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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수필49

그리운 내가 온다2 그리운 내가 온다 2/ 박범신 이슬람의 박해를 피해 이 변경까지 도망쳐 와 지하에 은거했던 중세의 기독교인들, 그들도 맞이했을 그 아침 해가 다시 떠오르는 시간입니다. 밤이 지나면 새벽이 오듯이, 고난의 시간이 지나면 영광의 시간이 찾아옵니다. 박해를 피해 은거했던 기독교 문명은 이제 동굴의 어둠 속에서 나와, 아침 해처럼, 세계 문명의 중심이 됐습니다. 기독교가 세계로 널리 퍼져 나간 것처럼 사랑의 물결이 세계로 더 널리 퍼져 나갔는지는 의문입니다. 어떤 이에게 종교는 구원이지만 또 어떤 이에게 종교는 욕망이 된 세상입니다. 터키 사람들은 너무나 친절해서, 말을 붙이지 못할 정도입니다. 마치 잃어버린, 젊었을 때, 그 옛날의 우리 같습니다. 우리는 그 동안 잘 살아보자는 개발 이데올로기를 따라오면서 세.. 2023. 10. 20.
그리운 내가 온다 그리운 내가 온다 / 박범신 유럽이 여기서 시작됩니다. 아시아가 여기서 끝납니다. 바꿔 말하자면, 유럽이 끝나고 아시아가 시작되는 곳이 이스탄불입니다. 일찍이 강성했던 히타이트인들이 자리 잡았으며 페르시아 제국과 로마 문명의 세례를 받았던 곳, 동로마 제국의 비잔틴 문화가 꽃피었고, 오스만 터키의 이슬람 문명의 중심을 이루었으며, 아시아 몽골 제국의 말발굽 소리가 천지를 울리기도 했던 곳, 동양과 서양, 오래된 과거와 현재, 갈등과 화해가 뒤섞여 흐르는 곳, 이스탄불은 터키의 심장입니다. 터키인은 보스포루스 해협을 보아즈(bogaz), 목이라고 부릅니다. 길쭉한 모양이기 때문이지만, 제게는 생명이라는 은유를 떠올리게 하는 목으로 들립니다. 유럽 대륙과 아시아 대륙을 가로지르는 30여 킬로미터의 이 물길은.. 2023. 10. 20.
김훈,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 김훈,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김훈 돈과 밥으로 삶은 정당해야 한다 이 세상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모든 먹이 속에는 낚싯바늘이 들어 있다. 우리는 먹이를 무는 순간에 낚싯바늘을 동시에 물게 된다. 낚시를 발라 먹고 먹이만을 집어먹을 수는 없다. 세상은 그렇게 어수룩한 곳이 아니다. 낚싯바늘을 물면 어떻게 되는가. 입천장이 꿰여서 끌려가게 된다. 이 끌려감의 비극성을 또한 알고, 그 비극과 더불어 명랑해야 하는 것이 사내의 길이다. 돈과 밥의 지엄함을 알라. 그것을 알면 사내의 삶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아는 것이고, 이걸 모르면 영원한 미성년자다. 돈과 밥을 위해서, 돈과 밥으로 더불어 삶은 정당해야 한다. 알겠느냐? 그러니 돈을 벌어라. 떠나가는 배 이 시대의 '개혁'은 수많은 사람들을 제.. 2023. 10. 20.
밥벌이의 지겨움3 밥벌이의 지겨움3/김훈 히딩크 열풍이 주는 교훈 한국팀이 공을 차 넣었을 때, 히딩크 감독의 골 세리머니는 선수들의 세리머니와는 크게 다르다. 선수들은 기쁨에 날뛰는 동작을 해보이지만, 히딩크 감독의 '어퍼커트 세리머니'는 훨씬 더 깊은 곳에서 솟아오르는 성취의 희열을 폭발시킨다. 히딩크 감독을 모셔 와서 한국 축구가 단기간에 세계 정상으로 치솟았다는 성취를 '족집게 고액 과외'의 효과라고 말하는 자조적인 농담도 술자리에서 떠돌고 있다. 그리고 그 농담의 이면에는 스포츠가 아닌 현실 사회에 대한 뿌리 깊은 증오와 불신이 자리 잡고 있다. 히딩크의 성취에 대한 가장 유력한 분석은 그가 한국인과는 아무런 인연이 없는 외국인으로서 한국 사회의 고질적 악폐인 학연과 지연 등 인맥에 휘둘리지 않고, 재능과 성실성.. 2023. 10.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