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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단편소설2122

104. 목넘이 마을의 개 목넘이 마을의 개 -황순원 어디를 가려도 목(다른 곳으로 빠져나갈 수 없는 중요한 통로의 좁은 곳)을 넘어야 했다. 남쪽만은 꽤 길게 굽이돈 골짜기를 이루고 있지만, 결국 동서남북 모두 산으로 둘러싸여 어디를 가려도 산목을 넘어야만 했다. 그래 이름 지어 목넘이 마을이라 불렀다. 이 목넘이 마을에 한 시절 이른봄으로부터 늦가을까지 적잖은 서북간도 이사꾼이 들러 지나갔다. 남쪽 산목을 넘어오는 이들 이사꾼들은 이 마을에 들어서서는 으레 서쪽 산 밑 오막살이 앞에 있는 우물가에서 피곤한 다리를 쉬어 가는 것이었다. 대개가 단출한(식구가 적은) 식구라고는 없는 듯했다. 간혹 가다 아직 나이 젊은 내외인 듯한 남녀가 보이기도 했으나, 거의가 다 수다한(많은) 가족이 줄레줄레 남쪽 산목을 넘어 와 닿는 것이었다... 2022. 3. 31.
103. 마차의 행렬 마차(馬車)의 행렬(行列) -홍구 이 한없이 넓고 기름진 이 벌과 뭇 곡식은 , 자기의 살아오던, 자기의 조상의 피로 땀으로 지경을 다졌으며 눈물과 한숨으로 역사를 기록해 놓은, 잊으려 잊을 수 없는 자기네들 땅에서 검붉은 억세인 주먹으로 오장이 끓어오르는 듯한 눈물을 소리 없이 씻어버리고 지경을 넘어온 이 땅 사람들의 손으로 씨를 뿌리고 김을 맨 곡식들이다. 이 벌은 몇십 리 몇백 리나 되는지 한없이 네 활개를 펴고, 쩍 벌어진 곳에 온갖 곡식은 누런 파도를 치고 있다. 이 파도는 성스런 우리들의 생명을 잡아 삼키기도 했다. 이 벌은 기름졌으며, 뭇 곡식은 무럭무럭 자라서 실념이 되었다. 그러나 가을이 되어 그 곡식을 베어 털고 나면 늙은 아버지는 아들을 치어다보고 눈물을 흘리며, 아들은 아버지의 눈물.. 2022. 3. 31.
102. 독 짓는 늙은이 독 짓는 늙은이 -황순원 이년! 이 백 번 쥑에두 쌀 년! 앓는 남편두 남편이디만, 어린 자식을 놔두구 그래 도망을 가? 것두 아들놈 같은 조수놈하구서------ 그래 지금 한창 나이란 말이디? 그렇다구 이년, 내가 아무리 늙구 병들었기루서니 거랑질이야 할 줄 아니? 이녀언! 하는데, 옆에 누웠던 어린 아들이, 아 바지, 아바지이! 하였으나 송 영감은 꿈 속에서 자기 품에 안은 아들이 아바지, 아바지이! 하고 부르는 것으로 알며. 오냐 데건 네 에미가 아니다! 하고 꼭 품에 껴안는 것을, 옆에 누운 어린 아들이 그냥 울먹울먹한 목소리로 아버지를 불러, 잠꼬대에서 송 영감을 깨워 놓았다. 송 영감은 잠들기 전보다 더 머리가 무겁고 언짢았다. 애가 종내 훌쩍 훌쩍 울기 시작했다. 오, 오, 하며 송 영감은 .. 2022. 3. 31.
101. 다락일기 다락 일기 -현길언 1 "잠이 안 와?" "응." 청년은 벽을 향해 몸을 돌리더니 새우처럼 오그라들며 신음하듯 대답했다. 이틀 동안 잠에만 파묻혀 있던 그는 사흘째되면서부터 다시 불면에 괴로워하기 시작하였다, "왜, 겁나?" "아니요." "그럼?" “……" 청년은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한다면서도 말이 쉽게 이어지질 않았다, 그 동안 밤낮 이틀을 죽음처럼 잠에 빠져 있다가 엊저녁부터 긴 혼미에서 깨어난 그는, 비로소 차차 맑아지는 의식 속에 휑뎅그렁하게 내동댕이쳐진 자신을 보게 되었다. 두 사람이 발을 뻗고 누우면 꽉 찰 다락은, 창이라야 겨우 네모진 한 뼘의 통풍용뿐인데, 그것도 까만 천으로 꽁꽁 가려져 있었다. 방안의 어둠은 선풍기 조명등으로 약간 흐트러져 있었고 무료하게 위잉 윙 가냘픈 소리를 내며 돌.. 2022. 3.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