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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글(수필, 여행기, 편지글, 일기 등)

은퇴후 6년 상

by 자한형 2024. 4.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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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후년 상

나는 201712월 말일자로 농협중앙회에서 명예퇴직했다. 313개월의 직장생활에 종지부를 찍은 것이다. 별다른 과오없이 퇴직을 한 것에 위안을 삼았다. 그해 1228일에 경북 선산근처의 한 중식당에서 퇴임식이 있었다. 약간의 회한이 남는 부분은 가족들과 함께하지 못한 부분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가장으로서 오랫동안의 일을 했고 마무리하는 자리에 가족이 같이 했어야 했다는 부분이었고 그마저 여의치 않다면 아내만이라도 함께 했어야 한다는 의견이었다. 후에 그렇게 퇴임식을 앞둔 이들에게 꼭 가족과 함께하라고 조언하곤 했다. 1월 초순에 명퇴금을 받았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넣었던 연금도 중도해지를 했다. 이런 것도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었다. 주택담보대출 등 부채를 변제하는데 대부분이 충당되었고 노후를 위해 연금에 5천만 원을 예치했다. 5년의 예치기간이 지나면 55년 동안 일정액씩 수령할 수 있는 생명보험이었다. 2월초에 실업급여 대상자로서 근로복지공단에서 교육을 받았다. 그리고 보름 후에 실업급여를 받았다. 이후에는 매월 구직활동을 보고하고 실업급여를 수령했다. 14십만 원 수준이었고 9월까지 수령했다. 아내는 서울시 교육청 본청에서 장학관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6개월 전에 경기고 교감의 직을 26개월 수행 후 본청의 장학관으로 전보되었다. 장학사 시절만큼 어려움과 잦은 야근은 아니었지만 업무가 학교폭력 쪽의 일이어서 힘들고 어려웠다. 9개월 후에는 성동광진 교육지원청의 협력복지과장으로 전보되었다. 아내를 서대문의 서울시 교육청에 차로 출근시키는 일이 부과되었다. 5월중에 모교에서 홈카밍데이 40주년 행사가 있었다. 우리 내외는 동창들과 함께 모교를 방문했고 본 행사는 해운대의 호텔 행사장에서 있었다. 옛 스승님들도 참석하기도 했다. 대부분이 전문직 장학관 등으로 퇴직을 하신 듯했다. 아내의 명함을 드리기도 했었고 격려의 말씀을 듣기도 했다. 