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조훈현 일대기. 조훈현론, 조훈현의 생각법 ,기타

바둑의 전설 조훈현 일대기 25-E

by 자한형 2023. 9. 12.
728x90

바둑의 전설 조훈현 일대기25-E/ 김종서

그때부터 스승이 타이트하게 조이기를 시도해왔다. 도처의 귀와 변에 손바닥만한 집들을 굳혀두고 야금야금 중원의 흑진에 교두보를 확립하는 전략이었다.

1,2국에 서로 대마를 잡고 잡히는 살육전을 펼쳐 관전자들을 즐겁게 했던 두 사람이 최종 결승국에서는 집 차지 바둑의 진수를 선보이며 제한시간을 모두 소비한 끝에 285수의 빽빽한 기보를 남겼다.

결과는 백의 2집반 승리.

격차는 별로 크지 않았으나 백의 완승국으로 평가된 한판이었다.

잊혀질 만하면 한 건씩 사고를 내는 노장 조훈현은 그렇게 제자의 대기록을 심술궂게 방해하며 나름대로 스승의 역할(?)을 계속 수행하고 있었다.

한편 조 국수의 춘란배 우승이 확정된 순간, 중국 현지의 소식통이 승전보를 알려왔고 평창동 자택에서 샴페인이 터졌다. 할머니의 생신을 축하하는 손자들의 축가가 울렸고 며느리 정미화 여사가 시어머니 귀에 희소식을 전했다.

어머니, 아들이 춘란배 타이틀을 땄대요.”

춘란배가 뭐다냐? 후지쯔배겄지.”

그래요. 아무튼 이겼다니까 기뻐하세요.”

누구한테 이겼는데?”

창호한테요.”

, 창호한테?”

노모는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다는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기억력이 현저히 감퇴되었지만 언제부턴가 아들이 제자인 창호에게 자꾸 밀리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잊지 않고 있는 그녀였다.

애야, 어디서 뒀다냐?”

중국에서요. 할머니.”

뭔 대회라고?”

춘란배요. 중국에서 만든 국제대회예요.”

그래? 그럼 우승한 거냐?”

. 상금도 많이 받고 트로피도 받았답니다.”

그래, 쓰겄다.(전라도 사투리로 좋다는 뜻)”

그녀는 생신잔치 따위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고 자꾸 외손자인 필자에게 아들의 시합에 관해서만 물었다.

그로부터 한 시간 후쯤에 중국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주인공 조 국수가 낭랑한 음성으로 어머니께 생신축하 메시지를 전했다.

이겼다면서?”

, 어머니.”

장하다. 내 새끼. 어여 오거라.”

노모 다음에 수화기를 건네받은 아내는 수고했다는 말과 함께 눈물을 글썽거렸다.

필자는 수없이 많은 큰 승부 뒤끝에 외갓집에 들렀지만 그 때처럼 가족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응씨배 이후로 본 적이 없었다.

외숙모의 눈물을 본 것도 처음이었고, 삼촌이 전화로 이겼다는 말을 전해온 것도 처음이었다.(그는 늘 졌다고 대답하는 버릇을 가지고 있음.)

그만큼 세기말 조 국수는 힘겨운 행보를 걷고 있었으므로 오랜만에 들려온 우승 소식에 모두가 감격했던 거였다.

(그날 십여 명이 넘는 조카들과 손자들은 국수의 사모님으로부터 특별용돈을 받았다. 춘란배 상금의 일부분을 쪼개 갖는 행운을 누린 것이다.^^)

99년 조 국수의 전적은 4213.(76.3%)

전년도에 비해 한결 안정감을 되찾은 기록이었다.

그래도 여전히 국내외 바둑계는 이창호의 제국이었지만 조훈현은 제국의 고문(顧問)으로서 위엄을 잃지 않았고 언제든지 전쟁터가 부르면 출병할 수 있는 태세를 갖춘 전사로 대기하고 있었다.

2000년 세계바둑계의 화두는 세대교체였다. 동양삼국 중 가장 먼저 변혁의 급물결이 시작된 곳은 중국.

몇년 동안 정상을 양분해왔던 창하오와 마샤오춘이 신예들에 의해 무너지면서 자우허양, 위빈, 샤오웨이강, 뤄시허, 딩웨이, 류쓰즌 등 무려 8명의 타이틀 보유자가 난립하는 군웅할거 시대로 접어들었다.

