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산도(黑山島)
첫 조금{潮減}이 지난 달무리였다. 철에 고깝지 않게 포근한 날씨가 새벽눈이라도 내릴 것만 같았다.
손바닥 오그린 모양으로 오붓하고 아늑하게 생긴 좌청룡(左靑龍) 우백호(右白虎)에 감싸인 마제형(馬蹄形)의 형국(形局)이라는 나루였다.
평나무․누럭나무․재빼나무가 우거진 속 용왕당(龍王堂)이 버티고 서 있는 당산(堂山) 기슭에 감아붙어 갯밭에 오금을 괴고 조개껍질처럼 닥지닥지 조아붙은 마을 한 기슭으로 뒷주봉 나왕산(羅王山) 골짜기에 꼬리를 문 개울이 밀물을 함빡 삼켰다가 썰물에 구렁이처럼 갯벌로 꿈틀거리고 흘러내리는 것이 희미한 달빛에 비늘처럼 부서진다.
갯가에서는 마을 장정들의 흥겨운 노래 소리가 꽹과리․장구소리에 섞여 당산까지 울렸다가는 숨죽은 듯 고요한 바다 위로 다시 퍼져 흩어진다.
인실이네 마당에서는 큰애기들이 손에 손을 잡고 둘레를 돌면서 메기고 받는 강강수월래가 그칠 줄을 모른다.
딸아딸아 망내딸아
인실이 어머니의 메기는 소리다.
강강수월래 -
큰애기들은 목청을 돋구어 받는다. 빨리 돌 때는 큰애기들의 삼단 같은 머리채가 궁둥이를 치고 허리통에 휘감긴다.
너만 곱게 잘만커라
강캉수월래 -
어느덧 노래는 그들이 가장 즐기는 <둥당의 타령>으로 바뀌었다.
둥당에다 둥당에다
당기둥당에 둥당에다
큰애기들은 흥겨워 저도 모르게 어깨춤에 가랭이질이 섞인다.
저기가는 저생애는(생애 : 喪輿)
남생앤가 여생앤가(남생애 : 남자가 죽은 상여)
여생질에 가거들랑(여생질 : 여자가 죽어 상여로 가는 길)
우리 엄마 만나거든
어린 자식 보챈다고
백수벵에 젖을짜서
한숨으로 마개막아
무지개로 .끈을달아
전하라소 전하라소
안개 속에 전하라소
까막개{黑浦}의 밤은 추위도 모르고 깊어만 갔다.
북술이는 동무들과 맞잡고 둥당의 노래를 부를 때는 아무 시름도 없이 즐겁기만 했다. 그러나 혼자서 이 노래를 읊조리면 얼굴 모습조차 기억 속에 더듬기 어려운 어머니의 옛이야기처럼 서러움이 꿀컥 치밀었다. 둘레를 돌면서도 북술이의 눈은 이따금 갯가로 옮겨졌고, 그럴 때마다 용바우의 믿음직한 목소리가 귓전을 어루만져 슬픔을 가라앉히곤 했다.
갯가에는 막걸리를 나누는 참이었는지 한참 잦았던 징소리가 이번에는 더 세차게 마을을 스쳐서는 뒷주봉에 메아리를 울린다.
-한아부지가 기다릴라-
아쉬운 생각도 없지 않았지만 노래 중간에서 뺑소니를 쳐 나온 북술이의 걸음은 집에 가까울수록 무거워만 졌다.
당산 밑 낭떠러지에 등을 대고 다가붙은 갯집 큰방에는 불빛도 보이지 않았다. 정지와 큰방과 마루를 둘러싼 앞마당은 그대로 행길이자 갯가였다.
「인자사 와……」
굴뚝 뒤로 우거진 동백(冬柏)나무 그림자에서 불쑥 튀어나오는 소리였다.
「아이고 놀랐재라우, 누고…… 」
「나야, 나. 」
용바우의 크고 벌어진 어깨가 북술이 앞으로 다가왔다.
「난 또 누구라고, 갯가에서 벌써 왔는지라우.」
「안 갔재라, 내일이 유왕님(龍王)고사 모시는 날이랑께.」
「응, 그랴.」
북술이는 깜빡 잊었던 용왕제 (龍王祭)가 생각났다.
「그렁께로 술도 고기도 못먹고 정히 한다이께.」
까막개 사람들은 바다와 싸우면서 바다를 의지하고 살아왔다. 폭풍우를 만나면 바다가 적 이었고, 고요하게 잠자는 날이면 바다보다 다사로운 벗은 없었다.