다음날에는 수영만에서 유람선을 타고 바닷가 오륙도 등지를 한 바퀴 선회했고 선상뷔페로 식사를 하기도 했다. 공식적인 행사를 끝내고 재경동창들은 송도쪽으로 가서 케이블카를 타기도 했고 태종대 인근의 한 음식점에서 식사를 하고 귀경길에 오르기도 했다. 7월에는 베트남 다낭 여행을 다녀왔다. 35일간의 일정이었다. 가족여행인 셈이었다. 유유자적하게 부부동반으로 해외여행을 즐기는 것이 다반사가 되었다. 무더위가 극심해서 연신 부채질을 하기도 했다. 기념품으로 침향과 노니를 구입하기도 했다. 한국관광객이 워낙 많아 너무 신기해 하기도 했다. 일본관광객들은 이미 동남아 등지를 다 섭렵한 후인 듯했다. 강가에서 배를 타고 소원초를 실은 종이배를 강물에 띄우기도 했다. 해외여행의 묘미를 만끽한 여행이었다. 8월에는 일본여행을 다녀왔다. 오사카, 교토, 나라에 다녀왔다. 한 산사에 갔었는데 사슴들이 무리지어 돌아다는 모습이 이채로웠다. 유흥준의 문화유산답사기를 본 탓에 한 법당에 입장권을 내고 들어가 보기도 했는데 그로 인해 집합시간에 늦어지기도 했다. 도톰보리 등의 야경이 환상적이었던 듯했다. 한국식당에서 맛있게 식사를 하기도 했다. 식당에서 공공연하게 흡연이 자행되는 모습에 문화적 충격을 받기도 했다. 10월초에 일곱 번째 수필집 영혼의 향취가 나왔다. 여행기, 각종행사, 일상사 등에 관한 내용이 주류였다. 각종 모임의 회원들에게 한 부씩 증정했다. 삶의 궤적을 되돌아볼 수 있는 부분이었고 삶의 한 기록물인 셈이었다. 11월에는 제주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여러 관광지를 돌아보았고 맛있는 음식들을 맛보기도 했다. 포도호텔 근처에 있던 비오토피아란 식당에서 맛본 짬뽕은 인생 짬뽕이 되었다. 한그릇에 38천원이었다. 국물맛이 끝내줬다. 수풍석박물관을 둘러보기도 했다. 예술적 건축물에 관해 관심을 갖게 해 주었다.. 바람, , 돌에 관한 부분이었고 문화 해설사가 해설을 해주었다. 산쿰부리. 등의 억새는 가을의 정취를 물씬 풍기고 있었다. 제주시에 5성급 호텔 메종글래드 호텔 삼다정의 뷔페 중식은 맛의 천국 같은 느낌을 주었다. 12월말 경에는 패키지로 내외가 서유럽 여행을 다녀왔다. 이탈리아, 스위스, 프랑스 3개국 여행이었다. 로마로 가서 원형극장 등 로마의 휴일에 나온 관광지들을 둘러보았고 나폴리, 폼페이, 솔렌토 카프리 섬투어도 멋있었다. 현지가이드의 이태리 가곡 열창은 관광온 이들의 감탄을 불러냈다. 베네치아, 피렌체 밀라노 등지를 돌아보았고 두우모 성당과 영화 냉정과 열정사이의 배경이었던 곳을 직접 돌아보았다. 스위스에서는 융플라우에 올라 빙하와 설산을 보았고 정상에서의 신라면을 맛보기도 했다. 스위스에서 프랑스까지의 이동은 고속열차로 갔다. 프랑스에서는 에펠탑, 베르사유 궁전, 루브르 박물관 몽마르트르 언덕 등지를 둘러보기도 했다. 농협에서 퇴직기념으로 준 여행권 등에 할 수 있었던 해외여행이었다.

