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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앙코르와트 (캄보디아)

by 자한형 2021. 9.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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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차(1.13)[6.20- 9.50분 인천공항 씨엠립 아트박스관광, 전신마사지]

오랫동안 계획했던 해외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새벽시간에 일어나 준비를 하고 집을 나섰다. 여행용 가방인 캐리어를 끌고 손가방을 목에 걸고 아파트 입구로 나갔다. 택시기사가 집 위치를 잘못 안 것 같아 보았다. 정확한 위치를 집사람이 알려주고 잠시 기다렸더니 곧 예약해 놓은 벅스 택시가 도착했다. 거의 20인승 정도는 되어 보이는 미니버스였다. 연예인들이 타는 스타크래프트보다 더 큰 수준이었다. 손님이 우리만이 아닌 듯했다. 대림동에서 3명의 일행을 합류시킨다고 했다. 어제 마신 술로 인해 비몽사몽간에 출발을 한 셈이었다. 새벽녘이라 서울길은 한가했고 쥐 죽은 듯이 고요했다. 눈을 감고 가면을 취하면서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공항으로 가는 시간은 한 시간쯤 소요되었다. 공항도착시간이 430분이었다. 비행기의 출발 예정시간은 620분이었다. 공항에 도착해서 출국수속에 돌입했다. 지방에서 올라온 일행들은 이미 1시간 전에 도착해서 수속을 마친 상태였다. 항공권을 발급받았고 짐을 컨베어벨트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출국장으로 들어갔다. 고작가네가 환전을 하느라 뒤쳐졌다. 면세점에 들러 소요될 물건 등을 구입해야 했는데 마땅한 것이 없었는지 면세점의 물건구입은 생략되었다. 게이트를 동과해 비행기에 올랐다. 운이 내리고 있는 상황이어서 정상적인 이륙이 힘들었던지 비행기의 날개 위의 운을 장비를 동원해 털어내는 준비과정이 있었다. 결국 30여분 후에야 겨우 출발할 수 있었다. 캄보디아와의 시차는 두 시간이었다. 5시간여의 비행 끝에 씨엠립 공항에 도착했다. 한국시간으로 1230분이었다. 현지시간으로는 1030분이었다. 비자를 발급받아야 입국이 가능한 상황이었다. 서류 3장을 작성하고 그 한 서류에는 사진까지 부쳐서 제출했고 발급비용 1인당 30달러씩을 내고 비자를 발급받은 후 입국이 되었다. 고약하게도 한국인에게는 1달러도 추가로 받았다. 조그만 건물이 공항대합실이었다. 날씨는 더웠다. 비행기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입었다. 두꺼운 겨울옷을 벗어버리고 여름옷으로 바꿨다. 기내식으로는 소고기덮밥 같은 것이 나왔다. 집사람은 입맛에 맞는지 깨끗이 비웠는데 나는 숙취 때문에 깨작깨작 먹다가 물만 먹는 형국이었다. 가이드가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보물섬이라는 여행사의 소속된 여자였다. 한국인이었다. 권지현이라고 소개를 했다. 현지가이드로 남자분도 한 명 더 있었다. 40대 중반쯤 되어보였다. 재기발랄했다. 달변이었고 말솜씨가 보통이 아니었다. 7년 정도 이곳에서 생활한 베테랑이었다. 딸만 둘이라고 했다. 동대문근처에서 살았다고 했다. 화계사에서 수계를 받았는데 법명이 심일정이라고 했다. 무슨 식당이름 같다고 해서 싫다고 했다. 현대라는 로고가 선명한 한국 버스에 일행 25명이 승차했다. 제일 먼저 찾은 곳은 한국식당이었다. 주도로를 지나고 있다고 설명했고 몇 차례 이곳을 지날 것이라 했다. 길 양쪽에는 수많은 오토바이 행렬이 지나고 있었다. 그리고 간혹 툭툭이도 있었다. 