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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수필49

밥벌이의 지겨움2 밥벌이의 지겨움 2/ 김훈 모든 밥에는 낚싯바늘이 들어 있다. 밥을 삼킬 때 우리는 낚싯바늘을 함께 삼킨다. 그래서 아가미가 꿰어져서 밥 쪽으로 끌려간다. 저쪽 물가에 낚싯대를 들고 앉아서 나를 건져올리는 자는 대체 누구인가. 그 자가 바로 나다. 이러니 빼도 박도 못하고 오도가도 못한다. 밥 쪽으로 끌려가야만 또 다시 밥을 벌 수가 있다. 봄에, 새잎 돋는 나무를 바라보면서 나는 늘 마음이 아팠다. 나무들은 이파리에 엽록소가 박혀 있어서 씨뿌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으면서 햋빛과 물을 합쳐서 밥을 빚어낸다. 자신의 생명 속에서 스스로 밥을 빚어내는 나무는 얼마나 복 받은 존재인가. 사람의 밥은 사람들 사이의 관계 속에서 굴러다닌다. 그래서 내 밥과 너의 밥이 뒤엉켜 있다. 나는 근로를 신성하다고 우겨대면.. 2023. 10. 20.
밥벌이의 지겨움 밥벌이의 지겨움 / 김훈 책머리에 내가 사는 마을은 한강 맨 아래쪽 물가다. 저녁마다 서해에서 번지는 노을이 산하에 가득 찬다. 하류의 강은 늙은 강이다. 큰 강의 하구 쪽은 흐려진 시간과 닿아있고 그 강은 느리게 흘러서 순하게 소멸한다. 흐르는 강물 옆에 살면서 여생의 시간이 저와 같기를 바란다. 나는 이 물가 마을의 공원 벤치에 앉아서 저녁나절을 보낸다. 이제, 시간에 저항할 시간이 없고, 시간을 앞지를 기력이 없다. 늙으니까 두 가지 운명이 확실히 보인다. 세상의 아름다움이 벼락치듯 눈에 들어오고, 봄이 가고 또 밤이 오듯이 자연 현상으로 다가오는 죽음이 보인다. 공원에서 아이들은 미끄럼을 타고 그네를 타고 흙장난을 하고 인라인스케이트를 탄다. 노는 아이들의 몸놀림과 지껄임은 늘 나를 기쁘게 했는데.. 2023. 10. 20.
생각을 바꾸면 생각을 바꾸면 – 박완서 그들은 그런 대로 재미가 있을지 몰라도 당하는 쪽에선 고문과 같았다. 나중에는 참다못해 느네들한테 노래할 자유가 있는데 나한테는 왜 안 할 자유가 없냐?고 외치고 말았다. 너무 진지하게 외쳤던지 나름대로 흥청거리던 분위기 일순 서먹해지고 말았다. 그제서야 아차, 싶었지만 한 번 뱉은 말은 주워 담아지는 게 아니었다. (중략 : 유신 시절 남들이 자유를 외칠 때 이를 남의 일인 듯이 외면하고 있었다는 고백이 이어져 나온다. 그래서 지금에 와서 지극히 사소하고 일상적인 데서 자유를 찾는 자신의 모습이 더 부끄럽다는 진술이 담겨 있다.) 나는 나의 유치함에 질려 어쩔 줄을 몰랐다. 그 고약한 기분은 다음날까지 계속됐다. 7,80년대를 끽소리 한 마디 못 하고 살아남은 주제에 고작 노래.. 2022. 3. 16.
나의 고향 전 광 용 1 나의 고향은 함경도 북청이다. 북청이란 지명이 사람들의 귀에 익게 된 것은 아마도 '북청 물장수' 때문인 것 같다. 수도 시설이 아직 변변하지 않았던 8.15전의 서울에는 물장수가 많았었다. 그런데, 그 대부분이 북청 사람이었던 까닭으로 '물장수'하면 북청, '북청 사람' 하면 물장수를 연상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북청 사람이 물장수를 시작한 것은 개화 이후, 신학문 공부가 시작되면서부터이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북청 물장수치고 치부하기 위해서 장사를 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고, 그들 뒤에는 반드시 서울 유학생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아들이나 동생의 학자를 위해서는 말할 것도 없고, 머리 좋은 조카나 사촌을 위해서까지도 그들은 서슴지 않고, 희망과 기대 속에 물장수의 고역을 감내했.. 2021. 11.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