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망』으로 바라본 전국시대 11: 미카타가하라 전투 下
"성주님은 미카타가하라에 학익진을 펼치시렵니까?"
"그렇다. 전후좌우는 모두 사이가가케의 절벽으로 이어진 곳, 어디에도 퇴로는 없다."
타다히로는 고개를 갸웃했으나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이에야스의 마음을 알 것 같았으나 불안하기도 했다. 3만 가까운 타케다 대군을 맞아 횡일선으로 진을 치는 방어전술은 없다. 어디를 돌파당하건... 더구나 이에야스의 말대로 퇴각로도 없다. 삼면이 모두 절벽인 배수진이어서 전군에게 전멸이 아니면 승리를 강요하는 배치라고 밖에는 생각할 수 없었다.
- 『대망』 中 발췌
미카타가하라 전투는 일본 전국시대 전투 중 드물게 양쪽의 진법이 자세히 기록돼 있는 전투다. 현대의 개념으론 군대의 진법(陳法)이 뭐 그리 대수일까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기관총과 대포가 등장하기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전투는 곧 진대 진의 격돌이었고, 이 진(陣)이 무너지면 패배하는 거였다.
이는 전투의 사상자 숫자를 보면 확실히 알 수 있는데, 전사자의 70% 이상은 진이 무너지고 패퇴하는 상황에서 발생한다. 즉, 진이 무너진 이후에는 일방적인 ‘학살’이란 의미가 된다. 군대는 뭉쳐있을 때 그 힘을 발휘하는 것이다(이건 현대전에서도 마찬가지다). 흩어진 군대는, ‘칼 든 민간인’일 뿐이다.
실제로 진을 짜고 움직이는 건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요즘 같은 시절에는 통신 수단이 발달 돼서 수시로 정보를 교환할 수 있지만, 일본 전국시대에는 잘해봐야 파발이나 북, 깃발이 다였다. 이런 상황에서 진을 짜고, 진을 유지하고, 공격을 한다는 건 상당한 노력과 훈련이 필요하다. 만약 진을 잘못 짠다면? 가장 큰 문제는 아군 병사들이 도망가는 거다.
조선시대의 진법
오다 노부나가가 등장하기 이전까지 병농일치 형태의 군대를 유지했던 상황이기에 이 농민병들의 ‘적전도망(敵前逃亡)’도 고민해야 했다. 가장 중요한 건 진을 그대로 ‘유지’시키며, 적과 싸울 수 있는 형태를 만드는 것. 그리고 이를 가지고 적과 부딪혀 밀리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일본 전국시대 일본인들은 어떤 진형으로 싸웠을까? 코에이 삼국지를 해본 사람이라면, 익히 들어봤을 법한 진형들이 나온다.
‘어린(魚鱗), 언월(偃月), 학익(鶴翼), 방원(方円), 봉시(鋒矢), 안행(雁行), 장사(長蛇), 형액(衡軛)’
헤이안 시대 오오에노 고레도키(大江維時)가 당나라에서 들여온 진법들이 기본이 됐다.
(솔직히 말해서 농민병에게 다양한 진법훈련을 시키거나, 이를 실전에 활용한다는 건 난망한 일이다. 고대 그리스 아테네에서 ‘팔랑크스Phalanx’라는 밀집대형 하나로 버틴 이유와 비슷한데, 생업이 있는 사람들에게 전문적인 전투교육을 시키는 게 어려웠다. 이 때문에 가장 단순하고 효율적인 진법을 고안하게 됐고, 그 결과 만들어진 게 팔랑크스였다. 물론, 이 팔랑크스에도 약점이 있다. 측면이 뚫리면 그대로 무너지고, 승리를 하더라도 중장보병이기에 적의 추격이나 섬멸이 어렵다는 등등의 많은 난제를 떠안고 있었다. 그러나 강력하고, 단순하다는 장점은 확실했다)
이야기를 다시 미카타가하라 전투로 돌린다면, 하마마쓰성에서 뛰쳐나온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신겐의 배후를 치게 된다. 이 당시 전술적인 상식이라면,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배후를 급습하는 것이므로, 돌격진형을 짜야 하는 게 맞지만, 어찌된 일인지 포위 진형인 학익진형을 짰다.
반대로 배후를 공격받은 다케다 신겐은 역으로 어린진을 펼쳤다.
어린진이란 그 이름처럼 물고기 형태의 진이다. 선봉 부대를 비늘로 보아 일점 집중으로 적을 파고드는 상당히 공격적인 진형이다. 뭔가 좀 이상하지 않은가?
이에야스의 학익진에 대해, 신겐은 어느 한 부대가 패해도 절대로 본진으로는 적이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종대의 어린진으로 대비했다. 선봉은 오야마다 노부시게, 그 뒤에는 야마가타 마사카게, 왼쪽 뒤에는 나이토 마사토요, 그 오른쪽 뒤에는 타케다 카츠요리, 왼쪽 뒤에는 오바타 노부사다, 그리고 신겐의 본대는 거대한 예비부대로서 그 한가운데에 바바 노부하루를 배치했다. 이 대군이 밀고 들어가면 학익진은 순식간에 잘려나갈 터. 신겐은 이에야스의 젊음이 실망스럽기도 했지만, 그러나 이번 상경을 위해 더 없이 기뻤다.