툭툭이는 오토바이 뒤에 4륜 트레일러 같은 것을 단 운송수단이었다. 메뉴로 나온 것은 만두전골이었다. 밑반찬 등은 한국의 여느 식당과 다를 바가 없었다. 유명한 도시로 되어 있는 곳이 프놈펜, 밧담벙, 씨엠립 등이 있었다. 인구는 천6백만 명 수준이었고 국토면적은 한국의 1.8배 수준이었다. 씨엠립의 씨엠은 태국을 의미했고 립은 점령된 곳이라는 뜻이었다. 우리나라로 치면 경주 같은 곳이었다. 한국식당의 이름은 아리랑이었다. 외국에 왔음에도 한국의 식당을 이곳으로 옮겨놓은 듯했다. 마늘이 없었던 부분은 아쉬운 부분이었다. 야채도 한국보다 더 싱싱해 보였다. 농약 등도 수입해야 하니 어쩔 수 없이 친환경일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우리의 일행의 구성은 남자 13, 여자 12명이었다. 어른 18, 아이 7명이었다. 제일 어린 아이가 8살이었다. 최고령자는 스승님으로 60대 후반의 고령이었다. 함께 모두들 선원에서 수행을 함께하는 도반들이었다. 고작가와 나만 비수행자로 이방인인 셈이었다. 모두들 새벽에 출발해서 오랜 여행시간 때문에 피로한 상태였지만 왕성한 식욕을 보였다. 오신 곳은 목포, 광주, 대전 등 전국각지에서 온 셈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첫 번째 관광을 나선 곳은 아트박스란 곳이었다. 대형 그림들이 비치되어져 있었다. 작품마다 포토존이 있었다. 윈드서핑을 하는 장면에 위치해서 사진을 찍으면 실제 파도를 타고 있는 듯한 작품사진을 만들 수 있었다. 유명작가의 작품의 모사작품도 많았고 친숙한 느낌을 주었다. 고작가의 얘기로는 한국작가가 그림을 그린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삼삼오오 몰려다니며 열심히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관광을 할 때 모두 신발을 맡겨두고 관람을 했다. 관람이 끝난 후 신발을 찾아서 신고 다음 일정인 마사지샵으로 향했다. 남자들은 남자들의 방으로 여자들은 여자들의 방으로 각각 별도의 방으로 입장했다. 편한 복장으로 옷을 갈아입고 마사지를 받았다. 소요시간이 두 시간이었다. 다리, , , 목 등을 마사지하는 전신마사지였다. 쑥찜도 있었고 한결 여행의 피로가 풀리는 듯했다. 다음의 일정은 저녁식사장소로 이동하는 것이었다. 중간에 잠시 슈퍼에 들르기로 했다. 우리나라로 보면 조그만 슈퍼 같은 곳이었다. 담배가 12불이었다. 15천원 수준이니 면세가 수준이었다. 술은 발렌 타인 21년산이 100불대 수준이었다. 공통경비로 캄보디아 캔맥주 앙코르를 두 박스를 샀다. 아이들은 간식용 과자를 샀다. 저녁은 현지 식이었다. 파인애플 볶음밥 일명 팟타이라는 것이었다. 볶음밥을 파인애플껍질에 싸서 내놓았다. 후식으로 파인애플주스가 나왔다. 닭고기도 조금 나왔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호텔로 들어왔다. 호텔은 오성급 호텔로 2010년에 건축된 곳이었다. 고풍스러웠고 4층 정도였다. 고도제한이 있어 고층건물은 지을 수 없는 형편이었다. 더불 침대가 두 개 놓여있었다. TV도 있었고 의자와 탁자도 구비되어져 있었다. 가운도 두벌 비치되어져 있었고 옷장 안에는 금고도 있었다. 냉장고에는 맥주, 물 등도 비치되어져 있었다. 인터넷용 렌션도 있었고 또한 헤어드라이어도 비치되어져 있었다. 아쉬움은 비데가 없었다. 화장실 옆에 호스에 연결된 세척기가 달려져 있었다. 그것으로 씻을 수 있는 형국이었다. 와이파이도 쓸 수 있도록 패스워드와 비번이 제공되었다. 그것은 매일 비번이 바뀌는 상황이었다. 3일을 묵어야 하는 숙소였다. 바깥에는 수영장이 있었다. 깨끗하게 관리가 되고 있었다. 아침시간과 저녁시간에 수영을 즐길 수 있었다. 휘트니센터와 스파도 마련되어져 있었다. 호텔 입구에는 연못 같은 것이 있었고 팔뚝만한 크기의 비단잉어가 수십 마리가 떼 지어 다니고 있었다.

