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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진속 마음의 정화 (4권)

한가위 속으로

by 자한형 2023. 4.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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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위 속으로

 

 

지난 월초의 일이었다. 추석열차표 예매가 시작된 날이었다. 항상 예년에 하던 식으로 추석열차표를 예매하기 위해 서대문의 한 여행사에 순번표를 제출해 놓고 회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미 시간이 꽤 늦어진 시간이었기에 제대로 예매를 할 수 있을지 노심초사했다. 당일까지 연락이 없었다. 당일이 지나고 다음날에 전화했더니 이번에는 표를 구할 수 없었다고 실토를 했다. 낙심하고 있었는데 다음날 10시에 전화를 한번 해보라는 얘기를 했다. 혹시 반환표가 생기면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희망을 남겼다. 다음날 전화를 했더니 마침 표가 있었다. 오후쯤에 대금을 입금해주고 오후 4시에 직접 표를 찾으러 갔다. 귀성전쟁이라는 그 어려움을 피할 수 있게 되었다. 9시간 내지 13시간이 소요되는 여정에서의 해방이었다. 자식들도 그 고역스러움을 익히 경험했던 터라 몹시도 좋아할 것 같았다. 표를 구하긴 했지만 비용의 지불도 만만치 않았다. 가족석이라 다소 할인된 금액이긴 했지만 부담이 컸다. 그렇게 미리 준비하고 법석을 뜬 덕에 귀성은 편하게 될 것으로 여겨졌다. 한가위 전날에 출발해서 당일날 야간에 올라오는 식이었다. 우리가족은 4일간의 연휴에서 이틀을 명절로 보내고 이틀은 편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게 되었다. 집사람은 또 수요일이 재량휴업일이어서 하루를 더 쉴 수 있었다. 항상 가족이 44색으로 살아 왔는데 이번 한가위의 귀성을 통해 서로의 현 상황과 속내를 탐색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했다. 또한 한 해 동안의 일상들을 되짚어 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될 것이고 향후 진로나 하반기의 계획에 관해서도 살펴볼 좋은 시간이 될 것으로 기대를 가졌다. 부산에로의 귀성을 위한 준비는 두어 시간 전부터 시작이 되었다. 짐을 꾸리는 것도 숙박이 하루였기에 간명했다. 옷을 차려입고 아들들의 준비는 각자가 준비하는 것으로 얘기를 해둔 상태였다. 제대로 준비를 해서 각자 짐을 들고 집을 나섰다. 택시를 타고 서부역 쪽으로 갔다. 서울역 부근은 이미 혼잡이 극에 달해 있었다. 충분히 여유롭게 출발을 했음에도 조바심이 날만 했다. 택시기사님은 나이가 지긋한 분으로 상당히 운치가 있으신 실향민이라고 자기소개를 했다. 해박한 시사상식을 갖고 있었고 현대사의 면면을 꿰뚫고 있었다. 택시에 내려 대합실로 들어오니 역시 명절 기분을 느껴볼 수 있었다. 모두들 추석 한가위를 맞아 고향으로 향하는 모습이 흐뭇해 보였고 한창 들떠있는 듯 여겨졌다. 숱한 애환과 세상사의 형극의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듯했다. 각별하게 맞아줄 부모님과 고향 친지들을 뵐 기대에 부푼 가슴이 되었고 설렘이 있었다. 오곡백과가 무르익고 삼라만상의 모든 것들이 일 년의 수고로움의 결실로 맺어져 조상에게 제사를 올리고 흠향하는 전통을 통해 삶의 한 전기를 맞게 되는 것이 한가위의 진정한 의미이리라. 우리 가족 넷은 4인 가족석에 앉아서 미리 준비해온 과일 등 주전부리를 먹으며 평소 못 다한 얘기들을 나누며 담소했다. 옆 좌석의 가족석에도 우리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데 다른 부분은 우리는 형제자식인 반면 그쪽은 자매간이었다. 다들 거의 장성한 모습이었다. KTX에 오르기 전에 이미 플래트홈에서 사진촬영을 했던 터여서 앉은 좌석에서도 사진을 몇 장 찍었다. 그것은 곧바로 SNS를 통해 올렸다. 부산까지 9시간이 걸렸다는 친구의 장탄식도 올라와 있었다. 또 어떤 이는 가족과 함께 해외에서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 있기도 했다. 정확히 2시간 40분이 소요되어 부산역에 도착했다. 그동안 가족 간에는 각자의 현 근황에 대한 대강의 내용을 파악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집사람은 미리 갖고 간 불교에 관한 책을 좀 읽기도 했다. 음악을 듣기도 했고 코레일이 제공하는 여행용 잡지를 잠깐 뒤적거리기도 했다. 통로에는 일부 입석인 듯한 승객도 제법 있었다. 예전에는 곧잘 핸드폰의 충전을 위해 11호차 쪽으로 가서 30분여를 충전하고 오기도 했었는데 요즘은 휴대용 충전기를 다 소지하고 있는 형편이어서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 큰 아들의 경우는 이제 올 명절이 학창시절의 마지막일 것으로 보였다. 내년부터는 사회 초년병으로 첫발을 내디딜 것으로 전망이 되고 내후년쯤이면 작은 아들이 그렇게 될 것으로 보였다. 