥이는 모르는 사람이 보면 똑같아 보이지만 아는 사람이 보면 전연 다른 사람인 것이다. 나는 이런 陷穽에 빠져 이렇게 울상을 하고 있는데 저기서는 웃고 있는 것이다
『이 자식 바른대루 못 대겠나!』
생각난 것처럼 팔꿈치로 있는 힘을 다해서 정수리를 내리 찧는 것이다.
『아앗! 대 댑니다.』
그때, 열어 놓은 창문으로 바람이 휙 불어 들더니 책상 위에서 그 사진을 안아 갔다.
『저놈입니다! 저놈이 도망칩니다!』
『뭐가 저놈이야!』
사찰에 주임은 사진이 날아가는 것을 못 보았고 거기를 볼까고도 하지 않고 눈만 부라린다.
『幽靈이오! 그때 파묻어 버린 그놈이 도루 살아 났습니다. 미숙과 결혼하려구 한 것두 저놈이오!
아무렇기로 내가 그렇게 못 생긴 여자와 결혼하겠어요.』
『무슨 잠꼬대야!』
또 팔꿈치로 정수리를 박는다.
『정말이오! 난 전부터 남들 보기에는 나와 똑 같은 놈이 내 뒤를 따라 다니면서 내 행세를 하고 있엇다는 것을 벌써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숨을 돌려 쉰다.
『당신들은 나를 차고 때리고 하지만 그래서 나는 돈 훔치구 쇼원도우 들여다보구 하지만 그건 내가 아닙니다. 저놈입니다!』
『누구라구…….』
『바로 저놈입니다.』
손가락으로 방바닥에 굴러 있는 寫眞을 가리킨다.
『나는 다만 그의 흉내를 낸 것뿐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난 산달 수 없는 것을 어떻게 합니까.』
하고 크게 한숨을 내쉰다.
『틀림 없지?……』
거기 가서 사진을 집어 들고 빙그레 웃는다.
『그렇지만 책임은 제가 지겠습니다.』
『묘한 놈이다. 묘하게 부는 놈이다.』
『아시겠습니까. 그와 나는 전연 다릅니다. 나는 檀君의 後孫이지만 저놈은 女眞族의 자손입니다.』
『닥쳐, 듣기 싫어!』
『당신들은 정말 귀신 같습니다.』
그런 투로 四,五일 걸려서 조서의 罪狀을 모두 시인하였다. 걸핏하면 때렸다. 고문 당할지도 몰랐다. 고문당하면 나는 죽는다. 죽는 것은 싫다. 그래서 그들의 이러이러한 일을 이러이러하게 했지 하면 무슨 횡설수설을 늘어놓다가도 결국에 가서는 당신들은 참으로 귀신 같습니다, 하고 마는 것이다. 道理가 없었다. 答은 틀리지만 그들이 벌여 놓는 그 복잡한 式에는 틀린 데가 거의 없는 것이다. 그는 模範答案의심해 보았다가 先生님에게 머리를 한 대 맞고 찍 소리도 못하는 學童과 같았다. 그 귀신같은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 시간과 努力과 기술을 들여서 풀어낸 答이 틀릴 리 있겠는가. 틀린다 하더라도 어찌 감히 우길 수가 있겠는가.
가끔 정신이 들어서 이래서는 안 되겠다고 해서 뭐라고 할까 하면 주먹이 들어오고 발길이 쏟아지고 그렇게 걷어 체우고 얻어 맞고 하면 아―「그 者」때문에 내가 이 고생이구나 하는 식으로 낙착되기가 마련이다.「그 者」를 내세우는 것은 苦痛을 면할 수 있는 가장 合理的인 방법이었다.
一件書類와 함께 그는 檢察에 넘겨졌다.
『이것은 누가 한 짓입니까?』
자기의 自白을 읽어보면서 그는 이렇게 물었다.
『당신이 한 것이라고 되어 있는데.』
『…….』
한 동안 편안히 지내서 깜박 잊은 것이야 아니겠지만 꿈속에서 그러한 일을 이러이러하게 했다고 말한 것 같기도 했다.
