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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역사, 이야기 수담, 칼럼 바둑기사 등

이창호 이야기

by 자한형 2023. 8.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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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호 이야기/정용진

바둑판에 앉은 꼬마 이창호. 1984년 조훈현 9단의 내제자로 들어가 2년 만인 1986111개월의 나이에 프로기사가 되었다. 9세에 입단한 스승 조훈현에 이어 최연소 입단 2위 기록이다.

이 글은 필자가 조훈현 9단의 부인 정미화 씨를 인터뷰하여 <월간 바둑가이드>에 연재한 [승부사의 아내] 이창호의 내제자시절'(6)을 다시 손본 것임을 밝힙니다.

이창호 9단에게는 엄마가 두 분 있다. 한 분은 자기를 낳고 길러준 생모 채수희 씨이고 다른 한 분은 대성하도록 돌봐준 스승(조훈현 9)의 부인 정미화 씨이다.

1984년 조훈현 9단이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이창호를 내제자(內弟子)로 받아들였을 때 바둑계에서는 삽시간에 조제비가 호랑이 새끼를 들여놓았다는 농이 퍼졌다. 실제로 이창호는 몇년 안 가 15년 간이나 무적함대로 군림해온 스승의 일인천하를 허물고 한국바둑계에 일대 지각변동을 일으킨 주인공이 되었다.

내제자(內弟子)란 아예 스승의 집에서 동거하며 배우는 제자를 말한다. 우리나라 바둑계에서는 생소하지만 일본에서는 명망 있는 고수들이 집안에 도장(道場)을 열어 제자를 먹이고 키우며 양성했다. 조남철, 김인을 불러 가르친 기타니 미노루(木谷 實) 9단의 기타니도장이 가장 유명하다. 조훈현 9단은 세고에 겐사쿠(瀨越憲作) 9단의 내제자로 들어갔다. 여러 명이 함께 공부한 도장식 내제자가 아니라 홀로 스승의 집에서 숙식하며 배웠다.

정미화 씨는 남편과 수양아들, 즉 조훈현 9단과 이창호 9단의 틈바구니에서 가장 괴로운 사람이었다. 도전기가 있는 날이면 새벽부터 서둘러 따뜻한 아침밥을 지어 먹이고 두 사람을 나란히 승용차에 태워 대국장에까지 모셔드린다. 이때까지는 그날 누가 이길지 알 수 없으므로 차라리 마음 편하다. 정작 곤란할 땐 저녁이다. 늦은 밤 귀가하는 두 사람 중 한명은 반드시 패자일 수밖에 없을 터인데, 대놓고 어느 한쪽 편을 들 처지가 아니고.

조훈현-이창호의 사제이야기는 국내 최초의 바둑드라마로 제작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1994MBC3.1절 특집 602부작 드라마로 맞수’(박치문 원작, 김지연 극본, 고석만 연출)를 방영했다. 조훈현 역에 유인촌, 이창호 역에 정준이 출연했다. 사진은 이창호가 내제자시절 사제대결을 벌이기 위해 스승 조훈현 9단과 함께 작은엄마정미화 씨가 차려준 아침을 먹고 집을 나와 작은엄마가 운전하는 승용차에 타는 컷을 촬영하는 장면이다.

그러나 이러한 중립표방도 점차 사제간의 대국이 잦아지면서, 남편의 패배가 많아지면서 자연 흔들리기 시작했다. 좀 과장하면, 잘난 내제자 하나 잘못 들인 바람에 자칫하다간 쪽박 찰 지경에 이를지 모를 일이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살림을 꾸리는 안방마님으로서 생계가 걱정(?)되지 않았겠는가.

불혹을 넘긴 남편의 체력은 예전같지 않은데 내제자의 욱일승천한 기세는 끝간 데를 모르니 더욱 착잡할 수밖에. 더욱이 2(이창호가 연희동 조9단의 집에서 기거한 방은 2층에 있었다)은 날이면 날마다 새벽까지 불이 꺼지는 법이 없다. 따악, 이창호가 돌놓는 소리는 부메랑의 화살이 되어 작은엄마의 가슴에 섬뜩섬뜩 파고 들었다.

또 창호야?”

언젠가 동양증권배 준결승전 대국추첨에서 조9단이 또 이9단과 대국하게 되자 자신도 모르게 새어나온 정미화씨의 탄식이었다. 승부사의 아내로서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고충의 토로였다. 그러나 독을 지닌 산란기의 두꺼비가 스스로 뱀에게 잡아먹힘으로써 어미를 먹고 죽은 그 뱀을 자양분으로 제 새끼들을 무럭무럭 자라게 한다고 하는 어떤 지방 두꺼비의 동물적인 모성본능처럼, 이창호의 오늘은 순전히 작은엄마의 보살핌에서부터 출발했다.