짐을 싼 가방이 여러 개 였지만 든든한 아들 덕에 전혀 문제될 것이 없었다. 대합실에서 나와 택시 승강장으로 가서 택시에 탔다. 그리고 부모님 댁으로 갔다. 20여분이 걸려 집에 당도했다. 집 앞은 한창 재건축이 진행되고 있어 터파기 작업이 진행 중이었다. 대규모의 아파트단지가 들어설 것으로 보였다. 4년 정도의 공사기간이 필요하단다. 건축 중의 소음과 먼지 등으로 인해 인근 주민들의 민원의 대상이 되고 있는 형편이기도 했다. 집에 당도하고 보니 부친은 출타 중이었고 모친만이 황급하게 맞아 주었다. 미리 예견을 했는지 식사를 준비해 두었다. 맛있게 식사를 하고 긴 여정의 피로를 풀었다. 다음날은 추석 한가위였다. 7시부터 준비를 해서 옷을 차려 입었다. 간단한 입가심으로 과일과 식혜를 먹었다. 잠시 기다리고 있었더니 동생네 가족이 왔다. 그들도 간단히 요기를 한 후 곧바로 큰댁으로 출발했다. 동생과 제수씨가 각자 차를 가져와 그것에 분승해서 출발했다. 시원하게 바닷바람을 맞으며 광안대교를 보름날 아침에 내달렸다. 이제 조카들도 다 고등학생이 되었다. 거의 숙녀티가 났다. 중간고사가 코앞이라 자칫 명절도 거꾸로 쇨 뻔 했는데 다행히 본댁 제사에만 참례하고 곧바로 귀가해서 독서실로 가야할 형편이었다. 큰댁에서의 제사에는 많은 이들이 와서 자리를 함께했다. 다음은 작은집 제사였다. 제주도막걸리를 사용했다. 제사를 마치고 커피를 한잔씩하고 다음 차례를 지낼 곳으로 향했다. 제사를 모시는 곳이 네 곳이었다. 마지막 차례를 지낼 때에는 거의 점심시간이 다 되었다. 음복 술 외에 술상을 차려와 거나하게 마셨다. 노봉주가 압권이었다. 술을 조제한지 얼마나 지났는지 술의 기운이 완전히 숙성된 느낌을 주었다. 제법 거나해진 뒤에야 귀가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잠시 남천동 활어회센터를 들러 도미, 농어 등을 포장해서 귀가했다. 매운탕을 끓이고 회를 접시에 담아 상차림을 해왔다. 온가족이 모여 앉아 한해를 보내면서 느낀 소회를 털어 놓으면서 세상사를 늘어놓았다. 요즘의 제사상에는 피자, 치킨 등 젊은 취향의 먹을거리 등이 오르기도 한다는 얘기도 있었다. 참으로 한심한 세태였다. TV에서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한창 추석장사씨름대회가 진행되는 중이었다. 해설자가 흔히 알고 있던 천하장사에서 다른 천하장사로 바뀌어져 있었다. 두 아들은 노봉주가 과했는지 작은방에서 곤하게 자고 있었다. 한국경제는 어려움에 처했고 청년시업이 여러 문제를 양산하고 있는 와중에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남북 간의 화해의 합의를 이뤄내었고 또한 노사정의 대타협도 이루어진 점이 향후의 앞날의 전망을 밝게 해 주는 것이었다. 19대 마지막 국회의 마지막 국감이 진행되고 있지만 제대로의 성과를 이뤄낼 수 있을지는 의문시 되고 있다. 경제성장율 3%에도 미치지 못하는 상황에서 우리나라도 저성장 기조에 접어들고 있으니 안타까운 노릇이다. 전 국민이 다시 한 번 용틀임하고 합심해서 GNP 3만 달러 시대를 만들어내고 한 단계 도약의 기회를 창출해 내어야만 위대한 도전 위대한 여정 광복 70년 이후의 선진화된 대한민국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향후 통일 한국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진전을 이뤄내 진정한 일류국가 통일한국을 만드는 저력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한강물이 춤추고 백두산 천지가 울부짖는 모습을 온 국민이 지켜볼 수 있는 통일의 그날이 기필코 도래케 될 것이다. 저녁에 열차를 타기 위해 나온 길에 하늘을 보니 올해의 한가위 달인 슈퍼문이 웅장한 자태를 구름 속에서 내밀고 있었다. SNS에서는 온 세상의 한가위 달 슈퍼문이 올라와 있었다. 영국의 달, 브라질의 달도 있었고 서울의 달도 올라와 있었다. 세상이 하나 되는 것을 달을 통해 느낄수 있었다. 12일간의 짧은 고향길이었고 귀성길이었지만 이제는 이런 귀성길도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지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잠깐 TV를 보니 3D 프린터기에 의해 하나밖에 없는 자기만의 사탕, 젤리, 치즈를 만들어 먹는 아이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자기가 원하는 음식의 재료를 넣고 그것을 적절한 비율 조제 순서 등을 입력하는 절차를 거치면 세계적으로 유명한 셰프의 요리도 얼마든지 조제해 먹을 수 있는 시대가 당도하리라는 것이다. 요즘은 아무래도 쿡방의 시대이고 대세인 듯 보인다. 하지만 역시 최고의 맛은 엄마의 손맛이고 고향의 맛이 최고의 진미가 아닐까. 아무튼 긴 추석 한가위가 지나고 내일부터는 또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어렵고 힘든 경제 상황이고 여건 속이지만 새로운 힘을 발휘하고 운기조식해서 웅비하는 대한민국을 만드는데 최대의 활력을 쏟아 부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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