『가령, 가령 말입니다. 한 가지 묻겠는데, 가령 꿈속에서 殺人을 했다고 하면 어찌 될까요?』
『…….』
『꿈속에서 사람을 죽였는데 그 꿈속의 動作을 가지고 정말 옆에서 자고 있는 사람을 죽였다고 하면 어찌 될까요? 꿈속의 果刀에는 정말 피가 묻어서 머리맡에 굴러 있습니다.』
『아직 그런 일은 없으니 그런 걱정은 하지 않는 게 건강에도 좋겠소.』
『일부러 살인해 놓고 그렇게 우기는지는 몰라도 아무도 그 꿈을 들어가 본 사람은 없으니까, 가령 여기에 善意의 三者가 있다고 가정하고 그 사람도 증언하기를 분명히 잠꼬대를 하면서 칼을 휘두르더라고 하면 어떻게 될까요? 더구나 犯人은 그런 꿈조차 꾼 적이 없다고 하면 어떻게 될까요?』
『당신이 그렇단 말이오?』
『난 말입니다. 나는 犯人과 그 三者를 겸하고 있습니다.』
『…….』
『경찰이 나를 이렇게 만들어 놨습니다.』
『…….』
『이 일은 어디에 가서 재판 받으면 좋을까요?』
『…….』
『나으리…….』
주의를 살피면서 속삭이는 소리다.
『여기는 두 사람뿐입니다. 여기서 한 말은 법정에 가서두 절대 발설하지 않겠습니다. 징역 같은 것은 지금 문제가 아닙니다. 정말 이 내가 그런 짓을 했을까요? 정말 이 내가 以北에 갔다 온 적이 있습니까? 사실을 말해 주시오. 마음속에서 생각하고 있는 그대로를 말해 주시오! 이 짓을 한 것은 정말 이 냅니까? 이 짓이 정말 地上에 일어났던 일입니까?』
『그러면 당신이 아니했다는 증거를 보이오.』
『증거?……』
『이 조서에 씌어 있는 것을 반박할 만한 증거 말이오.』
『그건 말입니다. 式은 맞지만 答이 틀립니다.』
『式에 틀림이 없으면 答도 틀림이 없다는 것이 이 세상의 약속이오.』
『그 <이퀄>(=)이란 것은 정말 <이퀼>일까요?』
『…….』
『거기에 무슨 중대한 착오가 있는 것이 아닐까요?』
『무슨 소린지 모르겠는데.』
하고서 소리를 가다듬는다.
『그러면 이름은 왜 고쳤구, 호적은 왜 이북으로 했소!』
『그건…….』
『자기 집이 엄연히 있으면서 왜 하숙을 했고, 아는 사람을 보고도 왜 아닌 척했는가?』
『그것은 별로 이유가 없습니다.』
『그것은 이유가 있어야 하오!』
『하숙집 모녀와 직장의 몇몇 사람 이외 대한민국의 市民과 개인적으로 접촉하고 있는 사람이 왜 한 사람도 없었소!』
『그런 간첩이 어디 있습니까?』
『말 말아요! 바본가 하면 아주 명석하구 정신이 이상한가 하면 대단히 論理的이오! 그러면 당신은 무엇이오!』
『…….』
『부두 노동을 하면서 정보를 수집하지 않았고 비행장에 가서 군사기밀을 탐지하지 않았고 포로수용소에 가서 指令을 전달하는 일을 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대오! 환도해서 반 년 동안 이북에 갔다오지 않았다는 증거를 제시해 봐요!』
『그러면 저의 자백 이외 내가 그랬다는 증거를 보여 주시오.』
『안 했다는 증거를 대란 말이오!』
『그건 살고 있다는 증거를 대란 것과 마찬가집니다. 당신이 현재 살아 있다는 증거를 제시해 보십시오.』
『내가 죽은 사람이란 말이오!』
『그럼 죽지 않았다는 것만이 살아 있다는 증거가 된단 말입니까?』
檢事는 화가 났다.
『여기는 生物敎室이 아니라 검찰청이오! 알겠는가. 은행 돈을 훔치지 않았고 간첩행위를 안 했다는 증거만이 당신을 무죄로 할 것이다!』
法廷에서 검사는 긴 論告 끝에 징역 10년을 구형했다.
그 논고에서 은행 돈을 횡령했다는 罪目은 자취를 감추었었다. 그에 관한 各新聞의 取材角度가 取調方向과 달라지자 횡령되었던 公金이 구렁이 담 넘는 식으로 도로 金庫 속으로 기어 들어가서 그件은 흐지부지 꼬리를 감추어 버린 것이다.
