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制度)의 덫
-정을병
그는 거울 조각 끝으로 열심히 조각을 하고 있었다. 칫솔대에다가 아름다운 여자의 나체를,,,,,,
거울 조각은 닳아서 손톱 크기만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두 손가락 사이에다 넣으면 거울은 전연 보이지 않았다. 유리의 뒷면에 은칠이 되어 있었지만 거의 벗겨져서 그냥 유리 조각인지 거울 조각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조각은 아주 정교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세상에 어떤 직업적인 조각가가 이렇게 정교하게 만들 수 있단 말인가. 조각은 시간과 싸우는 작업이며, 혼신의 정력을 쏟아서 만드는 일이었다. 새끼손가락 굵기밖에 안 되는 칫솔대지만 마치 거대한 실물크기의 조가이나 조금도 다름이 없을 정도로 세밀하게 조각되어 있었다. 풍부한 머리는 풀어서 뒤로 젖혀 가지고 있었고, 두 팔을 위로 추켜 올려 손가락들을 머리 숲 사이에다 꽂아서 머리핀을 매만지고 있었다.
이마는 좁지만 선명하게 보였고, 커다란 눈을 밝게 해주는 속눈썹은 반원을 그리며 길다랗게 나 있었다.
코가 좀 길다랗게 빠진 것 같으나, 코밑의 입이 작고 단정하게 오므라져 있어서 맥빠진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하얗게 열린 겨드랑이에는 보일락말락한 털이 몇 낱 있어서 간지러운 기분을 주게 하였고, 유방은 원추형으로 풍부하게 만들어놓았다. 아마도 그는 이 유방을 만드는 데 상당히 힘을 넣은 것으로 보였다. 그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유방을 그는 만들어놓았다. 장두감처럼 힘차면서도 둥글게 튀어나온 것이 약간 아래로 내리 처진 듯하면서 젖꼭지는 살짝 위로 향하여 솟은 것이 이 나체의 주인공이 아직 결혼하지 않은 처녀라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아마도 그는 그것을 염두에 두고 있은 것 같았다.
다음으로 힘이 주어진 곳은 궁둥이였다. 부피가 있는 앞가슴에 비하여, 궁둥이는 옆으로 힘차게 밀어내었다. 여성다운 유연함이 여기에 와서는 완전히 힘찬 생명력을 나타낼 만큼 우람해 보였다. 남자라면 누구나 한번쯤 사랑하고 싶은 그런 모습이었다.
다리는 한쪽을 무릎으로 살짝 가리고 있었지만, 다리 사이의 삼각주는 충분히 가려지지 않고 있었고, 무성한 털이 그대로 유혹적으로 곱슬거리며 정면을 향하고 있었다,
발톱도 하나 빠뜨리지 않고 자세하게 조각이 되어 있었는데. 재미있는 것은 왼쪽 엄지발톱이 두 쪽으로 갈라져 있었다. 하필이면 왜 그렇게 조각을 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뒷면의 다리에다 아무리 자세히 보아도 흠집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글자가 들어 있었는데, 돋보기를 사용하지 않으면 그게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는 분명히 한글로 글자를 적어 넣었다. (195 x년 7월 28일 죄 없는 사형수 김기오) 처음부터 그가 조각에 소질을 가지고 있은 것은 아니었다. 이곳으로 끌려온 이후 이십개 월 가까운 사이에 스스로. 하기 시작하여 익힌 것이었다. 자꾸 떨리기만 하는 손가락을 안정시키기 위하여 시작했던 것이 그만 이제는 아무도 따를 수 없는 정교한 숙련 조각가가 되어버린 것이다.
못 한 개와 차돌만 하나 손에 넣을 수 있다면,,,,,, 그 견고한 차돌에다가 멋진 조각을 해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아마 그것은 칫솔대보다는 견고하니까 좀더 자신을 잊고 조각하기가 재미있을 것이다,
「이 여자는 누구예요? 좌상님 애인이에요?」
그는 아무 대꾸도 없었다. 그는 가느다란 거울조각을 가지고 다리 사이의 흠을 나느라고 정신을 빠뜨리고 있었다. 그 어깨 너머로 네놈이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한 놈은 둥글넓적하게 생긴 사람으로 집안에서보다도 더 깨끗하고 단정하게 한복을 차려 입고 있었고, 다른 세 놈은 후줄그레한 푸른 제복을 그냥 그대로 입고 있었다. 어딘지 모르게 진지하고. 엄숙한 분위기가 마련되어 있었다.
「이거 누구예요? 꼭 어떤 모델을 상상하면서 만드신 것 같은데요?」
꼬마는 순진스러운 눈을 치뜨며 물었다. 그래도 대꾸를 하지 않으니까 곁에 있던 다른 사람이 무릎으로 꼬마를 툭툭 눌렀다. 그러나 꼬마는 그런, 것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그를 건드리거나 신경을 쓰게 하거나 하는 일은 극력으로 피하고 있었다. 그러나 꼬사는 순진한 마음 그대로 그에게 자주 말을 걸었으며, 그것으로써 즐거움을 삼고 있었다. 꼬마에게는 오히려 다른 사람들이 그를 경원하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그 사람은 과묵하기는 하지만 절대로 포악하거나 나쁜 사람이 아닌데, ,,,,,
「만일 이게 좌상님 애인이라면 좌상님은 아주 좋은 애인을 가진 셈예요.」
「이 여자가 예뻐 보이니?」
그제사 그는 입을 열었다. 그래도 얼굴이나 눈알을 돌리거나 하지는 않았다.
「예뻐 보이구 말구요. 아주 미인이에요. 아마 이런 미인을 가지고 있는 남자는 별로 없을 거예요.」
「너는,,,,,, 아직 나이도 얼마 되지 않은 놈이,,,,,, 여자를 다 알구 있구나. 분명히 이 여자는 내가 좋아하는 여자였다. 물론 이것보다는 훨씬 잘 생겼고, 더 아름답지만------나는 그런 아름다운 여자를 다시 만들어낼 수는 없지.」
「좌상님, 만들어내려고 애쓰지 말고,,,,,, 그 여자를 만나시면 되지 않아요. 」
곁에 앉은 친구가 다시 무릎으로 꼬마를 툭 쳤다. 꼬마라고 하지만 나이는 거의 스무 살에 가까와 보였다. 다만 몸집이 곱상하고 순진하게 생긴데다가, 키가 좀 작아서 훨씬 나이가 적은 어린아이로 보일 뿐이었다. 이런 아이가 죄라는 것을 짓고 이런 곳에 왔다는 것 자체가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였다. 물론 곧 다시 나가게 되겠지만,,,,,,만날 수 없어.」
그는 여전히 무뚝뚝하게 대꾸했다.
「왜요, 아저씨?」
좌상이라는 말을 이곳에서 배우기는 했지만, 그게 별로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 뜻도 잘 몰랐고,,,,,,
「그는--- 이미 죽었으니까.」
「네 ? 왜요? 아직 젊은 여자가 아녜요?」
「내가 죽였다는 거다.」
「네 ? 아저씨는 살인범이에요?」
「이놈아, 말조심해.」
옆에 앉아 있던 한복 차림의 양반이 끼어 들었다. 그는 양발을 갠 다리 위에다가 불교 성전이란 책을 놓고 열심히 보는 시늉을 하고 있었으나, 그의 귀와 신경은 그들의 대화에 와 있었다.
「신경 쓸 것 없어.」
그는 바지저고리를 보고 꽥 소리를 질렀다. 모두가 움찔하게 놀랐다. 얼음장이라도 깨어지는 것 같은 싸늘함이 방안의 공기를 휩싸고 돌아갔다. 다른 사람들은 얼굴을 돌려버리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를 동정하는 척하지 말란 말이오. 속으로는 나 같은 사람은 하루속히 죽어 버려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를 동정하는 척하는 것은 참을 수 없단 말이오.」
그는 거친 어조로 말했다. 정말 접근하기가 겁이 날 정도로 악이 차 있는 것 같았다.