"일전을 벌이셔야 합니다."
바바 노부하루도 옆에서 말했다.
"자진해서 패하러 나온 것을 마다할 필요는 없습니다."
"음."
신겐은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 짓궂게 물었다.
"확실히 이길 수 있겠느냐?"
노부하루에게 라기보다 신겐은 자기 아들 카츠요리로부터 대답을 듣고 싶었다.
"물론 이깁니다. 싸우지 않는다면 스스로 복을 차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 『대망』 中 발췌
병력 수, 병력의 질, 전략의 차이, 실전의 경험 등등 모든 면에서 압도된 상황. 여기에 진향조차 차이가 났다. 차라리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어린진을 선택하고, 다케다 신겐 군이 학익진을 선택하는 게 옳지 않았을까? 아예 포위한 상태로 전멸을 유도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반면에 도쿠가와 이에야스라면, 남은 걸 모두 걸고 중앙돌파로 승부를 보는 게 낫지 않았을까?
기껏 배후를 잡은 상황에서 포위 전법, 그것도 병력 차이가 압도적으로 나는 상황에서 포위 전술이 가당키나 할까? 자신들의 최대 이점이었던 배후확보를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기동력 있게 돌입했다면 어땠을까? 반면, 다케다 군도 포위 공격으로 아예 몰살시킬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하고 돌격 진형을 선택했다는 것도 약간 의문이다(물론, 다케다 가문의 공격 성향은 이후에도 잘 보여 졌으니...이건 더 설명하기가 그렇다).
어쨌든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8천 병력과 다케다 신겐의 3만 병력은 미카타가하라 평원에서 일대 회전을 벌였고,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박살이 났다. 일방적인 패배였다. 이 전투만으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2천 이상의 병력을 잃었고, 이를 상대한 다케다 신겐은 고작 200명을 잃었다. 압도적인 패배다.
미카타가하라 전투
(미카타가하라 전투에 대해서는 후세 전사연구가들이나 역사가들 사이에서도 논란이 많다. 병력이 많은 다케다 군이 포위가 아닌 돌격 진형을, 병력이 적은 이에야스군이 포위진형인 학익진을 펼친 것에 대해 여러 추측들이 나왔다. 당시 경험이 적은 이에야스의 만용이라는 분석부터 시작해 이에야스의 학익진 자체가 ‘유인책’이었다는, 그러니까 이에야스가 학익진을 펼치면 다케다 신겐이 더 큰 학익진을 펼칠 것이고, 그 사이 이에야스는 다시 돌격 진형을 짜 중앙돌격을 하려고 계획했다는 ‘낭설’도 있지만, 재고의 가치는 없다고 본다. 결과 자체만 보면 이에야스의 판단 착오였고, 병력수와 질에서 압도적인 다케다 군의 돌격 앞에 맥없이 무너진 ‘싱거운 전투’였다. 이에야스는 성 밖을 나서는 순간 이미 패배했던 거다)
전투 자체는 싱겁게 끝났지만, 전투 후의 이야기는 흥미진진하다. 아마, 전투 후의 전개가 ‘본게임’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거다.
"어쩔 수 없는 분이시군요, 성주님은."
"뭐... 뭐야?!"
"보십시오, 안장에 대변을 보셨어요. 아아, 이 구린내!"
"뭣이, 내가 대변을..."
이에야스는 비로소 번쩍 눈을 떴다. 비틀거리면서 안장에 매달려 그것을 만져보았다.
"이 멍청아! 이것은 내 허리에 찼던 볶은 된장이다."
그러면서 타다요의 뺨을 때렸다. 철썩하는 소리가 났다.
- 『대망』 中 발췌
그 유명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변실금’ 사건이다. 다케다 신겐에게 패해 도망치다가 말 안장에 똥을 쌀 정도였던 거다. 이걸 본 시종에게 이건 똥이 아니라 된장이라고 우길 정도였다(실제로 똥인지 된장인지 부하에게 찍어 먹어보게 할 정도였다는...). 여기서 놀라운 건 이후 이에야스의 행보다.
이에야스는 성으로 도망쳐 들어온 후 즉시 화공(畵工)을 불렀다.
“지금 당장 내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라!”
소위 말하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미카타가하라 전역 화상』. 민간에서는 ‘이에야스의 우거지상’이라는 그림의 탄생이다.
명예와 자존심에 죽고 사는 당시 일본 무사들로서는 극히 이례적인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자신의 부끄러운 패배의 장면을 그대로 남긴 거였다. 절치부심? 와신상담이라고 해야 할까? 이날의 패배를 잊지 않겠다는 이에야스의 각오가 느껴진다. 그리고 이 각오는 훗날 나가시노 전투에서의 ‘설욕’으로 완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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