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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수필4137

동청도사리암이씨심방 동청도사리암이씨심방*/ 이 정 화 오르막길이 놓였다. 삼복염천에 계획에도 없던 산길을 오른다. 두 다리는 갈수록 무거워지건만, 비탈길과 층층 돌계단은 더욱 가팔라진다. 중력을 거스르는 걸음에 힘을 주어 지구를 묵직하게 밀어 올릴 수밖에 없다. 사리암 앞에까지 차가 들어간다는 말을 들었던 것도 같다. 막상 와 보니 산기슭에서 산꼭지까지 올라가야 법당 문고리라도 만져볼 수 있는 곳이다. 막막한 심정으로 쳐다보니 산 능선 아래 암자 처마가 살포시 고개를 들어 반긴다. 애추崖錐를 이룬 벼랑은 아득하지만 그곳에 다다르는 길이 놓였다. ‘귀찮다’, ‘가기 싫다’는 마음의 소리를 애써 외면하면서 발을 내딛는다. 한때 기암괴석으로 우뚝 섰던 바위가 풍화에 부서져 검은 파석이 흘러내린다. 암괴류로 굴러 내리는 돌은 푸른.. 2022. 8. 27.
솔개 솔개- 정희승 책가방을 마루에 던져놓고 밖으로 나가려는데 할아버지가 닭장 앞에서 부르셨다. 대문 앞쪽에 있는 닭장은 아랫집 담을 등지고 돼지우리에 바투 붙어 서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도 할아버지는 닭장을 들여다보기만 할 뿐 내게는 눈길을 주지 않았다. “닭이 몹쓸 병에 걸렸구나.” 중닭 두 마리가 닭장 구석에서 꾸벅꾸벅 조는 게 보였다.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번갈아 가며 고개를 숙였다 들기를 반복하면서. “서둘러야겠구나. 저 닭들을 얼른 산에다 놓아두고 오렴.” “왜요?” 까닭을 모르는 나는 그 이유를 여쭤보지 않을 수 없었다. 할아버지는 숨탄것이라면 작은 벌레라도 함부로 죽이지 않는 분이셨다. “치료할 약이 없단다. 이대로 두면 전염병이 번져서 다른 닭들까지 죽게 돼. 우리 닭뿐 아니라 동네 닭이 다 .. 2022. 8. 27.
낙타표 문화연필 낙타표 문화연필 -정희승 Ⅰ. 연필이 백지를 앞에 두고 살을 벗는다. 신성한 백지에 들어서기 위해서는 목욕재계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죄악과 탐욕으로 물든 몸뚱이 그 자체를 벗어야 한다.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그리움을 쓰기 위하여 비장한 마음으로 결국 몸을 벗는다. 아, 관 속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시체처럼 꼼짝없이 누워 지냈던가. 외롭구나. 정말 보고 싶구나. 짓누르는 어둠 밑에서 사향각시처럼 얼마나 자주 무겁게 탄식했던가. 세상으로 나서지 못하고 몸 안에서 맴돌다 결국 살이 되어버린 부질없는 독백과 회한들,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더 싱싱한 날것으로 살아나는 생살들, 그래 이제는 가거라. 죽어도 썩지 않는 향기로운 살점들아. 살을 저밀 때마다 신경들이 심하게 경련한다. 비릿한 근육들이 고통스럽게 꿈틀거.. 2022. 8. 27.
좋은 글의 요건 좋은 글의 요건 이 응 백(李應百) 무릇 글을쓰는 동기(動機)는,생각과 느낌을 표현(表現)하고 전달(傳達)하려는 데 있다.따라서 좋은 글이란,생각과 느낌이 효과적으로 표현,전달될 수 있는 글이다.그러면 어떤 글이 그 내용을 효과적으로 표현,전달할 수 있는가?좋은 글이 될 수 있는 요건은 무엇인가? 좋은 글의 요건으로 다음 몇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다음의 요건들을 갖추기만 하면 반드시 좋은 글이 되는 것은 아닐지라도,좋은 글에 이러한 요소(要素)들이 갖추어져 있는 것은 사실이다. 내용이 충실할 것 내용이라고 하여 반드시 깊은 사색(思索)의 결과(結果)나 오묘한 진리(眞理)를 뜻하지는 않는다.어떤 의견(意見)이나 정보(情報),지식(知識),또는 느낌이나 관념(觀念)등 무엇이든지 간에‘쓸 것’이 곧 글의 .. 2022. 8. 27.