다른 사람들은 그가 혹시 폭행이라도 가해오지 않을까 하고 잔뜩 겁을 먹고 있었다. 이왕 죽을 사람이라면 한 사람쯤 더 죽인다고 하여도 죄 될 것은 없다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숨가쁘고 괴로운 침묵이 흘러갔다. 아무도 더 말을 끄집어내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꼬마는 그가 자기를 보고 화를 낸 것이 아니기 때문에 기회가 있으면 말을 걸어보려고 하고 있었다,
그는 화가 좀 내려앉았는지 아무 소리도 하지 않고 여느 때나 마찬가지처럼 칼날 같은 거울 조각을 가지고 칫솔대 조각의 흠을 파기 시작했다. 흠은 보이지도 않는 하얀 머리칼 같은 껍데기를 내면서 조금씩 깊어지고 있었다.
「이 여자가 내 여자야,,,,,, 허지만 난 이 여자를 한번도 만져보지도 못했어. 손목 한번 말이야.」
그는 고개를 숙인 채 다시 나지막하게 말했다. 모두가 그에게서 무관한 것처럼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귓바퀴를 잔뜩 오므려서 그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했다.
「왜요?」
「나는,,,,,, 이 여자의 운전수였어.」
「그런데 어떻게 그 여자를 이렇게 자세하게 알 수 있어요?」
「물론 나는,,,,,, 그 여자를 한번도 만져보지도 않았지만,,,,,, 지극히 사랑했어. 그러면서도 그 여자를 이렇게 자세하게 아는 것은,,,,,, 그 여자가 옷을 벗고 있는 모습을 가끔 볼 수 있었기 때문이야. 그것도 한꺼번에가 아니라,,,,부분적으로지만,,,,,, 그 여자는 내게는 자기의 알몸을 한번도 보여주지 않았으니...... 그러나 나는 그 집을 무상으로 출입할 수 있었기 때문에 부분적으로는 여러 번 보았고, 그러다 보니 나는 그 여자를 완전히 소유한 것처럼 자세하게 알게 되었어.」
그는 별로 말하고 싶은 분위기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서둘러서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었다. 마치 자기가 간직하고 있는 이야기를 빨리 늘어놓지 않으면 안될 일이 라도 있는 사람 같았다.
「좌상님은 혼자서 짝사랑을 하셨군요? 히히,,,,,,」
「짝사랑이 아니야, 이놈아. 나는 그 여자를 시골에서부터 사랑하고 있었단 말이야. 그는 나를 오빠라고 했고 정말 오빠처럼 따랐어. 시골에 있을 때는 나도 그를 좋아하기는 했지만. 사랑한다고 까지는 하지 않았지. 그땐 서로가 철이 들지 않았으니까, 나는 서울에 올라와서 운전수가 되었고,,,,,, 그 여자는 돈을 벌게 됐어. 우린 우연히 만났지, 정말 우연이야. 내가 몰고 다니는 택시에서 만났으니,,,,,, 그럴 수 없는 우연이지. 나도 어른이 됐지만, 그 여자도 어른이 된데다가,,,,,,」
「아주 예뻐졌겠네요?」
「자식이 모르는 것이 없구나.」
꼬마는 히죽히죽 웃었다.
「그런데 왜 사랑을 못하셨어요?」
「나는 그 여자를 사랑하게 됐지만,,,,,, 그 여자는 돈을 많이 번 데다가 유명하게 되기도 하셨고 눈도 매우 높아져서,,,,,, 나 같은 사람을 남편 감으로 보지 않은 모양이다.」
「그래서 아저씨가 죽였나요?」
서슴없이 그렇게 물었다.
「이놈아, 말조심하라니까.」
한복을 입은 신사가 다시 나섰다.
또 한번 벼락이 -나지 않을까 모두들 겁을 먹고 있었으나, 이번에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내가 죽인 게 아니지.」
「그럼 왜 그렇다고 하지 않아요?」
「하기야 했지만------그들이 납득할 만큼 되지 않았단 말이다.」
「아무리 그렇기로소니 ,,,,,, 죄 없는 사람을?」
「이제는 아무 방법이 없어.」
그는 다시 고개를 떨어뜨리고는 열심히 조각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 여자------결국 죄 없이 죽고, 다른 사람도 죄 없이 데려가는 모양인가요?」
꼬마는 대담하게 말을 자꾸만 걸었다. 한 놈이 무릎으로 툭 꼬마를 쳤다. 꼬마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만일 말이야------내게 도적을 잡으란다면 필경 그놈을 잡고 말겠어.」
「그런 근거를 가지고 있으면 왜 그 이야기를 하지 않아요?」
「확실한 게 아니니까 나의 어거지로만 받아들이고 있거든. 신용하지 않는단 말이야. 하지만 내가 자유의 몸이,,,,,되어 그를 잡으라고 한다면 꼭 잡아보겠는데,,,,,, 」
「좌상님, 내가 나가서 잡아보면 안돼요?」
「이놈아. 정말 미쳤구나.」
한복 입은 신사가 큼직한 눈알을 뚜루룩 굴리며 말했다.
「네가? 네가? 그럴 수 있겠니?」
「있구말구요.」
「어림도 없는 일이다. 잡기는 토사하고 내가 설명하기에도 힘들 정돈데 그 설명을 듣고 네가, 아직 나이 어린 네'가 어떻게 잡는단 말이냐?」
「만일 내가 못 잡는다고 해도 손해보실 거야 없잖아요, 좌상님께선?」
「그건 그렇지. 내가 죽은 후이지만,,,,,,」
「내가 당장에는 잡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꼭 잡아드릴 수 있어요. 하다못해 순경이 되어서라도요.」
「말은 고맙다마는---불가능한 일이다. 내가 목숨하고 바꾸는데도 안 되는 일인데,,,,,,」
그는 혼자서 두어 번 고개를 흔들어보더니, 다시 조각 일을 시작하였다.
가다 밥을 하나씩 먹고 나니 무료한 시간이 되었다.
한복 입은 신사는 불교성전을 무릎에다 놓고 어깨를 좌우로 흔들어가며 중얼중얼 읽고 있었고 다른 두 놈은 앞의 시찰구에 매달려서 건넌방을 넘겨다보고 있었다. 그러나 꼬마는 지치지도 않게 그에게 달라붙어서 그가 입을 벌리기까지 인심 있게 기다리며 조각하는 모습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사방 담당 교도관이 다른 교도관 하나를 대동하고 그가 들어 있는 사방 앞으로 나타났다. 김기오는 순간적으로 머리가 쭈삣했으나 그가 종교 담당이라는 것을 알고는 맘이 놓였다.
그들은 벌써 여러 차례 그의 방을 옮겨주었다. 자꾸만 전방을 하는 데는 미칠 지경이었다. 낮에도 옮기고 밤중에도 옮기고 아침에도 옮기곤 하였다. 사형수를 사방에서 끌어낸다는 것은 사형을 집행하는 일 외에는 아무 것도 할 일이 없었다. 누가 면회를 올 것도 아니겠고, 다른 형무소로 장소를 옮길 것도 아니었다.
그러니까 사람을 끌어내는 것은 반드시 형 집행을 위해서만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선지, 아니면 이 방 저 방 다니면서 잘 얻어먹으라는 것인지 또 아니면 사형수가 오래 한방에 있으면 다른 죄수들과 어떤 사고를 저지를 것이라고 믿고 이를 방지하기 위해선지 ,,,,,, 심심하면 끌어내서는 다른 사방으로 옮겨 놓곤 하였다. 그때마다 사형을 당하는 기분이니, 벌써 그는 열 차례나 되는 사형을 당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일단 고만통으로 끌고 가지 않고 다른 사방으로 옮겨놓는다는 것을 알게 되면 식은땀이 죽 가시지만, 처음 끌어낼 때는 혼이 반이나 달아나 버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연습치고는 별로 유쾌한 연습이 되지 못하지------」
왜 이러는 것일까. 사람의 상식이란,,,,,, 그 방식으로 이미 만들어진 제도란 정말 무서운 것이고, 또 지극히 쓸모 없는 것일 경우가 많지만 놀랍게도 그걸 사람들은 전연 고치려고 하지 않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결국 자신들에게 피해를 주는 줄을 뻔히 알면서 또...... 죄라는 개념을 특별히 만들고 그것을 어겼다는 이유로 구금을 하고 자유를 구속하고 때로는 죽이기까지 하는 무서운 오류의 상식과 제도는 몇천 년을 내려오면서 크게 비판을 받지 않고 그대로 존속되어오고 있다. 바보스럽게도-----
「김기오씨, 나하고 얘기나 좀 할까요?」
종교담당은 부드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는 그의 부드럽고 사람 좋아 보이는 얼굴을 가지고 남을 설득시키려고 애를 쓰고 있는 것 같았다.
