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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단편소설3

79. 크라인씨의 병

by 자한형 2022. 5.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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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인씨()의 병()

조세희

 

은강에는 장님이 많았다. 은강에 살면서 놀란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공업 지역에서는 물론 볼 수가 없었다. 시가와 주거 지역을 거닐다 나든 알았다. 어느 날 나는 십 분 동안에 다섯 사람의 장님을 보았다. 다음 십 분 동안에는 세 명을 보았고, 그 다음 십 분에는 나의 발 옆을 두드리며 지나는 둘밖에 보지 못했다. 그러나 이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한시간이상을 헤매고도 단 한 명의 장님을 볼 수 없는 도시가 세계에는 있을 것이다. 은강에 유독 장님이 많은 까닭을 나는 알 수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장님이 많다는 사실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들과 같은 시대에 자란 사람들 중에 장님이 많다는 사실을 은강 사람들은 몰랐다. 그래서 은강 사람들 모두가 장님으로 보일 때가 있었다. 나는 장님들이 세상을 볼 수 있는 방법은 한 가지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눈을 갖는 일이었다. 어머니는 다른 생각을 갖고 있었다. 세상을 보는 눈은 따로 있다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한쪽 눈만으로도 잘 보는 한 노인을 알고 있었다. 어머니는 날마다 은강 지방 항만 관리청의 점용 허가를 받은 목재 공장의 저목장에 나갔다. 저목장에는 인도네시아에서 들여온 원목들이 쌓여 있었다. 저목장에 바닷물이 들어오면 원목들이 떠올랐다. 코끼리 지게차가 그 원목들을 건져 올렸다. 해방동 주민들은 인도네시아에 내린 햇빛을 받아 크게 자란 인도네시아 산 원목의 껍질을 벗겼다. 사람들은 그 껍질을 벗겨다 땔감으로 썼다. 남는 것은 팔았다.

어머니는 애꾸눈 노인과 함께 껍질을 벗겼다. 노인은 주물 공장에서 일하다 한쪽 눈을 잃었다. 그는 삼십 년 동안 한쪽 눈으로만 세상을 보아 왔다. 그는 장님 나라의 애꾸눈 왕과는 다르다. 장님 나라의 애꾸눈 왕은 제가 언제나 제일 잘 본다는 확신을 갖는다, 그러나 애꾸눈 왕이 볼 수 있는 세계는 반쪽 세계에 지나지 않는다. 그가 자신의 눈만 믿고 방향을 바꾸어 보지 않는다면 다른 반쪽 세계에 대해서는 끝내 알 수 없다.

어머니는 인도네시아 산 원목의 껍질을 벗겨 지고 해방동 비탈길을 올라왔다. 애꾸눈 노인이 어머니의 뒤를 따랐다. 그가 먼저 집으로 들어갔다, 애꾸눈 노인의 작은 집은 원목 껍질에 감겨 있었다. 그날 주거 지역 교회의 학생들이 노인을 찾아왔다. 한 아이가

"앞으로의 할아버지의 생활은 어때지실 거라고 믿으세요?"

라고 물었다. 다른 아이가 하나만 짚으라면서 여섯 개의 문장을 읽어내려갔다.

-아주 좋아질 것이다

-비교적 좋아질 것이다

-좋아지지도 나빠지지도 않을 것이다

-약간 나빠질 것이다

-아주 나빠질 것이다

-대답할 수 없다

노인은 간단히 말했다.

"아주 좋아질 거야. 거기다 동그라미를 쳐 줘."

학생들은 나무껍질 문 앞에 서 있었다. 뜻밖의 대답이라는 표정을 그 아이들이 지었다

"나는 곧 죽을 거야."

애꾸눈 노인이 말했다. 어머니는 그 노인도,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죽은 다음에야 평온을 얻을 것이라고 말했다. 찾아온 아이들에게는

"우리의 생활은 아주 나빠질 것이다."

라고 했다. 어머니는 나 때문에 불안해했다. 어머니는 내가 질 싸움을 시작했다고 믿었다. 나는 어머니가 저목장에 나가는 것이 못마땅했다.

"제발 그만두세요, 어머니."

내가 말했다.

"어머니가 저목장에 나가시는 게 저희들을 괴롭게 해요. 그 껍질나무가 얼마나 보탬이 된다고 그러세요."

"이게 다 너 때문이란다."

바닷물에 절은 껍질나무를 어머니는 널었다.

"네가 없을 때를 대비해 내가 이러는 거야."

"제가 어딜 가요?"

"언젠가 넌 집을 나가게 될 거다."

"전 아무 데도 안 가요."

"넌 쫓겨다니게 돼."

"누구에게요?"

"그만두자."

어머니가 등을 돌렸다.

지난번에 여드레씩이나 집을 비됐던 일을 벌써 잊었지?"

"그건 조합 일 때문이었잖아요?"

마찬가지야. 넌 매를 맞고 피를 흘리면서 들어왔어. 넌 이 에미와 두 동생을 내동댕이쳐 놓구 계속 엉뚱한 일만 하게 될 거야. 그러다 한 보따리씩 걱정만 안겨 주겠지."

"걱정할 거 없어요."

나는 말했다.

"앞으론 아무 일 없을 거예요."

"그럴 필요 없다."

어머니는 알고 있었다.

"이제 시작이다."

어머니는 껍질나무를 옮겨 널면서 말했다.

너의 그 일은 이제 시작야. 나는 잘 모르는 일야. 넌 누굴 위해 무슨 일을 하겠다는 거냐?"

"남을 위해 일할 힘이 저에게는 없어요."

"날 속일 생각은 마라,"

"알면서 왜 그러세요?"

"그래."

어머니는 허리를 펴고 섰다.

은강으로 온 게 잘못이다. 난 밤마다 너희 아버지 꿈을 꾼단다 "

"개꿈을 꾸었구나."