「橫領」이 그렇게 되니 一般「間諜」에 대해서도 한 번 의심의 눈초리를 던지게 되는 것이었다. 記事거리가 없었던 차라 신문들은 대사건이 되는 것처럼 그 公判記를 針小棒大해 가지고 독자의 구미를 돋구었다. 어떤 三流新聞은 「韓國動亂의 野史」라는 奇矯한 제목으로 社說에까지 올려서 犯罪事實을 부정하는 듯한 논조로 사건을 해부했다. 타부인 간첩사건을 그렇게 동정적으로 다루어도 일반도 당국도 介意치 않는 것이었다.
묘한 公判이었다. 辯護人은 官選이었으나 이 변론에 관선 이상의 열정과 무슨 보람을 느끼고 있는 듯했고 裁判長은 가끔 검사에게 핀잔을 던지고서는 自己滿足에 젖어드는 것이었다. 검사만은 檢察의 위신을 위해서 시퍼런 칼을 휘두르는 것이지만 2,3차나「피고는 자기 진술이 어떠한 刑量을 가져오는 것인가를 알아 가지고 답변하는 것이 좋겠다」고 주의를 환기시키기까지 했다.
이렇게 法廷 안팎의 겉으로 내놓거나 내심으로거나 모두 편들고 있는데 오직 한 사람 여기서 그의 편을 들지 않는 자가 있었는데 피고 자신이다. 자기를 위해서 땀을 흘리며 토하고 있는 변호인의 열변을 뒷받침은 고사하고 물을 끼엊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예를 들면 1․4후퇴 때 주먹밥을 나누어 준 美少年에 관해서 피고의 인도주의적 심정을 강조한데 대하여 同性愛도 인도주의랄 수 있느냐고 반문한다든지 피고는 경찰의 고문에 못 이겨 허위 자백한 것이라고 한데 대하여 자기는 노래 부르는 것처럼 고백했다고 하는 따위이다. 기분이 나빠진 변호인은 피고를 精神鑑定에 붙여 보자고 까지 해 보았다.
模擬裁判을 보는 것 같았다. 방청석은 대부분 학생들이었는데 그들은 웃다가도 심각해지고 심각해지다가도 웃어대지 않을 수 없었다. 비통한 소리를 하는가 하면 갑자기 참새처럼 지껄이고 해서 그래서 방청인 가운데는 저 者가 정말 간첩행위를 했다면 그것은 무슨 政治的동기에서가 아니라 스포츠라도 하는 기분으로 더 나쁘게 말하면 신문에 이름이 나고 싶어서 네거리의 電柱에 올라가서 시그날을 때려부수는 末成年과 같은 類일 것이라고 보고 싶어하는 사람도 있었고 행동에까지는 아직 옮기지 않았지만 接線쯤은 혹 했을지 모르겠다 하는 사람도 있었다.
어떤 땐 어떤 角度로 보면 그는 피크닉 氣分인 것이다. 形量에 아무 관계도 없는 말초적인 일에 관해서 이를테면 그때 쇼원도에는 어떤 상품들이 진열이 되어 있었는가, 그때 茶房 레지는 싫은 얼굴을 했는가 좋은 얼굴을 했는가 하는 그런 따위를 말해 보라고 열을 올리면서 검사를 끝내 화를 내게 하는가 하면 근본 문제에 대해서는 지극히 담담한 것이다. 했는가 안 했는가 재판장이 따지는데 대하여 그것을 알아내기 위해서 이렇게 재판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고 남의 일처럼 대답했다. 재차 재판장이 다지는데 대하여는 마지못한 듯 한 것 같기도 하고 안한 것 같기도 하면서, 自白은 시인하면서 그리고 그 자백이 고문에 의한 것이 아니라고 하면서 犯罪事實自體는 부인하는 것이었다. 그런 꿈을 꾼 것 같기는 하지만 기억에는 없다는 것이다. 그런 것은 내게 묻지 말고 저 검사에게 물어 보라는 것이다. 그는 나보다 내 일을 더 잘 알고 있다고 不滿비슷한 소리를 하는 것이었다.