이 섬에서는 일년의 넉 달은 농사가 살려주고 나머지 여덟 달은 바다가 키워주어 미역과 좌반과 생선으로 목숨을 이었다.
그들은 바다에서 나서 바다에서 죽었다. 용바우 아버지도 그랬고, 북술이 아버지도 그러했다. 원수인 바다에 끝없는 저주를 보내면서 바다에 대한 지성은 그들의 신앙이었다.
그러기에 가장 허물없고 깨끗한 젊은이들이 해마다 정초에는 용왕제 집사(執事)로 뽑혔다. 용바우도 금년에는 이 정성스러운 일에 한몫 들었다.
용바우는 열다섯에 첫배를 탔다. 털보영감으로 통하는 안선달과 두 살 맏이이지만 알이 작기에 대추씨라는 별명을 가진 두칠이 틈에 끼여 북술이 할아버지 박영감과 함께 칠산(七山) 바다에서 연평(延坪) 앞개까지 올리훑는 조기잡이로 시작된 뱃길이 어느새 십 년이 흘렀다.
세월은 박영감의 등에서 살점을 앗아가고, 머리빛을 갈아내고, 이마에 밭이랑 같은 주름을 박아 가는 사이에 용바우는 제법 소금섬 두 가마씩을 단숨에 지고 발판을 나는 듯이 뱃전으로 오르내리게 되었다. 간물에 절은 검붉은 얼굴은 윤기를 띠었고 이글이글 타는 화경 같은 눈동자는 박영감의 가슴속 빈 구석을 채워주었다.
용바우에게 북술이는 거리낌도 수줍음도 없었다. 나이야 먹어가든말든 그대로 장난이요 반말이었다. 그러던 북술이가 어느덧 용바우 앞에서 옷고름을 물지 않으면 앞섶을 만지작거리는 버릇이 생겼다.
박영감은 박영감대로 용바우에 대한 속셈을 했고 용바우는 어느새 북술이가 제 물건처럼 소중해졌다. 북술이도 노상 용바우가 싫지는 않았다.
「그라문 간물에 몸을 씻고 가지라우.」
「내일 새벽 일찌기 씻는당께.」
「배는 언제 떠나고.」
「이자 배꼴을 박고 끄스리문 모레쯤 떠나제. 올에는 새로 묵은 배니께 흥두 날께라. 」
「그랑이께, 두 밤 자문?」
「응, 그랴.」
용바우는 달빛에 어린 북술이의 얼굴이 봉오리 벌어지는 동백꽃보다 더 아름답다고 느껴졌다. 몸집이 마음놓고 굵어진 것 같아 부풀은 가슴이 풀 먹은 인조견 저고리 앞자락을 슬며시 들고 일어섰다.
「북술이는 또 나이 하나 더 먹었으니께 인자 열아흡이제.」
「누군 나이를 안먹구 나만 먹는지라우.」
고름 끝을 비비는 북술이의 입가에는 엷은 웃음이 어렸다. 용바우는 북술이의 입이 가장 복스럽다고 생각되었다. 그 입으로 말이건 웃음이건 거푸거푸 새어나오게 하고만 싶었다.
-북술이는 지 어무니를 닮았재라우, 고 복스런 입이 더-
입버릇처럼 뇌까리는 인실이 어머니의 말이 떠올랐다.
「인자 씨집도 가양께.」
처음 하는 소리였다. 그러나 지난봄부터 용바우의 혀끝에서 맴도는 한마디였다.
「누가 씨집 간다는지라우. 」
「그랴문 씨집두 안가구 큰애기로 늙으라제.」
「언제 누가 큰애기로 늙는당께…… 남의 걱정 말구 장가나 가라재라우.」
북술이도 이번에는 가슴이 탁 트이도록 소리를 내어 웃었다.
어느 사이엔지 용바우의 삿대 같은 팔은 북술이의 겨드랑이를 스쳐 사등이뼈가 바스라지도록 껴안은 판에 가슴은 숨막히게 가빴다. 용바우의 뜨거운 입김이 북술이의 이마를 확확 달구었다.
「어디 참말 씨집 앙가나 보자이께.」
「누구는……」
봉창문이 삐걱 소리를 내었다. 박영감의 쿨룩거리는 기침소리였다.
「누구라.」
「……」
「누가 왔는게라.」
「나 북술이라우.」
「응, 북술이라.」
「야.」
북술이의 허리를 놓은 용바우는 슬며시 갯가로 돌아 까막바위 쪽으로 내려갔다.
「누가 왔지로. 」
「저, 용바우가. 」
「새날이문 유왕님 고사에 나갈 놈이 가시나하고 무슨 짓이라.」
다시 박영감의 해소가 끊이지 않는 사이에 북술이는 방에 들어가 쪼그리고 누웠다. 그러나 용바우의 입김은 아직도 이마에 뜨거웠다.