아버지 가 말했었다.

"너희들 꿈은 다 개꿈야."

"그래도 좋아!"

영호가 말했다.

"막 날아다녔어! 날아서 강을 건넜어! "

"키가 크느라구 그래,"

내가 말했다. 아버지가 나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재들 좀 봐라."

아버지가 문밖을 가리켰다. 동네 아이들이 버들여뀌가 꽃을 피운 방죽가에 앉아 흙을 주워 먹고 있었다. 영희는 그 아이들을 보면서 생쌀을 먹었다.

"나도 흙을 먹었었죠?"

내가 물었다.

"나는 안 먹었어."

영호가 말했다."

"오빠도 먹었어."

영희가 생쌀을 털어 넣으며 말했다.

"뱃속에 기생충이 있는 아이들이 흙을 먹는단다."

"회충 말야?"

"그래."

"영희야, 생쌀 좀 먹지 마."

어머니가 말했다.

"맛있어!"

"돈이 생기면 고기 한칼 사 오세요. 제대로 먹이지 못하니까 생쌀만 축내요."

"그러지."

아버지가 대문을 나섰다. 아버지는 식칼 소리를 내면서 멀어져 갔다. 그 순간부터 우리는 아버지를 기다렸었다.

"아버지가 잘못했지."

어머니는 말했다.

"어느 시골로든 터전을 옮겼어야 했어. 그럼 아버지도 안 돌아가셨을 거다."

"먹고 살 수가 있어야죠,"

"땅을 파는 게 낫지."

"팔 땅이 있었어요?

"남의 땅을 파 줘도 이곳보다는 좋았을 거야."

껍질나무를 던지며 어머니가 돌아섰다.

"왜 공장 일만 하지 못하니, 너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도대체 넌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거냐? 왜 가만히 시키는 일만 못해?"

"어머니."

나는 말했다.

"사람처럼 살고 싶어서 그래요."

"누가 사람처럼 살지 말랬니?"

"막는 놈들이 있어요. 그리고. 아이들은 모르고요."

"막으면 막게 놔 두고, 모르면 계속 모르고 있게 놔 둬. 내 말을 안 듣다가는 잡혀가. 너는 죄를 짓고, 재판을 받고. 감옥소에 갇힌다. 그 문에 머리를 찧는 이 에미와 동생들을 안 보려면 가만히 좀 있어."

나는 다락방으로 기어올라갔다. 어머니는 계속 껍질나무를 펴 널었다. 은강의 조수는 그 주기가 열 두 시간 이십 오 분이었다. 어머니는 달이 바닷물을 끌어올렸다 내렸다 한다는 사실을 몰랐을 것이다. 바다 한가운데 떠 있던 큰 화물선이 내항 도크로 들어갈 때 어머니는 저목장으로 나가고는 했다. 저목장의 원목들도 만조 때에만 떠올랐다. 어머니는 은강에서 큰아들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강박 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다. 은강은 너무 크고 복잡한 도시였다. 영희의 말대로 은강은 위험한 도시일뿐 아니라 죄악으로 가득 찬 곳이었다. 애꾸눈 노인네 껍질나무 벽에는 지명 피의자 수배 벽보가 붙어 있었다. 살인, 살인 미수, 강도, 상해, 강간, 공무원 자격 사칭, 특수 강도, 사기, 수뢰 등의 죄목이 피의자들에게 걸려 있었다. 내가 아는 죄인들의 이름은 올라 있지 않았다. 잡범들의 사진 위에 검거 도장이 찍혀 나갔다. 큰 범법자들은 우리와 먼 곳에 있었다. 어머니를 제일 먼저 놀라게 한 것은 블랙 리스트에 나의 이름이 올랐다는 것이었다. 조합 활동에 깊게 관여한 근로자들의 취업 기회를 봉쇄한기 위해 은강 공장의 사용자들이 작성한 명부에 나의 이름이 올랐던 것이다. 사용자들에게 나는 작은 악마로 보였다. 그들이 제일 싫어하는 사람은 노동자 교회의 목사였다. 그들은 사랑과 희생의 덩어리인 성인을 싫어했다. 목사는 나에게 완전한 성인으로 보였다. 오목 렌즈 안의 눈을 볼 때마다 그가 성인이라는 생각을 나는 하고는 했다.

그러나 나로서는 가장 이해하기 힘든 인물이었다. 나는 우리가 노력만 하면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내 생각을 말하면 그는 웃기만 했다, 목사 앞에서의 나는 언제나 어린 학생이었다. 몸이 약하다는 한 가지 약점을 제외하면 그는 정치, 철학, 역사, 과학, 경제, 사회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는 지혜로운 사람이었다. 그는 부를 생산이라는 샘에서 솟아나는 물에 비유하고, 그것은 사람의 손에서 손으로 이동하지 않으면 한곳에 괴어 썩어 버린다고 말했다. 그 말을 받아 누가 꽤 진지한 목소리로

역사와 같군요."

라고 말했는데, 그는 안경을 치켜올리더니

"여러분이 알아야 할 것은 그게 아니라 부의 생산자가 바로 여러분 자신이란 점입니다."라고 했다. -사회 조사 연구회-에서 있었던 일이다. 그날

"나는 여러분의 동료들이 열심히 부를 생산하는 것을 보아 왔습니다."

라고 목사는 말했다.

"그러나 부를 생산하고도 그것을 제대로 나누어 받는 사람은 아직 한 사람도 못 보았습니다."

라고 그는 말했다. 일종의 의식과 교육으로, 나의 머리에 발전기를 설치한 이가 바로 그였다. 나는 그가 마련한 여섯 달 과정의 교육 프로그램에 참가하여 많은 것을 배웠다. 나는 산업 사회의 구조와 인간 사회 조직. 노동 운동의 역사, 노사간의 당면 문제, 노동 관계법 등을 배웠다, 정치, 경제, 역사, 신학, 기술에 대해서도 배웠다. 모두 열 네 명이 매주 토요일 오후에 모여 일요일 저녁까지 숙식을 함께 하며 배웠다.

