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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글(수필, 여행기, 편지글, 일기 등)

은퇴 후 6년 하

by 자한형 2024. 4.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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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후 6년 하

2022년이 되었다. 코로나19 감염병은 아직도 여전히 그 위세를 떨치고 있다. 아내가 회갑인 해이다. 2110월에 며느리의 임신이 있었다. 12월 말쯤의 아내 생일을 맞아 가족끼리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천금 같은 손주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구름위를 거니는 기분 같았다.. 예정일은 올해 7월 중순쯤으로 보였다. 5개월쯤이 지났을 때 초음파 동영상을 통해 손주의 성별이 확인되었다. 사내아이였다. 매월 며느리와 시어머니는 산부인과에서 보내주는 초음파 사진 동영상을 공유하는 상황이었다. 코로나19 시기의 임신과정을 겪어야 했고 출산도 그 시기에 속해 있었기에 언제나 초조한 마음이었고 살얼음판을 걷는 심정이었다. 출산을 앞두고 아들내외가 잠깐 제주도 여행을 다녀왔는데 아들이 먼저 코로나19에 감염이 되었다. 그리고 얼마 후에는 며느리도 임신 후기에 감염이 되기도 했다. 이미 태아가 자리를 잡은 5개월 후였기에 큰 영향은 없을 것이라는 의사의 소견이 있었다. 천만다행한 일이었다. 연초에 설명절 후 2월쯤에 처가쪽 동서, 처남네 식구 등이 집을 방문하기도 했다. 세 번에 걸쳐 손님을 맞아야 했다. 조카들이 대학에 입학한 뜻깊은 시기이기도 했다. 아내는 광주의 집을 건축하는 일에 착수했다. 6개월 정도가 소요되었다. 구옥을 철거하고 새롭게 터를 닦아 기초를 세우고 2층집을 지었다. 10월에 준공이 되었다. 아내가 광주를 내려가서 건축과정을 살펴보고 관리를 하기도 했다. 대부분의 공정은 처남이 확인하는 과정을 거쳤다. 건축비도 제법 든 셈이었다. 준공후에는 2층에 세를 주었다. 며느리는 7월 초에 하남의 산부인과 병원에서 출산을 했고 산후조리원에 입소를 해서 몸조리를 했다. 3주 정도가 흐른 후에 집에 돌아왔다. 주말을 이용해 아들네 집을 방문해서 할아버지, 할머니가 손자를 대면했다. 며느리가 출산할 때쯤에 반려견이 우리 집으로 왔다. 6개월여 기간동안 반려견을 맡아서 길렀다. 코로나19에 관한 백신접종도 세 차례에 걸쳐 맞았다. 아내도 가을쯤에 코로나19에 감염되어 일주일간의 자가격리기간을 거쳤다. 서울시 50플러스 재단에서 운영하는 시니어 일자리 사업에 참여를 해서 어린이 돌봄 센터에 참여를 했다. 7월부터 근무를 했고 한달에 54시간 근무를 하는 식이었다. 주당 12시간 정도이고 오후 4시간씩 3일정도 근무하는 형식이었다. 신대방동의 돌봄 센터가 근무처였다. 하교하는 초등학교 1학년생을 데려오고 센터에 데려온 후 과제를 같이 하고 책을 읽는 것을 봐주고 놀이를 함께하고 돌보는 일이었다. 시니어 직원이 3명 대학생 알바생이 4명 상근직원이 4명이었다. 오후 3시 경에 간식시간이 있었다. 주방에서 간식을 준비해서 나눠주고 간식을 먹는 것을 관리하고 책상 등을 재배치하는 작업 등의 업무를 수행했다. 네 시간 정도는 매월 재단에서 실시하는 교육 프로그램에 비대면 온라인 방식으로 참여를 했다. 2시간정도는 강의를 들었고 한 시간 정도는 공지사항 등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10월 경에는 손자 태서의 백일잔치가 있었다. 아들네 집에서 가족사진을 촬영했고 식사를 했다. 사돈네도 와서 손자의 백일을 축하해주었다. 서울에서 하남 아들네 집에 손자를 돌봐주기 위해 주말마다 가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아들내외는 손자를 맡겨주고 나가서 외식을 하거나 영화를 보는 등 데이트를 즐겼다. 며느리는 작년 9월부터9 하남시 보건소에 직원으로 채용이 되었는데 10개월쯤 근무한 후 육아휴직을 냈다. 우리 부부는 해피 바이러스라는 여행모임을 따라서 논산, 원주 충청도 돈암서원 등지로 하루치기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홀로 삼사여행을 하기도 했다. 삼사는 계룡산 동학사 논산 관촉사 공주 마곡사였다. 10월 하순에는 광주에 다녀오기도 했다. 처갓집 제사에 참석을 했고 다음날에는 증심사에서 가족사진을 촬영하기도 했다. 40여년 전에 최초의 가족사진을 촬영한 적이 있었는데 48년 만에 똑같은 포즈로 가족사진을 촬영한 것이었다. 막내처제가 3살 때였었는데 이제 막내처제는 50줄에 접어들었다. 참으로 장구한 세월이 흐른 셈이다. 12월 말에는 하남 쪽으로 이사를 했다. 10여년을 살았던 정들었던 신대방동에서 하남으로 이주한 것이다. 아들이 2년 전에 정착을 한 뒤에 그 근처의 아파트로 이사를 한 것이었다. 생활의 여러 부분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아내를 문래역 근처의 남부교육지원청까지 출근시키는 것이 큰 과제였다. 2월까지 하면 되었다. 엄청나게 먼 거리였고 출근시간이었다. 올림픽 도로를 이용했는데 거의 출근 전쟁 수준이었다..

