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의 전설 조훈현 일대기 23/ 김종서
아무리 양치질을 많이 해도 새벽에 일어나면 입 안에서 화약내음이 솔솔 풍겨나왔다.
원래 약한 기관지와 편도선에도 니코틴은 지뢰로 작용했다. 결정적일 때 염증을 일으켜 컨디션을 흐트려 놓곤 했었다.
“승부세계에서 더 오래 견디기 위해서는 담배부터 끊어라!”
조훈현이 미국여행을 갔을 때, 절친한 친구 차민수가 정색하며 구박했다.
그의 승용차에서 조훈현이 담배를 피워 무는데 갑자기 유리창을 열면서 싫은 표정을 비쳤다.
“내 차는 금연구역이야.”
조훈현의 가슴 속에서 슬그머니 짜증의 싹이 돋았다.
친구의 차 안을 벗어나 미국 어느 곳을 가도 흡연자들을 배척하고 무시하는 문구가 눈에 어른거렸다.
‘내 더러워서 끊고 만다!’
조훈현은 미국여행 중에 금연을 작정하고 주머니 속의 담배갑을 구겨 쓰레기통에 처박아버렸다.
제2003년 봄 중국리그 을조의 용병으로 참가 열흘 만에 모든 대국일정을 소화한 조 국수는 연이어 후지쯔배, 기성전 도전기 최종국에 이르기까지 강행군을 해야 했다. 결과는 역시 좋지 않았다. 리듬을 잘 타면 아무리 벅찬 일정이라 해도 연승을 올리는 경우가 많지만 이번에는 지난 연말처럼 컨디션 조절에 실패한 거였다.
중국리그 직후에 참가한 후지쯔배 1회전에서 본인방 가토 9단을 꺾긴 했지만 2회전에서 왕리청의 벽을 넘는 데 실패했다.
귀국한 뒤 바로 벌인 기성전 최종국은 사제가 장장 10시간 동안 머리를 맞대고 최선을 다한 혈투였고, 피를 말리는 이런 대국일수록 당연히 컨디션이 결정적인 변수가 될 것이었다.
최종국이 벌어지기 전날 국수를 만나 근황과 임전소감을 물어봤다.
필자 : 중국리그 잘 다녀오셨어요?
국수 : 응, 막판에 삐끗해서 망신을 당했지.
필자 : 그래도 6승을 거두셨잖아요? 랭킹 1위 왕레이도 꺾었고.
국수 : 그럼 뭘 해.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는데. 마지막 판을 지는 바람에 홍 콩팀의 갑조 리그 승격이 좌절됐거든.
필자 : 그것도 다 이긴 바둑이었다면서요?
국수 : 그랬지. 확실하게 못질하려다 손등을 찍고 말았어. 이젠 결정적일 때 (정신이) 가물가물하다니까.
필자 : (화제를 바꿔) 절강성 미녀군단 예쁘던데요? 특히 그 중에서도 탕리 초단같은 경우 탤런트 뺨치는 외모던데…?
국수 : (화색이 돌면서) 무지 예쁘지. 아닌 게 아니라 탤런트 쪽도 생각하 고 있는 모양이던데?
필자 : 타이젬에 동영상이 업데이트되면서 탕리 팬들이 많아질 것 같더군 요.
국수 : 중국에서도 최고래. 스포츠 스타 중에서 압도적으로 인기도 1위를 유지하고 있대. 키도 훤칠하고 이목구비가 수려하잖아? 칼라 콘택트 렌즈를 끼었는지 눈동자도 묘한 빛이 감돌던데?
필자 : 가까이서 만나봤어요?
국수 : 그럼, 그 팀하고 붙었었지.
필자 : 국수님은 페미니스트라 미녀한테 한 수 접어주고 두었을 텐데…?
국수 : 후훗, 내가 미녀한테는 좀 약하지. 우리 측 후배 하호정이도 있고 해 서 절강성 미녀군단 전부를 초청해 저녁을 사겠다고 했더니 웬걸 그네들이 먼저 초대하는 거 아니겠어? 그 다음날 내가 곧바로 갚았 지.
필자 : 그럼 두 번씩이나 저녁을?
국수 : 오해하지 마. 내가 미녀들을 좋아하는 것도 사실이긴 하지만 그녀들 이 나를 더 좋아하는 것 같던데?
필자 : (견딜 수 없었지만 충분히 그럴 소지가 있어 참기로 하고^^) 중국 리그 참 파격적인 구석이 많아요. 어떻게 삼국의 미녀들로 팀을 구 성할 생각을 했을까요?