김기오는 풀어두었던 수정을 채우고는 마룻바닥에서 일어섰다. 검은 고무신을 신고 시멘트 복도로 나섰다. 교도관은 길다란 사방 끝에 있는 조그마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채 한 평도 되지 않을 조그만하고 어두운 방이었다. 껍데기가 다 벗겨진 찌그러진 의자가 두개 있었고 조그마한 책상이 하나 있었다.
「앉으시오.」
그는 종교담당이어서 다른 담당보다는 말씨부터 차이가 있었다. 아무리 흉악범이나 나이 어린 수감자라고 해도 절대로 말을 놓아서 쓰는 일이 없었다.
「담배 피우겠소?」
그는 주머니에서 담뱃갑을 끄집어내어 그에게 한 개비 뽑아 주었다. 김기오는 별로 담배를 피우고 싶은 생각이 들지는 않았으나 일부러 거절한다는 것도 귀찮을 것 같아서 두 손으로 궐련을 받아서 입술에다 꽂았다. 수정으로 두 손이 묶여져 있었기 때문에 한 손이 가자 다른 한 손이 따라 움직였다.
「풀어드릴까요?」
사방으로 돌아가면 금방 풀어버리기는 하지만, 이럴 때에 묶여 있는 것도 불편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사형수는 이십사시간 수정을 차고 있도록 돼 있는 모양이다.
교도관은 조그마한 열쇠를 수정의 겨드랑이에다 끼워서 풀어주었다.
「고향이 어디라고 했죠?」
「봉줍니다.」
「그곳에 부모형제들이 살고 계시겠군요?」
「아무도 없습니다.」
그는 딱 잡아떼었다. 일심에서 그가 사형언도를 받았을 적부터 그에게서 가족이나 아는 사람들을 생각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생각해본댔자 서로가 괴로울 것이고. 다시 만날 수도 없는 일이다. 그것은 없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아무도 면회를 오지 않았나요?」
「없었습니다.」
그는 표정도 없는 무기미한 얼굴로 대꾸했다. 담당은 쓸데없는 소리를 늘어놓았다고 생각했다.
「내가 지난번에 한 말을 좀 생각해 보았나요?」
그는 담당이 무엇을 말하는지 잘 알 수가 없었다. 한참 생각을 더듬어보니까 무슨 얘기를 말하는지 짐작이 갔다.
「신의 존재 말입니까?」
그는 피식 웃었다.
「신은 어떻게 존재합니까?」
담당은. 얼굴은 부드러웠으나 눈알은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다.
「어떻게 존재하든 내게는 관심이 없어요. 신이 존재함으로써 나를 죽게 하는지, 존재하지 않음으로써 나를 죽게 하는지 고건 어째도 마찬가질 뿐입니다. 신이 나를 살려내지 않는 한 내게는 아무 뜻이 없어요.」
「신은 당신을 살려낼 겁니다.」
「어떻게요?」
김기오의 입술에는 또 차가운 미소가 흘렀다.
「죽음은, 죽음 그것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한 문일 뿐입니다. 마치 다음 세계로 건너가기 위한 터널 같은 것입니다. 지극히 짧은,,,,,, 삼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습니다. 삼분이 지나면 당신은 자기가 죽은 것이 아니라 살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냄새나고, 더럽고, 떨어지고, 삐나 빈대가 잔뜩 묻어 있던 옷을 벗어버리는 것 같은 경쾌함이 당신을 휩쌀 겁니다. 주변에서는 이상하게 마음을 즐겁게 하는 음악소리가 들리고 코끝에는 기분 좋은 향내가 사방으로. 진동할 것입니다, 당신은 당신이 가지고 있는 육체에서 명쾌한 자유를 '게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구요. 그게 바로 새로운 생활입니다. 담'운 생활이고 또 영원한 생활입니다. 지금 당신이 가지고 있는 생은 그 영원- 생에 비하면 보아낼 수도 없는 지극히 작은 한마디에 지나지 않습니다.」
담당은 두 손을 움직여 보이며 제법 열이 난 사람 같이 떠들고 있었다.
「담당님은 그것을 어떻게 자세하게 알고 있을까요? 한번 당해보기라도 했습니까?」
「내가 당해본 것은 아니지만,,,,,, 당해본 사람들이 써놓은 글과 옛날부터 내- 오는 성경을 종합해서 보면 분명히 그런 생이 다시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글쎄요--- 나는 무식한 사람이니까 그걸 반증할 만한 충분한 자료를 7지고 있지는 못합니다마는,,,,,, 나는 아까 말씀드린 대로 고런 세계가 있어! 좋고 없어도 좋다. 이겁니다. 신은 존재하고 싶으면 존재하는 것이고 싫으면 존재하지 않으면 그만입니다. 내게는 아무 관계도 없는 일이에요.」
교도관은 그런 정도의 반대에 좌절하거나 실망할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자기의 설득력으로 신을 인식시킨 예가 한두 건이 아니라는 자랑과 어떤 악질이라도 결국은 신을 인식케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세상에는 많은 종교가 있고, 수억이나 되는 사람들이 그 나름대로의 종교를 가지고 있습니다. 만일 그게 엉터리고 아무짝에도 못 쓸 것이라면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 정력과 돈을 쓰고 오랫동안 종교를 하겠어요? 거기에는 그 나름대로의 어떤 진리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렇다. 김기오는 그런 문제를 가지고--- 오랫동안 혼자서 생각해온 것도 사실이다.
「잘못된 확신 때문입니다.」
「그것이 비록 잘못되었다 하더라도,,,,,, 어떤 근거가 있기 때문이 아닙니까?」
「그 근거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신비한. 그리고 복잡한 뇌 세포 때문입니다. 사람은 뇌를 쓰는 동물이기 때문에 다른 동물에 비하면 필요 이상으로 뇌 세포가 발달되어 있어요. 그러다 보니까 그 뇌 세포의 발달 과정에서---완전하게 쓸모 있는 세포가 아닌 것까지 생성된단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 인간의 뇌에는 완전한 뇌 세포뿐만 아니라. 불완전한 뇌 세포까지가 잔뜩 있다는 겁니다, 가령 뇌 세포 하나 하나를 한 성인으로 간주한다면, 아직도 성인이 되지 않은 것도 있거니와 아주 생기다가 만 것이나 기형 세포도 잔뜩 있어요. 이것은 아무 것이나 생각하고. 아무 환상이나 만들어내어요. 이성이 없는 세포니까 아무 장애를 받지 않고. 잘못된 생각의 자유를 누리고 있는 거죠. 이게 우리에게는 환상도 되고 꿈도 꾸게 하며, 종교의 근거가 되는 신의 모습도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왜 나는 그것을 아는고 하니, 맹장 수술 때에 마취를 한번 받아보았습니다. 깨고 나니 아무 것도 꿈을 꾸거나, 환상을 그리거나, 어디로 -행이라도 갔다왔다는 느낌이 들거나 하지 않더란 말입니다. 모든 세포가 마취약에 의하여 철저하게 마취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김형,,,,,, 비록 운전수 노릇을 했지만,,,,,, 대학을 나온 사람이고. 그렇기 때문에 충분한 공부를 했기 때문에 믿을 수 없는 어거지로서는 믿어지지 않겠지요. 아무 것이나,,,,,, 그렇기 때문에 다른 말을 할 필요가 없어서 좋습니다마는------꿈에는 두 가지 현상이 있습니다. 아까 당신이 지적한 바와 같이 덜된 뇌 세포라고 해도 좋고 잠재 의식이라고 해도 좋아요. 다만 그것이 대뇌가 쉬는 동안에 활동해서 생기는 것이 있구요, 다른 하나는 외계에서 나타나거나 인간의 초현실적인 영혼이 움직여서 보는 세계가 있습니다. 그건 분명히 다르죠. 사람이 죽거나, 죽으려고 하면 그 혼이 다른 사람에게로 날아가서 그 사실을 알려 줍니다, 아마 김형도 그런 얘기를 많이 들었을 거요.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인데 꿈에 나타나서 내가 떠나려고 한다든가, 하는 이야기를 하거던요, 그러고 며칠이 지나고 나면 정말 그 사람의 부고가 오는 때가 종종 있습니다. 이건 믿을 수 없는 헛소리가 아니라. 주변에서 그런 일은 얼마든지 일어나고 있으니까 아무도 부인을 하지 못한다는 겁니다. 이건 무얼 의미하는 겁니까? 영혼이라는 것이 분명히 존재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까? 자기의 잠재 의식이 그런 일을 알아내기는 도저히 불가능하니까. 영혼이 존재하는 것을 믿으면 신도 존재한다는 것을 믿지 않을 수 없는 것이고 또 다른 세계가 존재한 다는 사실도. 믿기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만일 그렇다면 왜 나의 영혼은 내가 잘못하지 않은 잘못을 검사나 판사에게 그대로 알려주지 않을까요? 나는 분명히 무죄입니다. 그 사실을 알려줘야 할 게 아닙니까? 다른 사람에게는 영혼이 존재하지 않나요? 설령 존재한다고 해도 나의 육체 속에서 살기가 지쳤으니까 빨리 나를 죽게 하고는 내 육체에서 떠나려고 해서 그러는 것일까요 ? 내가 죄가 없다는 사실을 나밖에 알고 있지 않다는 것은 참 억울한 일이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지 못한다는 것은 기가 막히는 일입니다. 담당님이 그런 기술이라도 있으면 내가 가진 영혼으로 하여금 다른 사람의 영혼에다가 나의 무죄를 알려주도록 해주십시오. 그렇게 되면 나는 죽지도 않을 것이고., 담당님도 나를 회개시키기에 초조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다음에도 얼마든지 기회가 있을 것이니까.」
