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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글(수필, 여행기, 편지글, 일기 등)

은퇴 후 6년 중

by 자한형 2024. 4.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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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후 6년 중

2020년이 밝았다. 은퇴 후 3년 차가 시작되었다. 지난해 계약직으로 1년을 근무한 후 다시 실업자가 되었다. 코로나19 시대가 되었다. 마스크를 사용해야 했고 집회도 일정수 이상 모이는 것도 제한되었다. 여러 가지 일상생활에서의 불편함이 하나하나 늘어났다. 백신이 나오기까지 오랜 시간이 소요되었다. 연초에는 아내가 동료 교장님들과 함께 중국 청도에 해외여행을 하고 오기도 했다.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확산되기 전의 일이었다. 처갓집 가족들은 라오스를 여행하고 오기도 했는데 아내는 별도의 급한 일정이 생겨 불참하게 되었다. 아쉬운 일이었다. 2월에는 동인회 편집위원으로 위촉되었다. 전박사의 권유에 의한 것이었다. 위원장은 황대표님이었고 부위원장님은 오위원이었다.  한 달에 서너 차례쯤 편집회의가 있었다. 오전에 나와서 회의를 하고 점심식사 후 퇴근하는 형식이었다. 신촌동인회 사무실에서 회합을 이어갔다. 격월에 한 번씩 동인지가 발간되었다. 100페이지쯤 되는 잡지였다. 퇴직동인들의 정보를 실었고 동인회원님들의 글도 실렸다. 지역동인회 활동내역이나 중앙회소식, 경조사 주소변동 신규회원 등에 관한 내용도 게재되었다. 코로나19시대가 되면서 해외여행은 거의 어렵게 되었다. 때로는 출장업무가 부과되기도 했다. 세종시 한 농협의 조합장님에 관한 인터뷰를 하기도 했고 그 내용이 기사로 게재되었다. 유튜브를 시작하기도 했다. 동영상 편집방법을 독학으로 터득해 하나하나 보다 나은 영상편집 방법을 터득해 나가기도 했다. 수필읽어주는 것을 주 내용으로 했다. 동영상을 촬영하고 그것에 자막을 입혀 영상을 편집하는 방식으로 만든 동영상을 유튜브 계정에 업로드하는 식이었다. 시행착오를 겪으면서도 계속 업로드를 이어나갔다.

아내는 지난해에 이어 계속적으로 언주중학교의 교장으로 근무를 이어가고 있었다. 운동장 건너편에 강남 교육지원청이 있어 긴밀한 협조체계가 구축되었다. 아내를 학교까지 출근시키고 귀가하는 것이 일과중의 하나였다. 마스크를 쓰는 생활이 일상화 되었고 백신도 주기적으로 맞아야 했다. 회합도 제한적이었다. 6개월 정도 2018년과 같이 절차를 받아 실업급여를 수령했다. 구직활동을 매월 비대면 온라인 형식으로 보고를 했고 이상이 없으면 급여가 지급되었다. 구직활동의 대부분은 학교관련 계약직에 지원한 이력서, 자기 소개서 등을 이메일로 보낸 증빙을 제출하는 것이 두세 군데였다.. 세 건정도의 구직활동이 요건이었으니 달리 도리가 없었다. 제주여행을 한차례 다녀오기도 했다. 장인 장모님을 모시고 간 가족여행이었다. 처남에 조카가 제주대학에 다니고 있었기에 기숙사에도 한 번 가보기도 했다. 대학로 근처의 은행나무숲길을 산책하고 인증숏을 남기기도 했다. 둘째아들은 변리사 1차 시험에 합격해서 본격적으로  2차 시험을 치르기도 했다. 큰아들은 거주지를 강서구 방화동에서  강동구 고덕동으로 옮겨 이사를 하기도 했다. 새아파트여서 깨끗한 주거환경을 갖추고 있던 곳이었다. 2021년에는 전세기간 중간에 미사지구 파밀리에 아파트를 사서 입주를 했다. 아들이 집을 산 후 얼마되지 않아 아내가 미사지구 자이아파트를 구입했다. 다행히 퇴직후 부동산에 투자를 한 것이 있어 그것을 팔아서 중도금을 마련하기도 했다. 12월에는 여덟 번째 수필집 목로를 출간하기도 했다.