먼동이 트기 전부터 내리는 눈은 솜송이 같이 함박으로 퍼부어 미처 녹다못해 오래간만에 쌓여졌다. 당산에서는 본당(本堂) 정면에 단청 (丹靑)으로 그려진 남녀 괘화(掛畫) 앞에 소 한 마리가 사각(四脚)의 두족(頭足)으로 동강이 나 놓여 있고, 이 한해의 잡귀 (雜鬼)를 몰고 풍어(豊漁)를 기원하는 고축(告祝)도 끝났다. 만선(滿船)을 축원하는 용마우의 머릿속에는 북술이가 크게 자리잡고 있었다.
한낮이 되자 하늘은 개고 거의 녹아버린 눈길에 마을사람들은 명절보다 더 기뻤다.
달이 나왕봉 마루에 기울기 시작했다. 까막바위 앞에 옹크리고 앉은 두 그림자는 이윽하도록 움직이지 않았다. 잔물결이 바위 밑에 부서졌다가는 밀려가는 것이 차츰 거세어졌다.
「그라이께, 새벽참에 꼭 떠나야제.」
「그랴.」
「한아부지가 보름이 나 지나믄 나가자는디. 」
「물감자(고구마)도 그만 다 떨어졌지라, 먹을 것이 바닥이 났으라우. 」
「그랄 테지라, 하지만……」
「아니요, 보름 전에 한 축은 해야 한다이께.」
용바우는 담배를 말아서 불을 붙였다. 두툼한 양 볼이 오무라지게 빨았다가는 길게 내뿜었다. 눈 온 뒤에는 꼭 바람이 터진다는 할아버지의 말이 다시 떠올라 북술이는 어쩐지 불안스러웠다.
「보름을 쇠구 가제 그라요. 」
「보름은 손구락을 빨고 쇤당가. 새벽참에 떠나문 보름 전에 돌아오지라. 」
잊었던 찬 기운이 겨드랑이로 스며들었다. 북술이는 용바우 무릎에 바싹 다가앉았다.
「그라이께 말이여, 이번 한 채만 잘 하믄 그걸 포라서 북술이 신발을 싸고 나도 작업복이나 한 벌 갈아입어야제.」
「……」
용바우의 거북등 같은 손아귀에 곽 쥐인 북술이의 손은 해면처럼 오그라들었다. 북술이는 용바우가 껴안는 대로 잠자코 있었다. 머루알 같은 젖꼭지에 용바우의 손끝이 닿으니 등줄기가 저리도록 간지러웠다.
용바우는 박영감을 찾았다.
「나두 인자 이만큼 하이께 한아부지는 그만 쉬지라우. 올해는 셋이서 넷 몫을 하랍니데.」
「글쎄라 ……」
「털보영감과 두칠이두 그랬지로, 해소가 심한디 조섭을 해야지라고. 」
「이래도 배에만 오르믄 상관없는지라.」
박영감은 곰방대를 들면서 긴 한숨을 꺾었다.
「가알(秋)도 아니고 절(冬)에 안되지라.」
「그래섰지마는 어디 그랄 수야……」
벌써 몇 번이나 되풀이되는 이야기였다. 정지에서 뱃점심 고구마를 솥에 안치고 있던 북술이는 코허리가 시큰했다. 눈꺼풀을 까물거리니 기어코 방울이 떨어졌다. 설 보름과 제사 때만 맛보던 쌀밥이건만 아버지 제사에 쓰려던 멥쌀을 갈라서 고구마 솥에 깔았다.
첫닭이 울었다. 배는 물때를 따라서 떠나야 했다. 앞개에 늘어선 배마다 불이 환했다. 나루터는 찾는 소리 대답하는 소리에 왁자지껄 고와댔다.
털보영감은 홍어주낙을 올리고 두칠이와 용바우는 뒷장에 그물을 실었다. 물동이를 이고 나오는 북술이의 뒤에 박영감이 따라섰다.
두칠이는 닻을 올리고 털보영감은 뒷줄을 풀었다. 용바우가 삿대를 내려 밀자 털보영감은 이내 키를 잡았다. 두칠이는 노를 풀어 놋좇을 제자리에 박고 노걸이를 걸었다.
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둠속에 썰물을 타고 달아나는 뱃머리에 부딪는 물결소리만이 아우성에서 멀어져가는 새벽의 고요를 깨뜨렸다.