담당은 그가 버릇처럼 무죄를 주장하는 데는 얼굴을 돌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건 재판정에서 충분히 주장했어야 할 일이오. 재판은 증거를 가지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면 아무리 주장했어도 소용이 없어요.」
「나는 내가 범인이 아니라는 것을 말로만 주장했습니다. 아니라는 아무 반증을 나 자신은 세울 수가 없었어요. 그렇다고 내가 아무 죄도 없는 사람이 어째서 죄인이 될 수 있습니까? 그러기 때문에 나는 신을 원망하고 있고, 존재한다면 말이오,,,,,, 존재하지 않는다면 도리 없는 일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일이지만,,,,,, 신이 존재한다면 무고한 사람을 어떻게 죽게 한단 말이오.」
「그건 우리가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예레미야서에도 보면, 신은 자기가 쌓은 성도 허물어버리고 자기가 뿌린 씨도 뽑아버린다고 했어요. 신의 섭리는 우리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가 힘들어요.」
「그럼 날더러 어떻게 하라는 겁니까? 섭리에 의하여 죄 없는 사람도 죄가 있는 것으로 또 그것으로 사형을 당하게 되는 것도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되고, 그래도 신이니까 신을 믿어라 한다는 것은,,,,,, 나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담당님 같으면 그렇게 하겠어요? 남의 일이니까 쉬워서 그렇게 하라고 하지만--- 입장을 바꾸어놓고 본다면 아마 생각이 달라질 겁니다. 나를 위해서 이렇게 친절을 베풀어주시는 것은 감사한 일이지만,,,,,, 만일 정말로 담당님이 나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나의 무죄를 진정으로 다시 문제삼을 순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는 일입니다. 그게 아마 신에게 더 은총을 받을 일이지요.」
김기오가 진지하게 파고 들어가자, 그는 좀 낭패한 입장에 빠지고 말았다.
「당신이 정말 무죄였다. 그러나 아무리 방법을 써도 그 무죄가 인정되지 않아서 죽음을 면할 수 없게 되었다라고 생각해 보잔 말이오. 이미 요로에 보낸 탄원서가 아무 효과도 없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지요?」
「어제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는 아무 방법도 없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럼 어차피 죽지 않을 수 없게 되지 않았습니까?」
「신이 없는 한에서는 그렇죠.」
「그렇다면,,,,,, 이제는 김형 스스로가 결단을 내릴 시기가 온 것이 아닙니까?」
「무얼 결단하란 말예요? 내가 죄 없이 죽는 것은 사실이지만, 재수가 없어서 그걸 뒷받침할 반증을 가지지 못했다, 그러니까 억울하지만 그냥 죽어줄 수밖에 없다, 허지만 죽으면 저승으로 간다니까 그 저승에서나 고생하지 않고 살기 위해서 신의 존재를 믿고 회개하자,,,,,, 비록 신이 내게 억울하게 해주었지만, 신인데 어떡할 도리가 없잖나,,,,,, 이런 식의 결단 말입니까?」
「예수님도 죄 없이 돌아가시지 않았습니까?」
「나는 하나님의 아들도 아니고, 그런 의무를 가지고 태어난 것도 아닙니다. 만일 내게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될 이유라든가, 아니면 의무라도 있다고 하면 기꺼이 승복하겠습니다, 안중근 의사가 아무 죄 없이 죽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말입니다. 나는 다만 여자 하나를 죽였다는 것입니다. 방탕하고 돈 많은 여자 하나를 죽였다는 것입니다. 내가 사랑하는 여자를,, ,,,, 내가 그 여자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 여자가 다른 남자들하고 놀아나는 것이 보기가 안돼서, 혹은 질투심에,,,,,, 죽였다는 겁니다. 그러나 나는 그 여자가 나를 운전수로 고용할 때부터 그 여자에게는 내가. 아니 다른 남자들이 많이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어요. 조금도 새삼스런 일이 아니었단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니가 적당한 시기,,,,,, 가령 미모가 줄어들고, 인기가 떨어지고, 다른 똥파리 같은 남자들이 다 떠나간 다음에는 그니가 반드시 내게로 되돌아 올 것이다, 그러니 그때까지 묵묵히 기다리고 있자,,,,,, 이것이 나의 계획이었습니다. 그런 내가 기다릴 수가 없어서, 혹은 충격적인 질투심에 못 이겨서 그 여자를 죽였다는 겁니다. 청산가리를 그니가 잘 마시는 술에다 넣어서,,,,,, 허지만 그니는 술 같은 것은 입에도 대지 않아요. 오히려 그니가 가지고 있는 양주는 주로 내가 조금씩 마셨을 뿐입니다. 그래서 그니를 죽이려고 한 사람은 분명히 그니를 죽이려고 한 것이 아니고 나를 죽이려고 한 것입니다.」
「왜 김형을 죽이려고 했을까요?」
그는 비웃고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다분히 그런 심정으로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것은 그들이 나라는 존재가 신경에 쓰였기 때문입니다. 자기네들이 은밀하게 하고 싶은 관계를 내가 너무 소상하게 알고 있으니까요. 그러다가 그게 세상에 공개되면 파멸이니까.」
「그러나 그 여자가 상대하고 있는 사람들 중에는 그럴 만한 인물이 하나도 없었다는 것이 밝혀지지 않았습니까? 그 사람들 중에서 당신이 말하는 것과 길은 그럴 만한 사람이 있습니까?」
「나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단 말입니다. 그게 내게도 불가사의한 일이구요. 표면에 나타난 시시껄렁한 사람들이 그렇게 캤다고는 볼 수도 없구요. 분명히 세상 사람들이 다 알고 지위와 명예와 재산이 있는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고, 그런 사람들이 장난을 한 것일 겁니다.」
「그건 김형의 상상입니다. 아무 증거도 없는 일이 아닙니까?」
「오히려 증거는 내가 가지고 있는 셈이었지요. 내게는 쓰다 남은 청산가리가 있었고, 우리 집에도 있었으며, 그 구입 경로도 밝혀졌단 말입니다. 나는 절대로 그런 일이 없었는데,,,,,, 어떻게 된 셈인지, 나도 모르는 그런 것들이 그대로 어쩔 수 없는 증거로 있었단 말입니다. 그들 중의 하나는 분명히 나를 죽이려고 했지만,,,,,, 이상하게도 그날은 내가 술을 마시지 않는 평소에 입에도 대지 않는 그 여자가 술을 따라 마셨고 마시자마자 죽어버린 것입니다. 나는 아무 관계도 없는 일이에요.」
「나로서는 어쩔 수 없는 문제지요. 내 소관도 아니고, ,,,,,」
그는 그런 일에 대해서는 전연 관심이 없다는 뜻이었다. 다만 죽는 것은 정친 것이니까 지나간 일은 아잘 게 없고. 다만 죽기 전에 신의 존재나 인정하고, 쪼나 사하는 것이었다. 아무리 떠들어봐도 그건 네 혼자만의 고집이지 정당성이 있는 것은 아니다, 세상에 죄인 치고 스스로 죄가 있다는 사람은 하나도 본 일이 없으니 까,,,,
그렇다면 그의 말도 김기오에게는 아무 관심도 없는 일이었다. 모든 게 하나님의 섭리라면 이렇게 죄 없이 죽는 것도 섭리고., 회개하지 않고 죽는 것도 섭리일 뿐이다. 섭리는 거역할 수 없는 것이라면......