그러던 그가 한땐 失語症에 걸렸다. 事實審理가 끝나고 변론에 들어갔을 때다. 그는 무슨 김에 초만원을 이룬 방청석을 돌아보았다. 눈 눈 눈……그는 얼굴이 화끈해졌다. 많은 눈이 오글거리면서 자기를 쏘아보고 있는 것이었다. 그 視線의 빗발에 등마루가 흠빡 젖어드는 것을 느끼면서 그는 孤獨에 휩쓸렸다. 무엇보다 자기는 지금 孤獨한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언제 이런 외로움 속에 놓인 적이 있다. 언제던가? 어디던가…….
아 萬國旗 아래서다! 그때 少年은 이 내였다. 내가 그때 여기서 이렇게 외톨로 서 있었다 모두들 市街行進에 나가고 내 혼자 여기에 서 있다. 그는 재판장을 보았다. 검사를 보았다. 변호인을 보았다.
이들은 왜 저렇게 앉아 있고 서 있고 떠들고 있는 것일까.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이다. 무엇을 하고 있는 중일까. 그는 그들이 왜 이렇게 성낸 얼굴들을 해 가지고 모여 있는지 알 수 없는 것이다. 다만 그들이 지금 人間的인 일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 것만은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이쪽 편의 이것은 여우고 저편 저것은 늑대고 정면에 버티고 있는 것은 곰이고 그리고 내 뒤에 있는 것은 원숭이들이다.
내만이 여기서 人間이다! 그래서 나는 孤獨하다.
그들이 무슨 일을 가지고 이렇게 떠들고 소리 지르고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들의 말을 알 수 없다. 몇 초 안 되는 동안의 일이었지만 그는 그들이 하는 말의 意味를 알 수 없었다. 들리는 것은 지리멸렬한 騷音의 行列이다.
斷絶이다. 나는 그들과 단절된 것이다! 交通이 끊어졌다. 그래서 나는 이 모든 것들의 中心에 위치해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를 삑 둘러 싸고 재판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이들은 나를 재판하겠다는 것이다. 孤獨을 재판하겠다는 것이다. 生에게 有罪判決을 내리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中止시켜야 할 性質의 것이다. 中心을 재판하는 것은 圓周를 抹殺하는 것이다. 그들은 자기들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모르고 있다. 動物劇이라도 하고 있는 줄 알고 있다. 普通學校시절 學藝會때 動物劇에 출연했던 생각이 난다. 내가 맡은 것은 앵무새였다. 나는 台詞를 외어 두지 않아도 좋았다. 남의 흉내만 내면 되었으니까. 그런데 실수를 했다. 너무 긴장해서 「비가 오신다」하는 것을 「洋傘이 오신다」했다. 관중석에서 폭소가 터졌다. 나는 울음을 터뜨리면서 무대에서 도망쳤다. 그래서 그 動物劇이 깨어졌다.
그는 일어나서 손을 내저으면서 말을 하려고 했으나 생각이 밖으로 말이 되어 나가주지 않는 것이다. 생각은 「비」인데 입은 「양산」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입술과 혀가 자꾸 어긋나면서 헛소리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이 안타까움. 소리와 뜻의 乖離…….
그것은 生의 解放이었다. 꽁꽁 얼어 묶이고 묶였던 生이 거기로부터 풀려지는 것 같은 安穩함, 봄이다!
벙어리가 손짓하며 뭐라고 하는 것 같은 그의 그런 모양에 변호인도 말을 멈추고 失笑했다. 법정은 폭소의바다가 되었다.
그 웃음소리 속에서 玄宇는 슬픔과 노여움과 부끄러움 때문에 몸이 쌀가마니처럼 무거워졌다. 저들에게 통할 수 있는 말이 없는 것일까……意識이 희미해져 갔다.
딱 딱 딱 나무를 때리는 소리에 머리를 들었다. 재판장은 休廷을 선언하고 자리에서 일어서는 참이었다. 현우는 꿈에서 깨어난 것처럼 분연히 일어섰다. 그리고 자기는 玄宇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나는 박만동이오! 날 때부터 내 이름은 박만동이오!』
그리고 풀썩 주저앉았다.
그 소리에 헤벌려졌던 모든 사람의 입을 다물게 하는 切迫感이 있었다.
변호인은 멋도 모르고 證人소환을 신청했다. 재판장은 그 신청을 却下하지 않았다.
그러나 四, 五일 후 속개된 공판정에서의 피고의 태도는 또 사람들을 실망케 하였다. 證言이 진행되는 동안 그는 가을이 깊어 가는 窓 밖 파란 하늘을 구경하고 있는 것이다. 자기 말이 정당하게 해석되어 있지 않는 데 대한 불만이다. 암만해도 말은 밖에 나가 空氣에 닿으면 變質하는 것이라고 외로왔다.