TV 방송은 YTN, KBS WORLD가 한국어로 나왔다. 후자는 영어자막이 나왔다. YTN의 경우는 한국시간도 그대로 나왔다. 관광객은 한국인이 많이 오는 상황으로 보였다. 여태까지 주류였던 일본은 이제 물러간 상황이었다. 잠깐 휴식을 취한 후 한 호실에 모여 간담회를 했다. 스승님이 수정방을 한 잔씩 따라주었다. 한 시간여의 회합을 마치고 공식적인 일정이 끝났다.

 

2일차(1.14)[호텔조식호텔 부대시설이용중식 제육볶음-에코팜 물소트레킹 망고 꼬치요리 시식 민속촌 방문 공연관람 뷔페 석식 유피피안 거리 야시장 탐방 레드 피아노 호텔복귀]

여행 2일차가 밝았다. 5시경에 잠에서 깼다. 아직도 바깥은 한밤중이었다. 일행 중 한 분은 5시에 일어나 호텔주변을 두 바퀴 돌았다. 그리고 밤하늘의 쏟아지는 별들을 감상했다. 이불속에서 한 시간여를 미적거리다가 기침했다. 615분경에 호텔 로비 층의 식당으로 가서 아침을 먹었다. 핵심적인 요리는 계란 프라이와 베트남 쌀국수였다. 진열된 음식과는 달리 그곳에서는 접시를 들고 순서를 기다려야했다. 조금의 시간이 지난 후에 남자아이 두 명이 내려왔다. 어제 저녁에 수영을 했던 탓에 몹시도 허기가 졌던 모양이다. 피자를 시켜주기도 했었던 모양인데 아이들이 한참 자랄 때라 돌아서면 배가 고플 때였다. 식사를 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부족한 것들을 좀 챙겨주었다. 일행 중에 내려오신 분은 홀로 오신 두 분이 내려와 식사를 했다. 숙소에 올라와 휴식을 취했다. 오전 일정은 없었다. 호텔 부대시설을 이용하는 일정이었다. 아이들과 몇몇 일행이 야외 수영장에서 수영을 즐겼다. 집사람이 아이들에게 선크림을 발라주었고 타월도 가져다놓았다. 앙코르 맥주를 한 잔 마시기도 했다. 12시에 호텔로비에 일행들이 집결해서 본격적인 2일차 일정을 시작했다. 먼저 간 곳은 식당이었다. 한국식이었다. 쌈밥정식으로 식사를 했다. 풍성한 야채와 제육볶음이 나왔다. 식사 후에는 버스로 이동해서 물소트레킹을 했다. 21조로 물소를 타고 마을을 돌아보는 것이었다. 마부가 물소를 몰고 안내를 했다. 사진을 촬영해 주기도 했다. 중간에 물소가 배변을 하면 정지가 되었다. 잠깐 동안이었지만 아이들은 무척이나 신기해했다. 끝날 때쯤에 아이들이 바구니 하나를 들고 일행들과 보조를 같이하면서 팔찌를 파는 행상들이었다. 한국어를 곧잘 했다. “오늘 하나도 못 팔았어요 원 달러 5개예요 팔아주세요하도 끈질기게 졸라대니 다들 사지 않고는 배겨내질 못했다. 한 개, 다섯 개, 일곱 개 다양한 구구각색의 구매였다. 느릿느릿 걷는 물소를 보면서 색다른 느낌이었다. 벼를 재배하는 곳도 있었고 파인애플 재배지, 파초 등도 볼 수 있었다. 여러 가지 꽃들도 만개해 있었다. 트래킹을 마치고 농가를 둘러보았다. 1층에는 우리로 치면 디딜방아 같은 것이 놓여져 있다. 그리고 그 옆에는 풍구 같은 것도 있었다. 건물 바깥쪽에 부엌에 해당하는 곳이 있었다. 