정미화 씨는 조훈현 9단의 일정을 잡는 매니저이자 운전기사 역할도 도맡아한다. 정미화 씨는 아침에 남편을 대국장에 내려준 뒤 돌아갔다가 대국이 끝날 때쯤 다시 와 남편을 모시고 간다. 남편을 태우러 왔다가 복기가 끝날 때까지 옆에서 기다리고 있는 아내 정미화 씨. 바둑을 둘 줄 몰라도, 남편이 만날 "졌어~"라고 말해도 분위기로 상황을 파악하는 '눈치 9'이다.

가장 힘들었던 시기에 받은 아이

윗글은 언젠가 스포츠신문을 뒤적이다가 본 글이다. ‘작은엄마의 고민이란 제목으로 실린 이 짧은 칼럼은 사실을 과장한 부분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내 심정을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어 피식 웃음 짓게 만들었다.

창호가 우리집으로 들어오던 날은 공교롭게도 둘째 윤선을 낳던 날이어서 나는 하루에 두 아이를 얻은 셈이 되었다. 연희동에 살 때였는데, 그때는 시부모를 모두 모시고 있었고 장남 민제가 고작 네 살밖에 되지 않은 때여서 갓난아기 수발까지, 이건 집안이라기보다 차라리 돗데기시장이었다. 지금도 그러하지만 나는 남의 손에 내 집 살림살이를 맡겨 본 적이 없다. 시어머니께서 많이 도와주셔서 버텨올 수 있었기도 했지만, 어쩐지 다른 사람손에 가족의 뒷바라지를 맡기는 것은 마치 인스턴트 음식을 사대는 기분이어서 내키지 않았다.

그때 창호 나이 열한 살, 초등학교 4학년생이었으니까 아무리 조신하고 경우 바르다한들 어린애는 어린애, 무엇을 알았겠는가. 여기에 다큰 어린애(?) 한명은 또 어떻고. 그이는 아직 못 하나 제대로 박을 줄 모른다. 무얼 시키면 온전히 해내기는커녕 되레 일을 저질러놓는 스타일이어서 이러구러 설명을 하느니 바쁘고 힘들더라도 내가 팔 걷어붙이고 하는 게 더 빠르고 속편하다. 그러다보니 형광등 하나 끼우는 법조차 모른다. (그러나 육체적으로는 힘이 들어도 정신적으로 피곤하지는 않다. 민제 아빠가 항상 마음속으로 고마워 하고 더욱이 사람을 피곤하게 하는 스타일이 아니어서 힘은 났다. 여자 팔자 뒤웅박 팔자라는데 하긴 이렇게 속으며 살다가 죽는게지 뭐.)

재미대가리(?)가 하나도 없었던 아이

내 피붙이야 보리밥을 주든 쌀밥을 주든 상관이 없을지 몰라도 남의 귀한 자식을 데려다놓고서야 어찌 신경 쓰지 않을 재간이 있었겠는가. 원래가 과묵한 아이라 그랬겠지만 어릴 때부터 창호는 말이 없었다. 무얼 물어도 널름 파리 낚아채 먹고 입을 다문 두꺼비처럼 대답도 잘 안해 힘들었다. 얘기도 잘하고 상냥했으면 편했을 텐데 늘 말수가 없고 무뚝뚝해 어른인 내쪽이 더 어려웠다.

게다가 분가하기도 전에(일본은 보통 내제자가 5단이 되면 독립시킨다) 예상보다 훨씬 빨리 창호가 선생과 도전기를 벌였으므로 본의 아니게 적과의 동침관계가 오래 지속되었고, 그것이 아무리 승부세계의 일이라고는 하지만 그 사이에 끼인 나로서는 힘들지 않을 수 없었다.

문하생을 받는 것은 쉬워도 키우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솔직히 문하생을 들이는 결정은 선생에게 선택권이 주어져선 안되고 그 아내에게 주어질 일이라고 생각한다. 기재가 있는 아이라면 대부분 초등학생 나이일 텐데 양육은 결국 여자의 차지가 아닌가. 그런 까닭에서인지 수십 명의 내제자를 키운 기타니(木谷 實) 선생보다는 그 부인이 나는 더 대단한 사람이란 생각이 든다. 나야 처음이고 몰랐으니 창호를 덜컥 받았던 거고.

사람들은 틈만 나면 언제 또 내제자를 받을 거냐?”고 묻는다. 그럴 때마다 민제아빠는 그건 나보다는 집사람이 칼자루를 쥐고 있다며 교묘히 모행마한다. 나 역시 민제아빠 못지 않게 제2의 이창호를 만들겠다는 욕심은 많다. 그러나 이젠 뭔가 알아버린 상태(^^). 처음이야 뭘 모른 탓에 덜컥 받아들였다지만 두번째는 결심하기 쉬운 게 아니다. 아직 집안 여건이 그렇지 못하고 무엇보다 한번 맡은 이상은 창호에 버금갈 기둥을 만들어내야 하는데, 솔직히 자신이 안 선다. 남의 자식을 기껏 데려다가 서까래 정도밖에 못 쓸 사람으로 키워놓는 것도 그 애 인생이나 부모에게 죄를 짓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월간 바둑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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