「그렇다면 담당님이 내게 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 나는 그걸 잘 오르겠는데요?」
「나는 당신을 주님 앞에서 회개시키려고 합니다.」
「그것은 내가 살인자라는 가정하에서 하시는 말씀이 아닙니까? 사람이 살인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죄가 없으란 법은 없지만요, 그 문제는 담당님이나 나나 마찬가지니 내게 권할 것도 없을 것이고,,,,,,」
「물론--- 살인 때문에 그렇습니다. 」
그는 꼬리가 잡힐 줄 알았지만 다른 말을 할 수는 없었다.
「내가 살인을 하지 않았다면? 담당님은 그걸 전연 믿으려 하지도 않겠지만 ------나는 살인을 한 일이 없습니다. 그건 분명하니까요.」
「너무 고집부리지 말고,,,,,,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
「내가 담당님을 기쁘게 해드리기 위하여 죄를 회개하란다면 회개할 죄도 많이 있을 겁니다.」
「내 말은 그런 뜻이 아닙니다.」
「그럼 담당님은 내가 틀림없이 살인은 했지만, 그걸 인정하지 않는다는 그런 뜻이죠? 그렇다면 담당님하고는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끝이 없겠어요. 만일 나를 자유의 몸으로 풀어주시기만 한다면,,,,,, 나는 필경 진범을 찾아낼 수 있을 겁니다. 비록 나는 수사 경험이 전연 없는 사람이지만 꼭 잡을 수 있습니다.」
「벌써 이 년이나 지난 일이오.」
「만일 그들이 아직 죽지만 않았다면, 아무리 그가 높은 담에서 살고 있다고 하더라도 나는 기어이 그 담을 허물고 접근할 수가 있을 겁니다. 그러나 나의 이런 이야기는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지요. 내가 살인을 했고 얼마 가지 않아서 죽을 것이니, 얼른 죄나 회개하여라,,,,,, 그러면 담당님은 죄인 하나를 더 회개시켰다는 성적이 오르게 될 것이고---」
「성적 때문에 그러는 것은 아니오.」
「그럼 나를 위해섭니까?」
「사람은, 순서가 있을 분이지 누구나 다 한번은 죽게 쉽니다. 죄를 회개하고 죽으면 구원을 얻습니다.」
「나는 그런 공식에 따르고 싶지 않습니다. 나는 죽어서 정말 살아난다면 이 일을 가지고 하느님에게 따져볼 생각입니다.」
그는 화풀이를 하는 사람 같은 열띤 어조로 말했다.
「할 수 없군요. 허지만 오늘이 아니라도 더 생각해볼 수 있을 겁니다. 필요하면 사방 담당을 통해서 나를 부르면 언제든지 도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아무튼 고맙습니다. 맘이 달라지면 그렇게 하겠어요.」
그는 초라한 얼굴이 되어갔다. 그래도 이렇게 말다툼이라도 할 수 있는 상대와 그럴 기회라도 있으니 사람이 아직 생명력이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수정을 자기 손으로 자기 팔목에다 걸면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교도관은 김기오의 무신앙이 가련하고 경멸스러운 모양이었다. 그는 아쉬운 얼굴로 한참이나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살인자라 하여도 교수형을 당하기 직전까지는 어느 누구보다도 선량한 사람이 되어 있다고,,,,,, 그러니까 사형이라는 것은 형벌이 아니라 일종의 보복수단밖에 안 되는 졸렬할 것이라고.」
김기오는 씽긋이 웃었다. 이미 그의 얼굴에는 죽은 자의 승리 같은 것이 널따랗게 깔려 있었다. 그것은 교도관을 깊은 신앙으로도 압도하고 남는 그런 냉철한 것이었다.
「꼬마야, 사람이 죄를 짓지 않고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모든 사람들이 다 외를 짓고 살지만 죄인이 되는 사람과 죄인이 되지 않는 사람이 따로 있다. 결국 마찬가지 얘기지만 죄인이 되는 경우는 자기만을 위해서 죄를 지을 때고,,,,,, 만일 죄를 짓되, 다른 사람이나 사회, 흑은 국가를 위해서 죄를 지어보라구, 그건 죄인이 아니라 오히려 영웅이 되는 거야. 말하자면 차원의 문제겠지. 내가 돈이 아쉬워서,,,,,, 남의 돈들 훔치는 경우와 비는 것과는 똑같은 남의 돈을 자기 수중으로 넣는 작업이야. 다만 방법이 다르고, 차원이 다르다 뿐이라구. 돌려주고 안 주고는 다음 문제야. 아무리 많은 돈을 떼어먹어도 남에게 빌어서 떼어먹는 사람은 죄가 되지 않지만, 말없이 떼어먹는 사람,,, 이를테면 절도지, 그렇게 하는 것은 죄가 된단 말이야. 세상에는 근본적으로 재물이나, 존재나,,,,,, 그건 사람일 수도 있는 거지만, 그것에 대한 절대적인 소유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다 알고 있어, 적당하게 적당한 시기까지 가지고 있을 분이라는 것을. 그러기 때문에 안목이 높은 사람은 그럴수록 많은 남의 돈을 자기 돈처럼 쓰고 있잖니, 쉽게 말해서 어떤 회사 사장이 융자를 받는다든가. 사채를 쓴다든가, 주식을 발행한다든가, 하는 것은 남의 돈을 자기 돈처럼 쓰는 가장 공공연한 방법이란 말이야. 그런데도 불구하고, 네 놈처럼 식당에 손님이 떨어뜨리고 간 지갑에서 몇만 원 슬쩍 해 가지고 절도죄로 이런 델 온다는 것은 바보나 하는 일이지. 올바른 사고 방식을 가진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이란 말이야. 이 사람들도 마찬가지라구. 이사장이란 친구는 부도 수표를 발행했기 때문에 왔고, 저쪽은 사기, 이 쪽은 폭행,,,,,, 모조리 이런 따위란 말이야. 한심하게 생각하지 않어? 생각이 부족한 탓이야.」
김기오는 꼬마를 곁에다 놓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리고 있었다. 김기오가 아무리 욕을 해도 다른 사람들은 그를 상대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들은 모두 열심히 듣고 있기는 하지만 들은 척하지도 않았다.
「배가 고파 죽겠는데, 빵을 보고 그걸 훔치지 않겠어요?」
꼬마는 그의 유일한 말상대였다.
「그것은 사람의 상상력이 갖는 극한상환이고,,,,,, 배가 고픈 사람이 빵 한 조각을 먹었다고 해서 계속적으로 오는 허기를 모면할 방법은 없는 거지. 배고픈 사람에게 고기 한 마리를 주면 한끼밖에 먹을 수가 없지만, 고기를 잡는 법을 알려 주면 평생을 먹을 수가 있단 말이야. 이 말을 거꾸로 하면 한끼를 해결하도록 행동할 것이냐, 평생을 해결하도록 행동할 것이냐 하는 것인데 사람에 따라서는 한끼를 기분대로 쉽게 처리하고자 하는 사람도 있고, 정말 평생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사람도 있단 말이야. 이게 내가 말하는 차원의 차이라는 거야. 너는 어느 편에 속해? 하루지? 하루가 아니라 한끼지?」
꼬마는 추궁을 당하고 있었으나, 얼른 대꾸하지는 않았다.