솥을 두 개 놓았다. 70센티미터쯤 높게 위치해 있었다. 물에 잠길 것을 고려한 배치였다. 그리고 그 옆에는 웅덩이가 있었다. 덤벙 같은 모습이었다. 물속에는 우렁이가 많이 자라고 있었다. 그 웅덩이 옆에는 커다란 항아리가 있었다. 그런 항아리가 몇 개씩 있는 집도 있고 그것이 얼마나 많은가 하는 것이 부의 척도라고 했다. 이층으로 올라가자 대나무로 만들어진 집이 있었다. 방이 두 개였다. 시원한 느낌이었다. 사진이 있었다. 왕과 왕비의 사진이었다. 예전 왕으로 보였다. 가는 곳곳마다 그 사진은 걸려있었다. 한쪽의 식당 같은 곳에서 앉아서 준비된 망고와 꼬치를 먹었다. 망고에는 심도 있었다. 모두 맛있게 먹었다. 망고는 추가로 요청을 했고 꼬치는 남았다. 머리 위쪽으로는 선풍기가 돌고 있었다. 그런데 구석지에는 먼지와 거미줄이 잔뜩 끼여져 있었다. 아직 많이 부족한 모습이었다. 다음은 버스로 이동해서 민속촌으로 갔다. 입구에는 머리가 몇 개씩인 뱀 형상의 모형이 있었다. 그리고 한쪽에는 황금개가 우리의 해태상처럼 조각되어져 있었다. 최종집결지와 시간을 통보받고 자유로운 관광에 들어갔다. 조금 들어가자 공연장이 나왔다. 한참을 기다린 후 공연을 보았다. 처음에는 사자춤이 추어졌다. 그리고 아크로바트 공연이 있었다. 최종적으로 공연이 끝나고 헌금함 같은 것으로 돈을 걷었다. 일부 손님들이 주머니를 털어 기부했다. 수상가옥 같은 곳이 있었다. 그곳의 나무난간에는 불개미들이 돌아다니고 있어 안타까움이 남았다. 밀랍인형관, 대부호저택, 모형건축물, 사원 소극장 등을 둘러보았다. 동물원도 있었는데 음식잔해로 인해 엄청난 악취가 진동했다. 곧바로 그곳을 빠져나와 최종집결지로 향했다. 관광을 마치고 버스로 이동해서 뷔페식 현지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전통 인살라 춤공연이 펼쳐졌다. 화장실에 가는 길에는 싸리로 만든 투망 등 생활용품이 죽 전시되어져 있었다. 화장실의 변기는 대부분 양변기였다. 소변기는 구구각색이었다. 벽면에는 금연에 대한 안내문이 한글로 조잡하게 쓰여 있었다. 그리고 음식점마다 벽면에 부착된 것은 주류반입금지란 안내문이었다. 물병에 술을 넣어 반입하는 것도 엄금한다는 식이었다. 한국관광객의 수준을 유추해 볼 수 있었다. 와이파이는 호텔에서만 할 수 있었다. 속도가 좀 늦는 듯했고 동영상 올리기 등도 제대로 하기가 어려웠다. 식당마다 혹은 공공장소 등도 와이파이에 대한 안내는 전혀 없었다. 이때까지의 관광 등에서 볼 수 있었던 과는 판이하게 다른 우리나라로 치면 이태원 같은 곳을 간다고 했다. 그곳은 야시장을 겸하고 있었다. 유리피언거리라고 했다. 가장대표적인 명소는 레드 피아노였다. 안젤리나 졸리가 톰레이드를 촬영할 때 매일 들렀던 곳이라고 했다. 가이드의 얘기로는 벨기에인이 주인이라고 했다. 한국인들을 싫어한다는 얘기였다. 왜냐면 한국 사람이 시끄럽기 때문이라는 이유였다. 맨 먼저 학생들이 소풍을 갈 때 두 줄로 열 세워 가듯이 우리는 가이드를 따라서 쫄래쫄래 길을 걸었다. 