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조훈현 일대기. 조훈현론, 조훈현의 생각법 ,기타25

바둑의 전설 조훈현 일대기18 바둑의 전설 조훈현 일대기 18/김종서 ‘그래, 한 판 겨뤄보자.’ 사상 최초의 사제대결로 관심이 모아졌던 최고위전에서 스승은 최선을 다해 승리를 거두었다. 제자는 그 결승기에서 무력하게 패퇴했지만 천하의 조훈현에게 한 판을 이겼다는 것으로 충분히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이후 이창호는 본격적으로 전열을 정비하고 조훈현의 성들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제국(帝國)의 균열은 내부에서부터 온다고 했던가? 향후 십년쯤은 더 지속되고도 남을 것으로 여겨졌던 조훈현의 시대가 영원한 라이벌 서봉수 대신 내제자 이창호에 의해 위협을 받게 된 것이다. 1989년. 이창호는 사흘에 한번 꼴로 바둑을 두어 111전을 기록했고, 최다승인 84승(당시 세계신기록)을 올렸다. 서봉수 9단을 비롯한 고단자들을 연파하고 8월 8기 KBS.. 2023. 9. 12.
바둑의 전설 조훈현 일대기17 바둑의 전설 조훈현 일대기 17/김종서 단 한 번의 전투도 없이 슥슥 판을 밀어가는 창호의 솜씨는 뭐라고 표현할 수 없었다. 아니 어디 당한 데도 없고 밀린 데도 없는데 여섯 점의 효력이 어느 샌가 다 날아가 버리고 없어진 거였다. 또 분명히 끝내기 단계에서 열댓 집은 앞서고 있었는데 계가를 마친 시점에는 두 집이 부족한 게 아닌가? 귀신에 홀린 기분이었다. 하도 열이 받아서 그 뒤로 두 판을 더 두었는데 애꿎은 칫수만 일곱 점으로 바뀌고 끝이 났다. 아하, 이 아이가 내다보는 바둑과 나 같은 범인이 바라보는 바둑은 차원이 다르구나! 솔직히 나는 무릎을 꿇고 말았다. 그 때 내려다 본 창호의 두툼하게 살진 손이 얼마나 무서웠는지 모른다. “야, 전문가 입장에서 본 내 바둑이 어떻든?” 민망함을 감추기 위.. 2023. 9. 12.
바둑의 전설 조훈현 일대기 16 바둑의 전설 조훈현 일대기 16/김종서 처음 보는 광경에 흥미를 느낀 김인 9단이 다시 빈잔에 반쯤 술을 따르자 조국수가 또 원샷으로 비워냈다. 무엇이 그를 취하고 싶게 만들었을까? 김 9단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조국수를 지켜 보았다. “어, 이 친구 봐라?” 김 9단은 두 가지가 궁금했다. 술이라면 근처에 가기도 전에 넌덜머리를 내던 후배가 어인 일로 화끈하게 원샷을 시도했는지 그리고 술이 들어가면 도대체 어떤 상태로 변하는지 그 추이를 보고 싶었다. 아니나다를까 조훈현의 몸은 금새 벌겋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총기 가득한 눈망울이 충혈되었고 목이며 손바닥 등이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것처럼 붉어졌다. “저, 먼저 들어 가겠습니다.” 조훈현이 가쁘게 숨을 몰아쉬며 일어섰다. “이봐, 조국수 괜찮겠어?” .. 2023. 9. 12.
조훈현 일대기 14 바둑의 전설 조훈현 일대기 14 신혼여행지는 제주도 마침 흐드러지게 유채 꽃이 만발하고 바다 바람도 따스한 훈풍으로 바뀔 무렵이었다. 보수적인 환경 속에 성장한 신랑과 신부는 남국에서 처음으로 이성과의 사랑, 그 환상적인 로맨스의 진수를 맛보며 꿈같은 밀월여행을 즐겼다. (2002년 2월 엘지배 결승전을 앞두고 부부는 렌터카로 제주도를 일주했다. 만 22년 만에 오직 둘만이 돌아본 여행길에서 부부는 아마도 신혼여행의 기억들을 부단히 주워 올렸으리라.)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신부 정미화는 화곡동의 신방을 정리하면서 남편이 어떤 사람인지 깨달아가기 시작했다. 차남이었지만 조 국수는 결혼하기 전에 노부모를 봉양하는 조건을 내걸었었다. 어린 시절 일본으로 유학 가는 바람에 부모의 정을 충분히 못 받았다는 이유를 .. 2023. 8.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