「이 바보 멍충이들은 아무리 내가 말해도 알아들을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에 안 하지만 너는 아직 나이도 어리고 앞날이 구만리 같으니까 하는 소리야,,,,,, 한 끼라는 그런 순간에 지배되지 않는다면 절대로 범죄를 범하지는 않을 거야. 반드시 밥만이 아니고 말이지,,,,,,」
「그럼 아저씨는?」
「나도---역시 순간적인 생각, 자기가 지금 당장 하고 싶은 욕망,,,,,, 이런 것에 지배받고 있었다---그런 졸렬한 인간이다, 하는 것에는 동감이야. 세상에는 눈알을 조금만 돌린다면--- 자기가 미쳐 있는 여자들보다도 더 좋은 여자들이 얼마든지 있다는 사실을 금방 알게 되거든. 그런데도 싸는 그런 눈을 뜨지 못했어. 그 여자가 아니면 다른 여자라는 것은 씨도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단 말이야---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말이다. 또 내가 사랑하고 있는 여자, 지금은 나를 무시하고 있지만,---그 여자를 자기에게 미치게 하기 위해 서 좀더 큰 인물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하면 정말 나는 나중에 그 여자와 결혼하지 않은 것이 정말 다행타는 것을 알게 됐을 거란 말이야. 필경은 그 여자보다도 더 좋은 여자를 얻게 될 테니까. 그런데 나는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 했어. 캄캄 어두운 봉사였어. 얼마나 치졸한 인간이었나 말이야. 그 치졸성 때문에 나는 망하고 말았어. 죄 값을 받은 거지.」
「좌상이 직접 하지 않았다면서요?」
「그건 오십보 백보의 차이에 지나지 않아. 그런 치졸성을 깨닫지 못한다면 이런 일이 아니라도 또 다른 일에 걸리고 말 거야. 그러니 만사가 다 알쪼지.」
「그러나 사형은,,,,,,」
그러면서 그는 다른 사람들, 괜히 한복을 입은 사람 쪽을 보면서 손바닥으로 입을 막았다.
「말해도 괜찮아. 계속해. 」
김기오가 꼬마를 쳐다보았다. 꼬마는 미안해하고 있었다. 비교적 재주가 있는 모습이었다. 기회만 만나면 그런대로 남에게 뒤지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다.
「사형은 너무 심해요. 사형을 시킨다고 해서 되는 것은 아니잖아요?」
꼬마는 무뚝뚝한 얼굴로 용기를 내어 말했다.
「남에게 대한 전시효과도 있는 것이니까.」
그는 이제는 자기의 몸을 싸둘 필요는 조금도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문제는,,,,,, 어떤 사람이 왜 고기 잡는 법을 알려주지 않는가 하는 ,,,,,, 만일 책임지고 사회가 고기 잡는 방법을 알으켜 주었더라면 한 마리의 고기 때문에 파렴치한 짓을 할 놈은 아무도 없지. 고기 잡는 법을 알으켜 주지 않고 왜 한 마리의 고기를 훔쳤느냐고 결과만을 따진다면 이건 좀 무책임한 방법이고,,,,,, 막아도 막아도 끝이 없는, 아랫돌을 뽑아서 윗돌을 막는 것이나 다름없어. 나를 포함해서 말이야,,,,,,」
그는 자신을 솔직하게 질타하고 있었다.
「나는 이것도 저것도 아니야. 이런 상태로 살아간다는 것은,,,,,, 뻔한 일이야,, ,,,, 그러나 나는 살고 싶어. 아무리 미물처럼이라도 존재는 존재가 아닌 것보다는 나으니까. 물론 지금부터라면,,,,,, 한번 멋지게 살겠지만,,,,,,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일을 하나 해놓겠는데,,,,,,」
그들은 김기오의 입에서 처음으로 살고 싶다는 말을 듣고 나니. 모두 등살이 오싹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는 이미 열 번이나 전방되어 왔으니까 그들과 만난 지는 지극히 짧은 기간에 지나지 않지만,,,,,,
「이제 나가면 그 여자를 보더라도 초연하겠는데,,,, ,, 어떤 놈과 붙어서 그걸 하고 있는 장면을 본대도 초연하겠는데,,,,,, 그뿐만 아니라 다른 일에도 초연하겠는데,,,,,, 이미 시간은 늦었어. 내가 이삼년 전에만 깨달음이 있었어도 ,,, 누가 곁에서 한마디만 애정을 가진 음성으로 충고해줬어도,,,,,, 나는 이런 일에 말려들지 않았을 텐데,,,,,, 나의 우둔 때문이야. 깨닫고 나니 다시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고,,,,,, 이미 그는 다가오고 있거든,,,,,,」
그는 문에다 등을 기대고 시찰구를 통하여 저쪽 복도 입구 콕을 넘겨다보고 있었다. 아닌게아니라 교도관이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는 딱 김기오의 사방 문 앞에서 멈추었다.
「육십사 번, 면회야.」
그의 등뒤에서, 일부러 장난기 섞인 어조의 목소리가 울려왔으나. 그건 일부러 지어서 만든 목소리라는 것을 김기오는 금방 알아차릴 수가 있었다. 배와 다리가 꼿꼿하게 얼어붙는 것 같다. 얼굴이 단번에 백지장이 되었다. 손가락 끝에서부터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조그마한 쇠가 가볍게 찰가락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무거운 쇠몽둥이가 나무판에 뚝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좋은 사람 왔는가보지?」
교도관은 문을 열었다. 아, 정말 좋은 사람이 왔구나. 사신이 나를 기다리고 있구나. 그는 아무리 태연하려고 해도 그게 불가능했다. 이런 바보 같은 놈들에게 자신의 보인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인데......
그에게는 단말마적 인 심각성 이 전신을 휩싸고 있었으나 방안에 있는 동료들은 얼른 그런 눈치를 채지 못하였다.
그는 주머니에 손을 쑤셔 넣었다. 칫솔로 만든 여자 조각품이 손바닥에 부드럽게 쥐어졌다,
「꼬마야, 이거 네게 준다. 좋은 선물이 될 게다. 그리고,,,,.. 내가 부탁한 거 잊지 말도록 해다우.」
그는 입술에 가벼운 경련을 일으키며 말했다. 그러니까 그제사 그들은 그가 왜 그런 말을 하고 있는가 하는 것을 눈치 채는 것 같았다. 꼬마의 눈에서는 얼른 눈물이 감돌아가는 것이 보였다. 나는 영웅은 아니지만,,,,,, 비겁하게 아우성은 치지 말자. 그런다고 하여 예정이 바뀔 것도 아니 남겨두고 가는 사람들에게 떨떠름한 뒷맛만 남겨주는 일이 되지 않나,.....
그는 울컥 통곡이라도 하고 싶은 감정을 침을 꿀꺽 삼키며 참아 넘겼다. 나는 결코 죽어야 할 사람은 아닌데,
그는 밖으로 나갔다. 애써 교도관은 굳어진 표정을 가지지 않으려고 하고 있었으며. 이미 싸늘해진 눈빛으로 보아,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억지로 꼬마에게 웃어 보이며 복도를 휑하니 빠져나갔다. 중앙을 지나서 가면 조그마한 철문이 있고, 그쪽으로 나가면 보안과가 있는 건물로 통하는 좁은 뒤안길이 있었다. 옛날 미결감이 있는 경계선에는 또 조그마한 쪽문이 있는데, 그쪽으로 가면 다른 볼일이 있는 것이고, 그쪽 대문에서 오른쪽으로 굽어지면 바로 그가 마지막으로 가야 하는 길로 가는 것이다,
쪽대문 앞에 이르니, 교도관이 왼쪽 어깨를 오른쪽으로 밀었다. 그는 주춤 발길을 멈추었다. 발바닥이 땅에 착 달라붙어 꼼짝도 하지 않았다, 아, 왔구나! 틀림없이 그게 왔구나 ! 그는 순간적으로 어디라도 도망해버리고 싶은 생각이 났다. 그러나 날개가 없는 담에야 저렇게 높은 담을 어떻게 뛰어넘는단 말인가. 차라리 비둘기라도 되었다면 저 하늘을 날을 수 있을 것을...... 꼭 나가기만 하면 한번 올라가 보고 싶던 저 산꼭대기가 교도소의 뒷담 위로 태양을 받고 높고 검게 솟아 있었다. 껴안고 실컷 울 상대가 없으면 저 산이라도 껴안고 울고 싶은데 ,,,,,,
교도관이 손가락 끝으로 그를 다시 밀었다. 그는 움직였다. 한 걸음 한 걸음
---마치 전지라 다 되어 간신히 돌아가는 기계와 같이.....,
높은 서쪽의 돌담 아래로 벽돌로 쌓아놓은 창고와 같은 집이 있었다. 커다란 미류나무 몇 그루가 반월형의 쪽문의 양쪽에 서서 바람에 잎사귀를 하늘거리고 있고 그 곁에는 실버들 한두 그루와 소나무 하나. 그리고 벽오동 한 그루가 볼품 없게 서 있었다. 그는 미류나무라도 움켜쥐고 한사코 매달려볼까,..... 그러나 역시 날개가 없어서는 비참한 꼴로 다시 잡히고 말 것이다. 한사코 죽이지 않으면 아무 것도 안 되는 것처럼 생각할 테니까,
그는 그리로 들어갔다. 삼십 년 전에 이미 없어졌다고 느껴지는 시골의 면사무소 건물과 같은 초라한 건물이 하나 나타났다. 안쪽 벽에 하얀 휘장이 쳐져 있고, 그 앞에는 돗자리가 한 장 깔려 있고 그 위에 초라한 평의자가 하나 놓여 있었다. 그 정면에는 식당의 식탁과 같은 책상이 하얀 보자기를 쓰고 있었으며, 그 안쪽에 또 의자 몇 개가 놓여 있었다.