그리고 레드 피아노 앞에서 망고주스를 한잔씩 받아들고는 자유시간을 40분쯤 가졌다. 닥터피쉬에 발을 맡기고 있는 푸른 눈의 사람들을 볼 수도 있었다. 안쪽으로 들어가니 살모사, 전갈 등으로 담근 술이 술병에 담겨져 있었다. 어떤 이는 그것을 사갖고 갔는데 꺼내보니 인형으로 된 뱀이 나와 기절했다는 얘기도 있었다. 기념품 가게들이 줄지어 있었다. 거리에는 각종 공연이 펼쳐지기도 했다. 한국의 동명대학에서 길거리 공연을 하는 모습도 보였다. 태권도 도복의 복장도 이채로웠다. 야시장 구경을 마치고 집결지에 모여 다시 호텔로 돌아왔다. 야간 회합의 주관자는 고 작가였다. 커피포트 같은 형태의 간단한 냄비를 가져왔다. 네팔 히말라야 여행시 동행자가 선물해준 것이라 했다. 라면도 끓일 수 있었고 꽁치조림도 멋지게 끓여서 적절한 안주가 되었다. 준비한 술은 공부가주였다. 여행하면서 서로의 느낌과 감상을 서로 공유하고 소통하는 시간이었다. 한 시간여의 회합이후 마무리가 되었다.

 

3일차(1.15)[호텔 조식 앙코르와트 사원 타프롬사원 바이욘사원 중식 (낙지볶음)-마사지 -보석상 쇼핑- 석식(삼겹살)- 전통공연 관람 8시에서 9시 호텔복귀]

아침에 집결예정시간은 8시였다. 본래 730분으로 정했다가 그나마 발권을 하는 장소가 가깝다는 이유로 30분을 늦췄다. 6시에 기상해서 아침식사를 했다. 맨 먼저 줄을 서서 계란프라이 두 개를 받았다. 그리고 쌀국수도 챙겼다. 기타 빵과 오렌지주스 등으로 아침을 먹고 휴식을 취한 후 채비를 해서 호텔로비로 집결을 했다. 바나나와 남은 빵 등은 휴지로 싸서 식당에서 가지고 나왔다. 그리고 카톡으로 빵이랑 과일 등을 좀 챙겨오라고 일행들에게 카톡으로 조언을 해 두었다. 피로를 풀기위해 욕조에 물을 받아 몸을 좀 담갔다. 오늘이 여행의 하이라이트였다. 8시에 버스로 출발해서 발권을 받으러 갔다. 어떤 경우에는 줄을 서서 기다리느라 시간을 허비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입장권을 발부하는 곳은 북한에서 기부체납한 박물관에서 발권을 했다. 북한이 수년전에 200억 원을 들여 지워준 박물관이었다. 그에 대한 합당한 대가가 적절하지 않자 자신들의 요구에 의해 발권장소만이라도 박물관 인근에서 하도록 요구했던 부분이었다. 발권은 사진을 촬영하고 대금을 지불해서 입장권을 발급받았다. 37불이었다. 다음은 그것을 목에 걸고 툭툭이로 출발했다. 가이드가 신신당부를 했다. 툭툭이를 타고가면서 휴대폰이라든지 모자라든지 그런 것을 떨어뜨리는 경우가 있는데 그냥 내버려 두더라도 끝에 가이드가 가면서 다 주워가니 걱정말라는 당부였다. 중간에 갑자기 급정거를 하면 사고가 나기 십상이라는 조언이었다. 21조로 이동했다. 세 번을 툭툭이로 이동해야 했다. 가이드의 얘기로는 최종적으로 탔을 때 매너팁을 주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얼마 후 사원에 도착했다.