피교육자들은 전기, 철강, 화학, 전자, 제분, 방직, 목재, 공작창, 알루미늄, 자동차, 유리, 조선, 피복, 공장 등에서 왔다. 모두 가난한 집안의 아들딸들이었다. 다 눈물 젖은 밥을 먹어 보았다는 한가지 공통점만으로도 우리는 가까워질 수 있었다. 우리는 그때 노래했다.

 

내가 굶주려 애쓸 때 너 있었나

밥을 찾을 때 거기 있었나

내가 목말라 애쓸 때 너 있었나

물을 찾을 때 거기 있었나

내가 병들어 누웠을 때 너 있었나

돌봄 바랄 때 거기 있었나

 

교육 과정을 끝마치고 헤어질 때 우리는 또 노래했다,

 

함께 나누는 기쁨과 슬픔

함께 느끼는 희망과 공포

 

목사는 대량 생산 체제를 갖춘 공장에서의 생활이 비인간적이라면 그 요소들을 찾아 개조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우리의 어른들은 그렇게 큰 공장에서 일해 본 경험이 없다는 점을 그는 강조했다. 그는 전혀 새로운 환경에서 회생만 강요당하는 세대에 우리를 넣었다. 우리의 침묵은 우리의 권리에 상처만 준다고 그는 말했다, 그에게서 교육받은 열 네 명이 공장으로 돌아가 어려운 일을 해냈다. 여섯 명은 조합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나중에야 나는 목사가 어떤 면에서는 아주 보수적인 온건주의자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그의 신을 떠나서는 잠시도 살 수 없는 사람이 기도 했다. 그가 우리의 교육을 위해 과학자를 부르고는 했다.

과학자는 매주 일요일 오후에 와 기술 과학에 관한 이야기를 우리에게 해 주었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시커먼 기계들 속에서 기계를 움직여 일하는 단순 노동자들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그 자신이 작은 공장을 경영하고 있었다. 아주 작은 공장이었다. 과학자 자신은 공작소라고 했다. 자동선반, 공구선반, 나사절삭선반, 나사연마기, 드릴링머티인, 밀링머시인, 그리고 작은 용해로가 공장 시설물의 전부였다.

그의 공장에서는 언제나 열 명 안팎의 공원들이 몇 개의 공작 기계를 돌려 일했다. 그 공장의 주생산품은 zl3/8이라는 이름의 나사였다. 생산량의 거의 전부를 미국으로 수출했다. 그의 나사는 달 착륙선과 그밖의 우주선, 기상관측위성, -성 탐색 위성, 유도 로켓, 실험용 로봇, 콤퓨터들의 제작에 쓰여졌다. 그의 작은 부품은 지능을 지닌 기계의 제작에만 쓰여졌다. 그러나 과학자는 자기가 하는 일을 창피하게 생각했다. 그의 꿈은 과학자가 되는 것이었다. 그는 꿈을 이루지 못했다.

나의 환경이 내가 과학자가 되는 것을 막았다,"

고 그는 말했다. 그의 가냘픈 목소리에서는 언제나 쇳소리가 났다. 그러면서도 우울한 느낌을 주었다. 목소리 때문에 그는 손해를 보았다. 처음에는 아무도 그의 말을 진실로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다. 그에 의하면 기술과학의 발전이 숙련 노동자를 실직시켰고, 공장 내의 단순 노동은 어린 근로자들의 장기간 저 임금의 노동으로 충당되었다. 그리하여 공장을 중심으로 인구가 집중하고. 도시에는 빈민들이 생겼다.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를 들려 주기 위해 그는 예의 쇳소리를 냈다. 그러나 근로자의 손해는 경영주의 이익이라는 단순한 지적이 우리의 뒤통수를 쳤다. 부의 증가는 저임금 근로자의 수의 증가와 비례해 왔다는 역사를 그가 들춰냈다. 우리는 그를 믿었다. 교육 과정을 끝마치면서 바닷가로 놀러갈 때도 그를 초청했다.

우리는 비닐 봉지에 든 인스턴트 식품과 마실 것들을 장만하여 바닷가로 갔다. 오염된 바닷가에서 먹고, 토론하고, 노래했다. 물속으로 뛰어들면 기름 냄새가 났다. 목사는 헤엄을 칠 줄 몰랐다. 내가 파도를 헤치며 들어갈 때 그가 손을 저어 말리는 것이 보였다. 나는 삼십 미터쯤 나가다 돌아 나왔다. 폐유 찌꺼기가 나의 몸을 쌌다. 목사가 수건으로 씻어 주었다. 하얀 수건이 시커멓게 되고, 폐유 찌꺼기가 묻은 피부 위로 물방울이 흘러내렸다. 나는 모래 위에 주저앉으며 헛구역질을 해댔다.

과학자는 목선을 빌어 타고 노를 저어 나갔다. 얼마 전까지 어장이었다는 바다에 흰 원반을 가라앉혀 보이지 않을 때까지의 깊이를 미터로 쟀다. 동해안 어느 쪽이 18미터인데 이 바다의 투명도는 2,7미터라면서 과학자가 혀를 찼다. 그 썩어 가는 바닷가에서 우리는 하루 밤을 잤다.

무언가 고르지 못하다는 생각들 때문에 나는 잠을 이를 수 없었다. 영희와 영호을 밤일을 하는 날이었다, 영희는 직기 사이를 뛰었고, 영호는 연마기를 돌렸다, 어머니에게는 몹시 불안한 밤이었을 것이다. 그때, 장남으로서 내가 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영호와 영희가 벌어 오는 돈으로 먹고사는 형편이었다. 물론 나도 벌었지만 나는 그 돈을 다시 내다 쓰지 않으면 안 되었다.