증인으로 소환된 것은 玄宇가 사변 전에 살았던 동네사람, 同窓, 郡民會 관계 등 七, 八명이었는데, 군민회의 幹事라는 사람은 피고와 같은 洞里에서 월남해 온 사람은 市內에 없기 때문에 자기가 나왔다면서 名簿에 朴萬同이라는 이름이 있고 부산에서 한 번 환도해서 한 번 野遊會를 가졌는데 두 번 다 그 이는 참석했는데 그 사람은 저 피고와 같았던 것 같다고 증언했다. 동네 사람들과 동창생들의 증언을 同一人物이라고 하는 측과 딴 사람이라고 펄펄 뛰는 사람과 잘 모르겠다고 하는 편이 數로는 서로 비슷비슷했다.
公判은 갈수록 佳景이다. 방청인들은 새삼스럽게 이상한 감회에 사로잡혔다. 그렇다고 해서 玄宇와 朴萬同이 別人이라고 생각하려는 사람은 없었다. 그들이 새삼스러워 한 것은 같은 사람이 五年도 안 되는 사이에 그렇게까지 달라질 수 있을까 하는 것에서이고 그쯤되면 딴 사람으로 취급해 주는 것이 合理的이 아닐까 싶었던 것 뿐이다.
그러나 이 證人審問은 처음부터 募間에 지나지 않았다. 설령 딴 사람이라 해도 朴萬同이가 했다는 간첩행위 자체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검사는 처음부터 이에 흥미가 없었고 다만 재판장의 심심풀이를 방해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재판장은 한 술 더 떠서 피고는 딴 사람이라고 한 증언과 같은 사람이라고 한 증언 중 어느 편에 들고 싶은 가고 비꼬아 보았다. 거기에 대하여 그는 「나는 양쪽을 합한 것」이라고 하면서 人間에게 兩面이 있는 것이 아니라 원래 兩面을 합한 것이 인간이었던 것이 아니냐고 잘라서 대답하고 더 말이 없었다.
無聊했다. 옷자락으로 스며드는 가을의 촉감을 느끼면서 그는 자기도 포함해서 모두가 가엾은 생각에 잠기었다. 자기도 포함해서 이들은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고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그 意味를 모르고 있는 것이다. 生이라는 것은 것을 모르게 하는 防腐劑였다. 죽을 때까지 자기가 하는 일, 하고 있는 말이 무엇인지를 모르기로 한 代價로 주어진 것이 生이다. 生이란 그렇게 애처롭고 비싼 것이다. 서로 위로하고 감싸줘도 아픈 生……그의 눈시울에는 이슬이 맺혔다.
우리 人間은 너무 두꺼워졌다. 그래서 生은 미지근한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생생한 生이 이렇게 미지근해졌을 리 없다.
最後陳述에 일어선 그는 미지근한 말, 즉 그들에게도 통할 만한 말을 늘어 놓았다. 그러나 그것도 통하지 않았다.
『……저는 김미숙양과 결혼하기로 작정한 이래 聖經책을 읽기로 했는데 그 가운데에 이런 구절이 있더군요. 「너희들 가운데 죄가 없는 자기 나와서 이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검사의 논고를 보면 文書僞造를 비롯해서 間諜罪 이외에도 너덧 가지의 죄목이 들어 있는데 나는 왜 그것이 罪가 되는지 모르겠고 이런 투로 하면 재판장도 피고석에 세워 놓으면 서너 가지에 여남은 件이 있을 것입니다. 없다면 없다는 것을 증명해 보시지. 절대로 증명 못합니다. 그런데 당신은 피고석에 서 있는 것이 아니고 또 아무도 서라고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여기는 「世界」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손에 들고 있는 그 六法全書에는 世界가 다 들어 있다지요? 그러나 그 六法全書 밖에 있는 世界가 더 너르지요. 그래서 당신은 거기에 편안히 앉아 있을 수 있지요. 그렇지 않고 六法全書의 世界가 「世界」라면 당신은 벌써 걸려들었을 겝니다. 그게 그렇지 않고 거기에 태연히 앉아 있을 수 있는 것은 거듭 말하지만 그게 모두 世界 「안」에서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무덤에서 나온 이래 그 世界 안에서 살지 않았습니다. 나에게 有罪判決을 내릴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그 世界안에서 당신에게 有罪判決을 내릴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裁判長은 神經質的으로 넥타이의 매듭을 누르면서 懲役 十年을 言渡했다.