「알맞은 샛마(東南風)라, 돛을 올리제. 」
털보영감의 의기를 띤 소리였다. 용바우와 두칠이는 돛대를 발바닥으로 지그시 밀면서 총줄을 팽팽히 죄었다. 용두줄을 당겨 뒷장에 꼽을돛(大帆)을 올리고 허리돛마저 올렸다. 새벽바람에 활처럼 탱겨진 돛은 바람먹은 복어가 물위로 떠가듯 가볍게 미끄러졌다.
안개를 벗어난 지 이윽해서 용바우는 멀리 흥도(紅島)께로 내다보았다. 먼동이 트기 시작하나 수평선은 아직 어둠속에 잠겼다. 아득히 석끼미 등대불만이 깜박거렸다.
용바우의 머리에는 간밤 진주알같은 눈망울로 쳐다보던 북술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가슴이 뛰었다.
-만선을 해가꾸 들어가야제 -
이렇게 바다로 나가는 것이, 아니 사는 것이 모두 북술이 때문에 보람있는 것같이 그런 심정으로 자꾸만 이끌어졌다.
-언제 누가 큰애기로 늙는당께 -
북술이의 말소리가 아직도 귓가에서 떠나지 않았다.
큰 바닥에 나오니 바람은 휘몰아치고 너울은 점점 거세어졌다.
「치 (키)를 좀 외로 틀제.」
이무장(前舷)에 걸터앉은 털보영감은 뒷장에 서 있는 용바우를 건너다보며 넌지시 한마디 던지고는 담배를 피워 물었다. 털보영감은 까칠어진 손을 비비면서 아들놈도 장성해가니 이제 금년으로 뱃길은 끝내야겠다고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는 애숭이 같은 것이 그래도 하이칼라랍시고 머리밑을 도리고 다니는 아들녀석의 굵어 가는 뼈다구를 가늘어진 눈언저리에 그리며 만족한 듯한 미소를 입 가장자리에 여물렸다.
아직도 갯가에 서 있는 박영감은 지금쯤은 배가 옥섬 (玉島)모퉁이는 돌았겠다고 생각되었다. 뭇 배가 다 떠나고 갯밭이 조용해질 때까지도 박영감을 돌처럼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얼마동안을 지났던지 비금도 (飛禽島) 쪽에 포개졌던 엷은 구름이 가시고 햇발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육십평생 보아온 하늘이건만 하루도 똑같은 날은 없었다.
-바다가 유헨덕이라면 하늘이사 제갈량이제, 참 조홰야, 암만 가구 싶어도 하누님이 말면 못가이께-
박영감의 눈은 동녘 하늘에 못박히고 있다. 활대구름이 허리띠처럼 가로놓여있기 때문이었다.
-거기다 해까지 노란 씨레를 달았군. 옘평 가마께에서 배가 곤두박질한 것도 저 구름이었 다. 아들놈이 서바닥 호쟁이꼴에서 소식이 없어진 것도 바로 저 구름이었지…… 오늘밤엔 하누바람(西風)이 터질 테라-
갯밭에서 마을길로 옮기면서도 박영감의 시선은 항시 구름에서 떨어지질 않았다.
누더기가 되다시피한 솜옷 위에 언젠가 데구리 선장이 던지고 갔다는 군복잠바를 걸친 박영감은 뒤로 보아서는 야윈 얼굴이 짐작될 바도 아니나 옆에서 치켜보면 목덜미의 힘줄이 지렁이처럼 내솟구고 있다.
-올 해사나 잘 되문 가알에는 성례 (成禮)를 시켜야제-
박영감은 한순간 흐뭇한 기분으로 중얼거렸다. 북술이는 귀엽고 용바우는 고마왔다. 멀리 안깨로 들어서는 겐자꾸(巾着船)의 고동소리가 박영감에겐 못마땅했다.
해초 뜯기는 조금께가 제일 알맞았다. 북술이는 바구니를 들고 까막바위 쪽으로 돌아갔다. 정이 월부터 삼사월까지는 좌반과 우무를 뜯고, 오뉴월이면 잠질해서 생복이나 성게를 땄다. 칠팔월에는 미역이 한창이었고, 구시월 접어들어 동지섣달까지는 김을 주웠다. 갯밭을 파는 조개잡이는 사철 가리지 않아 이렇게 까막개 아낙들은 여름은 여름대로 겨울은 겨울대로 바다와 더불어 손끝이 닳아갔다.
「잉아, 북술이 니는 뭍에 가봤제.」
작년 봄에 과부가 된 새댁이 북술이 허벅다리를 꾹 찔렀다.