"미안하다."

나는 말했다.

"영호한테도 미안하고, 영희한테도 미안하다."

그러면 나의 동생들은 말했다.

"걱정하지 마, ."

"괜찮아. 큰오빠. "

어머니는 달랐다.

"네가 공장 일만 열심히 한다면 정말 좋겠다."

늘 같은 말이었다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다만, 우리의 심신도 편해질 날이 오지않겠니?"

지치지도 않으셨어요?"

나는 말했다,

"길게 보면 우리 모두가 늙어 죽어요."

"아니 다. "

어머니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너는 아냐. 아버지도 명대로 사신 분이 아니다."

어머니의 말을 들었다면 나는 은강 방직 보전반 기사 조수에서 기사로 옮아갔을지도 모를 일이다. 받는 돈도 많아졌을 것이다. 나는 어머니가 원하는 아들이 될 수 없었다. 나는 스스로 어려운 길을 택했다. 노동자 교회의 교육을 받은 직후 나는 다시 은강 대학 부설 노동 문제 연구원에 나갔다. 3주의 교육을 받기 위해 은강 방직 보전반 기사 조수는 3주 내내 밤일을 해야했다. 사람들이 잠자는 시간에 잠자지 않고 일했다. 몸은 말할 수 없이 약해졌다. 나쁜 식사지만 제시간에 할 수 없었고, 잠도 늘 부족한 상태였다. 그때 남쪽 공업 단지에서 일하는 한 사나이가 나를 만나러 온다는 소식을 들었다. 목사가 그 사나이의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 사나이의 이야기는 나도 들어 왔었다. 그는 여러 공장에서 일한 경험을 갖고 있으며, 그의 운동 방법은 아주 특이한 것이어서 그가 가는 곳에 조합이 생기고, 조합원들은 공장 경영주들이 끌어가는 수레바퀴를 잡고 늘어져 그 수레에 실은 이윤이라는 짐을 덜어 나눈다고 했다. 그의 몸에는 여러 곳에서 입은 상처가 있고, 많이 아는 사람들이 흔히 그렇듯이 말이 아주 느린 편이나 판단이 빠르다는 소문을 나는 들었다. 물론 떠도는 풍문을 나는 그대로 믿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고생을 한 사람이라는 것, 그리고 사심 없이 많은 사람을 위해 일하고 있는 사나이라는 것을 나는 믿었다. 그가 노동자 교회에 도착해 나를 기다린다는 전갈을 받고 달려가서야 알았다. 지섭이었다. 나는 놀라지 알았다. 어머니는 지섭을 보고 아무 말 못 했다. 몇 초 후에 돌아서더니 소매 끝을 눈에 대었다. 어머니는 돌아간 아버지를 생각했다. 영호와 영희도 지섭을 보는 순간 돌아간 아버지를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를 서울 행복동에서의 마지막 시절로 끌어갔다. 우리는 뿌연 유리를 통해 과거를 들여다보았다.

"죽기가 살기보다 쉴지."

어머니가 말했다.

"하지만 얘들 아버지를 원망해 본 적은 한 번도 없다우."

"그러시겠죠."

지섭이 말했다. 그의 눈 밑에 상처가 있었다. 코뼈도 약간 내려앉은 것 같았다. 그는 약손가락과 새끼손가락이 뭉툭 잘려진 왼손을 바른손으로 눌러 가렸다. 그를 위해 어머니는 시장을 보아 왔다. 쇠고기를 사다 국을 끓이고 조금은 구웠다. 영희가 부엌 아궁이에 껍질나무를 넣고 불을 붙였다. 집안에 연기가 자욱했다. 어머니는 껍질나무의 불등걸을 화덕으로 옮긴 다음 고기를 구웠다. 은강에 온 뒤 처음으로 우리는 풍성한 밥상을 대하고 앉았다. 밥에도 보리를 섞지 않았다. 그 정황이 행복동 집에서의 마지막 날과 비슷했다. 지섭이 밥을 국에 말았고, 어머니는 군 쇠고기를 손님의 밥그릇에 넣어 주었다. 냄새를 풍기는 게 겁이나 조금 구웠다고 어머니는 말했다. 어머니가 고기를 굽는 동안 더러운 동네의 꼬마들은 놀다가 서서 냄새를 맡았다. 지섭이 고기를 집어 영호의 밥그릇으로 옮겼다. 영호의 손이 그것을 막다가 놓았다. 좁은 마루에 앉아 있던 영희가 부엌으로 가 숭늉을 떠 왔다. 그 얼굴이 푸석했다.

계속 조업 공장에 나가는 아이들이 모두 그렇듯이 영희도 일하고 잠자는 시간이 매주 달랐다. 아버지가 그렇게 사랑한 막내가 숭늉 그릇을 들고 서 있고, 나는 그 애 얼굴 뒤로 펼쳐진 공장 지대의 어두운 밤하늘을 보았다. 아버지는 싫다는 영희를 자꾸 업어 주려고 했었다.

"낮엔 싫어."

어린 영희가 말했었다.

"아이들이 놀려서 싫어."

"왜 널 놀리니?"

어머니가 물었다.

"아이들이 손가락질을 해."

영희가 말했었다."

"저거 봐라!"

아이들은 말했었다.

"난장이가 저보다 큰 애를 업었다! "

영희는 밤에만 아버지 등에 업혀 나갔다. 아버지의 웃음소리와 영희의 웃음소리를 우리는 앉아서 들었다. 몇 해 동안 이웃해 산 주정뱅이가 어린 영희에게 술을 먹이려고 뱅뱅 따라 도는 소리도 우리는 들었다. 영희를 업은 아버지가 개천에 놓은 나무다리를 건너오고 있었다. 까르르 웃는 영희의 웃음소리가 아버지보다 빨리 다리를 건너 집으로 들어오고는 했다.