2023년에 새해가 되었다. 연초에는 다낭에 가족여행을 다녀왔다. 장인 장모님을 모시고 가족여행 형식으로 다녀온 것이었다. 거의 유사한 코스를 55년 전과 마찬가지로 관광했지만 가족여행이라 분위기가 달랐다. 훨씬 수월하게 관광을 할 수 있었고 익숙하고 무난하게 일정을 소화할 수 있었다. 2월 초에 아내가 성동광진 교육지원청의 교육장으로 발령받았다. 가문의 영광이 아닐 수 없었다. 차량과 기사가 제공되는 기관장이 되었다. 나는 다시 또 실업자가 되었다. 2월부터 55년 전에 넣어둔 연금이 매월 지급되어 어느 만큼 경제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4월 초에는 안양의 윤고문님에 다녀왔다. 글씨를 받아왔고 여러 가지 얘기를 나누고 왔다. 이제 고문님은 9순이 되셨다. 여전히 활발하게 활동하고 계셨고 건강하게 지내시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하남시에서 운영하는 공공텃밭 분양을 신청해서 텃밭농사를 하게 되었다. 4월부터 11월까지였다. 일주일에 두세 번 농장에 왔다 갔다를 하면서 작물을 관리했고 수확물로 식탁이 풍성해졌다. 경작한 작물로는 고추, 가지, 상추 토마토 등을 심어서 수확까지 했다. 2차 영농은 무, 배추를 심었다. 11월 초에 마무리를 짓고 아내가 수확물로 김장을 간략하게 약식으로 하기도 했다. 4월초에는 아홉 번째 수필집 덕향을 발간하기도 했다.  

7월 중순에는 베트남의 냐짱// 달랏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베트남의 휴양지로 서늘하고 선선한 날씨가 여행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우리나라는 아직도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는데 베트남은 전혀 마스크를 쓰고 있지 않는 상황이었다. 10월에는 건강검진을 받기도 했다. , 대장 수면내시경을 받기도 했다. 11월에는 허리의 협착증이 재발해서 한 달여 동안 병원에 통원치료를 받기도 했다. 코로나19가 이제는 좀 잦아지는 듯했다. 내년쯤이면 마스크에서도 해방될 수 있을 것으로 여겨졌다. 부친께서 발병이 되었다. 전립선 암으로 판정이 되었다. 호르몬 치료와 방사선 치료를 이어가야 할 것으로 보였다. 장모님께서 발병이 되어 1010주 정도 항생제 치료를 받아야 했다. 병고를 잘 이겨내셔야 하리라. 쾌유를 기원해 본다.. 국민연금공단에서 연락이 왔다. 신청서를 작성해서 보내라는 것이었다. 혼인증명서를 첨부해야 했다. 온라인으로 발급받았고 신청서를 제출했다. 이제 내년부터는 연금생활자가 된다. 생활에 충분한 자금이 되지는 못하지만 생활하는데 어려움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은퇴후 6년을 보냈다. 정신없이 지난 세월이었고 나름대로 진력했고 충실하고자 했었는데 어떨지 모를 일이다. 이제 앞으로 남은 생이 더욱 신중해져야 하고 진중한 삶을 알차게 보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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