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단편소설390 69. 우주여행 우주여행(宇宙旅行) 조세희 윤호는 서가의 책들을 한 권 한 권 뽑아 갔다. 남자아이들은 왜 여자아이라면 사족을 못 쓰고 여자아이들은 또 남자아이라면 왜 사족을 못 쓰는지 알 수 없었다. 지금까지 함께 잤던 몇몇 여자아이들과의 일이 떠오르자 구역질이 날 것 같았다. 윤호는 그 아이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끝이 좋았던 기억이 하나도 없다. 늘 울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여자아이들은 윤호를 아주 약한 아이로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러하든 그것은 지금의 윤호와는 상관이 없었다, 책장을 펴 볼 때마다 곰팡이 냄새가 났다 한결같이 두껍고 무거워 팔이 아팠다. 그러나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을 윤호는 알았다. 권총은 수백 권의 책 중 제일 마지막에 들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윤호는 사다.. 2022. 5. 25. 68. 우리들의 날개 우리들의 날개 -전상국 내가 국민학교 2학년 때 두호가 태어났다. 여덟 살 터울의 동생을 본 것이다. 두호의 출생은 우리 식구들뿐만 아니라 가깝고 먼 친척은 물론 이웃 사람들까지 떠들썩하게 했다. 7대 독자 집안에 사내아이가 또 하나 태어난 이 경사야말로 결코 예삿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뜻하지 않은 기쁨 뒤에는 으레 그 기쁨이 무엇엔가에 의해 허물어져 내릴 것 같은 위구심이 일게 마련이다. 두려움은 두려움을 낳게 마련이고 드디어는 그 두려움의 뿌리를 뽑아 버리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우다 보면 처음의 그 기쁨이 형체도 없이 사라진 뒤기 예사다. 우리 집의 경우가 꼭 그랬다. 그때 아직 정정한 모습으로 살아 계셨던 할머니는 둘째 손자를 본 기쁨으로 동네 노인들 앞에서 덩실덩실 춤까지 추어 보였다... 2022. 5. 25. 67. 외등 외등(外燈)- 전상국 한창 대낮의 그 불볕 더위도 산그늘이 마을을 서슴서슴 먹어들면서부터 서서히 열기를 죽이다가 어둠이 깔리는 저녁이면 제법 썰렁한 느낌까지 몰아왔다. 시골의 여름은 이처럼 낮과 밤의 온도가 완연하게 달랐다. 박종대 경사는 지서 건물과 울타리 하나를 사이에 둔 사택에서 저녁을 끝내자 곧장 사무실로 나왔다. 그의 아내가 이웃에서 보내온 것이라며 썬 옥수수를 상위에 올려놓았지만 손도 대지 않은 채 일어섰던 것이다. 위장에 이렇다할 이상이 없는 것 같은데도 항상 배가 그득하고 거북스러워 먹는다는 일에 대해 시덥잖은 느낌이 들기 마련이었다. 마을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에 불려가서도 그네들처럼 게걸스럽게 먹어대지 못하기 때문에 민망스러움을 당한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마을 사람들 속에.. 2022. 5. 25. 66. 영자의 전성시대 영자의 전성시대 -조선작 실로 우연한 기회에 나는 영자를 다시 만나게 되었는데, 그것은 정말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일이었다. 영자를 다시 만나게 된 것은 내가 군대에서 돌아와 한 공동목욕탕에서 일자리를 구한 다음의 일이었다. 군대에서 돌아온 뒤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서 나는 진짜로 고군분투했었다. 그러나 결국 낙착된 것은 목욕탕의 이었다. 사실 내가 군대에서 배운 것이라고는 사람을 죽이는 일밖에 없었다. 월남에서 실제로 나는 많은 사람을 죽였는데 화염 방사기로 토굴 속에 숨어 있는 일곱 명의 베트콩을 불태워 죽이고 이름 있는 무공훈장을 획득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훈장이 나에게 취직자리를 약속해 주는 것은 아니었다. 훈장을 받고 의기양양해졌을 때는 군대에 말뚝을 콱 박아버릴까도 생각했었다. 그러나 나는 내 .. 2022. 5. 25. 이전 1 ··· 4 5 6 7 8 9 10 ··· 2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