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 흐르는 뿌리
흐 르 는 뿌 리 -노명석 할멈의 화장은 꽤나 꼼꼼하고 더뎠다, 내 앞에 놓인 술 주전자가 거의 바닥이 날 때까지도, 할멈은 여전히 분첩을 든 손을 바지런히 놀려댔다. 이마에서 양쪽 귀밑으로. 가슴패기에서 턱으로,,,,,, 얼굴의 언저리를 한바퀴 돈 분첩이 조금씩 조금씩 안쪽으로 옳아가고 있었다. 콧등까지 엷게 분칠을 한 다음 한바퀴, 또 한 바퀴.,,,, 할멈의 손놀림이 꽤나 조심스러운데도 이따금 분가루가 폴폴 날려 떨어졌다. 턱 아래로 잘디잔 눈이 내려, 치마폭에 작은 눈밭을 이루어가고 있었다, 곧 겨울이 되리라. 무심코 토담 너머로 들린 내 운길에, 가을걷이가 얼추 끝난 들판의 황량한 풍경이 비쳐들었다. 어느새 서녘으로 흠씬 기운 햇발이 처마 밑으로 비껴들고 있었다. 허물어진 담 그늘이 술상머리에까..
2022. 2.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