"장가를 가야지."

어머니가 말했다.

"남자는 그래 야 마음을 잡는다우."

"전 글렀어요."

지섭이 웃었다.

"한세상 이렇게 떠돌다 끝낼 셈입니다."

"우리 영수 듣는데 그런 소리 말아요."

"제가 어때서 그래요, 어머니."

내가 말했다.

"잰 이미 내놓은 자식이라우."

영호와 영희가 어머니의 손을 잡았다.

"손은 왜 잡니?"

어머니가 말했다.

"."

"놔라,"

아버지는 말했었다.

"이 손을 놔. 넌 언제나 힘으로 이 애빌 막으려고 하는구나."

"아직 추워서 그래요, 아버지."

"얘들도 내 말을 못 알아들어요."

어머니가 말했다.

"난 외톨이라우."

"그럴 리가 있습니까?"

다시 지섭이 웃었다.

"배를 내려라."

아버지는 방죽가에 서서 말했다, 꽁꽁 얼어붙었던 방죽의 얼음이 풀려 녹아 없어지기 시작한 때였다. 나는 배를 내려 물위에 띄웠다. 겨울 방안에서만 난 아버지가 나를 작은 나무배에 태우고 방죽 안으로 들어갔다. 물 가운데 떠 있던 얼음 조각들이 뱃전에 닿아 밀렸다.

"애들 아버지는 무덤두 없어요."

어머니가 말했다.

"화장을 했어요. 한 줌도 못 되는 가루를 물위에 뿌렸다우."

"춥지 않으세요?"

"괜찮다."

아버지는 노를 세워 들었다.

"너는 장남야. 그래서 너와 단둘이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너희 엄마가 들어서도 안 될 이야기야."

"무슨 말씀이신데요?"

"서둘지 마라."

아버지는 멀어진 집을 힐끔 돌아보았다.

"난 죽기로 결심했다."

아주 낮게 아버지는 말했다.

"장남이기 때문에 너에게만 이야기하는 거다. 난 죽기로 결심했어."

"왜요"

나는 무서운 생각이 들어 몸을 떨었다.

"왜냐구? 왜냐구 물었니?"

". 왜 돌아가실 생각을 하셨어요?"

"너희 삼남매하구 너희 엄마 때문야. 그리구 저 집 때문이다."

"얼마동안은 못 살 것 같았다우."

어머니가 말했다.

"하지만 산 사람은 그냥 살아가요."

"아버지, 저희가 윌 어쨌다고 그러세요?"

"뭘 어쨌다는 게 아니다."

"그럼 뭐예요"?

"스스로 생각해 알아야지, 이만큼 이야기해도 모르겠니?"

"알겠어요."

나는 말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다고 해결될 일이 있어요?"

"너희들 짐이 되기가 싫어."

"누가 아버지를 짐으로 생각한단 말예요? 돌아가시면 아버지는 비겁자가 되세요."

"그래도 할 수 없지."

아버지는 담담히 말했다.

"하지만 너만 내 편이 되어 준다면 죽을 생각이 없다.-

"그럼 됐어."

나는 아버지를 향해 다가앉았다,

"얼마 동안만 너희들과 떨어져 살 생각야."

아버지는 말했다.

"언젠가 날 찾아왔던 꼽추아저씨 있잖니? 집을 나가 그 아저씨와 일을 하는 수밖에 없겠어. 그 아저씨 친구 한 분이 걷질 못하는 불구자야. 앉은뱅이를 너도 본 적이 있지? 차력도 하고 곡예도 하는 약장수가 있는데 우리 셋이 가면 동업자로 받아 주겠대. 차를 두 대씩이나 몰고 다니면서 큰 돈을 버는 사람야. 방방곡곡 안 다니는 데 없이 다니면서 약을 팔아 자식들을 대학까지 보내고, 집도 큰 것을 갖고 없는 게 없이 잘 사는 사람이지. 그가 우리 셋을 동업자로 받아 주겠다는데 망설일 게 뭐가 있겠니 ? 돈을 똑같이 나누겠다는 거야. 나에겐 마지막 기회다. 집도 재개발 지역에 들어 헐리게 되고 너희들은 학교가 아닌 공장에나

나가니 하룬들 내 마음이 편할 수 있겠니? 희망도 없구. 벌레야. 마지막으로 꿈틀대 돈을 모아야지."

"아버지는 꼽추가 아녜요. 앉은뱅이도 아니구요. 아세요?"

"안다."

아버지는 다시 말했다.

"나는 벌레야."

"이젠 편해지셨겠지."

어머니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아주머닌 오래 사세요."

지섭이 말했다.

"얘들이 앞으로 편히 모시게 될 겁니다."

"그럴 날이 올까?"

"오잖구요."

"안 믿어져. 왜 고런지 안 믿어져."

아버지는 더 깊은 곳을 향해 노를 저었다. 뱃전에서 밀리는 얼음 조각들이 겊어 놓을 때의 유릿장 소리를 냈다. 방죽의 깊이를 나는 알 수 없었다. 바람이 아직도 찼다.

"어머니와 의논하세요."

나는 말했다.

"영호와 영희에게도 말해 주세요."

"그럼 다 틀려 버려,"

어머니와 영호, 영희가 좋다고 하면 그들을 따라가세요. 전 가만 있겠어요. 아버지가 꼽추와 앉은뱅이하구 사람들을 불러모으기 위해 어떤 차림으로 어떤 일을 하게 될 거라고도 전 말하지 않겠어요. 그렇지만 그 약장수가 어떤 계산을 하고 꼽추와 앉은뱅이에 난장이 아버지까지 원하는지 먼저 생각해 보세요. 이용만 당할 게 뻔하지 않아요?"

"그만두거라."

아버지는 노를 놓았다.