「응 한번. 」
「나도 꼭 한번 목포에……」
큰애기 머리채처럼 치렁치렁한 좌반 포기를 바구니에 주워담던 그들은 허리를 폈다. 그들의 눈길은 멀리 동쪽 기좌도(箕佐島) 팔금도 (八禽島)의 희미한 능선에 머물렀다. 까막개 큰애기들에게는 뭍이 향수처럼 그리웠다.
「인자 그만 뭍에 가 살았으문……」
새댁은 바위 끝에 주저앉으며 동의를 구하는 듯한 눈매로 북술이를 쳐다보았다. 북술이의 마음도 그러했다. 바다를 떠나서는 살 수 없으면서도 해마다 그꼴로 되풀이되는 섬 살림이 이젠 진절머리가 났다.
「그랴문 새댁은 뭍으로 가제.」
「북술이는 용바우가 있으니끼로 안되지라우.」
「……」
북술이의 가슴은 화살을 맞은 것같았다. 사실 북술이도 뭍이 뼈저리게 그리웠다.
「누가 용바우 때문이라우. 」
「유왕제 전날 밤도 살금이 새어서 용바우를 만났제. 」
「……」
머리를 저었으나 북술이의 얼굴은 붉어졌다.
지난 여름 물을 실어간 건착선의 곱슬머리가 찾아왔다.
「북술이 금년에도 물 좀 부탁해. 」
「야.」
「이거는 빨래고. 」
곱슬머리가 다녀간 후 보따리를 헤치니 빨래비누 세 개와 담배갑이 굴러 나왔다.
할아버지는 그거는 왜 받았느냐고 몹시 나무랬다. 그러나 얼마 안가서 노인은 풀잎을 썰어 피우던 쌈지를 밀어넣고 궐련을 끄집어내기에 북술이도 겨우 마음을 놓았다.
떠나는 뱃길이 썰물이라면 돌아오는 뱃길은 밀물이었다. 갯벌은 장작횃불에 야시(夜市)처럼 환했다. 그러나 간밤부터 몰아치는 돌개바람은 아직도 가라앉지 않고 너울은 굶주린 이리떼처럼 태질을 했다.
마을사람들은 나루터에서 밤을 새웠으나 아직도 배 세척이 돌아오지 않았다.
열홀 만에야 하태도(下苔島)에 불려갔던 구장네 배가 돌아왔다. 그러기에 그들은 아직도 한가닥의 희망은 버리지 않았다. 이제 순돌이네 배와 용바우가 탄 배만 돌아오면 되었다.
바다는 언제 그런 폭풍우가 있었느냐는 듯이 시치미를 딱 떼고 거울같이 맑았다. 마을사람들은 아무 일도 없는 듯이 또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갔고, 아낙네들은 바구니를 들고 갯벌로 나갔다.
북술이는 나왕봉 꼭대기로 올라갔다. 이 마루턱에 서면 멀리 흥도가 검은 바윗빛으로 나타나고 그 사이에 호쟁이꼴이 가로놓여 있기 때문이었다.
북술이의 마음속에는 용바우가 꼭 살아서 돌아올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북술이는 하루종일 흥도바다에 눈을 박고 장승처럼 섰다. 그러나 해가 하늘 끝에 기울어도 수평선에 까물거리는 고랫배(捕鯨船)외에는 낯익은 아무 것도 나타나지 않았다.
북술이 아버지 제삿날 밤이었다. 같은 날에 세 사람의 제사였다. 그러나 까막개에는 이것이 그렇게 신기한 일은 아니었다. 다행히 같은 배에서 살아오는 사람이 있으면 죽은 날이 밝혀졌고, 기다리다 지쳐서 단념을 하게 되면 떠나던 날이 제삿날로 되었다.
바다는 그들에게 눈물을 핥아갔고 한숨마저 뿌리째 빼어갔다.
「하이끼로 구만 예(禮)를 올리제. 」
희망 잃은 구장의 말이었다. 그러나 아무도 대꾸하는 사람이 없었다. 성복(成服)을 한다는 것은 망령에 대한 산 사람의 정성이겠지만 가족들에게는 그것이 혹 살아올지도 모르는 요행마저 도려가는 것같아서 석달이고 반년이고 파묻어두는 일이 예사였다.
「그놈의 기골이 그라케 비명으로 죽을 놈은 아닌디.」
무거운 침묵을 깨뜨리고 박영감의 입이 열렸다.
「글쎄 인실이 아부지도 그때 석달 만에 살아왔으니께. 」
다른 사람에게 틈을 주지 않고 불길(不吉)을 막으려는 듯 용바우 어머니가 가로챘다.
「인실이 아부지 같은 천명이야 어떻게 바란다우. 대마도까지 불려 갔으니께. 」
하나도 이치에 어긋나는 이야기가 아니건만 가족들은 구장의 말이 제각기 못마땅하였다.
