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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인간(이응준)14

수필인간7 나와 바오밥나무와 하나님과(11) 질문이 많은 인생을 살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스무 살 무렵부터 질문하는 게 직업이 돼 버려 지금에 이르렀다. 인간과 세상에 대해 질문이 많으면, 인간을 경멸하고 세상과 불화하기가 쉽다. 몸이 자주 아프고 마음이 심하게 무너진다. 은유나 상징이 아니다. 실제로 그렇다. 요즘은 더하다. 고질을 넘어 목숨이 위태로울 수도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아예 질문 자체가 답처럼 여겨지는 지경, 하긴. 그게 문학의 본질이긴 하지. 이게 내 파탄의 알리바이다. 어제도 나는 몸이 무너지고 마음이 아팠다. 불만은 없다. 나 자신이 이상하게 느껴질 뿐이다. 얼마 전, 어느 출판사의 대표인 시인 J형이 전화를 해 나더러 바오밥나무를 키우라고 말했다.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 나.. 2021. 9. 19.
수필인간 6 내 왼편 어깨 위에 앉아 있는 오렌지 색 카나리아의 노랫소리(10) 신에게 변호가 필요한 것은 인간의 죄 때문이다. 하여 신을 위한 변론은 인간을 위한 변론이다. 모호한 것 같지만, 깊이 생각해 보면 분명하다. 다만 제대로 변호해 줄 누군가를 찾을 수 없을 뿐이다. 이게 인간이 고독한 이유다. 나는 고인(故人)의 것이 아닌 글은 거의 읽지를 않는다. 내 글이 내 생전에 세상 속에서 읽히지 않아도 별 불만이 없는 것은 그래서다. 사람들이 나를 볼 때에 나의 하나님에게 변호가 필요한 것은 그분의 탓이 아니다. 나의 어둠과 허물 때문인 것이다. 지하철 좌석에 앉아 친구를 만나러 가고 있는 저녁. 젊은이도 노인도 아닌 한 사내가 객차 중앙에 피뢰침처럼 꼿꼿이 서서 외계어(外界語)로 무언가를 줄기차게 호소하고 있.. 2021. 9. 19.
수필인간 5 고래 배 속에서 등불을 켜고(9) 모든 인간이 다 죽는다는 사실은 나를 기쁘게 한다. 시간의 차이가 있을 뿐, ‘다 같이 함께’ 죽는 셈인 것이다. 이것이 내가 젊은 시절, 공산주의에 별 매력을 못 느낀 근본적인 이유다. 나는 어리고 무지하였으나, 내가 그런 사람인 줄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희극도, 불행도 아니다. 그냥 그러했을 뿐. 지금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도 어쩌면 그런 이야기다. 아무리 닦아 내도 지워지지 않는 유리병 속 지문. 그럴 리가. 내 참. 있을 수가 없는데 버젓이 있는 유리병 속 지문. 내 상심처럼. 이 시는 내 세 번째 시집 『애인』에 실려 있는 「유리병 속 지문」의 전문이다. 저 유리병은 이사 중에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지만, 시적 판타지가 아니라, 분명한 사실이다. 내게는 저러한.. 2021. 9. 19.
수필인간 4 세상을 싫어하는 사람의 행복(7) 지난 가을 저 멀고 먼 독일에서 한 시인이 아직은 아까운 나이에 쓸쓸히 죽었다. 서점을 거닐다 보면, 그녀의 책들만을 진열한 코너가 마련돼 있다. 반가움보다는 슬픈 만감이 교차한다. 시인은 목숨을 저버리고 나서야 사람들 눈에 그나마 아른거리기라도 하는 존재가 돼 버린 지 오래다. 온 세상 시인들이 동시에 파업을 한들 누가 모래 먼지 한 톨만큼이나마 아쉬워해 주겠는가. 섭섭함 따윈 사치다. 이런 걸 시비 걸 요량이었으면 애초에 문학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내 잘못이고, ‘망해 버린 시의 나라’의 시민들인 시인들 잘못이다. 비교적 늦은 나이에 단신으로 독일에 유학한 그녀는 고대근동고고학 박사학위를 땄더랬다. 한국에서 독일박사가 얼마나 흔해지고 무용해졌는지는 모르겠으되, 한국.. 2021. 9.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