그는 천장에서 드리워진 횐 보자기를 보는 순간 온몸이 얼어서 꼼짝을 할 수가 없었다. 도저히 자기 몸으로서는 걸어갈 수가 없었다. 교도관이 그를 부축하듯이 하여 그를 의자에다 간신히 갖다 앉혔다.
이미 그는 아무 것도 생각할 수가 없었다. 할 일없이 잘 보이지도 않는 시선으로 두리번거리고 있으니 어느 사이엔가 방안에는 사람들이 여러 사람 모여들었다. 좌우에는 교도관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몇 사람, 그리고 판사석과 같은 자리에는 또 다른 사람들이 몇 사람 앉아서는 굳은 표정으로 그를 채려다보았다.
맞은편에 앉은 나이 많이 든 사람이 신문장을 끄집어내어 간단하게 인정 신문을 했다. 그러나 그는 그게 무슨 소린지 전연 알 수가 없었다. 묻는 대로 대답했을 분이라서 자기가 무슨 대답을 했는지도 생각할 수가 없었다.
「왼쪽 아랫배에 맹장수술자국이 있지요?」
그는 또 기계적으로 대답했다.
「당신은 천구백오십 년 십이 월 이십 일 XX 지방 법원에서 살인 죄목으로 사형 언도를 받았지요? 그리고 천구백오십 X년 이월 삼일 고등 법원에서 역시 사형 언도를 받았지요? 그후 천구백오십 X년 유 월 십육 일 대법원에서 다시 사형 언도를 받았지요?」
「예」
「그 뒤, 당신은 재심 청구를 했지만. 기각되었고, 그리하여 오늘에 이르렀는데, 이제 상부의 지시에 의하여 형을 집행하게 되었으니 마지막 할말이 있으면 하시오. 가족에게 전해드리겠소.」
「억울할 뿐입니다. 나는 아무 죄가 없어요.」
그는 간신히 대답했으나, 역시 자기 귀에는 한마디도 들리지 않았다.
「목사님의 말씀을 들으시겠소?」
그는 고개를 가만히 흔들었다. 식은땀이 온몸으로 흘러내려서 완전히 자신을 마비시켜놓고 있다는 것을 그는 간신히 느낄 수가 있었다.
심문을 마치자 좌우에 있던 교도관들이 달려들어 그의 얼굴에 횐 보자기를 씌우고 온몸을 칭칭 감았다. 발목을 감고 무릎을 감고, 다시 수정에다 로프를 넣어 팔꿈치를 묶었다. 그 다음에 로프를 사타구니 쪽으로 해서 항문을 죄었다. 그는 벌써 미이라처럼 굳어져 버렸다. 이미 아무 것도 사고할 수가 없었다. 그의 혼은 그의 몸에서 나와 머리 위를 이상하게 맴돌고 있었다. 난, 나는 어디로 가는 건가. 누가 나를 데리러 오고 있구나. 그 여자다,,,,,, 웃으며 가볍게 날아오듯이 다가오고 있구나-----나는 그 여자를 만날 아무 이유가 없는데...... 허지만 그 여자는 내가 자기를 죽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겠지...... 정말이구나. 그 표정을 보면 알 수 있지. 사람이 사람을 죽인다는 것...... 그래서 또 사람을 죽인다는 것------그게 얼마나 무의미한 것인가를 그 여자는 알고 있구나. 사람이 사람을 죽일 이유를 가지고 있어도 안 되고 또 그 이유 때문에 그것이 자행되어도 안 된다는 것을 기 여자는 역설하고 있어. 자살도 죄에 속하고.,... 살아 있는 것보다도 더 불행한 삶을 계속하고 있는 식물적 인 인간을 안락사하게 하는 것마저도 죄가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사회 공안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그 여자는 잘 알고 있다고 말하고 있어. 그게 바로 인간의 모순이고, 지나친 생명력에서 오는 과잉 생존이 아니고 무엇이냐고,,,, , 그러나 어째서 남의 생존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있을 것인가. 남의 생존을 인정하면 생존 아닌 생존은 인정할 수가 없는 것이며, 범죄도 발생하지 않는 법이 아닌가. 정말.... 살아 있는 사람들은 아무 것도 모르는구나. 죽어보지 않고 인생의 진리를 어떻게 터득할 수 있을까. 정말 죽음은 인생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인간적인 모순과 오류에서 완전히 벗어난 참다운 생명의 시작이야. 그 여자는 그렇게 말하고 있어------나는 그 여자에게로 가는 거야. 그게 가장 유쾌한 일이거든....
교도관은 그를 번쩍 안아서는 흰 휘장 안으로 들어갔다. 그래서는 엄지 손가락 굵기의 마닐라 로프의 올가미 안에다가 그의 머리를 밀어 넣었다.
조금 후에 똑똑 소리가 나고 둔탁한 소리가 나며 그의 몸은 허공을 날아, 그가 오매불망하던 그 여 인의 가슴속으로 뛰어들었다.
세월은 망각의 재를 지구상에다 뿌리며 무섭게 흘러갔다.
그러나 도저히 이 사건을 잊어버릴 수가 없는 두 사람이 있었는데, 바로 꼬마와 그 여인을 죽인 사람이었다.
꼬마는 고재북이라는 사람의 별장에서 원예사 노릇을 하고 있었다. 그는 항상 주머니에 김기오가 준 칫솔의 조각물을 넣어 가지고 다녔고, 그것은 누구에게나 깊은 사연이 있는 그의 마스코트처럼 보였다.
꼬마는 이미 사십을 바라보는 나이에 있었으나, 워낙 곱상하게 생겼는데다가 몸집이 조그만해서 별로 늙은 것 같지 않았다. 그러나 자세하게 관찰하면 그에게도 수많은 세월의 찌꺼기가 조용하게 얼굴에 담겨져 있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그는 정원의 잔디를 깎고, 도장한 정원수의 가지를 자르고 있었다. 날씨는 무지하게 더웠으나 지하수가 차 있고 나무그늘이 서늘하여. 그리 더운 줄도 모르고 일을 하고 있었다.
고재북 영감이 집에서 걸어나와 잘 자란 후박나무 아래의 바위에 걸터앉았다. 바위는 어지간한 집채만한 것으로 마치 조개껍질처럼 되어 있어서, 비스듬히 드러누워 있으면 아주 매끈하고 쾌적한 감을 주게 하였다.
그런데다 이 바위는 이 별장의 요지가 되어 사방의 경치가 한눈에 내다보였다. 멀리 야트막한 산들이 안개에 싸여 있고, 햇빛을 받아 거울처럼 반짝이는 강물이 뱀처럼 굽이쳐 흘러가고 있는 모습이 아련히 내다보였다.