2021년이 되었다. 은퇴후 44년 차에 접어들었다. 상반기에는 실업자로 다시 전락해 2년째 경제적 수입은 없는 형편이었다. 7월부터는 서울시 50 플러스 재단에서의 일자리 사업에 참여해 가락시장 근처의 가락몰에 출근을 했다. 11월까지 근무를 했다. 주당 24시간 정도였다. 일주일에 33일 정도 근무하는 형국이었다. 홍보지원팀으로 가락시장의 소매상들에 관한 홍보방안의 저력을 수립하는 업무를 과제로 부여받았다. 유튜브나 블러그를 통한 홍보방안 마련에도 골몰했다. 최종적으로 보고서를 만들어 제출하기도 했다.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인해 9월 하순에는 비대면으로 재택근무를 하기도 했다. 한달에 한 번씩은 3시간 정도의 (두 시간 강의 한 시간 회의) 회의 시간을 갖기도 했는데 노트북이나 휴대전화로 연결된 방식으로 참여를 하기도 했다.

5월에는 아내와 함께 홍도를 다녀오기도 했다. 아내가 먼바다였던 흑산도에서 홍도로 가는 길에 배의 롤링으로 인해 멀미를 하기도 했다. 홍도에서 바라본 낙조는 여느 일몰과 다르게 환상적인 명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유람선 배로 홍도주위를 한바퀴 돌아보았고 선상에서 맛본 자연산 회맛을 평생 잊을 수 없을 듯했다. 비금도 명사십리 흑산도 일주여행 등은 특별한 섬여행의 추억을 만들어 주었다. 아들내외가 반려견을 키우고 있었는데 휴가를 가거나 여행을 가 잠시 집을 비우게 되는 경우에 반려견을 맡아서 돌보기도 했다.

8월에는 장마기간 중에 춘천으로 휴가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김유정 문학관 등지를 둘러보았고 춘천시내의 닭갈비를 맛보기도 했었다. 다음날 아침 악천후 속에서 폭우가 내려 아침 일찍 상경하고 말았다.

9월에는 아내가 남부교육지원청 교육지원국장으로 전보되었다. 언주중학은 88올림픽도로를 거쳐 동쪽으로 출근하던 것이 이제는 시내도로를 거쳐 금세 남부교육지원청에 도착할 수였다.. 역대급 가장 짧은 출근거리로 출근이 편해졌다. 이제는 해가 뜨는 반대방향으로 출근하는 식이 되었다. 출근시간은 20분 정도로 최소화되었다.. 코로나19로 인해 일상생활이 무척이나 제한적이었던 시기였었다. 아들네 가족과 둘째 아들과 함께 강화도 석모도의 보문사를 다녀오기도 했다. 영험한 미륵 불상에 축원을 하기도 했고 시주를 하기도 했다. 또한 10월에는 아내와 함께 상원사 적멸보궁에 가서 축원을 하기도 했다. 제대로 영험한 효과를 볼 수 있을지 모를 일이다. 12월 말에는 아내의 생신을 위해 외식을 하게 되었는데 며느리가 임신 소식을 알렸다. 천금같은 잉태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결혼한지 4년 만의 결실인 셈이었다. 구름위를 걷는 듯한 황홀한 기분을 주체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신녹사 회원들에게 손자턱을 한번 내야 하리라. 그나마 서울시 50 플러스의 일자리를 얻어 가락시장까지 먼 거리를 출퇴근하기는 했었지만 유익한 시간이었고 보람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은퇴후 3년,  4년차를 보낸 시기였는데 여러 가지로 불편했고 답답했던 시간이 아닐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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