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망』으로 바라본 전국시대 10: 미카타가하라 전투 上
"신겐이 정말 죽었을 때를 말하는 것입니까?"
"그래, 죽은 것이 확실한 경우에."
"저 역시 상을 숨기고 일단 군대를 철수시키겠습니다."
한베에의 대답에 노부나가는 더욱 날카롭게 물었다.
"어째서 상을 숨기겠느냐? 그럴 필요가 어디 있느냐, 한베에?"
"이에야스님이 예사로운 대장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은, 별로 전투에 능숙하지 못했던 이에야스님에게 신겐이 전투란 이런 것이라고 낱낱이 가르쳐주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만일 죽었다는 것을 알리면 무사히 철수할 수 없을지 모릅니다. 이것이 첫 번째 이유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신겐의 상경을 고대하고 있는 장수들이 분산되어 성주님의 힘이 막 강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밖에 또 다른 이유가 있나?"
"셋째는, 현재 심복하고 있는 야마가 일당을 비롯하여 가신들 중에서도 후계자인 카츠요리의 역량을 의심하여 이탈하는 자가 계속 나타날 것입니다."
- 『대망』 중 발췌
당대 최고의 책사라 불렸던 타케나카 한베에(竹中 半兵衛)가 다케다 신겐과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관계를 단적으로 설명한 대목이 보인다.
‘별로 전투에 능숙하지 못했던 이에야스님에게 신겐이 전투란 이런 것이라고 낱낱이 가르쳐주었다는 뜻입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 역시 이를 부정하지 않았다. 그는 쇼군 자리에 오른 직후 가신들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나에게는 스승이 있다.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이 두 분은 나에게 정치와 용인술 그리고 전쟁을 하는 방법을 알려준 무서운 스승들이다. 그리고 잊지 못할 인물이 있다. 바로 다케다 신겐이다. 나에게 그는 두려운 존재였다. 옛날 미카타가하라 전투에서 나는 그에게 패배하고 도망가면서 말 위에서 변을 지릴 정도였다. 정말 존경하면서도 무서운 사람이다. 나는 그에게서 백성을 다스리는 마음, 전투에 임하는 자세, 그리고 인내와 기다림을 배웠다. 그때의 패배가 내 인생에 얼마나 큰 교훈이 되었는지 모른다. 다케다 신겐, 그는 나의 진정한 스승이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야전(野戰)에서의 지휘력은 상당한 수준이다. 휘하의 미카와 가신단의 능력도 그러하지만, 이에야스 개인의 능력 또한 상당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전투력이 다른 ‘영웅’들에 비해 한 수 아래로 취급받는 건 그와 동시대에 활약했던 다른 이들, 예를 들면 오다 노부나가, 우에스기 겐신, 다케다 신겐 등의 무력이 너무 출중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주특기가 ‘모략’이나 ‘권모술수’였기에 상대적으로 전투에 관한 능력이 뒤떨어져 보이는 측면도 있다.
재미있는 건 도쿠가와 이에야스 인생에 결정적 패배라 불렸던 2번의 전투는 모두 ‘붉은 갑옷’과 관련 돼 있다. 하나는 다케다 신겐과 맞붙은 ‘미카타가하라 전투’였고, 나머지 하나는 오사카 겨울의 진 전투에서 ‘사나다마루’를 건설해 도쿠가와 군을 박살낸 사나다 유키무라(真田幸村 : 사나다 노부시게란 이름보다 유키무라가 더 많이 알려졌다)다. 사나다 유키무라 역시 가문의 내력을 거슬러 올라가면 다케다 신겐이 나온다(사나다마루와 사나다 유키무라 삼부자에 관한 이야기는 따로 챕터를 떼어 내 이야기를 하겠다).
따지고 보면, 다케다 신겐과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악연이었다. 그러나 이에야스는 이 악연을 통해 천하인으로서 성장했다 할 수 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 인생 최대의 위기이자, 다케다 신겐 인생 최절정기의 전투. 바로 ‘미카타가하라 전투’에 관한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한다. 만약 다케다 신겐이 5년만 더 살 수 있었다면, 일본의 역사는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상당히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1572년.
오다 노부나가는 사방에서 포위됐다. 무로마치 막부의 15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아키(足利義秋)를 품에 넣고, 천하인으로 나서려 했던 오다 노부나가였지만, 요시아키가 등에 칼을 꽂은 것이다.
“내가 쇼군이고, 넌 내 부하야! 근데 왜 내가 네 부하처럼 느껴지는거지?”
“그렇게 느꼈다면, 그게 맞는 거 같은데?”
