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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단편 소설252

97. 나비 나 비 -유진오 바나 카페에 있는 여자들의 세계라면 누구든지 첫째로 술, 둘째로 사내를 들 것이지만 〈프로라〉는 아직 술을 마시지 못하므로 그 에게는 오직 사내들의 세계가 있을 뿐이다. 허기야 〈프로라〉의 이름이 이 종로 뒷골목에 아무리 높고 그를 싸고 도는 사내가 아무리 많다 해도 이런 곳에 발을 들여 놓은 지 아직 석 달 밖에 안되는 〈프로라〉라 그에게 있어서 제 1의 사내는 아직까지는 그래도 그의 남편인 것이다. 생각하면 변변치 못한 인물이라 남과 같이 남편입네 하고 제법 믿고 공경할 만한 위인도 못 되기는 하나 어찌 됐던 몇 해 전에는 식도원에서 결혼식이라는 것을 거행한 사이고 민적 등본을 내 보아도 확실히 김대진 처에 최명순이라고 씌어 있으며 무엇보다도 저녁마다 밤 늦은 후 최종적으로 찾아 들어.. 2022. 2. 26.
96. 꽃이야기 -유순하 꽃 이 야 기 -유순하 그는 살갗이 가무잡잡하고, 몸집이 통통한 편이었다. 양쪽 볼 아랫부분에는 살 한 점씩을 따로 붙여 놓기라도 한 것처럼 볼록했고, 가늘게 열려 있는 눈은 쥐의 그것처럼 음험스러운 빛을 내며 반짝거리고 있었다. 마흔 서넛쯤, 한낱 계장으로서는 늙었다 싶은 나이...... 굳이 따져 보자면 일촉즉발이라 할 수 있을 만큼 밭은 상황이었지만, 나는 이런 것들을 찬찬히 살펴 볼 만큼 여유가 넉넉했다. 이런 게임도 해볼 만 하구나 싶었다. "어떻게든 되는 길이 없겠습니까?" 나는 한껏 간청하는 투를 애써 꾸며 한 번 더 물었다. "없습니다." 그는 어떻게든 자신의 권위를 불려 나타내려 애쓰며 잘라 말했다. "하늘이 두 쪽 난다 해도 안 된단 말씀이죠?" "그렇다니까요." 그는 조금 더 솟아올랐.. 2022. 2. 26.
95. 꽃 이야기 꽃 이야기 -윤흥길 그는 살갗이 가무잡잡하고, 몸집이 통통한 편이었다. 양쪽 볼 아랫부분에는 살 한 점씩을 따로 붙여 놓기라도 한 것처럼 볼록했고, 가늘게 열려 있는 눈은 쥐의 그것처럼 음험스러운 빛을 내며 반짝거리고 있었다. 마흔 서넛쯤, 한낱 계장으로서는 늙었다 싶은 나이...... 굳이 따져 보자면 일촉즉발이라 할 수 있을 만큼 밭은 상황이었지만, 나는 이런 것들을 찬찬히 살펴 볼 만큼 여유가 넉넉했다. 이런 게임도 해볼 만 하구나 싶었다. "어떻게든 되는 길이 없겠습니까?" 나는 한껏 간청하는 투를 애써 꾸며 한 번 더 물었다. "없습니다." 그는 어떻게든 자신의 권위를 불려 나타내려 애쓰며 잘라 말했다. "하늘이 두 쪽 난다 해도 안 된단 말씀이죠?" "그렇다니까요." 그는 조금 더 솟아올랐다... 2022. 2. 26.
94. 김강사와 T교수 김강사(金講師)와 T교수(敎授)-유진오 1 김만필(金萬弼)을 태운 택시는 웃고 떠들고 하며 기운 좋게 교문을 들어가는 학생들 옆을 지나 교정(校庭)을 가로질러 기운차게 큰 커브를 그려 육중한 본관 현관 앞에 우뚝 섰다. 그의 가슴은 벌써 아까부터 두근거리기 시작하였다. 오늘은 그가 일년 반 동안의 룸펜 생활을 겨우 벗어나서 이 S전문 학교의 독일어 교사로 득의의 취임식에 나가는 날인 것이다. 어른이 다된 학생들의 모양을 보기만 해도 젊은 김강사의 가슴은 두근두근한다. 저렇게 큰 학생들을 앞에 놓고 내일부터 강의를 시작하는 것이로구나 하고 생각하니 근심과 기쁨에 뒤섞여 가만히 있을 수 없는 것이었다. 세물 내온 모닝의 옷깃을 가다듬고 넥타이를 바로잡아 위의를 갖춘 후에 그는 자동차를 내렸다. 초가을 교외의.. 2022. 2.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