놀란 것은 檢事였다. 재판장이 노망했나 했다. 그는 無罪가 언도 될 것을 짐작하고 위신상 上訴할 준비를 단단히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재판장은 노망한 것이 아니었다. 아침에 나오다가 夫婦싸움을 했다. 마누라에게 멱살을 잡혀 두세 번 휘둘리었다. 그 때문에 와이샤쓰의 윗 단추가 떨어졌다는 것은 登廳해서 法廷으로 나오려고 할 때 陪席判事가 가르쳐 주어서이다. 그의 괸자놀이는 羞恥와 부아로 경련을 일으켰다.
법정에 나가보니 被告는 전연 자기를 안중에 두고 있지 않는 것이다. 無視도 아니고 度外視하고 있는 것이다. 나를 구경하고 있다! 「두 세 가지에 여남은 件」은 아량으로 불문에 붙이고 아침에 일어날 때 오늘 무죄언도를 선언할 것을 생각하고 흐뭇해 했는데 그것도 모르고―― 그것도 모르는 것은 이놈뿐이 아니다. 마누라 년은, 나는 내가 이렇게 출세할 줄 모르고 거의 職工의 딸이랄 수 있을 만큼 賤하던 것을 끄집어 올려서 마누라로 해주었는데. 그것도 모르고 내 멱살을 잡아 휘두르면서 아까 뭐랬다. 「어이구 나라가 망하겠소, 나라가. 당신 같은 것이 다 재판장이우」――이런 놈에게 아량을 베풀어준다는 것은 그놈의 聖經은 아니지만 돼지에게 眞株다! 「懲役 十年에 處함!」했다. 二審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그리고 裁判長이라고 神이 아니다, 誤審할 때도 있다 했다.
그런데 被告는 상소를 포기하겠다는 것이다.
『이 망할 놈이! 내게 무슨 怨讐냐!』
理由文을 고쳐가면서 앍느라고 진땀을 뺐던 재판장은 눈앞이 아찔했다.
후회막급이다. 判決文을 내보이면서 아까 것은 아니라고 할 수는 더욱 없는 노릇이었다. 배석 판사들은 재판부의 威信을 위해서 여기서는 꾹 참기로 했는지 입술을 깨물고 있는 대로다.
『이 일을 어찌나! 이 일을!』
檢事를 보았다. 그도 惡夢에서 깨어난 것 같아 하고 있지 않는가!
檢事는 이내 시치미를 뗐다. 방청인들의 동요는 求刑과 言渡가 同一한 것에 놀란 것이지 「有罪十年」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그는 아까 感得했던 것이라고 했다.
그는 「十年」이 적합하다고 믿기 시작했다. 被告에게 전연 罪가 없다 하자. 그렇지만 罪狀은 있다. 檢事가 하는 일은 罪狀을 剔決하는 일이지 罪 自體를 다루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의 自白이 사실이라면 判例로 보아 十五年 求刑이 마땅하다. 그러면 재판장이 十年을 言渡한다. 그러니 나는 그래도 관대한 편이다.
검사의 입가에는 자기 勝利에 만족하는 웃음이 떠올랐다. 그 웃음을 보자 재판장도 생각을 다시 할 수 있었다. 처음부터 나는 피고에게 너무 동정적이었다. 내가 出世 못하는 것도 이 同情心 때문이다. 출세 못하는 것은 좋지만 法官은 법에 충실해야 한다. 눈물 머금고 법을 執行해야 한다.
피고에게는 좀 안 되었지만 국가 사회의 安寧秩序를 위해선 눈을 감아야 하겠다.
그래서 눈을 감았다. 이리하여 誤審으로 일어났던 旋風은 가시어 지고 世界는 그 貫祿을 더 하였다. 世界는 바다보다 깊고 하늘보다 너르다. 世界안에서는 무엇이든 아물기가 마련이다. 그래서 世界는 늘 無事해지는 것이다.