국수 : 신호팀이 흥행을 고려한 거지. 그런데 탕리는 성적도 좋았어.
필자 : 내년에는 그 팀으로 뛰시지 그래요?
국수 : 하하, 그렇지 않아도 내가 그 팀 감독으로 뛰고 싶다고 밝혔지.
그랬더니 반색하던데?
내년 일은 알 수 없으나 조 국수와 절강성 미녀군단의 조합은 예사롭지 않다. 탕리를 비롯한 아마조네스 전사들과 전신(戰神)으로 불리는 플레잉 코치가 합세한다면 기세와 인기가 만만치 않으리라.
필자는 내처 예민한 사안에 관해 물었다.
필자 : 요즘 이창호와 이세돌의 전쟁이 볼만 하던데요?
국수 : 바람직한 현상이지.
필자 : LG배 기왕전 끝나고 창호 만나서 위로라도 해줬습니까?
국수 : 우리는 그런 거 안해. 승패는 병가지상사인데 뭘.
필자 : 그래도 스승이신데 격려해주셔야죠.
국수 : 격려하는 게 더 어색하지. 누가 뭐래도 창호는 아직 챔피언이야.
필자 : 이세돌 바둑도 매콤하던데요.
국수 : 펀치가 세. 둘이 치고 받으며 상호 발전하는 거지.
필자 : 내일 기성전 최종국인데 밑그림은 그려두셨어요?
국수 : 창호랑 한두 판 두는 것도 아닌데 밑그림은 무슨….
필자 : KT배도 탈락하셨는데 타이틀 하나쯤 건져야 세계대회 참가 자격을 얻지 않겠어요?
국수 : 그러게 말야.
필자 : 상금이 과거 같진 않아도 이창호한테도 내일 결승국이 중요한 의미 가 있겠죠?
국수 : 그럼.
필자 : 사제가 멋진 기보 남기길 빕니다.
국수 : 이제 한물갔기 때문에 기대하지는 마.
그것이 전날의 대화였다.
조 국수의 임전소감은 언제나 엄살로 시작해 엄살로 끝이 난다.
기성전 5국에서 지긴 했지만 내용은 치열하기 짝이 없었다.
10시간 동안 사투를 벌이고도 복기에서 아쉬운 부분을 몇 번이고 짚었다니 노익장의 감투정신을 높이 살 수밖에.
이번 대국으로 사제의 전적은 111승 171패.
천하의 조훈현을 상대로 171승을 거둔 이창호의 무공이 놀랍고 세계 일인자 이창호를 상대로 37%의 승률을 기록한 조훈현의 저력이 놀랍지 않은가?
스스로 퇴물이라 말하지만 아직 전심의 검은 날이 서 있다. 신산(神算) 이창호조차도 세 판 중 한판은 제물로 내주어야 할만큼.
그러나 1996년 무렵 조 국수의 전적은 참담했다. 모든 타이틀을 쥐고 있다 일시에 상실해버린 쇼크 때문에 마음을 가누지 못했다.
어지간한 기사들 같았으면 아마도 그 슬럼프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영원한 나락으로 떨어졌을 것이다.
김인 9단이 일인자 자리를 내려오면서 이런 말을 했었다.
“다시 찾아올 수 있겠지. 훈현이가 아무리 잘 둔다해도 내가 정신을 차리면 기회가 올 거야.”
그러나 기회는 다시 오지 않았다.
조 국수는 황폐한 심기를 전환시키는 계기를 금연에서 찾았다. 사소하지만 금연은 자신의 부질없는 욕망을 절제하는 약속이었다.
그와 동시에 북한산 등반을 주기적으로 실행했다.
담배를 끊으니 손과 입이 허전해 군것질을 즐기게 되었다.
정미화 여사는 남편의 손이 자주 가는 곳에 멸치와 한과를 비치해두었다. 그 당시 필자는 조 국수가 한 접시의 멸치를 대수롭지 않게 해치우는 것을 본 적 있다. 아마도 담배 세 갑쯤에 해당하는 분량(60마리)이었지 싶은데, 그렇게 영양식을 먹고 산에 오르며 땀을 뺐으니 운기조식 효과가 나타나지 않을 수 없었다.
삼십년 동안 체내에 축적된 담배의 독소가 서서히 방출되면서 날렵한 그의 몸에 살이 붙기 시작했다.
손이 두툼해지고 바지마다 사이즈가 맞지 않아 새로 맞춰야했다.
체급이 상향조절 되면서 제비의 별명대신 황제, 혹은 전신이라는 별명이 새로 붙어 다녔다.
맷집도 좋아졌고 이제는 15회전 판정으로 가도 버틸만한 지구력이 붙었다.