별장에는 향나무류의 정원수와 소나무들, 그리고 수사해당화, 매화 등이 울창하게 둘러서 있었고, 동편에는 왜성 사과 나무들이 벌써 아이들의 주먹만한 크기의 사과를 가지가 휘일 정도로 잔뜩 매달고 있었으며, 서편 쪽에서 흑송 실생목이 수만 주 꽂혀 있는 묘목장이 있었다.
영감은 이미 건강 때문에 사업의 일선에서 물러앉아 여기에 와서 한가한 하루하루를 보내며 신병을 치료하고 있었다.
그러나 영감의 신병은 조금도 나아지는 것 같지 않았다. 고혈압에다가 당뇨를 하고 있었으며 심장도 좋지 않아 벌써 몇 번씩이나 협심증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는 자의반 타의반으로 회사를 아이들에게 넘겨주고 별장에 와서 아무 생각을 하지 않으며 나무 가꾸는 일에 정신을 쏟고 있었다.
그래서 꼬마와는 주종 관계가 있는 사이라기보다도 친한 친구요 유일한 말벗이 되어 있었고, 이 사람마저 자기 곁에서 떨어져나간다면 정말 죽을 것 같았다.
「이 사람아, 담배나 한대 피우고 하지 그래? 매화는 지금 가지를 자르면 꽃 구경을 할 수가 없잖나.」
고재북이 말했다. 그는 잠옷도 아니고, 또한 외출복도 아닌 이상한 옷을 입고 있었다, 돈 많은 사람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그는 옷매무새 같은 것에는 전연 신경을 쓰는 성질이 아니었다.
「아니요. 어차피 피지 않을 가지만 자르고 있으니까요. 단지가 많이 남아 있으니까 걱정 없습니다. 」
꼬마는 땀을 닦으며 영감이 앉아 있는 바위로 걸어 올라왔다.
「허긴 그래. 매화는 너무 많이 꽃이 피어 있는 것도 보기 좋은 것은 아니지.」
꼬마는 옷깃을 가지고 땀을 닦다가 주머니에 들어 있는 조각품을 바위에 떨어뜨렸다. 조각은 칫솔대로 만든 것이어서, 퉁 튀어서 공교롭게도 영감의 무릎에 가서 냉큼 올라앉았다.
「이게 뭐지? 자네가 항상 가지고 다니던 것이구만. 무슨 사연이 있는 물건인가?」
그는 손가락 끝으로 요리조리 자세하게 들여다보았다.
「정말 정묘하게 만들었구나. 가만 있자,,,,,, 왼쪽 엄지발가락이 쪼개져 있지 않나. 바로 그 여잔데--- 바로 그 여자구말구----생긴 것도 꼭 같은데----자네. 이거 어디서 났어?」
「이거요? 사연이 좀 있습니다, 별로 명예스런 것은 아닙니다만------말해도 괜찮겠습니까? 혹시 불쾌하게 될지도 모르는데요.」
그는 영감의 눈치를 살폈다. 얼마 남지 않은 머리가 허옇게 바래가지고 크고 둥근 머리통에 착 달라붙어 있었고, 눈꺼풀은 이중 삼중으로 긴장이 풀려서 두껍게 흘러내리고 있었다. 눈동자에도 이미 시력 같은 것은 별로 있는 것 같지 않고, 그저 사치용으로 뜨고 있는 것 같은 인상이었다.
「내가 불쾌할 거야 없지. 나는 이미 인생을 다 살은 사람이 아닌가? 아무 것도 불쾌할 것도, 거리낄 것도 없어. 그저 모든 것이 담담해. 다만 나는------좀 젊을 때에 하도 엉터리없는 짓을 많이 했더니,,,,,, 그게 후회스럽고 미안하고 ,,,,,, 자기 혐오 같은 것이 일어서 좀 괴로울 때가 있어.」
그는 가슴도 이미 다 늙어버려서, 감정의 지배를 받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약 이십 년 전에 말입니다,,,,,, 어릴 때죠,,,,,, 제가 절도죄를 짓고 약 사개 월 가량 형무소에서 있은 일이 있었어요. 회장님은 모르시던 일이지만------」
그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러나 그는 날카롭게 그의 얼굴을 주시하고 있었다.
「뭐,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지. 그때 얻은 건가 이걸?」
「예, 같은 방에 김기오라는 사형수가 하나 있었는데요------」
「김기오라,,,,,, 어디서 듣던 이름 같구만------」
「그가 여자를 하나 죽였어요. 탈렌튼가 모델인가 하는 여잔데요------굉장히 아름답고 날리던 여자였던가봐요,,,,,, 김기오라는 사람은 그 여자를 심 히 짝사랑하는 사람인데, 그 여자의 운전수를 하고 있은 모양이에요. 여자가 하도 다른 남자들과 더러운 관계가 많으니까 보다못해서 죽여버렸는지------아니, 그게 아니라 남들이 그렇게 추측한 모양입니다. 사실은 그런 것이 아니었는데 ,,, 그의 주장이 그랬는데요,,,,,, 그게 아무 반증이 없어서 그만 죄를 뒤집어쓰고 말았어요.」
그는 슬쩍 영감을 보았으나, 아무 충격도 몸에 일어나는 것 같지 않았다.
「그렇지, 그가 죽인 것이 아니지. 아니구 말구. 어떤 유명한 사장이 하나 있었어. 그 남자가 사회의 이목이 두려워서,,,,,, 그걸 숨기려고,,,,,, 그걸 알고 있는 사람이 바로 운전수 김기오니까,,,,,, 그를 죽이려고 한 거야. 그는 술을 잘했어. 특히 양주를 잘했어. 그 여자 집에 있는 양주를 그 친구가 혼자서 홀짝 홀짝 마셨어. 그래서 그 사장은 그 양주에다 약을 탄 거야. 그런데 뜻밖에도 그 술을 운전수가 마시지 않고, 그 여자가 마시고 말았거든. 엉뚱하게도 그가 사랑하고 있던 아가씨가 죽어버리고 만 거야. 헌데 재미있는 일은 말이야, 그 운전수가 자기를 분명히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믿었는데 말이야----수사 도중에 보니 전연 모르고 있더라는 거야. 허허---설령 운전수를 죽였다고 하더라도 잘못 죽인 셈이 된 거지. 이건 내가 아는 사람의 얘긴데-----그도 지금 폐인이 되어 아무 것도 못하고 나처럼 일선에서 물러앉아 있지만---요즘도 가끔 연락이 있기는 하지만,,,,,, 그도 다 잊어버린 것 같지만 양심적인 가책은 가끔 받고 있는 모양이야, 이래저래 양심의 부채는 다 갚은 셈이지만------비록 형은 받지 않았어도,,,,,, 이게 바로 그 장본인이 만든 건지 어떤 건지 모르지만-----」
그는 담담하게, 정말 남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은 태도였다.
「그렇죠. 그 분이 이 조각품과, 그리고 김기오와는 아무 관계도 없는 일이겠죠. 세상에는 하도 기이하고, 또 비슷한 일초 많이 일어나고 있으니까요. 또 설령 그 사람이 그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그 동안 세월이 얼마나 지났습니까 ? 그저 하나의 옛날 이야기에 지나지 않죠. 이미 죽은 김기오가 다시 살아날 것도 아니구요. 사형만 받지 않았어도,,,,,, 가이스까에 응애가 상당히 있어요. 약을 한번 더 쳐야겠어요.」
「그래서 때깔이 좋지 않았구만. 케르센은 아직 있나?」
「네, 남아 있어요.」
「그래? 그럼 같이 한번 뿌려보세.」
영감은 일어서면서 조각품을 꼬마에게 돌려주었다.
정을병(鄭乙炳: 1934- )
경남 남해 출생. 한국 신학 대학 중퇴. 1959년 {철조망}, {의지}를 <자유공론>에 발표하고 1962년 {반(反)모랄}이 <현대문학>에 추천되어 등단함. 그는 체험을 대단히 중시하여 대부분의 작품에서 문학의 허구적 측면보다는 실존이나 현실적 측면을 소설화하는, 고발 문학의 기수로 평가받는 작가이다.
주요 작품으로는 {개새끼들}, {유의촌}, {아테나이의 비명}, {말세론}, {받아들인다는 문제}, {환상을 만드는 여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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