아직까지 완전하게 복원한 것이 아님을 느껴볼 수 있었다. 사원의 곳곳에 엄청난 나무들이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그 나무를 뽑을 수도 없고 성장시킬 수도 없다는 진퇴양난의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래서 주사약을 주는데 그것은 성장억제제라고 했다. 안젤리나 졸리 나무라고도 명명되었다고 했다. 3종류의 나무가 있다고 했다. 다음은 두 번째 사원으로 갔다. 지나가는 곳에 코끼리&가루다&문둥이 테라스가 있었다. 죽 가는 곳에 벽면에 수없이 많은 코끼리 상들이 조각되어져 있었다. 툭툭이를 타고가면서 동영상을 찍으라고 해서 동영상을 찍었다. 신기하게도 한글로 된 설명문이 있었다. 한국의 한 독지가가 사원복원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안내판을 한글로 새긴 것을 건립할 수 있었다. 유일한 한글안내문이라고 했다. 중간 중간에 가이드가 설명을 해 주었다. 날씨는 그런대로 선선한 편이었다. 뙤약볕아래서는 그 열기에 잠시도 서 있지 못할 정도였다. 4면상이 즐비했다. 관건은 천년의 미소를 찾는 것이었다. 수많은 4면상가운데 유일하게 미소를 띈 얼굴의 석상이었다. 모두 기념촬영을 하고 다음을 위해 이동했다. 천년의 미소를 지닌 곳이었다. 석상의 입꼬리가 살짝 위로 치켜져 올라가 있었다. 조금 지나니 천년의 미소를 닮은 짝퉁이 있었다. 어떤 이들은 짝퉁을 천년의 미소로 알고 가기도 한다고 했다. 최종 간 곳은 앙코르와트였다. 앙코르와트 프랑스 식물학자 앙리 무오가 1860년에 발견했다. 중앙통로는 공사 중이라 옆에 급조로 만든 임시다리를 통과해서 들어갔다. 중앙통로의 복원은 절반은 프랑스 절반은 일본에서 했다. 일본은 사원을 복원해주었다. 그리고 나무의 벌목권 그리고 상황버섯 채취권을 가져갔다. 이제야 캄보디아인들은 상황버섯의 가치를 알게 되었다. 3대나무에 중 하나인 나무에 대해 설명했다. 날카로운 가시 같은 것이 있었는데 킬링필드 때에 가시로 사람을 죽이는 도구로 사용되기도 했다는 설명이 있었다. 1, 2, 3층으로 되어져 있었다. 벽면을 따라서 부조가 조각되어져 있었다. 모두 바깥에서 조각을 해와 하나씩 돌을 쌓았다고 했다. 한 여신상이 있었는데 유방이 반질반질한 모습이었다. 착각하기 쉬운 부분이 우리는 남자들이 그곳을 만져서 그러리라고 지레짐작했는데 전혀 그런 것이 아니었다. 캄보디아는 모계중심사회였다. 결혼한 여자들이 간절히 원하는 것은 딸을 원한단다. 그래서 결혼한 신부들이 딸을 점지해달라고 축원하는 의미에서 신상의 유방을 만져서 그렇다는 것이다. 안으로 들어가니 점성술사 같은 할머니가 있었다. 할머니의 역할도 새로운 생명을 원하는 신부들에게 축복을 내려주고 예쁜 딸을 점지해준다는 얘기였다. 천상계인 3층으로 올라갔다. 70도 각도의 급경사로 올라가야 했다. 예전에는 그곳에 오르다 떨어져 죽은 사람도 있었다고 했다. 지금은 난간도 설치되었고 올라가는 곳과 내려오는 곳이 구분되어져 있었다. 사방으로는 4개씩의 목욕탕이 있었다. 천상계에서 왕이 목욕한 물이 아래층으로 내려오고 맨 마지막에 일반백성들이 목욕을 했다는 설명이었다. 서쪽에서 들어가서 서쪽으로 나오는 구조였다. 사방으로 해자를 파서 쉽게 접근할 수 없게 만들어져 있었다. 중앙의 탑은 세상의 중심 수미산을 상징한단다. 4개의 봉우리가 있었다. 호숫가에서 보면 탑과 수면에 비친 탑까지 10개의 봉우리를 만날 수 있다고 했다. 