제자에게 무수히 당했지만 아직은 제자 또래의 신예들에게 추월을 허용하지 않고 힘들게나마 2인자 자리는 지키고 있는 터였다.
이 때부터 조 국수는 본선무대의 상좌에 앉아 제자에게로 가는 길목을 지키고 교관 노릇을 하게 된다. 그를 통과하지 못하면 이창호를 알현할 수 없는 거였다.
중국기사들이 한국을 부러워하는 이유가 바로 그 대목에 있다.
중국의 녜웨이핑 9단이나 마샤오춘 9단은 한 시대를 풍미하고 순식간에 뒷전으로 잠복한 반면 한국에는 조 국수 같은 거물이 오래도록 승부의 현장에 남아 후배들을 조련시켰다는 것이다.
1996년 제5회 진로배의 막이 열리자 한국의 2장으로 출전한 서봉수 9단이 중국의 위빈, 창하오와 일본의 히코사카, 야마다 등을 차례로 꺾으며 쾌조의 4연승을 기록했다. 이후 서봉수 9단은 파죽의 9연승을 올리며 진로배 사상 초유의 기록을 세우게 된다. 도중에 여러 번 고비가 있었으나 서 9단은 놀라운 근성과 승부 호흡을 과시하며 한국 바둑 단체전 5연패의 주인공이 되는데-
그의 홀연한 등장에 바둑팬들은 열광했다.
당시 서9단은 바둑지와 한 인터뷰에서 담담하게 연승의 비결을 이렇게 밝혔다.
“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편안하게 두었습니다. 내 뒤에는 조훈현, 이창호, 유창혁이 남아있기 때문에 부담이 없었습니다.”
서봉수와 함께 사그라지는가 싶었던 조훈현도 반짝 빛을 발했다.
연초에 패왕과 비씨카드배를 차지하고 6월에 기왕위를 접수, 3관왕에 오르며 기염을 토했다.
그해 말 타이틀(국내, 국제 포함) 분포를 보면 이창호의 독주체제 아래 유창혁, 조훈현 두 사람이 힘겹게 뒤를 쫒는 형국임을 알 수 있다.
이창호 : 왕위, 하이텔 바둑왕, 기성, 국수, 명인, 국기, 박카스배 천원전
최고위, 대왕, 동양증권배, 후지쯔배, TV바둑아시아선수권
유창혁 : 테크론배, SBS배 연승최강, KBS바둑왕. 응씨배
조훈현 : 기왕, 패왕, 비씨카드배
1996년 조훈현은 한 해 동안 110국을 소화했다. 1994년부터 3년 내리 최다대국 수위를 기록했다. 연중 사흘에 한 번 꼴로 바둑을 둔 것이었다.
그에 따라 최다승 타이틀도 자연히 따라왔다.(71승)
남들은 지칠 줄 모르는 정력이라며 혀를 내둘렀지만 조 국수는 담담하게 대국 스케줄에 따라 출전했다.
과거처럼 정상에 서 있다가 올라오는 도전자와 진검승부를 벌이는 여유 있는 상황이 아니었고 지옥의 본선리그와 한발 삐끗하면 그대로 추락해버리는 토너먼트의 사다리를 그는 겸허하게 받아들였다.
이제 지는 것이 그리 두렵지 않았다.
언제나 질 수 있다고 생각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서봉수의 고백은 조훈현의 심경을 대변해 준 명언이기도 했다.
그해 초겨울.
조 국수는 혼자서 눈 쌓인 북한산을 올랐다.
가볍게 늘 다니던 코스를 돌아올 생각이었는데 설산(雪山)의 분위기에 취해 등반장비도 갖추지 않고 고봉(高峰)에 도전한 거였다. 다행히 먼저 올라간 등산객들의 발자국이 있어 더듬더듬 정상에 도달할 수 있었지만 도중에 여러 번 미끄러지는 봉변을 당해야했다.
그렇게 올라 맛본 정상의 바람은 더없이 상쾌했었다. 코가 확 뚫리고 망막의 더께가 한 꺼풀 벗겨지는 기분이었다.
암반으로 이루어진 봉우리 아래 나목(裸木)의 숲이 은빛 주단을 깔고 고즈넉이 쉬고 있었다.
가지만 앙상한 나무들.
나무는 제 때에 가진 것을 버리는 법을 알고 있었다. 그래야 더 풍성한 잎을 얻는다는 진리를.
‘힘들었지만 올라오니 좋구나!’
국수는 정상에서 삼십 분 가량 맑은 공기를 들이마시고 하산을 시작했다. 내리막길을 미끄럼 타듯 굴러 내려오며 그는 콧노래를 불렀다.