내 마음이 찢어질 것처럼 아프다. 그걸 알아야지, 찢어질 것처럼 아파."

아버지는 배를 반대쪽 물가에 대었다. 나는 그대로 앓아 있고, 아버지는 마른 잡풀 위로 올라섰다. 몇 걸음 걷다가 앓았다. 다리를 오무려 붙인 아버지가 그 위에 머리를 숙이는 것을 나는 보았다. 시퍼런 칼을 맞아 살이 찢기고 칼자리에서는 피가 흐르는데 그 상처에 소금을 뿌려 넣는 무엇의 정체를 나는 알 수 없었다. 행복동 시절을 생각하면 언제나 슬픔이 앞섰다. 난장이네 큰아들로 태어나 자란 나는 정말 불행하게도 무엇을 선택할 기회를 한 번도 가져 본 적이 없다. 지섭을 이해하는 데는 나의 출생과 성장, 그 경험과 사고들이 오히려 도움을 주었다. 은강에 온 지섭은 여러 가지 면에서 목사, 과학자와 비슷한 사람이었으나 한가지면에서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그 자신이 바로 노동자였다. 그의 표현을 빌면 그 자신이 많은 희생자 중의 한 사람이었다. 행복동 집이 헐린 직후 피를 흘리며 공터를 가로질러 끌려가던 그의 뒷모습을 우리 식구들은 보았었다. 쫓겨나듯 서울을 떠난 그는 여러 지방의 공장을 전전하며 떠돌이 임시공으로 일했다. 철공소 절단공, 자전거포 땜장이, 주물 공장 쇳물 주입반 보조공에서부터 새로 생긴 공업 도시의 대단위 공장 보통 노동자, 미숙련 노무자. 단순 작업 근로자로서 그는 일했다.

그는부두, 조선, 고무, 방직, 자동차, 전기. 시멘트, 제빙. 피복 등 여러 종류의 공장에서 조금씩이지만 일한 경험을 갖고 있었다. 내가 은강 공장에 나가며 겪은 일은 그가 여러 공장에서 겪은 일들 중에서도 아주 작은 어느 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 아버지가 좋아한 지섭이 아버지에게 경제적 고문을 퍼부었던 시대에 노동운동가가 되었다는 것은 전혀 우연한 일이 아니었다. 난장이 일가도 그에게는 하나의 관찰 대상이었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중요한 것은 그가 따뜻한 애정으로 아버지를 대했었다는 것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달나라의 이름으로 펴 보인 아름답고 순수한 세계는 그의 머릿속에만 있었다. 그것을 밖으로 실현하기 위해 용기를 갖고 행동하는 사람으로서 그는 은강에 왔다. 그는 내가 어떤 일을 바여 사용자들이 작성한 블랙 리스트에 오르게 되었는지 알고 싶어했다. 내가 은강 방직에서 한 일이라고는 임금을 15%정도 더 올리도록 한 것과. 보너스를 loo%더 지급 받을 수 있게 한 것, 그리고 부당 해고자 18명을 복직시킨 것이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었다.

지부장인 영이는 일주일 동안 우리가 모르는 곳에 가 조사를 받았으며 조합원들은 식사를 거부하고 버티다 쓰러졌다. 그들 속에 영희가 끼어 노래하고. 침묵하고, 외치다 정신을 잃고 까무러치고는 했다. 회사 사람들은 나중에야 천 오백 명을 움직인 한 사람이 보전반 기사 조수라는 것을 알았다. 나는 원면 창고 앞에 앉아 방적부 남자 공원이 실타래로 부는 슬픈 노래 소리를 듣고 있었다. 일주일만에 만난 영이는 몰라 볼 정도로 마르고 파리해져 있었다. 영회가 영이를 집으로 데려왔다. 나를 보는 순간 영이는 울음을 터뜨렸다. 까칠해진 볼을 타고 흐르는 영이의 눈물이 누워 있는 나의 가슴 부분에 떨어졌다. 어두운 은강 공작창 뒷골목에서 나는 힘센 그림자들에게 맞아 쓰러졌었다. 지섭은 내가 분배의 약속을 일방적으로 파기한 기업주의 부당 이윤 중에서 2억 정도를 덜어내는 데 성공한 것으로 계산했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것으로 조합원들의 의식을 들었다. 그는 내가 죽은 조합을 살려냈다고 말했다. 그의 말들을 나는 칭찬으로 받아들였다,

"제가 한 일은 별로..,언어요.

내가 말했다.

"알아."

지섭이 받았다. 나는 그가 이렇게 말할 줄은 몰랐다.

너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한 일을 따라 했을 뿐야."

그가 말했다.

"네 잘못을 이제 알아야 돼."

"그게 뭐죠?"

어떤 일이든, 무지가 도움을 준 적은 없어."

화가 난 목소리로 그가 말했는데. 이에 대해서는 나도 할 말이 있었다.

"형이 알다시피 전 많이 배울 기회가 없었어요."

내가 말했다.

"방송통신고교도 중간에서 그만뒀고, 대학은 생각도 못 했어요. 그래서 책도 닥치는 대로 읽었고, 모르는 것은 아무나 붙잡고 물었어요. 여기 와서도 모르는 게 많아 노동자 교회에 가 두 어른에게 배웠어요. 대학 부설 기관 교육도 그래서 받은 거예요."

"그래서, 뭘 얻었니?"

"눈을 떴어요."

"너는 처음부터 장님이 아니었어!"

지섭이 큰 소리로 말했다.

"현장 안에서 이미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바깥에 나가서 뭘 배워? 네가 오히려 이야기해 줘야 할 사람들 앞에 가서 눈을 떴다구? 장님이 돼 버린 거지, 장님이. 그리고, 행동을 못 하게 스스로를 묶어 버렸어. 너의 무지가 너를 묶어 버린 거야. 너를 신뢰하는 아이들을 팽개쳐 버리구."