기념품가게가 있는 곳에서 일행은 휴식을 취하며 코코넛을 마셨다. 잠시 화장실을 다녀왔는데 유료여로 사용료를 1달러씩 내야했다. 처음 보는 유료화장실이었다. 좌변기형식으로 되어져 있었고 옆에 물을 뿌릴 수 있도록 되어져 있는 구조였다. 화장실로 가는 길에는 어느 공동묘지 같은 형태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인적이 드문 곳으로 빠져나와 한참을 걸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툭툭이를 탔는데 4인씩 1조가 되어 이용했다. 가이드는 모자 등의 떨어짐을 방지하기 위해 목도리를 하나씩 나누어주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물통을 담을 수 있는 멜빵 같은 것을 나눠주었다. 실로 엮은 것으로 아주 활용하기에 간편한 것이었다. 모자를 묶을 수 있는 목도리로 모자를 묶는 것이 필요해 보였다. 앙코르와트를 둘러보고 나오니 거의 오후 1시경이 되어져 있었다. 식사를 하러 갔는데 제육볶음이 메뉴였다. 모두들 배가 고팠는지 왕성한 식욕으로 밥그릇을 비워냈다. 오후에 관광을 하기 전에 잠깐 보석상에 들렀다. 그 다음의 코스는 인공호수인 곳에 갔다. 고작가가 자신이 제일 좋아한다는 최고의 과일 두리안을 샀다. 23불이라고 했다. 냄새가 고약해서 반입이 금지되는 것이었다. 양파 섞는 냄새가 난다는 얘기다. 맛은 무척 달콤한 느낌이었다. 아이들이 손목 팔찌를 5개에서 10개까지 권고하면서 1달러에 사라는 식이다. 어제 물소투어 때 산 경험이 있던 터라 더 이상 사는 일은 없었다. 다음은 저녁식사를 하러갔다. 식사메뉴는 삼겹살이었다. 여기에는 마늘이 빠질 수 없었다. 옆 좌석에서는 바비큐를 해서 먹는 젊은 한국봉사단이 단체로 회식을 하고 있는 듯했다. 술값은 주작가가 냈다. 야간에는 캄보디아 전통 공연을 관람했다. 1시간여가 진행이 되었다. 그리고 호텔로 복귀했다. 간단히 세면을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4일차(1.16)[호텔 체크아웃 와트마이사원 - 상황버섯 중식 샤브샤브 라텍스매장 - 톤레샵호수 맹그르브 숲 - 잡화점 저녁식사 돼지갈비 - 공항 ]

마지막 여행 일정이 잡힌 날이다. 날씨는 쾌청했다. 아침에 나오면서 매너팁을 빠뜨리고 나왔다. 다시 숙소로 올라가 1달러를 문틈으로 넣어두고 나왔다. 910분에 출발했다. 버스를 타고 와트마이 사원으로 갔다. 우리로 치면 현충원 같은 곳이라 했다. 킬링필드로 희생된 사람들의 유골을 볼 수 있었다. 본래 병원을 지을 목적으로 땅을 팠는데 그곳에 엄청난 유골이 발견되는 바람에 결국 사원이 되었다는 설명이었다. 유골의 색깔이 조금씩 달랐다. 설명을 하는 가이드가 그 사유를 설명했다. 조금 붉은 색을 띤 것이 여자유골이라는 얘기였다. 황토가 유골에 스며들었다는 얘기였고 엄마들이 애기를 낳으면서 칼슘성분들이 빠져나가 뼈가 약화된 때문이라고 했다. 사원의 입구에는 사원을 짓는데 일조한 사람들의 헌금액과 명단이 적혀있었다. 또 다른 한편에는 절이 있었다. 부처님이 수행을 하는 중에 물이 차올랐다. 그런데 계속 물이 차오르자 뱀이 똬리를 틀어서 부처님을 떠받쳐서 부처님이 살아날 수 있었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은 뱀을 신성시하고 아주 귀한 동물로 여긴다는 것이다. 불상이 모셔져 있었고 벽면과 천장 등에는 불화가 그려져 있었다. 독실한 신심을 가진 이들은 삼배를 올리고 향을 피워놓기도 했다. 