겨울산, 겨울나무로부터 배운 무소유의 자유.
발걸음이 한결 가뿐했다.
그 다음 주 12월 21일.
제40기 국수전 도전 5번기의 최종국이 열렸다.
스코어는 2: 2
11월에 있었던 1, 2국에서 조 국수는 천하무적 이창호를 상대로 연거푸 불계승을 거둬 화려한 컴백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첫 판에서 그는 제자가 개발한 이창호 정석을 들고 나와 난전을 펼친 끝에 통렬한 승리를 거뒀고 두 번째 판은 불리했던 바둑을 종반 흔들기로 역전시켰었다.
그러나 제3국에서는 거꾸로 절대 우세한 판이었는데 제자의 신묘한 끝내기 솜씨에 당해 1집 반을 지고 만다.
그 역전패의 후유증이 컸는지 제4국은 힘도 써보지 못하고 밀린 끝에 5집 반으로 패배.
연승과 연패를 주고받으며 맞이한 최종국.
5국까지 이르게 되자 홍익동에서는 이창호가 타이틀을 방어할 거라고 예측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아졌다.
사제는 관전객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을 뿌리치고 묵묵히 돌을 가렸다. 사제(師弟) 간에 벌이는 숙명의 라이벌 전.
이 무렵 이창호는 연속되는 타이틀전에 파김치가 되어 있었다.
1996년 그의 위세는 가공했었다.
2월에 진로배에 출전 3연승을 올렸고, 3월에 동양증권배에서 마샤오춘을 꺾고 우승했으며 5월에 TV바둑아시아배를 거머쥐었으며 8월에는 후지쯔배를 차지했다.
그도 부족해 한. 중 .일 삼국의 1인자들이 출전해 더블 리그로 승부를 겨룬 ‘96세계바둑최강결정전에서도 4전 전승으로 우승, 명실공히 세계 챔피언으로서의 위치를 굳게 자리매김 했었다.
세계대회에 전력을 쏟았기 때문이었을까?
국내기전에서는 다소 부진한 면이 없잖아 있었다. 연말에 국기전, 박카스배 천원전, 국수전 등 3 개의 도전기에서 모두 막판까지 가며 흔들리는 모습이 역력했다.
그러나 용케도 그는 풀세트 접전 속에서도 마지막 판을 이겨냈다.
사제는 그렇게 똑같이 폭주하는 대국에 시달리며 극도의 피로감 속에서 국수전 마지막 판을 메워 나갔다.
초반 포석에서 흑을 쥔 제자가 주도권을 잡았다. 그러나 중반에 어김없이 스승의 흔들기가 시작되었고 역전이 이뤄졌다. 종반으로 가면서 다시 이창호의 끝내기가 먹혀들기 시작했고 승부는 안개 속에 묻혔다.
두 대국자 모두 4시간 59분을 소비하고 60초 초읽기에 몰린 상황.
중앙에서 돌들이 격렬하게 엉키며 스승의 백 대마가 사활에 걸렸다. 그 절박한 상황에서 조훈현은 절묘한 맥점을 찾아내고 대마를 단숨에 살려냈다. 검토실에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이제 백 대마가 살았으니 승부는 끝난 셈-. 그런데 조금 후에 더 큰 감탄사의 메아리가 울려왔다.
이창호가 백 대마를 살려준 대신 두 번의 선수로 집을 짓고 죽은 말 석 점을 이어온 것이었다.
그래놓고 보니 또 다시 형세는 반집 승부였다.
검토실에 나온 김인 국수가 묵직하게 고개를 주억거리며 혼신을 다한 두 대국자의 기보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누가 이기든 명승부야!”
한때 국수위를 6연패했던 그에게 제 40기 국수전의 혈투는 남다른 감회가 있었으리라.
밤 10시를 넘어선 시각.
장장 282 수가 놓여진 끝에 흑백의 공방은 끝이 났다.
이창호의 3집 반 승리.
사제는 손가락으로 승부처를 짚어가며 간단한 복기를 마쳤다.
어렵게 국수위를 방어해낸 챔피언은 죄 지은 사람처럼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그러나 2연승 뒤에 3연패로 대역전을 당한 도전자 조훈현은 아직도 상기된 얼굴로 끝내기에서 당한 부분을 책망하고 있었다.
‘이렇게 두었으면 이겼을 것이다.’라는 뜻보다도 ‘이렇게 두었으면 흠이 없었을 텐데….’하는 아쉬움 때문이었다.
두 사제가 대국실을 나오자 검토실의 기사들이 박수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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