일본도 조치훈으로부터 왕리청이 랭킹 1위를 물려받았고, 요다, 조선진, 류시훈, 야마시다 게이코 등의 신예들이 타이틀을 획득하면서 시대의 조류를 확인시켜주었다.

상황은 한국도 마찬가지.

부동의 정상으로 군림하던 이창호의 위상이 다소 흔들리면서 이세돌, 목진석, 최명훈, 이상훈, 예내위 등이 타이틀 보유자로 떠올랐다.

그렇게 고대하던 응씨배를 차지하긴 했으나 2000년말 이창호는 왕위, 명인, 기성, 패왕 등 4관왕에 그치면서 다승 3, 상금랭킹 3위로 추락하는 고배를 맛봐야했다.

우리의 주인공 조훈현 9단의 성적도 제자와 더불어 신통하지 않았다.

3025(54.55%).

최악이라던 98년도의 기록보다 저조한 생애 최악의 성적이었다.

세계 챔피언 이창호와 바둑황제 조훈현의 성적이 예상보다 좋지 않았던 것은 상대들이 그만큼 따라붙었다는 증거. 사관학교에 비견되는 한국기원 원생출신 기사들이 성장하면서 정상권(頂上圈)의 볼륨이 두터워진 것이다.

두 사제가 국제대회보다 국내대회 타이틀을 따기가 더 힘들다는 것을 공공연히 밝힐 정도로 말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반타작의 승률에 불과한 조훈현이 알게 모르게 엄청난 성취를 올렸다는 사실이다. 저조한 외형(승률)에 비해 내실은 알찼던 것이다.

5월에 거행된 TV바둑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류시훈, 딩웨이, 이창호를 연파하고 우승했으며 8월에 열린 13회 후지쯔배에서는 저우쥔신, 조치훈, 저우허양, 목진석, 창하오를 내리 누르며 우승, 47세의 절정을 과시했다.

특히 본선 2회전에서 이창호에게 일격을 안겨줬던 중국 랭킹 1위 저우허양 9단과의 8강전은 노장의 투혼이 살아있는 한판으로 기억된다.

저우허양은 후지쯔배 직전, 중국의 타이틀전에서 라이벌 창하오를 4:0 스트레이트로 물리쳐 물이 오를 대로 올랐다는 평가를 받던 중국의 비밀병기.

그가 이창호를 꺾자 중국선수단은 마치 우승이라도 한 듯 기뻐했었다. 세계최강 이창호를 제압했으니 이빨 빠진 호랑이 조훈현은 상대하기가 쉽겠지. 녜웨이핑, 마샤오춘, 창하오가 못 이뤘던 꿈을 저우허양이 꼭 달성해 주리라 그들은 찰떡같이 믿고 있었다.

그러나 흑을 잡은 조훈현은 반상에서 노병이 아니라 팔팔한 특전용사였다.

번개같이 네 귀를 차지하고 나서 고도의 책략으로 중앙을 지워 127수 만에 저우허양의 항서(降書)를 받아냈다. 제자의 복수를 시원하게 해준 것.

결승에서는 창하오가 전우 저우허양의 복수를 벼르며 의욕적인 신수(新手)를 구사해왔으나 조훈현의 치고 빠지기 작전에 녹아버렸다. 세계대회 결승에 7번 진출해서 6번 우승을 거둔 조훈현의 위대한 진면목이 여실히 드러난 장면이었다.

조 국수가 후지쯔배를 두 번째 제패하고 목진석 5단이 3위를 차지하던 날 도쿄 상공에 쌍무지개가 피어올랐다.

그해 가을부터 열린 2회 농심신라면배 국가대항전에서도 조훈현은 부장(副長)으로 출전해 일본의 부장 야마다 7단과 중국의 주장 위빈 9단을 연파하면서 한국팀 불패신화에 이바지했다.

2000년 상금순위를 유심히 살펴보시라.

1: 조훈현 - 39천만 원.

2: 유창혁 - 35700만 원.

3: 이창호 - 2800만 원.

승률 50% 대의 조 국수가 이창호에 비해서 두 배 가까운 소득을 올렸다는 점이 놀랍지 않은가?

최소의 승률로 최대의 소득을 올린 그의 경제적 활동은 과다한 대국 스케줄에 시달리는 정상급 기사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클 것이다.

최근 이창호, 이세돌, 유창혁의 행보에서도 역량을 경제적으로 분배하고 있는 모습이 여실하다. 21세기의 바둑스타들에게는 발칸포나 M60 기관총 스타일의 무차별 제압사격보다 K1 소총의 조준사격이 훨씬 효울적이라는 얘기다. 얘기인즉슨-.