「그놈의 겐짜꾸 <요다끼>(夜焚) 인가 불바다가 돼 가지구 하룻밤에 우리가 잡는 일년 몫 을 쓸어가는지라, 나갈 제는 소 잡으라 나가는 것처럼 소리 치고 나가지만 들어올 때는 죽 을 지경으로 들어오니께. 」
박영감의 말이었다.
「데구리까지 제멋대로 끌고당기이께 양짝서는 퍼실어도 가운데서는 못잡지라우. 」
곱사등이 입을 내밀었다.
「왜정 때만 했어도 연해 삼십마일 밖에라야 데구리 허가를 했는데 요새는 손앞에서 막 해 먹으니께로 고기 종자가 없제.」
도무지 세상 되어먹는 꼴이 눈꼴사납다는 듯한 구장의 말투였다.
「맹아더 론(맥아더 라인),그것도 상관없는지라.」
이번에는 구레나룻의 주걱턱이 맞장구를 쳤다.
까막개의 밤은 이야기로 새었고, 주리고 부은 얼굴들엔 그렇게라도 해야 어지간히 화풀이가 되었다.
벌써 두 달이 꼬박 흘러갔다. 마을사람들은 길어진 해가 원망스러울수록 허리띠를 더 졸라맸다. 집집마다 계량(繼糧)이 끊어졌다.
이젠 그들의 입에서 털보영감이나 용바우 이야기가 점점 사라져갔다. 기억 속에서도 아지랭이처럼 흐려갔다.
그러나 북술이만은 날이 갈수록 용바우의 윤곽이 더 뚜렷이 돋아올랐다. 구리빛으로 타는 얼굴이 눈에 선했다.
북술이는 나루터로 나갔다. 어젯저녁 꿈자리가, 오늘은 꼭 용바우가 돌아올 것만 같았다. 그러나 밤이 이슥하도록 고기가 낚이지 않아, 빈 배로 돌아오는 마을사람들의 시들어진 얼굴 속에 용바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튿날 아침 북술이는 묵을 쑬 우무를 고아서 동이에 받아놓고 집을 나섰다. 인실이 어머니를 찾아 산으로 올라갔다. 벌써 달포나 우려먹은 우무묵과 좌반나물에 시달려 종아리가 허전했다.
칡(葛)뿌리 파기에는 힘이 겨워 송기 (松皮)를 벗겼다. 소나무의 곧은 줄기라곤 다 없어지고 앵드러진 가지밖에 남지 않았다. 한나절이 지나서야 송기는 바구니에 반이나 찼다.
「북술애, 쪼금 쉬재이. 」
「그라재라우. 」
인실이 어머니가 주저앉은 옆에 북술이도 다리를 뻗고 앉았다. 인실이 어머니의 얼굴은 멀겋게 부었다. 만삭이 되어서 그런지 몸뚱아리도 부은 것같이 유별히 크게 보였다.
인실이 어머니는 다리를 쭉 펴고 정갱이를 엄지손가락으로 꾹 눌렀다가 떼었다. 한참 있어도 손가락 자리는 부풀지 않았다.
「이렇게 배도 부었재라.」
북술이는 마음이 쓰렸다. 이번에는 그 손가락으로 북술이의 정갱이를 더 힘주어 눌렀다. 북술이 다리도 손가락 자리가 움푹했다. 그러나 손바닥으로 문지르니 그 자리는 금방 그대로 되었다. 북술이는 제 손가락으로 이렇게 되풀이하면서 쓴웃음을 지었다.
인실이 어머니는 북술이 다리를 베고 누워 북술이에게 머릿니를 잡히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북술이는 꼭 지 어무니를 닮았재. 고 입이 더, 북술이 어머니는 소문나게 고왔재라, 마을 머시마들이 오금을 못썼으이께. 그랸디 육지루만 씨집가겠다구 그랴는지라.」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북술이는 이 잡던 손을 멈추고 인실이 어머니 입만 내려다보았다.
「그랴, 북술이 아버지가 흥도에 장가를 갔었는디 가서 잔칫날 각씨를 다리고 오고는 사흘 만에 첫질 가는디 풍파가 심했서라. 좋은 날 받아 갈라니 또 풍파가 일구 또 일구 그래서 북술이를 나가꾸 첫질을 갔재라.」
북술이는 침을 꿀꺽 삼키고 또 인질이 어머니의 입만 지키고 있다.
「그란디 그 다음해 호쟁이꼴에서 그만 북술이 아부지가……」
인실이 어머니는 숨을 길게 들이키었다. 북술이의 눈언저리가 흐려졌다.