 

2019년에는 중앙교육원의 명예교수로 보임되어 계약직으로 근무하게 되었다. 전박사님과 같이 1년동안 근무했다. 아내를 성동광진 교육지원청에 출근시킨 후 차로 원당골로 출근했다. 중식은 주로 농협대학 교수님들과 함께하기도 했다. 이념교육 강사로 활동한 것이었다. 전반기에는 농협대학 학부생을 대상으로 구매사업에 관해 강의를 했다. 일주일에 세 시간이었다. 두 시간은 강의를 했고 한 시간은 학생들의 발표시간을 가졌다. 정문앞의 농지를 할양받아 텃밭농사를 짓기도 했다. 윤이사님은 농협대학 생활지도교수로 활약하고 있기도 했다. 4월말부터 11월 중순까지 텃밭농사를 지었다. 상추 고추 가지 호박 등을 한 고랑에 심었다. 옥수수 토마토 등도 심었는데 수확은 변변치 않았다. 가지나 고추는 너무 수확량이 많아 농산물 건조기를 구입해서 수확물을 말려 보관기간을 늘리기도 했다. 호박은 시작에서 늙은 호박을 몇 개더 구입해서 호박즙을 만들어 며느리에게 주기도 했다.

5월 경에슨 패키지여행은 중국 서안의 진시황 무덤인 병마용갱을 관람하기도 했고 양귀비의 목욕탕을 관람하기도 했다. 워낙 관광객이 밀집해서 떠밀리다시피 이동을 하기도 했다. 그나마 우리는 천만다행으로 그곳을 관광하기는 했는데 다음날 간 여행객들은 입구까지 가지도 못하고 되돌아오기도 했다고 하니 다행이기도 했다. 다음으로 간 곳은 장가계였다. 초한지에서 나오는 유방의 책사 장량이 전국 통일 후 은거한 곳이라고도 했다.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은 한 화가의 장가계 그림으로 인해 세계적인 관광명소가 되었다고 했다. 아바타의 영화 촬영지로도 유명했다. 여행한 날들이 중국의 황금연휴와 겹쳐 관광객이 인산인해였다. 그의 신도림역의 지하철 승객처럼 그렇게 파도처럼 인파가 밀려서 입장하는 사태를 빚기도 했다. 하루가 지난 후에는 관광객 열풍은 좀 잦아지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는 두 번째 중국여행이었다. 중국의 음식을 다 맛볼 수 없다는 가이드의 얘기를 듣기도 했고 중국 전 대륙을 다 가볼 수도 없다는 얘기도 했고 중국의 모든 종족의 언어를 알 수도 없다는 얘기도 있었다. 엄청나게 발전이 된 것 같기는 했다. 첫 중국 방문은 2001년이었다. 상해, 소주, 항주를 다녀왔다. 여름철에는 또다시 중국의 동북삼성을 다녀오기도 했다. 심양에서 한국인학교 교장선생님이었던 송선생님의 초대로 가게 된 여행이었다. 다섯 부부가 여행을 함께 했다. 큰아들 부부는 방학동에 살고 있었다. 결혼후 33년 차가 된 셈이었다. 아직 아기가 없어 걱정스러웠다. 며느리는 일산의 한 병원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작은아들은 대학을 졸업한 후 변리사 시험에 도전하고 있었다.

부모님은 부산에서 생활하고 계신데 모친이 몸이 좋지 않아 병원신세를 지기도 했다. 부친은 그런대로 기동하고 계셨다. 2년전에 산수연을 하기도 했다. 갖가지 모임은 여전히 잘 나가고 있었다. 신녹사, 서일회, 구자회, 농사모, 담안회, 주나사, 동창회, 법대동문회, 협맥회, 처가족 가족행사 등 쉼 없이 모임 행사가 이어지고 친구들 가족, 친지 등과의 회합은 계속 되었다.

골프도 때때로 한 번씩 나가고 했었던 시절이었다. 강원춘천 가는 길의 강촌 CC에서 김사장님 등과 라운딩을 하기도 했고 브라질에서 절친 박사장이 귀국해서 구미 CC에서 라운딩을 즐기기도 했다.

8월에는 고교동창들과 부부동반으로 일본 홋가이도 여행을 다녀왔다. 일곱 부부가 봉고차 2대를 렌트해서 돌아다녔다. 심교수가 도쿄에서 살고 있었기에 가능한 부분이었다. 국제 면허증을 발급받아 봉고차를 운전해보기도 했는데 익숙하지 못해 한 시간 정도 운전해 보다가 운전대를 곽 회장에게 넘기기도 했다. 겨울에 와야 한다고도 했는데 여름철에도 또다른 묘미를 갖고 있기도 했다. 아내의 발령소식을 그곳에서 듣기도 했다. 교장이 된 것이었다. 91일자였다. 언주중학교 교장으로 발령이 난 것이었다. 이미 교장으로서의 자격을 갖추기 위한 연수 등도 다 받은 후였다. 은퇴후 2년이 흘렀다. 1년은 실업급여를 받았고 1년은 중앙교육원에서 명예교수로 농협이념에 관한 강의를 한 해동안 했다. 은퇴후 2년을 지내고 보니 순식간에 세월이 흘러간 듯했다. 앞으로 4년을 더 버텨내야 하는 시간이었다. 아내는 252월이 정년퇴직이다. 그 이후는 연금생활자로 생활할 수 있는데 그때까지 잘 견뎌낼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연금에 넣어둔 것이 나오는 최초시기는 3년후인 셈이다. 모쪼록 은퇴 후의 생활에 관리를 잘하고 슬기롭게 적응해서 안온한 나날 보내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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