“,,,,,,”
오다 노부나가는 요시아키를 꼭두각시로 만들었다. 이미 허울뿐인 무로마치 막부. 이 막부에 충성을 할 이유가 없었다. 필요한 건 그저 ‘명분’뿐이었다. 이에 반발한 요시아키는 반(反) 노부나가 세력들을 규합하기 시작한다. 마츠나가 히사히데, 아사쿠라 요시카게, 아자이 나가마사, 혼간지의 켄뇨, 다케다 신겐 등을 규합해 소위 말하는 ‘노부나가 포위망’을 만든다.
오다 노부나가의 병력이 아무리 많다고 하더라도 사방에서 치고 들어온 병력을 막는 건 버거워 보였다. 결정타가 ‘다케다 신겐’이었다. 오다 노부나가와 도쿠가와 이에야스 연합군의 전체병력을 계산해보면, 다케다 신겐의 3만 병력은 그리 큰 위협은 되지 않았지만(평시에도 다케다 신겐의 병력은 무시무시하긴 했다. 신겐의 전략전술, 그리고 신겐 병사의 ‘질’을 생각하면), 사방이 포위된 상황에서 묵직한 돌덩이 하나가 굴러내려오는 격이었다.
거기다 다케다는 호조 가문과 동맹을 새로 체결했고, 라이벌이라 할 수 있는 우에스기 겐신도 발을 묶어 놓았다. 명분도 있었다. 쇼군인 아시카가 요시아키가 오다 노부나가 토벌령까지 내리지 않았는가? 이제 남은 건 밀고 들어가는 일 밖에 없었다.
겨울철에는 눈이 켄신의 출격을 억제해주었다. 그렇다고 눈만을 믿고 코후 성을 떠날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는 카가와 엣츄의 잇코 종도들에게 반란을 일으키게 하여 켄신과 맞서게 할 비책을 짜내고 있었다. 이미 켄신을 억제할 비책은 마련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언제 어떻게 귈기하여 어떤 방법으로 켄신의 진출을 막을 것인지 그 통보를 기다리고 있었다.
평생에 걸쳐 두 번 다시 있을 수 없는 상경을 위한 전투.
52년의 생애를 이 한 번의 싸움으로 결판지어야 할 전투.
켄신에 대한 대책만 완벽하다면 승리는 손 안에 들어온 것과 마찬가지였다.
- 『대망』 중 발췌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일생일대의 패배이자, 다케다 신겐의 인생을 건 상경이 맞닥뜨린 것이 ‘미카타가하라 전투’였다. 일본 전국 시대의 상식이 없는 상태에서 영화 <카게무샤>를 보면,
“뭐야? 대장이 총 맞았다고 후퇴하네?”
혹은,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치러 갔는데, 마지막에 대국을 그르쳤네.”
대충 이런 느낌이겠지만, 실제 역사에서 미카타가하라 전투와 신겐의 진격은 일본의 역사 자체를 뒤바꿀 정도의 ‘파괴력’이 있었고, 당사자 였던 다케다 신겐, 도쿠가와 이에야스, 오다 노부나가에게 있어선 인생의 갈림길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의 대 사건이었다.
만약 미카타가하라 전투의 승리를 발판 삼아 계속 미카와를 넘어 오다의 본진인 오와리(尾張国)로 치고 들어간다면, 오다의 천하포무는 위기에 봉착할 수밖에 없었다. 이 절대절명의 위기 속에서 일전을 겨룬 게 미카타가하라 평원에서의 전투였다.
이 당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끌어 모을 수 있는 총 병력 수는 1만 5천 명 정도였다. 그러나 이 중 절반인 7천 명은 다케다 신겐의 명령을 받고 미카와로 치고 들어간 야마가타 마사카게(山県昌景)를 막기 위해 보냈어야 했기에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실질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병력은 8천 내외였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급히 오다 노부나가에게 원병을 요청한다. 이때 노부나가는 3천의 병력을 급하게 보내게 된다. 다케다 신겐의 3만 기병 앞에서는 조족지혈이라 말할 숫자이지만, 오다 노부나가에게도 이 이상의 병력을 빼낼 여유는 없었다.
3만의 정예강병, 그리고 이를 지휘하는 건 당대 최고의 군략(軍略)을 자랑하는 다케다 신겐.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하마마쓰성(浜松城)에서의 농성(籠城)을 선택했다. 이에야스로서는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강대한 적을 정면에서 상대할 이유는 없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본 전국시대 농성은 일반적인 전투방식이었다.
문제는 다케다 신겐이 하마마쓰성을 무시했다는 대목이다. 신겐은 하마마쓰성을 무시하고 바로 서진(西進)해 버린 거였다. 이때 이에야스는 결단을 하게 된다.
“신겐의 뒤통수를 친다!”
서진하는 다케다 신겐의 배후를 치겠다는 과감한 결단을 내린 거였다. 물론 가신들이 뜯어말렸지만, 이 당시 이에야스는 아직 젊었다. 그것도 아주 많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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