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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단편 소설252

89. 흑산도 갈매기 흑 산 도 갈 매 기 -문순태 종배가 아니었더라면 아마 그 흑산도 아가씨는 여객선 갑판 위에서. 승객들한테 홀랑 옷을 벗기게 되었거나 아니면 인정사정 볼 것 없이 싫도록 놀림을 당한 뒤 경찰에 넘겨지게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흑산도 관광을 온 서울 남자들 네댓 명이 선실에서 어울려 화투판을 벌이고 있었는데 담요 밑에 넣어둔 판돈을 훔쳤다는 것이었다. 저런 흉칙한 도둑 년은 한번 혼뜨게 당해봐야 한다고, 뱃사람들이 그녀를 갑판 위에 꿇어 앉혀놓고 옷을 벗기겠다고 땅땅 으르는 것을. 종배가 비대발괄 손이 발되게 빌어 가까스로 위기를 면하게 되었다. 종배 자신은 왜 그가 그런 불퉁스러운 여자를 감싸주고. 도둑 년의 서방이냐는 애매한 말까지 들어가면서까지 그 여자를 구해주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여객선이 흑산도.. 2022. 2. 25.
88. 흐르는 뿌리 흐 르 는 뿌 리 -노명석 할멈의 화장은 꽤나 꼼꼼하고 더뎠다, 내 앞에 놓인 술 주전자가 거의 바닥이 날 때까지도, 할멈은 여전히 분첩을 든 손을 바지런히 놀려댔다. 이마에서 양쪽 귀밑으로. 가슴패기에서 턱으로,,,,,, 얼굴의 언저리를 한바퀴 돈 분첩이 조금씩 조금씩 안쪽으로 옳아가고 있었다. 콧등까지 엷게 분칠을 한 다음 한바퀴, 또 한 바퀴.,,,, 할멈의 손놀림이 꽤나 조심스러운데도 이따금 분가루가 폴폴 날려 떨어졌다. 턱 아래로 잘디잔 눈이 내려, 치마폭에 작은 눈밭을 이루어가고 있었다, 곧 겨울이 되리라. 무심코 토담 너머로 들린 내 운길에, 가을걷이가 얼추 끝난 들판의 황량한 풍경이 비쳐들었다. 어느새 서녘으로 흠씬 기운 햇발이 처마 밑으로 비껴들고 있었다. 허물어진 담 그늘이 술상머리에까.. 2022. 2. 24.
87. 허허 선생 허허(許虛) 선생(先生)-남정현 허허(許虛) 선생의 저택인, 즉 우리 집은 왜 그런지 그 집의 구조부터가 자못 심상칠 않았다. 흡사 무슨 옛날 얘기 속에 슬며시 등장하는 요술 단지처럼 항시 우리 집은 보는 이로 하여금 가슴이 설레일 정도로 사뭇 환상적인 형태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아니 환상적 이 란 말보다 실은 좀 기로테스크하다는 표현이 더욱 어울릴는리도 모른다. 그만큼 우리 집은 종래의 집의 개념을 완전히 뒤엎은 설계로 하여 연신 그저 절묘한 형상을 취하고 있는지라 어찌 보면 우리 집은 섭섭하게도 전혀 인간의 집 같질 않은 기괴한 인상마저 풍기는 것이다. 말하자면 일종의 집의 혁명이랄까. 하지만 우리 집은 기왕의 집을 혁명화하여 좀더 살기 좋은 인간의 집으로 승격한 것이 아니라 흡사 우리 집은 인간을.. 2022. 2. 24.
86. 칼과 뿌리 칼 과 뿌 리김주영 떡개구리 한 마리 마음놓고 뛸 처지가 못 되는 이 좁디좁은 동네가, 잎담배 수납기(收納期)가 닥쳐오면 화냥년 속치맛자락처럼 바빠진다. 웬일인지는 몰라도 그 맘때쯤이면, 생판 낯선 타관붙이들이, 허술한 닭장에 족제비 드나들듯이 동네를 뻔질나게 드나든다. 읍내에서 화투장깨나 제낀다는 잡놈들이 사타구니에 두 손 찔러 넣고 골목을 기웃거린다. 술애비질로 피둥피둥 주걱턱에 군살이 오른 읍내의 소방대장인 최 아무개. 옛 날에는 파출소 소장까지 지냈다던 그 안경잽이 백 주사. 천하에 몹쓸 접대 부 생활 청산하고 이제는 합동정유소 소장 소실로 들어앉은 난옥이. 주재기자(駐在記者) 생활로 집을 두 채나 가진 김 아무개. 대개 이 따위 잡동사니 중생들이 소위 예비 시찰조로 동네를 한두 번씩 들러간다. .. 2022. 2.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