폴 포트의 사진도 한쪽 편에 게시되어져 있었다. 입구는 뱀의 형상이 지키고 있었다. 꼬리는 저 멀리 있었다. 관광을 마치고 다음으로 간 곳은 상황버섯 판매점이었다. 우리로 치면 인삼공사와 같은 곳이었다. 일본에게 상황버섯을 빼앗겼지만 일부는 남아있는 듯 여겨졌다. 들어가는 입구에 한 젊은 청년이 상황버섯을 칼로 쪼개고 있었다. 조그만 방에 들어가 설명을 들었다. 그리고 차도 한 모금 마셨다. 일부는 상황버섯주를 마시기도 했다. 다음의 행선지는 식당이었다. 샤브샤브였는데 우리와는 형식이 좀 달랐다. 야채와 어묵 등을 넣고 먹는 식이었다. 다 먹은 후에는 죽 혹은 밥을 볶아서 먹었다. 상황버섯을 판 곳에서 물을 좀 제공해주어 식사 때에 물을 더 마실 수 있었다. 우리식으로 많은 변환을 시도했는데 아직도 우리의 입맛에는 많이 부족한 듯했다. 다음의 행선지는 톤레샵 호수로 이동했다. 호수는 동양최대의 호수라 했다. 물은 흙탕물이었다. 전체 일행을 태운 배는 20분쯤 하류로 이동했다. 선장 한명과 선원이 두 명이었다. 15세쯤의 소년 1명 그리고 10세 정도의 꼬마 한 명이었다. 두 명이 배가 이동하는 동안 손님들의 등을 안마해 주었다. 그리고 매너팁을 1불씩 받아갔다. 그리고 또 그곳에서 카누형태의 3인용에 옮겨 탔다. 뒤에서 젊은 사공이 노를 저었다. 한국말도 곧잘 했다. 예를 들면 그런 식이다. 예뻐요 라고 비행기를 태운 후 뻥이에요 라고 놀렸다. 한바탕 웃음이 쏟아졌다. 맹그르브 나무가 즐비한 사이를 이리저리 잘 운행해서 다녔다. 우산이 비치되어져 있었다. 부채도 플라스틱으로 된 조잡한 것이 비치되어져 있었다. 나무숲에 있을 때에는 소용이 없었는데 바깥으로 나오니 우산을 써야만 했다. 화관을 씌워주기도 했고 사진을 찍어주기도 했다. 수상풀을 꺾어주기도 했다. 최종으로는 캄보디아 지폐로 만든 종이접기로 만든 하트모양의 상징물을 선물하기도 했다. 매너팁을 내릴 때 주었다. 카누에서 큰매로 옮겨 타서 호수의 매점 같은 곳으로 갔다. 그곳에는 악어들을 볼 수 있었다. 기념품 가게로 되어있었다. 코코넛을 사주었다. 그것을 한 모금씩 마셨다. 일부는 가져온 앙코르 맥주를 마시기도 했다. 이층 이상에는 전망이 좋아 사진을 찍기가 좋았다. 저 멀리 수평선을 바라볼 수 있었다. 호수가 주변에는 수상가옥에 사는 난민들이 있었다. 대부분이 베트남 난민이라고 했다. 생활상은 열악하기 그지없었지만 그들의 행복지수가 우리보다 높다는 얘기를 하기도 했다. 호수의 관광과 체험을 마치고 다음으로 향한 곳은 잡화점이었다. 다양한 제품에 대한 설명과 안내가 있었다. 쇼핑을 마친 후에는 저녁을 먹으러 갔다. 현지 식이었는데 주 메뉴가 돼지갈비였다. 식당마다 특이한 점은 주류 등의 반입이 안 된다는 안내 문구였다. 물병에 소주를 담아 반입하는 것도 불가하다는 표식을 해 두었다. 화장실에는 담배를 피우면 나빠요 라는 식의 한글 경고문구가 눈길을 끌었다. 식사를 마친 후에는 곧바로 공항으로 이동했다. 8시정도까지 도착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공항의 입구에서 가이드와 작별을 고했다. 그리고 출국 수속에 들어갔다. 짐을 정리해야 했다. 모두들 여름옷을 겨울옷으로 바꿔입었다. 수속 후에는 면세점에 들러 필요한 것을 구매했다. 집사람이 양주 두병을 샀다. 35일 간의 여행 일정이 종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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