"그렇진 않아요."

내가 말했다.

"열 다섯 개의 서어클을 만들었어요. 상집 대의원들이 그들을 지도해요."

"그 대의원들은?"

"지부장이 잘 해요."

"?"

"교회 목사님이 만드신 모임이 있어요. 여러 산업장의 대표급 근로자 모임인데 얼마 전부터 제가 그 모임을 주도하게 됐어요."

"아버지가 살아계셨다면 놀라셨겠구나. 그래, 너에겐 훌륭한 이론가가 될 소질이 많아, 원하기만 하면 넌 고급 노동 운동 지도자가 될 수도 있을 거야."

전 형이 그렇게 말하는 이유를 모르겠어요."

"네가 안 해도 할 사람디 있는 일을 네가 하는 이유는 뭐냐?"

"제가 할 일은 뭐예요?"

"현장을 지키는 일야."

"제가 일하는 곳이 현장야요."

"그럼 그곳을 뜨지 말고 지켜. 그곳에서 생각하고, 그곳에서 행동해 근로자로서 사용자와 부딪치는 그 지점에 네가 있으라구."

그는 바쁜 사람이었다. 처음부터 나는 알고 있었다 단지 행복동 시절을 추억하기 위해 남쪽에서 기차와 버스를 갈아타 가며 은강에 올 사람이 아니었다. 우리는 바닷가를 걸으며 이야기했다. 그는 말했다.

"바다에서 제일 좋은 것은 바다 위를 걷는 거래. 그 다음으로 좋은 것은 자기 배로 바다를 항해하는 거지. 그 다음은 바다를 바라보는 거야. 하나도 걱정할 게 없어. 우리는 지금 바다에서 세 번째로 좋은 일을 하고 있으니까."

그의 목소리는 아주 부드러웠고, 나는 그가 시를 읽는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날 밤 그는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해 있었다. 그는 노동자 교회에 모인 은강 근로자들을 위해 한 시간 반 정도의 강연을 했다. 모두 감명을 받았다. 그가 강연을 하는 동안 영희는 내내 울고 있었다. 지부장인 영이가 제 손수건을 주었는데 그래도 계속 눈물을 흘리자 부지부장의 손수건까지 겹쳐 눈에 대 주었다.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했어."

영희가 소리를 죽여 한 말을 영이가 나에게 전해 주었다. 나는 영희의 신이 그 애에게 더없이 따뜻한 신이기를 바랐다. 영희가 신에게서 받은 가장 큰 선물이 바로 은총이었다. 그런데 지섭이 떠나던 날 영희는 작업조에 들어 배웅을 나갈 수 없었다. 나와 영호로 그랬다. 저목장에 나갈 채비를 한 어머니가 더러운 골목에 서서 지섭의 작별 인사를 받고 손을 흔들었다, 영이가 조합 총무부장과 함께 역까지 나가 전송했다. 목사와 과학자, 그리고 몇몇 공장 조합 지부장들이 나왔더라고 영이가 말해 주었다. 나는 지섭의 갑작스러운 방문이 앞으로의 나에게 어떤 영향을 줄까 생각했다. 우리는 옳고 그른 것을 따지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해 왔다고 그가 말했다. 지섭이 다녀간 다음의 내 변화를 제일 먼저 읽은 사람이 과학자였다.

"따져 보면 목사님과 나는 줄밖의 사람야."

그가 말했다.

"저도 줄 앞에 선 사람은 아녜요."

내가 말했다.

"그럴 자격도 없구요."

"하지만 너의 줄야. 나는 줄 밖에서 소리쳐 준 사람인가?"

그가 공장 그의 방에서 좀처럼 이해할 수 없는 병을 보여 주었다. 말이 병이지, 내부가 있어 공간이 밀폐되는, 그런 보통의 병이 아니었다. 대롱 벽에 구멍을 뚫어 한쪽 끝을 그 구멍에 넣어 만든 이상 한 병이었다. 과학자는 그것을 -클라인씨의 병-이라고 했다. 그림 이 바로 그것이다. 과학자는 그림 과 같은 유리 대롱으로 그 병을 만들었다. 그림 처럼 원기둥의 한쪽을 넓게 하고 그 반대쪽을 좁게 변형시킨 다음 벽에 구멍을 뚫어 그림 을 완성한 것이다. 종이는 안과 밖 두 면을 갖는데, 학자들은 -안팎이 없는 한 면의 종이--안팎이 없고 닫혀 있는 공간 - . 상식적으로는 생각할 수 없는 이상야릇한 것들도 연구하게 된다고 했다. 과학자가 내게 보여 준 이상한 병도 독일의 수학자 펠릭스 클라인이 순전히 논리의 결과인 추상적인 측면에서 연구하여 발표한 것이라고 한다. 과학자는 의아해 하는 나에게 말했다

"이것이 클라인씨의 병야. 안팎이 없는데 닫힌 공간이 있어."

나는 그림의 병을 열심히 들여다보았다. 보이는 것도 단순하고 설명도 간단한데 뭐가 뭔지 통 알 수가 없었다. 나는 내가 정상적인 학교 교육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가장 초등적이며 단순한 생각이 기본이 된 문제도 이해하지 못한다고 믿었다. 그런데 과학자는 교육적으로 어떤 훈련을 받지 않은 사람이라도 상식적인 방법에 의해 문제의 핵심을 뚫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논리의 구애를 받으면 문제를 자꾸 복잡하게 만들게 되니까 쉽게 생각하라는 것이었다. 나은 아주 오랫동안 그것을 들여다보았다.

정말 내부가 없군요."

내가 말했다.

"안팎을 구분할 수 없어요. 그리고. 닫혀 있는 공간이란 말도 알겠어요."

과학자가 웃었다. 그는 나에게 말했다.