「북술이 어무니는 날마다 나왕봉에 올라갔재라. 석 달을 두고…옛날에도 그래 망부석(望夫石)이 있어라. 그런디 인실이 아부지 오이께 소식을 듣고 병이 났지라.」
북술이의 눈물이 인실이 어머니의 이마에 떨어졌다.
「그런디 북술이 어무니는 밤에 없어졌재라. 」
「어디로?」
잠자코 듣고만 있던 북술이가 다급하게 물었다.
「물에 빠져 죽었다이께… 육지에서 봤다는 사람도 있재. 」
「육지에…」
어머니가 죽었다고만 들은 북술이는 제 귀를 의심했다. 육지가 어머니의 젖가슴처럼 그리워졌다. 북술이는 급기야 흐느껴 울었다. 인실이 어머니는 무릎에서 일어났다.
「울지 말라이께, 다 옛말이라. 인자 북술이도 육지로 씨집을 가야제.」
북술이는 용바우가 돌아오지 않는 바다라면 정말 싫증이 났다. 바다가 미워졌다. 아예 바다를 떠나야만 살 것 같았다.
북술이의 머리에는 건착선의 곱슬머리가 떠올랐다. 육지에 같이 가 살자고 그렇게 조르는 곱슬머리에게 오늘은 대답하리라고 마음먹었다.
북술이는 정지에 들어서자 난데없는 자루에 눈이 둥그래졌다. 풀어보니 쌀자루에 고무신 한 켤레가 들어 있었다. 그렇잖아도 풀물만 마시고 누워 있는 할아버지에게 쌀미음 한 그릇이라도 따끈히 권하고 싶은 요사이의 심정이었다.
「한아부지 쌀이라우.」
방 쪽을 향하여 묻는 말이었다.
「응 북술이라. 그 겐자꾸 젊은이가 가져 왔지라. 」
지난번 담배 때와는 딴판으로 별로 나무래는 눈치는 아니었다.
오래간만아 다루어보는 쌀이었다. 북술이는 쌀을 한움큼 쥐어서는 부서져라 비비고 손바닥을 살그머니 폈다. 오드득 소리나게 마른 쌀이 손가락 사이로 간지럽게 흘러내려갔다.
이번에는 고무신을 신어보았다. 발에 맞기는 하나 눈처럼 횐 빛이 소복같아서 용바우에 대한 무슨 불길한 예감이 떠올라 겁이 났다.
그러나 미음 솥에 불을 지피면서도 북술이는 오래간만에 가슴이 후련했다. 부지깽이로 정짓문을 내밀치고 마당에 나섰다. 당산 끝 낭떠러지에 팽꽃이 한창이었다. 둔부꽃도 피기 시작했다. 동백새가 짝을 찾는지 찢어지는 소리를 내며 숲 속으로 사라졌다. 저녁노을이 나왕봉 마루에 걸렸다. 차츰 땅거미가 산골자기에서 갯벌로 퍼졌다.
할아버지는 쌀미음에 구슬땀이 흘렀다. 북술이도 치마끈을 늦추었다. 그러나 할아버지도 손녀도 다시는 쌀자루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다.
까막조개 등잔에서 뱀 혀끝같은 심지가 빠지작빠지작 타들어갔다.
새벽에 진통이 시작하였다는 인실이 어머니가 해질 무렵에 어린애가 걸린 대로 죽었다는 소문이 온 마을에 퍼졌다. 다물도(多物島)에 배를 가지고 갔던 인실이 아버지가 의사를 모시고 돌아온 것은 이미 운명한 뒤였다.
북술이는 송기 벗기러 갔을 때의 손가락 자리가 종시 솟아나지 않던 인실이 어머니의 다리가 자꾸만 눈앞에 어른거렸다. 나도 시집을 가면 저러랴 싶으니 등골이 오싹했다.
<의사가 있는 육지에 가 살아야지.> 북술이의 마음은 자꾸만 육지로 줄달음쳤다.
곱슬머리가 사흘째 찾아왔다.
「겐자꾸가 내일 저녁 목포로 떠나. 꼭 같이 가지?」
「그라재라우!」
북술이의 눈망울은 안개보다 깊었다.
「내일 저녁 해떨어지문 곧…」
「야.」
「까막바위로 와.」
「가지 라우.」
곱슬머리에게 승낙을 하고 난 북술이의 마음은 한곬으로 정해졌다. 육지에 가서 자리만 잡으면 할아버지도 모시자는 곱슬머리의 눈동자에는 진정이 고였다고 생각되었다.