그 世界를 建設하고 維持해 가고 잇는 것은 朴아무개, 李아무개, 金아무개라는 人間이 아니라 係長, 局長, 大尉, 學者, 이러한 「專門家」들이다. 이러한 專門家들이 人間을 支配하고 裁判하고 한다. 世界는 人間의 것이 아니고 專門的 職業家들의 것이다. 한번 그들의 손에 걸려들면 人間이란 거미줄에 걸린 나비다. 버둥거릴수록 거미줄은 생생해지는 것이다. 人間이란 世界에서 보면 肥料에 지나지 않는다. 그 肥料를 養分으로 해서 制度가 생기고 科學이 생겼던 것이다.
玄宇가 상소를 抛棄한 것은 하나의 어리광이었는지도 모른다. 어리광이란 말이 어폐가 있다면 「당신들은 참으로 귀신 같습니다」라는 意味로 번역할 수 있는 詠嘆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설마 했는데 「懲役 10年에 處함」을 들었을 때 순간 얼떨떨했고 그렇다면 나에게도 할 말이 있다 해서 上訴를 포기한 것이었다. 上訴해도 이길 자신이 없었다. 그들은 世界이고 나는 人間에 지나지 않았다.
해질 무렵 刑務所에 도착한 그는 監房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버티었다. 看守에게 매어 달려 저 속에 집어넣지 말아 달라고 눈물을 흘리면서 애원했다.
화가 난 간수는 한 손으로 덜미를 잡고 무릎으로 그의 엉덩이를 툭 떠밀며 門부터 탕 하고 닫아버렸다. 안에서는 목에 칼이 꽂힌 것 같은 고함이 터져 나왔다.
『엄살두 저런 엄살은 처음 봤다.』
간수는 투덜거리면서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창자를 끊어내는 것 같은 소리는 한참이나 계속되었다.
밤중, 看守는 이상한 豫感이 나서 그의 감방으로 가보았다. 조그만 구멍으로 들여다보았다. 없다. 희미한 등불 아래 어디에도 罪囚는 보이지 않았다.
『脫獄?』
깜짝 놀라서 문을 열었다.
열리는 문과 함께, 피투성이 된 바른 손을 한쪽 손으로 높이 받쳐 쥐고 祈禱드리듯 무릎을 꿇고 있었던 罪囚가 흘러내리듯 쓰러지는 것이었다.
그것은 이미 屍體였다. 손가락이 문틈에 찝혔던 것이고 그의 몸은 못에 걸린 부대처럼 거기에 달려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피가 그렇게는 흘러 있지 않은 것으로 보아 多量의 流血 때문에 죽은 것이 아니고 아픔 때문에 아픔 속에서 아파서 죽은 것인지도 몰랐다. 어찌 보면 맞는 것이 질색이어서 결국 十年徵役에까지 떨어진 그다. 體質이 약해서 죽은 셈이다.
이리하여 한 人間의 歷史는 끝났다.
가을 밤의 싸늘한 공기에 조는 듯한 등불빛 아래, 四肢를 가두고 기도 드리듯 쓰러져 있는 罪囚, 그것은 化石도 胎兒도 아니요, 다자란 現代人의 주검이었다.
어머니의 訃告를 손에 들고 집을 나온 以來 무덤을 기어 나와 겪은 일, 경찰에 붙잡혀 가서 당한 受侮, 그리고 거기서 받은 傷處, 그 아픔은 비단 그만이 겪고 당하고 느낀 아픔은 아니었다. 現代에 生이 주어진 모든 人間이 깊거나 얕거나 당하고 있는 수모요 傷處, 아픔이었다. 다만 그것이 미미하거나 마음이 살쪘거나 中毒이 되어서 느끼지 못하고 있을 따름이다.
그래서 「이렇게 죽는 등신이 어디 있어!」하면서 화를 냈던 看守의 눈에서 굴러 떨어지고 있는 것은 人間이 人間에게 흘리는 눈물이었다.
장용학(張龍鶴: 1921- )
함북 부령 출생. 경성 중학 졸업. 와세다 대학 상과 중퇴. 1948년 {육수(肉水)}, 1950년 {지동설}을 창작. 1952년 {미련 소묘}가 <문예>의 추천을 받아 등단함. 그는 인간의 모멸찬 의식과 극한적 현실을 적나라하게 묘사하여 인간의 실존적 의미를 탐색한 실존주의 경향의 작가였다.
주요 작품으로는 {요한 시집}, {비인 탄생}, {나마의 달}, {청동기}, {태양의 아들}, {유역}, {원형의 전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