"내부와 외부의 구분이 있으면 이런 현상은 없지."

그날 나는 이 병을 왜 나에게 보여 주느냐고 물었고, 과학자는 병을 완성한 순간에 네가 왔을 뿐이라도 대답했다. 나에게는 우연 같지가 않았다. 더욱 알 수 없는 것은 그림 의 실체가 내 눈앞에 있는데 그 실체를 무시하고 상상의 세계에서만 그 존재가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림 을 들고

"그럼 이것은 뭡니까?"

내가 물었는데 그는 간단히

"그것은 없다."

고 잘라 말했다. 나는 인사를 하고 공장 그의 방에서 나왔다. 잔업을 끝낸 은강중공업의 기계공들이 공장 정문을 나와 어둠 속으로 흩어져 가고 있었다. 그 공장과 알루미늄 공장 사이에 공터가 있었다. 그 공터에서 시커먼 사람들이 고체 폐기물을 태워 묻고 있었다. 늦게 집에 들어갔을 때 어머니는 돈을 세고 있었다. 원목 껍질을 팔아 번 돈을 침을 발라 가며 세었다. 나는 다락방으로 올라가 누웠다. 영호가 공장에서 돌아오고, 영희는 밤일을 하기 위해 나갔다. 옆집 애꾸눈 노인의 기침 소리가 내가 누워 있는 다락방까지 들려왔다. 그 집 건넌방에 세들어 사는 공원 내외가 밥상을 집어던지며 싸우고 있었다. 아이가 울어댔다. 은강에 겨울이 왔다. 은강의 근로자들은 몸을 웅크리고 공장에 들어가 일했다. 몹시 추운 겨울이었다. 모두 약해졌다.

"영수야."

어느 날 어머니가 가를 불렀다.

"공장에서 요즘 무슨 일이 있니 ? 요즘 또 무슨 일을 꾸미고 있지?"

"봄에 대의원과 지부장 선거가 있어요. 회사 사람들과 조금씩 마찰이 있지만 아무 일 없을 거예요."

"그런데 다른 공장 사람들은 왜 만나? 지섭이 왔던 일하고는 무슨 관련이 있니?"

"다 같은 은강 그룹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야요. 지섭이형도 마찬가지야요. 남쪽이지만 은강 그룹 공장이 그쪽에도 많아요."

"그래서?"

"조합 일도 잘 해 보고, 임금도 어느 정도 요구해야 할까 의논도 하고, 어느 공장 근로자들이 회사와 마찰이 있게 되면 응원도 해 주고 그러자는 거예요. 자주 만나야 정보도 얻죠. 그 이상 다른 일은 없어요."

"정 말이지?"

."

"그럼 됐다."

어머니는 말했다.

"아주 나쁜 꿈을 꾸었단다. 네가 잡혀가는 꿈을 꾸었어. 네가 서울 본사로 올라가 높은 사람을 죽였다는 거야. 끔찍한 꿈도 꾸었지, 끔찍한 꿈을."

"어머니."

나는 말했다.

"제발 걱정하지 마세요."

"너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우리는 끝장야."

"알았어요."

"내 말을 들어야 돼. 공장에서 시키는 일만 해. 내 말을 안 듣다가는 정말 잡혀가. 너는 죄를 짓고, 재판을 받고, 감옥에 가게 돼."

"알았다니까요!"

너무 춥고 우울한 겨울이었다. 나는 갑자기 모든 사람들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나는 슬픈 마음으로 자신을 분석해 보고는 했다. 나의 고독한 성격은 어떻게 찰 수가 없었다. 내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우리가 기왕에 해 온 일이 아닌 다른 이야기를 목사와 하고 싶어 갔다가도 그냥 되돌아오고는 했다. 과학자와도 그랬다. 따져보면 한가하게 다른 이야기를 할 시간이 우리에게는 없었다. 회사 사람들이 숨을 자아 오기 시작했다. 나는 회사의 높은 사람들이 우리 모두가 한배에 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 주기를 바랐다. 그들은 안 그랬다.

그들은 그들만의 다른 배를 탔다고 고집했고, 일방적으로 원하기만 했다. 나는 옳은 일에 의해서가 아니라 기회, 지원 ,무지, 잔인, 행운, 특혜 등으로 막대한 이윤을 얻는 사람들에 대해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추위가 서서히 풀리기 시작한 어느 날 나는 과학자를 찾아갔다. -클라인씨의 병은 그의 방 창가에 놓여 있었다.

나는 그 병을 들여다보았다,

"이제 알았어요."

빠른 목소리로 나는 말했다.

"이 병에서는 안이 곧 밖이오 밖이 곧 안입니다, 안팎이 없기 때문에 내부를 막았다고 할 수 없고, 여기서는 갇힌다는 게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벽만 따라가면 밖으로 나갈 수 있죠. 따라서 이 세계에서는 갇혔다는 그 자체가 착각이예요."

과학자는 나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대로야."

과학자가 말했다.

그가 (클라인씨의 병)을 들고 나를 향해 돌아섰지만 나는 그의 방에 더 이상 머물러 있을 수가 없었다.

은강 방직 보전반 기사 조수는 빠른 걸음으로 공장을 향해 걸어갔다.

 

 

 

조세희(趙世熙: 1942- )

1942년 경기도 가평 출생 서라벌예대 및 경희대 졸업. 1965"돛대없는 장선"이 경향신문에 당선. 그는 70년대 소외된 노동자 빈민의 삶을 '난장이'로 암시하여 폭로한 작가이다.

주요작품 : 12편으로 된 연작 소설이 있음.

* <뫼비우스의 띠>, <칼날>, <우주 여행>,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육교 위에서>, <궤도 회전>, <기계 도시>, <은강 노동 가족의 생계비>, <잘못은 신에게도 있다>, <클라인씨의 병>, <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 <에필로그> (이상 연작 12편의 제목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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