자기를 아껴주는 사람이면 다 고마왔다. 북술이의 머리에는 언제인가 한번 보았던 육지의 화려한 모습이 그물로처럼 연달아 떠올랐다. 기차를 타고 자꾸자꾸 가고만 싶었다. 곱게 생겼다는 어머니의 얼굴도 그려보았다. 그럴수록 북술이의 머릿속은 엉클어져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집을 나선 북술이는 끝내 까막바위로 나갔다.
해는 수평선에 가라앉았다. 어둠이 밀물처럼 스며들었다.
뎀마가 까막바위에 와 닿았다. 그러나 북술이는 보이지 않았다. 곱슬머리는 북술이가 자기를 놀래게 하려고 숨었나 싶었다. 몇차례나 바위를 돌았다. 아무리 돌아도 북술이의 모습은 찾을 길이 없었다.
곱슬머리는 뎀마를 나루터로 돌렸다. 그러나 마을 어느 구석에도 북술이의 그림자는 찾아볼 수 없었다. 건착선에서는 연달아 고동이 울려왔다. 뎀마가 갯가에서 사라진 후 얼마 안되어 건착선은 앞개를 떠났다.
까막바위에 선 북술이의 눈앞에는 고래등같은 용바우가 가로막고 섰다. 할아버지의 꿀대를 파고 솟구치는 가래침소리가 목덜미를 잡았다. 다음 용왕당과 나루터와 갯벌이 머릿속이 비좁게 감돌았다.
-그랴문 씨집도 안가구 큰애기로 늙으라제 -
용바우의 황소같은 목소리가 어깻죽지를 붙잡았다.
뎀마의 물 가르는 소리가 점점 까막바위로 가까왔다.
북술이는 갑자기 마을 쪽으로 쏜살같이 달아났다. 용바우가 내일 틀림없이 연락선으로 돌아올 것만 같았다.
까막개의 아낙네들은 그리다가 목마르고, 기다리다 지쳐서 쓰러지면서도 바다와 더불어 살았다.
자리를 털고 일어난 박영감은 끌과 자귀를 들고 밖으로 나섰다. 굴뚝 뒤 바위 위에 엎어놓은 낡은 근깃배를 끌어내렸다. 해풍에 강마른 뱃바닥에 햇볕이 새었다. 박영감은 앨기 끝에 배꼴을 끼워 벌어진 틈을 메우기 시작했다. 부러진 노를 이었다. 박영감은 아픈 허리를 두드리면서 아들보다 용바우가 더 그리웠다.
저물녘에는 짚불을 피워 배연애가 까맣게 된 근깃배가 나루터에 떴다. 배 윗장에서 이마에 손을 대고 북녘 하늘을 쳐다보는 박영감의 긴장된 얼굴이 엷은 경련을 일으켰다.
-갈바람(南西風)이제, 고기사 밤에 잘 물재라-
주낙(줄낚시)을 실은 박영감은 뼈만 남은 양어깨가 부서지도록 노를 저었다. 배는 나루터에서 멀어져갔다. 바다는 속물이 약해지는 첫께끼였다.
박영감의 가슴에는 장수라는 별명을 듣던 삼십대의 시절이 번개같이 어렸다. -혼자서 세몫은 실히 해덤겼겟다. 유왕제가 끝나면 첫 조금에 열 물을 넘어 마지막 께끼를 되풀이하는 사이 서바닥에서 한몫 보구, 간나안 앞바닥에서 상어잡이가 끝나면 칠산에서 옘평까지 조기떼를 따라 물줄기를 거스르며, 용호동에서 만선에 기를 지르고 강화(江華)로 들어갔겟다. 생선회에 한말 술을 기울이면 객주집 계집들도 노상 파리떼 모이듯 했겟다-
흥겨웠던 뱃노래가 어젯일같이 또렷했다.
어야 디어 -어가이여-차
영-차 영-차
우리내 배임자 신수가 좋아서
칠산 옘평에 도장원 하였네
어-요 에-어-야
우리배 사공님 정심이 좋아서
안암팍 두물에 만선이 되었네
어-요 에-어-야
멀리 나루터의 북술이 그림자가 주먹만큼했다가 팥알만큼 변하는 대로 박영감의 시야에서 아물아물 사라졌다.
흑산도 (黑山島)!
숙명처럼 발목을 매어잡는 이름이었다.
할아버지의 배가 사라진 영산 모퉁이에서 옮겨진 북술이의 눈은 하늘을 건너 아득한 육지 쪽에 얼어붙었다.
해풍에 나부끼는 머리카락 밑으로 저녁노을에 비낀 양 뺨은 흠뻑 젖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