그해 중국 체육주보는 세계랭킹 10걸을 발표하면서 조훈현을 1위에 선정했다. 2위는 유창혁, 3위 이창호 순이었다.

반면 한국기원에서 발표한 세계랭킹 순위는 중국과 역순이었다.

1: 이창호(4회 삼성화재배 우승, 4회 응씨배 우승)

2: 유창혁(12회 후지쯔배 우승, 5회 삼성화재배 우승)

3: 조훈현(1회 춘란배 우승, 13회 후지쯔배 우승)

랭킹의 공정성을 놓고 왈가왈부하기 이전에 밀레니엄 교체기의 세계바둑계 판도는 다름 아닌 한국의 3인방에 의해 좌우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조훈현이 13회 후지쯔배 우승을 차지하기 직전 일본의 왕리청이 춘란배에서 우승을 차지했는데 그 이후로 현재까지 세계대회 타이틀은 모조리 한국기사들이 독점해왔다(최근 CSK배 아시아 4국 단체전에서 연승기록이 깨졌지만).

2000년 봄.

조훈현은 사업가로 조심스럽게 발을 내딛게 된다.

평생 바둑 외길만 걸어온 승부사인지라 바둑을 떠날 수는 없고 인터넷 바둑의 가능성에 미래를 베팅하기로 한 것이다.

회사명은 인터넷 바둑리그를 표방한 ICBL. 현 타이젬의 모체이다.

국내 바둑사이트 중 최대의 자본금으로 출범한 ICBL의 간판 역할을 맡아 인터넷 바둑의 활성화에 전력을 기울이기로 결심했다.

사업방향은 여러 갈래이지만 기사가 아닌 이사(理事) 조훈현이 기획하고자 하는 아이템은 바로 세계최대의 온라인 기전 창설.

전세계의 프로기사들이 온라인에서 리그전으로 순위를 가리는, 파격적이고 웅대한 스케일의 기전을 만들겠다는 포부다.

온라인 대국은 기술상의 문제와 스폰서만 해결되면 기존의 국제기전보다 훨씬 저렴한 비용으로 훨씬 많은 대국을 소화해낼 수 있다. 그렇게 절약한 경비는 상금으로 환원, 우승자부터 순위대로 많은 상금을 차등지급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전승으로 우승할 경우 천문학적인 상금을 받게 된다.)

또 바둑 팬들이 실시간으로 관전을 하며 승자를 예상해 베팅하는 게임 측면의 요소도 가미할 수 있으므로 제대로 운용된다면 바둑의 패러다임까지도 변화시킬 수 있는 프로젝트라고 본다.

그렇게 태동된 ICBL은 타이젬으로 변신했고 20024월 라이브 바둑과 합병되면서 다시 태어났다.

이 사이트에서 조훈현은 이창호, 유창혁, 서능욱 등의 기사들과 함께 의기투합해 바둑의 또 다른 영역을 개척하기 위해 고심의 한 수()를 연구하고 있는 중이다.

잊을만하면 활화산처럼 떨치고 일어나 우리를 놀라게 했던 바둑황제 조훈현.

사업의 영역에서도 귀신(?)이 돕는 사람이기를 기대해본다.

드디어 타이젬이 세계 최대의 인터넷 오픈기전을 만들어 천하에 공표했다.

타이젬 9단의 실력만 인정받으면 누구나 대회에 참여할 수 있고 모든 참가자가 익명의 아이디로 온라인 상의 대결을 벌이는 희대의 이벤트.

한국기원은 프로기사들의 참가를 엄격히 금지한다는 원칙을 밝혔다.

그러나 주최 측이 익명의 비밀을 보장하는 한 참가자의 신원을 확인할 수는 없는 일.

바둑 매니아들에게는 단비 같은 소식이지만 프로바둑의 권위와 정통성을 지키고 싶은 한국기원 측의 입장을 감안하면 딜레마가 아닐 수 없다.

조 국수는 프로기사의 대표적인 얼굴이면서 타이젬의 주역이기도 하다.

이번 일로 한국기원과 다소 갈등할 여지가 다분하지만 바둑문화의 대중화, 바둑 인구의 확대 차원에서 절묘한 타협점을 찾기 바란다.

바둑 팬의 입장에서는 현재의 세계대회보다 더 신선하고 자극적인 대회의 등장이 나쁠 리 없다.

타이젬 오픈대회가 파격적인 방식의 기전이긴 하지만 필자 개인적인 소견으로는 지금 예산보다 열 배 정도 확대하고 전 세계의 모든 강자들이 평등한 조건으로 참여하는 매머드 기전이었으면 좋겠다.

(물론 진행상의 문제점과 예산 확보 등의 문제가 있기에 기대난이지만)

참고로 요즘 바둑사이트 대기실에는 꽤 많은 프로기사와 연구생들이 출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단수는 낮지만 바둑을 보는 눈만큼은 프로의 경지에 달한 아마추어들은 고수들의 착점을 지켜보며 대국자가 프로기사 누구인지 짐작해보기도 한다.

필자는 몇몇 프로기사들이 인터넷 사이트에서 바둑을 두는 모습을 직접 본 적이 있다.

청소년 기사들은 부담 없이 아마추어들과 수담을 나누며 그들의 신선한 발상을 흡인하기도 한다고 했다.

조 국수도 가끔 한가할 때 인터넷 바둑을 둔다.

친구 차민수 4단을 골탕 먹인 에피소드를 여러분들은 기억할 것이다.

타이젬의 골수 매니아들께서는 조 국수의 아이디가 무엇인지 궁금해 하고 비슷한 기풍의 강자가 출현하면 혹시 그가 평창동의 바둑황제 아닌가 의혹을 품어봤을 것이다.

참고로 밝히자면 조 국수는 여러 개의 아이디를 보유하고 있다.

한 개의 아이디로 계속 두면 보안에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왜 굳이 보안을 따지느냐 하면 그 것은 프로기사라는 이유 때문이다.

바둑을 업으로 삼는 기사에게 아마추어들이 한 판 지도받기 위해서는 금액이 적더라도 소정의 지도료를 내야 한다.

그러나 인터넷 대국에서는 그런 규정이 없다.

그러므로 프로기사들이 인터넷 바둑을 두는 이유는 간단하다.

부담 없이 바둑을 즐기거나 불특정 다수의 아마 강자들과 승부하면서 끊임없이 칼날을 가는 즉, 기량연마의 의미가 있는 것이다.

조 국수의 경우 전자에 해당한다.

타이젬 사이트의 독특한 베팅대국을 즐기는 쪽이다.

또 다른 강자들의 대국을 지켜보면서 사이버머니를 베팅하는 것도 즐긴다.

대국은 말할 것도 없고 베팅에도 천부적인 승부감각이 있어 주로 따는 편에 속한다.

그렇기에 언제나 두둑한 사이버머니를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단순히 사이버 대국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마우스를 통해 바둑 게임의 다양한 가능성을 찾고 싶어 한다.

바둑황제 조훈현의 인생은 무수한 승부의 연속선상에서 크고 작은 등락을 거듭하면서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려왔다.

세계 최연소 입단으로 기네스북에 오른 천재적 소년기.

세고에 문하생으로 기도를 닦으면서 신인왕에 올랐던 일본의 청소년기.

귀국해서 질풍노도처럼 타이틀 사냥에 나섰던 청년기.

응씨배를 거머쥐면서 세계 정상에 오른 장년기.

그리고 제자 이창호에게 하나둘씩 타이틀을 이양하면서도 큰 시합에서 놀라운 저력을 발휘하고 있는 현재.

아직 노년기로 부르기엔 그의 기백이 너무 창창하고 기량도 녹슬지 않은 상태지만 조 국수 자신은 후배들에게 스스로를 노친네라고 엄살을 부린다.

국제대회에 나가도 최고령 참가자이기 일쑤인 그는 이제 바둑에 관한 업적은 이룰 만큼 이룬 인물.

바둑문화사업이 필생의 과제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바둑의 중원에 뛰어들어 신묘한 보법과 현란한 변신술, 전류와도 같은 검법으로 일세를 풍미하고 그만의 자기류(自己流)를 세웠으며, 문하에서 최강의 후계자를 배출한 조훈현의 영광은 전무후무한 기록이리라.

전신(戰神)으로서의 내공과 위엄은 사는 그 날까지 영원할 것이고 바둑계의 걸출한 위인으로 우뚝 서길 바라며 조 국수의 문화사업 포석이 기풍의 그것처럼 속도감 있게 전개되어 찬란히 꽃 피우기를 바란다.

그 꽃의 개화와 결실은 다름 아닌 바둑 팬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가는 선물일 것이기 때문에. <>

개드립 - 바둑의 전설 : 바둑황제 조훈현 - 일대기 ( https://www.dogdrip.net/6197395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